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7
오카 마리 지음, 이재봉.사이키 가쓰히로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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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서양 선진 공업국 페미니즘이 자신들을 보편으로 설정하고 제3세계의 베일이나 여성 성기 할례를 객체화함으로써 제3세계 자체를 송두리째 뒤처진 것으로 만들고 결과적으로 인종차별주의에 가담해버리는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같은 여성이라고 말하면서 다양이라는 특권의 방패에 보호받고 있는 한편의 여성이, 또 한편의 억압받고 특권이 없는 여성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장렬하게 묻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제3세계 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제3세계 여성에 관한 담론이 시장적 가치를 갖게 되면서, 실제로는 제3세계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에 바탕을 둔, 그녀들을 유다른 희생자로 바라보고 그녀들의 사회를 억압적이고 야만적인 것으로서 표출하는 이미지가 인권이나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담론 속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서양 페미니즘 담론이 아랍이나 아프리카, 혹은 이슬람 사회를 여성 차별적, 억압적이라고 비판하는 근거로 삼고 있는 인권이나 페미니즘의 보편성이란 이러한 비판에 앞서 선험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실 서양이 일방적으로 타자를 억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행위에 의해서만 담보되고 있으며, 그러한 보편적 인권이나 페미니즘에 이들 해당 사회의 여성들이 관여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여성의 인권이나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여성의 억압, 여성들이 당하는 착취와 사회적 압력은 아랍이나 중동 사회, 제3세계의 여러 나라에만 있는 특유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후진적으로 봉건적인 사회이든 과학기술혁명의 영향을 받은 근대 산업사회이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배적인 정치적 · 경제적 · 문화적 제도의 불가결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학문과, 페미니즘이라는 정치 실천 및 조직화와의 필연적이고 불가분한 관계가, 제3세계 여성들에 대한 서양 페미니스트 저작들의 중요성과 지위를 결정하낟. 왜냐하면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은 다른 대부분의 학문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어떤 문제에 대한 지를 생산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실천이다.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의 실천은 여러 가지 힘의 관계 속에, 말하자면 그녀들이 대치하고, 저항하고 혹은 은연중 지지하기도 하는 여러 관계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몰정치적인 학문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세계의 페미니즘의 주요한 목적은 해당 사회에서 남성중심주의를 시정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제3세계 페미니즘은 자기 사회 내부의 부권주의, 남성 중심주의에 대한 투쟁임과 동시에, 서양의 식민주의에 대해서는 민족의 입장에서 싸워야만 한다. 이와 같은 투쟁의 이중성이 제3세계 페미니즘을 더욱 곤경으로 내몬다. 우리는 제3세계 페미니즘에 내재하는 이 본질적인 이중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녀들이 주장하는 민족적 주체성을 무시하고 서양 페미니즘만을 보편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녀들에게 분명한 억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3세계 여성이 그녀들 사회 고유의 부권주의 때문에 서구 여성들보다 더 억압받고 있다는 것은 완전히 몰역사적인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젠더 이외의 여러 요인들이, 제3세계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억압의 필수적인 구성 성분이며, 부권주의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현지 사회 고유의 불평등한 젠더 관계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제3세계 여성의 노동이 대부분 서양의 부권주의나 인종차별주의, 착취로 인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타자에 대한 나의 공감을 오히려 그들의 공감과는 절대적으로 공약 불가능한 것으로 서술하는 것, 나의 눈앞에 주어진 타자의 고통을, 동일화에 의한 공감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공감의 말을 찾는 것. 위안부였던 여성들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아픔의 목소리에 몸부림치면서,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폭력성과 그녀들의 고통과 그에 대한 나의 공감은 그녀들의 몸속 깊은 곳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의 철저한 무력함에서 서술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일본 페미니즘은 다양하다고들 한다.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실제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등의 말이 유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와 같은 식민주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 생각하고 활동해온 여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융성한 여성학이나 페미니즘 속에서 그러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소수이며 주변적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밖에서 보면 얼마나 획일적으로 존재하는지 하는 점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양성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 실제로는 어떤 내적인 공동성으로 보증된 특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탈식민주의의 과제를 일본 여성들의 과제로 삼아 꾸준히 고민해 온 이런 분들의 노력을, 일본 페미니즘이 다양하며 그래서 우리가 식민지주의적인 억압이나 폭력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기 위한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그녀들의 말을 알아듣고 그녀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고, 그녀들의 요청이나 부름에 언제나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을 대리 표상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그녀들의 상황과 표상을 수동적인 주체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언제나 그녀들과 진정으로 함께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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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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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에서 적응 잘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일상에도 무난히 적응할 수 있다. 그냥, '대한민국은 군대다'. 그러니 싫든 좋든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남자들은 사회생활이 여러모로 여자들에 비해 유리하다.

 

 당당함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겠지만 과하면 문제를 일으킨다. 카리스마, 리더십 같은 말들이 난무하고 남자라면 그래야지라는 조언이 일상적인 곳에서는 당당함이 사람의 능력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즉, 당당함이 개성이나 캐릭터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유무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당당함을 유전자를 타고난 경우는 없다. 이것은 철저히 사회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학습된다.

 

 

 남자만의 벌이로 가족의 생계가 안정적일 수 없는 시대가 오면서 맞벌이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남자들은 아내가 돈도 벌어주길 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도'다. 즉 원래의 일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있다. 일을 한다는 핑계로 집안일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래서 일은 하지만 원래의 집안일에 타격을 가장 적게 받는 직업이 좋다. 그러니 초등학교 교사는 최고다. 퇴근도 정시가 보장되고 무엇보다 방학도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운전을 못할 때 종종, 아니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김 여사' 이미지는 남자들의 대표적인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구글 이미지에 '김 여사'를 검색해보라. 여성 운전자를 조롱하는 무수한 사진들이 이를 증명할 것이다.

 

 여자가 운전하는 것을 비하하는 '김 여사' 이미지가 문제가 되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남자들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로 주장을 펴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니 도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어떤 운전 미숙자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받을 때는 그 운전자의 성별을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배려하는 것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건 운전대를 잡는 모든 사람이 고려해야 하는 시민의 덕목이다. 

 

 

 정보 취득과 공유가 평등해진 사회를 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그래서 과거 같았으면 별일 아닌 것처럼 덮어졌을 일들도 여론의 심판을 받게 된다. 주로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졌던 폭력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세상에 들통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저지르는 여러 폭력이 대표적인 경우다.

 

 물리적 폭력에서부터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 언어적 폭력까지, 남자들은 이제 과거에 비해 훨씬 조심하면서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원래 조심해야 하는 것은 훨씬 조심하는 것이 맞다. 성추행은 하지 않는 것이 답이지, 과거만큼 못 한다고 무슨 행동에 제약이 있는 것처럼 이해해선 안 된다.

 

 

 개인은 자신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그러니까 익숙한 것을 극대화시켜 상품으로 포장하는 전략을 수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강한 남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여자들은 조신한 여자로서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려고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사회가 원하는 것이 '부당한 것을 참을 수 있는지'이니 별수가 없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답게는 중요치 않다.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말만 부유하는 곳에서는 일그러진 인간들만이 활보한다.

 

 성희롱인지도 모르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남자다운 남자들과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하는 여자다운 여자들, 그리고 이 문제가 드러나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전혀 인간다운 세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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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거울, 영웅전 -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 - 로마 군주의 거울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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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의 군주의 거울로 선택하고 소개할 책은 플루타르코스가 쓴 [비교 영웅전]이다. 사실 책의 분량만으로만 따지자면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은 그리스 편에서 소개한 모든 책의 네 배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이다. 무려 50여 명이 군주의 거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고대 로마에서 군주의 거울을 찾고자 한다면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 한 권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사실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은 한 권이 아니라 총 50권으로 구성된 전질이기 때문이다.

 

 사실 군주의 거울이라는 인문학 고전의 중요성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사람이 플루타르코스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책 [모랄리아]에서 자기성찰을 위한 거울의 메타포를 직접 사용했다.

 

 

 플루타르코스는 [비교 영웅전] 첫 부분에서 아테네를 아름답고 이름 높은 도시로 소개했다. 반면 로마는 무적이며 영광스러운 도시로 그 특징을 요약했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는 로마제국이 간직해야 할 또 다른 덕목을 강조한다. 바로 아름답고 이름 높은이라는 덕목이다. 로마제국이 추구해야 할 탁월함은 무적이며 영광스러운 것만이 아니라 아름답고 이름 높은 가치의 추구에도 있다는 것이다.

 

 영웅의 명성은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다.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하고 역경을 극복해 나갈때 아름답고 이름 높은 명예가 주어진다. 그런 이유로 테세우스는 편한 길을 버리고 힘든 여정을 선택한 것이다. 스파르타에 헤라클레스가 있었다면, 아테네에는 테세우스가 있었다.

 

 스파르타 최초의 입법자인 리쿠르고스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은 교육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부자 청년에게도 교육의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플루타르코스는 [비교 영웅전]에서 리쿠르고스의 공적을 이렇게 요약한다. "한마디로 말해 그의 업적은 시민들이 자기만을 위해 살고 싶다는 욕구, 혹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지 않도록 훈련시킨 것이었다." 리쿠르고스의 이런 노력을 통해 위대한 스파르타가 탄생하게 된다.

 

 아테네와 함께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자웅을 겨루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를 누르고 승리를 거둔 스파르타의 힘은 바로 입법자 리쿠르고스에게서 나왔다.

 

 

 플러톤은 가장 우수한 자들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는 이상국가론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의 상당 부분은 이런 이상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가장 우수한 자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 위인과 로마 위인을 서로 짝지어 비교하면서 은근 슬쩍 그리스인들을 추켜세우는 것으로 자기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드러냈다. 비록 그리스가 막강한 로마의 군사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변방의 약소국가이긴 했지만,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조차 그리스라는 어머니가 제공해준 문명의 젖을 먹고 자란 신생이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인 폭력성을 억제하고 나라를 평화와 공존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으로 다스리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는 주장이 있다. 위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피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방식이다. 악한들은 강력한 법의 제재를 받게 하고, 선한 사람들에게는 법의 보호가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어 사회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는 효과도 있다. 이런 힘의 방식은 주로 강력한 군주제에서 사용한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제도적 장치일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가 군주의 거울로 보여주고 싶었던 아게실라오스라는 스스로 고난을 감내하며 권력의 최고 정점에 올랐지만 아게실라오스는 늘 시민들 앞에서 겸손했고, 정적들에게도 자비로웠다. 페르시아에서 불세출의 명성을 쌓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명예를 남길 수 있었지만 그는 조국의 부름에 즉각 순종했다.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선두에 서서 행진하는 리더였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41년간 스파르타의 왕이었고, 그 가운데 30년이 넘도록 그리스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칭송받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것이 플루타르코스가 아게실라오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는 군주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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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정보원 - 전2권 한국문학사 작은책 시리즈
홍상화 지음 / 한국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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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혹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만큼 너무 사실적이란 느낌이었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 이 소설이 분단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천착하고자 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이 흔한 대로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정면에서 진지하게 다루고자 한 것이라면 읽는 독자들이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사실이지 않을까 하며 이 책에 빠져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두 인물 정사용과 김경철이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를 먼저 알고 읽으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정사용은 안정된 가정에서 태어나 6 · 25 발발 전 중학교 재학 중 맹목적으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침윤돼 좌익 학생운동에 참여한다. 6 · 25가 발발하자 그는 북한 의용군에 자원 입대, 중상을 당한 뒤 하급노동자로 전락한다. 여배우 최영실과 결혼하여 딸을 낳고 밀봉교육을 받은 후 간첩으로 남파된 그는 숙부 등 친척들의 포섭에 실패, 체포된다. 마침내 전향하여 결혼도 하고 경제적 안정까지 누리게 된 그는 어느 날 병사를 가장한 후 자살해버린다.

 

 김경철은 안정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대학에 입학한 후 학보병으로 입영, 육군 정보부대에 배속된다. 그 인연으로 5 · 16 쿠데타가 일어난 후 정보부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그로부터 15년 동안 정보요원으로 일한다.

 

 김경철이 1970년 미군 정보대에 파견되어 근무하던 중 자수한 간첩 정사용의 심문을 통역하게 됨으로써 이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이런 인연으로 둘은 가깝게 지내게 된다. 김경철은 정사용의 자살을 얘기 듣고 그 이유를 파헤치던 중 자신이 정사용이 되어 진정한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정사용이 죽기 전 했던 것들을 김경철도 똑같이 경험하며 정사용의 심정을 이해하려 하던 중 그는 자신이 정사용이 된 듯 착각하며 정신병을 겪는다.

 

 결국 김경철은 마치 자신이 정사용인 양 북한으로의 망명까지 생각하게 되고, 정사용의 부인과 딸을 자신의 부인과 딸로 착각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엔 망명에 성공하지만 북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만다.

 

 이 소설을 읽으며 북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둔 정사용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아내와 불화를 겪던 김경철이 정사용의 아내가 자신의 아내였으면 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만큼 이 소설은 읽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 재밌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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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소년
창신강 지음, 주수련 옮김 / 책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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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에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녹아 있다. 아이를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성장시키려는 권력자,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친구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아이의 행동, 부모의 비뚤어진 애착, 아이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교육의 본질 등이다.

 

 왜 나쁜 행동을 멈추고 좋은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틀에 박힌 교훈처럼 제시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굉장히 흥미롭게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시간이 지나도 자라지 않는 주인공을 비롯해 검은 카드, 비정상적인 새끼손가락, 특별 법원 등 흥미롭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독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또한 작가는 각 장마다 복선만 던져 줄 뿐 결말을 알 수 없는 구조로 궁금증을 더해 가며 독자가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2000년 어느 여름날 아침, 시장에 못 보던 노인이 한 명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 노인이 어딘가 낯이 익은데도 선뜻 알은체를 하지 못했다. 그 노인이 자신을 '라오더우푸'라고 소개한 뒤에야 사람들은 팔 년 동안 중풍으로 몸져누웠던 라오더우푸를 기억해 냈다. 라오더우푸의 머리는 비닐봉지 속의 두부보다 더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두부를 좋아했다.

 

 라오더우푸는 무심코 오래된 건물의 나무 발코니 위를 올려다보다가 그만 돌처럼 굳어 버리고 만다. 그는 손가락으로 발코니를 가리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만다. 라오더우푸가 가리킨 것은 이 책의 주인공 펑이었다. 그리고 라오더우푸가 팔 년 만에 처음 거리로 나온 날이었다.

 

 1992년 여름, 라오더우푸는 시장에 갔다가 나무 발코니가 있는 건물 아래를 지나가게 되었다. 별안간 위에서 물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열 살 난 펑이 3층 나무 발코니에 서서 아랫도리를 내놓고 오줌을 누고 있었다. 라오더우푸는 화가 나 발코니 쪽을 향해 고함을 질렀고 길 가던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2000년 여름, 그때와 똑같은 모습의 펑을 또다시 보게 된 것이었다. 

 

 

 펑이 나쁜일을 하면 어디선가 누군가 나타나 검은 카드를 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쓰인 카드라 버리려고 하지만, 그 카드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카드를 쳐다보던 펑의 눈에 점점 글씨가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카드 마지막에는 몇호 감독원이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펑이는 기억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은 흘러간다. 왜 기억을 못하는지 어떻게 이런일을 겪는지는 이 책을 끝까지 보면 알게된다. 또한 펑이 키우는 개가 있는데 그 개 이름은 나이트다.

 

 펑이 좋은 일을 하면서 서서히 기억력이 돌아오게 된다. 기억이 돌아오려면 펑이 계속 좋은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복된 기억력 또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기억력이 완전히 돌아오면 펑과 나이트의 본래 모습까지 찾을 수 있다.

 

 팔 년 전, 특별 법원 7명의 재판관으로 인해 펑이 기억력을 잃게 된 것이다. 펑이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7명의 재판관 중 4명 이상의 재판관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재판관 한 명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고 두 명은 사직서를 낸 상태다. 그러니 나머지 4명의 재판관 모두 동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펑의 담임 선생님이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생기고, 선생님을 문병간 펑은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위해 남은 4명의 재판관들 중 3명에게 이미 동의를 받은 것을 알게 된다. 담임 선생님은 동의를 받아주고는 눈을 감는다.

 

 펑은 나머지 여자 재판관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 남은 한 명의 여자 재판관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자신의 엄마였던 거였다. 결국 엄마의 동의까지 받은 펑이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또한 펑이의 개 나이트도 옛날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펑이는 몸집도 커지고 제 나이로 돌아오긴 했지만, 나이트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마자 나이를 먹게되고 나이가 들어 죽음에 임박하게 된다. 그래선지 돌아온 것이 좋은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판타지적 요소가 주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주인공의 일상과 그 일상 속의 평범한 존재들, 즉 개, 선생님, 일하는 엄마, 반 친구들, 동네 친구, 슈퍼마켓 아주머니,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등 등장인물을 매우 친근감 있게 그려 냈기 때문이다. 말썽을 피워 도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악동, 이 골치 아픈 건만증 소년 펑도 주변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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