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4 :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4
남명심 글, 정윤채 그림, 손영운 기획,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원작 / 채우리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작품은 러시아의 한 지방 도시에서 13년 전에 벌어진 '친부 살해' 사건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그려진다. 작품의 주인공은 정욕의 화신인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세 아들인 첫째 드미트리, 둘째 이반, 셋째 알렉세이다. 이들은 각각 감성, 이성, 신성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구상되었다. 세 형제 중에서 작품 속의 주요 사건을 가장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물은 드미트리다. 드미트리로 인해 아버지와 자식 간 대립의 테마, 사랑의 테마, 돈의 테마가 전개된다.

 

 반면에 이반 및 알렉세이는 종교 및 신앙의 테마가 전개 된다. 친부 살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드미트리와 아버지 사이에 얽혀 있었던 돈과 여자 문제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반과 이반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표도르의 사생아 스메르자코프의 종교적 신념의 문제에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무신론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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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인간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여 혼의 리얼리즘 대가라고 불렸던 도스토옙스키의 최후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와벌] [백치] [악령] 등의 전작들에서 보여 주었던 여러 가지 주제와 사상, 그리고 인물의 형상들을 가져와 이 작품에서 종합적으로 그려 내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최초에 2부로 기획되었던 작품으로 도소토옙스키는 전작들보다 구원의 문제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작가의 사망으로 인해 2부는 집필되지 못했지만 완성된 1부만으로도 우리들은 이러한 주제 의식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에는 지겨운 가난과 도박, 간질 발작의 고통,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의 순간을 마주했던 경험들이 작품 곳곳에 녹아져 담겼다. 그의 삶은 고통의 연속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소설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고, 의미 심장한 사건들로 변모 시켰다. 물론 당대 러시아 사회의 갈등과 지식인들의 고뇌, 민중의 삶과 애환도 담아냈다. 이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고통에서 얻은 통찰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남긴 말 중에 '고통이야말로 지혜의 유일무이한 원천이다.'라는 말이 있다.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삶의 고통을 지혜와 통찰로 승화시킨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활동하던 19세기 러시아는 황제의 전제정치와 농노제로 상징되는 낡은 질서가 차츰 무너지고 바야흐로 근대적인 국가로 탈바꿈을 하기 시작하던 급격한 전환기의 시대였다. 알렉산드르 1세 재위 말년인 1821년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났다. 그리고 니콜라이 1세 재위 기간 동안 그는 청년 시절을 보냈다. 이때는 러시아 전제 정치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의 특징]

 

1. 아버지 표도르

- 개인주의와 돈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덕함을 가지고 있다. 가난한 지주였지만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재산을 늘린다. 하지만 이웃과 사회에 대한 냉소를 품고 있으며, 결혼한 부인이나 자식에 대해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무책임하게 던져 버린 인물이다. 타인이 자신에게 모욕을 주거나 시비를 걸면 오히려 그것을 쾌감으로 느낀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의 조롱을 되받아치며 상대에게 더 큰 모멸감을 준다. 또한 그는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으로 묘사된다. 작품 속에서는 방탕함과 육체적 쾌락이 주는 타락을 즐기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2. 첫째 아들 드미트리

- 아버지 표도르에게서 거친 열정과 육체적 욕망, 방탕함을 물려받았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와 가장 많이 닮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랬기 때문에 그루센카라는 한 여자를 두고 아버지와 삼각관계를 이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표도르가 그루센카에게 가지는 육체적 욕망과는 달리, 드미트리의 욕망은 비록 육체적 욕망에서 출발했지만 진심을 담은 사랑으로 승화된다.

 

3. 둘째 아들 이반

- 이반은 소설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도전을 극대화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소설의 도입부터 이반은 믿음과 불신앙의 내면 투쟁 중이었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이반의 내면은 결국 분열하게 된다. 이반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사상과 관념을 드러내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그에 대한 외모 묘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이유는 이반 자체가 정신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담기 위해 그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4. 셋째 아들 알렉세이

- 표도르의 감수성을 닮은 인물이다. 이 감수성이 사랑의 능력으로 자라난 것이 알렉세이의 성품에서 기본을 이룬다. 알렉세이는 어릴 때부터 주위의 모든이에게 사랑을 받는다. 그는 실천적인 사랑을 실현하라는 장로의 가르침을 따르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알렉세이는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화해와 용서, 하나됨을 강조하며 도스토옙스키의 사상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의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하다. 아버지 표도르가 비명횡사했고,  사람들은 돈과 여자 문제로 불화가 계속되던 첫째 아들 드미트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는 의문들을 따라가며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어 나간다. 하지만 소설의 이면에는 신앙과 종교의 문제, 인간의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사랑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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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3 : 폭풍의 언덕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3
정윤채 그림, 권기희 글, 손영운 기획, 에밀리 브론테 원작 / 채우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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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의 언덕]에는 이제까지의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물들, 즉 자신을 키워 준 집안에 2대에 걸쳐서 철저하게 복수를 하거나,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사랑하는 남자를 곁에 두고 지켜 주려고 하거나, 죽음까지도 뛰어넘으려고 하는 불멸의 사랑을 하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쉼 없이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음산한 저택, 워더링 하이츠를 배경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1847년에 출판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3대에 걸친 애증과 복수, 화해를 그린 빼어난 작품이다. 작품은 격정적인 자연을 상징하는 드러시크로스를 대비하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집안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열정과 사랑은 작품 속의 자연 환경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고, 때문에 유령의 존재까지 포용할 정도로 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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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 국어사전에 보면 이와 같은 뜻의 말이 있다. 바로 애증이라는 말이다. 이 애증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된 뜻을 가졌는데,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동시에 생기는 감정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순되고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애증이라는 감정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남녀 간의 사랑이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이 깊어지면 이 애증이라는 감정이 찾아오는데, 상대방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을 때나, 가슴으로는 사랑하지만 이성으로는 인정할 수 없을 때, 주로 느낄 수 있다.

 

 [폭풍의 언덕]에서도 이 애증이라는 감정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력이 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 히스클리프는 한평생, 오직 한 여인 캐서린만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에드거와 결혼했을 때, 그는 증오에 사로잡혀 복수를 한다. 또한 캐서린이 죽은 뒤에도 히스클리프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복수를 멈추지 않는다. 그로 인해 복수의 칼날은 캐서린의 딸에게까지 미친다.

 

 소설 [폭풍의 언덕]은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남녀의 광기 어린 사랑을 그린 애증의 대 서사시이다. 원작자 에밀리 브론테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애증을 악마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격렬하게 묘사한다. 그리하여 1847년 발표된 [폭풍의 언덕]은 현대에 와서도 인간의 정열을 극한까지 추구한 걸작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이러한 이유들로 [폭풍의 언덕]은 192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 편수는 10여 편이 넘는다.

 

 

 [폭풍의 언덕]에는 히스클리프, 캐서린, 힌들리, 에드거, 캐시, 헤어튼, 린튼, 이사벨라 등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강한 증오심, 강한 야성, 남다른 병약함 등 특별한 개성을 보여 준다.

 

 주인공인 히스클리프는 폭풍이라고 볼 수도 있다. 평온한 마을에 들이쳐서 가만히 있는 집들을 흔들어 놓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 속에서 히스클리프는 폭풍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불행을 불러오는 위험한 인물이다. 복수와 야망을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이사벨라와 결혼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아들을 복수의 도구로 이용하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하는 캐서린의 무덤을 파헤치기도 한다. 또한 자신에게 해를 끼친 모든 사람들에게 집요하고 치밀하게 복수를 하기도 한다.

 

 이런 히스클리프를 목숨보다 더 사랑한 인물이 캐서린이다. 그녀 역시 히스클리프만큼이나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로, 사랑에서 강한 애정과 열정을 보여 준다. 아버지 언쇼가 리버풀로 여행을 떠날 때, 그녀는 선물로 말채찍을 사 달라고 한다. 여섯 살 남짓한 여자 아이의 선물로는 섬뜩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캐서린과는 왠지 잘 어울린다. 아버지는 말채찍 대신 히스클리프를 데려왔고, 그녀는 야생마 같은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초월할 것 같은 그녀의 사랑도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 사랑과 조건 사이에서 갈등하던 캐서린은 결국 히스클리프가 아닌 에드거와 결혼한다. 그런데 결혼을 했음에도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는다. 그녀는 히스클리프와 에드거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이 갈등은 결국 캐서린의 생명까지 단축시키는데, 그런데도 그녀는 히스클리프를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랑한다. 결국 캐서린은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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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2 : 돈키호테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
백원흠 그림, 김형주 글, 손영운 기획, 미겔 데 세르반테스 원작 / 채우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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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귀족이었던 돈키호테는 세상의 모든 불의와 부정에 대항하는 편력기사가 되어 불후의 명성을 남기기로 결심을 하고 길을 나선다. 낡고 어쭙잖은 기사 복장으로 깡마른 말 등에 올라타고 편력을 하던 그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싸움을 걸었다가 낭패를 보는가 하면 양 떼를 적의 군대라 착각하고 그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낭패를 보고서도 돈키호테는 "이 모든 것들은 다 요술쟁이의 장난이다."고 소리치고 자신의 이상을 좇아 여행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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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는 이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돈키호테의 눈을 통해 16세기 스페인의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지배 계급의 형태를 마음껏 풍자하고 조소를 보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모험을 통해서, 세상을 살다보면 덕성이나 신중함이 꼭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고난과 역격으로 가득찬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이야기하려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돈키호테는 그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이상주의자나 유토비아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아름다운 미래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다. 돈키호테가 바라보는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그래서 기준이 없이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는 현실에 대해서 의심하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부정하며, 그 경계조차 무너뜨려 버린다. 그렇게 주인공 돈키호테는 질서 정연한 현실의 공간을 환상적이며 마술적인 공간으로 바꿔 버린다.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는 출단된 지 400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고전이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돈키호테]는 2002년에 노벨연구소에서 세계 최고의 작가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수없이 많은 다른 명작들을 제치고 [돈키호테]가 최초의 작품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 등이 현대에도 여전히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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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사회는 신분과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신분은 귀족, 자유인, 반 예속민, 예속민으로 나뉘었고, 계급은 제후, 기사, 부농, 중농, 빈농, 일용 노동자 등으로 나뉘었다. 기사가 되는 데는 신분의 차별이 없었기 때문에 귀족이 아니더라도 자유인이면 누구나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갑옷과 전투용 말의 값이 비싸지면서, 기사들의 대부분은 부유한 귀족 출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사도의 발전은 봉건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은 지방 영주에 예속된 농민이었다. 이들은 영주의 땅을 경작하고 그 땅에서 나온 수확물의 일부를 영주에게 바쳤고 영주는 그들에게 집과 가축 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외적의 약탈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돈키호테가 모험을 하면서 착용한 긴 창과 방패 같은 것은 사실 아주 오래전의 기사들이 착용하던 것으로, [돈키호테]의 배경이 되었던 16세기의 무기와는 다른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15세기 초에 이미 발화력을 이용한 무기가 널리 퍼지면서 무기 체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15세기 초부터 육지에서 싸우는 보병대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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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와 함께 대문호로 칭송받는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세르반테스와 동시대 사람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같은 해, 같은 날인 1616년 4월 23일에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유네스코에서는 이 두 대문호를 기리고 전 세계인들의 독서 증진을 위해 이 두 사람이 동시에 사망했던 4월 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2002년 노벨연구소에서 세계 최고의 작가 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돈키호테]가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선정되었다. 수없이 많은 다른 명작들을 제치고 [돈키호테]가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 등이 현대에도 여전히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는 당시 유행하던 기존 기사 소설들의 서술 방식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서사 형식을 모색해 [돈키호테]라는 현대적인 의미의 소설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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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1 : 주홍글씨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1
배민기 그림, 김세라 글, 손영운 기획, 너대니얼 호손 원작 / 채우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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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미국은 청교주의라는 엄격한 종교적 도덕률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소설 [주홍 글씨]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금지된 사랑을 아픈 마음으로 섬세하게 그려 내고 있으며,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수작이다.


 [주홍 글씨]는 헤스터 프린이 처형대에 서서 처벌을 받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헤스터 프린이 어떻게 딤즈데일 목사와 불륜을 맺었는지가 아니라, 불륜을 저지른 후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감옥과 무덤이 상징하듯 원죄를 지닌 인간이 본질적으로 죄를 짓기 쉽다는 점과 죄로 인한 죽음이 어떤 사회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소설 속에서 여자는 용서 받지 못할 죄인으로 취급받고, 간통죄를 뜻하는 주홍 글씨 A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여자에게 주홍 글씨 A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지워지지 않는 낙인 같은 것이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여자는 외딴 곳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삯바느질로 근근이 살아간다. 반면에 아이의 생부는 남몰래 죄의식에 시달리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악마의 자식으로 여겨지는 아이는 유난히 엄마 가슴의 A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여자의 남편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복수를 꿈꾸는 남편은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아이의 생부에게 접근해 간다. 그는 죄의식으로 고통 받는 상대의 영혼을 조정하고 자멸 시키려 한다. 한편 여자는 꾸준히 선행을 베풀어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지만 마음속으로는 도피를 꿈꾼다. 하지만 아이의 생부가, 자신이 숨겨진 죄인이었음을 대중 앞에서 고백하고 만다.


 [주홍 글씨]는 17세기의 미국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헤스터가 사는 뉴잉글랜드 지방은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곳이다. 호손은 청교도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는 주인공 헤스터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보여 준다. 개인에게 자유를 무한정 허용한다면 사회의 혼란스러워지고, 반면에 사회 질서를 우선시하면 개인의 자유는 제약을 받게 된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 간에는 긴장과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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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인이란, 소유자를 표시하기 위해 가축 등에 쇠붙이를 불에 달궈 찍는 도장을 말한다. 예전에는 형벌로 죄인의 몸에 낙인을 찍어 죄인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범죄학 이론 중에 '낙인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일탈자라는 낙인을 찍게 되면 그 사람은 일탈 행동을 더 하게 되고 결국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낙인 이론에서 유래한 용어가 '낙인 효과'이다. 일단 일탈자로 규정되면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당사자는 점점 위축되어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그 낙인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된다.


 한편, 낙인 효과와 반대되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마음에 드는 여성이 없어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자신이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아로 조각했다.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 조각상을 그는 진짜 사람인 양 아끼고 보살폈고, 나중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마침 '사랑의 여신' 축제가 열리자 그는 그 조각상과 똑같은 여성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피그말리온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한 아프로디테는 기도를 들어주었고, 조각상이 살아 있는 인간으로 변하자 피그말리온은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처럼, 어떤 일에 대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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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손은 [주홍 글씨]를 소설이 아닌 로맨스라고 불렀다. 로맨스는 문학의 한 장르로서 낭만주의 문학의 전통에 속한다. 중세 기사들의 연애와 모험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공상적이고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지칭하는 용어로 변했고, 다시 몽상적인 소설을 가리키게 되었다. 호손에 따르면 소설은 평범한 일상 경험을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햇빛에 드러난 삶이 소재가 되는 반면에, 로맨스는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을 다루며 달빛에 드러난 모습이 그 소재가 된다. 즉, 로맨스는 소설에 비해 다소 공상적이고 상상적인 요소가 강한 장르라고 볼 수 있다.


 호손 스스로 [주홍 글씨]를 로맨스로 분류했듯이 이 작품에는 사람의 가슴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거나 하늘에 큼직한 글자가 나타나는 등 사실적 묘사를 추구하는 소설과 다른 대목들이 나온다. 또한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어휘들이 많이 등장하고, 가정법 문장이 많이 쓰이고 있는 것도 로맨스적 요소로 파악될 수 있다. 한편,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낭만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헤스터는 죄인이 아니다. 오히려 규범에 순응하지 않고 인간 본성에 기초한 자연법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지키려 한 낭만주의자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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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 - 자녀를 진정한 성인으로 키우는 법
줄리 리스콧 하임스 지음, 홍수원 옮김 / 두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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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예전보다 자녀들이 많지 않아선지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다. 자녀는 분명히 보호해야 할 의무를 부모가 져야 하지만 너무 심한 과잉보호는 오히려 자녀들을 망가뜨릴 수 있고, 그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부모들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또한 부모의 지나친 간섭 이면에 깔린 사랑과 근심에 주목하고, 그런 개입이 자녀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도 살펴본다. 더 나아가 종전과 다른 부모 역할을 통해 장기적인 측면에서 더 나은 결과를 이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자녀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부모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면, 자녀들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의 기본적이자 생물학적 임무이기도 하다.

 

 위험을 예방하는 많은 안전장치는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들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우리 자녀를 해칠 의도를 지녔을지 모를 사람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한다. 그래서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가르치고, 밖에서 놀 때는 그런 사람을 잘 살피라고 이른다.

 

 위해를 가해 올지도 모를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일에 무심해지게 된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혼자 바깥에 있는 흔치 않은 모습을 보게 되면, 우리는 저렇게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저 아이가 돌봐 주는 어른 곁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아니면 저 아이가 방치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나아가 경찰이나 어린이 보호기관에 전화로 신고를 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게 될지 모른다.

 

 

 자녀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을 부모가 대신 해 주다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해서 이젠 스스로 알아서 할 때이니 잘해 보라고 확 풀어준다면 그 젊은이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때 이들은 좌절감을 느낄 것이고, 이런 좌절감은 실패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실패마저 많이 겪어 보지 못한 탓에 그 실패를 감당하지도 못할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스로 궁리해서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핵심 요소가 된다고 한다. 이제 자녀는 혼자 힘으로 버텨 내야 한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거나, 더 나쁘게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는 이런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스스로 이겨 내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처방이다.

 

 일부 학부모는 독단적인 자녀 양육 방식을 옹호한다. 이런 양육 방식을 따르는 부모는 자녀의 학업과 과외 활동 목표를 거의 여지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녀에게 벌을 준다. 또한 학업 문제와 관련해 자녀를 고압적으로 다루는 부모는 자녀에게 크나큰 해악을 끼친다.

 

 21세기의 일터는 전 세계적이고, 빠르게 진행되며,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이런 일터에서 성공하려면 진취적으로 솔선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기개를 크게 요구하고 있다. 이러고 보니 고용된 사람은 나이에 관계 없이 얻을 수 있는 갖가지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제안을 하거나 충고, 의견교환을 해 주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고용주는 젊은 직원들의 성숙함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고용주는 또한 직원들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즉 스스로 업무를 처리할 만한 역량을 갖추기를 바란다.

 

 

 과잉보호는 자녀들에게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도 해를 입는다. 오늘날의 부모는 기진맥진하고 불안하고 우울하며 두렵기까지 하다. 심리학자들은 '자녀 양육의 역설'이라는 표현을 쓴다. 자녀를 키우면서 한편으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에 따른 불안감과 우울증을 느낀다는 뜻이다.

 

 많은 부모, 특히 어머니들은 자신이 대학, 어쩌면 대학원에 다닐 때나 직장에 근무할 때 하던 방식 그대로 자녀 양육을 계속하고 있다. 또 자녀가 마치 소규모 기업체의 상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녀의 삶을 온통 떠맡을 듯이 나선다.

 

 자녀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무엇을 먹는지, 옷을 어떻게 갖춰 입는지, 어떤 활동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이뤄 내는지 등 모두가 부모 자신들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모가 부모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셈이다. 그 때문에 자식들의 삶은 곧 부모의 성취나 다름없고 이들의 실패는 곧 부모의 잘못이 되고 만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의 가치를 자식이 이룩한 성취로 측정한다. 그런데다 성취의 목표를 너무 높게 설정하다 보니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녀의 온갖 일에 전력을 다해 지속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어린 시절이 빡빡한 일정과 점검표로 채워지면 아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놀이를 즐길 시간도, 기회도 갖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놀이도 부모나 자식이 다 같이 짬을 낼 수 있을 훗날을 위해 부모가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계획된 놀이에 부모가 함께 가고, 놀이의 내용도 이따금 부모가 아이디어를 내며, 또 아이들이 놀이가 끝나야 할 시간에 끝나지 않거나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할 경우에 대비해 부모가 놀이 현장을 지킨다.

 

 빈틈없이 돌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고려한다면 부모가 자녀의 놀이 일정을 짜는 일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놀이 시간을 만들더라도 놀이 방식에는 끼어들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 놀이야말로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최초의 진정한 과제이다.

 

 

 과잉보호에서 방향을 바꿔 자녀가 어른이 될 수 있게 키우는 것이 이성적으로 멋지고 근사한 일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많은 사람들은 자녀 양육하는 데 과잉보호 방식을 그대로 좇고 있다. 이런 양육 방식 외에 달리 다른 방식을 생각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들은 다수가 우리 대신, 아니 자녀 대신 선택해 준 삶을 그냥 따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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