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기의 시네마법정
홍승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법이라는 것이 현실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조금은 깨버린 홍승기 변호사.
  
  개인적으로 영화 보기를 좋아해서 이 책을 보는 순간 궁금증이 확 밀려와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영화중에 본 것과 안본 것이 같이 있었다. 하지만 본 영화편에선 더욱 읽는 재미가 증가 되었고, 안본 영화편은 찾아서 다시 한 번 영화를 보면서 변호사님이 말한 부분을 유심히 본다면 더 재밌게 영화를 볼 수 있을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영화의 내용이 이렇게 법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영화를 그냥 보기만 했었는데, 앞으론 영화들을 보면서도 변호사님이 말한 것들이 생각날 것 같다.

  "번지 점프를 하다"에선 동성애 인권 운동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영화 내용에서도 동성애가 나오긴 하지만, 그냥 동성애라기 보다는 전생이 연결된 동성애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생각하며 보지 않으면 영화의 맥을 놓칠 수도 있다.

  감명깊게 본 영화 중에 "아이 엠 셈"이란 영화가 있었다. 저능한 아버지가 딸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아동복지국 측에 훌륭한 아버지임을 보여줘야 하는데, 결국에 아버지 셈은 보여 준다. 그래서 결국 딸의 양육권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 얘기일 뿐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능이 아이와 같은 아버지가 어린 딸을 돌본다는 것이 현실적으론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지능이 멈췄지만, 딸은 성장하면서 지능이 높아져만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굉장히 감명 깊게 본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속 현실을 본다는 것,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홍승기의 시네마 법정"은 우리들 고정관념을 바꿔 준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살아가면서 고정관념 만큼 위험한 발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이젠 고정관념의 틀을 깨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보기전까진 ’괭이부리말’이 지역 명칭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특히, 인천에서도 가장 오래된 빈민 지역이었다는 것. 이 지역이 있는 자리는 원래 땅보다 갯벌이 더 많은 바닷가였다. 또한 고양이가 많아 ’고양이 섬’이라고도 했었단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 곳에 공장 굴뚝과 판잣집들만 빼곡히 들어 찬 공장 지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 곳에 사는 아이들의 삶을 얘기하는 책이다.

  쌍둥이 숙자와 숙희라는 아이가 살고 있는데, 언니 숙자는 엄마가 안 계신 집의 가사일을 도맡아하며 살고 있다. 그에비해 동생 숙히는 철모르는 어린아이 그대로다.
  비록 쌍둥이라곤 하지만 언니와 동생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아마도 주변 환경 때문에 이 아이를 빨리 성숙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준이와 동수 형제를 보면, 숙자 자매와 친구인 동준이는 숙자를 좋아 한다. 하지만 겉으론 좋아하는 표현을 하진 못한다. 이 형제들의 아버지는 어느날 텔레비전 위에 돈 삼십만 원과 돈을 벌어 돌아오겠다는 편지 한 장만 써 놓고 집을 나간다. 그 뒤 이 두 형제만 살게 된 집에서 형 동준이는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데, 동준이는 잘못된 방법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며 탈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유도 아저씨 영호는 홀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어머님이 돌아가시게 되고 우연히 동준이와 만나게 된다. 동준이네 사정을 알게 된 영호는 두 형제들이 불쌍하여 자기네 집에 데리고 오게 된다.

  이렇게 동네엔 서로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래서 서로간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다보니 남들 이야기가 아닌 자신을 보는 듯 하는거다.
  이런 마을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안 계셔도, 가난하고 배고파도, 그 누구보다 씩씩하고 용기있게 살아가는 아이들 이야기다.

  과연 이 아이들의 꿈은 무엇이고,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점점 궁금해지면서 점점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이 책을 보고난 뒤, 난 참 행복한 가정에 태어나서 자라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 겠다고 다짐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
토미 테니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얼굴을 갈망하라 (하나님은 굶주리고 갈급한 자들을 찾고 계시다)

  - 나는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었다. 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님에 관해서는 정통해 왔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대화는 없다. 그것이 '상대를 아는 것' 과 '상대에 대해 아는 것' 의 차이다.
  - 내가 아는 한 그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배고파하지 않는 것, 굶주림이 없는 곳에 그분을 성령을 부으시지 않는다. 그분은 갈급한 자들을 찾으신다. 갈급함이란 기존 상태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 천국 빵을 얻으라 (교회는 텅 비었고 사람들은 굶주렸다)

  - 교회의 찬장은 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교회에 빵이 있다고 허위 광고하며 떠벌렸다. 그러나 정작 배고픈 자들이 와서 한 일이라곤 어제 있었던 부흥의 부스러기 몇 조각을 찾아 바닥을 살피는 것뿐 이었다.


3. 가까이 나아가라 (하나님은 이제 눈빛으로 인도하기 원하신다)

  - 하나님은 그분의 혜택만 구하는 자들에게는 오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에게 오신다. 우리가 눈물과 회개로 그분의 자리를 준비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잠깐 방문을 평생 거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4. 육체를 버리라 (완전히 죽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

  - 죽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휘장 안에 들어갈 때 당신이 할 말은 이것이다. "나는 이제 산 사람이 아니다. 걸어 다니는 죽은 사람이다." 정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면 우리는 다 죽는다.
  - 당신은 죽음을 피하고 있는가? 당신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길 원하는가? 최대의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지 않는다. 친밀한 관계 속에, 그분의 얼굴에서 나온다. 마침내 그분을 뵙고 알게 될 때 당신은 모든 근원에 이를 것이다.


5. 임재로 들어가라 (하나님은 직접 만나 친밀하게 교제하길 원하신다)

  - 하나님은 투명한 순결의 자리에 진지한 부흥을 원하는 자들을 부르신다. 그분이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나' 다. 그분은 우리가 가까이 오기 원하신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분은 반드시 우리를 만지신다.


6. 영광을 구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경외함으로 준비할 때다)

  - 우리는 기름부음을 구하는 자리에서 그분의 명백한 임재 즉 영광을 구하는 자리로 옮겨가야 한다. 기름부음은 육신에 힘을 더해주어 설교나 노래를 잘하게 한다. 그러나 영광은 육신의 기를 꺾는다! 영광을 구하라!
  -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우선 그분의 영광과 거룩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 존중의 마음을 우리에게 회복시키신다. 우리는 회개하지 않은 육체에 미치는 하나님 영광의 위력을 새삼 깊이 깨닫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7. 땅을 회복하라 (하나님의 도시들이 정복되고 성령의 샘이 터진다)

  - 도시나 지역에 뿌리내린 목사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께 받은 '법적 권리' 가 있다. 왕 되신 그 분을 위해 사방에 '말뚝을 박고' 그 도시를 내 것으로 주장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도시에 말뚝을 박는 것은 영적 교회당의 "벽" 을 넓히는 것이다.


8. 영향을 미치라 (하나님의 임재의 향기만으로도 주변은 변화된다)

  - 아버지가 내려와 그분의 명백한 임재로 이 땅을 한번만 만지신다면, 그분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한 방울만 떨어진다면, 그로 인한 영광의 홍수가 온 땅에 부흥을 일으켜 귀신들은 달아나고 죄인들은 무릎 꿇을 것이다!


9. 자신을 깨뜨리라 (내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기름부은 자들을 기억하신다)

  - 우리는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분은 '기름 붓는 자들'을 좋아하신다! 그들은 그분의 얼굴과 발을 구하는 자들이다. 향유를 붓는 자, 눈물로 씻는 자, 그분의 재산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는 겸손한 자들이다.


10. 간절히 기도하라 (간절한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결국은 응답하신다)

  - 현대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닿는 지름길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부흥을 원하지만, 부흥은 사람들에게 갈급함이 있을 때만, '대리 중보 기도자들' 이 자신들이 짓지도 않은 죄를 회개할 때만 온다.


  하나님의 임재를 아직 경험해 보진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기도드린다면 언젠가는 응답을 주시리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
조안리 지음 / 문예당 / 1995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의 사랑이야기가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 같다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의 사랑은 운명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고개를 젓겠다. 아니다. 그것을 만들어 나간 것은 우리였다. 설사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 운명이라는 것 자체를 만들어낸 주체는 우리였다.
  우리가 지독하게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고 말한다면 나는 웃을 수밖에 없다. 스물여섯 해라는 나이 차이가 있고 태어난 국적이 다르며 결혼과 양립할 수 없다는 신품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한 쌍이 잘 어울린다고? 결코 어울릴 수 없는 한 쌍을 뽑는 콘테스트라도 있다면 오히려 그 쪽으로 참가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래도 당신들은 행복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겠다. 우리는 행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철저한 노력 위에서만 가능했다.
  사랑은 노력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노력이 없는 사랑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한 서정시가 아니다. 그것은 고통과 외로움과 회의와 번민과 두려움으로 점철되어 있는 장편소설이다. 용기가 필요하고 토자가 필요하고 싸움이 필요한 처절한 전장이다. 오직 사랑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평화와 행복은 그렇게 피와 눈물을 말리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서만 우리에게로 온다. 그 평화와 행복조차 결코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요컨대 사랑은 끊임없는 노력으로만 유지시킬 수 있는, 더 없는 강렬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요구하는, 인간정신의 가장 치열한 표현형태 중의 하나이다.

  - 본문 중에서 -

  정말 가슴에 팍하고 와 닫는 부분이다.
  '사랑은 노력이다.' 노력하면 사랑도 얻을 수 있다는 말 같아서 좋고, 이미 사랑해서 결혼 했다면, 서로 노력하여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 같아 좋다.
  요즘은 쉽게 사랑하고 결혼하지만, 헤어짐 또한 너무 쉽게 한다. 사랑할때는 죽어도 못 헤어질 것처럼 사랑하다가 서로 의견이나 성격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헤어질 때는 너무 쉽게 헤어진다. 그렇게 사랑하던 사이였어도 헤어지고나면 모르던 사람보다도 더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쉽게 헤어진 사람들 중에 사랑하기위해 노력해본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정작 이런 사람들은 노력조차 해보지 않고서 더는 이사람이랑 안 되겠다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스스로 해야 하듯, 사랑도 노력하는 자만이 영원토록 사랑할 수 있나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을 감고 보는 길 - 개정판 정채봉 전집 3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어떤 만남]

  사람들은 '만남'이라는 것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다는 공식으로 말한다. 곧 자신들이 직접 만난 것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만남'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만남'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신과의 만남도 있고, 위인과의 만남도 있다.
  나는 독서를 간접 대화라고 생각한다. 지은이와의 만남인 것이다. 그것도 불필요한 잡담을 제거한, 전달해 주려고 하는 요체만을 얻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 중요한 변수를 '만남'으로 꼽고 있는데 여기에는 간접 만남(독서)도 포함된다. 아니, 간접 만남이 더 많은 동기를 부여한다고 본다. 한 권의 책에 감동받아서 역사를, 문학을 , 과학을, 정치를, 의학을 택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피천득을 만난 것은 큰 축복이요, 행운이다.
  
  중략

  정말 세상에는 뜻이 있으면 길이 있었다. 그렇게 만났으면하고 바랐던 피천득 선생님을 실제로 만난 것이었다. 내가 지금의 직장에 들어와 인터뷰를 하였는데 상대방이 바로 피천득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적당히 가난하게 살고 있다. 이제는 물질이나 명예 같은 것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도 같다. 무슨 말인고 하니 조금 더 잘살려고 내가 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린다거나 외부와 타협을 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욕심이 생기면 사물을 제대로 못 보는 법이다."
  "문학의 가장 위대한 기능은 우리네 삶을 위로해 주고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재하는 '신성한 불만'에서 문학이니 종교니 하는 것도 나온다."

  올해 나이 아흔 살, 그러나 이 분은 정정하시다. 그것은 아마 가슴속에 동심의 샘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옆집 벽을 울리게 하는 것이 싫어서 어느 액자 하나도 벽에 걸지 않으시고 그저 방 귀퉁이에 몇 점 안되는 그림을 두고만 보시는 분, 거실 귀퉁이에는 질화로 하나 있고, 손바닥만한 사진틀 속에는 고요한 어머니의 사진이 들어 있고.
  몇 해 전, 내가 졸라서 나가신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피천득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기가 행복하기 위해서 남을 불행케 하는 짓만은 절대 용서해선 안된다."

 - 본문 중에서 -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참 소중히 생각한다. 어떤 사람과 내가 만난다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본다. 단지 그 만나는 시간이 빠르고, 느리고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정채봉 님의 간접적인 '만남'도 중요한 몫을 차지 한다. 특히 독서를 통해 지은이와의 만남을 얘기하는 것에 너무 공감한다.
  서점에 가보면 여러 장르의 책이 즐비하다. 한 장르만을 고집하고 한 작가만을 고집하는 사람도 결국엔 그 작가와의 만남으로 인해 계속 그 작가와 만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대체로 여러 장르의 책을 접하려 노력한다. 이렇게 여러 장르와 여러 작가와 만나다보면 공감이 되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 공감이 되면 당연히 그 책 또한 재밌게 본다. 하지만 공감이 잘 되지 않더라도 이 작가가 왜 이런 식으로 글을 썼는지 무척 궁금해 진다.
  내가 생각해도 독서는 지은이와의 간접대화고 간접 만남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닫는다. 정말 멋진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