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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보는 길 - 개정판 ㅣ 정채봉 전집 3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어떤 만남]
사람들은 '만남'이라는 것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다는 공식으로 말한다. 곧 자신들이 직접 만난 것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만남'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만남'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신과의 만남도 있고, 위인과의 만남도 있다.
나는 독서를 간접 대화라고 생각한다. 지은이와의 만남인 것이다. 그것도 불필요한 잡담을 제거한, 전달해 주려고 하는 요체만을 얻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 중요한 변수를 '만남'으로 꼽고 있는데 여기에는 간접 만남(독서)도 포함된다. 아니, 간접 만남이 더 많은 동기를 부여한다고 본다. 한 권의 책에 감동받아서 역사를, 문학을 , 과학을, 정치를, 의학을 택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피천득을 만난 것은 큰 축복이요, 행운이다.
중략
정말 세상에는 뜻이 있으면 길이 있었다. 그렇게 만났으면하고 바랐던 피천득 선생님을 실제로 만난 것이었다. 내가 지금의 직장에 들어와 인터뷰를 하였는데 상대방이 바로 피천득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적당히 가난하게 살고 있다. 이제는 물질이나 명예 같은 것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도 같다. 무슨 말인고 하니 조금 더 잘살려고 내가 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린다거나 외부와 타협을 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욕심이 생기면 사물을 제대로 못 보는 법이다."
"문학의 가장 위대한 기능은 우리네 삶을 위로해 주고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재하는 '신성한 불만'에서 문학이니 종교니 하는 것도 나온다."
올해 나이 아흔 살, 그러나 이 분은 정정하시다. 그것은 아마 가슴속에 동심의 샘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옆집 벽을 울리게 하는 것이 싫어서 어느 액자 하나도 벽에 걸지 않으시고 그저 방 귀퉁이에 몇 점 안되는 그림을 두고만 보시는 분, 거실 귀퉁이에는 질화로 하나 있고, 손바닥만한 사진틀 속에는 고요한 어머니의 사진이 들어 있고.
몇 해 전, 내가 졸라서 나가신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피천득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기가 행복하기 위해서 남을 불행케 하는 짓만은 절대 용서해선 안된다."
- 본문 중에서 -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참 소중히 생각한다. 어떤 사람과 내가 만난다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본다. 단지 그 만나는 시간이 빠르고, 느리고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정채봉 님의 간접적인 '만남'도 중요한 몫을 차지 한다. 특히 독서를 통해 지은이와의 만남을 얘기하는 것에 너무 공감한다.
서점에 가보면 여러 장르의 책이 즐비하다. 한 장르만을 고집하고 한 작가만을 고집하는 사람도 결국엔 그 작가와의 만남으로 인해 계속 그 작가와 만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대체로 여러 장르의 책을 접하려 노력한다. 이렇게 여러 장르와 여러 작가와 만나다보면 공감이 되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 공감이 되면 당연히 그 책 또한 재밌게 본다. 하지만 공감이 잘 되지 않더라도 이 작가가 왜 이런 식으로 글을 썼는지 무척 궁금해 진다.
내가 생각해도 독서는 지은이와의 간접대화고 간접 만남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닫는다. 정말 멋진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