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도둑
이상권 지음, 허구 그림 / 현암주니어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일단 제목부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래선지 무척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이해가 안 가는 얘기들도 이 책에 나온다. 가령 채변봉투 사건이라던지 서로 자기네 집에서 똥을 싸라고 서로 데려가려는 이상한 풍경등이 말이다.

 

 처음에 놀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거짓말을 하거나 반칙을 쓰거나 정직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놀부가 지옥에서 시합을 하면서 상대방을 방해해 반칙을 써서는 이기게 되지만 결국 염라대왕이 이 사실을 알고는 꿀떡과 똥떡을 서로 바꿔 먹여주라고 한다. 그래서 승리자가 먹는 꿀떡을 놀부는 먹지 못하고 똥떡을 먹게 된다.

 

 

 그리고 똥 도둑이라는 이야기에는 채변봉투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을 보면서 아이들은 채변봉투가 뭐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우리가 너희처럼 초등학생일 때 학교에서 조그마한 봉투와 그 안에 비닐이 들어 있는 채변봉투를 받아서 집에서 그 안에 똥을 담아 학교에다 냈었다고 얘기해 줬다.

 

 그래도 아이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는게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조금 더 읽어보자고 하고는 더 읽어봤다. 그러자 우리 어린시절에 겪었던 일들이 이 책에 나오는 것이다. 가령, 남의 똥을 담아간다든지 동물의 똥을 담아간다든지 다른 이물질을 담아가는 경우들이 많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도 바로 이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선생님이 나중에 이 사실을 다 알게 되듯이 그 당시도 그랬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이 책에 나오는 영신이처럼 아이들 앞에서 회충약을 먹는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영신이도 아이들 앞에서 회충약을 먹는 것도 창피했지만 약을 잘 못 먹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전 그 시절에는 이 채변 검사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회충약이 흔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회충 때문에 아이들이 살도 안 찌고 영양분을 회충들에게 뺐기곤 했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무지했다는 얘기일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이 부분을 통해 추억도 떠올리고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이야기도 해 줄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똥 함정이라는 이야기에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에서 전학온 여학생과 시골에서 자란 남자 아이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전학온 여학생보다 시골에서 살았던 남학생이 더 겁이 많은 이야기다. 남자 아이는 논두렁에서 거머리에 놀라고 자벌레에도 기겁한다. 그래서 여자 아이가 남자 아이를 겁이 많다고 놀린다.

 

 그래서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에게 복수를 하려 하지만 매번 실패로 끝난다. 그래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 계획은 그 여자 아이만 다니는 길목에 함정을 파서 여러 이물질을 넣고 감추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 여자 아이가 빠지는 상상만으로도 통쾌했다.

 

 그리고는 결국 그 결전의 날이 왔다. 그러나 그 여자 아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있었다. 그런데 그 날 결국 여자 아이는 그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도 다리만 빠진 것이 아니라 넘어지면서 상채가 빠진 것이다. 그 날 이후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와 말도 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남자 아이는 너무 미안해 화해를 하려 하지만 여자 아이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남자 아이의 엄마가 힌트를 준다. 그 힌트를 긴가민가 하면서 남자 아이는 엄마의 말대로 그 함정에 사과나무를 심는다. 그 광경을 본 여자 아이는 결국 자신이 사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곳에 사과나무를 심어준 남자 아이와 화해하게 된다.

 

 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보면 너무 유익하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엄마 아빠의 어린시절 얘기도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똥 도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1 : 페스트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1
권기희 글, 이철희 그림, 황의조 감수, 손영운 기획, 알베르 카뮈 원작 / 채우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페스트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뿐 아니라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이들 작품들은 모두 카뮈가 일생을 두고 탐구한 세 가지 주제, 즉 부조리, 반항, 사랑을 담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의 경우는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았다.

 

 카뮈 철학의 중심은 부조리와 반항에 있다. 카뮈에게 있어서 반항이란 우선, '아니요'와 '예'를 동시에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니요'는 참을 수 없는 구속에 대해서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고, '예'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그 무엇, 즉 자신의 존업성에 대해서 '예'라고 말하는 것을 뜻한다.

 

~~~~~~~~~~~~~~~~~~~~~~~~~~~~~~~~~~~~~~~~~~~~~~~~~~~

 

 [페스트]의 기폭제가 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다. 원작 [페스트] 1부에 보면 페스트 발발 초기에 페스트로 인해 사망자가 늘어가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이 사건을 피하려고만 한다. 이처럼 습관에 젖은 삶 속으로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페스트는 전쟁과 같이 부조리한 것이라는 사실이 상징화된 것이다.

 

 그 뒤, 카뮈는 전쟁과 실업으로 인해 오랑으로 가는데, 그곳에서 겪은 가난, 전염병, 폐렴 등 다방면으로 경험하게 되는 삶의 경험들이 작품으로 구체화된다. 특히 [페스트]에서 질병이 점차 폐장성의 징후를 띠는데, 이것은 당시 카뮈가 앓고 있던 폐렴과 그 증세가 유사하다. 또한, [페스트] 첫 부분에는 지병을 앓던 리유의 부인이 요양을 떠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카뮈가 페렴으로 인해 프랑스 고산 지대로 요양을 떠났던 것을 연상시킨다.

 

 프랑스로 요양을 떠났던 카뮈는 전쟁이 확대되면서 오랑에 있던 부인과 생이별하게 된다. 이 시기 경험한 이별의 절실함은 [페스트]에 그대로 표현되는데, 오랑 시가 폐쇄된 뒤, 갑작스러운 귀양살이와 이별에 대한 묘사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페스트]에서 랑베르 기자가 아내와 재회하는 장면은 프랑스 해방 당시, 카뮈가 아내와 재회하는 장면을 꼭 빼닮았다.

 

 [페스트]는 크게 세 가지 주제 의식에 대한 작가의 탐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삶의 부조리성, 반항 정신, 연대 의식이 그것이다. 삶의 부조리성은 [페스트]에서 설정된 갑작스러운 이별과 귀양살이, 감옥살이를 통해 알 수 있다. 반항은 [페스트]의 핵심 주제이며 부조리에 대항하는 윤리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연대 의식은 랑베르의 선택을 통해 잘 드러난다.

 

~~~~~~~~~~~~~~~~~~~~~~~~~~~~~~~~~~~~~~~~~~~~~~~~~~~~~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들이 함께 살기 위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인류 공동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더할 수 없는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이야기의 무대는 흑사병(페스트)이 덮친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한 도시 오랑이다.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외부와 차단된 주민들은 고립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진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인간으로서 품어야 할 근원적인 물음, 철학을 품고 있다. [페스트]가 품은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반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반항은 한계 상황에 대한 극복을 의미한다. 이것이 [페스트]에서 말하는 반항이며, 반드시 성실성을 전제로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0 : 춘향전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0
김창회 글, 현광영 그림, 손영운 기획, 작자미상 원작 / 채우리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춘향전

 

 전라북도 남원의 광한루원에 가 보면 죽은 이를 기리는 사당, 즉 [열녀춘향사]라는 이름의 사당이 있다. 춘향의 정절을 상징하듯 굵은 대나무 숲 속에 자리한 사당 안에는 놀랍게도 춘향의 영정이 놓여 있어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춘향을 기리는 사당과 영정, 게다가 이몽룡과 처음 만났다고 전해지는 광한루까지 있다. 이런 정황으로만 본다면 분명 춘향은 실존 인물이라는 확실한 물증인 듯하다.

 

 우리는 [춘향전]이 작자 미상의 조선 시대 작품이며, 남원 지역을 중심으로 전해지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판소리로 불리어졌고 이후 소설로 정착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잘 알고 있다. "근원 설화 ->판소리->판소리게 소설"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춘향전]은 누가 뭐래도 조선 최대 베스트셀러이다. 작품에 대한 소문은 분명 조선 후기 독자들의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경판본 [춘향전]은 완판본에 비해 문장의 길이가 짧고 인물, 배경 등 주요 부분에 대한 묘사가 간략하다.

 

 완판본 [춘향전]은 지역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 특히, 전라도 사투리가 작품에 반영되어 향토성을 잘 살리고 있다. 게다가 중심 독자층이 일반 서민이다 보니 사건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며 담고 있는 내용 또한 경판본에 비해 매우 풍부하다.

 

~~~~~~~~~~~~~~~~~~~~~~~~~~~~~~~~~~~~~~~~~~~~~~~~~~~

 

 판소리계 소설이란 판소리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자 그 판소리 사설을 그대로 글을 옮겨적은 소설들을 말한다. 물론 이런 소설들은 처음에는 붓으로 옮겨 적은 필사본이었으나 대중적인 수요와 상업적인 목적이 영합하면서 방각본으로 대량 인쇄되어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이런 현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판소리라고 하는 일종의 문화 콘덴츠를 대중들이 선호하는 다른 양식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바로 판소리께 소설로의 전환이라는 것이다.

 

 고전 작품의 현대화는 새로운 관점에서 문학 작품을 다양한 시작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고 창조하는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사실 [춘향전] 만큼 오늘날 영화, 드라마,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품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만큼 [춘향전]은 내용이나 표현, 주제 그리고 인물 등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

 

 10대 때 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고전 읽기이다. 고전은 나를 변화시키고 살아가는 데 큰 자신감을 주며, 나의 참모습을 돌아보게 하여 항상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 고전을 꾸준히 읽다 보면 나 자신이 어느새 성숙해진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 히틀러에게 저항한 학생들, 백장미단 이야기 러셀 프리드먼의 역사 교양서 2
러셀 프리드먼 지음, 강미경 옮김 / 두레아이들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히틀러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혼란기였던 1933년에 수상 자리에 올랐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다. 전승국, 즉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이 주도해 맺은 평화 조약(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국민에게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물었다. 이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은 무장을 해제하고 일정 지역을 포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몰고 온 모든 형태의 파괴와 손실에 대한 보상으로 엄청난 액수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1930년대에 독일에서 자라난 청소년치고 히틀러 청소년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청소년이 거의 없었고, 그 점에서는 숄 씨네 집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1935년 9월, [뉘른베르크 인종법]이 시행되면서 유대 인들은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유대 인과 터놓고 지내던 독일인들은 이제 의심을 받았다.

 

 1937년 가을, 게슈타포는 불법 청소년 단체 d.j.1.11 회원들과 그 동조자들을 잡아들이는 대대적인 단속 작업에 들어갔다. 독일 전역에서 체포된 청소년들은 슈투트가르트의 게슈타포 본부로 끌려갔다. 그중에는 당시 열다섯 살이던 한스의 남동생 베르너, 그리고 잉게와 조피도 포함되어 있었다.

 

 

 1939년 9월 1일, 나치 군대가 폴란드로 진격해 들어가면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이틀 뒤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지만 폴란드 인들을 구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고 말았다. 폴란드는 나치의 속전속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한 달 만에 항복했다.

 

 1942년 6월 말, 반나치 전단이 뮌헨 지역 우편함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제목은 '백장미단의 전단'이었다.

 

 그해 여름, 백장미단의 전단은 잇달아 세 차례 더 나왔다. 7월 말에 이르자 비밀 활동에 가담한 학생은 열두 명으로 늘어났다. 히틀러와 나치를 공격하는 이들의 전단은 독일 도시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편, 뮌헨의 건축가 만프레트 아이케마이어가 외진 곳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을 백장미단 모임 장소로 빌려주겠다고 제안해 왔다. 자칫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는데도 그는 학생들이 작업실 지하에서 전단을 인쇄하고 복사용기를 보관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었다.

 

 1942년 6월과 7월에 걸쳐 전단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낼 무렵 독일 군대는 소련 깊숙이 진격해 들어가고 있었다. 

 

 

 1943년 2월 3일,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러시아 군대에 포위된 채 엄청난 수의 사상자를 내고 결국 항복했다. 독일군 42만 명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9만 명이었다.

 

 1943년 2월 18일 목요일 아침, 한스와 조피는 프란츠요제프가 13번지에 있는 하숙집을 나와 몇 블록 떨어진 대학교로 출발했다. 한스는 전단 약 1만 5천 장을 빽빽이 채워 넣은 커다란 옷가방을, 조피는 몇 백 장을 넣은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1943년 2월 22일 월요일 오전 10시, 그러니까 처음 체포되고 나서 나흘째 되는 날 조피와 한스, 크리스토프는 뮌헨 유스티츠 궁에서 열린 이른바 인민 법정에 출두했다. 이 특별 법정은 정의를 집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치 체제의 적들을 근절하기 위해 설치된 법정이었다. 그날 아침 법정 안은 미리 초대받은 나치 당 간부, 돌격대원, 군인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피고들의 가족이나 친구는 재판 참석이 허용되지 않았다.

 

 판결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잠시 휴정이 있고 나서 오후 1시 30분, 프라이슬러 판사는 피고 모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셋 다 단두대형을 선고받았다. 히틀러에 반대했기 때문에 그들은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 오후 4시, 한스와 조피, 크리스토프는 차례차례 교도소 사무실로 불려 갔다. 수석 검사가 커다란 탁자에 앉아 사형 선고문을 낭독하는 동안 그들은 그 앞에서 있었다. 선처는 기대할 수 없을 듯했다. 처형은 정확히 오후 5시에 집행될 예정이었다.

 

 1944년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독일군은 유럽 전역에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동부 전선의 러시아 군대와 서부 전선의 영국-프랑스-미국 연합군은 히틀러의 제3제국을 궁지에 몰아넣기 시작했다.

 

 그해 8월, 연합군은 파리를 해방했다. 1945년 3월, 러시아 군대는 엘베강에서 미국 군대와 공동 작전을 펼쳤다. 히틀러는 폭격으로 초토화된 베를린의 지하 벙커로 후퇴했다. 4월 30일, 그가 자살한 데 이어 5월 7일 독일이 항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 - 태종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03

 

 

 아들에게 역사를 조금은 쉽게 접하게 하고 싶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의외로 재밌다고해서 계속 읽게 해 줄 생각이다. 호기심을 갖게 되었으니 앞으로 꾸준히 같이 보면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2003년에 첫째 권을 시작으로 2013년에 마지막 편인 제20권이 출간되면서 완결되었다. 개정판은 표지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디자인을 새로 했으며, 내용이 크게 바뀌지 않았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개정판에 걸맞게 오자들을 바로 잡았고, 잘못된 계절 풍경들과 나이에 걸맞지 않게 묘사된 캐릭터, 그리고 [실록]의 기록과 어긋나는 장면들도 더러 바로잡았다. 또한 뒤늦게 알게 되거나 [실록]에서 확인했지만 미처 수정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바로잡았다.

~~~~~~~~~~~~~~~~~~~~~~~~~~~~~~~~~~~~~~~~~~~~~~~

이 만화를 그리며 염두에 둔 작가 나름의 원칙

첫째, 정치사를 위주로 하면서 주요 사건과 해당 사건에 관련된 핵심 인물들의 생각과 처신을 중심으로 그린다.

둘째, [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면서 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를 적극 고려하고 필자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해석에 개입한다.

셋째, 성인 독자들을 주된 대상으로 삼되, 청소년들과 역사에 관심이 남다른 어린이들이 보아도 무방하게 그린다.

~~~~~~~~~~~~~~~~~~~~~~~~~~~~~~~~~~~~~~~~~~~~~~~~~

[저자소개]

글 그림 : 박시백

- 시사만화가. 1964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면서 총학생회 신문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1996년 한겨레신문 만평담당자 모집에 응모해 당선되었다. 이어 박재동 화백의 뒤를 이어 2001년 4월까지 한겨레신문에서 '박시백의 그림세상'을 연재했으며, 그 외에도 〈말〉, 〈출판저널〉, 〈뉴스피플〉 등의 매체에 만평을 연재한 바 있다.

박시백의 연재만화는 네컷 만화나 한컷짜리 만평이 아닌, 시사 만화로서는 지면이 넓은 편인 페이지 만화이다. 한 이슈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희화화하거나 패러디를 하는 보통의 다른 만평들과 달리, 그의 만화는 사건의 전후관계 및 배경과 진행, 그리고 작가의 논평 등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줄거리 시사만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만화는 부드럽고 유연한 제시방식과 긴 호흡을 가진 '수필만화'의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사만화로서의 본질적 임무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가 〈한겨레신문〉, 〈출판저널〉, 〈말〉, 〈뉴스피플〉 등에 연재했던 시사만화들은 『박시백의 그림 세상 -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신문사를 그만둔 후에는 집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조선왕조실록' 국역CD를 공부했고, 2003년에 콘티부터 그림과 채색까지 모두 혼자서 작업한 만화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는 총 20권으로 기획된 대하역사만화로, 야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 기존 드라마나 만화와 달리 조선의 정치사를 철저히 '실록'을 바탕으로 해 만화로 그려내고자 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다 보니 드라마나 등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다른 이미지를 가진 인물들이 만화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만화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는 2013년 완간되었다.

~~~~~~~~~~~~~~~~~~~~~~~~~~~~~~~~~~~~~~~~~~~~~~~~~~~~~

 

[등장인물]

 

1. 태종 이방원

- 아버지 태상왕의 반란을 제압하고 공신들을 숙청해가며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다. 조선의 제3대 임금.

 

2. 태종비 원경왕후 민씨

- 왕이 된 남편으로부터 배신당하고 울분화 고통의 세월을 보낸다.

 

3. 이거이와 이숙번

- 유배된 1등 공신.

 

4. 무회, 무휼, 무구, 무질

- 태종의 장인 민제와 왕권 강화 정책의 희생양인 네 처남.

 

5. 어리

- 양녕의 연인

 

6. 양녕대군

- 태종의 장남으로 세자 책봉을 받았으나 지속된 비행으로 페세자 된다.

 

7. 충녕대군

- 태종의 3남으로 폐세자 된 양녕 대신 보위에 오른다. 세종.

 

8. 하륜과 조영무

- 숙청을 피한 1등 공신.

 

9. 변계량

- 최고의 문장가

 

10. 심온

- 충녕의 장인

 

11. 조사의

- 태상왕과 손잡고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참수된다.

 

12. 김한로

- 양녕의 장인. 사위의 탈선을 방조한 혐의로 유배된다.

 

~~~~~~~~~~~~~~~~~~~~~~~~~~~~~~~~~~~~~~~~~~~~~~~~

 

세계의 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

 

1. [조선왕조실록]이란?

-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제15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1997년 지정)으로 조선 건국에서부터 철종까지 472년간을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 기록물이다. 총 1,893권, 888책이며, 한글로 번역할 경우 300여 쪽의 단행본 400권을 훌쩍 넘는 분량이다. 철종 이후의 기록인 [고종실록]과 [순종실록]도 있으나 이것은 일본의 지배하에 편찬된 터라 통상 [조선왕조실록]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단종실록], [연산군일기], [선조실록], [철종실록]처럼 기록이 부실한 경우도 있는데 정변이나 전쟁, 세도정치라는 시대 상황이 낳은 결과이다. 또한 [선조수정실록], [현종개수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 [경종수정실록]처럼 뒷날에 집권한 당파의 요구에 의해 새로 편찬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원본인 [선조실록], [현종실록], [숙종실록], [경종실록]을 폐기하지 않고 함께 보존함으로써 당대를 더욱 정확히 알게 해준다. 이렇듯 [조선왕조실록]은 그 기록의 풍부함과 엄정함에 더해 놀라운 기록 보존 정신까지 보여주는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유산이다.

 

2. [조선왕조실록]은 어떻게 기록되었나?

- 조선은 왕이 사관이 없는 자리에서 관리를 만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또한 왕은 원칙적으로 사관의 기록(사초)을 볼 수 없었다. 신하들도 마찬가지여서 실록청 담당관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사관들은 왕이나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보고 들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 있었다. 왕이 죽으면 실록청이 만들어지고 모든 사관의 사초가 제출된다. 여기에 여타 관청의 기록까지 참조하여 실록이 편찬된다. 해당 실록이 완성되고 나면 사초는 모두 물에 씻겨졌다(세초). 이렇게 만들어진 실록은 여러 곳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되는데, 이 또한 후대 왕은 물론 신하들도 열람할 수 없도록 했다. 선대의 왕들에 대한 기록이나 평가로 인해 필화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원칙들이 철저히 지켜졌기에 [조선왕조실록]이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