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인간이 내 옆에서 사라지는 책 - 불쾌한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자가 행동 조절법
오시마 노부요리 지음, 고주영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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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짜증나는 순간에 그 자리에서 "똑바로 해달라", "불쾌하다", "그만해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자기 기분이나 바라는 바른 말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정중하게 말이다. 하지만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짜증나는 인간은 주의를 주거나 부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만큼 짜증 유발 지수가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때 제대로 말했어야 하는데라고 후회하면서 몇 번이고 그 장면을 떠올린다. 그럴수록 우리 머릿속은 짜증나는 인간에게 점령당한다. 즉 내 것을 짜증나는 인간이 점점 더 가져가는 꼴이 되고 만다.

 

 한번 짜증나는 인간에게 반응해버리면 그때부터 인생이 고달파진다. 왜 그때 그 사람은 그런 짓을 한 걸까? 상대의 심정을 헤아리기 시작하면 내 마음을 돌볼 수가 없고, 과거 일만 곱씹기 때문에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다. 물리적인 시간은 흐르지만 심리적인 시간은 멈춰버린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마음이 가라앉게 된다.

 

 

 누군가가 나를 짜증나게 했을 때, 머릿속에서 금세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계속 남아 있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가벼운 짜증을 유발하는 앙큼한 인간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주변인이든 일로 만난 사이든 별로 상관이 없다.

 

 하지만 후자는 발목을 잡는 짜증나는 인간이다. 가까운 사이든 아니든 간에 그런 사람에게는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먼 과거의 일이더라도 그에게 당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불성실하고 짜증나는 사람을 보고 용서가 안 된다면 당신은 상식적인 사람이고, 어디에서나 규칙을 잘 지킬 것이다. 그리고 규칙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옳지 않다고 반응할 것이다.

 

 내가 반응하면 짜증나는 인간은 점점 더 짜증나는 짓을 한다. 그럴수록 그에게 눈을 뗄 수 없고, 용서할 수도 없어서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또한 짜증나는 인간에게 주의를 주면 상대방은 되레 화를 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끊임없이 그 사람을 생각하니까 불쾌해지고 만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좀처럼 짜증나는 인간에게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짜증나는 인간을 발견하면 거리를 두거나 그 사람을 주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단 주목하면 계속해서 짜증나는 짓을 하기 때문에 점점 더 용서할 수 없게 된다. 그럴수록 그 사람에게 휘둘리므로 안 보는 게 가장 좋은 대처법이다.

 

 '저 인간 정말 개념 없고 짜증나네!' 이런 느낌이 든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게 좋다. 자신의 직관을 믿고 행동하면 쓸데없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다. 개념 없고 짜증나는 인간에게 휘둘리느라 아까운 시간을 잡아먹는 대신 자신을 돌보는 데 시간을 쓰게 된다.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친절을 베풀면 상대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얕잡아 보고 공격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친절을 베푸는 대신 엄하게 대하는 것이다.

 

 

 일은 일이라고 확실히 선을 긋고 일로만 얽히기로 마음 먹자. 그리고 월급을 받는 만큼 제대로 일하라는 태도로 일관하며 계속 일을 줘라.

 

 일을 잘하면 그러려니 하고, 일을 못하면 성과를 올릴 때까지 제대로 일하게끔 만들어라. 끊임없이 일을 시켜서 짜증낼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다정한 얼굴을 하거나 예외를 인정해주는 것이 틈이 된다.

 

 짜증나는 사람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거나 입장을 바꿔보자고 주장한다. 그런 틈을 주지 않으면 확실히 상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부하가 교묘하게 하극상을 일으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짜증나는 인간에게 일일이 반응하지 말자. 굳이 가까이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큼 짜증나는 인간에게 빼앗겼던 내 에너지를 마음껏 쓸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에 말이다. 그러면 달콤한 인생이 점점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짜증나는 인간이 내 옆에서 사라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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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는 순간
안드레아스 알트만 지음, 전은경 옮김 / 책세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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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수많은 여행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보고 느낀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을 찾아간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이 힘들다고 얘기한다. 이런 우리들에게 이 책은 삶의 희망을 선물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재 우리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이 삶이 선물이라고 얘기한다.

 

 아마도 우리들이 살면서 삶에대한 불평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삶을 견디려는 의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서 힘든 삶을 견디고 이겨내다보면 언젠가는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갈 것이고, 지난뒤에 돌아보면 별일 아닐수도 있을 것이다.

 

 

 탐욕이 나를 낙담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퍼뜨리는 흉측함, 순수하게 물질적인 혐오감 때문이다. 탐욕스러운 사람이 그저 약탈만 하고, 자신의 약탈품을 금고에 쌓아두기만 한다면 해악이 좀 적다. 그러나 탐욕은 자랑하고 스스로를 내보이려 한다. 거리낌 없이 그 잔인한 취향으로 하늘과 땅을 해친다. 탐욕은 요란한 일에, 콘크리트에, 아스팔트에, 금속판에 투자한다. 탐욕은 탐욕을 낳는다. 탐욕이 손을 뻗는 곳마다 세상은 더 흉측해진다. 일본에 있는 나의 선불교 스승에 따르면 탐욕은 원죄다. 탐욕은 세상을 조각낸다. '커지라'는 고함과 함께 채찍질당하는 탐욕은 아무도 길들일 수 없는 괴물이다.

 

- 본문중에서 -

 

 

 위에서 얘기하는 탐욕이야말로 우리들이 제일 먼저 삶에서 버려야 할 것이다. 이 탐욕으로 인해 우리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피폐해져 가는지도 모른다. 모든 악행의 근원은 탐욕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한 번 탐욕에 빠지면 그 달콤함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탐욕으로 인해서 절망의 바닥을 경험해야 그제서야 탐욕이 부른 재앙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흔히들 욕심을 조금만 덜어내면 삶이 행복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욕심을 덜어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이 욕심은 탐욕의 다른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또다른 욕심을 부려야 한다. 결국 욕심은 욕심을 부르게 되고, 결국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매우 불행하고 힘든 어린시절을 겪으며 성장했다. 학대를 일삼던 아버지와 그 옆에 무기력한 어머니 사이에서 산 것이다. 생각만해도 너무 끔찍하다. 이런 가정에서 살면서 내일을 기다리며 살 수 있을까? 아마도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이런 가정에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나를 찾고 이런 책까지 썼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존감이 얼마나 높은지도 짐작간다.

 

 이 책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지금 힘들다고 말했던 것들을 힘들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힘든 일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

 

나를 사는 순간

 

#에세이추천 #추천도서 #나를사는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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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부모 - 상처 없이 부모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법
최원호 지음 / 팝콘북스(다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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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아이 뒤에는 언제나 문제 부모가 있다. 그리고 문제 부모에게는 언제나 같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열등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부모가 열등감을 다루지 못하면 열등감 부모가 되며 신체, 경제, 사회, 가정, 학업 등 자신의 열등감 종류에 따라 아이를 괴롭히게 된다.

 

 중요한 건 열등감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부모가 자기 안에 감춰진 열등감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잘 관리하느냐이다. 여기에 따라 아이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열등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자기방어기제라는 것이 강하게 작용한다. 자기를 방어하는 데 민감하다는 말이다. 자기에게 조금만 손실이 나도 참지 못하기에, 아이가 부족한 것 역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 느낀다. 열등감이란 달리 표현하면 자기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약간은 병적인 태도로부터 발생하는 강하고 계속적인 긴장 상태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열등감으로 가득 찬 부모가 아이에게 끊임없이 공부를 강요할 경우, 아이는 삶의 목표를 점점 잃게 되고 아이 역시 열등감으로 가득 찬 인간이 되어 간다. 열등감을 가지면 학교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관계에 적응하기도 힘들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고립되어 갈 뿐이다.

 

 

 산만한 아이를 둔 부모의 문제 유형을 살펴보면 또 하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부모가 지나치게 도덕적이거나 또는 도덕적인 척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그로 인해 평가 기준이 엄격한 부모는 아이에게도 완벽을 추구한다. 작은 실수를 하거나 숙제를 깜박하는 것,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예의 없게 구는 것, 또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할 뿐더러 자기 아이가 밖에 나가서 남들에게 욕을 먹게 될까 봐 늘 전전긍긍한다. 어느 정도 도덕적 가치관을 강조하고 성숙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것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본인이 그 순간을 못 견디기 때문이라면 문제가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마음은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 상대에게 어떤 상처를 가하지 않으면 자신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심리 자체가 열등감에서 오는 것이다.

 

 잔소리가 아이의 행동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열등감이 없는 부모라면 잔소리를 멈출 것이다. 그러나 열등감이 가득한 부모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행동에 변화가 없는 것은 잔소리가 부질없어서가 아니라 잔소리의 강도가 약해서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아이에게 밀리면 안 된다는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신체적, 정신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스스로에 대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자기의 부족한 점을 그냥 담담히 인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지나치게 의식하고 집착할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자신을 탓할 때 생기는 감정이 바로 열등감이다.

 

 또 자기 스스로를 너무 작게 보기 때문에 남에게는 오히려 과장되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그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남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다.

 

 열등감은 기억이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한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기억도 있지만 부정적이고 심한 상처투성이의 기억도 공존한다. 일반적으로는 어떤 상황이나 행동, 태도나 기억이 그 사람의 현재 행동을 괴롭힐 때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지나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거나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나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곤경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벗어날 길이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곤란할 상황을 받아들일 때 생긴다.

 

 이것이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인격 형성에 좋은 동기가 될 수도 있고 곤란한 과정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발휘되기도 한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켜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열등감이 가득한 어른은 한마디로 말해 편견으로 똘똘 뭉쳐 있으면서 지독하게 외로운 존재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좋은 점 보다는 나쁜 점을 더 먼저 보고 더 많이 본다. 그리고 남이 자신의 약점을 알아차릴까 두려워 자기 방어를 많이 하게 된다. 지나치게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열등감도 많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러다가도 또 별 것 아닌 이야기에 발끈하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바로 열등감을 가진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열등감 부모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는 아이가 자랄수록 긍정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감당하느냐에 달렸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버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아들일수록 인지 능력이 높고 이해력도 높으며 자신감이 많아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 높다."고 했다.

 

 남자아이는 아버지를 남성의 모델로 삼을 것이며, 여자아이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 남성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다.

 

 아버지가 여성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해 주는 모습을 보고 자란 여자아이는 아버지와 같은 이미지의 남자 친구를 찾게 된다. 반면에 아버지의 여성 비하, 가정 폭력, 인격적인 모독, 이해할 수 없는 부정적인 행동에 노출된 여자아이는 남성 자제를 혐오하여 결혼을 미친짓이라고 생각하거나 남성 기피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아버지의 삶이 생략된 자녀 교육은 자녀가 현실을 왜곡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마저 통제할 줄 모르도록 만든다. 자녀가 일으키는 많은 문제들은 그동안 생략된 아버지의 역할과 기능이 만들어 낸 종합적인 결과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주 안아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신체 접촉은 마음에 깊은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정신적 지주라면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이 되어야 한다. 언제고 포근하게 아이를 안아 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역할이 바로 어머니의 진정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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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생일 바꿀래!
신채연 지음, 윤유리 그림 / 현암주니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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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훈이는 자신의 생일 초대장을 열심히 만들어 친구들을 찾아간다. 그러나 처음 찾아간 친구 승재네는 동훈이 생일 날 해돋이를 보러 가서 못 온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 친구 성민이네를 찾아가지만 성민이는 할머니네를 간단다. 다음으로는 쌍둥이 재훈이랑 재석이네를 찾아가지만 이 집은 노래자랑을 나가야되서 안 된다고 한다. 동훈이는 결국 어깨가 축 쳐져서 집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렇게 동훈이 생일날 친구들이 오지 못하는 이유는 동훈이 생일이 1월 1일이기 때문이다. 동훈이는 자신의 생일이 항상 빨간날에 방학이고 새해 첫 날인것이 매우 싫다. 동훈이는 생일 날 친 구들을 초대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동훈이는 생일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동훈이는 생일을 바꾸기 위해서 달력을 폈다. 그리고 1월은 겨울방학이니 패스, 2월은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방학이 있어서 패스, 3월은 입학식이라 친구들을 잘 모를 것 같아 패스, 4월은....결국 동훈이는 4월 15일로 정하고 엄마에게 얘기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 생신이 4월 10일이니 아빠랑 동훈이랑 생일을 같이하면 되겠다고 하신다. 그 말에 동훈이는 다른 날짜를 잡으려 다시 달력을 들여다 보게된다. 5월은 무슨 날들이 많아서 패스, 6월은 현충일이 있어서 패스(동훈이 할아버지가 나라를 지키시다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에 6월달만 되면 가족들이 모두 슬퍼하기 때문이다.) 7~8월은 여름방학이 있어서 패스, 가을로 접어드는 9월이 좋겠다고 동훈이는 생각하고 9월 24일로 정해서 엄마에게 얘기한다.

 

 동훈이는 9월 24일에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 파티를 할 생각에 벌써 설레이고 기분이 좋아진다.  

 

 

 동훈이는 엄마와 미용실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한 아줌마가 이번에는 추석 연휴가 길다고 얘기하며 그 날짜가 9월 22일부터 26일까지란다. 이 말에 동훈이는 추석이 몇 일이냐고 물으니 아줌마가 추석은 9월 24일이란다. 바로 동훈이가 새로 정한 생일날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동훈이는 아빠에게 다른 달력이 없냐고 묻고 아빠가 몇 년치가 나와있는 달력을 동훈이에게 준다. 그 달력을 보면서 동훈이는 자신의 생일과 추석이 비슷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9월 달에 할머님 생신과 어머니 생신까지 있는 것이다. 이 사실에 동훈이는 다시 어깨가 처지고 만다.

 

 밤이 되고 동훈이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1월 1일...아빠가 동훈이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하자 엄마가 아들 생일도 모르냐며 핀잔을 준다. 동훈이가 생일을 9월 24일로 바꿨기 때문이다. 동훈이는 그냥 원래대로 할까 고민도 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바꾼 생일로 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빠와 동네에 떡국을 사러 나가서 시장 노래자랑하는 곳에서 동훈이 친구인 쌍둥이들을 보게 된다. 어제 연습했던 것보다 쌍둥이들이 더 잘하는 것 같았다. 떡국을 사면 행운권을 나눠주고 추첨해 자전거를 선물로 주는데 추첨번호는 54번...아빠는 55번... 아깝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선다.

 

 그때 들려오는 소리....오늘 생일인 분 계시면 자전거를 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아빠와 동훈이의 눈이 마추쳤다. 

 

 

 잠시 고민하던 동훈이는 그래도 바뀐 생일로 할거라 생각하고 아빠와 집으로 가려는데 그때 누군가가 손을 들고 나가는 것이다. 그 손든 사람은 바로 쌍둥이들이었다. 동훈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쌍둥이 생일이 오늘이 아닌 것 같았다.

 

 앞으로 나간 쌍둥이에게 사회자가 오늘 생일이냐고 묻자 쌍둥이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자 사회자가 그럼 왜 나왔냐고 묻자, 쌍둥이들은 오늘은 바로 자신의 친구 동훈이의 생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회자에게 동훈이가 준 초대장을 보여준다.

 

 동훈이는 쌍둥이들 덕분에 앞으로 나가게 되고, 사회자의 확인으로 자전거를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훈이는 자신의 생일이 너무 좋아졌다. 또한 쌍둥이들도 나중에라도 동훈이 생일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훈이는 자신의 생일인 1월 1일이 너무 좋아졌다. 

 

나, 생일 바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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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이 전 세계 역사를 바꿨다고? - 요즘도 과거시험을 보면서 살고 있는 아이들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2
이상권 지음 / 특별한서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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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노는 것을 줄이고 공부를 시키려고 하는데, 옛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권장했던 놀이가 있다.

 

 그게 바로 주사위 놀이다. 주사위라는 말은 유럽에서 온 놀이를 번역하면서 생긴 것이고, 우리나라 토종 말은 윤목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윤목 놀이라고 불렀고, 승경도 놀이라고도 했다. 놀이판을 승경도라고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집안에서 아이들 교육을 주로 엄마들이 책임진다. 그런데 옛날에는 가장 어른인 할아버지가 손자들 교육을 책임졌었다.

 

 대표적으로 김진이라는 사람을 들 수가 있다. 김진은 과거에 합격하여 공직에 임명되었으나 오래 머물지 않고 사직서를 낸 다음 고향으로 내려가서 자식 교육에 힘썼다. 그 결과 다섯 명의 아들이 과거에 합격했다.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관할 관청에 가서 수험생 등록을 해야 한다. 옛날에는 요즘처럼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등록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신분증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기는 했어도 요즘처럼 사진을 찍어서 부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험생이 가짜가 아닌지 구별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까다롭게 하는 것이다.

 

 현직 관리의 아들이나 명문가의 아이들은 그 절차가 까다롭지 않았지만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은 그 시작부터 복잡했다. 그중 하나가 신원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조단자라는 것을 제출해야 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가족관계증명서라고 할 수 있지만 가족의 범위가 아주 넓어서 친가와 외가 4대조까지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연히 이름이 있고, 생년월일, 관직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것을 보고 조상들 중에서 죄인이나 반역자는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조상들 중에서 중대한 죄를 지은 죄인이 있는 경우에는 시험을 볼 수가 없었다. 당연히 천민들도 볼 수가 없었다. 사조단자는 조상들 중에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지금은 초등학교부터 무상교육을 실시하지만 조선시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였던 서당을 무상교육하게 되면 나라에서 아주 돈이 많이 들어갈 것이고, 또한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마음껏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반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도 과거 합격자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양반들이 초등학교부터 무상교육을 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요즘 하고는 정반대로 대학부터 무상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조선의 최고 대학이었던 성균관부터 중등학교였던 향교까지는 무상교육을 했지만 평민들이 많이 다녔던 서당은 무상교육이 아니었다.

 

 성균관이란 조선을 이끌어갈 맞춤형 공무원을 배출해내는 곳이다. 그러니 성균관에만 입학하면 어느 정도 출세가 보장된 셈이었다. 성균관에 입학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은 성균관 학생들을 우러러보았다. 지금 로스쿨하고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성균관에 입학하면 거의 다 과거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양반들 중에서는 성균관에 입학한 학생들을 정략적으로 사위삼기도 했다. 성균관 학생들 입장에서도 그런 결혼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왜냐면 보다 더 좋은 가문의 사위가되면 그만큼 든든한 백이 생기는 것이고, 훨씬 더 수월하게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다. 

 

과거시험이 전 세계 역사를 바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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