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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사쿠라기 시노 지음, 전새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순수하면 제일먼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세상의 때가 아직 묻기 전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보고 느끼는 것만을 신뢰한다. 하지만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 순수함을 잃고 마는 것 같다.
이 책은 서예 교습소를 하는 한 남자를 만나는 20대의 발달 장애를 갖고 있는 준카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 준카를 중심으로 나오는 인물들간의 서로다른 질투들을 엿볼 수 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때론 자신의 속 마음을 숨기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준카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가고, 서예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이런 준카를 서예 교습소를 하는 류세이가 자신의 전시회장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류세이는 준카의 천부적인 서예 실력을 자신도 모르게 질투하게 된다. 이런 류세이에게는 병든 노모와 가정을 책임지고 일하는 아내가 있다.
류세이는 서예가로서 유명세를 떨치고 싶어하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시게 된다. 그러던 중 천부적인 서예 재능을 가진 준카를 만나면서 야망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 류세이의 아내 레이코는 발달 장애를 지닌 준카의 오빠 노부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노부키에겐 오랜 만남을 갖었던 리사라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준카는 이 리사를 친 언니 이상으로 따르고 의지한다. 이런 이들 중간에 준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준카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혼자가 된다. 혼자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준카를 노부키가 데려다 보살피게 되는데, 노부키 자신이 너무 바쁘다보니 제대로 준카를 돌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던 중 류세이가 준카를 서예 교습소에서 일하면 어떨지 제안하게 되고, 노부키는 준카가 서예를 좋아하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준카는 서예 교습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가르치는 아이의 실력에 맞게 너무도 잘 지도한다. 그러면서 잘 나오지 않던 아이들도 빠지지 않고 서예 교습소를 나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준카가 글씨를 쓰게되고, 이 준카의 글씨를 본 류세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준카가 쓴 글씨는 유명한 작품을 따라쓴 것이다. 그런데 그 글씨는 겉으로 보기에 너무도 진품같이 똑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낙인을 찍어야 할 부분에 준카가 X표를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 표시는 할머니와의 약속이라고 한다. 아마도 할머니는 준카의 실력을 누군가가 악용할 수도 있음을 염려해서 그런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류세이는 이런 준카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도서관장 노부키와 류세이의 아내 레이코는 준카를 핑계로 문자를 서로 자주 주고 받게 되고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게 되지만 그 이상의 관계로는 발전시키지 않는다.
류세이의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계신다. 그런데 준카가 오고 난 뒤 어머니에게 변화가 생긴다. 어느 날 류세이는 멀쩡하신 어머니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류세이는 왜 자신의 어머니가 환자처럼 지내는지 궁금하지만 이유를 묻지는 않는다. 그냥 현재의 삶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준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끝에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자신들의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가는 이들의 진심은 무엇일까? 이들의 모습들 중 하나는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저자소개]
사쿠라기 시노 저
농밀한 언어로 삶의 비애를 담담하게 드러내는 탁월한 문장력의 소유자인 사쿠라기 시노는 ‘신 관능파’로 불릴 만큼 성애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홋카이도를 무대로 황망한 자연 속에서 혹독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섬세하게 묘파하여 “근경과 원경이 교묘하게 잘 녹아들었다”라는 평을 듣고 있다. 2013년 『호텔 로열(ホテルロ?ヤル)』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문학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사쿠라기 시노는 1965년 홋카이도에서 출생, 중학교 때 하라다 야스코(原田康子)의『만가(挽歌)』를 읽고 문학에 눈떴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문예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법원 타이피스트로 일하다가 결혼 후 한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다. 남편의 임지를 따라 홋카이도 각지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문학이 온전히 발을 디딜 땅을 찾게 된다.
2002년 데뷔작 「눈 벌레(雪?)」로 제82회 올 요미우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 2005년 「안개등(霧?)」으로 마쓰모토 세이초상 후보에 올랐고, 2007년 첫 단행본 『빙평선(氷平線)』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2012년 『러브리스(ラブレス)』로 동시에 3개의 문학상 ― 나오키상, 오오야부 하루히코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 후보에 올라 큰 화제를 모았고, 2013년 같은 작품으로 제19회 시마세 연애 문학상을 수상했다. 열다섯 살 적 아버지가 개업했던 러브호텔의 기억을 되짚은 『호텔 로열』로 제149회 나오키상을 수상했고, 이어 7월에는 본격 장편소설인 『순수의 영역』을 발표했다. 그 외 작품으로 『풍장(風葬)』(2008), 『동원(凍原)』(2009), 『유리 갈대(硝子の葦)』(2010), 『원 모어(ワンモア)』(2011), 『터미널(起終点? タ?ミナル)』(2012) 등이 있다.
전새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