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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ㅣ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평점 :
꽤 많은 예술가들의 삶은 휘청거리며 쓰러질 듯 아슬아슬하다. 삶의 희노애락을, 남들과는 다르게, 한 꺼풀 벗겨낸 피부처럼 따갑고 아프게 받아낸다. 그 대신 기쁨과 사랑도 더 강렬하게 느끼며 표현한다.
그런 감수성만으로도 휘청이고 어지러운데, 온갖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 고통받는 한국의 화가들.
역사 속에서 그들이 그리고자 했던 그림과 담겨 있는 정신들이 담겨 있다
아이의 중학교 교과서를 보다가 반가운 시를 한 편 발견했다. 시인이 제주도에서 누군가를 상상하며 쓴 시, 바로 이중섭에 대한 시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제주도 시절의 삶을 상상하며 시인은 이중섭의 그림을 시로 담아냈다. 순수했고 사랑을 믿었던 이중섭은 그러나 외로움 속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그림은 탐욕스런 누군가의 손에 의해 도둑맞고 사기당하는 과정에서, 가족과도 떨어져 있던 이중섭은 삶의 의지가 꺾이지 않았을까.
이중섭의 아들들의 사기행각에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아들들이 아버지의 그림을 위작 판매한 사건 , 그들을 비난하기 보단 마음이 아팠던 사건이다. 행복하길 바라며 건강하길바라며 복숭아와 낙원을 그리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을 아버지 이중섭은 그 아들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50년대의 그 시절, 그 시대의 사람들의 잔인함을 견디며 아이들이 보고 싶었을 그, 그래서 그가 그린 아이들의 그림이 밝으면서도 애잔하다.
마사코에게 사랑을 담아 보내던 이중섭의 엽서화( 밑에서 첫 번째 사진)와 그가 그린 조국이 담긴 소 그림, 그 소는 마치 이중섭 본인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혜석, 가장 영화같은 삶을 살았지만, 이중섭만큼 비참했다. 자식을 보지못하는어미의 마음과 수전증 등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화가의 죄절은 어떤 그림을 그리게하는걸까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인으로 태어나는 세상, 자유연애와 감정의 해방을 꿈꿨던그녀, 그녀의 그림들엔 그녀가 있다. 그녀가 쓴 글(경희) 또한 그녀다. 그녀는 거짓없이 자신을 그리고 자신을 썼다. 결국 그 시절의 역사는 그녀에겐 지독한 외로움과 낙인을, 그녀의 아이들에겐 그리움과 미움이란 양가감정을 안겼다. 인연은 돌고 돌아, 아이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결국 나혜석의 아이들을 그 시절 어려웠던 유학 ( 나혜석의 지인 등 인맥의 도움)등으로 이끌어 삶을 조금 더 풍족하게 해주었다. (두번째 그림은 나혜석작가님의 화령전 작약이란 작품이다.)
이병철회장의 집안은 원래 의령에서 부잣집이었고 시대를 잘 타고나, ( 정미소, 무역을 통한 삼성물산)삼미시대에 어울리는 제일모직과 제일제당을 시작으로 삼성까지 이르렀다. 아버지는 그 중 하나를 다니셨는데, 매년 말엔 달력을 가져오셨다. 거기서 처음 본 명화 중하나가 이응노화백의 그림이다. (아마 이병철회장의 개인소장품이었던 모양이다. )아주 어렸던 나는 그 한글자음 그림들이 좋았다. 삐뚤한 것이 내가 쓴 거 같기도 하지만 거친 질감과 묘한 구성과 색감에 한참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 거친 질감이 낡은 돌을 휘감던 세월의 비바람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서양의 기법으로 동양의 서예를 써내려간 화가, 관객에게 상상하게 함으로서 오히려 관객들을 창조자로 만든 화가이다. 그의 붓으로 그려진 글자와 사람들은 살아 있듯 생생하다 그림 속 그들의 삶이, 내 삶보다 더 날 것이고 더 쌩생하다.
유영국, 어릴 적엔 뭐지? 하면서 봤다. 한참 인상주의나 라파엘전파 그림에 빠젔던 시기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작가의 그림에서 산이 보이고 남실거리는 바다가 보인다. 눈부시게 밝은 산을 보며, 쑤쑥 뻗어나간 산등성을 구비구비 넘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에몰입하게 된다.
아이가 어렸던 시절, 거실 벽 한귀퉁이엔 장욱진 작가의 그림이 한 장 붙어있었다. 아이는커다란 나무 위 작은 집과 귀여운 새, 달구지를 보며 좋아했다. 저 그림 속 마을에 들어가보고 싶어했다. 그렇다. 작가의 그림을 보면 그 속에 들어가고 싶고 그 곳엔 순수함이 가득하다.
평생 환쟁이로, 그림만 보며 살다간 장욱진, 가장 나답게 그림을 그리다 도인이 되어, 한 마리 새로 날아간 사내. 화가는 그의 그림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불멸의 사내가 되어버렸다.
(세번째 그림은 장욱진작가님의 강변풍경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서 사랑을 고백할 때 “ 달이 아름답네요” 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
참말로 아름다운 달, 그 달을 쏙 닮은 환한 백자 항아리, 그 둘이 참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 김환기작가님의 작품들이다.< 달과 항아리> 가장 우리 민족적인 그림이라고 하지만, 난그 그림들을 볼 때마다 사랑고백이 떠오른다. 소세키의 구절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랑고백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같다. 키스하며 둥둥 떠오르는 샤갈의 그림이 참 낭만적이라 생각했다. 은은하고 변함없는 선하고 순한 사랑의 말엔 김환기작가님의 달과 항아리가 참 어울린다. 이 그림앞에서 사랑고백을 한다면 마음 속으로 몰아치는 곱고 따스한 바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달과 항아리가 하나가 되는 그림 앞에서 고백은 너와 나 또한 하나되자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나 그림들이 너무 비싸 조금 놀랄지도.
예전 우연히 작가님의 그림들을 봤다. 수 많은 점들을 마주하며, 그 점들 속에 항아리와 달이 삶이 모두 담겨있음을 그 점 하나 몰래 훔쳐 오고 싶었던 그 마음. 난생 처음 뭔가를훔쳐 내달리고 싶었다. 그 점 하나 우리 집 거실에 달아 놓으면, 휘엉청 밝은 달 하나 떠오르지 않을까. 어느 날은 별 하나로 어느 날은 항아리로 . 그 항아리에 내 마음들을 담아 두고 푹푹 삭혀 깨끗이 빨아 밤하늘에 널어두면, 달도 되고 별도 되지 않을까
80년대에 국민학교 출신인 나는 박수근의 그림 또한 달력으로 만났다. 지방에서 미술관이뭔지도 모르고 자란 내겐 달력 속 그림들이 전부였다. 어떤 종이에 그린 그림인지, 뭐 때문에 이렇게 친근하고 보기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조금 더 커선 ( 나목) 이란 박완서 작가님의 책에서 박수근화백을 만났다. 이런 인연이 있구나, 삶이 참 고달팠음에도 가족과 그림을 지키며 참 순수하셨구나란 생각을 했다.
인간의 선함을 믿었고, 그 믿음이 그림에 그대로 묻어나는 선한 화가다
천경자화백님도 마찬가지다. 달력그림에서 화관을 머리에 썼으나 외로움이란 다크써클이 배경처럼 깔린 듯한 여인과 아프리카의 코끼리와 사자를 만났다. 어린 시절엔 그 여인들이 무섭게 느껴졌지만, 나이가 들면서 삶이란 환한 얼굴의 생채기없는 소녀가 아니라, 혼란한 눈빛에 어둠도 담겨 있음을 느꼈다.
위작논란으로 신문에서 봤던 작가님의 작품, 작가가 그린 적이 없다는 전문가들 또한 위작이라 말하는 작품이, 법 아래 진품이란 판결을 받은 참 묘한 세상이다.
백남준, 자유로운 영혼들을 새로운 기술과 접목해, 비디오 아트를 창시한 화가, 우리나라 화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화가. 다다익선을 봤던 기억이 난다. 거대한 탑 속에 메시지를 담은 화면들이 움직이던 그 장관.
이우환작가님, 처음으로 로스코나 밀레비치의 작품을 봤을 때만큼 당황했다. 참 좋군요 해야 지식인 아니 최소의 교양인이 되는 것인가. 입이 바싹 말랐다. 거짓말엔 소질이 없다. 어버버, 미술관의 원시인이 된 기분이다. 그래서 이런 책이 있는 게 아닐까. 그 분의 철학과 사상 등을 통해 작품의도를 알고 나면 그래도 원시인 중에 좀 낫다는 네안데르탈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비록 멸종했다지만.
다른 책에서 본 이우환작가님의 말씀을 덧붙여 본다. 이 구절을 읽고 그나마 작품에 대해 이해가 됏던 거 같다.
“예술작품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메타포어를 보여야 한다. 거창한 꿈을 투사하는게 아니라, 그런 것이 다 깨지고 잡다한 황무지에 서 있다는 느낌을 환기시키는게 중요하다. ”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어떤 그림이든 상관없다. 옆집 꼬맹이가 그린 그림도, 별 생각없이 아이들이 그리는 모래사장의 낙서도 좋다. 길 가다 벽에 그려진 삐뚜름한 꽃 한 송이도 동그라미 하나도 피식 웃게 된다. 무슨 맘에 무슨 억하심정에 저 깨끗한 벽에, 누가 저런 걸 그려놓은걸까. 그림은 내 삶에서 또 하나의 위안이다. 예전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아 이건 누구의 누구그림. 그게 그리 중요한가 싶었다. 그러다 해설서를 조금씩 읽기 시작했고 (솔직히 그 속의 수록된 그림들을 보려고) 알기 전과 알기 후의 느낌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꼈다. 그냥 그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이와 친구가 되고 친밀해 지는 느낌, 물론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지만. 그래서 이런 책들이 좋다. 어렵지 않고 친근하고, 수록된 그림들만으로도 행복하다.
( 나만의 그림 관련 책 보는 법, 일단 그림부터 감상하기,그 후 착 읽으며 정보를 알아가기,글쓴이의 감상도 읽어보기, 다시 그림보며 새롭게 느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