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잡사 - ‘사농’ 말고 ‘공상’으로 보는 조선 시대 직업의 모든 것
강문종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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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잡사, 부제가 사농말고 공상으로 보는 조선시대 직업의 모든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직업들에 대한 나열과, 그들 직업에 대한 대략적 설명과 애환 및 그런 직업으로 유명해진 이들에 대한 글이다.



만약 내가 조선시대에서 살아간다면 어떤 직업을 갖게 될까, 혹은 내가 원하는 직업은 무엇일까. 그래서 타임머신을 타고 한 번 가 볼까 한다. 나름 좀 사는 양반집 안방 마님이라면?



오늘은 중요한 양반가 아녀자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 일찍 매분구(화장품 외판원)를 불렀건만 아직 오고 있지 않다. 다행히 가체장(가체 만드는 이 )이 제대로 풍성하게 가체를 만들어서 이건 나름 만족할 만하다. 특히 남편이 상투를 멋스럽게 틀겠다며, 정수리 주변을 확 깎아 베코를 친 덕분에, 남편 머리카락도 같이 가체 만드는데 넣을 수 있었다.

우리 집이 모임 장소라, 화장(조화 만드는 이)을 불러 잠화들로 집을 꾸몄고, 떼군(목재를 운반하는일꾼)들이 갖고 온 목재로 정자도 완성했으니, 정자에서 재담꾼 박뱁새랑 관현맹(맹인악사)를 불러 흥을 돋운 후에 세책점주에게 빌려온 명나라 최신간을 전기수나 책비에게 읽게 해야 겠다.

멀리 외곽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들녀석이 방직기(외곽근무하는 이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관기) 외모가 마음에 안 든다고 전인(우체부)을 통해 편지를 보내왔는데,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최경창과 홍랑짝은 안나지 않겠는가.

잠녀(해녀)를 통해서 받아 온 전복으로 음식을 만들라고 했는데 잘 되겠지? 김씨부인이 안화상(짝퉁판매자)에게 속아 도라지를 인삼으로 샀다는데 그 이야기나 자세히 들어봐야겠다.

참, 오늘 진시에 숙사(입주가정교사)면접을 보기로 했는데, 오시에 모임이니 넉넉하겠지?

정씨부인은 집을 옮긴다는데, 집주름(부동산중개인)농간이 장난이 아니라던데 속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오늘 따라 거울도 속을 썩인다. 얼마 전에 마경장(금속거울 관리사)을 불러 관리를 했는데도 뿌옇다. 아무래도 역관을 통해 뇌물을 써서라도 유리거울을 장만해야겠다.

아버님은 아침부터 기객(프로바둑기사)과 바둑 삼매경이시고, 남편은 오시에 농후자(원숭이 길들여 공연)구경을 갔다가 시내 건너 둘째의 과거시험을 위해 이름 난 거벽(대리시험자)을 만나러 간다는데, 물이 찬데 월척군(업어서 시내를 건내주는 이)이 있을지 모르겠다. 과거시험을 치려면 거벽뿐만 아니라 서수(글씨 예쁘게 써 주는 이)도 필요한데......



아니, 오늘 오기로 되어 있는 박뱁새가 못 온다니, 어떻게 하지. 급한데로 환술가(마술사)라도 불러? 아니면 가객(가수) 노래나 들을까. 아니면 재미로 판수(맹인 점쟁이)를 불러 점술이나 볼까. 얼마쯤 돈이 더 들듯한데, 아무래도 우리집 겸인(집사)은 산술이 약하니 산원(수학자, 회계사)을 불러 해결을 봐야겠다. 누구는 우리보고 식리인(사채업자)으로 부자가 됐다고 비웃지만, 세종의 사위나 한명회도 유명한 식리인인걸. 편사(사기꾼)나 도주자(위폐제작)보단 훨씬 낫다.



조선시대에도 많은 직업이 있었다. 이 외에도 종이 만드는 지장, 도공인 사기장, 글자 새기는 각수, 검시하는 오작인, 변호사역할의 외지부, 우마차를 끄는 차부, 궁궐의 우체부 글월비자, 보부상, 그리고 돗자리나 짚신을 짜는 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 열심히 가족을 부양하고 살았던 선량한 그들이 지금 우리에게도 남아 있다.

2020년, 70%를 참으며 30%로 1년을 살아낸 해다. 내년? 부지런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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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2-14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책을 읽어보고싶게 만드는 멋진 리뷰입니다.

mini74 2020-12-14 21:4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우간다 2021-05-23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심있는 책 리뷰를 보던 중 읽게 되었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명화에세이 읽기 >
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림, 출근길 명화 한 점



작가님은 그림은 치유라고 한다. 그림 하나를 최소 10초 정도 보라고. 공감과 감동속에서 혹은 나와 닮은 사연 속 이야기가 담긴 그림들은 한참을 먹먹하게 한다. 하나도 허투로 쓰지 않은 색들은 그 때의 화가의 마음들을 담고 있고, 선들의 움직임을 쫓다 보면 무언가 그림 속 수수께끼들이 풀릴 것만 같다. 멀리서 보면 또 다르다. 누군가의 삶을 혹은 나의 삶을 멀리서 보면 그건 어느 정도 참아 줄 정도의 삶, 비극인듯 희극인듯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냥 그 순간 그 짧은 찰나에도 그림은 수많은 상념과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글을 읽고 머리 속에서 다시 정리하며 어느 책 상 서랍 속에서 낡은 글자 뭉테기를 꺼내는 게 아니라, 그림은 그냥 그림이다. 어떤 과정없이 그저 펼쳐져 버린다. 과감도 감출 수도 없고 계산 할 틈 없는 마음이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림앞에선 솔직해져 버린다.
그런 그림들 속에서 작가님은 본인이 위로받은 그림들과 그 그림들을 보며 생각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화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알 수도 있고, 이미 충분히 선하고 따뜻한 작가님의 마음가짐을 통해 느끼는 것도 많다. 하지만 그 중에 제일 좋은 건 좋은 그림들을 소개받는 것, 친구가 어느 날 내게 말을 거는 거다. 피곤하니? 그럼 이 그림 한 번 볼래? 울었니? 네가 밉다고? 그럼 에곤 실레 그림을 한 번 봐봐. 이렇게. 그림으로 위로하고 따뜻하게 감싸준다.

사랑도 반듯하게 자로 잰 듯 할 것 같은 몬드리안의 연인 아가사 제트래우스를 그린 <붉은 옷을 입은 여인> 은 첫사랑처럼 달다

이사벨 아자니가 너무 예뻐 넋을 놓고 봤던 영화 < 까미유 클로델> 그녀의 작품 <왈츠> 속 남녀는 생동감 넘치는 열정의 춤사위를 보이고 있다. 그녀도 믿었겠지. 로댕과의 사랑이 지속될거라고, 딸로 태어난 사실만으로 자신을 증오했던 어머니와 달랐던 아버지처럼 로댕 또한 그런 믿을만한 사랑을 주리라 믿었을까. 결국 홀로 남아 마음을 닫고 좁은 작업실에 자신을 구겨 넣은 체 힘없이 무너진다. 모진 어머니는 그녀를 정신병동에 넣어 버리고 찾아오지 않는 밤, 자꾸만 잊히는 정신을 부여잡고 밤하늘의 달을 껴안고 주무르며 또 다른 조소를 만들며 한 때 행복했던 그 시절을 기억할까 아니면 저주할까.

고흐와 로트랙, 그림 그리기를 지지해준 어머니는 두 화가 그림의 또 다른 매력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 고흐는 힘든 여건에도 따뜻한 색으로 사랑도 믿음도 포기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을 그리며, 로트렉은 최하층 여인들에게서 받은 위안을 그림으로써.

수잔 발라동을 사랑한 에릭 사티, 그가 죽은 후 발견된 수잔을 향한 사랑의 증거들, 그렇지만 사랑은 현재형이기에 에릭 사티를 향한 수잔의 사랑은 흔적만 남아있다. 증거들은 화석이 되겠지. 공룡이 살았다는 무수한 증거 속에 볼 수는 없는 것처럼.

(아래 그림은 < 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람> 에 수록된 ,존 슬론의 광대, 카미유 클로델의 왈츠,몬드리안의 붉은 옷을 입은 여인, 그리고 에곤실레의 자화상이다.



그 다음 책은 < 출근 길 명화 한 점>
이 책은 요일에 따른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상쾌한 월요일,힘내는 화요일,명랑한 수요일,깊어지는 목요일,섹시한 금요일, 꿈꾸는 토요일, 충전하는 일요일이란 제목으로 각기 어울리는 그림들을 작가님의 생각과 함께 풀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그림들과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릴 적 아이와 들었던 마더구스가 생각났다.
월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예쁘고
화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착하고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불행하고
목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여행을 떠나고, 금요일에태어난 아이는 매력적이고 , 토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고생하고 , 귀엽고 명랑하고 마음씨가 고운 건 일요일에 태어난 아이.


이걸 듣고 내가 어떤 요일에 태어났나 가슴 두근거리며 찾았던 기억이 난다.
주말이라는 건 참 죽게도 지겹지만 또 살아내게도 하는 힘. 화요일이 고비쯤 되지만 이 악물면 언제가 목요일 오후가 오고 그러면 빛나는 금요일, 모든 일들이 너그러워지는 그 금빛 금요일이 온다.
요일별도 그렇지만 사람 마음은 간사해서 날씨며 뭐며 작은 것에도 맘이 흔들린다. 하지만 그건 매번 남탓하는 버릇일뿐, 실상은 내 맘이 괴로운 것일뿐.
사랑하는 이가 있는 직장이라면 화요일이 대수겠는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가 있는 곳이라면 금요일인들 행복하겠는가.
삶은 고군분투, 매번 걷던 길도 낯선 길이 되기 일수. 그럴 땐 가슴 속에 부적 하나쯤 갖고 다니자.
고생만 한다는 수요일에 태어나면 아떻고, 징글징글한 월요일이 다가오면 뭐 어떤가. 에라이 하고 가슴 속에 넣어둔 부적 하나 보며 마음을 위로해 보자. 그림 하나.
어떨 땐 라울 뒤피가 어느 날엔 르동이나 프리드리히의 그림이 나를 툭툭 하고 칠지도 모른다.
어이, 비는 오지만 어때 한 번 걸어 볼텐가. 조금만 더 가면 에펠탑이 보일 지도 몰라 하고. ㅎㅎㅎ

책을 좋아했던 고흐의 <난롯가의 농부> 그리고 로베르 들로네의 <에펠탑>~ 에펠탑앞에서 나도 누구들처럼 브이하며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ㅠㅠ 존 윌리엄 고드워드의 < 근심걱정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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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봉과 분홍 제복 - 세일러 문부터 헬렌 켈러까지, 여주인공의 왜곡된 성역할
사이토 미나코 지음, 권서경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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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년소녀일본만화들을 분석, 그 속에서 여성은 그저 보조하는 역할 수동적이며 성희롱의 대상이 되는 것에 분개, 개성 넘치는 제대로 된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일본만화들이지만 대부분 어릴적부터 우리 또한 보고 좋아했던 만화들이라 이해하기 쉽고 재미도 있다. 그런 만화들을 보면서 느꼈던 불쾌함의 이유가 조금은 분명해진다. 미야자키의 만화 속 여성들 또한 진취적이며 여성중심같지만 실제는 그저 남성영웅의 공식에 여성모습만을 입혔을 뿐이라는 비난도 있다.


쫄쫄이 옷을 입고 세상을 지키는 파워레인저 류에 주로 고명처럼 섞여 있는 여자 아이, 만화 영화 속 주인공은 남자아이들 그리고 고명처럼 얹어진 여자아이. 별다를 역할도 없다. 그래서 눈요기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도라에몽의 이슬이, 어린아이들이 보는 만화에 목욕씬이 나오는데다, 진구는 매번 이슬이의 목욕장면을 보려 안달을 한다.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른 체 우린 어린 시절 이런 만화들과 영화를 보며 즐겼다. 당연히 멋진 로봇을 운전하고 외계인을 무찌르는 건 남자아이들의 몫, 옆에 곁다리로 있는 여자아이는 괜히 걸리적거리거나 혹은 남자주인공의 도움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듯 항상 무력하다.
여자아이들을 위한 만화영화는 분명 세상을 지키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이긴 한데 뭔가 미묘하게 다르다. 변신장면에서 괜히 나신의 실루엣을 보여주거나, 혹은 코스프레하듯 간호복이니 스튜어디스옷이니 등을 갈아입고 나온다. 변신하고 난 후의 모습이 더 전투력이 떨어지는 듯 한데, 그 긴 다리로 희한한 요술봉 하나를 들고 싸운다. 남자아이들은 제대로 된 무기로 혹은 뭔가 무기같은 것들을 들고 세상을 지키지만, 여자아이들은 더 불편한 짧거나 몸에 딱 달라붙는 전투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옷으로 갈아입고, 뾰롱 뾰롱 따위의 희한한 효과음을 내며 악세사리같은 봉을 휘두른다. 결국은 마법의 힘이 다다.
이 책의 내용은 바로 이런 잘못된 매체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세뇌당하는 것들이 바로, 여성은 나약하거나 보여지는 존재거나 혹은 민폐같은 캐릭터로 나온다. 괜찮은 여자 주인공은 착하다 못해 맹하고, 남자주인공의 말을 잘 들어야 하며, 가끔 노출도 필요하다. 그게 목욕씬이던 변신이던 그건 중요치 않다.
 

나 또한 그랬다. 나서는 것보단 뒤에서 조신하게 도와주는 역할, 나대는 건 여성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적극적인 것이 여성답지 못하다와 동의어가 되는 세상. 그건 어린시절부터 내가 보아 온 그리고 배워 온 세상이었다. 반장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거치면서, 요술봉을 휘두르는 날씬하고 예쁜 여자 주인공들을 보면서, 은연중에 세뇌를 당한 건다.
여자는 이래야 하는 거야, 남자애들이 좀 짓궂게 굴어도 그건 너를 좋아해서야. 헉, 그런 좋아함은 거부한다.
 
우주전함 야마토는 고교 야구부, 건담은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에반게리온은 막장가족이란 해석이 재미있고 설득력도 있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뭐가 달라진거지? 여전히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는 주인공들에 여자아인 고명처럼 얹혀 있다. 동물들 캐릭터마저도 분홍빛깔의 여아 캐릭터에 그나마 숫자도 동등하지 않다. 그놈의 자동차 캐릭터마저도 그러하다.
그놈의 분홍색!
실제 분홍색은 남자들의 색이었다.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한 번 보라.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살짝 꼬아 각선미를 자랑하며, 그 허벅지에 분홍리본을 두르고 있다. 하얀 스타킹에 분홍 리본에 빨간 하이힐. 그 시절 귀족들은 평민들과 차별하기 위해 파스텔톤을 선호했고 그 와중에 분홍색들도 유행하게 된 것이다. 결국 성별에 따른 색의 구분은, 장난감 회사들이 성별이 다른 남매들에게 장난감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남녀 모두 분홍이든 파랑이든 성별 구분이 없다면, 남매지간에도 장난감을 물려 받으면 되니 장난감 수요가 주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초등 중학년만 넘어도 다들 그냥 검은색, 검은색이다. 무책색. 어린 시절 반짝 분홍과 파랑의 향연, 그렇지만 그 구별 또한 자본주의가 낳은 소비의 향연이라니 참 서글프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성별에 따른 다양한 차별이 대중매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악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참 많이 싸웠고, 예전보단 나아지는 양상이다. 남자들 또한 자신의 기득권이 뺏기는 것이 아니라, 남녀가 동등해지면서 서로의 짐을 같이 지고 감을, 자신과 자신의 딸들에게 모두 도움이 됨을 자각해 양성평등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늘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 여전히 진행중이다. 아, 예전과 좀 다른 양상?
예를 들면 어릴 적 나는 여자애니까, 조신해야 한다라던가 착해야 하며 시집만 잘 가면 된다 등의 소리들을 들었다. 요즘 여자애들에게 그런 말을 하진 않는다. 대신 여자애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여자애가 왜 그리 덤벙대니? 침착해야지. 글씨가 왜 그 모양이니? 남자애들에겐 조금 더 허용되는 것들이 여자란 이유로 조금 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여전하다.
언니들이랑 가끔 라떼는 말이야 라고 우스개처럼 떠들기도 한다. 며느라기 책을 돌려보며, 어쩜 이 미묘하고 찜찜한 기분을 잘 표현한거냐며 공감으로 호들갑 떨기도 한다.
지나가는 이들이 가위로 오노 요꼬의 옷을 조금씩 자르는 행위예술이 있다. 시선들 속에서 발가벗겨지는 듯, 혹은 가위로 잘리는 듯 상채기가 생기는 일들, 여자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들을 표현한 행위예술이다.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좀 나아진 걸까.
(작가님은 붉은 원숭이띠시다)

과연 애니메이션 왕국은 이제껏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취급가 세상을 구원해줄 것은 기대하면서 소녀를 구하는 일에는 무관심했을 받고 분에 못 이겨 눈물짓는 소녀를 적극적으로 그려왔던가? 조직의 차별 대우에 저항하는 여성 대원은 또 어떠한가? 상사, 동료, 시청자의 성희롱에 단호한 태도를 보여준 붉은 전사는 존재했던가? 이런말을 하면 "당연히 있었지. 그 작품에서는 말야……"라며 꼬치꼬치따지려 들고 자잘한 지식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체적인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다(참고로 미리 말해두겠는데, 목욕탕을훔쳐보거나 치마를 들추는 행동에 대해 비명을 지르거나 뺨을 때리는 행위를 ‘성희롱에 대한 저항‘이라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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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열린책들 세계문학 9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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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퉁퉁 부었다. 잠이 안 와 뒤척이던 밤, 무심코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서 <전원일기>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 댁에 전화가 처음 들어오고, 식구들은 신나서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 본다. 전원일기 회장님 부인으로 출연하시는 김혜자님은 모든 가족이 잠든 밤,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내용이다. 그저 수화기를 든 채 우리 어머니를 아시냐며 보고픈 어머니에 대한 모습과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한다.
왜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어머니들은 우리를 울리는 걸까. 어머니들은 또 본인의 어머니를 그리는 것마저 애닳다. 그런데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 엄마와는 왜 그런걸까. 드라마처럼 좀 거리를 두고 있으면 보고 싶고 그립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렇게 찾아가면, 하...... 어릴 적 들었던 잔소리와, 10대 때 들었던 잔소리와 20대 때 들었던 잔소리, 30대 때 들었던 잔소리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쟁쟁쟁 장엄하게 울려댄다. 이젠 늙어가는 딸의 모습에도 잔소리다. 너도 염색을 해라, 미장원은 귀찮아도 최소 한 달에 두 번은 가라, 눈 나빠지니 영양제를 먹어라. 팔순의 노모가 사십대 후반을 달리는 막내딸의 늙음이 안타까워 잔소리가 더 느셨다. 아 그 레파토리......
집에 와선 살갑지 못한 내 모습에 반성을 하며, 다음엔 꼭 애살맞은 딸이 되리라 결심하지만, 원래 타고나기를 나무토막 중간쯤으로 생겨먹어 영 어색하다.

어머니, 그러고 보면 어머니 상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어릴 적엔 주로 계모, 동화 속 계모들을 보면서 우리 엄마가 가끔 계모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엄마와 나, 우린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 그리곤 구원의 어머니, 희생의 어머니, 인고의 어머니 상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인고의 어머니가 왜 “시”자가 붙으면 세계 최고 갑질의 대명사가 되는 지. 물론 요즘은 좀 덜하지만.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여전히 옛날 엄마다. 김장해서 기다리고 장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맛난 건 자식 몫인 엄마다.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워 화를 내다가도, 엄마를 닮아간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지는 못할망정, 내 아이에게 되 물리고 있다. 그렇게 부모가 되는 건가 보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1900년대 혁명의 러시아, 그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들 파벨, 그리고 그런 아들을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하며 아들의 일에 동참하게 되는 어머니 닐로브나의 이야기가 큰 틀이다.

러시아, 생산자본들을 생산자에게 돌려주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 생산자본은, 공산주의에선 공산당에, 자본주의에선 자본가에게 주어져있다. 생산자들은 그저 생산자본을 가진 자들에게 착취당하는 것? 땅에서 작물을 생산하는 생산자인 농노에게 돌아오는 것은 모멸과 가난,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배고픔과 지친 육신.

그 속에서 혁명의 목소리는 순수했고 희망찼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머니. (왜 이리 감정이입이 되는 거지 싶었더니, 고리키의 어머니는 흡사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의 어머니를 닮았다.)

남편의 분노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어머니, 구타당하고 상처를 입던 약한 어머니가 아들을 통해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을 통해 각성하는 모습, 그러면서 당당하게 세상에 나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모습에서 이 이야기는 닐로브나의 성장이야기이기도 하다. 파벨의 어머니인 닐로브나가 이젠 상처받고 고통 받는 약한 이들을 위한 어머니가 된다. 닐로브나는 약한 존재지만, 이젠 귀를 열고 타인의 상처를 듣고 보듬고 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사실 제일 놀란 건, 소설 속 닐로브나가 40대라는 것, 나랑 비슷한 나이라니. 나도 각성해서 만인의 어머니로 변신해야 하는 건가. 그럴려면 내겐 마법봉이라도 있어야 할 듯.


˝오늘 내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모욕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해서 그냥 웃고 넘겨 버린다면, 그 모욕을 가한 인간은 나에게서 힘을 시험해 보고, 내일은 다른 사람의 껍질을 벗기러 들 것입니다.˝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님은 1868년생 황룡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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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1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아주 오래 전, 그야말로 호랭이가
담배 먹던 시절에 대학 선배 형님이
선물해 주셨던 책이었지요.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다 가
물가물하네요.

러시아 소설은 왠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mini74 2020-12-11 10:49   좋아요 0 | URL
저도 27년전에 선물받았어요 ㅎㅎ 그땐 파벨의 나이였는데, 이젠 파벨의 어머니 나이로 읽게 되네요 *^^*

라로 2020-12-11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원일기 저 에피소드 봤어요!!! 저희 집도 전화기가 없었는데 저희 부모님 가게에 처음 놓게 되어서 시장 사람들이 몰려왔던 기억이 나요. 저도 쫌 많이 으스댔던 기억이. ㅎㅎㅎㅎㅎ

mini74 2020-12-11 13:35   좋아요 0 | URL
전 전화기에 엄마가 자물쇠 걸어 놓은 기억이 ㅠㅠㅎㅎ
 
풍경의 깊이 - 강요배 예술 산문
강요배 지음 / 돌베개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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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에 고흐의 별이 있다면, 제주엔 강요배작가의 달과 별이 있다.

사람들은 강요배 작가님을 두고 바다를 아는 화가라 말하고, 정작 작가 본인은 바다를 모른다고 한다.
얕은 바다처럼 심연은 모른체, 4.3사건 또한 아직도 본인은 겉만 알 뿐 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 울음과 아픔은 결코 분리 되지 않은 체, 그의 작품을 채운다.

내가 4.3사건에 알게 된 건 ( 순이삼촌) 과 (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 문학작품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강요배 작가님이 그린 제주 그림을 보게 됐다. 작가님의 바람이 참 좋았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바람, 바람을 그리지 않아도 흔들리는 억새와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한 구름들과 비를 퍼부울 듯 혹은 노을 지는 듯한 어두운 하늘 어디서든 바람이 분다고 느꼈다.

그런 작가님이 글도 잘 쓰다니. 아.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그림에 멋진 글에 철학까지. 아껴가며 읽은 책이다. 그림은 몇 번을 다시 보며 옆에 적힌 작가님의 글들을 읽고 다시 또 그림을 보며. 바보같이 아. 그렇구나. 아. 멋지다를 연발하며.
그러다 슬펐다. 아이, 어머니, 하늘, 달이 슬프게 울고 슬프게 걸려있다.

제주도의 사연 깊은 바람과 하늘.

금강산을 관광하며 그린 그림들엔 애절함과 그리움이 붓질에 가득하다.
관동별곡에서 은같은 하연 무지개 옥같은 용의 꼬리, 눈 내리는 곳 으로 비유되는 만폭동 폭포

고등학교 시절 그저 탐관오리 주제에 뭔 여행은 이리 많이 다녔나 ~ 생각해보니 탐관오리니 이리 놀러나 다니지싶은 생각이!!!~ 욕하며 배웠던 관동별곡, 이제는 갈 수 없는 곳, 금강대와 진헐대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그리운데 갈 수 없어서 그린 것이 그림일까. 그래서 그림이란 이름이 붙은걸까.

고구려 고분 벽화들과 판문점 주변의 그림들도 좋았다. 사진과 달리 작가님의 마음이 담긴 색들과 감정의 선들이느껴졌다.
그림과 글이 어울리고 겉돌지 않아 더 좋았다.


사랑하는 연인이 별도 달도 따 달라고 한다면? 물론 이과생들은 저 별은 몇천광년이니 어쩌고 저쩌고 하겠지만. 조용히 작가님 그림 속 별과 달을 갖가 바치리. 어두운 골목 가로등도 낭만적이지만, 작가님의 별과 달 아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도 더 낭만적이지 않을까.

또한 시대의 아픔과 역사의 학살 아래 그 상처를 보듬는 건 결국 사랑, 그 낭만 같은 별과 달, 하늘이 아닐까. 날카로운 제주의 칼바람으로 묻히지 않게, 그리고 누가 주범이고 공범이었는지를 추상같은 바람 아래 모두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신라 경문왕은 자신의 귀가 당나귀처럼 생긴걸 숨기려 했다. 그렇지만 세상엔 비밀이 없는 법 오히려 비밀은 더 들키기 쉽다. 복두장이가 도림사 대나무밭에서 크게 외친 진실이 바람에 실려 퍼져나갔듯, 제주의 바람 또한 그렇게 퍼져 나가지 않을까.
달이 은근한 밤, 별들이 부둥켜 안는 밤, 밤하늘이 눈물처럼 내리는 밤이다.
( 강요배 작가님은 52년생 흑룡띠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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