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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달에는 계수나무가 있어. 그 밑에서 토끼들이 허벌나게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 악독한 항아란 여신이 자신을 위한 묘약을 만들라고 채찍질하고 있거든. 헉. 토끼들에겐 노동법이 없는 거야? 불쌍한 토끼들, 차라리 플레이보이지의 토끼들이 나을까? 뭐라는거야 성상품화와 과도한 다이어트로 그쪽 토끼들도 힘들다고. 어린 시절 순순하게만 봤던 달을, 20대 땐 소주 한잔하고 친구들과 썰렁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지금은 얌전하게 달을 보며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소원을 빌곤 한다. 항아만큼 나이가 들어서일까. 젊음의 묘약이 절실한 건 아닌데.
다행히 달엔 토끼도 항아도 없다. 앞 뒤 두루두루 열심히 미국아저씨들이 가서 살폈지만 역시나, 그 곳은 그저 커다란 분화구들이 있을 뿐. 화성에 있다는 얼음도 물도 무언가 특별한 것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양한 천연자원들로 혹여 달에서 채취한 콜탄 등으로 휴대폰을 만들지도, 그럼 내 휴대폰의 재료원산지는 달나라가 되는 걸까.
심재경작가님은 목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연구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달을 관측하게 되었다. 달 표면의 토지에 대해, 북쪽과 남쪽은 태양에너지로, 서쪽과 동쪽은 자기장의 영향으로 노화등이 다르다는 내용으로 논문을 썼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달전문 과학자로 네이처지에 소개되었다.
아이 친구 중 한 명이 천문학자가 꿈이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천문관련 학과에 간다니까 처음 들은 말이.
“왜? 성적 아깝게.”
이게 아마 현실일거다. 돈도 명예도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현실적 조언은 나름 모범생인 그 아이에게 진심담긴 애정이었을 거다. 그렇지만 그 아이는 결국 본인이 원하는 과로 갔단다. 누가 그러더라. 나이가 들수록 돈이 최고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것도 또 진실이다. 돈보다 명예보다 세속적인 것보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택하는 용기도, 현실에 맞춰 택하는 용기도 모두 응원하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좌절하지 않고, 굳이 커다란 상이나 명예가 아니더라도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그냥 삶이 아닐까. 이 책이 바로 그렇게 거창한 의미도 목적도 아니라, 주어졌고 그 주어진 길을 성실히 걷고 있는 과학자의 이야기다. 어떻게 하다 보니 천문학자 그것도 행성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 중 달을 연구하며 매번 계약기간이 갱신되길 바라는 임시직 과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작가는 별을 이야기하면서, 삶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과학자로서의 모습, 엄마로서의 모습, 임시직으로서의 모습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며 부딪치는 일들과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끼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어렵지 않게 천문학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 준다.
특히 제자들의 메일에 진심을 담아 답장을 쓰고, 천문학이니 우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가지길 바라며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들은 배울 점들이다.
무엇을 바라는 것도, 거창한 준비나 목적도 아니라, 어떻게 하다보니 이 골목에 서게 되었고, 내 몫이 이 길을 걷는 거라면, 이왕 걷는 길 성실하게 주변을 치워가며 그리고 주변을 사랑해 가며 소중히 보듬어 가며, 또 다른 길을 걷게 되더라도 지금 이 길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저 성실하고 또 성실하게 가는 길.
작가가 보여주는 삶의 자세는 내가 가는 길에 대해 거창하게 설명하려 하거나 무언가 불만을 표하는 내 모습이 그저 변명이었음을, 허영이었음을 잠시 깨닫게 한다. 곧 있음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겠지만...짧은 각성은 슬픈 일이다. 작심삼일처럼.
작가님의 말처럼 우린 지구라는 최고로 멋진 우주선에 올라탄 여행자들이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지구에서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공짜로 주어진 이 여행을 즐겨보자.
2024년 미국의 달 탐사선은 달로 여행을 갈 때, BTS의 노래를 들으며 간다고 한다.(선곡된 노래들 중에 BTS가 있다고 한다.) 내가 달에 가게 된다면 어떤 음악들을 담아 가게 될지 괜히 막 혼자 설레며 곡을 선별중이다.
(이 책에선 유니버스와 코스모스와 스페이스의 차이점이나 ~ 유니버스는 우주 그 자체, 코스모는 질서와 조화 측면에서의 우주, 스페이스는 공간으로서의 우주~ 작은 곰자리의 별에 한라와 백두란 이름이 붙었다는 것 등 재미있는 지식들도 소개하고 있다.)
내가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 휙, 빠르게 돈다. 한 시간에 15도, 그것은 절대로 멈춰 있지 않는 속도다. 별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눈을 휘둥그레 떴던 밤을 기억한다.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 순간살아 움직이며, 인생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겠지. 내가 잠시멈칫하는 사이에도 밤은 흐르고 계절은 지나간다. 견디기힘든 삶의 파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물 아래 납작 엎드려 버티고 버텼던 내 몸을 달래며, 적도의 해변에 앉아 커피 한잔 놓고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고 싶다. 한낮의열기가 다 사위고 나면, 여름밤의 돌고래가 내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아주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라고, 잠시 멈췄대도, 다 괜찮다고.
2024년 다시 달로 향할 미국의 우주비행사는 BTS를 들으며 우주를 항해할 예정이다. 우주에서 그들이 떠나온 지구를, 그 안에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 모두를 돌아볼 것이다. 지구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처럼 우리 역시 지구라는 최고로 멋진 우주선에 올라탄 여행자들이다. 어쩌면 그래서우리의 생이 그토록 찬란한 것일까. 여행길에서 만나면 무엇이든 다 아름다워 보이니까. 손에 무엇 하나 쥔 게 없어도콧노래가 흘러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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