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 풍문부터 실록까지 괴물이 만난 조선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유니콘이 처녀의 품에 안기는 숲, 밤이 되면 아름다운 님프들이 달빛을 받으며 냇가에서 머리를 감고 응큼한 사티로스들이 몰래 엿보는 곳. 영웅들이 온갖 괴물들을 무찌르고 결국은 긴 머리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쟁취하고 혹은 하늘의 별이 되는 곳,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영웅과 미녀들의 판타지가 흘러넘치는 곳.
어린 시절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환상과 판타지가 가득한 아름다운 여신들과 희한한 괴물들로 가득 찬 곳. 르동의 그림에서 외눈박이 키클롭스를 보고, 고야의 그림에서 자식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를, 보티첼리에서 아프로디테의 탄생을 보며 그렇게 컸다. 기간테스며 가이아의 뱃속에서 태어난 수많은 괴물들과, 새의 몸을 한 세이렌과 인어들.(후엔 세이렌이 인어처럼 묘사된다. 우리도 인어 이야기가 있지만 주로 기름용으로 선호된다. )
그러다 조금 더 커선, 채찍과 약초를 들고 다니는 신농이며, 온 몸이 쇠로 되어 있다는 치우천황과 곡쇠와 컴퍼스를 손에 쥔 여와와 복희 등을 보며, 그 곳에 산다는 혼돈이란 괴물이며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사람들과 새모양의 얼굴을 가진 이들, 인어아저씨가 산다는 산해경을 보며 다양한 괴물들과 괴수들에 빠져 들었다. 일본에서 쓰여지고 그려진 다양한 괴물들을 보며, 동양신화들을 이용해 다양한 컨텐츠를 만드는 걸 보고 부럽기도 했다.
그러다 잠시 고민, 왜 우린 없는 거지? 아니 우리도 있을 텐데. 동양신화 범주에 속하는 중국신화들이 결국은 우리에게도 이어진다는 것, 문화처럼 신화들도 이어짐을 알게 되었다. 신농과 황제의 싸움에서 결국 황제의 승리로, 신농과 그의 부하 치우천황계열은 유목민쪽으로 계승되었고, 우리의 삼족오나 달 속 항아(두꺼비)등도 서로 교류됨을. 그리고 그것이 어색한 일이 아님을 당연함을. 이야기란 원래 돌고 돌아 살을 붙이고, 혹은 어떤 건 삭제되고 편집되어 또 다시 새로운 이야기들이 됨을, 그 사회의 모습과 환경에 맞춰 각색되어 조금씩 다른 특징들을 가짐을.
그렇지만 우리도 우리만의 기괴한 이야기들이 있을 텐데 할쯤, 곽재식 작가님이 멋진 책을 내주셨다. 우리 괴물 백과, 그리고 그 다음의 후속작 같은 책 바로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이다. 조선왕조실록, 어우야담 등 다양한 책들속 기록들을 모은 책이다.
지네가 많다는 뜻의 오공원, 지네와 두꺼비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은혜 갚은 두꺼비 이야기, 실제로 청주시엔 지네 이야기가 전해지는 오창읍이 있고,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에 최초로 두꺼비 생태공원이 있다는 거다. 아이들과 두꺼비 생태공원에 간다면, 이곳에 사실은 지네가 많았고 지네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이야기를 해 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엔 구미호보다 흰여우 이야기가 더 많다는 것, 특히 전우치에게 비술을 전해준 이가 바로 흰여우라고 한다.
삼구일두구라고 성종시절 입이 세 개인 이 괴물은 예언을 했다고 알려진다.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란 속담 속 강철은 가뭄 등 농사를 망치는 재해를 일으키는 괴물이다. 작가는 이 강철이 혹은 전쟁이나 탐관오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을 한다. 실제 괴물들은 은유적인 이들이 많다. 주로 자연재해와 낯선 이민족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괴물로, 혹은 추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대표적으로 헤라클레스가 사자가죽과 몽둥이를 들고 처단하는 괴물들은 다양한 자연재해를 의미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동양신화에서 산해경 속 다양하고 이상한 나라들은, 주변국에 대한 두려움 혹은 낯설음에 대한 무지와 자신들보다 하등한 존재로 만들려는 속셈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하늘의 개모양 별, 천구성과 객성(나구네별)은 불운을 의미하며, 고려 정종때 최지몽이 이 객성에 대해 반란을 예언해서, 과학자 중 최고로 높은 벼슬을 얻게 된다.(아이유가 나왔던 보보경심? 에 최지몽이 나온다.)
생사를 관장하는 검물덕과 목숨을 거둬들이는 저승사자 역할을 하는 검물덕의 아들 생사귀는 몸은 검고 뿔이 다섯가지로 뻗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전설의 고향팀에서 만든 이미지라고 한다.
그 외에서도 땅아래에서 사는 지하지인, 중종때 나타났다는 수괴, <연귀취부>에 기록된 도깨비, 사슴 모습의 녹정과 곰 모습의 웅정, 벽사(인간의 음식 대신 산의 솔잎 등을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함)하여 신선이 된 안시객,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임난 때 명군사와 함께 온 해귀, 불가살이, 논박과 반박의 그 박 등 다양한 괴물들이 등장한다.
지역별로 괴물들이 정리되어 있고, 특히 다양한 문헌에 기록된 것을 토대로 괴물들의 행태와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역시 우리나라는 기록의 나라가 맞다.
예전 껌을 사면, 그 속에 만화나 괴물백과 사전류의 조악한 짧은 책이 나오곤 했다. 만화를 읽으며 껌을 씹기도 했고, 웃기게 생긴 괴물들을 보며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문구사에서 파는 괴수 대백과, 귀신 대백과 등을 사서 몰래 보곤 했다. 엄마는 꿈에 나온다며 그런 책들을 싫어하셨다. 지금은 최고 인기만화가 신비 아파트? 라고 하는데, 얼마 전에 잠깐 보다가 꺼버렸던 기억이 난다. 너무 무서웠다. 하하하
나는 우리나라 괴물들을 좀 좋아한다. 인간적이랄까 아님 좀 모자라 보인다고 할까? 동양의 괴물들은 뭔가 웃기다. 생김새도 웃기고 악하게 생기질 못했다. 물론 이들은 사람들의 소중한 가축들을 빼앗고, 혹은 우물을 오염시키고 또는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그들의 악행을 읽다보면, 결국 그들은 인간들이 두려움으로 만들어 놓은 허상이며, 그런 두려움을 덜어보고자 만든 창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염병이 돌아도 속수무책이다. 누가 우물에 약을 탔을 거야. 누굴까? 어제 밤에 뒷집 순이가 우물에서 뭔가를 봤다는데, 두려움은 그 무언가의 덩치를 키우고, 그림자를 붉게 물들이겠지. 그럼 전염병을 일으키는 괴물 하나가 탄생, 그 두려움이 역으로 그런 괴물에게 치성을 드리면서 나는 내 가족만은 이 난리에서 살아남길 기원하겠지.
어리석다고?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 괴물 대신 우린 누구를 두려워하며, 두려움에 맞서기 보단 그 두려움을 더욱 부풀려 치성을 드리고 있진 않은가. 사람들은 누구나 괴물을 갖고 산다. 그리고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도록 깨어 있고 싶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고 싶어 책을 펼치지만, 가끔은 그런 내가 조금 모자라 보이는 괴물 같기도 하다. 책이 날 지켜줄 수 있을까. 남편이 옆에서 한 소리 한다. 내 카드가 널 지켜줄 거라고...... 고맙긴 하지만, 당신 카드 한도 너무 낮거든?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313/pimg_767512114287383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