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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출세작 - 운명을 뒤바꾼 결정적 그림 이야기
이유리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출세를 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노력, 실력, 천재성? 환경? 물론 출세를 하기 전까지 꾸준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고 천재성도 중요하겠지만, 또 하나 중요한 요소로 시대를 타고나는 것과 운도 한몫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시대를 앞서가, 철저히 외면당한 고흐는 그래도 성실하고 그를 믿어준 제수씨(테오의 아내)요안나 빙허와 조카 반 고흐 주니어 덕에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물론 그림의 힘을 믿는다. 요안나 빙허나 조카가 없었다하더라도 사람들은 반 고흐를 알아봐주고 사랑해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테오와의 그 방대한 편지들과 고흐의 작품들을 생활고에도 팔지 않고 소중히 여긴 그 마음들이 없었다면 조금 더 늦게 알려지거나 지금처럼 전설이 되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갈 곳이 없이 친구대신 크리스마스에 인쇄소 일을 하다가 기회를 잡은 알폰소 무하, 그리고 1920년대와 30년대 여성의 힘과 근대에 대한 새로운 흐름 속 아이콘이 된 렘피카가 있다. 그 당시 가르송(소년)에서 딴 가르므손이란 짧은 머리의 소년같은 소녀상이 널리 퍼졌다. 여전히 치렁치렁한 머리에 패티코트차림의 순종적 여성상을 반기던 주류사회는 그녀를 미워했겠지만. 세상은 변하는 법, 많은 이들이 램피카의 가르므손 스타일의 그림들과 당당하고 힘 있는 여성의 모습에서 새로운 세상과 흐름을 봤고 지지했다.
고된 작업, 점묘파의 화가 쇠라 또한 그 당시 인상파와 달리 구도와 색의 잔상, 철저한 계산등으로 신인상파를 만들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감명을 받고, 신체의 해체와 인체왜곡 등으로 새로운 스타가 된 베이컨, 그는 십자가 책형에서 원래 그런 그림들이 가지던 기존의 종교적 의미를 버리고 인간의 고통과 극한의 공포와 죽음을 그렸다. 끔찍했던 1차와 2차대전, 그리고 동성애자를 향한 폭력 속에서 베이컨은 우리는 고깃덩어리이며 잠재적 시체일뿐이라는 생각을 그림 속에 담았다.
어린 시절 학대에 다한 트라우마가 담긴 헨리다거의 비비엉 자매들 시리즈,
우키요에를 포스터에 담은 로트레크, 동양적 철학을 담아낸 <TV부처>의 백남준, 뛰어난 패션감각과 친화력으로 앙투아네트의 화가가 된 루이즈 비제 르 브륑, 코발트 블루의 통영항을 그림 전혁림, 자연이 신의 계시라며 풍경화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그려낸 뭉크, 경계선 상의 화가 이쾌대 등 다양한 화가들의 출세작들을 소개한다. 소개뿐만 아니라, 어째서 그 작품으로 세상의 이목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시대상황과 주변인에 대한 글들도 담겨 있다.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을 우리는 혜성처럼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실제 혜성처럼 나타나긴 어려운 법.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혜성을 만나기 전 긴 어둠속에서 스스로를 믿으며 수많은 그림들을 그리고 또 그렸다. 잊히고 혹평에 상처받아도 꺾을 수 없는 그들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어느 순간 시대를 잘 타고 났다 보단, 그저 꾸준히 미친 듯 열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을 알아보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 아닐까.
베이컨의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무섭고 두려운 그림, 혹은 정육점 그림 같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학대와 성정체성으로 인한 폭력과 냉대, 외로움과 두려움이 담겨 있는 그의 그림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공감이 담겨 있다. 그렇다 화가들의 출세작은 그 시대를 담은 커다란 그릇이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은, 그 그림 앞에서 충격과 감동을 혹은 새로운 에너지를 퍼 담아 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은 시대를 초월해,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각기 다른 감정들을 퍼 올려 우리에게 담아준다. 그래서일까. 어떨 땐 발끝을 적시는 불편함으로 혹은 몸을 녹이는 따스한 한 잔으로, 어떨 땐 정신 바짝 차리게 만드는 냉기로 그렇게 다가온다.
아래 그림은
1. 렘피카의 부가티를 탄 자화상
2. 헨리다거의 비비안 자매들 시리즈
3. 전혁림의 통영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