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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볼가강의 영혼 ㅣ 클래식 클라우드 27
정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아주 아주 오래전, 겁나 옛날. 미팅이란 걸 나간 적이 있다. 그 겁나 옛날 미팅에선 주로 우회적이고 쓸모없는 질문들이 오고갔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어떤 클래식을 좋아하냐는 거다.
헐, 음악시간에서조차 가곡 몇 번 부른 게 다고, 그나마 고학년이 되면 음악이라 적히고 수학 수업이나 자습을 했던 고등시절을 보낸 주제에 클래식?
대부분 비창이니 월광이니 혹은 사계? 등을 더듬거렸던 기억, 그래서 우스개 소리가 나왔나보다. 비발디의 사계 중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으니 삼계라고 했다는. 남의 일이 아니다.
차이콥스키, 내겐 아직 차이코프스키가 더 익숙하지만, 요즘은 차이콥스키라 해야 한단다.
차이콥스키를 좋아하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중간고사가 끝난 날,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관람을 했다. 재미있는 영화들 다 놔두고, 학교에서 선정한 영화는 바로 <차이코프스키>였다. 꽤나 긴 영화였다. 불편한 의자와 긴 관람시간에 거기다 중간고사를 마친 날이니, 친구들은 하나둘 잠이 들었다가,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의 웅장함에 놀라 깼다가 다시 잠들곤 했다.
그런데 그 영화가 참 좋았다. 닥터지바고를 좋아했고, 톨스토이를 좋아했던 그 시절, 영화의 화면도 그리고 그 화면을 깨고 나올 것 같던 음악들, 하얀 눈들과 아름다운 옷차림의 러시아 귀족들, 그리고 러시아 학생들의 교복도 멋있었다.
그 후 여전히 클래식엔 촌스러운 내게, 최고로 좋아하는 클래식?하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이 되었다.
아, 그 영화 속 대포소리에 졸던 아이들이 놀랐던 것도 기억난다. <1812 서곡>도 좋았다.
그래서 이 책을 사야할 운명이었다. 하하하
운명이라니 너무 거창하지만, 그 설원이 펼쳐진 화면과 울려 퍼지던 <1812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설렘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인가보다. 그저 음악만 감상했다면 난 잘 몰랐을 것 같다. 영상과 분위기, 그리고 큰 스크린을 가득 채운 눈 덮인 평원은 차이콥스키의 곡들을 각인시켰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들으면 자동으로 그렇게 눈 덮인 러시아와 방울 소리를 울리는 썰매, 대포소리와 젊은이들의 함성이 떠오른다.
이 책은 차이콥스키의 여정을 따라가며 시대별로 작곡한 곡들에 대해, 글로 그리고 풍경으로 읊어 주는 책이다. 각각의 작품들에 담긴 이야기와 느낌, 비슷한 작품들과 어떤 면에서 다른지에 대해 쓰여 있다. 작가의 일생이나 세세한 삶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대신 그의 작품들과 해설, 원작들은 자세하게 쓰여 있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는 어려운 내겐, 글로 쓰여진 좋은 해설서다. 물론 거의 폰을 옆에 두고 유투브에 의지하며 읽어 내려갔지만.
직각의 의자, 번데기와 오징어 냄새, 밤샘하고도 망쳤다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를 외치던 친구들과 봤던 그 영화 속 차이코프스키를 기억하며 즐겁게 읽었다.
아이랑 같이 봤던 <호두까기 인형>의 환상같던 퍼레이드 장면도, <마제파>의 슬펐던 자장가, 버드맨에서 들었던 <교향곡제 5번>,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도 모두 차이콥스키가 만든 선율위로 아름답게 혹은 인생을 담으며 그렇게 흘러간다.
(책의 앞 뒤 표지는 보리스 쿠스토디예프의 그림, 레핀의 제자로 밝고 화사한 풍경, 즐거운 모습을 주로 많이 그렸다고 한다.
차이콥스키님은 휜쥐띠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