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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수업 - 따로 또 같이 살기를 배우다
페터 볼레벤 지음, 장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3월
평점 :
“숲에 있는 흙, 한 줌에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많은 생명체가 들어있다.”
초록의 소나무 숲, 갈색의 두꺼운 나무껍질들 사이로, 환한 빛을 내는 자작나무 몇 그루, 그 옆으로만 걸어도 마음이 편해지고 공기도 맑은 느낌이다.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초록빛, 그리고 그 사이로 만들어지는 초록의 그림자들은 삶의 소소한 기쁨이다.
나무에 기대기도 하고, 나무껍질을 만져 보기도 한다. 마치 수관을 통해 물이 올라가는 소리와 그들의 진동을 통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처럼. 실제로 청진기를 대면 그들의 물 넘김 소리와 진동들로 소란스럽다고 한다. 가뭄에는 그들의 그런 파장들이 괴롭다는 외침같이 들린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끔 나무가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표현함에도, 가지를 꺾고 꽃을 뜯어 내곤 한다. 사진을 찍으려고 혹은 아름다워서 혹은 심심해서.
나무들은 나무들의 속도가 있다. 나무와 인간의 시간은 너무나 다르다. 인간의 짧은 생애와 달리, 나무는 길고 느리게 인내의 시간을 거치며 아주 소수만이 살아남아 둥글게, 혹은 어떨때는 급박함과 고난을 상징하는 나이테를 그리며 200년이고 300년을 천천히 살아간다. 인간은 언제나 인간위주의 생각을 해서일까. 너무 느려보이는 나무들을 보며 그들의 느린 움직임과 천천히 자라는 성장의 징조를 보면서도 그저 물건처럼 취급한다.
이 책은 그런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무들에게도 생각이 있음을, 동물처럼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나무에게 가장 알맞은 나무의 환경을 만들어주며,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나무를 활용하자는 이야기다. 나무의 시간과 나무의 이야기에 한번쯤은 귀 기울여 보자는 그래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며,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는 그들을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그루터기만 남아도 서로의 뿌리를 연결해서 영양분을 나눠주는 나무들의 우정이 있다. 아픈 나무에게도 뿌리를 뻗어, 혹은 균류를 이용해 자신의 양분을 나눠준다.
나무들에게도 언어가 있다. 향기로 친구들에게 위험을 알린다. 혹은 애벌레들의 침을 구별해서, 나뭇잎을 갉아먹는 애벌레의 천적을 부를 때도 향기를 이용한다. 뿌리로 전기신호를 보내 땅 속에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균류는 모든 나무들을 연결해 주는 숲의 인터넷이다. 그들도 어쩌면 너무 많은 햇빛을 독차지하는 너도밤나무를 헐뜯으며 대책회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걸이의 강도는 제일 약한 고리의 튼튼함에 달려 있다.”
나무들은 제일 약한 고리에게도 서로의 뿌리를 뻗어 주는 단단한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나무들은 근친상간을 막기 위해, 암 수의 꽃 피는 시기를 달리 한다. 혹은 정말 신기하게도 근친이면 스스로 구부러져 씨앗과 열매 맺기를 포기해 버린다. 혹은 자웅이체로 수나무에서 암나무로 벌이 순서대로 가게끔 색과 향기로 조정한다.
나무에게도 두뇌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어느 부위일까. 여기서는 다양한 전기신호를 내 보내는 뿌리가 아닐까 한다.
미모사는 반응에 따라 잎을 오므리는데, 잎에 물방울을 떨어뜨리자 몇 번은 오므리더니, 후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자 더 이상 잎을 오므리지 않았다고 한다.
숲의 깡패,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마피아같은 너도밤나무, 끈기와 참을성으로 이겨내는 참나무, 부동액을 가져 추위를 잘 이겨내는 가문비나무, 뿌리에 통풍관이 있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오리나무, 오일로 전신을 적신 조직과 항암과 항균효과를 가진 베툴린을 가진 자작나무 등을 소개한다.
오랜 세월 지구를 지켜온 숲, 그 숲을 벌목하고 인위적으로 조성하면서 오히려 많은 문제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오히려 늙은 나무들이 생산력이 더 뛰어나며 기후변화에 대적하는 능력이 출중하다고 한다.
동물권과 관련해서는 예전과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사육되고, 도축과정 또한 고통이 적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린 의도적으로 식물들에 대해서는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나무를 심으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 그렇지만 단일품종이나 혹은 기타 사유로 우리가 선호하는 품종들로만 심어진 숲과 가로수는 오히려 악영향을 줄 뿐이다. 가로수의 나무들을 작가는 버려진 아이들이라고 표현한다. 부모도 없이 낯선 땅에서 뿌리조차 제대로 뻗지 못하고, 각종 더러운 공해 속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생명을 이어가다 결국은 여러 가지 사유로 다시 뽑히거나 혹은 줄기들을 가혹하게 잘린다. 나무들도 어른 나무들 사이에서 어느 때 언제 어떻게 자라야 할지를 배우며, 그리고 넓은 땅 공기가 숨어있는 그 보드라운 흙위로 뿌리들을 뻗으며 그렇게 자라야 한다. 나무들 또한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 필요한 곳에 좀 더 신중한 결정을 통해 쓰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숲, 제대로 환경에 맞게 ,그리고 나무들에게도 적절한 환경의 숲이 되도록 조금 더 배우고 애써야 한다. 나무의 권리, 식물권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책,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 더 즐겁게 읽은 책이다.
우리도 결국엔 자연의 일부고 신체 구조상 다른 종의 유기물을 이용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런 필연성은 모든 동물과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점이다. 문제는 다만우리가 숲 생태계를 필요 이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동물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나무에게서도 불필요한 고통을 덜어줄 수는 없는지 하는 것이다. 나무에게도 나무에게 맞는 삶을허용한다면 동물을 이용하듯 나무를 이용하는 것 역시 별문제가 안 될 것이다. 나무에게 맞는 삶이란, 나무가 사회적 욕구를실현할 수 있고, 완벽한 흙을 갖춘 진짜 숲에서 성장할 수 있으며, 쌓은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일부나마 존엄하게 늙어 갈 수 있고 마침내 자연사를 할 수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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