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홋타 요시에 지음, 박현덕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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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조금 특별하다. 난징대학살에 대해 일본인 작가가 중국인의 목소리를 빌려 쓰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숫자는 관념을 지워버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끔찍한 고통도 상처도 뭉뚱그려 전쟁의 참상으로 치부하고 만다. 그런 숫자들은 모호하며, 각 개인이 아픔을 어루만질 수도 없다. 그 아픔을 느낄 수도 없고 그저 시늉뿐인 애도를 하게 만든다.

전쟁이 아닌 학살, 정당성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도 말이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반성조차 없이 지우려 한다.

왜곡된 과거로는 현재의 삶을 제대로 밟고 설 수 없다. 현재의 삶이 거짓이면, 미래의 삶도 거짓일 뿐이다.

악몽같고 핏빛같던 현실같지 않던 그 시간들을 인정하고 왜 누가 도대체 그런 일들을 했는지 인정하며 사과하는 것이 바로 그 시간을 다시 제대로 흘러가게 하는 일이다.

그 시간들은 우긴다고 해서 지운다고 해서 사라질 시간들이 아니다.

핏물이 복사뼈까지 차올랐다는 난징의 그 시간들, 수많은 여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해 치욕과 고통이 절벽까지 쌓였다는 그 시간들은 존재했다. 가해자들만이 지운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예전의 일본은 침묵하고 삐죽거렸고 자신들도 아픈 척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을 겪었던 이들의 양심선언과 참회들도 공존했다. 대표적인 책이 바로 이 <시간>이 아닐까.

주인공은 중국인이지만 작가는 일본작가 훗타 요시에다. 시간이 지나자 일본은 피해자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뻔뻔스럽게 그 고통의 시간들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집단최면에라도 걸린 듯 없는 일인냥 교과서를 바꾸고 역사를 지우고.

양심과 진실이 사라진 일본의 역사를 배운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해자들을 거짓이라 몰아세운다.



나름 지식인이라는 대학교수 출신의 기리노대위는 사실상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이로 나온다. 항상 우울하다고 말하지만, 난징의 그 거리에서 우울의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우울한 승리? 그들은 기를 쓰며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거나, 혹은 중국의 민족성 등을 탓하며 피해자들이 그런 꼴을 당 할만 했다고 한다.



난징이 함락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이 일기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국정부의 부정과 난징의 끔찍했던 날들, 그리고 참혹함을 보여준다. 살아남은 사촌여동생 양양은 강간으로 인해 매독 및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몇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한다. 그렇지만 의대생이었던 칼갈이 청년, 그리고 자신이 상처받은 곳에서 다시 한 번 일어나보겠다는 양양의 모습을 보이며 끝을 맺는다.

예전 난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단체행동은 면죄부를 받는가 오히려 소수의 정의는 단체의 정의 앞엔 아무 의미가 없는가 등 토할 것같은 환멸을 느꼈다. 끔찍을 넘어선 비현실적인 상황에 무덤덤해졌던 기억, 오히려 멍해지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일본은 난징대학살에 대해서 과장되었다거나 혹은 그런 일은 없었다는 둥 온갖 증거앞에서도 침묵한다.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고치고 지운 역사를 배우며 자랑스러워하고 오히려 타국의 비난에 오히려 그들은 더 뻔뻔해지고 당당하다.



머리가 텅 빈 듯, 환상을 본 듯 현실감각조차 느끼지 못하게 헛깨비처럼 펼쳐지는 온갖 악몽들이, 그러나 현실이다.

(아래 그림은 주인공이 언급한 쿠르베가 그린 보들레르의 초상화다. )

그래도 만약 저게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원래의 하얀색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만이 되돌아올 수 없다. 인간만이 돌이킬 수 없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동물에게도 어쩌면 "아뿔싸하는 감정 내지는 두려움이 있을지도모른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고 하는 평가적인 판단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온갖 행위가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역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 눈앞에서 무너져내렸다. 위스키 병에손을 뻗는다. 집사로서 내가 서빙을 하려고 한다. 그는 주인이라는 것에 견디지 못한다. 뭔가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낀다. 교수임을 견디지 못하고, 장교임을 견디지 못하고, 고독함을 견디지 못한다. 흠칫하며 뒤로 빠지려고 한다. 그래서 구석에 몰리면 폭발한다. 이것이 위험한 것이다. 도망과 폭발, 이것이 난징 폭행의 잠재적 이유였던 게 아닐까? 지금 중국에서 그는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당연한 것조차 괴로워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국 침략이란 심리적으로는 일본 탈출의꿈을 실현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어디에 있더라도 일본인임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나약하고, 허둥지둥 우왕좌왕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 논리를 따르자면 일본군의 폭력을 야기한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런 말을 하면서 그들이 짓는 일종의 이상한 만족감에 찬 표정을 보라. 그들은 최악인 것만 믿고, 이성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결코 믿지 않는다. 이런 숙명론자가 민중 속에서 끊이지 않고 생겨나는 이상, 전쟁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 어떤 평화도 결코 평화가 아니다. 그들은 전쟁이 일어나고 이어서 최악의 사태가 생기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만족하고 행복해지기조차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나약함에 의지해서 감동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전쟁은 숙명론적인 감정을 가장 깊게 만족시킨다.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소극적인 의미보다도, 오히려노예적인 숙명론과 파괴적인 인생관에 굴종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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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4-27 17: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피해자의 입장에서 난징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엔딩의 비극은 참...

새파랑 2021-04-27 18: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반성하고 사과하는게 그렇게 힘든건지 참~~ 일본작가가 쓴 중국인 주인공이란 구성이 특이하네요. 근데 이미 보관함에 들어가 있네요 ㅎㅎ

mini74 2021-04-27 18:14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 보관함은 혹 도라에몽 주머니? ㅎㅎ그리 길지 않은데 참 좋았습니다 ~

scott 2021-04-27 20: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홋타 요시에게 중국 국민당 중앙 선전부에서 그중 언론 통제 핵심부서에 있었어요(중국 공산당 간부들 회유 포섭하는 일종의 첩보원) 그런데도 불구 하고 잔혹한 살육의 현장의 목격자로 그시기를 기록한 양심적인 일본인이였죠.
이분의 책들이 줄줄이 품절이고 더이상 번역되지 않아서 안타까울뿐입니다

mini74 2021-04-30 23:12   좋아요 1 | URL
첩보원이었다니. 아. 새로운 사실을 알고 갑니다 *^^*

붕붕툐툐 2021-04-27 22: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 설정 특이하네요! 저도 살포시 담습니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드 폰 울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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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레벤스보른이란 독일의 작전에 의해 부모와 떨어져 독일 양부모와 살아야 했던, 사실은 유고슬라비아인 잉그리트 폰 윌하펜이자 에리카 마트코이기도 한 이의 이야기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사랑을 갈구하지만, 뭔가 벽이 있음을 느낀다. 어머니는 자신을 보육원에 맡겼고 제대로 보살피지도 사랑을 주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엄격했고,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남동생 또한 어느 날 친부모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무슨 일이 내게 벌어진 걸까. 내 부모 내 뿌리는 뭐지란 의문에서 시작된 그녀의 여정은, 결국 독일의 만행으로 시작된다.

위대한 아리아인을 표방한 인종정리를 위해, 그들은 유대인 및 혼혈, 장애인 등 수많은 이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아리아인의 표본에 맞는 아이들을 수많은 부모에게서 빼앗아, 그들이 믿는 순수 아리아혈통에 강제입양시켰다. 그 표본에 맞지 않을 시는 가차 없이 죽이거나 노예로 썼으며, 전쟁 후엔 이 사실을 숨기려 했다.

뿌리 없는 삶은 흔들리게 되어 있다. 특히 연약한 아이들에게 뿌리 없는 삶은 가혹하다. 다른 곳에 옮겨 심어도 그들은 자라기가 쉽지 않고, 언제나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이 그랬다. 그들은 잔혹하게 부모에게서 납치되어, 모국어를 버리게 했고 정체성을 잔인하게 벗겨냈다. 훌륭하고 쓸모 있는 독일인의 도구가 되어야 했다. 훌륭한 독일군인의 사생아들이 태어나는 것 또한 그들은 장려했다. 그렇지만 장애가 있거나 하면 여지없이 독가스행이었다. 그들에게 아이들은 그저 도구였고, 필요에 의해선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무생물 같은 존재였다. 그나마 다행히 좋은 부모를 만나 어릴 적부터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고 살아왔다면 충격이 덜 하겠지만, 좋지 못한 부모를 만나 상처 속에서 자란다면? 그들의 삶은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실제 부모에게서 납치되어, 굶주림과 두려움 속에 기차에 짐처럼 실린 체,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코 길이를 재고, 몸을 찌르고 눈 색깔을 확인해야 된다면?

지독한 농담 같지만 실제로 그런 일들이 행해졌고 시행되었고, 수많은 레벤스보른 아이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여전히 상처입은 마음으로 치유되지 못한 삶 속에서 뿌리를 찾으려 한다. 뿌리라도 찾으면 이 허망하고 쓸쓸한 마음이, 상처가 외로움이 치유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주인공은 슬로베니아의 가족을 찾는다. 그리고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생명의 샘이란 이름대신 “레벤소보른”즉 생명의 흔적이란 단체를 만들어 교류하고 위로한다.

노르웨이는 특히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이 많았다. 전형적인 위대한 아리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노르웨이에서 적국의 아이로, 치명과 오욕의 아이로 버림받았다. 모두 독일로 보내려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보육원이나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었다.

강제로 뿌리가 뽑힌 체, 낯선 환경에서 자란 그들, 작가는 정작 나치가 그렇게 집착하던 피라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저는 평생 제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습니다. 제가 진짜 누구인지, 정말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했지요. 그것은 제 안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늘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최근까지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죠. 하지만 이제 저는 인종 검사를 해서 사람을 선별하고, 국가가 조직적으로 아이들을 훔친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걸 세상이 잊지 않도록 모든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비로 고통스럽더라도 말입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니까요.”>



<“양육이 모든 것을 형성하지는 않지만, 양육은 언제나 본성을 이길 길을 찾는다.”우리가 태생의 조건의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우리가 내리는 선택으로 정의된다는 근본적인 진실을 보지 못했다.>



외로움과 힘듦 속에 작가는 가족을 가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물리치료사가 되어 아픈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며, 자신을 찾았다.



<나는 한때 유고슬라비아 출신 에리카 마트코였고, 독일인 일그리트 폰 윌하펜이었다. 둘 다 나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잉그리트 마트코 폰 윌하펜이다. 그게 항상 나였다.>

나는 평생 내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버림 받았다는 느낌, 무력하다는 느낌이 차올라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그 감정을 깊이 묻어두려 했다. 이 사진들 앞에서 내 감정을 감추고 있던 보호막이 벗겨졌다. 나는 다시 에리카 마트코가 되었다.
1 사

단연코 뿌리뽑힘은 인간 사회가 경험하는 가장 위험한 병폐다.
뿌리뽑힌 사람은 누구든 다른 사람의 뿌리를 뽑는다. 뿌리내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뿌리를 뽑지 않는다. 어쩌면 뿌리내림은 가장 중요하면서 간과되는 인간 영혼의 욕구이다.
이 인용문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활동가 시몬 베유의 글이다. 그녀는 1930년대 초 독일에서 파시즘과 싸웠고 나중에 스페인 내전에서는 공화국 편에서 싸웠다. 1943년 그녀는 《뿌리내림》이라는 책을 써서 서구 사회를 약화시키는 사회적·문화적·정신적 문제를 들여다봤다. 우리가 선택한 이 인용문은 우리 삶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요약한 것이었다.

1. 인종적 유전적으로 소중한 대가족을 지원한다
2.인종과 정착 본부가 가족과 아이의 아버지를 신중히 조사한뒤 인종적 유전적으로 소중한 아이를 출산하리라 기대되는,
인종적·유전적으로 소중한 임산부를 수용하고 돌본다.
3.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돌본다.
4.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을 돌본다.
전쟁 중에 태어나 히틀러의 뒤틀린 환상이 남긴 유산을 감당하려애쓰는 나라에서 평생을 보낸 독일인인 내게도 정신 나간 소리로 들렸다. 이런 해괴한 미친 짓을 가리키는 독일어가 있다. 운글라우블리히(unglaublich),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사람의 인종적·유전적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해괴한 생각이 어떻게현실화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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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4-26 21: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댓글 수정하다가 삭제되어서 다시 씁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믿기도 어렵지만, 그 시기를 겪은 생존자에게는 큰 상처일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일생을 보상할만한 것도 없을 것 같고요. 이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할 거예요.
잘 읽었습니다.
mini74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mini74 2021-04-26 21:16   좋아요 5 | URL
네~ 작가님이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를 인정해 나가는 모습이 너무 힘겹고 안타까웠어요. 너무나 어리석고 끔찍한 일 다신 없어야지요.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

scott 2021-04-26 21: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우ㅜ.ㅜ
머리크기 재면서 인종 검사를 ,,,,,
유대인 혼혈,장애인,,,
**정리**말살**청소

[뿌리뽑힌 사람은 누구든 다른 사람의 뿌리를 뽑는다. 뿌리내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뿌리를 뽑지 않는다. ],

이런끔찍함 여전히 진행중 ㅠ.ㅠ

han22598 2021-04-27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로 다름을 그대로 두지 않고 다름에 대한 가치판단이 개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가해자,피해자 우리의 삶은 모두 피폐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꼭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리뷰 감사해요 ^^

레삭매냐 2021-04-27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래 레벤스보른의 출발점은 순수한
아리아인의 육성이었는데, 나중에
가서는 하도 다급하다 보니 점령지
에서 아리안족이 아닌 슬라브족까지
도 유사과학이 정한 규정에 맞으면
납치하는 비극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슬로베니아 사람으로 출발해서 결국
독일인이 된 저자의 기구한 운명이
안타까웠습니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윌 슈발브 지음, 전행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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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동 난민등을 위해 평생을 노력했고, 제 1세대 여성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려 노력했던( 멋지게 그 일을 해낸)메리앤의 이야기를 아들인 윌이 쓴 책이다. 어머니의 일대기라기보단 아들과 어머니가 책을 공유하며 같이 추억하고 공감하는 일들, 그리고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는 다양한 역할을 하는 책이다.
평생 책을 읽으며 책에 둘러싸여 책의 힘을 믿으며 살았고, 그 밑에서 역시 책을 사랑하고 위안받으며 커 온 아이들의 이야기다
또한 그저 책을 읽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해 깨달음에 대해 실천하는 삶을 산 것이 바로 저자의 어머님이 보여주신 감동의 힘이다.
누구의 말과 글이건 존중하며 명랑하게 살아가기를 바랐고, 미소 지어주는 사람으로 들어주고 도와 주는 사람으로 그리고 깨어있으려 늘 노력한 어머니의 모습은 존경심을 갖게 한다.
책 속에 소개된 책들을 보며 도서목록을 작성하는 것도 , 아들과 어머니가 주고받는 감상평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 암판정을 받은 후 엄마와 아들은 서로의 책을 공유하며 둘만의 북클럽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앞으로 엄마없이 크리스마스와 조카들의 졸업식과 가족 여행 등을 보내야함에 오열하기도 한다.

그러다 나는 엄마와 어떤 책을 공유하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엄마는 신데렐라도 백설공주도 모르셨다. 대신 호랑이와 곶감이니 혹은 팥죽과 호랑이 이야기 등을 해주셨다. 조금 더 커선 엄마의 가계부에서 김소월의 시 한 편을 발견하기도 했다. 내가 본 엄마의 모습은 언제나 일하는 모습이었다. 오남매와 할머니, 줄줄이 시집보낸 고모들의 혼수품 만들기,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던 언니들과 오빠의 입시, 엄청난 제사들과 명절들. 그래서 난 언제나 엄마의 뒷모습을 더 많이 봤던 것 같다. 대신 아버지는 야근으로 지친 밤에도 무언가를 읽는 걸 좋아하셨다. 쓰고 읽고 스크랩하시길 좋아한 아버지를 나는 많이 닮았다. 작가는 엄마의 책읽어주는 소리와 같이 책을 읽으며 유년을 보냈다. 나는 마늘이든 멸치든 감자든 한 박스 가득 담아놓고 손질하던 엄마옆에서 뒹굴며 책을 읽으며 컸다. 작가는 앞으로도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엄마를 기억할 것이다. 공유했던 책들과 기억, 그 외에도 수많은 행복으로 기억하겠지.
우리 엄마는 음.
작가의 엄마는 무슨 책을 읽었니? 라고 묻지만
우리 엄마는 “밥은?”
매번 혹여 굶을까 묻고 또 물으시는 밥은? 은 우리엄마의 노랫가락이고 한 편의 시다. 너무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은 엄마의 대하서사시가 담긴 짧은 한 마디 “밥은?”
이젠 서로가 묻는 말
“ 엄마 밥은?”
“무따. 니는?”


이 책의 부작용! 장바구니에 책이 담깁니다. 다행인점은?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지 않은 책이 좀 있다는 거 ㅎ)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거야. 때로 우리는자신이 존중하고 지지하기로 선택한 대상을 통해서도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먹기도 해. 나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재주는없지만, 다른 사람이 창조해낸 아름답고 도전적인 것을 통해 참으로 큰기쁨을 누려왔어. 그런 특권을 무엇과도 바꾸지는 않을 거다."

우리는 어머니가 쏟아붓게 될 그 엄청난 사랑에 흠뻑 젖어 살아가는손주들을 바라보는 기쁨에도 안녕을 고해야 한다. 세상에는 부모님만큼이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아이들의 모습에도 작별을 고해야 한다. 그들의 온갖 기벽마저 사랑스러워 어쩔 줄모르고,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생명체라고 여기게 될 사람이 바로 할머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아이들의 모습에도 안녕을 고해야한다. 그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참으로 이상적인 모습이었지만, 내가 속으로만 생각하는 모습이었고, 형이나 동생,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직 마음속에만 묻어두고 있는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읽을거리가 있고,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많은 일거리가 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에게서 배운 한 가지를 여전히 기억한다. 읽기는 실천하기의 반대말이 아니란다. 그건 죽음의 반대말이야. 앞으로 나는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고는결코 당신이 좋아하던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물려주거나 추천할 때, 나는 당신의 일부가 그들에게 전달된다.
는 사실을 알게 될 테고, 어머니의 일부가 그 독자 안에서 살아간다는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머니가 사랑했던 방식을사랑하도록 영감을 얻어, 그들만의 방식으로 당신이 세상을 위해 했던일을 해나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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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5 21:0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우와 엄마와 딸이 아닌
아들과 엄마가 함께 책을 공유 하며 둘만의 북클럽을~
넘 멋짐
한편으론 이책 마지막장 넘기기 힘들것 같네요 ㅠ.ㅠ
[나는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고는 결코 당신이 좋아하던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일부가 그 독자 안에서 살아간다는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

신델렐라 백설공주 넘 ㅎ 잔혹 스토리 ㅎㅎ
역쉬 한국 엄니들은
책보다 밥!

mini74 2021-04-25 21:22   좋아요 4 | URL
어릴 적엔 아이랑 책이야기 많이 했는데 ㅠㅠ 저도 지금은 매번 밥은? 하고 묻게 됩니다 ㅠㅠ

새파랑 2021-04-25 21:1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멋진 어머니와 아들 이네요. 실천하는 삶이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리스트인지 궁금하네요.
근데 책보다 밥이 더 정감이 가긴 하네요 ^^
‘누구나 시 한편은 가슴에 품고 산다‘는 문장이 생각나는 글입니다 ㅎㅎ

mini74 2021-04-25 21:21   좋아요 4 | URL
안전함을 향하여, 사마라에서의 약속, 마저리모닝스타, 호빗, 비움에 대한 일흔 가지 시가,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 피플 오브 더 북,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도마뱀 우리, 브렛 파리, 대륙의 이동, 인생의 베일, 대성당의 살인, 마음, 상실, 소금가격, 망설이눈 근본주의자 , 올리브 키터리지, 우리 같은 여성들, 프랑스 조곡, 망고 한 조각, 고슴도치의 우아함,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브루클린, 내 아버지의 눈물, 너무 큰 행복. 등입니다. ㅎㅎ 낯선 책도 있고 읽은 책도 읽고, 아쉽게도 번역이 언 된 책들이 많네요 ㅠㅠ

새파랑 2021-04-25 21:31   좋아요 4 | URL
이렇게 다 써주시다니. 죄송합니다 ㅜㅜ 기회가 되면 찾아봐야 겠네요~ 감사합니다~!!

scott 2021-04-26 00:01   좋아요 2 | URL
우와 이리스트 넘ㅎ 좋습니다.
-비움에 대한 일흔 가지 시가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
-피플 오브 더 북
- 인생의 베일
-올리브 키터리지
-프랑스 조곡
- 고슴도치의 우아함
- 브루클린
- 내 아버지의 눈물
-너무 큰 행복

전부 사랑-상실-이별-슬픔에 관한 책이네요.
감명깊게 읽은책 나혼자만 읽고 어느 누구하고도 공유 안했는데 ㅎㅎ

미니님 이렇게 리스트 쫘악 써주시공 쵝오!!👍👍

페넬로페 2021-04-25 22: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와 엄마와는 공유할 수 있는게 밥과 건강뿐인것 같아 좀 안타까운데 나중에 딸아이와는 여러가지 다양한 것들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어요^^
북클럽도 하고 싶고요^^
적어주신 책들, 감사해요.
검색해봐야겠어요~~

붕붕툐툐 2021-04-25 22:25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은 이미 따님과 다양한 얘기 잘 나누시는 거 같아요! 부럽부럽! 신기하게 페넬로페님 얼굴이 바뀌고 글이 더 우아해지신 듯 합니다!ㅎㅎ

mini74 2021-04-25 22:34   좋아요 4 | URL
친구 중 하나는 딸과 교환일기? 보단 교환낙서? 서로 그 날 해주고 싶은 말을 번갈아가며 한 줄씩 적더라고요. 카톡이나 문자보다 재미있다면서 딸아이가 좋아한다고 ㅠㅠ 이럴땐 친구가 쪼매 부럽습니다. 페넬로페님도 따님과 알콩달콩하실거 같은데요 ㅎㅎ*^^*

붕붕툐툐 2021-04-25 22: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들이 어머니를 추모하며 글을 쓰다니 정말 대단해요! 게다가 책을 함께 읽은 내용이라니! 놀랍네요~ 저는 나중에 엄마가 밥해준 얘기를 글로 써볼까 싶네요. 저희 어머니도 밥 하면 어디서 안 빠지시는 분이라~ㅎㅎㅎㅎ

mini74 2021-04-25 22:36   좋아요 3 | URL
어릴 적엔 엄마 밥 이야기좀 그만! 했는데 크고 보니 그 말에 건강하냐 사랑한다 학교생활은? 온갖 질문과 사랑의 다른 말 이더라고요. 지금은 무슨 반찬으로 먹었는지 아주 자세하게 말씀드립니다 ㅎㅎ 툐툐님의 밥 이야기 기대됩니다 ~ 좋은 밤 보내세요

미미 2021-04-25 22: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리뷰를 읽을 땐 종종 가족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서 제 마음도 따뜻해지곤해요~♡ 그런 미니님 다운 책 선택이네요. 저도 이 책 찜!😊 참고로 저희 엄만 ˝밥은?& 0 0가 몸에 그렇게 좋대˝ㅋㅋ굿밤 되세요!

mini74 2021-04-25 22:37   좋아요 3 | URL
맞아요 ㅎㅎ -미미님도 포근한 밤 보내세요 ~

라로 2021-04-25 22: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어머님과 아버님에 대한 글 너무 좋아요!!!! 그래서 미니님이 이렇게 책을 많이 읽으시는 군요~~!!^^ 그나저나 미니님은 이미 아드님과 둘 만의 북클럽 하고 계신 거 아니에요???^^;;

mini74 2021-04-25 23:01   좋아요 2 | URL
대학 간 후로 까막눈이 될까봐 걱정입니다 ㅎㅎ

mini74 2021-04-25 2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학 간 후로 까막눈이 될까봐 걱정입니다 ㅎㅎ 좋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라로님 이야기 넘 좋아요. 팬입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1-04-25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딸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 밥은? 저녁에 뭐 먹고 싶냐?
아 우리 집의 삶엔 왜 책 이야기가 없고, 밥 얘기만 그득할까요? ㅠ.ㅠ
저도 죽을 때쯤 되면 우리 딸들이 엄마랑 책 얘기 해줄까요?

psyche 2021-04-28 0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에 딸이 아시안 어메리칸 아이들이 쓴 글을 보여줬는데요.
거기도 나와요. 한국 엄마가 제일 먼저 하는 말. 밥 먹었니? 그러고 보니 저도 그렇더라고요. ㅎㅎㅎ
 

곧 있으면 어린이날이 다가옵니다. 뭐 이젠 어린이가 없어서 딱히 선물을 살 일도 이벤트를 준비할 일도 없지만. 아이에게 행복했던 기억들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꽤나 많은 일들을 이야기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소소하다 생각했던 일, 바로 온 가족이 밤 새며 영화를 본 일이었습니다. 특히 특별한 명절이나 공휴일이면 언제나 영화채널에서 틀어 주던 반지의 제왕, 나 홀로 집에,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 특히 해리포터를 밤새며 봤던 그 어느 해 겨울, 치킨을 뜯으며 봤던 그 기억이 참 행복했다고 합니다. 행복했던 건 치킨의 고소함이었을까요 해리 포터의 신나는 모험이었을까요.아이들 책은 제게도 많은 감동을 줍니다. 환상의 세계 속에서 즐겁기도 하고, 그 속에 담긴 아이들의 아픈 경험이나 학대 등에 대해서는 반면교사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영화도 보고, 그 영화의 원작을 찾아 서점을 찾아 보는건 어떨까요, 원작을 같이 읽고 영화도 같이 보며, 책과 어떤 점이 다른지 찾는 것도 재미랍니다.1.메리 포핀즈(책도 좋고, 줄리 앤드류스의 1964년작 영화도 좋아요, 새로 나온 에밀리 블런트(시카리오에 나온 멋진 언니)의 메리 포핀즈도 좋아요.2.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책도 기이하고 (좀 무서운 사진들이 있어요. 보고 나면 무섭다기보다 정이 막 갑니다.)3.로얄드 달 소설 원작의 마틸다,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책은 슈퍼복숭아)4.플립~말이 필요 없이 너무 설레고 귀염뽀짝한 영화, 누구에게나 무지개 같은 사랑이 찾아올까요?5.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안녕 헤이즐)6. 빨강 머리 앤(일본 후지티비의 앤도 캐나다 드라마의 에이미베스 맥널티도 좋아요) 키다리 아저씨 , 작은 아씨들(제게 조는 위노나 라이더랍니다.)7.해리 포터 전편!8. 크리스 반 알스버그 그림책이 원작인 쥬만지(로빈 윌리엄스가 나오는 쥬만지!입니다.)4월을 잘 떠나보내고, 즐겁고 더 행복한 5월 맞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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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4 12: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크리스 반 알스버그 그림책! 그 이상의 아트북 미스 페레그린 시리즈 은근 중독적이에요 !플립 , 안녕 헤이즐 넘 ㅎ 좋아하는 영화들!미니님 꽉찬 페이퍼 치킨 만큼 고소!담백 ^ㅅ^

mini74 2021-04-24 14:11   좋아요 3 | URL
크리스 반 알스버그 그림책 진짜 예술이죠 ! 로빈 윌리엄스 나오는 쥬만지는 아이랑 저랑 몇 번을 봤는지 몰라요. 커스틴 던스턴? 맞나요 ㅎㅎ 어린 시절 모습도 볼 수 있고요 *^^*

미미 2021-04-24 14: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귀염뽀짝ㅋㅋㅋㅋ이 단어쓰는 미니님도 귀염뽀짝이예요! 플립 넘 좋아하는 영화~♡ 추천해주신 다른 영화도(아직못본 몇가지) 다 보고싶네요!ㅡ 어른이 미미가

mini74 2021-04-24 14:38   좋아요 2 | URL
어른이 미미님 ㅎㅎㅎㅎ 넘 재미있어요. 어른이 미미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얄라알라 2021-04-24 2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5월을 앞둔 주차에 참으로 친절한 포스팅입니다!! 고맙습니다

mini74 2021-04-24 21:46   좋아요 0 | URL
제가 더 고맙지요. 즐겁고 행복한 주말바 보내세요 *^^*

붕붕툐툐 2021-04-24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월의 끝을 잡고 있는 저에게 이제 손을 놔! 곧 5월이 된다구!를 알려주는 친절한 페이퍼~👍
5월에 읽어볼만한 풍성한 책 소개 넘 감사해용!!

mini74 2021-04-24 21:47   좋아요 1 | URL
4월이 놓은 손, 제가 살포시 잡음 안될까요 툐툐님 ㅎㅎ 항상 고맙습니다 ~~

붕붕툐툐 2021-04-25 00:07   좋아요 1 | URL
엄훠~ 미니님~ 이거 고백인가요? 완전 반함~😻💕😍😘
 

리딩아트를 꺼내들고 다시 천천히 읽는다.

책의 날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들 중 한권도 꺼낸다. 오늘은 이렇게 다시 읽어볼 참이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토마스 아퀴나스가 한 이 말을 매년 다이어리의 제일 뒷장 귀퉁이에 꼭 쓰곤 한다. 이건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책 속에 모든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읽는 이 책은 이 분야에서 혹은 이런 내용으론 처음 읽는 것이니 항상 조심 또 조심하자는 의미다. 그러니 여기서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오늘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지식백과에서 찾아보니. 책을 사는 이에게 꽃을 같이 선물하는 스페인의 세인트 조지의 날”,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작가의 사망일이 모두 423일인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이왕이면 태어난 날로 해 주지.

네이버는 내 개인의 생일조차 축하해주면서, 오늘은 조용하다. 네이버 메인에 책그림이라도 하나 띄워주면 좋을 텐데. 그만큼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서일까, 아니면 무심함?

 

예전엔 취미란에 독서라는 게 심심찮게 발견됐다. 그리고 문예반의 경쟁도 나름 치열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취미를 물으면? 음 게임, 틱톡, 넷플릭스 시청? 혹은 개인 방송 등 아주 다양하지만 책과는 거리가 멀다. 내 취미가 책읽기라고 하면 뭔가 고리타분하다던가 아 예~하곤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여기 북플이 정말 좋다. 여긴 맘껏 책자랑도 하고, 그러면 막 다들 정말 부러워해준다. 나 또한 부러워서 카드를 막 지르지만 비난보단 찬사를 받는 묘한 곳, 그래서 너무 좋다. 어릴 적 외국영화를 보면서 다락방을 참 갖고 싶었었다. 그 좁고 먼지투성이일 것 같은 다락방에 푹신한 이불이며 방석을 갖다 놓고, 마음대로 책을 읽으며 뒹굴뒹굴하고 싶었는데, 바로 여기가 내가 어릴 적 생각했던 다락방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물론 여기도 자본주의가 밑바탕에 깔린 곳이긴 하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영 그 쪽과는 소질 없는 이들이란 생각이 든다. 나 포함해서 크크. 기껏해야 책 사는데 보태라고 주는 포인트에 좋아하며, 몇 갑절의 책들을 사는걸 보면....반성해야 할까.

 

잠들기 전 누워서 책을 읽기도 하고, 가끔 멍 때리다가 햇살 좋은 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기도 한다. 책상에 정자세를 하고 책을 읽는 건 어색하다.

(쉬잔 발라동, 줄무늬 담요위의 누드   물론 저렇게 책을 읽진 않는다. 수족냉증으로 수면양말에 무릎 늘어난 체육복 차림이다.ㅎㅎ)  )

그러고 보면 책이 참 잘 읽혔던 건, 기차에서였다. 매번 타 도시로 일을 하러가면서, 가방에 넣어간 책을 꺼내 들면, 덜컹거림도 그 특유의 기차냄새도 잠시 잊게 된다. 그러다 눈을 들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삽화 같았다.

    

 (에드워드 호퍼,차량 293객실) 

1때 생긴 첫 조카들부터 내 아이까지 책선물도 많이 하고 참 많이 읽어 준 기억이 난다. 읽고 또 읽고, 그러다가 그림책 읽으며 같이 울고 웃고.....

 

    

 

나만 신난 걸까. 남편에게 오늘은 책의 날이라니까, 별 시답잖은 날도 있다는 듯 응 하곤 가버리고, 기간제 반백수인 나는 잠시 식탁에 앉았다. 아 그러고 보면 식탁에서도 꽤나 책을 읽었던 같다. 찜요리며 탕요리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불에 올려놓곤 식탁에 앉아, 끓어넘치나 감시하며 읽던 기억들. 결국 온전한 시간들보단 짬짬이 읽으며 보낸 시간, 엄마는 짬짬이 외로워서 쓸쓸해서 라디오를 듣고, 텔레비전의 흘러간 옛 드라마를 보신다고 했다. 언니는 아이들 다 외지로 보내고 쓸쓸한 마음에 산을 오르고, 또 다른 이는 사춘기 아이들을 처단하는 마음으로 힘껏 테니스공을 친다고 했다. 나는? 글자로 된 드라마를 보는 셈이다. 영사기? 스크린은 내 머릿속이다. 읽으며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나만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 셈, 그러니 가끔 요리를 태우곤 한다.

 

 

그러고보면 책덕후들의 역사는 오래된 것 같다. 불타오르는 책들 사이에서 몰래 몇 권을 숨겨, 담벼락에 숨겨두고, 혹은 타오르는 책들을 보면서

종이는 불타더라도 말들은 자유롭게 날아 오른다 ”(랍비 아키바) 고 했으니 말이다.

 

아, 고흐도 책을 정말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고 한다.

(고흐, 프랑스 소설책과 장미가 있는 정물)

 

책은 무해하지 않다. 책 때문에 상처받았음을 인식하는 사람이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T.S. 엘리엇

 

책은 가장 조용하고 가장 한결같은 친구이다. 또한 가장 다가가기 쉽고 가장 현명한 조언자이며, 가장 끈기 있는 선생이다.” 찰스 윌리엄 앨리엇

시간의 가장 소중한 존재, 영혼의 가장 강한 친구, 에밀리 디킨슨

그렇지만

책에 모든 걸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1온스의 사랑은 1파운드의 지식만큼 가치가 있다.” 존 웨슬리

 

그리고 북플 친구님들을 떠올리게 한 명언은

돈이 조금 있다면 나는 책을 산다. 그러고 나서 돈이 남았다면 음식과 웃을 산다.”

에라스뮈스 로테로다뮈스 (참고로 난 먹을 것부터 산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나는 언제나 일종의 도서관 같은 천국을 상상해왔다.” 호르헤 루이 보르헤스

    

(여기에 나오는 명언과 명화는 리딩아트 책에 수록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엄청나게 좋은 그림과 글들이 많아서 예뻐라 하는 책입니다. *^^*)

비가 올 듯 날은 흐리지만, 이런 날이 따뜻한 커피 한 잔, 혹은 막거리 홀짝 거리며 책 읽기 좋은 날씨지요. 다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기실 바랍니다.

앗 그리고 조심스럽게, 알라딘 관계자님 이런 날은 책도 막 무료로 팍팍 뿌려주시고 책 내용으로 제목 맞추기 뭐 이런 행사도 좀 해주셔야 되지 않나요. ㅎㅎ오늘은 알라딘 최고의 명절이지 싶은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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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23 12: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빼빼로 데이도 축하해 주면서 네이버 한테 좀 서운한데요?(부릅)
저도 천국에 어마어마한 도서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곳에 가면 고인이 된 작가들 다 책읽고 있고ㅋㅋㅋㅋ그림도 그렇고 미니님 이 페이지 넘 좋아요! 찜♡

mini74 2021-04-23 12:04   좋아요 4 | URL
솔직히 저는 천국보단 연옥에 작가님들이 더 많을거 같은 ㅎㅎ 무신론자들이 많더라고요 ㅎㅎ 미미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1-04-23 12:0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수족냉증 수면 양말에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ㅋㅋ 😂
맞아요 아무도 그렇게 책을 읽지는 않죠.
웃느라 자꾸 오타나요.

mini74 2021-04-23 12:05   좋아요 5 | URL
그죠. 참 불편한자세죠. 저 자세가 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

dollC 2021-04-23 12:0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고 보고 쟁이고 그러다 현타에 빠지고, 그러다 또 사고... 이런 패턴의 무한반복인데 mini님 글을 읽으니 기분이 상쾌해져요. 꾸물꾸물했던 하늘도 밝아지는 기분이에요. 결국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게 행복한 일이죠. 😃

mini74 2021-04-23 12:06   좋아요 6 | URL
맞아요. dollc님 정답 ㅎㅎ 기분 좋아지셨다니 제가 다 행복하네요. 행복하고 줄거운 하루 보내세요 *^^*

scott 2021-04-23 12:0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돈이 조금 있다면 나는 책을 산다. 그러고 나서 돈이 남았다면....짠돌이 알라딘이 오백냥 천냥 쥐어줄때까지 기다리고 또 책을 산다 ㅎㅎㅎㅎㅎㅎㅎㅎ].

미니님의 위트 넘치는 페이퍼!!

오늘은 책의 날
우리들의 날
(,,>᎑<,,)

mini74 2021-04-23 12:11   좋아요 4 | URL
짠돌이 알라딘 맞아요. 그리곤 치명적 굿즈로 유혹하죠 scott 님의 글도 북플을 못 떠나게 하는 치명적 유혹이죠 ㅎㅎ

bookholic 2021-04-23 13:0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책의 날을 공휴일로~~~~~~~^^

mini74 2021-04-23 14:08   좋아요 3 | URL
재청이요 ~ 입니다 *^^*

새파랑 2021-04-23 13: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최고의 명절이군요~ 서점에 가봐야 할것 같은 기분^^
전 ‘밥을 한끼 안먹으면 책을 한권 살수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ㅎㅎ 그러면서 커피는 마시고 술은 먹는다는 ㅋㅋ
(그림을 잘 모르지만, 에드워드 호퍼 그림 낯이 익어서 생각해보니 민음사 피츠제럴드 단편집 표지였던듯~!!)

mini74 2021-04-23 14:07   좋아요 4 | URL
앗 새파랑님 저는 술이요! 매번 2차까지 간다는 독한 마음으로 책을 사고 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1-04-23 14:18   좋아요 4 | URL
맥주와 콘칲을 앞에 두고 책 읽는걸 젤 좋아하는 1인 입니다^^
특히 어려운 책은 약간의 알딸딸이 필요해요**

페넬로페 2021-04-23 14: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참 너무 하네요~~
책의 날을 맞이하여 mini님의 완벽한 페이퍼에 200% 동감입니다^^
올려주신 그림 하나 퍼가요
그걸로 프로필 갑자기 바꾸고 싶네요♡♡

mini74 2021-04-23 14:25   좋아요 3 | URL
네~ 네이버 좀 글쵸 ㅎㅎ 전 콘칲 사러갈까 고민하다가 시험끝나고 온다는 아이에게 문자보냈습니다. 올때 콘칲 ㅎㅎ

Falstaff 2021-04-23 14:51   좋아요 5 | URL
페넬로페 님께서 다신 미미님 댓글에 힌트를 받아 아이디어가 반짝.
올해는 물 건너 갔고, 내년 책의 날을 위해 알라딘에서 말입죠,

알라딘 불플러들 가운데 글 잘 쓰시는 분들의 원고를 연말까지 받아서
투고 하신 건 고맙지만 원고료 극히 조금, 아주 조금, 대략 10만원 이하로 하고,
(왜냐하면 도서 정가제에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때문에)
그 양반들 원고를 추려 공동 단편집을 내서, 원가+세금+이윤 10%
책 찍어 남기자는 게 아니니까 말이죠,
이렇게 저렴하게 팔면 어떨까.... 싶기도 허구먼요. 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4-23 15:23   좋아요 4 | URL
폴스타프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여긴 재야에 묻히기에는 아까우신 글 잘 쓰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바람돌이 2021-04-23 15: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글 너무 좋아요. 저 고흐 그림 보면서 갖고 싶단 생각 해본 적 한번도 없는데 저 책그림은 진심으로 갖고 싶어요. 비 비싸겠죠? ㅠ.ㅠ
아 콘칲도 먹고 싶당.... 퇴근길에 사가야지...저는 오늘 저의 쌓여있는 책들에게 콘칲과 꽃다발 선물을 할까 잠시 고민합니다. ㅎㅎ

mini74 2021-04-23 18:53   좋아요 2 | URL
오늘은 대동단결. 콘칲과 맥주 *^^* 저도 고흐 저 그림 너무 갖고 싶더라고요. 어제 제가 새우깡만 안 샀어도 ㅠㅠ ㅎㅎ

붕붕툐툐 2021-04-23 1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딩 아트 정말 좋은 책이군요! 미니님의 책의 날 페이퍼 다 좋았는데 오늘이 정점이네요. 알라딘에는 불만이 좀 있지만, 북플에 계신 분들 덕에 행복하니, 이렇게 판을 깔아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네요~ 느낌 있는 그림과 명언들 당장 영접하러 가고 싶어요!!
저도 독서 복장은 늘 실내복과 수면양말~ㅋㅋㅋㅋㅋㅋ

mini74 2021-04-23 18:54   좋아요 3 | URL
그렇죠. 우리들 교복이죠. 실내복과 수면양말 *^^*

레삭매냐 2021-04-23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 모든 책쟁이들의 날, 완쉐이 ~

북다이제스터 2021-04-23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호퍼 그림이 젤 친숙한만큼 책 읽는 모습이 가장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