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대부분의 신화에선 흙, 나무 등이 인간의 재료다.
아프리카에서 내려오는 신화 중 하나는, 착한 신이 아주 예쁘게 인간을 만들었는데 나쁜 신이 질투가 나서, 착한 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침을 온통 뱉어놨다고 한다. 그래서 착한 신이 만들어놓은 인간을 양말속처럼 뒤집어야 했다고, 그래서 인간의 속은 보기 흉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성의껏 빚은 인간들은 뛰어난 인간이 되고, 그냥 넝쿨에 휘휘 진흙을 묻혀 휘돌려 만든 인간들은 그저 평범한 인간이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있다.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니 그 재료가 흙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옛 사람들의 상상력, 진짜 재미있지 않은가.
그럼 그런 인간을 만든 이들은 누구일까. 저 태양과 달을 떠오르게 하고, 세상만물을 빚어 놓은 이는 누구일까에서 시작된 신들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어릴 적 문방구에서 사 모은 괴수대백과 사전의 그 괴물들이 사실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괴수들임을, 혹은 산해경과 일본괴수관련 책들의 아류작임을 그때는 몰랐다.
네이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날개달린 모자가 하나 나온다. 그것은 바로 헤르메스의 모자이다.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는 도둑의 신이기도하며, 이정표를 나타내기도 하며, 또한 그 날렵함으로 지금 인터넷의 속도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쓰이는 것이다. 책 앞표지의 프롤로그를 보면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를 덥석 선물로 받은 에피메테우스가 떠오른다.
사실 중학교 때였나 처음으로 토마스볼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를 접했을땐 조금 난감했다.( 너무 오래된 책인지 나오지도 않는다. 출판사가 가물가물하다 )
왜 이것이 베스트셀러이며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인지, 오로지 내 눈엔 수많은 연애이야기와 끔직한 이야기들뿐. 그러나 조금 성장하고 나니 알게 되었다. 삶이란 비극이 더 강한 힘이 된다는 것을. 숱한 비극들을 책으로 읽으며, 결국 비극을 이기는 힘도 생긴다는 것을.
비극만 담긴 것은 아니다. 인류의 삶과 방향, 발전의 지혜도 들어있다.
인류는 호기심도 많았지만 두려움도 많았다. 두려움 속에서도 내일의 아침을 꿈꾸며, 두려운 밤을 맞이해야 한다. 내일은 어쩌면 태양이 뜨지 않을지도 모르고, 죽음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아니면 즐거운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런 불확실성속에 이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만들었다. 질서와 혼돈속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만든 것들이 신이다.
신은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불경하지 않은 이상.
신은 우리에게 보답할 것이다, 열심히 기도하는 동안은.
그렇게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그리스의 신들, 인간을 닮은 신들이다.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한은, 긴 항해와 전쟁 속에서도 살아날 수 있을 듯한 위약효과 같은 느낌이랄까. 반대로 인간들은 그런 신을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거나 권력을 유지하고, 혹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신의 욕심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부른 재앙임에도, 그들은 신을 들먹였다. 그들의 욕망과 비열함을 감추는 도구로 신이 이용된 것이다.
또한 인간들의 삶을 닮아, 질투하고, 미워하고, 또는 죄를 지어 속죄 받아야 하는 신들은 친근감과 인간중심의 생각을 반영한다.
그리스신화와 과학책은 시작은 같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대폭발이 일어나고, 신화 속에서는 카오스 속 게와 우라노스가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 그러고 보면 고대의 사람들의 생각은 닮아있다. 동양신화의 반고라는 거인도 북유럽의 이미르라는 거인도 모두 세상을 만든 존재들이다. 인간을 만들어 내는 모습도 꼭 같다. 매장 후 흙으로 돌아가는 시신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신들은 전쟁을 통해, 무기를 만들어 내고, 세상을 구분해 다스리고, 또 이치를 알려주었다. 인간들의 전쟁에 관심을 가지며 승패를 좌우하기도 했고, 수 많은 반신반인의 인간들을 만들어놓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영웅이 필요하고, 또 수많은 지도자들에겐 멋진 후광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신격화가 아닐까. 제우스가 정신없이 바쁘게 바람을 피워야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왕이 되고 백성들에게 더 많은 존경을 얻고자 부계의 핏줄을 제우스로 바꾸는 것은 흡사 우리 삼국시대 수많은 왕들이 신의 이름으로 알에서 태어난 것과 참 닮아있다. 지금으로 치면 신분세탁쯤이 아닐까. 혹은 모계사회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직 모신을 믿는 부족들이 정복되면서, 그들의 어머니신들은 제우스의 하룻밤 상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보통 그리스 신화 책을 펼치면 세상의 창조 후 첫 번째였던 티탄신들, 그리고 제우스의 형제들로 연결된다. 그리고 영웅들의 모험담과 트로이전쟁, 오딧세우스의 귀항까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다양한 괴물들도 나오는데, 대부분은 아마 자연의 경이로움과 낯선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과장들이 많다. 물론 아주 물살이 센 지협이나 복잡한 해안선과 낯선 동물들은 과도한 무서움에 기괴한 형태로 사람들을 홀리거나 착각하게 하는 괴물들도 나온다.
아직 바다도, 고향과 먼 땅도 낯설고 두렵기만한 인간들에게 세상이 만들어지고, 왜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지에 대한 고대인들의 물음에 대한 해답도 적절하게 쓰여져 있다. 그리스신화가 더 흥미있는것은 고대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지금의 우리네 모습과 그닥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수를 하고, 혹은 오만과 잘난 척으로 신에게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주제를 모르다가 벌을 받고, 고마움을 갚지않는 뻔뻔함에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변하기도 한다. 신도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수도 하고, 질투도 한다. 그런 신들의 모습이 더 친근하기도 하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옆에는 그리스신화가 있다.
화장품 이름에도 헤라가, 미국의 상징에는 제우스의 신물인 독수리가, 거기다 행성들은 모두 신들의 이름이자 위성들과 관련 있는 이름들이다. 영미문화권에서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풀 실마리를 발견하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된 여행에서 돌아온 이에겐 오딧세우스라고 놀리기도 한다. 문화와 언어, 그리고 삶 속에 우리도 모르게 그리스신화가 녹아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설명할 때, 그리스신화를 빗대 이야기하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힘든 일을 겪을 땐 신화 속 누군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철부지 같지만 꿈을 쫒는 순수한 젊은이에게서 이카루스를 떠올리듯 말이다. 수퍼맨 1탄에서 눈에서 레이더를 뿜어내는 적을, 자동차 미러로 무찌르는 모습을 보며 메두사를 무찌른 페르세우스가 생각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와 드라마는 어찌보면 그리스신화의 또 다른 변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과학이란 이유로 여러 가지 자연의 법칙을 알게 되어, 그리스 신 따윈 그저 이야기일뿐이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신화 속 사람들의 비극을 이겨내 삶의 진실을 깨닫는 모습은 여전하다. 자연과 삶에 경이로워하며 항상 감사하며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삶, 나그네에게 친절하고 신에게 먼저 감사하며 겸손을 배우는 삶을, 그리스 신화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건 아닐까.
그렇다면 동양의 신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 궁금증에서 찾아본 책이 바로 정재서 교수님의 동양신화책이다.
이들은 그리스신들보다 조금 더 신답다라고 해야하나.
연애도 실수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리고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주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신의 모습이다.
왜 제사상에는 복숭아가 올라가지 않는지.
왜 달을 보며 건강을 비는지, 제사라는 게 왜 생긴건지, 그리스신화보다 우리의 삶과 더 밀접한 모습의 근거를 보여준다.
인간들에게 불과 농사와 약초를 안겨준 염제 신농, 이미 이름과 모습에서 신농이 어떤 신인지 보여준다. 그는 소머리를 하고 손에는 이삭을 쥐고 있다. 또한 내장이 투명해서 풀들을 먹고 소화되는 모습을 보곤 약초와 독초를 가려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심하게 탈이 난 이후론 자편이란 채찍으로 풀을 두드려 그 효능을 분간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면 많은 신들이 나온다. 음악의 신, 불의 신, 바퀴의 신 등등, 그리고 소머리를 한 신농도 자리잡고 있다. 고분의 천장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고구려의 지구라트라 불리는 고분들엔 신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신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염제신농과 황제의 싸움에서 결국 신농은 패하게 된다. 그 후 치우천황이 복수를 위해 황제와 싸웠으나, 원래 신농편이었던 공공의 아들 구룡이 황제의 편에 싸우면서, 다시 한번 패배를 하고 물러나게 된다.
구룡은 그 공을 인정받아 후토란 관직을 얻게 되는데, 후토는 방위상 중앙과 흙을 관장한다. 우리나라의 사직단 또한 후토구룡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동양신화속 신들은 지역신으로, 신선으로, 혹은 국가적 신들로 받들었다. 유교에 의해서 그 기세가 꺾였지만, 유교 또한 그들을 자신의 제도권에 넣고자 했다.
지금도 절에 가면 가장 끄트머리에 칠성각에 신선을 모시는데, 이 또한 불교가 기존 토속신앙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각종 산과 강, 바다에도 모두 신이 산다. 그들은 산과 하천, 바다를 지키며, 임난 등 나라의 위급한 일이 있을 때 신이한 모습을 보이거나, 혹은 호랑이나 도인으로 분해 같이 싸워주기도 했다는 전설들이 내려온다.
동양신화도 마찬가지다. 농경을 중심으로 자연재해를 두려워하며 살아왔다. 이런 자연재해를 인격화하면서 그들에게 예를 갖추고 희망을 품었다. 약초를 캐고 사냥을 위해 산을 오를때면, 산신에게 이를 고하고 지켜주길 바랐으며, 바다로 강으로 물고기를 잡을때면 그 또한 바다와 강의 주인에게 고했다.
<만화로 배우는 조선왕실의 신화> 책은 이런 다양한 신들이 어떻게 유교사회로 편입되었는지, 또 민간신앙으로 남았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일단 복식들도 좋았고, 개그도 내 취향이었다.
먼저 사직단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주로 농사와 관련된 신농, 곡물의 신인 후직희기 그리고 흙과 관련된 후토구룡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예전 세종이 신하들과 모여 귀신의 존재에 대해 토론했다고 하는데, 유교에선 기가 모이는 귀, 기가 흩어지는 신 이라고 해서, 모든 자연현상을 귀신으로 봤다고 한다. 사람은 죽으면 혼은 위패에 깃들고 백은 무덤으로 가 흙이 되다고 생각했다.
유교에서 제사의 대상은 천신과 지기로 즉 하늘과 땅의 신은 사직에 모셔고, 인귀 중에 왕실의 인귀는 종묘에 모셨다.
영화 코코처럼 이들도 혼백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사라진다고 믿었다. 결국 유교의 제사는 혼이 사라지지 않게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혼이 종속되는 기간이 100년이라 생각해 4대 봉사를 하도록 한 것이라고.
왕들을 잊지않기 위해 위패를 모셨고, 그런 왕들에게 충성한 이들은 종묘옆에 공신당을 지어 같이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잠깐동안 공신당에 이완용이 있었다고!!
그리고 칠사당이라고 해서 일곱명의 신들을 제사지내는 곳도 있다. (수명의 신 사명, 출입의 신 사호, 부엌과 음식의 신 사조, 건물의 신 중류, 서울의 큰 문을 지키는 국문, 도로의 신 국행, 법과 형벌의 신 공려 )
그 외에도 명나라 만력제가 강력 추천해서 만들어진 관왕묘도 있다. 한때 유행했으나 지금은 민간신앙으로만 남아있다고 한다. 궁금한 점은 관우를 모시려면 일단 중국어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다.
선농단에서 지내는 농사의 신 염제 신농, 유일하게 왕비가 제사를 주관하는 선잠단에서의 양잠신 서릉에 대한 제사등을 소개한다.
( 예전 선농단에서 설렁탕이 나왔다는 내용의 수필을 본 적이 있다. 선농단에서 제사 지내던 소를 잡아 국을 끓여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래서 선농단에서 설렁탕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건 행주산성처럼 그저 이름이 비슷해 생겨난 이야기란 설이 더 유력하다고한다. 소격서에선 제사 지낸 소를 죽이지 않고 소격서에서 키웠는데 이는 살생을 금하는 고려의 풍습이 이어진거라고 한다 )
또한 단군, 환웅이 데리고 온 풍백, 우사, 운사 그리고 나중에 추가된 뇌우와 관련해서 기후에 대한 신들도 다룬다.
마을을 지키는 성황신, 산과 강을 지키는 산천신.
그리고 별자리에서 농사를 주관하는 영성과 수명을 주관하는 노인성, 그리고 말의 신 마조 등도 소개된다. 마조는 지금도 제주도에서 그 흔적이 남아 마조제를 연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건 국가에서 단체로 지내주는 여제, 주로 자손이 없거나 불의의 사고로 제 명을 다하지 못한 모든 원혼들을 위로하는 제사라고 한다.
초창기 신들의 싸움은 역사의 흐름과 발전과도 관계가 깊다. 유목민문화가 농경문화에 밀려 다른 지방으로 이동한다거나, 혹은 석기에서 청동기로, 부족에서 중앙집권으로 발전하면서 신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며 근본없는 조상보단, 하늘의 신을 아버지로 그리고 평범한 탄생을 기이하게 바꾸기도 한다. 왜 굳이 알에서 태어날까 했더니, 농사에서 중요한 태양을 닮은 모양에서 태어나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혹은 옛날 사람들은 새가 하늘과 땅 사이를 주관했다고, 그래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러니 새처럼 알에서 태어난 우리의 왕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구지가의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도 또한 그 지역의 대표자 후손이 태어나는데, 역아여서 머리부터 태어나길 기원하며 토템인 거북을 협박한 거라고, 하늘에서 붉은 줄에 감긴 상자가 내려오는 건 탯줄이라고 설명하는 책도 있다. 이런 걸 보면 신화는 어쩌면 조상들이 만든 수수께끼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