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 이야기꾼 구비구비 돌고돌아 하나의 이불이 완성되는 퀼트같은 소설 만약 이 분이 조선이 태어났다면 최고의 소설가에 전기수가 되지 않았을까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와 아내 페르미느 다사, 페르미느 다사를 쭈욱 사랑해 온 플로렌티노 아리사중간 중간 독립된 이야기인듯 생명력 넘치는 아리사의 이야기가 왜 난 더 매력적인지 *^^*페르미느 다사와 아리사가 칠십이 넘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쯤일까(선장이 다시 물었다.“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정답은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천박하지만 아름다운 키티와 그런 키티를 사랑하는 세균학자 월터, 가벼운 영혼을 가진 경박스런 속물 찰스 가 주인공들이다 키티와 찰스의 불륜에, 월터는 중국본토로 콜레라 관련 연구를 결정하고 키티 또한 어쩔수 없이 따라가게 된다그러나 불결하고 열악한 중국본토에서 만난 수녀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삶과 자신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죽은 건 개였어”남편이 죽으면서 한 말.사랑했기에 키티의 모든 것에 맞추려 했고 그래서 그녀의 부정에 그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지만, 정작 죽음을 맞이한 건 월터였다. 남편의 죽음으로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찰스랑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키티를 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어리둥절하다가도 어쩌면 본인이 찰스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였던 것일까하고 생각해 보다가도그저 키티는 이름처럼 나약하고 의지없는 존재였기에 스스로에게 구역질을 느끼면서도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의문을 갖게 한다. 1920년대중국의 모습이나 유럽인들의 행동양식등이 잘드러나있다그렇게 자라고 그렇게 키워졌으니 정말 키티의 말처럼“내탓이 아니에요” 일까?(과거는 끝났다. 죽은 자는 죽은 채로 묻어두자. 너무 무정한 걸까?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이 동정심과 인간애를 배웠기를 바랐다. 어떤 미래가 그녀의 몫으로 준비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것이 닥쳐오든 밝고 낙천적인 기백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자신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순애언니 중에서): 인혁당, 세월호, 베트남전 그리고 일본과 우리에 대한 이야기, 상실에 대한 이야기 나이가 들면서 미카엘라의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그림은 쓸모없음이 그 쓸모라고 한다. 인간은 낡아가며 조금씩 쓸모없어지며 그 삶과 닮은 그림 속에 위로받으며 사는 것이란 작가의 이야기가 와닿는다 그림이란 내게도 참 많은 위로이다.긴 말보단 한 번의 포옹이나 눈빛, 토닥여주는 손길이 더 큰 위로이듯 그저 무심한듯 캔버스에 그려진 그 색이 그 눈빛이 , 캔버스뒤에서 고분분투하는 작가의 모습이 위로가 된다토닥이며 괜찮다고 해 주는 숱한 색감과 사연과 이야기들 속에서 위로받기도 하고 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그림을 쓰는 사람도 모두 좋은 이야기를 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겐. 표지의 록웰그림도 좋았고, 카사밀라의 기둥에 힌트를 얻은 다스베이다도 좋았다. 책을 다 읽고나니, 수잔 발라동이 멍하니 바라보는 듯하던 어느 창가에서 위트릴로가 그린 눈 오는 풍경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