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장 인상적인 구절

1)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라는 것이다.(40)

2) 만약 당신이 나처럼 개개인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관대하게 이타적으로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본성으로부터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경고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다. 그러므로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쳐 보자(41)

3)태아는 우리 종에 속하므로 그것만으로 특혜와 특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리처드 라이더가 말하는 ‘종차별주의’의 윤리보다 확실한 논리적 근거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그러한 논리에는 진화 생물학적으로 적절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51)

4)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거리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 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 조정기로 바깥세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65)

5)우리는 생존 기계다.(68)

6)인간의 설계도는 46권이나 되며 이 수는 종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각 ‘권’을 염색체라고 부른다. 현미경으로 보면 염색체는 기다란 실처럼 보인다. 유전자는 그 실에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다. 어떤 유전자가 어디에서 끝나고 다음 유전자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 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으며 실제로 의미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설계도를 그린 건축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70)

7)유전자 풀은 유전자가 살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수프다. 옛날과 다른 점이라면 오늘날의 유전자는 언젠가는 죽을 생존 기계를 만들기 위하여 유전자 풀 내 동료 유전자들 집단과 협력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102)

8)만약 북극의 기후가 급변하여 아기 북극곰이 열대의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 태어난다면, 그 유전자의 예측은 빗나가고 그 유전자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117)

9)어떤 개체에게 가장 좋은 전략은 개체군 대부분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139)

10)사자가 사자를 잡아먹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겐 ESS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종끼리 서로 잡아먹는 전략은 앞에서 살펴본 매파의 전략과 같은 이유로 불안정하다. 또 보복의 위험도 너무 크다.(158)

11)개개의 부모 동물은 가족계획을 실행하는데 이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손의 출생률을 최적화하기 위해서이다. (216)

12)작고 어린 새끼는 어미가 분산 투자를 통해 손실으 줄이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230)

13)“자식은 속이는 행위를 할 것이다.”라는 표현의 진의는 자식에게 사기 행위를 하게 하는 경향을 가진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논의에서 인간의 윤리에 대한 교훈을 도출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식들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식들의 생물학적 본성에 이타주의가 심어져 있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243)

14)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323)

15)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335)

16)그들은 혈연의 관계를 넘어 피를 나눈 충성스러운 형제의 연분으로서 영속적인 끈을 형성한다. 흡혈박쥐는 기분 좋은 새로운 신화, 즉 서로 나누고 협력하는 신화의 선봉이 될 수 있다.(380)

17)유전자가 정말로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단백질 합성뿐이다.(391)

18)거세된 살찐 소처럼 되어 버린 게는 번식에 쓸 에너지와 자원을 자신의 생장에만 사용한다. 게는 번식을 포기하지만 기생 동물은 먹이가 풍부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는 ‘자신의 몸’바깥까지 팔을 뻗쳐서 다른 생물체의 표현형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395)

19)우주의 어떤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427)




2.독후감

처음 이 책의 앞부분을 읽었을 때는 많은 충격을 받았다. 결국 인간은 유전자를 위한 도구이며,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허상이었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하지만 결국 이 책을 덮으며 느낀 것은, 기회와 선택의 문제였고, 인간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란 책의 뜻은 인간이 이기적이란 말이 아니다. 유전가가 이기적인 것이다. 유전적 입장에서 개체의 생존가능성을 높이는 일을 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유전적 특성을 담고 태어난 인간들이 결국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살아남는 것이 가장 최선인 유전자의 특성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히말라야에 오르고 우주를 가고, 자신의 생존 확률 대신 모험과 발전을 택하는 것이다.

책 내용은 사실 충격적이다.

진화는 우연히 자연에 더 적합하고 더 잘 날아남았기에 선택되었으며, 인간의 의지도 그러한 의지가 살아남는데 더 유리해서 의지가 있는 쪽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에선 생식이 중요하기에 폐경기의 여성은 사실 자연에서 필요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이유는 늙은 유전자로 아이를 낳는 것보단, 젊은 딸이 낳은 손자를 키우는 것이 더 유리하기에 폐경이 온다는 것이다. 남성은 유전자를 남기는 정자를 만드는데 여성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싼 값에 많은 양을 만들 수 있기에 여자보다 더 오래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이 더 배우자 고르는데 까다로우며, 조신과 정숙함과 밀당을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더 안정적으로 출산과 양육을 도울 남성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구애과정을 통해 수컷이 성실한가를 판단하며, 수컷 또한 자신이 구애 중 다른 수컷의 아이를 가졌는지 확인과정을 거치는 것이 약혼이라고 한다. 여성의 난자는 비싸다. 그래서 여성의 선택이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여성이 가져야 할 책임이 사실 남성보다 훨씬 많기에 더 신중한 것이고, 남성은 여성에게 선택되거나 찾기가 어려워 여성들에게 많은 구애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들에게 구애하는 것보다, 여성이 남성에게 구애하는 것이 훨씬 성공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성들은 프리섹스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여성들은 수정 순간 다른 여성들에게 갈 수도 있기에, 거절을 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사회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동물들과 달리 왜 인간들 사이에서는 여성들이 꾸미는 것일까.

공작새 등 다양한 동물들은 모두 수컷들이 더 화려하다.

그 이유를 여성은 성실한 남성도 좋아하지만, 성적매력이 많은 남성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양육책임을 회피할 수도 있지만, 결국 여성은 바람둥이 아들을 낳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바람둥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은 교미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러면 유전전으로 확산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다.

유전적 입장에서 성은 오로지 생산을 위해서 존재하는데, 그럼 자위행위가 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도킨슨은 이러한 것에 대해 예전보다 수명이 더 길어지면서 오로지 번식만 하기에는 힘들어졌고, 피임 등의 기술에 대해 유전자가 아직 예측못해 적응 중이라는 것이다.

북극곰이 이때까지 추운 겨울에 적응했으나. 너무 빠른 지구온난화로 아직 유전자가 적응을 못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 폐경이 된 여인은 잉여이나, 딸이나 젊은 세대의 아이를 키워주는 것이 더 유리하고 생존 가능성도 높이기에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집단선택설을 부정한다.

레밍이 절벽에 뛰어드는 것을 이때까지 집단생존을 위해, 개체수를 줄이는 것이며 이런 모습을 인간에게 적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희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유전자는 프로그래머라고도 비유한다.

모든 답 주는게 아니지만, 정보를 통해 판단 결정은 개체가 하게금 한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들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속이는 게 유리하며, ESS도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라는 것이다. 평화와 호전적파인 비둘기파와 매파는 5:7이 가장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유전자의 근친관계에 대해서도 이 책은 형제양육과 자식양육이 유전적으로 같은 퍼센트인데 왜 자식을 우선하는 가에 대해 부모가 생존기술을 더 많이 갖고 있어 자녀를 돌보는데 더 안정적이라는 것이며, 또한 앞으로 잔여수명이 자녀들이 더 길고 생식가능성도 자녀가 더 높기에 형제보다 자녀가 유전적 위치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2명이고 한명을 살려야 할 때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번식가능성에 더 가까운 큰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의 이타성 또한 상대적으로 더 살 확률이 높기에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도킨슨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11장에서 밈이란 단어를 말하고 있다. 밈은 문화전달의 단위를 말한다. 사후세계나 다양한 문화적 공유방식에 대해 “밈”이란 단어를 만든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솔직히 너무 피곤했다.

내가 생각했던 인간의 우월성, 동물과는 차별된다는 생각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받았고, 또한 설득력도 있었다. 그럼 결국 내 삶은, 내가 생각하는 삶의 목표는 내 것인지 아니면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일까 도킨스는 12장에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의식적 판단도 진화일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전자가 이기적이라고 해서 개체도 이기적이진 않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심리학책에 꼭 등장하는 “죄수의 딜레마”가 등장한다.

여기서는 “반복 죄수의 딜레마”이다. 무한반복을 통해 선택을 하게 한다면 일단 믿어주고 협력한다는 것이다.

기회에 제한이 있다면 서로 배신하며 원수가 된다. 제로섬이 아니라 논제로섬이 된다면 기회가 무한한 것이고, 그렇다면 협력하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그렇다.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이기적으로 살아가며 생존의 확률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그런 유전자로 만들어진 인간은 의식적 판단을 통해, 다양한 기회를 통해 협력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킨슨은 기회가 결국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회가 1번뿐인 사회는 불안하고 두렵다. 사람들은 한 번의 기회만을 가지기에, 언제든 배신하고 어떻게든 이기려 한다. 어떻게든 생존해야 하기에 무한히 이기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기회가 무한정인 사회라면, 비록 이 기회를 놓치더라도, 혹은 이 기회에서 실패하더라도 너무 좌절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기회를 잡으면 되는 것이다.

결국 도킨슨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기회가 무한한 사회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이기적이지 않은 개체들의 진화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마무리하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사회가 각박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실제로 사회는 각박하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 자살율은 최고이며, 똑똑하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이러한 재능을 버리고 무작정 공무원 공부를 한다며 젊은 청춘을 고시원에서 보내고 있다. 기회의 부재인 것이다. 아이들이 선택하고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기회가 너무나 없다. 그나마 있는 기회들도 돈이라는 자본주의의 선민들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으나, 이타주의와 관대함을 배운다. 그리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기회들이 가득한 나라가 되길 간절하게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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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20-04-08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
 

집정리를 하다가 커다란 상자를 발견했어요 
10년전 아이와 했던 독후활동들
저처럼 솜씨없는 엄마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초간단 독후활동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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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2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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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잃은 남매
금전적 도움말곤 그들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지독히 본인위주인 삼촌
그리고 가정부 그로스부인과 젊은 가정교사와 악령 둘이 등장인물이다


플로라와 마일스남매와 젊고 아름답지만 묘하게 히스테릭하고 김정선이 너무 예민한 것 같은 가정교사.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나는 옛고용인이었던 악령 퀸트와 제셀양
처음엔 가정교사가 너무 예민한건 아닌지, 그녀의 호들갑에 그로스부인(가정부)도 덩달아 설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가정교사의 입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묘사는 더할나위없이 모범적인 듯한데 섬뜩하다 거기다 마일스의 퇴학통지서는 선입견을 갖게한다
결국 플로라는 가정부와 떠나고, 마일스는 악령과 가정교사가 보는 앞에서 죽는 걸로 끝난다. 아니면 그저 가정교사앞에서 심장이 멎은 것일까


(나는 확실한 증거를 끄집어내기로 마음먹고 얼음처럼 싸늘하게 마일즈를 몰아 세웠다.
“‘그’라면 누굴 말하는 거니?”
“피터 퀸트요, 악마 같으니!”)

정말 악령이었을까
아니면 심리적 공포를 조성하며 불안정한 모습의 가정교사가 악령이었을까

요즘의 공포영화와는 다른 심리적인 묘사와 두 아이 행동에 대한 묘한 섬뜩함음 우아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우아하고 심리적이며 고전적인 공포 소설.

영화로 몇 번 만들어졌나본데 원작을 살릴 수 있을지. 그냥 사건만 놓고 보면 두 여인네들의 호들갑같기도 하고 , 아니라면 그저 지켜보며 아이들을 조정하는 악령 둘은 좀 시시할 것 같은데. 요번에도 영화가 나온다니 어떨까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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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성인들과 단테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관련된 인물들, 그리고 그리핀 케르베로스,미노스 켄타로우스 같은
그리스 괴물에서 아킬레우스며 영웅에 신들까지 대거 등장하며 그래서인디 주석이 마치 백과사전처럼 느껴지게 하는 책이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들도 좋았다. 특히 지옥편에 어울리는 그림들, 왠지 천국쪽으로 갈수록 그림들이 어울리지 않는 느낌.

졸지에 잠시 백수신세가 되면서 몇 번 손에 들었다 놓았던 신곡을 읽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까짓것 시면 어떠리. 우린 관동별곡도 해치운 세대가 아닌가. 그렇다. 이건 차원이 다르다.

너무 힘들었다.

이야기의 구성은 간단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상징들과 단테와 관련해서 해석해 놓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단테에 대해 조금 알아두는게 나을 듯 하다.
나는 신곡 지옥편을 5장쯤 읽다가, 잠시 손에서 놓고 단테에 대해서 알아보는게 먼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테하면 베아트리체, 신곡을 읽지 않아도 이건 뭐 춘향이하면 이도령만큼이나 당연한 공식이다.

그래서 먼저 <새로운 인생>부터 읽기 시작했고, 나름 뭐지? 9살에 첫눈에 반했고, 18살에 두 번째로 만나 사랑을 표현하기는 커녕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감추는 가리개 여인을 만들지 않는가. 시보다는 오히려 뒤에 주석처럼 붙은 단테의 생애와, 그런 단테의 시를 해석한 라파엘전파의 단테가브리엘 로세티의 삶이 더 도움이 되었다. 한 여인을 그것도 몇 번 보지도 못한 여인을 그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그토록 연모하고 숭배할 수 있을까. 해석편에 보면 베아트리체는 성삼위일체 혹은 사랑이라는 그 자체를 의미하는 상징적 의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성삼위, 완벽한 숫자 3에 집착해서 3의 배수인 9살과 18살에 그리고 6.9일에 베아트리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는데, 젊음의 사랑이라는 것은 희한하고도. 지독한 것이라 어쩌면 정말 열병같은 젊은 날의 열정을 베아트리체를 통해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시절의 사랑만큼 순수한 것도 조건없음도 없을테니 말이다.
모두의 첫사랑이자 숭배대상, 그래서 그녀는 늙어선 안돼.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남아야 돼. 그래서 첫사랑은 만나지 말아야 하고 혹은 이렇게 요절해야 하는걸까.
(우리땐 요절보단 유학이 유행이었지 더 있어보이는데다가 오히려 죽음보다 더 먼 단어가 유학이었으니까 )

일단 단테는 교황파와 황제파가 싸우는 피렌체의 정치판에서 황제파인 백당파를 지지하게 되고, 결국 교황파인 흑당파가 이김으로써 돌아갈 조국이 없어지게 되고 ( 횡령죄 등으로 고발당한다) 죽을 때까지 망명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런 단테가 1300년 부활절을 전후해서 일주일간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쓴 책이 바로 신곡이다.
물론 허구이지만 그 이전엔 이토록 구체적으로 저승을 묘사한 이야기가 없었다고 한다.
단테는 인간의 수명을 70살로 봤고, 딱 그 반의 삶을 산 35살 ,교황이 정한 최초의 희년의 부활절에 이승이 아닌 저승기행을 떠난 것이다.

단테가 그린 저승은 남반구에 있다. 북반구엔 땅만이 남반구엔 오로지 물만이 있는 지구, 예루살렘이 중심이며 인도와 스페인이 그 끝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반구의 어두운 숲 속에서 빛이 비추는 곳으로 가려면 삼단계의 저승을 거쳐야 한다. 예루살렘의 땅 속 반대편 끝에 깔대기모양의 지옥이 있는 것이다. 사자와 표범 암늑대를 만나는 장면부터 끊임없이 주석을 봐야했다. 무슨 상징이 이리도 많은지 힘들었다.

하옇튼 허영과 야망과 탐욕을 상징하는 세 짐승이 나를 태양이 침묵하는 곳으로 밀어넣는 순간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난다. 그는 단테가 존경하는 시인이었고,장대한 강물처럼 말을 뿜어내던 샘물이었다. 로마시인으로 단테가 존경하던 시인이었지만, 그 시절엔 하느님을 몰라 세례도 받지 못했기에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이다. 첫번째 지옥엔 주로 이런 인물들이 탄식을 하며 있고, 주로 덕망있는 이교도들이었다.

그 외에 9번째까지의 지옥이 나오는데 주로 지키는 수문장이 그리스 신화의 괴물들이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이 괴물들이 그런데 아쉽게 무섭기보단 개인적으로 귀엽고 좀 짠한 구석이 있다.. 그림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러나 천국편에서 빛의 표현은 멋지다.

기억에 남는 건 우골리노 백작? 정치싸움에서 졌기에 탑에 갇혀 두명의 아들 손자들과 굶어죽었고, 그래서 그 때 그런 형벌을 내린 대주교의 뒷통수를 파먹고 있는 것? 그리고 분열의 씨앗을 뿌렸다는죄목의 무함마드와 알리가 몸이 반으로 갈려지는 형벌을 받는 것?



그리고 가장 많이 회자된다는 프란체스카와 파울로의 사랑, 형수와 시동생의 불륜과 그 사실을 안 형이 둘 다 죽여버리는 이건 무슨 야동 줄거리같지만, 그 시대 사랑없이 결혼하는 이들이기에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단테처럼 울다 기절할 정도는 아니지만. 프란체스카의 유명한 말 ˝비참할 때 행복한 때를 회상하는 것만큼 더 큰 고통은 없다.˝ 현대인들은 이 말에 빗대면 오히려 고통을 즐기는 게 아닐까. 수 많은 sns에 불행해도 비참해도 최고로 행복할 때를 쥐어짜서라도 올리니 말이다. 그걸 보는 사람이나 본인이나 프란체스카의 지옥에 사는 건 아닌지.

가장 심한 죄는 배신이다. 믿었던 이를 배신하는 것, 그들은 특벽히 지옥의 악마 루시퍼가 머리를 잘근잘근 씹어주고 계신다. 얼굴도 세 개, 날개도 세쌍, 팔도 세쌍, 그래서 유다와 브루트스, 그리고 브루투스의 공모자 카시우스 셋을 잘근잘근 씹고 있다.

이 곳의 지옥은 단테의 생각과 그 시절의 윤리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들은 지옥에서 받는 형벌이 그들이 저지른 죄와 비슷한 모습을 보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람을 피운 이들은 태풍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폭력을 가해서 피를 본 자는 끓는 피 속에서 고통 받으며 고개를 들면 화살이 꽂히는 형벌을 받고 있다.


동굴을 통해 루시퍼의 다리를 타고 올랐더니 7개의 산이 있는 연옥이다. 게임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임무를 완수해야 최고 레벨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형태다.

연옥의 문지기는 카토이다. 그는 카이사르에 대항해서 자결했으며, 자결한 자는 원래 지옥에 가야 하나, 민주주의 수호자로서 각광받는 인물이어서인지 연옥의 문지기가 되었다고 한다.

카토의 명으로 베르길리우스가 갈대이슬로 단테의 얼굴에 묻은 지옥의 때를 씻겨주고, 갈대로 띠를 만들어 묶어주는데 이것은 정화이자, 잘 구부러지는 갈대의 속성에 빗대어 겸손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베르길리우스는 죄의 원인을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적으면 죄가 되며, 그러나 이승에서의 세속에서의 가치나 속성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사랑하면 결국 탐식과 탐욕이 되니 죄가 된다. 옳지 않은 것 부당한 것을 사랑하면 교만과 질투가 생겨 그 또한 죄가 된다고 말한다.

연옥의 꼭대기에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진 그리핀이 모는 수레를 타고 눈부시게 빛나는 베아트리체가 내려 온다. 그러면서 그리핀의 수레가 독수리와 여우와 용의 공격으로 변하는데 그것은 교회의 수난과 타락을 의미한다고 한다.

천국에선 수 맣은 질문들이 오고간다.(천국은 투명한 9개의 하늘이 있고 그 하늘 너머에 최고의 하늘이 있다고 한다.)

“플라톤이 주장하듯이, 죽음 이후에 모든 영혼은 제각기 자기 별로 돌아가는 것일까?”

베아트리체의 말처럼 두 가지 소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너무 어려워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의 단테는 선을 향한 의지부터 가톨릭 교리와 철학 등에 대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질문도 이해하기 어려우니 답을 이해하긴 더 어려운 법. 여기서 잠시 좌절을 했다.

“내 날개는 거기에 오르기에는 너무 약했지만 내 정신은 그 광휘로 깨어나 원했던 것을 마침내 이루었다. 여기서 나의 환상을 힘을 잃었다. 하지만 내 소망과 의지는 이미, 일정하게 돌아가는 바퀴처럼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시는 사랑이 이끌고 있었다”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하느님을 찾는 이들은 언제나 별을 쫓는다. 그 별은 하느님의 별이며 그 곳에 행복이 있다고 한다.

천국에 있는 자들은 이미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이다. 천국의 자격을 가지고 천국에 갈 열쇠를 손에 쥔 자들은 이승이든 저승이든 그 곳이 천국이다. 이렇게 천국의 자격을 가진 이들이 사는 이승은 그 곳 또한 천국인 것이다. 단테가 은총을 받아 직접 볼 수 있게 된 하느님은 빛, 오로지 고귀한 빛이었고 우주의 모든 것이 그 빛 안에 사랑안에 묶여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별들 위에서 본 지구는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그 속에서 믿음과 순결을 지키며 살아간 사람들이 천국을 만들 듯, 그런 이들이 많아진다면 지구 또한 천국에 가깝게 되지 않을까.

누가 신곡을 읽었냐고 한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아직 자신이 없다. 지금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 신곡을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자진신고합니다ㅎㅎ*^^*

(아래는 책 사진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루시퍼
베아트리체의 수레가 변한 모습
마지막은 천국의 모습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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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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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속삭이는 도시 꼬말라에, 어머니의 유언으로 친부인 뻬드로 빠라모를 만나러 간 후안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는 내내 후안이 산자인지 죽은 자인지 언제 죽은 자가 되었는지 애매하다. (작가는 꼬말라에 와서 후안이 죽었다고 한다. )

그 속에 또 다른 뻬드로의 아들 미겔과 아분디오, 빼드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인 미쳐버린 수사나, 꼬말라에 더 이상 면죄부를 줄 수 없게 된 렌떼리아 신부, 오누이부부 등 꼬말라에 살았던 영혼들의 이야기가 시대를 오가며 메아리처럼 되돌아온다.
꼬말라는 황무지가 되었다
빠라모란 뜻도 황무지란다.
빠라모는 꼬말라를 황무지로 만들었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흙먼지처럼 피어 오르게 했고, 그 또한 메말라 갈라진 가슴으로 흙처럼 소멸했다. 그 어떤 삶도 품지 못할 흙, 먼지가 되어 메아리만 속삭임만 들려주는 꼬말라의 바람들이 되었다.
(꼬말라는 마르케스 소설 속의 마콘도를 떠올리게 한다. 마르케스가 이 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라틴문학의 특징이라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치매 초기였던 할머니는 어린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동네 바람난 영감탱이 이야기를 하시다가 갑자기 우물옆에서 먹던 앵두를 이야기하다 시대를 건너뛰어 난리통에 피난 간 이야기에 갑자기 할아버지와 힘들게 살았던 이야기에서 느닷없이 그 시절 먹었던 갱시기국으로 넘어갔다가 어느 날은 할머니의 엄마가 주고 가셨다며 몰래 내 손에 쥐어주던 동전. 마르케스나 후안 룰포의 소설들은 내게 어린 시절 할머니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특이한 마콘도나 꼬말라가 배경도 아니며 피가 흘러 남편에게 알리러 가거나 죽은 자가 속삭이진 않지만, 할머니나 룰포의 여기 저기 널뛰는 이야기들속엔 무언가 마음을 아프게 적시는 한이 있다.

책 속에서
1)
-“얘야, 이 어미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게다.
나중에 내가 세상을 떠나면, 그때는 너도 알게 되겠지. 죽은 어미의 말보다 어미가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소리가 훨씬 더 잘 들린다는 것을.”-


2)
-빼드로야! 얘, 빼드로야....!
 그러나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자 다시 비가 내렸다.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일까. 소년이 눈을 뜨자, 추저추적 내리는 가랑비가 유리창을 타고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파란 섬광이 일던 밤이었어. 그때도 나는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을 보고 있었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상념에 잠길 때마다, 수사나, 나는 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어.‘
 빗소리가 가벼운 바람 소리로 바뀌고, 어디선가 기도소리가 들려왓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육신이 다시 부활하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이제 막 로사리오 기도를 끝마친 아낙네들의 음성이었다. 이어 몸을 일으키는 소리, 새들을 가두는 소리, 빗장 거는 소리가 들리면서 불이 꺼졌다.


3)

“-혹시 빼드로 빠라모라는 분을 아십니까?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캐물었다. - 어떤 분이지요?
  - 원한에 사무친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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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3-19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 우연한 기회에 후안 룰포를 듣게 되어 이 소설을 찾아 읽었어요. 여기서 리뷰를 보니 반갑습니다. 백년의고독을 떠올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