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은 자유·평등·박애(형제애)를 기치로 내걸었다.
700다면 혁명을 통해 정말로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되었으비판적인 논자들은 혁명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의 가능성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여성들을 배제하고 억압했다고 주장한다. 형제애는 있었을지 몰라도 자매애는 없었으며, 그 형제들(시민)이 아버지(국왕)를살해하고 권력을 잡았을 때 나타난 결과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질서였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관점에서 볼 때 혁명은 아무것도바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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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 클래식 클라우드 18
남정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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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현대 예술이란 뭘까
소변을 갈겨대는 거
대변을 깡통에 담는 것
자신의 피를 얼려 조각하는 것
헝클어진 침대를 전시하는 것

도대체 이게 뭐지?
이 정신사나움은?
그렇다.
자유.
위선으로부터의 탈출
모든 금기에서 벗어나 꿈꾸기
인류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날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역할 ,
현대예술은 그런 혁신을 추구하다 오히려 주객전도가 되는 경향도 있지만 .
현대예술의 선두에 서서 온 몸으로 새로움과 금기를 깨며, 브라운관으로 미래를 보여준 예술가가 바로 백남준이 아닐까. 어설픈 흉내내기가 아닌 본인만의 철학과 본인만의 창의성으로 천재가 된 예술가 )



한국예술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백남준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예술가 100인가를 뽑은 기사를 봤는데 그 중에 유일하게 한국인 백남준의 이름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이란 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예술가가 아닐까. (백남준의 인지도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정통 예술을 먼저 떠올리는 고정관념때문이 아닐까한다. 나만 그런가 ㅎㅎ)
그런 백남준의 생애와 삶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회상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형식의 책이다.

일단 가격이 사악한데 책이 얇아서 슬펐다. 그렇지만 그가 살았던 지역이나 작품의 사진과 설명등이 좋았다. 부유한 어린 시절과 맞물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친일의 가족사 사이에서 가졌을 죄의식이 그를 너무나 세계적이며 국경이나 경계가 없는 그의 작품 곳곳에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을 작품에 담게 했는지도 모른다. 엄청난 독서가로서 퍼포먼스에 철학이나 현실의 정치 사회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생각을 담아냈다. 특히 음악속에서 성에 대한 터부를 없애려 노력했고, 사회적 금기를 깨는 다양한 작품으로 음악을 시각화하는 작품을 발표한다.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징기즈칸?

감성의 예술세계에 이성의 과학기술을 담은 그는 진정한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닐까. 문과감성이 이과적 기술력으로 탄생해 더 신선한 건 아닐까. 각종 전선들과 그 당시의 신기술에, 손 등에 자석을 붙이거나, 브라운관을 구리선으로 감아 화면을 이그러지게 하는 등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을 과학이란 캔버스로 전선이란 물감으로 표현하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뇌졸중으로 거동이 힘듦에도 레이저란 새로운 도구로 또 다른 예술을 만들어낸다.

연주하지 않는 연주를 했던 존 케이지와, 죽은 토끼를 끌어안고 있던 보이스 등 최고의 전위예술가와 같이 협업하며 뉴욕을 누비고 다녔을 백남준의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뒤샹이 레드메이드를 예술이라 명명하며 더 이상 깨질 예술의 금기는 없을거라 했지만, 백남준은 비디오와 위성으로 모두를 하나로 만들며 새로운 예술장르를 열였으며, 그의 말대로 예술은 지워질 때까지 보는 것이며, 그 때 즐거워야 하는 거지 내일이면 시시해지는 것이라는 걸 몸소 실천한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언제봐도 시시하지 않다.



내가 처음으로 본 백남준의 작품은 다다익선이다. 1003개의 화면마다 우리나라의 상징들과 세계곳곳의 상징, 무어와의 협업작품등이 담겨있다. 백남준이 살던 시대를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혁신이자 대단한 예술작품이다. 그 시대에는 놀랍고 새로워 외면받거나 비난받던 작품들이, 결국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인정받는 건 작가들의 기발함과 천재성에 노력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넥타이를 자르고 피아노를 부수고, 머리카락에 먹을 바르고 날달걀을 벽에 던지며 매번 새롭고 매일 매일 달라지고 변하는 오늘을 담으려 한 백남준은 비디오와 레이저란 새로운 재료뿐만 아니라 도전의 정신도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주었다. 가장 세계적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이었던 한 남자이며 예술가인 백남준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과와 문과, 여담이지만 예전 어느 책에서 본 건데, 일본이 아이들에게 영어와 독일어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해서 가르치면서, 문학이나 인문쪽이 발달한 영국과 기술쪽이 발달한 독일의 특성에 따라 나눈 것이 지금의 문이과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책 속 밑줄 그은 문장들 ~

백남준은 참여와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은 독재 혹은 창작자 혼자만의 예술이라고 간주했다. 관람객들 저마다가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즐김으로써 예술이 다양성을 획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백남준이 추구하는 예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액션페이팅을 음악에 도입해 ‘액션뮤직‘이라는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만들어냈다. 연주자가 작곡가가 만든 악보의 지시에 따라 정확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구음악‘이라고 한다면, 팔과 다리와 머리 등 신체를 써서 즉흥적인 소리를 내는 것을 ‘신음악‘이라고 백남준은 정의했다. 예컨대 피아노 건반을 팔 전체로 치거나 바이올린을 책상위로 내리쳐 부수어버리면서 즉흥적으로 나오는 소음 등이 액션뮤직에 속했다. 한마디로 액션뮤직은 주어진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는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우연성이 개입한 예술이었다.

1986년에 위성 중계한 〈바이 바이 키플링〉은 「동양과 서양의 노래」라는 시에서 "오, 동양은 동양, 서양은 서양, 이 둘은 결코 만나 지 못하리"라고 말한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조지프 러디어드키플링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듯, 동서양이 위성을 통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백남준 의지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다빈치와 백남준 모두 예술과 과학에 능통했으며 이를 통섭해나갔다.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혔던 창조력또한 닮았다. 백남준은 자신의 기발한 작품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영감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전에 없던 예술이 출현하도록 터를닦았다. 비디오아트가 그랬고 그 뒤를 이은 위성아트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만들어낸 레이저 아트도 새로운 예술을 향한 위대한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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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 클래식 클라우드 18
남정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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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이 뛰놀던 몽골 벌판을 가보라. 피라미드도 에펠탑도 아크로폴리스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곳에는 아무런 문명도 남아 있지 않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우리 조상들이 살던 초원의 미학이다. 내 작품도 마찬가지다. 낡은 진공관은 10년도 못 간다. 나는 세상에 나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예술을 한 것이다. 왜 무엇을 남기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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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해요. 뒤상은 비디오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다 했죠. 그는 들어오는 문은 크게, 나가는 문은 작게 만들었어요. 그 문이 바로 비디오죠. 바로 그문을 통해 뒤샹에서 나올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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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개정판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 문학수첩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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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화책 목록에 혹은 아이들 방학용 권장도서에 빠지지 않고 들어 있던 책, 걸리버 여행기.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내 나이때는 그랬다. 암굴왕과 걸리버 여행기, 로빈슨 크루소....이런 책들이 겨울방학 필독서로 누런 갱지에 인쇄되어 다른 과제물과 함께 나눠 받곤 했다. 그러다 20대에 처음으로 걸리버여행기 최초완역본?을 서점에서 보게 됐다. 완역본? 그럼 내가 본 건 뭐지? 어린이 책이 원래 아니라고? 무슨 소리지 하며 펼쳤던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이용 모험이야기책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책들이 꽤 있다. 우리가 아는 백설공주니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의 동화들은 원래 어른들이 겨울에 모여 일을 하며 주고 받던 음담패설같은 이야기들이 걸러져 전해지는 것이고, 피노키오도 어른용 이야기로 자살로 막을 내리지만 독자들의 항의로 다시 살려낸다. 원래는 신문에 연재되던 어른들용 이야기였고, 인간은 공부하거나 일하거나 해야 가치가 인정되는 근대화의 변화된 모습을 담은 이야기이다. 피노키오가 그렇게 바라던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제페토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성실하게 일을 하면서이며, 앞전에 벌을 받은 건 학생으로서 해야 할 공부를 하지 않아서이다. 그러고 보면 예전 책들은 의미가 많이 담겨 있다.

걸리버 여행기 또한 어린이용 동화책이 아니라 풍자소설이다. 그 시대 금서가 되었고, 출판때마다 검열되어 이야기들이 잘려 나간 급진적인 책이다. 완역본을 읽어보면 왜 그렇게 이 책에 기겁을 했는지 알 수가 있다. 신랄하게 영국의 법과 도덕을 비난하고, 사람들의 파렴치함과 탐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걸리버의 여행은 어린왕자의 별여행을 떠올리게도 한다. 어린왕자가 별들을 방문하며 별주인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단면을 순하게 비판한다면, 걸리버의 여행은 불닭볶음면의 최강 매운맛 버전이랄까.)

작가인 조나단 스위프트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이며 18세기 영국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추방을 당하기도 하는 등 많은 곤란을 겪는다.(토리당을 지지했다가, 아일랜드로 피신한다) 영국의 지배하에 핍박당하는 아일랜드 편에 섰고, 그래서 아일랜드에 가면 작가는 국가의 영웅쯤 된다고 한다.



“읽고 즐기지 말고, 읽고 분노하라!”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순수한 도덕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자고 했지만, 어릴 적 나는 소인국 왕비침소의 불을 소변으로 끄는 모습이나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렇지만 좀 억울한 면도 있다. 내가 읽은 건 발췌본같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거인국과 소인국이야기가 끝인 동화책, 거기다 걸리버 여행기란 이름의 영화들은 코메디 느낌이 난다. 그러니 내가 알 수 가 있겠는가. 이 책을 읽고 웃어야 하는지 분노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간단하다. 좀 어설프다고 할까 우연의 겹침도 이 정도면 재앙급이다.

거의 명탐정 코난옆에 있음 매번 살인사건에 얽메이듯, 걸리버와 배를 타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언제나 걸리버는 난파당하거나 고난을 당한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이들을 만난다. 처음 간 곳은 릴리펏이란 소인국 나라. 그 곳의 사람들은 걸리버보다 아주 작다. 걸리버는 그 곳에서 순종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소인국의 언어를 배우고 친화적인 모습으로 릴리펏의 난제를 해결해 준다. 오랜 앙숙관계인 블레퍼스큐나라에 가서 군함을 끌고 오고, 왕비의 숙소에 불이 나자 소변으로 해결도 해 준다. 그러나 걸리버를 시기하는 이들인 플림넷과 볼골람장군등의 모함으로 이 섬을 떠난다. 사실 걸리버는 이 나라에 대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불레퍼스큐와 앙숙인 이유가 계란 깨는 법때문이라던가, 국가의 내분원인이 구두굽의 높이때문이라니 이처럼 무의미한 싸움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생각하지 않았을까. 걸리버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도움받은 것조차 무시하고, 걸리버에게 눈을 멀게 해 계속 국익에 도움이 되게 써먹으려 했던 국왕의 속좁음이 얼마나 한심했을까. 이럴 때 밴댕이소갈딱지락 해야 하나 싶다. 몸도 밴댕이만하다.

두 번째 항해에서 간 곳, 거인나라인 브로브딩내그에선 자신들만 최고라 생각하는 국왕과 영국얘기를 하게 되고, 한심한 나라라는 둥의 비난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 또한 작은 걸리버를 무시하는 한심한 나라아닌가. 여기서 약간 거인나라 여자들에 대한 묘사라든가 파리등의 벌레에 대한 묘사가 좀 징그럽지만, 결국 겉모습은 멀리서 보면 다 달라보이지만, 바싹 다가와 아주 자세히 돋보기로 보면 결국 커다란 구멍이 난 피부와 거친 털로 덮힌 똑같이 흉한 모습이다. 악취는 덤이고.

이제 여행을 안 갈만도 한데 기어이 또 떠나서 또 난파되어 간 곳은 라퓨타( 다들 라퓨타하면 걸리버보단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가 먼저 떠오를 듯)한심하고 쓸모없는 실험을 하며, 알지 못하는 것들을 지껄이며 지성의 허영으로 가득 찬 곳이다. 특히 똥으로 음식을 만드는 실험이나 거미줄로 비단을 만드는 등의 실험에 대해 한심하게 생각하는데 조금 민망한 맘도 든다. 빌 게이츠에 의해 아프리카에선 이미 대변에서 물을 추출하고, 또 거미줄을 뿜어내는 염소도 우리 인류는 갖고 있지 않은가. 누구 소유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옇튼 이 곳에선 머릿 속에서 쓸모없고 헛된 꿈만 꾸게 하는 학문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외에 글러브더브드리브섬에서 유령들을 만나고 (호머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들의 추종자들을 아주 싫어한다. 지식을 왜곡하고 머리도 나쁘기 때문이다.) 러그나그섬에선 붉은 둥근 점이 왼쪽 눈썹 바로 위에 나는 스트럴드블럭이란 죽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된다. 그들의 붉은 둥근 점은 12살엔 초록, 25살엔 푸른 색이었다가 45살엔 검은색으로 변하며, 80엔 모두가 죽은 사람취급을 하며 90이 넘으면 이와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질병을 앓으며 살아간다.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영생이다.

이 정도면 바다가 무섭지 않을까. 배라면 진절머리가 날 텐데 또 바다에 나가고 또 표류하다가 이번엔 휴이넘이 사는 곳에 가게 된다. (휴이넘....출판사 이름이기도 하다. )휴이넘은 말들이 사는 곳이다. 이성적인 말들과, 그들의 가축이 되는 탐욕으로 가득 찬 야후들이 구성원이다. (야후회사는 왜 비이성적이며 탐욕적인 어리석은 인간으로 묘사되는 야후를 이름으로 택했을까 처음엔 야후창립자들이 단순히 재미로 만든 사이트였다니, 이름도 그냥 되는대로 지은 것일까. 그러니 사람은 뭘 해도 신중해야 한다. 야후가 이렇게 큰 회사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

이 곳은 악이 없으며 그래서 비난도 없다. 전쟁과 법이 없지만 평화롭다. 병도 크게 없고 다치면 약초로 대부분 해결이 된다. 그들은 남녀구분없이 공부나 일을 시키고, 죽음 또한 그저 하나의 여행처럼 받아들인다. 도덕적인 이상적 나라의 모습을 갖춘 휴이넘, 그렇지만 그런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데에는 그들이 그리도 무시하는 야후들의 노동이 뒷받침된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휴이넘들은 유럽의 백인들, 야후들은 마치 식민지 원시인들처럼 느껴진다. 실제 조너선이 흑인에 대한 차별을 비난하기 위해서거나, 혹은 말들에 대한 학대를 비판하기위해서란 해석이 있다.) 이 곳에선 인간의 장점이 모두 단점일 뿐이다. 손톱 발톱도 그렇고 눈도 앞에 달려 있어, 옆을 볼려면 고개를 돌려야 한다. 걸리버는 약간의 이성을 가진 야후일뿐, 결국 야후쪽으로 갈지 집으로 돌아갈지 정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 온 걸리버는 인간혐오증에 걸린 듯 마굿간에 말을 사고 그 곳에서 행복해 한다.



그 시대 상황을 알지 못하면 그저 청개구리 같은 주인공이 바다에서 마치 포세인돈과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기라도 한건지 매번 표류하고 매번 구출되는 뭔가 엉성한 모험담이다. 그렇지만 그 시대의 상황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읽기 시작하면 너무 잦은 우연성으로 좀 얼개가 엉성하지만, 작가가 정말 대단히 앞서가고 깨인 사람인걸 알 수 있다.

그 시대 약자편에 서며, 이성적인 동물과 비이성적인 인간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대단하지 않은가.

또한 걸리버의 모습은 대단하다. 언제나 어떤 특이한 이들을 봐도 내심 놀랬겠지만, 대부분 순응하며 적응력도 빠르고, 거기다 언어습득 능력은 천재급이다. 그런 그가 네 곳의 나라들을 통해 깨닫게 되는 내용들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적용이 되는 훌륭한 풍자이다.

여전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분노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들에겐 술자리의 시시껄렁한 농담이 되고, 인간은 자신들이 대단한 존재라 착각하며 허영과 오만으로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냥 떠들어 대며 살아간다.

자연에 순응하기 보단 파괴하며, 자신보다 못한 이들에게 오만하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싸워대고 우기고, 여전히 자신들이 제일 대단하다 생각한다.

18세기의 풍자소설이 지금도 통용되는 이유가 아닐까.



“보잘것없은 사람이 분노를 표현해도 그것은 우월한 자들에게 있어서 농담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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