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과 화해할 수 있을까.
“거의 집집마다 바보나 미친 사람이 한 명씩은 있단다 얘야.”
“하지만 외할머니, 우리 집안에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없지, 우리 집안에서는 사람들이 공평하게 골고루 미쳐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미치광이가 나오기 힘들지.” <영혼의 집 67페이지>
골고루 미친 여인들의 이야기다.
사랑을 찾을 목적으로 목숨을 걸었으나. 그 여정에서 진짜 사랑을 찾은 엘리사의 이야기 <운명의 집>을 시작으로, 그런 엘리스의 딸 린소머스가 낳은 아우로라 이야기 <세피아빛 초상> 그리고 아우로라의 양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클라라와 그의 딸 블랑카와 손녀 알바의 이야기< 영혼의 집>
이사벨 아옌데의 삼부작은 칠레의 역사, 미국의 개척시대, 그리고 다시 칠레에서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일어났던 시대상황과, 엘리사 소머스의 자손들과 그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들이 깍지를 낀 손마냥 딱 맞물려 멋지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복수는 복수를 낳을뿐, 결국 그녀들은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삶의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며, 업의 순환을 끊으려 한다.
“얘야 너는 할 일이 아주 많단다. 그러니 네 자신을 그만 동정하거라. 자, 이제 물을 마시고 글을 써보도록 해라.”<영혼의 집 295페이지>
군사독재의 고문속에 살아돌아온 알바에게 할머니 클라라 영혼이 내민 처방전이다.
알바가 품은 생명은 어떤 색으로 삶을 기억하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까. 그 아이는 너무나 끔찍한 폭력으로 태어난 아이일까 아니면 숭고한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일까.
(이사벨 아옌데의 삼부작 표지는 모두 프리다 칼로의 초상화 그림이다.
프리다 칼로가 영혼을 들여다 보는 심정으로 그렸을 그들의 초상화.
<운명의 딸>은 프리다 칼로의 동생, 크리스티나의 초상화다.
11개월 차이로 태어나 부모사랑도 나누어 가졌는데. 이제 남편도 나누어가져야 하냐며 프리다 칼로를 씁쓸하게 했던 바로 그 여동생. 눈썹과 눈매가 닮은 듯도 하다.
<세피아빛 초상>은 31년에 그려진 진 라이트 부인의 초상. 그리고 <영혼의 집>은 친구인 알리시아 갈란트의 초상화다. 뒷배경의 몽환적 느낌이 영혼과 소통하는 클라라와 닮은 느낌이다.
멕시코화된 기독교나 제단화 등 민속종교와 초현실주의가 녹아든 듯한 그녀의 그림은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본인의 이야기를 확장해 여성들의 삶을 표현한 프리다 칼로는 이사벨 아옌데 소설 속 여성들과도 닮아있다.)
먼저 골고루 미친 여인들의 가계도다.
(세피아빛 초상 앞장에 있는 가계도가 많은 도움이 된다.)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찾아 떠나고 개척하는 이들, 자신이 머무는 곳에 따스한 영혼을 깃들게 하는 이들, 글과 사진으로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사랑이라 착각한 감정에 목숨까지 던지려 했던 엘리사가 진정한 사랑인 타오치엔을 만나는 <운명의 집>에서 그려냈던 미국개척의 역사를 지나,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린 소머즈가 여장부인 파울리나의 아들 마티아스를 사랑하면서 낳은 아우로라의 이야기가 <세피아빛 초상>이다.
너무나 아름다워 독이 된 린 소머스는 아우로라를 낳고 죽게 된다. 아우로라를 끔찍이 사랑했던 외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우로라는 자신의 친할머니인 파울리나의 손에 자라게 된다.
5살 이전의 기억을 잃은체, 검은 옷의 사내들에 둘러싸인 악몽을 꾸던 아우로라는 악몽의 실체를 잡아보라는 양아버지 세베로(파울리나의 조카)에게서 카메라를 선물받는다.
디에고를 만나 사랑이라 믿고 결혼하지만, 아우로라가 찍은 디에고의 사진에는 감춰진 진실이 담겨있다. 결국 아우로라는 남편인 디에고를 떠나고, 과거의 기억을 되찾으며 새로운 사랑도 만나게 된다. 사진과 글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며 여전히 불확실한 자신의 기억들을 세피아빛이라 이름 붙이며.
아우로라의 양아버지 세베로와 그의 아내 니베아는 많은 아이들을 낳는다. 그 중에 천사처럼 아름다운 로사가 있다. 그리고 막내 클라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로사는 독이든 술을 마시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로사의 약혼자였던 에스테반은 클라라와 결혼한다.
클라라와 에스테반 사이에서 태어난 블랑카, 쌍둥이 하이메와 니콜라스, 블랑카와 소작농의 아들 페드로와의 사랑으로 태어난 알바의 이야기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인, 그리고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에스테반은 자신의 악행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악행은 자식들과 손녀에 의해 되갚음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가면서, 점점 쪼그라들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것만 같다.
그의 아내 클라라의 동화같은 마법과 따스함은, 에스테반과는 정반대로 그의 집을 피난처로 혹은 쉴 곳으로 가난한 이들이 숙식을 제공받는 곳으로 모두에게 따스했고 개방되어 있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으로 이들은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기록한다. 결국 글들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그러면서 깨닫는 것, 복수는 복수를 낳는 것.
“나는 내 유년 시절의 오랜 비밀들을 밝혀 내 정체성을 찾고 나만의 전설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쓴다. 우리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결국 우리가 엮어 놓은 기억뿐이다. 각자 자기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한 빛깔을 고른다. 나는 백금 사진의 영구적인 선명함을 고르고 싶다. 그러나 내 운명에는 그런 빛나는 구석이 조금도 없다. 나는 모호한 색깔들과 불분명한 미스터리,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인생의 이야기는 세피아빛 초상의 색조를 띤다.”<세피아빛 초상 431페이지>
클라라의 말처럼, 울음을 그치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과거를 적어오다 현실과 만나면 그때는 즉음과 고통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과 화해할 수 있을까.
(아옌데와 피노체트 군부독재의 고문, 미개척지에서 벌어지는 여성착취와 성매매 등 다양한 시대모습도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