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아이랑 우리 개님이랑 좀 더 멀리 산책을 하고, 드라이브스루가 아닌 좀 더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바깥을 보는 별 것 아니었던 일상을 서서히 되찾을 거라, 그럴 땐 꼭 바다도 한 번 보러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심한 욕, 심한 욕.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오후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한 건 마약이 들어간 제목 때문이다.
마약의 모든 것?
최고의 마약, 헤로인을 만든 게 제약회사라는 것, 실제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마약재활센터보다 행복과 안정이라는 것. 그러나 자본주의의 선택지는 행복과 안정보단 더 많은 예산과 돈을 모을 수 있는 재활센터라는 것.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 허리케인 또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음에도 대비비용보다 복구비용이 더 낮다는 이유로 내버려 둔 것, 결과는? 예측이 어긋났고 어마어마한 인명피해를 냈지만 대수롭지 않아. 그들은 어차피 하층민인걸. 이렇게 끝나버린 자본주의 정의.
정의를 외치는 건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라지. 정의를 원하는 마음. 그러나 오지 않는 정의
그리고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작가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는 대학을 중퇴했고, 노동을 하며 산다고 한다.
노동을 하고 , 밤에는 글을 쓰고. 하루종일 몇 시간의 수면뺀곤 노동에 시달리는 작가.
깊고 넓은 독서와 나름의 철학들이 담겨 있다.
아나키스트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작가도 본인은 그냥 귀찮아서 대강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 주변,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아나키스트라고 말하는 이들이 가장 인간을 사랑했다. 좁은 소견의 일반화일까.
추석 날 달님에게도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절이나 교회에서도 무속신앙앞에서도 언제나 속물적인 소원이 오간다. 돈, 명예, 대학.
나 또한 어쩌면 어딘가 산이든 대나무 깃발을 높이 꽂은 용하는 곳 물어물어 기어이 쌈짓돈을 털어낼지도 모른다. 우리아이 대학 붙게 해 주세요. 어디를 내면 될까요.
아이의 행복? 맞다 대학을 가야 행복해 진다고, 좋은 학교를 가야 행복해진다고 누가 정의를 내린 것도 아닌데 우린 미어캣처럼 미친 듯 대학, 좋은 대학.
그 이면엔 좋은 대학, 좋은 직업, 많은 돈.
내 내면을 이 잡듯 뒤지지 않아도 나 또한 그렇다. 아이가 좀 더 행복하기를, 그런데 그 행복의 기준이 내 눈엔 주변의 눈엔 20살엔 대학이 30살엔 집과 차로 보여지는 거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우린 모두 조금은 세되당했는지도, 아니면 스스로 자초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고자 30평대 최신 아파트를 바라고 고급 자동차를 바라는 커다란 욕망을 손수건만한 정의를 외치는 책 한권으로 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의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기본을 지키자고 잔소리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기를.
진짜?
내 마음이 진짜 그런걸까.
불법을 용인하고, 기회와 법의 틈을 이용해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며, 은연중에 나 또한 그런 기회가 오기를 바라며 그런 마법 같은 틈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닌가.
나 또한 부동산지부 아파트회 주식당의 교인이 아닐까.
작가의 이 책이 오늘의 나를 참 부끄럽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