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청춘엔 누가 있었을까.

그 전 세대의 술안주엔 화염병과 치열함이 가득해서 아직도 최류탄의 매캐함이 느껴지는데, 우리 아니 나의 청춘엔 누가 있었을까.

 

글쓴이의 청춘엔 헤세가 가득이다.

이 책은 마치 글쓴이가 헤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겸, 감상문같다. 그 전의 시리즈들이 여행기와 작가의 삶에도 어느 정도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오롯이 그저 작가의 발자취에 대한 눈곱만큼의 사진과, 글쓴이의 무한한 헤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책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글쓴이의 순수하고 솔직한 감상평이 헤르만 헤세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

10대에도 헤르만 헤세는 빠지지 않는다.

중고등학생 필독서에 꼭 끼여 있었던 헤세책들.

솔직히 헤세의 책을 중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저 산만하고 정신없이 아저씨들이 왜 이리 여자들은 만나고 헤어지는지 또 왜 이리 힘들다고 난리인지 의문투성이의 책들이지 않았을까. 나 또한 그러했다. 그러다 조금 늦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새로 헤세의 책들을 읽게 되었고,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대한 그의 시선이 참 대단함을 느꼈다.

 

 

 

방랑의 자유를 보여주었고,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나면 혹여 크놀프가 아닐까 설레게 했던 책, 붙박이장같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가슴 한 귀퉁이에 시원하고 청량한 휘파람이 되어 뜻밖이어서 더 기쁜 일요일로 다가오던 남자, 크놀프. 그 삶의 끝이 너무나 서글펐는데 결국 크놀프는 크놀프답게 살았던 것일뿐.

 

수레바퀴아래에서의 한스. 고등학교 시절 아이들은 짓궂게도 그 얄궂은 입맞춤의 부분만 낭독해대곤 했다. 한스는 내가 가장 애정을 가졌던 주인공이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연약하며, 예민한 천재 한스. 왜 그를 감싸줄 엄마조차 없었던 걸까. 한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한스는 발을 헛디딘 걸까, 아니면 떠나 버린걸까 정처없이.

 

 

 

빼 놓을 수 없는 데미안.

싱클레어도 되지 못한 나지만, 데미안부터 되고 싶었던 성급했던 그 해 여름.

수수께끼같은 문제 속에 답을 찾아내며 성숙해지더니 어느새 데미안이 되어버린 싱클레어가 부러웠다(싱클레어는 순진한 아이였고, 프란츠 크로머이기도 했다.

순수함 속에 머물길 원했지만,  세계 또한 완전할 수도 영원할 수도 없다.

결국 아픔, 고뇌, 방황  데미안이 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아이가 커가는 과정  모습들을 담고 있다.

"살인자" 표적을  카인이 영웅?

어쩌면 우리완 다른 생각, 다른 꿈을 가진 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선망을 "살인"이란 이름으로 흉칙하게 변형시켜 버린 것은 아닐까.

깨달음에 대한 봉쇄.

그러나 아이들은 큰다.

깨지고 더렵혀지고 더럽다 느끼기도 하고

너절해지기도 하고

비굴하고 좌절도 한다.

그러면서 프란츠 크로머로 자라기도 하고 데미안이 되기도 한다.

삶에 대한 깨어 있음, 생각의 자유와 낯선 이야기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 섞인 순수한 시선,

아니면 그런 이를 알아봐 옆에 있어 적절한 답을 통해  깊이 있게 만들어  선지자일까.

  세상 속에 신이 존재한다면, 선하지 않은 곳엔 더욱 신이 필요하다.

어느  쪽만이 존재할  없다.

선과 .

남성과 여성, 모든 것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이고 인간이다.

내가 내가 될때,   존재하는 나를 오롯이 받아들일때 우리는 데미안을 만난다.

 속의 데미안내가  데미안을.)

 

 

 

그리고 싯다르타. 싯다르타를 읽으며 얼마나 확고한 궤도로 걸으며 강풍에도 휩쓸리지 않는 별을 닮은 사람이고 싶었는지.

 

 

    

헤세는 평생 책과 그림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 보았다.

피터팬의 그림자는 웬디가 치료해 주었지만, 헤세는 자신의 그림자를 돌아보며 스스로 글과 그림과 성찰을 통해 치유해 나갔다. 나의 그림자는 아직 좀 낯설다. 마주보기가 두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일단 덮어두면 마음에 켕기긴 하지만, 보이지 않으니 무시해 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목구멍의 가시다. 글쓴이 또한 읽고 쓰며 자신의 삶을 성찰해 나간다고 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법이 글쓴이와 헤세는 닮았다. 읽고 쓰고...

나는 어떤 방법으로 나의 그림자를 만나 화해하고 귀 기울이며 치유할 수 있을까.

웬디를 찾아봐야겠다. 아니면 독학으로 바느질을 배워볼까. (예전 가사선생님을 웃다 지치게 했던 나의 바느질 솜씨가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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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8-26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중학생 때 해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듯 합니다. ^^

mini74 2020-08-26 19:36   좋아요 1 | URL
저도요 ㅠㅠ 몇년전? 중학생 아이들이 헤세책을 들고와서 묻길레 무슨 일이지했던 적이 있어요. 방탄효과? 더군요. 방탄! 사랑해요 ㅎㅎ
 

나는 헤세에게서 독학의 묘미를 배운다. 그는 한 번도 모범생인적이 없었지만, 한 번도 선생님들에게 제대로 된 칭찬을 받은 적이없었지만, 학교에서 쫓겨나 비로소 학교 밖에서 자신의 진짜 공부를 찾았다. 그런 그의 투지가 좋다. 헤세가 평생 독학자로 살았던 것이 그의 콤플렉스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눈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의 평생 독학은 콤플렉스가 아니라 그가 지닌 눈부신무기다. 나도 그렇게 평생 독학하며 살고 싶다. 누구도 가르쳐주지않더라도 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싶다.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좋은 메시지가 있는지 잘 알아낸다. 예컨대 좋은 강연을 부지런히 찾아 듣기도 하고좋은 책을 항상 옆에 두기도 한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치유될 수있으며 개성화될 수 있다. 읽고 쓰기를 매일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면 매일 개성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내 개성화의 비결은 끊임없는 읽고 쓰기였다. 읽음으로써 나와비슷한 아픔을 가진 작품 속 주인공을 만나고, 글을 씀으로써 내가결코 고통에 지지 않을 용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읽고 쓰기를멈추지 않았기에 나는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그 모든 문제를껴안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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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미술관 : 올림포스 신과 그 상징 편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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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를 설레게 했고, 물욕에 빠뜨린 허리띠가 두 개 있다.

바로 원더우먼의 허리띠. 진실의 허리띠다. 누구든 진실을 말하게 하는 허리띠.

그리고 아프로디테의 허리띠, 모두를 매혹시킬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허리에 차고 있으면 별로 표도 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진실과 사랑의 허리띠.

두 개의 허리띠만 있다면 뭐가 두렵겠는가하며 혼자 배실배실 웃곤 했다.

원더우먼의 허리띠는 드라마 시리즈에서 나오 듯 금빛의 기다란 허리띠지만, 아프로디테의 허리띠는 온갖 상상을 다했었다.

아프로디테의 상징이 비둘기며 석류며 장미 진주 돌고래 포말 거울등등이니, 일단 허리띠엔 비둘기 깃털과 빨간 장이와 덩굴, 그리고 진주가 달린 모습일거라 상상했다.

헤라에게도 보란 듯이 빌려줄 수 있는 멋진 허리띠. 참 갖고 싶었던 물건이었다,물욕이 샘솟을만큼.

(그 허리띠를 몰래 훔쳤던 헬레네의 시녀 아스티아나사는 최초의 에로제작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성체위관련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 어울린다.)


그리스 신화는 언제나 재미있는 주제다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성경과 그리스로마신화가 아닐까 한다.

특히 서양의 그림들은 종교적 제약 등을 이유로, 주로 그리스로마 신화들을 즐겨 그렸다. 이상화된 여신들의 벗은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그리고 신화 속 이야기에서 교훈과 주제를 알리기도했다.



그런 그리스신화를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책이다. 신들의 이야기와 그 상징, 그리고 그림의 의미등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물론 그리스로마신화를 소개하는 책들은 많고, 또 대부분이 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그림과 조각등을 많이 차용한다. 이 책 또한 그렇지만, 더 폭넓고 다양한 그림들과 자세한 설명들이 재미를 더한다.



헤르메스가 지닌 케리케이온 지팡이와 날개달린 모자 페타소스, 날개달린 신발인 탈라리아를 그림으로 자세히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특히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헤르메스의 케리케이온 지팡이가 혼동되어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의술관련 엠블렘에 케리케이온이 쓰이기도 했다는 내용도 소개되어 있다.



음악의 신이기도 한 아폴론에게 피리 솜씨를 뽐내다 가죽이 벗겨진 마르시아스나, 직조솜씨를 자랑하다 아테네에 의해 거미가 된 아라크네 등, 결국 솜씨엔 자만보단 겸손이 필요함을 이야기해준다.

옛사람들은 그랬겠지?

이런 그림들을 보면서 교훈도 얻고, 또한 바람피다 걸린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를 보며 웃다가 찔리는 이들도 있었겠지.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 닮은 신들의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받고 그려지지 않을까.

아래 사진은 디오니소스와 데메테르 그리고 풍요의 뿔인 코르누코피아, 두번째는 클림트가 그린 아테나의 모습이다.



“데메테르와 디오니소스가 없으면 아프로디테는 얼어버린다”

등 따시고 배 불러야 사랑도 눈에 보이는 법이란 속담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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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5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임오년. 갑신년 등 갑자와 환갑의 의미를 알면 역사가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 해서 영상을 만들어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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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아 이런 류의 선생들이 있었지. 몇 몇 예뻐하는 아이들을 마치 호위병이나 병풍처럼 두르고 다니면서 그 아이들의 특권을 눈감아 주던.
주로 예술쪽이 그랬지. 문예반이나 회화반 아이들.
유난히 선생님과 친하며 자기들끼리 무언가 고고한 듯, 다른 듯 점심시간이면 동아리방에서 점심을 먹고 마치 여럿이지만 하나인듯 행동했던 아이들.
뭐 상급학교로 올라간다던가 하면서 헤어짐 혹은 관심사가 달라지면 예전 자신의 모습을 오히려 더 크게 부정하며 돌아서곤 했다.
그런 선생의 결정체 아니 끝판왕같은 선생이 진브로디가 아닐까.
자아도취와 오만 속에서 아이들을 조종하고 싶어하며,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것을 용납 못하며, 아이들 사이에 은근히 끼어들어 상하관계를 조정하는 주로 음침한 눈빛으로 그런 자신이 진정 학생을 아끼는 선생인냥 착각에 빠진 부류들. 미래마저 마음대로 하고 싶어했던 학교의 불쾌한 파시스트들.

브로디선생은 신이 되고 싶었을까.
성인이지만 14살에 멈춘, 14살들의 신. 그래서 브로디는 불안하다. 크림중의 크림으로 만들어 준다는 자신의 말이 허구임을 감추며, 질투와 이기심에 지적 허영으로 뭉쳐 자신이 아는 것만이 진실인양 말랑말랑한 아이들을 입맛대로 빚고 싶다
알량한 권력으로 자신이 열등하다 생각하는 무리를 같이 혐오하게 만들며 ,교묘한 따돌림과 함께하는 괴롭힘속에서 샌디는 의문과 미안함의 감정을 같은 일을 여러번 반복하면 결국 옳은 일이 될거라고 생각하며 정당화한다. 브로디 선생의 말랑한 소녀들을 자기마음대로 빚어 자신과 동일성을 가지게끔 동화되게끔 만들며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꾸미는 것이 파시스트와 닮았다. 그래서일까 브로디선생은 파시즘신봉자이다.
선생에게 선택받은 아이들은 소속감에 안정과 특별함을 느끼게 되지만, 결국 브로디무리는 로이드의 그림처럼 모두 브로디가 되어 버린다. 더 이상 브로디이고 싶지 않은 나이고 싶은 샌디의 밀고로 브로디선생은 학교에서 해고당하며, 샌디는 객곽적으로 브로디선생과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14살 소녀들의 성장소설일뿐 아니라 브로디선생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브로디선생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은 14살의 선생이다. 그래서 샌디는 브로디선생의 모습에서 자신이 겪는 성장기 혼돈에서 오는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발견하고 동일성을 느끼며 연민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브로디선생은 위험하다. 그녀의 말은 조이스를 사지로 내몰기도 했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나무 아래 자신의 추종자인 소녀들에 둘러싸여 황홀경에 들뜬 채 자신의 연애담과 자신의 예술적 열정과 파시즘을 설파하던 , 소녀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며 검은 막 뒤에 숨어 있던 그 시절일까

책을 덮고 나니 어디선가 크림중의 크림이 되게 해줄게란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ㅎㅎ

( 선생님 이야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셜리번선생님. 이 분 또한 시각장애인이었다가 시력을 회복했고 헬렌켈러의 헌신적 멘토이자 동료가 된다. 어릴 적 교과서에 실렸던 이야기, 그 후는? 헬렌켈러는 정부와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반정부인사가 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 이야기만 그렇게 교과서에 나왔나보다. 커서 어떤 인물이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이유.
그리고 우리의 존 키팅 선생님. 죽은 시인의 사회, 고등학교때였나 영화를 보고 책으로 구입했는데 학생신분으론 조금 야한( 이때의 난 순수했다 ㅎㅎ) 장면에 누가 볼까 화들짝 놀라기도 했는데, 보봐리부인보다 더 야하게 느껴졌던건 아마 같은 또래의 이야기라 그랬을 듯. 감정이입하며 읽었던 책이다. 외국의 아이들은 매번 오전에 수업을 마치면 콜라나 쭉쭉 빨면서 농구하고 파티나 하러 갈 줄 알았는데, 사립학교의 남학생들은 결국 우리처럼 본능이나 호기심을 누른 체, 잠시 존엄성이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따위는 미뤄두고 공부를 위한 기계가 되는구나 라며 신기해했던 기억도 난다.

진브로디같은 선생도 있고 무관심하게 따박따박 월급만 받기만 바라던 선생들도 있었다. 오히려 그런 무관심이 더 좋았던 시절. 그러나 가슴 설레고 50분 수업을 꽉 채우며 우러나는 존경심 갖게 했던 키팅선생님! 같은 분도 계셨다. 생각해보면 그런 선생님들은 진짜 교장선생님이나 부장선생님들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학부모도 성적도 아닌 아이편에 섰기에 부당함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선생님이셨던 분들.
시인은 죽어 버리고 성적과 대학과 속물적 명예만 가득한 곳에서 시 자체만을 마음으로 갈망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속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을 알게 해 주고 싶었던 선생님.
Carpe. Hear it? Carpe. Carpe Diem.
카르페디엠,, 들리는가 이소리가?
Seize the day!
순간을 즐겨라!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네 삶을 바로 너만의 독특한 삶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떠나는 선생님 뒤로 외치는 아이들. Oh Captain! My Captain!

우린 캡틴이라 부를 수 있는 선생님을 가졌을까. 나를 성적순이 아니라 나 그대로 봐준 선생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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