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구병모작가를 처음 안 건 “위저드베이커리”를 통해서다.
중학교 필독서로 독후감숙제가 있었고, 아이들은 어렵다며 투덜거렸다.
생각해보면 중학생들이 이해하기엔 조금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아이들은 짧은 글에 익숙하다. 두 문장안에서 반전이 있던가, 아니면 길어도 네댓줄의 문장안에서 중요내용이 들어나야 한다. 혹은 웹툰이나 웹소설을 통해 한 쪽 정도 분량의 글로 나눠 읽다보니, 생각보다 글을 읽는게 힘든 아이들이 많다. 한권의 책을 읽어내는 것만도 힘든데, 거기다 위저드베이커리는 중간중간 생각꺼리도 많으니 힘들만 하다.
거기다 결말이 두 가지, 이 책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왕팬이 되거나, 너무 어려워요 거나.
조숙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이 책의 우울함에 빠져 한참을 고생했다. 배선생과 무희, 그리고 파랑새와 마법사.
그들이 더 이상 어린이책에 나오는 환상과 즐거움, 따스함이 아니라는 걸 알 때 당황한다.
이복여동생을 성폭행하는 아버지, 자신을 피말리게 괴롭히는 새엄마인 배선생, 그리고 무희, 그 끔찍함을 해결할 힘이 자신에게 있지만, 결국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실패와 성공.
그러나 둘 다 주인공에겐 해피앤딩은 없다. 다시 위저드 베이커리로 갈 수 있을까.
상처받는 아이들을 위한 빵집.
그런데 더한 복병이 있으니 바로 “피그말리온 아이들”
이건 더 우울하다.
로버트 로젠탈이 주장한 칭찬의 긍정적 효과, 이 로젠탈의 이름을 딴 가상의 학교 로젠탈.
그 곳에선 아이들이 칭찬과 기대효과를 통해 자란다.
그래서 피그말리온의 아이들.
악독하고 사악한 선생,
스스로 신이 된 듯 착각한 교장.
힘없는 학생엔 무관심한 사회.
버림받고 상처받았으나 너무나 소중한 아이들.
그 아이들을 교육이란 폭력으로 옭아매고 착취하는 지옥.
그 곳이 바로 피그말리온, 로젠탈 스쿨.
그 곳엔 긍정적 강화도 할 수 있느다는 믿음도 없다.
억압에,
자유도 빼앗기고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감정을 가둬야 하는
조각상 갈리테리아가 인간이 되는 곳이 아닌,
인간이 조각상이 되는 곳.
깨지고 부서져 눈물조차 속으로 흘리는 거짓의 조각 세상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면, 학교내 문제 등을 다루거나 조금은 뻔한 주제들이 많았다.
그러나 구병모작가의 작품은 과감하고 과격하지만 조금 더 아이들을 어른취급하며 제대로 다뤄준달까. 그래서 구병모작가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이해한 아이들은 광팬이 된다.
그리고 파과.
다양한 뜻이 있지만 아마 흠집이 난 과일 정도가 아닐까.
조각이란 이름의 60대여성 킬러 조각.
그리고 그런 조각을 기억하는 또 다른 킬러,토우
토우는 무심한 아버지의 죽음앞에서도, 며칠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 조각을 미워하지만, 싫어할 수도 없다. 토우는 조각을 그리워했지만, 그 것에 대해 또한 죄책감을 느꼈고, 그래서 토우는 조각을 죽이기보다 조각에게 죽임을 당하는 걸 택한 건 아닐까.
이제 더 이상 부품도 없고 단종되어 고칠 수 없어 버려야 하는 낡은 총. 이제 부서지면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는, 그래서 부서지고 사라져야 하는 조각.
우리 모두 그렇다. 어느 순간 더 이상 고칠 수 없을 때 우린 그저 사라지고 낡아지겠지.
사람을 죽이는 조각, 감정도 없이 무표정하며 사이코패스일 것 같지만, 약자를 돕고 강아지를 걱정는 조각이 오히려 비정한 세상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는 건 왜 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