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산 책들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님, 북플친구님의 서평을 읽고 산 책, 호기심에 산 책 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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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0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 코르뷔지에 저도 일단 보관함에 널어둬요.
 
사라지지 않는 여름 2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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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매력장애

잘못된 방식의 사랑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잘못됐고 받을 수록 아픈데 그게 그 사람이 주는 사랑이고 호의이기에 오히려 거절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특히 청소년들에겐 결정권이 없다. 부모들은 아이를 사랑하기에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매질을 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곳으로 보내기도 하고 엄한 훈육을 혹은 지옥에 갈지도 몰라란 공포를 주기도 한다

<위험해
낯설고 소수라서 살기가 힘들거야
병에 걸릴거야
그러니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과거 그리스에선 동성애로 뭉쳐 적군과 싸워 이겼다

수많는 이성애의 결과로 매독 및 성병등 다양한 질환에 노출된다
왕들조차도 매독엔 속수무책이었고
남북전쟁땐 매독에 걸린 병사에게 수은을 먹였다. 죽거나 정신을 놓치고 살아남거나.
자 위험하다. 아직 완벽한 치료제도 없다. 그러니 이성애를 멈추자 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었을까
그 반대다. 약을 만들려 노력하고 좀 더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왜 그런 공식이 동성애에는 통하지 않는걸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도 인정되어야 한다
누구를 사랑할지 정하는 것도 자유다.

인류의 표식은 항상 잔인한 결과를 가져왔다.
유대인의 노란 별, 집시와 장애인, 유색인종, 난민, 동성애자, 수많은 약자들.
나에겐 어떤 표식이 붙어있을까, 나만 보지 못하는 표식.
그러니 타인의 표식을 지워주자. 그러면 나의 표식도 저절로 지워지지 않을까.

캐머런은 얼음같은 호수에서 수영을 통해 죄책감을 덜어낸다. 부모의 죽음앞에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이 드러나지 않을거라 안심했던 그 찰나의 순간을

아무도 나쁜 사람은 없다. 잔인하거나 혹독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캐머런의 한 부분을, 그 부분 또한 캐머런임에도 지우려 했다.
캐머런은 제인과 애런, 캐머런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동료들과 조금은 자신다운 삶을 살아나가지 않을까.

흥미위주가 아닌 정말 진지하면서 따뜻한 이야기. 소녀의 성장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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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데 키리코 - 20세기 미술의 발견
박영란 옮김 / 예경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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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리의 우수와 신비 1914>~ 아래 그림
어릴적, 여름 풍경이 기억나세요
유난히 길던 하루.
그 하루도 짧아,
아쉬웠던 어린 시절의 여름
골목길..
엄마에게 야단맞고,
엄마의 빗자루를 피해 대문앞에서 쪼그리고 있던 기억.
조금은 어둑한 골목, 내 그림자를 밟으며 한발 한발...아빠를 마중하던 기억.
아빠의 등 뒤에 숨어 집으로 돌아 오곤 했지요.

그리고 내겐 잘 돌아 오지 않았던 새 옷.
그래서 볼 부어 나온 곳도 골목.
집 앞 골목..
그런때는 그 골목, 참 낯설고 길었지요.

중학교때였나요.
위 그림을 처음 봤지요.
소녀의 그림자만 비치는 긴 골목.
그 골목만이 어찌나 눈에 익던지.
소리마저 닮은 그림 속, 그림자들조차 반가웠지요.
조금 더 커선,
조르지오 데 키리코라는 화가의 그림인걸 알았고,
그리고 소녀와 낯선 남자...불안과 우울을 말하는 그림이라고 책에 적혀 있더군요.
그러나 내게 ,
이 그림은, 언제나 그리운 어릴적 골목이 될 것 같습니다.
혼이 난 아이는, 씩씩한 척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혼자만의 놀이를 시작하지만,
외로움이 그림자로 삐죽이 드러납니다.

조금씩 다가오는 낯선 그림자가, 유명한 마술평론가들의 말대로 우울이니 공포니 이런 것이 아니라.
반가운 그리움이길 바랍니다.

조리지오 데 키리코(1888-1978)는 그리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화가입니다.
낭만적이고 유별난 부모밑에서 자란 키리코.
키리코는 형이상학화파의 창시자이자,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라고 하네요.
밑의 사랑의 노래란 그림은( 아래 두번째)
낯익은 대상이라도 그것이 놓여있는 본래의 일상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여 있을 경우, 우리는 매우 낯설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런 기법을 초현실주의자들이 매우 좋아했었는데, 전문용어로는 전치 혹은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고 한다는 군요.
그 후, 말년엔 스스로 자신의 초창기 그림을 복제한다는 비난도 받았다는 화가 키리코.
그의 그림엔 기차가 자주 등장합니다.
하얀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기차..
기차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시간의 흔적일까요..
과거의 지나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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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06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키리코위 그림은 위의 그림을 더 좋아합니다. 미술평론가가 뭐라고 말하든 제게는 mini74님처럼 내 유년의 추억을 소환하는 느낌이거든요.
 
기억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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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죽어없어지고
살아남은 비겁자들에 의해 쓰여지는 역사.)


최면술을 통해 자신의 전생들을 만나는 이야기.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와 왠지 모를 기시감, 불쾌감엔 전생들의 사건들이 이유이며, 결국 그 전의 전생이 원하는 모습으로 환생한다는 , 그리고 주인공의 첫번째 전생은 거인 아틀란티스인. 주인공은 아틀란티스의 몰락을 이야기하며 그에게 노아의 방주를 이야기하고, 그들은 살아남아 이집트의 신들이 된다.

읽으면서 계속 뭔가 익숙함? 어디서 본듯함? 을 느꼈다. 내 전생과 겹치는 무엇이 있는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하. 예전에 읽었던 베르나르의 소설에서 언급된 이야기? 철학 등이 담겨 있어 그런가 보다.
20대 청춘. 개미란 소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새로운 시선을 통해 급기야는 인간이 신들의 개미들일수도 있다는 설정은 그 당시 새로웠다. 또한 그의 막힘없는 박식함, 철학 역사 과학 각종 구석탱이 어딘가에 구겨져 있던 진실이 적힌 종이들을 찾아내 반듯하게 펼쳐내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그는 똑똑하다. 신화마저 섭렵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20대에 읽었던 참신함과 놀라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 책들의 내용이 차용되고 겹쳐서 일까. 르네가 노아가 되는 이야기가 중간부터 이미 예상이 되다니 ㅠㅠ
아니면 세월이 심장에도 각질을 만든걸까.


(그러나 왜곡되고 조작되며 독재자들 입맛에 맞게 각색된 역사들에 대한 경고는 마음에 와닿았다. 언론통제와 왜곡은 세월에 의해 진실로 굳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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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6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6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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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은 커서 성별을 정하고, 광어는 온도에 따라 성별이 바뀌며, 니모로 더 잘 알려진 말똥가리는 상황에 따라 성별을 바꾼다.
우리 인류의 시작은 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긴 진화의 시간 속에서 어쩌면 성별을 고정시켜 태어나는 것이 오히려 돌연변이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다수라는 이유로 특권을 누렸지만, 그 특권속에 타인을 차별하라는 권리도 있는걸까.
정말 다수가 옳은걸까.
특정지어진 이들을 배제한체 어떻게 정의와 공평을 말할 수 있는가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다
사유하지 않으면 인간성은 훼손되며, 기계적 인간이 되어 아무렇지 않게 독가스실의 버튼을 누른다.
내 잘못은 없어요. 몰랐어요. 시키는데로 한 것 뿐.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있을까
아무 생각없이 우린 벙어리 장갑이니 결정장애니 혹은 대한민국의 일반인으로서 누리는 특권을 의식하지 못한체, 괄호밖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알지 못해서 생각없이 한 행동이기에 우린 여전히 선량한 이웃인가.

그래서 필요한 것.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것.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인문학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이유며 필수인 이유가 아닐까.
아무 생각없이 나를 상처입하고 타인을 아프게 한다면 그건 더 이상 선량하다 할 수 없다.
유머와 농담에 감춰진 불쾌한 차별들에 , 항의는 할 수 없어도 같이 웃지 않을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사회는 변화할 것이다.


어릴 적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일요일, 그 천금같은 날에 아침 만화도 마다한체 꽤 다녔던걸로 기억된다. 엄마에게 받은 백원이란 거금을 꼬박꼬박 헌금도 했고.
그러다 어린이날쯤? 아이들에게 선물이 골고루 전해졌다. 어린이날에 선물이라니 너무 고맙고 흥분됐다. 내가 받은 건 포장지 속 연필 한자루와 지우개였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런데 내 친구는 종합문구세트를 받았다. 주변 대부분 아이들은 문구세트를 나 포함 몇명은 연필과 지우개.
내가 친구보다 못된 아이인걸까 나쁜 아이라 그런걸까.성경책을 잘 외우지 못해서일까. 어린 나는 이 차별이 나로 인해 생긴 내 책임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친구말이 부모가 같이 다니는 아이들은 문구세트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그 차별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 후 교회를 멀리했지만, 깨달은 것이 있다. 차별을 선물해선 안된다. 이것도 어디야 감지덕지란 없다. 기분나쁜 선물을 받은 것이다 나는. 차별이란 선물. 이 책 속에서 소개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추석선물처럼.

능력주의에 숨어 있는 편향된 차별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꾸준히 차별받아왔다
성적으로 외모로 집안환경으로.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억울하긴 하지만 내가 못나서라고, 그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만연되어 있는 차별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차별하는 사회와 차별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지 , 차별받는 이의 잘못은 없다.
내 아이가 어느 곳에서든 그저 아이의 외모나 성적 집안환경으로 막말과 무시속에서 좌절과 패배감부터 배운다면 어떨까. 우리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나는 그랬지만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기를.
그러나 우린 어른이 되면 우리가 가진 기득권들을 지키려 차별주의자가 된다. 상처를 주고 차별을 하며, 내가 사랑하는 아이에게까지 그 차별의 잣대를 댄다. 무의식속에서 세상의 차별에 익숙해져서이다.

매년 학기초마다 낯선이들 틈에서 “우리”가 되기위해, “그들”을 무시하기도 했던 어린 시절, 결국은 우리도 그들도 상처였던 기억이 난다.

차별받으면서도 상처받은 마음으로 옳지 않은 차별을 없애기보단, 언젠가 그 차별을 행할수 있는 자리에 오르길 기다린다. 그러니 차별이 사라지기가 힘들다.
그러니 언제나 사유해야 한다.
차별이 만연한 곳에서 차별에 익숙해져 차별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모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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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9-05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을 글보고 반성 많이 했습니다!ㅠ 무의식속에 존재하는 차별이 저를 뚫고 나오지 못하게 긴장해야겠어요! 즐건 주말되십시요!ㅎ

kpio99 2020-09-06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모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너무 와닿는 말이네요.

goeka3850 2021-06-09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온화하신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