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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평점 :
“파리를 배회하는 폴라뇌르” 드가를 표현하는 말이다.
(폴라뇌르는 도시를 거닐며 구경하는 사람들, 오스만의 도시 재배치 후 파리는 몰라보게 세련되고 걷기 좋은 곳이 되었다. 속도와 변화 속에서 느긋하게 자신의 속도로 걸으며, 들어오는 풍경과 사람들을 그린 드가, 말년엔 시력을 잃으면서도 길을 걸었고, 간혹 경찰의 도움을 받고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드가 하면 떠오르는 것? 아마 발레 하는 소녀들일 것이다.
벨 에포크 시대, 노동하는 여인들을 그리며, 그 이면의 추악한 면도 담았다. 발레 하는 소녀들 뒤에 서 있는 늙수그레한 신사들은 후견인이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어린 소녀들은 발레를 배웠고 프리마돈나를 꿈꿨다. 그리고 돈 많은 후견인들에게 발탁되어, 가난한 내 가족들을 먹여살리고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리는 꿈을 꿨는지도 모른다. 도시의 공장노동자로 혹은 버스 안내양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다 결국 다방이니 클럽에서 돈을 벌어야 했던 70년대의 수많은 영희와 순희를 생각하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딸의 운명이란 유럽이든 어디든 비슷한가 보다. 아름답게만 보였던 드가의 그림 속 귀퉁이에 그려진 신사의 모습이 음흉해 보이고, 춤동작을 연습하는 발레리나는 거미줄에 걸린 연약한 나비처럼 처연하다.
본명은 일레르 제르멜 에드가르 드가. 1834년생에 우리나라식으로 치면 파란말띠다.
혁신과 전통이 공존하는 파리에서, 전통적이면서 도시적인 느낌을 담아, 체계적이면서 본능적인 그림을 그린 그가 가장 파리다운 화가가 아닐까 .
드가의 삶은 단순했다. 그리고 또 그리고..
인상파 화가들의 대장격이었고, 시력을 잃어가는 그 날까지 그림을 그렸던 화가. 부유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궁핍해져서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 모로와 친했지만. 결국 둘의 예술관은 달랐기에 서로 조롱하며 멀어졌다.
마네는 그에겐 스승같은 존재였다. 드가는 마네부부의 그림을 그려서 선물로 보낸다. 그런데 어쩐 연유인지 마네는 자신의 아내가 그려진 부분을 잘라내고 만다. 그럼에도 절교는 하지 않은 걸 보면 드가가 마네를 많이 좋아한 것이 아닐까.
드가는 카유보트나 메리 커셋, 베리트 모리조 등의 화가들을 인상파 단체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메리 커셋은 미국 대부호의 딸이었다. 인상파 그림들이 미국에 소개될 때 그녀의 인맥이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그녀의 소꼽 친구인 루이진은 설탈왕으로 불렸던 대재벌의 아내로, 수 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사 들였고, 그 그림들이 지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채우고 있다.
카페 게르부아에서 인상주의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카페 콩세르에서 음악과 춤을 감상하며 수 많은 여인들을 그린 드가, 그가 그린 다리미질 하는 여인의 모습과 춤을 추는 무희들, 노래 부르는 가수들 모두 살아 있는 듯한 움직임과 생동감을 가지고, 그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어린 발레리나와 엄마가 같이 있는 것이다. 초초한 발레리나와 그 옆에서 같이 마음 졸이며 있는 엄마, 이 가족의 가난탈출은 갸녀린 딸의 발목에 달렸다는 게 느껴진다. 가난의 서글픈 긴장감.
두 번째 그림은 마네와 드가, 같이 장면을 잘라버렸지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드가가 살았던 시절과 드가가 영향을 주고 받았던 화파와 친구들의 이야기, 그가 그렸던 발레리나와 세탁부 등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벨 에포크, 그 좋은 시절 누구는 그렸고, 누구는 좌절했고 누구는 춤을 팔고 누구는 노래를 팔았다. 서글프고 추악한 상황들이 너무 고운 파스텔의 색감으로 캔버스 가득 내려앉는다. 현실은 절박한데, 그림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