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속의 백설공주는 기득권의 가차 없는 폭력에 쓰러진 가엾은 약자‘의 표상으로 보는 게 합당합니다. 왕자는 공주의 슬픈 사연을 듣고그것을 자기 일처럼 여긴 사람이었지요. 이야기는 난쟁이들이 백설공주를 차마 땅에 묻을 수 없어 유리관에 넣어 산 위에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공주의 ‘안타까운 역사‘를 세상이 알도록 한 것이지요. 왕자가나서서 관을 지키려 한 것은 그 역사를 잊지 않고 기리려 한 일로 볼수 있습니다. 그 애도의 마음을 이야기는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왕자가 관을 넘겨받을 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백설공주의목에서 독사과 조각이 튀어나와 공주가 되살아나지요. 현실로 보면말이 안 되지만 설화의 상징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누군가의 슬프고 억울한 사건을 외면하지 않고 같은 편이 되어 나서자, 숨겨진 음모가 드러나면서 왜곡됐던 일이 제자리로 돌아온 상황으로 볼 만합니다. 진실의 승리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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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뜨기에 관하여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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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작가님 과수원에 불을 지르자는 소리가 나오는지 알겠다. 그러나 생각만 하자 , 방화죄는 생각보다 형량이 세다.
별자리를 만드는 이와 외계방언,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봄씨를 심어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 청춘이 있었지. 청춘만 봄을 기다릴까. 믿으면 마법이 된다지만, 내 믿음뒤엔 나 자신 조차도 모르는 불신이 있나보다. 끊임없이 자신을 살해하는 선장이야기나 설어이야기는 짧고 멋진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하다. 엘사가 설어군단을 이끌고 오는 짬뽕같은 상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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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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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이 그래도 선하다고 믿고 싶었다.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보통의 평범함이 주류일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사람들은 더 많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엔 잔인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노동을 팔아먹는 용역, 이것이 시작이지 않을까. 쉽게 해고하고 책임지지 않아도 되도록 사람장사를 하는 용역. 시급 노동자들을 등쳐먹는게 바로 사람장사.

가지지 못한 자들이 더 멸시하고, 눈꼽만큼의 권력에도 내가 나인 세상.
책 속 세상은 천박하다 못해 처연하다.
영어공부를 하는 할머니, 따스했던 몇 몇 이들을 만났지만 결국 작가는 수 많은 상처와 병든 몸으로 다시 임계장으로 섰다.
수많은 장년층들의 모습이다.
퇴직을 해도 갈 곳도 없고 넉넉할 것도 없다.
왜 주식도 부동산도 재산도 없냐고 자식들이 물으면 뭐라고 할지, 왜 바보같이 살았냐고 그래서 이 꼴인거라고 말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성실하고 그렇게 열심히 살면 최소 인간답게는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읽고 나니 두렵다. 감동도 슬픔도 있지만 더 큰 건 두려움.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나는 늙어가고 있다.
돈으로 갑질로, 물과 기름처럼 확고히 갈라지는 세상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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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 56년생 빨간 원숭이띠시다.
삶을 기록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녀의 글은 거미줄처럼 섬세하고 가늘다. 그런 거미줄은 겉보기보다 아주 질기다. 그녀의 글도 그러하다. 가늘고 섬세하다. 떨리듯 끊어질 듯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임을, 굵은 물방울도 , 햇살에 반사된 큼직한 무지개도 애처로운 날개짓의 그 무언가도 모두 단단히 질기게 매달려 있다. 그녀의 섬세하고 가녀린 글에도 무겁고 따뜻한 삶의 소중함들이 아름다운 문체로 조롱조롱 떨어질듯 말듯 매달려 있다.

다시 꺼내 읽은
<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불완전한 사랑.
완전한 사랑은 있을까
가난해서 너무나 가난해서, 가난이 만든 학대 속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양 손에 가득 들고, 울음을 삼키는 법만 아는 루시 바턴의 이야기다.
부모의 사랑도 불완전하다. 베트남에서 두 남자를 죽인 그래서 삶 자체가 고행인 가난한 남자와 그런 남자를 사랑하는 가난한 여자가 부모가 되어 세 아이를 낳았다. 루시는 묻는다. 나를 사랑했냐고.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엄마 또한 상처 많은 어린 시절을 거쳐 엄마가 되었고 자식들을 위해 나름의 힘들고 불완전한 사랑을 했음을 알지 않을까.
루시는 자신의 이야기,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았다.
(엄마에게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엄마는 바보같기는 이란 말로 대답을 회피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입 밖에 낼 줄 모르는 이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다. )



그리고 < 올리브 키터리지>
독특한 여성 캐릭터다 . 퉁명스럽고 고집도 세다. 큰 덩치에 사과 할 줄 모르는 여인.

성장소설하면 누구나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년과 소녀를 떠올리겠지
그러나 예순의 나이에도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의 성장소설이 여기 있다. 반평생을 같이 한 배우자를 보내고 홀로 세상에 서면서, 세상의 전부처럼 사랑한 자식의 입에서 당신때문에 힘들었다는 가슴을 후벼파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다시 성장한다. 노년의 두려움과 죽음과 생에 대한 질척함은 또 다른 성장이다.
두렵고 힘든 새로운 노년의 삶, 사춘기와는 다른 성장통이다.
외롭고 그립고 사랑이 필요한 칠순의 노인들을 보며, 삶은 언제든 상실 속에 다시 성장하고 피어나고 하나보다.



왜 이렇게 울컥하지
벌써 내 삶은 노년으로 발동을 걸며, 이제 노안이 온 처럼 삶을 보는 눈조차 뿌옇게 되겠지.
흘러간 노래와 반복되는 드라마를 보며, 익숙한 과거를 떠올리게 될까. 아니면 심장에 무리가 온 듯 누구가를 사랑하게 될까
다 지쳐서 인생을 마무리할 때쯤 어처구니없이 서로를 진짜 알게 될까

돼지가면 속 여드름이 곪어가는 소년의 울음과 거식증으로 비쩍 마른 등뼈의 니나
떠나버린 아들과 수십년 키운 아들을 엄마보다 더 잘 안다는 듯 단정짓는 잘난척척 박사 며느리 , 그리고 그런 아들의 이혼과 착하지만 맹해보이는 앤과의 재혼, 아들이 내뱉는 엄마에게 받은 상처들.
올리브는 쉬운 사람은 아니다
무서운 선생님이고, 남편에게도 그리 쉬운 아내는 아니었다. ( 실제론 누구보다 따뜻하다. 그녀의 유머도 좋다)어릴 적의 충격은 그녀를 그렇게 괴팍하게 만든걸까. 아들의 상처를 알기나 한걸까


인생은 여행바구니같은 것.
알면서도 속고, 아니면서 희망하고. 그러다 제 꾀에 넘어가 믿어버린다 진짜인듯. 내 여행바구니를 보며 그 속에서 내가 숨기고 살아가려 몰래 넣어 놓은 가짜약들을 본다. 그리고 아직은 진실을 알고 싶진 않다. 여행바구니를 버릴 때가 아직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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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13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너무 좋아하는데 이 글 너무 좋습니다, 무서운 선생님이고 무서운 아내였지만 그래도 도망가자는 동료 교사의 말에 그러자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일흔 넘어 시작된 로맨스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죠. 너무 좋아요, 올리브. 글 잘 읽었습니다!

mini74 2020-11-13 10:26   좋아요 0 | URL
저도 올리브란 인물 정말 매력적이고 좋아요 *^^* 다시 올리브 가 오늘 배송된답니다*^^* 씬나요 ㅎㅎ

레삭매냐 2020-11-13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히 스트라우트 유니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자신이 쓴 다른 작품에 등장
하는 캐릭들도 등장하고...

젭알, 올리브 트릴로지로 마무리해
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mini74 2020-11-13 11:07   좋아요 1 | URL
래샥매냐님 다시 올리브 서평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오늘 책이 온답니다. 오랜만에 설레요 ㅎㅎ
 

첫끝발은 개끝발이야
첫 발표에서 1차 탈락을 한 아이에게 호기롭게 이야기했지만, 인생에서 이렇게 공식적으로 그리고 일말의 동정이나 배려없는 “불합격”을 처음 겪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먹먹하다.
간장이 스며드는 어미게처럼, 아이의 풀 죽은 목소리가 그 애잔함이 구석 구석 짜고 아프고 따갑다.
내게도 처음이다. 내 아이가 힘들어 한다. 금요일에도 다음 주에도 다른 학교들의 1차 발표들이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내가 대신 할 수 있는 자리라면. 예전 고3 엄마들을 보면서, 난 대범하고 여유로우며 위트있게 상황을 대처하리라 결심했다. 여유는 개뿔, 그 때 나는 우리 아이는 실패하지 않을거란 만용으로 그 딴 생각을 머리 속으로 지껄인거다. 아.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저의 오만함을 용서해 주세요.

예전 읽었던 <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을 꺼내들었다. 좋아하는 책인데 글자들이 제 멋대로 흩어진다. <올리브 키트리지>를 꺼내든다. 두근거리며 산 책인데 도통 페이지가 나가지 않는다.
호들갑 떨지 말고, 겸손하고 조용하게 기도하는 밤.
어릴 적 틀에 박힌 듯한 삶, 어른들이 정해 놓은 길을 가야 하는 게 싫었다. 멋져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 때엔 최소한의 안전표시와 친절한 안내표지판이 있었다. 우회전과 좌회전을 알려주는, 그 때는 그게 속박같았지만, 그런 최소한의 표지판 없이 깊은 밤 같은 세상에 서서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야 했을 때, 그 땐 또 간절히 작은 힌트라도 희미한 표지판이라도 있길 바랐다.
아이는 성인으로 가는 길목에 섰고 인생에서의 거의 첫 번째 관문에 서 있다. 앞으론 이 것보다 더 많은 길 앞에서 수 많은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책임과 후회속에 서야 한다. 그 길이 보이기에 , 오늘의 불합격은 그저 시작일뿐임을 알기에 더 마음이 스산하다.

(그 와중에 올리브 키트리지에서, 자살하려고 왔다가 절벽에 매달린 초등동창생을 구하려는 단편이 생각난다. 죽으러 온 자의 손을 잡고 살려는 자의 그 의지와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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