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 특별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3때 이른 대입 합격 후(수시1차 이후 놈팽이 취급당함) 교실 뒷문쪽 끝좌석에서 주구장창 책 읽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읽었던 '카스테라'와 '핑퐁'은 상상력이라곤 1g도 갖고있지 않는 초 현실 주의 인간에게 재미난 세상을 알려준 저자였다. 한참을 잊고 살았다. 눈 앞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큰 세상을 구현해 준 저자의 글이 나에겐 낭만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데 말이다. 거진 20년만에 읽게되는 저자의 이야기들. 2008년 온라인 연재부터 17년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작품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개정판으로 나왔다. 들어는 봤지만 흘려들었던 제목. 토요일 오전 청소를 한다고 틀어둔 KBS 영화가 좋다의 소개영상에 홀려서 예고편을 찾아봤고, 원작이 궁금해졌고, 내가 알던 그 이름이라 반가워 더욱 기쁘게 마주 할 수 있었다. 역시 나에겐 영상으로 된 것보다 활자로 된 것이 더 좋다. 예고편의 세 인물들을 머릿속에 입력 해 두고 소설 속 그들의 이름에 이미지를 밀어 넣은 후 장황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으며 구구절절 늘여놓지만 절대 허무하지 않은 소설 속 나, 그녀, 그리고 요한에게 사랑의 정의를 묻고 또 묻게 된다.

뒤늦게 인기 배우가 된 잘생긴 남자, 그런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못생긴 여자. 성공과 함께 가족을 버리고가는 남자를 탓하거나 붙잡지 못하는 여자. 그게 이야기 속 나의 부모들이다. 시간이 흘러 스무살의 나는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그녀와 요한을 만나게된다. 아버지를 닮아 잘난 얼굴을 한 나와 누구도 쳐다보기 싫어하던 못생긴 그녀. 그리고 그들의 청순보다 먼저 살아본 조금 더 큰 어른이자 그네들의 대나무밭과 같던 요한. 그와 그녀는 사랑했지만 그걸로 완벽한 엔딩은 이루지 못한다. 요한은 아팠고, 그녀는 떠났고, 그는 그들을 그리워했고 시간이 흘러도 다시 찾겠노라 마음을 먹으며 일련의 사건들을 버텨낸다. 못다 부친 편지, 한번 더 찾아보지 못한 병원. 시간이 흘러도 이 마음에는 한 점 부끄럼이 없으니 부디 그대들이 그때를 부정 할 수 없도록 많이 늦었지만 오롯한 그 마음을 전하는 긴 시간을 담아두었다.

📖그보다는...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기뻐. 너와 함께한다는 사실이... 지난번엔 문도 열지 않았던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뻐. 벽난로마저 있고, 이렇게 따뜻하다는 사실도. 이제 또 어떻게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스무 살이 되었다는 사실도 기뻐. 눈이 오는 것도 기쁘고, 저렇게 조명이 반짝반짝 하는 것도 기뻐.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눈물을 그쳐서 기뻐. 양이 얼마 되지 않는 그 밥을 다 먹어준다면 더 기쁠 것 같아.

뭔들 안 행복 할까. 모든 여건이 불행하다 할 지라도 그의 눈에는 우리 둘을 축복하고 있다는 과한 착각을 하게 되겠지. 좋아하는 마음에 눈이 먼 자는 세상이 다 사랑스럽게만 보일 뿐이니까. 상대가 밥만 잘 먹어줘도 세상 뿌듯한 것 처럼,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어미새의 기운이기도 하니까.


📖이 포크를 봐. 앞에 세 개의 창이 있어. 하나는 동정이고 하나는 호의, 나머지 하나는 연민이야. 지금 너의 마음은 포크의 손잡이를 쥔 손과 같은 거지. 봐, 이렇게 찔렀을 때 그래서 모호해지는 거야. 과연 어떤 창이 맨 먼저 대상을 파고 들었는지... 호의냐 물으면 그것만은 아닌거 같고, 동정이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란 거지. 뭐, 맞는 말이긴 해. 손잡이를 쥔 손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상대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어. 처음엔 어떤 창이 자신을 파고든 건지 모호해. 고통과 마찬가지로 감정이란 것 역시 통째로 전달되기 마련이지.

신경이 쓰인다는 감정이 먼저일까, 마음이 간다는 기운이 먼저일까. 요한은 자신이 느낄 감정 말고, 상대가 받게될 마음의 기운에 더 집중 하라는 듯 대상과 감정을 꺼내 사물화 시켜 다각도로 들여다 보길 권하고있다. 호의 와 연민, 동정과 고통. 멋대로 해석하는 방식 말고 직시하여 바라보길. 바람나 도망간 아버지와 머문채 붙잡지 않고 기다리기만 했던 어머니를 보듯, 그렇게 직시하길. 남들도 그리 볼 수 밖에 없는데 그 모든 시선을 거두고도 모호한 마음을 떨궈 두며 오롯이 좋아한다고 확신 할 수 있을지. 이건 그와 그녀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을 주저하고 고백직전의 모든 청춘들에게도 동일한 물음이었다.

📖그 친구를... 좋아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좋아해주고 싶은 거니?

연민과 애정 그 모호한 마음. 측은과 애틋으로 어느하나 명확하지 않은 흐리멍텅한 전달. 어쩔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 할 테니까. 예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았으며, 특출나지도 않은, 그야말로 무엇하나 또렷함이라곤 없는 그녀로 인식하는게 일반적인 사람들인데 너는 무엇이 보였고 무엇에 홀려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싶을 만큼 커진거냐는 요한의 물음은 나 또한 묻고픈 지점이었다. 요한이 그의 집안 사정을 다 알고 있을진 모르겠으나 어머니에 대한 여운이 비춰 박애주의 같은 마음인지, 아무도 못보는 그녀의 또 다른 찰나를 사랑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첫눈에 반하는 그 시간과 시선, 그 순간이 궁금하기도 하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남은 못 본 면면은 그가 봤을 수도 있는 거니까. 설령 그게 눈에 들어오는 외형이 아닐 지라도 말이다.


📖변함없고 저렴한 삶이 끝없이 이어진다 해도, 역시나 갈 길을 알 수 없다 해도... 나는 이 평범한, 작은 손 하나를 언제까지라도 놓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시절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애틋한 마음을 닮은 그 시절 노랫말이 떠올랐다.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요.' 라며 단언하듯 확신에 찬 말을 하는 신해철님의 그대에게. 그러니까 상대에겐 불안해하지 말기를. 결국 나는 그대 곁에 있겠노라는 마음은 변할 일이 없다는 확신이 '사랑해'라는 직관적인 말보다 더 폭닥한 말로 내 품에 안겨드는 기분이다. 아마 그와 그녀는 모든 노래 가사가 자기들 이야기처럼 느껴지고있겠지. 사랑은 그런 거니까.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얼굴 좋아보인다? 너 연애하니? 라는 말은 괜히 나오는게 아니겠지. 화색이 도는 이유도 그 이유와 일맥상통 할 것이다. 들어주고 바라봐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 그래서 그 믿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존재의 유일함을 드러내기 위해 무던히 애쓰는 과정. 비단 외모를 가꾸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끼고 나를 아껴주는 상대를 더 애틋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강한 무언가. 그러니 사랑을 할 수록 서로가 빛날 것이고, 빛이 나는 존재의 옆에서 그늘이 될 수 없으니 더 열심히 반짝이는 부지런함을 보이는 거겠지. 그러니 그대여 부디 어둠에 잠식되지 않길 바란다. 빛도 전염되듯 어둠도 전염성이 짙은 것이니 일단 넌, 널 좀 사랑해줘. 그래야 그 빛을 따라 널 사랑하는 나도 사랑 할 수 있으니.

📖물론 모든 원인은 제게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머뭇거리는... 머뭇거릴 수... 밖에 없는 그런 인간이니까요. 그런 저를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당신에게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나라는 여자에게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결국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렀고, 전하지 못하는 말들은 늘어나고, 그와 그녀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고있고, 열망하던 마음의 불꽃도 꺼트려질까 조마조마한 것. 소진한 마음이 아니라 소실한 자신감이라 적어두고싶다.


📖뒤돌아 헝클어진 삶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아프지 않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나와 당신이 무사하다는... 우리가 무사하다는 기억을 저는 꼭 가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제가 이 곳을 찾은 이유의 전부란 생각입니다. 당신이 무사해서... 당신이 무사하니까 이제 저도 무사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이 대목에서는 이도우님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생각났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애어른 같은 시절을 지나 이제는 누가봐도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시기의 그들. 마음에도 굳은 살이 박혀서 그 시절의 꽉 닫힌 사랑의 결말이 아니었음을 탓하기 보단 그 때엔 그럴 수 밖에 없었던거지. 라는 이해와 단념의 마음이 비춰졌다.

아름답지 않은 여자가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아름답지 않은 여자가 주연이 될 수 있는 이야기. 헌신하는 못생긴 여자는 자신의 부당함에도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세대가 바뀌고, 시절이 변한다 할 지라도 누구도 쳐다보기 싫어하던 못생긴 그녀 또한 사랑을 받는 일련의 날들을 바라지만 또 다른 인류인듯 소수자로 분류되며 그러한 시선들이 없는 곳으로 떠난다. 잘나고 예쁜 사람만 있는 세상도 아닌데 모두들 하나같이 그들의 삶이 우리의 전부인냥 표현하고있다. 저자는 외모 경쟁에서 불리한 여성들, 늘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여성들을 위한 일종의 연사라고 했다. 부의 소유 여부, 또한 미모의 존재 여부에 따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덧불 일 수 있는 것이 '사랑의 힘'이라 했는데, 이야기 속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볼 때 어머니는 그 사랑의 힘을 갖지 못한 채 맺어진 연이었고, 이야기의 나와 그녀는 또 어떠한 관계의 이동이라 봐야 할까.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듯 매번 주저하고 붙이지 못한 마음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라도 표현했던 후반의 내용. 세월이 흐르고 그때의 감정이 잔재처럼 흔적만 겨우 확인 할 수 있다 할 지언정 그래도 날 사랑하냐는 물음에, 그럼에도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단언의 한 마디.

매번 비교하고 눈치보며 주저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덮어버릴 만한 상대의 꽉찬 대답. 그거 하나면 살겠다. 그걸로 살아가겠다 싶은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의 이력이 남다르다. 만년 이야기꾼이라 할 만한 직업군이더라. '그것이 알고 싶다' 담당,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메인 연출자. 방송 콘텐츠를 통해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는 실력 검증된 직업 이야기꾼이라는 것. 현장에서 목격해온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사건 사고 속 인간의 내면 , 관계, 사고방식에 관심을 갖고 쓴 글이 이 책에 담겨있다. 이야기를 보이기에 앞서 일러두기를 통해 이 중 일부는 실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지만, 등장인물, 지명, 단체 및 주요 에피소드 및 결말은 허구의 창작물임을 언급했다.

뼈대는 실화, 살집은 더욱더 확장된 저자만의 글빨로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을 야금야금 긁어 모아 둔 겪이다. 일단 이야기 속 그들은 현실감 넘치게 살아있는 인물로 다가왔다. 분리된 책장 너머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 이었다. 알만한 사람들에 그럴만한 이야기들이 잘 버무려진 것으로 그 상황이면 나라도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으며, 이것은 본능이 이기심과 죄책감을 먹어버린 상태였고, 그 끝에는 욕망으로 마무리 짓게하는 인간의 변화 과정을 그려두었다.


📖위로를 받을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연습해본 적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가 슬퍼서 그러는 줄 알고, 더 열심히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래,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자.

아내도, 쌍둥이들도, 어쩌면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삶이란 과정 자체도 완벽한 진실이 아니었으리라 간주 해 본다. 더 크게 보면 이 사람의 인생 전부가 진실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 학습화된 것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하는 반응들을 완벽히 습득하였고, 제대로 답변한 걸 보면 이 사람은 아주 바르게 산 사람이라 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사는 사람 꽤 많을껄?


📖내가 원한 건 영웅이 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을 뿐이다. 처음 신고한 일요일도, 그리고 오늘도.

타인의 눈에 들어야만 먹고 사니즘에 제약이 덜 한 세상. 예쁘고 잘나고 과시할 것이 많아야만 주변에서 귀담아 들어주는 것. 다들 시녀라 하질 않나, 파리가 꼬인다 하질 않나. 그딴 하대하는 말로 주변을 바닥처럼 낮춰 말하지만 그러한 무리를 무시 할 수 없어 드럽고 치사한 사회임을 보여준다. 이야기 속이 아니라 그냥 우리 동네, 우리 회사이야기라 너무 또렷하게 이 장면들이 구현되고 있었다. 소신은 모르겠고, 영웅은 말도 안 되고, 그냥 진실을 이야기하며 배운 것을 그대로 행하는 일. 옳고 그른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야하는게 그게 후순위가 되고, 뒤늦게 주목받는 흐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사람과 똑같은 말로 동전 뒤집듯 이랬다 저랬다 하는 주변인의 반응들. 거기엔 그들의 소신이 없다. 눈알 굴려가며 여론에 따라 앵무새처럼 따라 말하는 것만 있으니 이들에게 줏대라는게 애초에 있긴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상을 뒤엎고 싶은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다음에'가 떠올라서였다.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는 것은 당장 다음달의 공과금 납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밥 한끼 정도는 맘 편히 먹을 수 있는 삶이라는 것으로 이어진다. 자존심이 밥먹여 주냐는 소리가 있지 않던가. 자존심이랑 돈은 결코 일치 되지 않는다. 그들이 주는 술과 비릿한 고기 한점과 함께 오장육부 속으로 꾹꾹 눌러 넣어두어야하는게 자존심이다. 유명한들 유명하지 않든 나보다 우위에 있다 여겨지고, 나한테 돈 주는 물주들에게는 절로 굽실거려지고 모든게 가능하다는 예스맨이 될 수 밖에 없는 건 이들이 떨궈줄 콩고물이 너무 달큰하고 꼬소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인성이 나쁜 사람'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게 바로 '무능한 사람'이다. 내가 바로 바보 같은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사실

한낱 관심과 주목에 심취해서 가장 기본이라 여기던 것에 무심 했을 때. 그간 쌓아온 공이 소실 될 수 있다는 것. 우리도 다들 겪어봤지 않나. 같은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있는 동료가 인성 쓰레기로 싸가지 밥 말아 먹었냐 하더라도 상사가 말하는 개떡같은 지시에 찰떡같은 피드백으로 해결하는 일머리 있는 놈이자 사리분간 할 줄 아는 놈이 제일 사랑받는 다는 것. 사람 착해서 뭐해, 착하다고 일 잘하는 건 아냐. 착한 놈 보듬어 같이 으쌰으쌰 하면 지옥문으로 어깨동무하고 들어가는 겪이라는 걸 사회생활 16년 가까이 해 본 사람으로서 아주 뼈져리게 실감했으니 이건 맞는 말이다. 무지와 무능은 어떻게 뒷덜미 잡고 같이 못 올라가는 놈이다.


📖내가 바라던 복수의 시간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도 난 여전히 기쁘지 않았다. 알맹이가 사라진 껍데기가 된 기분이었다.

10편의 단편을 통틀어 나는 이 아이가 제일 짠하다. 그리고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 다는 것 또한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 또한 믿지 않게 해 주었다. 제 버릇 개 못 주는 것도 맞는 말이고, 나도 사람이지만 사람 고쳐쓰는 것이 아님을 완벽하게 알려주는 단편이기도 했다. 인간의 본질이라 하지 않던가. 바뀌면 죽지, 어떻게 살겠어.

그래서 더더욱 이 아이의 복수와 집념이 너무 정석의 대응같아 미련하게 보일까봐 우려스러워진다. 옳은 길을 갔고, 꿋꿋하게 버텼고, 꼼수를 쓰지 않았으며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았기에 완벽한 복수인데도 마음 한 켠에 남는 허탈함이 계속 이 아이를 붙들고 있어 보였다.

혼자만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복수처럼 보였다. 저기 고깃집에 앉아있는 선생이라는 작자들은 왠 미친놈이 깽판부리고 간거라고 치부하게되겠지. 내년에도 후년에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을게 빤했다. 거기서 끝이면 다행인데 질겅징걸 씹힐 술안주거리로 학교 선생들 회식자리마다 망령처럼 겉돌까봐 마음이 쓰리다. 이 단편은 그런 소설이다. 남의 불행 중에서 가장 짠내 그득해서 내가 뭐라도 해주고픈 그런 이야기. 확마, 콱마, 언니가 저것들 언론사에 꼰질러 뿌까? 이렇게 이 아이의 시절을 추켜세워주고 너는 너대로 잘한 일이라고 허투루 쓴 시간 아니라 백번 천번 말해주고싶다.

악한 놈은 끝까지 악할 거라는 생각은 당연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악을 품는 과정을 그려두었다. 그래서 계속 읽게 만들었고, 이야기 속 그들이 '오죽하면...'이라는 생각으로 저럴 수 밖에 없음을 공감하게 만드는 씁쓸한 동요를 이끌었다. 각각의 단편들을 보면 총 10권의 이야기로 구성된 김동식 소설집이 떠올랐다. 김동식 소설집의 등장인물의 이름은 다 거기서 거기이다. 몇 안되는 인물이름이 각각의 단편에서 존재는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속 성향은 다른 인물로 다시금 인물 세탁이 되어 인간의 딜레마를 보여주곤 한다. 지금 읽고있는 이 소설집의 단편은 김동식 저자의 책 만큼이나 불행의 무게는 비슷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했다. 좀 더 다양한 인물과 좀 더 길어진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왜 그러한 마음을 먹을 수 밖에 없는지를 슬쩍 내비쳤고, 이러한 사달이 나게 된 것은 꼭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듯 자신의 입장을 토로하고있다. 언제나 이야기의 끝은 씁쓸하고 깔깔하다. 개운한 마무리가 없다. 그래서 날것 상태인 인간의 맛이라 할 수도 있겠다. 모르고 살았더라면 행복했을까 싶은 인물들의 속내. 끝까지 감추었더라면 각의 이야기속 '나'는 답답해 죽을 듯 틈만나면 대나무 밭을 찾았을테고(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쳐야 하니까) '나'이외의 사람들은 아주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마치 모르는게 약이라는 듯 해맑게.

때로는 진실을 감춰야 모두가 편히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삶도 있고, 소신을 감추지 않아야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상황도 있다. 다른 이들은 줏대 없다 한들 자신을 찾아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삶도 있으며, 사리분간 못하며 한낯 유명세에 정신 놓고 살다가 뒷통수 된통 맞으며 인생공부 빡세게 하는 시절도 있겠지. 절실한 사람들의 멱살을 쥐고 있는 검은 속내의 사람들은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듯 잘못을 모르고 사는 배우신 양반들이 허다하기도하며, 원하는 정규직을 이뤘으나 이게 족쇄가 되어 이전보다 더 지친 상태로 버티는 삶이 있다. 제대로 인간군상의 이판사판 아사리판이라는 건데 어쩌겠나, 그게 사람사는 판세인걸.

행복을 바라고 행운을 기대하며 불안을 멀리하려고 아등바등 살지만 매번 발치에 들러 붙는것이 불행이었다. 결국 이건 내가 떠안고 살아야하는 그림자같은 놈이구나를 실감하게된다. 이들은 불행의 골짜기에 제 발로 걸어가는 게 아니다. 원치 않았던 것이고 피하려 하다가 개똥 밟듯 운 나빠서 미끌리는 순간들도 허다하다는 걸 알려주고싶다.

남의 불행을 먹고 살아도 될 만큼, 내 장기 속에 불행의 울화가 켜켜이 쌓인다 한들 나를 둘러싼 것들은 그래도 덜 불행하길 바라며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길 바라는 인간 욕망이니 이걸 마냥 해코지하고 밉게만 봐야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짠한 놈으로 여기면서 그럼 그만큼 행복하게 살게 냅둘테니 너는 너대로 죄책감과 팔짱끼며 2인 3각으로 양발 붙들린채 느리고 굼뜨게 살라고 귀여운 악담을 해 줘야 할지 답이 명확하게 서질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속의 세대
백온유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냥 뜬구름 잡을듯한 허상의 이야기도 아니니 각각의 단편은 깊은 몰입감과 진한 자기 이입으로 이야기속 등장 인물들에게 베여들도록 만들어두었다. 치열하게 쓰고 다듬었다는 중단편들. 인물간의 구성은 현실에 있을법한 소재들이라 익숙함에서 오는 긴장감을 주었고, 인간의 모순의 과정을 지켜보게 만들다보니 나 또한 이러한 인간이 될 수도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느낌도 들었다.

헌신과 인내는 결국 보상될 것이라 믿는 관계 속에서 기만과 배신을 마주한 사람들을 비춰낸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 비롯하여, 친구,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작은 균열과 그 틈이 점점 벌어지는 순간을 마주하는 인물. 절대 허구가 될 수 없는 에피소드들 속에서 나의 헌신과 응원은 누군가에게 제대로 닿을수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을 낭창하게 담아두었다. 상대에겐 사사로운 결정이었거나 한 마디의 흘려 뱉는 답변이겠지만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과 멀어지는 시발점이자 결국엔 끊어내게 만드는 관계의 절단으로 봐야하는 순간이다. 스스로를 챙기려면 끊어내는게 맞지만 때때로 그럴 수 없는 형태의 인간을 마주 할 때 어찌 대처하면 좋을지 독자에게 해결 방안 모색의 시간을 마련 해 준 책이라 정의를 내려본다.


가장 기초적인 관계이며 자아 형성 이후 가장 처음 맞닥들이는 조합이 가족이다. 부모와 조부모의 애착관계 형성에 따라 좀 더 확장된 사회적 관계의 원만한 교류의 기회를 기대하게 되는데 연수(의탁과 위탁 사이), 현진(반의반의 반), 하나(내가 있어야 할 곳)에게서는 제대로 된 반듯한 형성의 꼴을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뒤틀린 마음이라 했다. 📖미세한 각도로 뒤틀린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따금 부모 간에 작은 언쟁이 있으면 다시 안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미지근한 슬픔을 느꼈다. 때가 되면 주저없이 손을 놓을 수 있도록 연수는 스스로 마음을 다졌고 점차 부모에게 받는 사랑에도 무감해졌다. 이것은 결핍에서 갈구하는 애절함이 현실을 마주하고 단념과 단절을 택한 방향으로서 감정에 호소하는 방향을 끊어내고 일단 살아내야한다는 현실에 인생을 밀어 넣었다고 할 수 있다. 감정은 나중 이야기이고 일단 성인이 되기 전까지 법적인 보호자들이라는 이들에게 기생하여 살아야함을 직시한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어린놈이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내야만 하는 여건이었음에 '애가 뭔 죄라고'라는 씁쓸한 혼잣말을 하게 만든다.


📖왜 나의 필요를 채워주려 할머니는 희생하지 않았을까. 궁극적으로 현진이 궁금해진 부분은 그것이었다. 할머니는 마땅히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러기 위해 지금껏 부지한 목숨이라고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그런 존재. 라는 것으로 처음엔 이 상황을 겪으며 일반화된 가정과 비교하며 부정하게된다. 드라마에서든 고전 소설에서도 내리사랑이라 했고, 눈에 넣어도 안아픈 내새끼라는 듯 보듬고 귀하게 여기는게 어른과 아이의 관계였다고 좋은 면만 화두가 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아이들은 '왜 나를 낳아놓고 나를 탓하나'를 생각하며 존재의 가치마저 자학하는 경우를 마주하게된다. 버려진 동물과 식물은 잘도 데리고 왔으면서 자기 핏줄은 가장 후순위로 둔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가정솔루션 티비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심리상담에 대한 치료 센터 예약이 어려운 현실을 볼 때 행복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이유는 알게 모르게 당신들은 그러하지 못했으니 글 속에서라도 행복하고 싶었던 바람들이 녹여든 결과물이기도 했다. 문장에 녹아든 따뜻한 가정을 갈망했기에 어른들 세상에 정착하지못하고 부유하게 되는 아이들이 짠하게만 느껴진다.

혼자만 느낄 방구석 설움으로만 끝났으면 싶지만 세상을 이들을 가만히 냅두지 않았다. 세상은 더 냉정했고, 모두를 굽어 살핀다는 듯한 아량은 없다. 내가 이렇게 해주면 상대도 그에 상응하는 마음을 내어 줄 거라는 상부상조의 법칙은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영지(나의 살던 고향은), 광일(광일), 수영(회생)은 호의가 묵살 된 것 같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그들이라고 살아오면서 한번이라도 피해를 준 적이 없을까? 타인에게 해가 되도록 날을 세우거나 마음을 도려낸 적은 없었을까? 오롯이 자신만 보듬다보니 모르고 산 건 아니었을까! 믿음을 바라기만하고 제대로 된 믿음을 주긴 했나를 돌아 볼 때 각각의 인물들은 떳떳했는지 묻고싶다. 결국 도긴개긴으로 다 부서진 신뢰라는 폭탄 돌리기 수준이다. 📖이따금 신이 택시 기사의 모습을 빌려 사람들을 인도한다는 거예요. 인간은 자신이 신의 안내를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그 순간을 통과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건 기적적인 일이죠. 자신의 직업을 성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일을 존중하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 라 할 수 있지만 정도를 넘어선다면 자아도취에 빠진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간의 삶을 회상하는 혼잣말이나 손님과 광일 사이의 이야기 속 와이프에 대한 반응에 미간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일찍 오라는 말에, 저녁 해 둘테니 같이 먹자는 말에, 운전하는 사람에게 톡을 보낸다는 것에 그토록 과한 적개심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가장 가깝게 여기는 존재를 하대하는 과정 속에서 매번 우위에 있으려는 그의 욕망이 징그러워진다.

그 중 가장 멀리하고싶으며 억지로 연을 이어가려하는 상대가 진절머리나는 경우는 아마 수영이지 싶다. 신뢰의 정도, 믿음의 깊이, 거짓인걸 알지만 무조건 포용을 바라는 아량의 간섭. 한 사람의 거짓에서 시작되었다. 살아야 하니까 어떻게든 얻어내야 하니까 시작된 거짓은 진실을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했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짓의 시작점은 남보다 못한 관계의 단절이 되어버린다. 그 부서진 조각마저 하나하나 이어붙이며 괜찮다고 이렇게 모아두면 새것은 아니더라도 그럴듯한 비슷함을 보일거라는 착각에서 수영은 연지를 못 놓는다. 자신은 확실히 달라졌고, 직장도 다니며 반성하고 있음을 어필한다. 여전한 관계를 갈구하지만 연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피로할 뿐이다. 오로지 수영만 어쩔 수 없었다는 듯 그 때를 이해해달라는 낯짝을 볼 때 연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꽉 찬 이기심 속에서 너는 그 이기심이 더 나쁘다고 속이라도 시원하게 말해줬으면 싶기도했다. 혀를 차게 만드는, 남보다 못하다는 말이 머리속을 스쳤다.


이단 사이비의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어버리는 허상의 믿음. 내가 보는 것 보다 내가 바라는 것이 진실한 믿음이며 그 믿음이 세상을 바꿀거라는 과한 망상. 이렇게까지 빠져들며 나를 잠식시킨다면 헌신의 대가로 모든게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이 피어있는 소재.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어그러진 믿음의 표본이다.

그리고, 설마설마 하며 보게되었던 일련의 사건(내 또래가 연관되었으니 모를 수 없다). 이모네 부부와 조카 하나의 과거와 현재. 어린 하나가 겪었던, 누구하나 입밖으로 꺼내어선 안되는 사건. 학교에서 왕따만 당하던 아이가 불순한 사건의 가담자가 되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상황. 조부모의 주소로 이전해 자신만 전학을 갈지, 사연이 있어 한국을 떠난 이모네 부부가 있는 캐나다로 유학길에 오를 것인지에 대한 선택으로 어린 하나는 존재의 허탈함을 보인다. 의중은 묻지 않았으니까. 적응과 안정을 보일 즈음 하나는 다시 엄마의 손에 붙들려 한국으로 가버린다. 한참 시간이 지나 이모부도 세상을 떴고, 노년의 이모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정착하려 할 때 이모가 있어야 할 곳이 이곳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과 진짜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마주하게된다. 📖괜히 형제들 마음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것은 위선일까 허세일까 만용일까. 자신의 딸을 타국으로 보낼때완 다른 태도. 늙은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온다하니 그간 신세졌던 상황은 잊어버린듯 불편한 기색을 비추지만 정작 언니와의 통화해서는 무조건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다 준비해두었다는 말로 환대하는 목소리. 어느하나 일치되지 못하는 표정과 말들로 무엇을 빼앗길까 불안했던건지 생각해본다. 바라는 이는 없지만, 상대는 되려 빼앗길까 종종거리는 상반된 입장과 그 중심에 있는 하나.

헌신과 인내가 완벽한 보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때때로 바라지 않던 기만과 배신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그 관계를 끊어내는 게 맞을까, 만에 하나라는 마음으로 언젠가 자신의 의중을 깨우치고 상대가 뒤늦게라도 호의를 베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쥐고 사는게 맞을까. 믿음과 불신은 매번 그렇게 나란히 온다. 그래서 희망을 회수하러 왔다가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고 까끌거리는 현실만 덤으로 더 얻어가는 꼴들을 보았다. 각각의 단편들은 한 사람이 이 모든걸 겪어낼 순 없겠지만 주변에서 하나씩 나눠갖는 관계 속 떨떠름한 순간이기도 하다. 딱 내가 준 만큼만 받는 것 마저도 어려운 관계의 삶 속에서 우리는 헤프게 마음을 퍼주는 자선사업가의 삶을 살아야 마음이라도 편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계산기 튕겨가며 엑셀로 시트 만들어가며 내가 준 만큼 어느놈이 안주고 더줬나를 수치화 하며 눈알 붉히는 계산형 인간으로 살아야 할 까를 생각하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둘 다 완벽히 성에 차는 삶은 아니라서 한 놈에겐 손해보는 장사를 하더라도, 또 다른 놈에게는 악착같이 얻어내고 뜯어내는 반쪽짜리 인격으로 살 것 같아 반듯한 어른의 삶은 글러먹었으니 나의 주변인들에게 미리 사과의 말을 해 두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전 -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함윤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아이와 어른, 그 모호한 지점에 걸쳐있는 무르고 여린 청년이 보는 노동자들의 세상을 보여주고있다. 다들 스무살 넘어서는 높은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게된다. 그 빡빡한 시간에 쫓기다 한방에 몰아 벌고 학교 다니기 위해 공장으로 취업하는 앳된 어른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가정과 학교가 쳐둔 든든한 가림막에서 자라던 아이가 이제는 제 스스로 땅을 고르고 딛고 일어서야하는 과정이며 부모뻘 되는 어른과 함께 일하면서 이게 진짜 사회의 현실이구나를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정전 속에는 두가지의 큰 감정을 놓아두고 노동과 사랑에 대한 비중을 하나씩 나눠 갖고 있으며 마지막에는 그 둘의 주제를 한데 모아 정전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만들었던 이유를 풀어낸다.

사랑은 매번 쌍방이 될 수 없음을 막과 은단, 막과 라히루의 상황을 예시처럼 놓아둔다. 수지와 영준으로 시선을 옮겨가더라도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종일 그 공간을 공유하더라도 이후의 삶마저 나란히 같이 둘 수 없음을 보여주고있다.


갓 성인이 된 주인공. 현실. 취업과 학업 이전에 먼저 준비 해 두어야하는 금전적 여유. 사회가 생각하는 스무살, 스물 한살의 대학생활과 맞바꾼 공장노동자로서의 위치 이동. 학교와는 또 다른 세상. 같은 건물을 쓰지만 출입하는 문이 다르고, 대우받지 못하는 낯선 관계와 계급. 정직원 계약직. 내국인과 외국인근로자. 일반 근로자와 노조 가입자. 산재를 두고 나뉘는 수습과 처우. 계약해지와 복직. 그만두더라도 갈 곳이 있는 대학생과 나라를 떠나야하는 외국인 근로자. 하나의 장면만 두고도 양갈래로 나뉘는 사람들. 그 속에 끼인 주인공. 같이 피켓을 들고 땡볕에 서 있어야 할지, 이미 돌아갈 자리가 있는 복학생으로 이 관계를 잘라낼지. 그 중간에 있는 막을 통해 과하게 이입할 여지를 두고있다. 당신이면 어떨런지, 막이 주저하는 마음을 질타 하는게 맞는지. 어쩌면 이게 당연한 머뭇거림은 아닐지를 제법 긴 분량으로 독자의 의중도 묻고있다.


정전을 책 제목으로 만들도록, 정전이 일어나길 바라는 심경을 끄집어내기 위해 이 판이 꾸려졌다. 정전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막은 주체가 되지 못한다. 졸업식에서 언급했던 은단이 있었고, 은단의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현상이었다. 은단이 막에게만 토로했던 이유를, 은단이 왜 그러한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은단은 막과 함께 할때엔 소극적이며 주눅들어있다. 자신의 능력을 유일하게 공개한 건 은단 본인인데 왜 되려 죄지은 사람 마냥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풀어낼 둘의 서사가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막은 여자, 은단은 남자. 으레 아는 청춘물 로맨스의 성별 특징들 마저 꼬아두었으니 고등학교 졸업 이전, 더 어린시절의 둘에게 무언가가 있었던 것인데. 놀이터에서 떨어져 피나고 응급실에 실려가기 전부터의 성장 서사들은 다음 소설로 옮겨가 이어질지도 궁금해진다. 이건 독자의 세계관에서 맘대로 이야기가 펼쳐지도록 놔 둘 것인지. 책 제목처럼 정전을 위한 정전의 장치로서만 은단을 등장시켰는지 저자에게 묻고싶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장 전체가 정전이 되면, 하루만이라도 그 안이 멈춘다면, 그로인해 모든 일들이 꼬여버리면 속이라도 시원하리라 여기는 막의 시선. 잠깐의 정전으로 피해가 생긴다면 다치고 보호받지 못한채 자국으로 쫓겨나던 라히루를 대신하여 통쾌한 복수를 꿈꾸는 '잠깐 일하러 왔던 대학생'. 당장의 생계가 걸려있지 않는 어정쩡한 위치이자 엄마아빠 뻘과 함께 일하던 꼬맹이가 바라는 얄풋한 변화. 만약 막이 좀 더 확고한 노동시장의 변화와 개선을 바란거였다면 천막에서 주저했고, 수지와 밥을 먹으며 마주한 순간들을 곱씹고 깨우친 후 다방면으로 알아본 후 기성세대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 사건을 알리고 공론화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황으로 흘러간다면 이건 진짜 책에만 있는 이야기로 뭔가 붕 떠버렸을지도 모른다. 근로, 투쟁, 개선, 노조, 단합이라는 말은 잘 모르겠고, 마음이 가던 동료이자 친구였고 이제는 맘 편히 볼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얄궂은 상황에 뿔이난 마음을 드러내는 복수라 표현하는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수지가 주변을 살피고 도모하는 마음도, 영준이 걱정하는 이유도, 서영이 막을 보내려했던 감정에서도 전류가 흐른다. 이건 은단이 막아 설 수 없는 또다른 전파의 이동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하고자 마음을 먹은 막의 결심도 라히루를 위한 심경의 전류였을테니 말이다. 의도하고 흘려내는 전류는 끊어 낼 지언정 관계를 엮어두고 살아가는 세상에는 완전한 정전은 없음을 보인다.


학비와 생활비 벌려고 잠깐 눌러 앉았다가 사라지겠노라 마음은 먹었지만 돈보다 더 큰 마음의 섬광을 얻어낸 막. 노동환경에서 큰 획을 그을만한 대성할 인물이 되리라곤 장담 못 하겠다. 다만 동료의 불이익에 함께 분노 할 줄 알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불이익을 감내하면서도 애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 감사한 마음을 절대 흔하고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아는 어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짙고 탁한 표지. 그리고 검은 띠지와 유난히 눈에 띄는 흰색 글씨로 언니의 소진사를 앞에 두고있는 책. 담배를 피우며 독자와 눈싸움하듯 진하게 바라보고있는 시선. 헌데 이 띠지와 책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양장본의 진짜 표지. 장례식장 상복과 두줄의 상주완장. 어느 것 하나 쉽게 풀어지지 않을 서사의 중심에 있는 저자 사진들. 엄마, 딸, 미치년, 역사. 이 모든 단어들의 총체적인 결합이 책 제목이니 어느 단락 하나 쉬운 삶의 구석은 없으리라 짐작가게 만든다. 그래서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겪었을 세상을. 책 전체의 표지는 어둡지만, 양장의 은장본은 또 한없이 화려하다. 화려한 것만 눈여겨 보기엔 이 사람의 세상은 어둠도 깊었으리라 간주하며 시작한다.


📖여러 어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한 기억은 많지만, 막상 어른들에게 적절한 보호화 도움을 받으며 자란 것 같지가 않다. 반복되는 갈증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어리다고 모르는 감정이 아니다. 이건 말을 하기 전 유아기에도 느끼는 소외감이다. 쟤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될까 하는 마음 속 덩어리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으며 과거의 순간과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저 멍울이 커지고 자극을 받아 더욱 크고 딱딱하게 자신을 누르게된다. 더 열심히살고, 애쓴들 눈 밖에 난 사람은 그 애틋함을 받아먹고 자라질 못한다. 행동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상황과 위치가 문제였다.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권한. 태어남과 동시에 선긋기가 이뤄진 다른 부류의 취급. 그래서 조갈난 사람처럼 갈구하고 바라게된다. 시선 한 번, 손길 한 번이 대수냐 싶지만 그마저도 해주지 않아 마음이 매번 땅 밑으로 꺼지는 걸 경험한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하역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건강한 가족. 사랑을 준 만큼 돌려 받을 수 있는 관계로서의 기대감. 그래서 그 과정이 행복함으로 여겨지는 순환. 부모를 정할 수 없다면 관계성을 어떻게는 바로잡고 싶었기에 애를 써왔을 일련의 시간들. 시쳇말로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하지 않던가.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소진한 딸과 손녀를 본다면 어떠한 충격이라도 받아서 그간 해왔던 일들에 반성과 성찰이 이어져야 할텐데, 결국은 자기가 편한 방향으로 걱정을 고쳐먹고 있었다. 이제 니네 할머니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하냐는 식의 말로 저자를 두고 다음은 네 차례임을 시사하는 눈빛과 말들. 그래서 저자는 언니의 죽음이 더욱 애틋하다. 결국 알아야 할 사람들은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 갑갑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시간과 고통스러운 마음이 얼굴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게다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데 다시 겪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알기 때문에 무서웠고, 그래서 더 빡세게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내가 제일 먼저 죽고 싶었다.

남편과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길 한 적이 있다. 누가 먼저 태어난 것과는 상관없이 죽음은 순서가 없더라는 말을 하며, 이 세상에 결국 의지하며 살아갈 곳이라 함은 당신과 나 뿐인데, 자식도 없는 우리가 어떻게 버티고 남은 여생을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시작은 잠들기 전 우스갯소리로 하던 것이 점점 진지하고 깊게 들어가게 만드는 훗날의 이야기들. 직접적인 죽음 못지 않게 남겨진 사람이 감당해야할 빈자리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으로 간주되었다. 서로만 바라보며 의지하고 비빌언덕이라 맘껏 부비적거리며 살았는데 그게 없다면 생살을 뜯어낸 자리 만큼이라 쓰리고 화끈거리며 눈물만 줄줄 흘러대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래서 나도 저자처럼 똑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죽을게. 나는 당신 없는 세상 감당 할 자신이 없어. 뭐, 이게 맘대로 안된다면 당신 죽을 때 나도 순장 시켜달라하지 모. 라며 애써 밝게 마무리를 했었다. 그냥 내가 내 몫의 모든걸 다 끝내 놓고 후련하게 선빵 칠게. 뒷일 감당은 당최 자신이 없다구.



📖우리는 사랑하고 우리 사랑은 끝이 없는데.

이 세상의 시간과 수명이 끝이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 신호를 나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뭐 하나 쉬운게 없다. 헌데 더 얄미운건 일련의 사건들이 적당히라는 걸 모른다. 이정도 했으면 그만해도 될텐데라는 생각을 갖게하지만, 삶은 매번 야속하게 뒷통수를 치기 일수이고, 약올리듯 더한걸 안겨준다. 겪어오다보면 맷집이라는게 생기기 마련일텐데 매번 새롭고 매번 버겁다. 그게 저자의 삶에도 해당되고 있었다. 자식은 부모를 고를 수 없는데 부모는 자식을 골라서 애틋해한다. 멀쩡하면 핸디캡이 더 크게 부여가된다. 자식놈들 중 안아픈 손가락 어디있겠냐는 옛말과는 달리 유달리 아픈 손가락이 더욱 애틋하고 손이가며 마음을 쏟게된다. 멀쩡해서 손해보고, 먼저 낳아져서 불리한 세상. 그게 랑의 언니가 겪어야했던 장녀병일지도 모르고, 이후 랑이 겪어야하는 조부모의 돌봄과 배웅의 역할 돌려막기 일 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 으레 그러하듯 생기니까 낳았을텐데 그러면 낳았으면 좀 애틋하게 여겨주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놈의 대가 끊길까봐 더 낳은 자식. 조부모 또한 아들만 싸고 품다가 결국 모든걸 잃고 생의 끝은 딸에게, 손녀에게 맡겨지게되는 생의 끝을 보여준다. 다 주면 다 뺏들어먹고 버려지는 단물빠진 껌 같은 삶으로 할머니는 생의 마침표. 노년의 끝. 그거라면 그러려니 할 지도 모른다. 헌데 저자의 생에 죽음은 그러한 노년의 마침표가 먼저가 아니었다. 주변인들이 한국 기대 수명이라 여겨지는 삶을 반도 채우지 못하고 소멸해버린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기특히 여기고 가엾게 보살폈어야하는데 그건 매번 후순위로 두다보니 이지경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삶을 봐오다보니 자신의 일부가 사라지는 듯 하여 어떻게 해서든 병원비를 마련해 보태기도하고, 자신의 컨디션을 갉아먹어가며 금전이든 심적이든 마음을 덧붙여 살게 만든다. 그러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아등바등 한들 끝은 정해져있었다. 애써봤자 소용 없다는 뉘앙스의 끝. 이 다양한 죽음이 이랑을 기준점 삼아 닿아있는 관계에 계속 퍼지는 것 같아 '괜찮을까? 괜찮은가? 쓰읍- 괜찮아야 할텐데...'를 연신 중얼거리게 만든다. 나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살아준다. 죽음에 대해 생각은 하지만 무 썰듯 썩둑 잘라내지 않아 감사하다. 그랬다면 이 책도, 이 마음의 공유도 없었겠지.

나와 비슷한 연배의 부모님, 나와 비슷한 형제관계. 그래서 더 깊게 이입하게되고, 특히나 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구절에서는 손가락 끝이 찌릿하며 따끔거리는 느낌마저 들게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첫차가 프라이드라는 것 까지 닮아있는데 어떻게 이 글과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언니와 동생의 다른 성향. 나의 자매님도 그러하다. 한없이 괄괄하고 가시를 드러내고 휘지 못하고 부러져버리는 이구역 개딸로 통하는 나와 달리 한없이 유순하고 화가 없으며 어떻게든 유연하게 풀어내고자하는 심성이 곱고 눈물이 많으며 참는게 많은 언니. 그래서 어릴적 내복바람으로 쫒겨나는 일이 있을 때에 씩씩거리며 눈물 삼키는건 동생인 내 몫이었고, 맨날 지고 뺏기고 울음보 터지는건 언니의 역할이었다. 아마 그녀도 알게모르게 장녀병이 깊게 박혀있으리라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다른 성향의 자매가 부모를 보살피는 과정. 충돌이 있을 순 있지만 어디다 내어놓기 부끄러운 사정까지 유일한 공유자가 되니 나이가 들 수록 더욱 의지하고 기댈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언니의 소진사는 동생의 세상의 큰 흔들림이었을 것이다.(여기서 입장을 바꿔 내가 랑의 상태였다면 언니의 자리를 메꿀까. 더더욱 철저하게 외면 해 버릴까. 그건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례다)

저자가 자신이 소유하고 쌓아두고 있던 것들을 정리하는 단락이 있다. 모든걸 품어두고 싶었던 시절, 이걸 꼭 쟁여놔야 마음이 든든하고, 내 것으로 삼고 싶었던 이력의 결과물들. 하지만 결국 다 놓고 가버리는게 생(生)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쓰레기봉투에 한껏 욱여넣고, 내다 버리는 순간을 마주 할 때 비슷한 울렁임을 느꼈던게 떠올랐다. 시모의 장례를 치른 후 그녀가 남긴 모든 흔적을 찾아내고 버리고 태워가는 일련의 시간들. 주인을 잃은 것들은 더이상 손이 타지 않을 것임을 아는지 먼지도 빨리 쌓이는 듯 하고, 색도 빨리 바랜다. 모든건 찾아주고 알아주어야 빛이 난 다는 건 사람이든 사물이든 동일한 현상이라는 걸 느끼면서 이 걸 치우는 남겨진 자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덜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비쳤다. 자신은 수도 없이 해본 일들이니까 자신을 아는 그들에게 이딴 설움의 순간은 덜 만들어주고자 하는 오지랖의 발동이라 더욱 짠한 마음이 깊게 박혔다. 독자로서 잔소리를 하자면 '그런걸 왜 니가 걱정해!' 라는 말로 등짝 시원하게 후려치며 흔적지우기를 말리고싶어진다. '그런거 안 치우게 할라면 나보다 더 오래 살든가!' 로 되려 성질을 내어보고싶어지는 죽음 차단용 잔소리 스매싱인거지.


살면서 이런 일들 안 겪어 본 사람 어디 있겠냐며 각자의 고생과 설움 배틀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사나흘 내리 말 할 수 있는게 지금을 살아가는 내 나이 또래이자 저자 또래의 어른이지만 어른이길 꺼려하는 사람들의 세상일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죽어도 나는 물을 찾아 마시고, 꾸역꾸역 밥을 목구멍에 밀어넣고, 장례식장 한 켠에서 잠을 자게 될 것이며 또 안간힘을 다해 그리워하며 통곡을 할 것이다. 현실을 직시 한 후 떠난이의 몫을 마음 한 켠에 밀어 넣고 그 마음과 함께 살아 내게 됨을 겪을 것이다. 어쩌겠어, 삶은 유한하고 각자가 쥔 생의 질량까지 제각각인 것을.

내가 아는 그녀들이 쫀쫀한 목폴라를 입고 있는 기분보다 따뜻하고 폭닥한 머플러를 감고 있는 기분으로 살길, 정신이 붕붕 떠올라서 바닥이 닿지 않는 저릿한 기분보다 세상을 가뿟하게 나는 듯한 구름위의 나른함으로 살기를, 불안과 걱정으로 땅이 울렁이는 기분보다는 이렇게 사는게 재미진 삶 아니겠냐며 덩실덩실 발을 구르며 잔망스러운 걸음으로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살기를 그렇게 몸의 기억을 비틀어 또 다른 미친년의 역사를 이어 가 주길 바라게된다. 혼자서 못하겠다면 세상의 딸들 중 일부인 나부터 동참하겠다 손 번쩍 들어본다.

📖출판사 이야기장수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