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디 할머니 - 소설가가 사랑하는 박완서 단편 베스트 10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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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의 타계 15주기를 맞아 대표 단편 10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구병모, 김연수, 박상영, 성해나, 최은영, 한강 등 31명의 소설가에게 작품 선정을 청해 가려 낸 작품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꾼들이 추려낸 것이기에 눈길이 간 것도 있었고, 오랫만에 문학 시간 작품 해설하는 듯 시대와 인물을 뜯어보며 저자가 진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추려보고 싶기도했다. 이거저거 독식하던 SF문학 말고 좀더 현실감 가득한 사람 이야기가 고팠겠지 라는 마음으로 고개 쭈욱 내밀고 들여다본다.

📖쥬디 할머니_ 말이란 건 좋은 거였다. 말을 하니까 한결 기운이 났다. 그래, 난 다시 울타리를 칠 수 있을 거야. 새로운 울타리를.

말이란 좋은거라는 쥬디 할머니. 나는 이 단편을 읽으며 쥬디 할머니가 이야기한 말에 대해 그 의미와 전달하고자하는 바를 생각한다. 결국은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만들었다. 할머니처럼 자신을 포장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재력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평판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어떠한 실정인지는 중요치 않고,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에 대한 집착과 열망. 실체를 알아서는 안되고, 의도한 상태의 겹겹이 허상이 진실임을 바라며 사는 사람이다. 다들 쥬디 할머니같은 포장력을 갖고는 있으나 그게 얼마나 두텁게 이뤄진건지의 여부와 현실사이 간극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린시절 적어둔 장래희망만 봐도 그러하다. 나는 무엇이 되고자하는 마음보다는 선한 어른으로 불리워지길 바란 사람이다. 나 또한 쥬디 할머니처럼 불려지는 것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던 얇은 귀의 인간이었다. 자존감은 자신의 속에서 피어오리기 보단 상대의 한줌도 안되는 입과 세치 혀에서 나온다는 걸 예쁘게 에둘러 말한 겪이었다.

결국 나도 쥬디 할머니랑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니 정신차리라는 문장이었다. 이러한 삶의 과정이 티가 나도록 나를 에워 쌀 것인가 혼자만의 생각에서 그칠 것인가의 선택으로 삶의 둘레가 달라질 것임을 보여주는 인생 후반 예고편 처럼 눈앞에 그려지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쥬디 할머니 같은 사람은 되지 말라는 따끔한 인생 회초리같은 첫 단락이었다.

📖애 보기가 쉽다고_ 맹범씨는 네 시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얼토당토않다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방금 경험한 네 시간은 그가 여직껏 살아온 고르고 유연하게 흐르던 시간과는 전혀 단위가 다른 시간이었으므로, 그건 돈의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때엔 사회에 혁혁하게 이바지 한다고 여기던 사람이었고, 지금은 와이프와 딸자식이 외출하며 두고간 손주를 케어해야하는 할아버지. 요즘 심심찮게 보게되는 황혼육아과정을 1985년도에 미리 그려낸 작품이다. 그 시절엔 황혼육아라는 말도 없었을텐데 점점 변해가는 세태와 함께 할아버지라고 애 보지 말란 법이 없으며, 점잖아보이는 어르신이 애 하나로 쩔쩔매는 과정을 그린다. 국회의원을 임했음애도 불구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노년과 어린 핏덩이를 잠깐이지만 돌보는 과정에서 돈과 체력은 기본 옵션처럼 느껴지는 한눈 팔 수 없는 과정을 그린다. 이게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라서 더 미숙하고 두서없는 돌봄의 과정이다. 그래서 짠하면서도 어이 없도록 무식이 주는 당당함을 보게된다. 그 시절이라 가능했던 요청인건지, 정말 물정 모르는 해맑음의 요청인건지 의아한 순간도 상당하다. 집에 사람 부리면서 사는 노년이지만 집밖으로 나가면 모든게 돈이라는 것과 구걸이 먹힐거라고 생각하는 세상에 갇힌 우물안 개구리의 세상을 보여주며 살만큼 산 사람이라 한들 모든걸 다 안다고 여기며 살아선 안됨도 알려준다.

세상에 본인 밥벌이가 제일 쉬운법이지. 경주마처럼 앞에 놓인것만 보고 그게 다라고 여긴 세상의 인간에게 죽을때까지 배우고 겪고 깨우치며 혼쭐 나 봐야 아는 삶임을 알려주고있다.

📖해산바가지_ "딸이 딸을 낳으면 친정에서까지 면목이 없어야 하니?"

"그래, 그걸 몰라서 묻니? 그러니까 딸은 애물이고 어떡허든 아들은 있어야 한다는밖에."

이야기 뒷부분에 나오는 해산바가지에 대한 진짜 뜻과는 별개로 내가 느끼는 제목은 해산(출산) 후 핀잔과 원망으로 긁히는 바가지. 이렇게 단어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뜻을 만들 수 있구나 감탄하게 만드는 단편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세상이 변했다고 말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심상을 갖고 있는 분이 존재하고 있다. 세상이 그렇다. 내 맘 같은 사람은 없다. 당차던 며느리도 딸 낳았다고 기가 죽어 이불속으로 파고 드는게 시대다. 85년도 작품이니까 그보다 몇해 후에 태어난 나도 이 단편과도 같은 설움을 겪어낸 장손집 둘째딸이라 모를수가 없다.

아들이든 딸이든 둘만 낳을거라는 선언. 거기에 더불어 그 두번째 출산이 딸이라는 것. 이 모든 사건에는 여자들이 여자를 공격하고 있다. 당신도 어느 집의 딸이건만 저집 자식의 딸이 우리집의 귀한 아들과 결혼해 손주를 낳았는데 딸? 그럼 그 손녀도 태어나자마자 밉상 온상을 덮는 딸년이된다. 여자가 여자를 멸시한다. 당신도 귀한 집의 딸래미였고, 제 손으로 낳은 딸이 있다 해도 며느리와 손녀는 별개의 이야기인냥 날을 세운다.

당신도 딸이지만 지금은 고고한 시어머니로서 자신보다 어리고 여린 여자의 마음을 도려낸다. 개망나니라도 아들이 좋은 사람들. 성질 까칠한 나로서는 아들놈로 인해 패가망신을 당해도 여전히 저 기고만장한 혀는 아들을 추켜세울 것 같아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는 옛말에 틀린거 하나 없다고 읊조리게 된다.

앞 부분이 손귀한 집안에 둘째도 딸을 놓은 며느리와 한껏 뿔이난 시어머니였다면, 이제는 중년의 며느리와 곧은 성정으로 존경했으나 지금은 치매로 감당하기 힘든 노년의 시어머니로 이야기가 넘어왔다. 치매를 얻기 전과 후로 나뉘는 시모 바라보는 마음의 변화. 딸을 줄줄이 낳더라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손녀를 키워낸 시어머니. 딸넷에 마지막 아들. 바라셨을 손주에게도 똑같은 사랑을 담아낸 감사한 사람이지만 노년과 병환은 이전의 기억을 잊게 만든다. 남들은 효부라 하지만 속에 악과 한을 품고 살게되는 일상들. 약을 먹어야 버티는 설움의 날들. 미워하다가 뭔일 날거 같아 시설에 보내기로하고 수소문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작고 쭈글해진 시모를 모시고 살기로 한다. 대신 효부라 불리우는 주변인들의 단맛 가득한 칭찬은 포기하며 미울때는 소리지르고 서로 악쓰기도하고 담아두는 것 없는 마음으로 곁을 지킨다.

당신은 시어머니를 존경하기도 했으며 미워도 해 본 사람. 그리고 당신은 또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 며느리이며 시어머니를 겸할 수 밖에 없는 그녀들 속에서 배움은 가장 모자랐을지라도 삶의 가치와 사람을 대한 귀한 마음만은 차고 넘쳤던 여인이 진짜 대우 받아 마땅한 사람이니 독자들도 같이 마음을 모아 안타까운 생의 끝을 이해해달라고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_ 생때같은 목숨도 하루아침에 간데없는 세상에 물건들의 목숨은 왜 그렇게 질긴지, 물건들이 미운 건 아마 그 질김 때문일 거예요. 생각만 해도 타지도 썩지도 않을 물건들한테 치여 죽을 것처럼 숨이 답답해지네요.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곁에 오래두고 싶은 이를 가장 먼저 보낸다는 것. 슬픔은 차고 넘치고 매 순간마다 그리운데 세상은 그래도 살아야되지 않겠냐며 속절없이 흐르게된다. 이 독백과도 같은 전화 통화는 한 두번 해본게 아닌 듯 가만히 듣기만하는 형님의 태도를 통해 어디다 풀데 없는 여자의 외침이 그려진다.

아들의 죽음은 그 시절 청년들이 했던 학생운동에 가담자로 인해 이뤄진걸 알 수 있다. 자신의 아들 또래의 사내들을 키우는 형님과 친구. 자신의 아들이 살아있다면이라는 전제를 두고 이놈보다 잘난 놈은 없을거라 이놈보다 목숨이 아까운 녀석도 없을거라는 뉘앙스를 던진다. 친구 아들의 혼사도 쉬이 말하며 축하를 요청 할 수 없는 제새끼의 죽음이니 오죽하리오. 허름한 집에서 사지 육신은 있으나 제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친구의 아들을 보며 비참함에 위로를 받겠거니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지거리 내뱉으면 곧이곧대로 받아 들을 놈으로 살아있고 곁에 있음에 부러워한다. 세상은 올바른 사회가 되도록 목숨을 내던진 장한 아들의 어머니라 하지만 그러한 타이틀이 슬픔과 그리움과 맞바꿔 줄 수는 없다.

상실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으며 슬픔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완벽한 위로가 될 수 없다. 꺼이꺼이 울어도 보고 목이 쉬도록 부르짖어 그리움에 소리쳐보면서 슬픔을 눌러두고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이건 저자도 겪어본 삶의 상실이기에 단편 속 여인이 전화기를 붙들고 울컥울컥 쏟아내는 것과 친구에게 말하는 문장들이 꾸며내고 곱게 지어낸 슬픔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저자 역시 슬퍼해도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 같아 그 시절의 저자를 앞에두고 맘껏 울라며 지긋이 눈을 맞추고 손수건이라도 손에 쥐어주고싶게 만든다.


📖도둑맞은 가난_ 이 동네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사니까 창피할 것 하나도 없어요. 아이들도 벌고 어른들도 벌고 노인들도 벌고,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살고들 있어요. 텔레비젼 놓고 사는 집도 있고, 며칠에 한 번씩 돼지고기 구워먹으면서 사는 집도 있고 아무튼 시끌시끌 노래도 부르고 낄낄낄 웃기도 하며 살고 있어요. 우리도 그렇게 살아요. 네. 우리식군 노인도 없고 아이도 없고 다 벌 수 있잖아요. 서로 기대지 않고 다 나가서 벌면 못 살 것도 없단 말이예요. 나는 이렇게 열심히 식구들을 부추겼다.

가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 설득당하는 아버지와 아들. 가난하게 살 바에는 단명을 택한 가족. 찢어지게 가난함을 극복하는 대신 탓을 하며 목숨줄을 찢어내는 결론을 지어버린 것에 놀랍고 무서워졌다. 허영과 명예욕이 제 목숨줄에 칼을 들이밀 수 있는건 예나 지금이나 가능한 비극일 수 있다는 점. 곁의 누군가가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생의 의욕을 불태웠더라면 이 동네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사는 것 처럼 그렇게 지지고볶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세상은 응팔의 덕선이집 같이 복작거리며 살부비고 애틋한 관계가 그리 많지 않음을 보여줬다.

불행도 가난도, 동료에 대한 측은한 마음도 돈 한푼 아끼며 연탄 한장 아끼려 했던 그 마음도 누군가에게는 궁상맞음이었다. 하루하루가 걱정과 근심인 삶이 부잣집 아들래미는 꼭 한번 겪어봐야 할만한 가난의 현실 체험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오는 허탈함. 상훈이 바라보던 시선의 온도나 입밖으로 내뱉던 말들이 어머니가 그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현상이었음을 생각하면 가난을 핑계로 이뤄지는 사람들 반응이 그들의 죽음을 에스코트하는 저승사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_ 나는 그런 아픔이 부끄러운 나머지 틀니의 아픔으로 삼으려 들었고, 나를 내리누르는 온갖 한국적인 제약의 중압감, 마침내 이 나라를 뜨는 설희 엄마와 견주어 한층 못 견디게 느껴지는 중압감조차 틀니의 중압감으로 착각하려 들었던 것이다.

언제는 가장 편하고 한몸처럼 느껴졌던 틀니가 어느 시점부터 가장 불편하고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느끼는 과정. 내 일부라 여기던 이전과 달리 빼내어 버리니 날아갈듯 편한 현재. 그녀에게 틀니는 본인을 투영하고있었다. 원래 그러했다는 듯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던 일상이었다. 말단 공무원의 아내, 딸아이의 엄마, 또래 아이엄마를 둔 비슷한 처지의 이웃. 딱 여기까지는 윗니 아랫니 맞물리듯 빈 곳 없는 그녀의 삶의 반경이다.

헌데 소식 끊긴 친오빠가 간첩이되어 남파된다는 소식은 갑자기 앓게되는 부어오른 치아와 잇몸처럼 수시로 그녀를 거슬리게한다. 수사기관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일상, 남편의 승진마저 물건너간 허탈함. 나보다 못한 처지라 여기던 이웃의 애엄마는 아픈 딸을 데리고 남편이 있다는 미국으로의 이민. 어느하나 온전치 못하고 어그러지며 이탈해버린다. 그러니 빳빡하게 고정되어있던 틀니마저 온전함이 거슬리게되는 상황이다.

하고픈건 하나도 안 이뤄지며 다 떠나고 어그러지는 과정 속에서 자신만 온전한데 이 온전함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훌렁 빼내어 속이라도 시원해하며 허탈함도 같이 마주한다. 별거 아닌거 같은데 내 삶에 오니 별거가 되어버리는 처지. 자신이 겪는 고통의 물질이 손바닥 위에 올려진 틀니 정도의 무게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지만 얄짤없이 틀니를 제외한 세상의 무게가 자신이 감내해야만 하는 죄책감으로 받아들이게된다.

내용이 길지 않아서 머리 쓸 일 없겠거니 생각했으나 딴세상 이야기 같지도 않아 다음 소설로 넘어가는 시간이 더디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출간 연도가 기록되어있는데 전부 내가 태어나기 전후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30-40년이 지난 이야기인데 여전하리만큼 세상은 책속의 그들처럼 많이 아프고 지쳐있다. 소설속의 이야기에서 그치길 바랐을텐데 책 밖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가난과 죽음, 타인의 시기와 세상을 향한 원망이 서려있다. 시대상이라 하고싶으나 한 시절로 끝나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여전한 세상에 박완서의 글이 사랑받고있나보다. 남겨둔 글이 몇십년을 지나 지금도 위로받고 있는 현상을 보니 이 시대는 끝끝내 변하지 않을 듯 하고 사람들은 지쳐있으며 위로를 기대하고있다. 보듬는 마음은 갈구하진 않지만 기대하는 사람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오랜 CM송의 한 문장처럼 사사로운 개인사 오픈 없이 찰떡같이 알아주는 단편들이 더 있을거라는 기대감으로 내가 미쳐 읽지 못한 전작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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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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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와 배신, 침묵과 공모 같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며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속이려 한다고 전했다. 더 나은 삶이 아닌 덜 거짓된 삶을 향한 것에 중점을 두었고 가족, 사랑, 노동, 돈, 계급 등 이러한 삶의 조건이 인물에 씌워졌을 때 책속에만 있는 것이 아닌 사실감 넘치는 주변인이 되어 이야기의 집중도를 높이며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 인냥 내 세상에 자연스레 스미게된다.



📖이름 없는 마음_ 굽은 어깨로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며 '지겨워'와 '미안해' 사이를 오갔을 현권의 마음. 그 마음만은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누나의 시선에서 남동생은 제 한입 건사하지 못하는 모지리로 보여진다. 준희에게 현권은 그런 존재다. 저놈이 어디가서 사람구실이나 할까 싶어하며 전여친에게도 호구잡히는거 같아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인 듯한 챙김과 보살핌같아 저놈을 어찌해야하나 라는 생각만 가득하다. 스스로 살아가는 걸 터득하게 하고는 싶으나 시선 밖으로 나가면 되려 준희가 불안해져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에 대한 해결을 준희의 멋대로 꾸려둔다. 이게 누나의 소임인냥 생각했고 이렇게 해야만 어디가서 밉보이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모든걸 자초한다.

하지만 준희의 마음과는 다르게 현권은 부담과 거추장스러움을 비친다. 이건 누굴 위한 친절이고 누굴 위한 배려의 결과일까. 요청 한 적 없는 선의와 짐짓 예상하고 미리 선수치듯 자초하는 마음은 수요없는 공급이며 결과보단 과정에만 뿌듯해하는 나눔을 통해 정착되지 못한 마음만 둥둥 떠다닐 뿐이다.

📖너 하는 그 일_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내리막을 달려 곤두박질치는 일뿐이었다.

제법 긴 기간 하고있는 공부. 시험이 끝난 뒤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며 생활하는 태은. 같이 살진 않는 엄마의 안부와 함께 이어지는 엄마와의 일터 동행. 태은에게 엄마는 이해하려해도 이해안되는 사람이다. 엄마는 함께사는 남자들에게 제대로 된 대접한번 못 받는 사람이었다. 태은의 친부에게도, 친부가 죽고 만난 아저씨에게도 하대받지만 엄마는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그들을 옹호하는것이 마뜩잖을 뿐이다.

물류센터에서 도망 치듯 엄마도 엄마의 삶에서 도망이라는걸 시도했다면 태은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까. 측은과 못마땅, 울화까지. 엄마가 남자들에게 도망치지 못하는 것, 태은역시 될거라는 기대감으로 가채점과 커트라인 속에 메여있는 과정은 결국 둘다 멈추지 못해서 곤두박질이라도 치고있으니 어쩔 수 없는 그 엄마의 그 딸이라는 결론밖에 없었다.



📖부부생활_ 근데 일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야? 각자의 사정에서 할 일을 하는 거지, 내가 대통령도 아니고 사명감은 무슨.

학원을 운영하는 구영수. 병원생활을 하던 어머니는 아들인 영수보다 요양보호사였던 진희와 더 오랜 시간 함께한다. 짝이 없던 영수는 어머니가 자신과 진희를 맺어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호감을 넘어 혼인신고까지 하며 함께 남은 생을 이어가기로한다. 사명감이 아니라 제 몫의 일을 했을 뿐인 진희. 영수가 반하게된 타이밍. 어떻게 빠지게 되는지는 각자의 시나리오에 어떻게 끼워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보여주고있었다.



📖부부생활_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 서로의 인생을 완벽히 저당 잡았다는 사실. 네가 나를 망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너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불안한 사실이 주는 안정감. 그 결속을 이뤄낸 성취감으로 구영수는 살아 갈 수 있었다.

학원 운영이 잘 되던시기도 있었고, 요양보호자의 직업을 갖고있는 진희와 맞벌이를 하며 살아가며 집안을 어떻게 돌볼지에대한 여느 부부와 같은 생각와 의견 충돌. 같이 경제활동을 하지만 누구의 소득이 많으냐에 따라 살림살이의 비중을 재게 되는 순간까지.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소득의 격차는 영수에서 진희쪽으로 넘어가게되는 과정. 어느 집이든 다 있을법한 고민에서 한단계 진화된 그들의 결론. 부부 일심동체가 이 대목에서 나올줄은 몰랐지.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_ 그래서 나는 믿기 좋은 만큼의 진실만 말해야 피곤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배웠기 때문이다.

기억은 내가 갖고 싶은 대로 남겨지고 편집되어진다. 이 왜곡의 과정은 결국 내가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운다. 엄마와 함께 낯선 동네 낯선 집으로 이사를하고 그곳을 꾸리며 살아가면 그래도 행복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하나씩 꾸려간다는 기쁨은 행복을 재정비 한다는 기쁜 착각을 하게하지만 그곳은 결국 함께가 아니라 엄마 좋으라고 꾸려진 세상이었다는 것에 씁쓸함만 남기게한다.

보고 들은 것을 모두 말한다면 그 밤을 몇번이며 복기하고 진술해야한다는 걸 터득한다. 이딴 사건에 덜 휘둘리고 덜 엮이고자 한다면 보고도 못본척 들어도 못들은척 그렇게 자체적인 필터링을 통해 묶어두고 덮어두는게 내 숨구멍을 지키는 일임을 보여주는 아주 깔깔한 세상의 이치였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것. 이건 백마디 말을 한들 와닿지 않는다. 주변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거울치료가 이뤄져야 좀 더 명확하게 와닿고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누군가에게 고려되지 않던 예시 중 하나일 수가 있다는 점은 어떠한 관계이든 예외는 없음을 보여준다. 삶의 방식이 완벽히 다른 누나와 남동생 사이. 잘 알고 지낸다 여기던 대표와 직원, 서로의 삶을 이해못하는 엄마와 딸, 더 좋은 여건에서 살길 바라는 부모와 자식, 평생 다르게 살다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부부 사이. 이들은 가장 가깝고도 가장 잘 알고 있는 서로임을 자부하지만 속내를 알기는 어렵다는 것.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드럽게 안 맞는다는 사실 또한 꽤나 씁쓸하고 텁텁한 결론을 주기도 한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다 모르는 것들이라는 건 심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너무 가까워서 미쳐 보지 못했던 시야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수월하기도 하다. 살짝 멀어져야 보이는 관계도 있다는 것. 너는 내가 아니니 나도 너로 살 수 없다는 걸 잊을 때마다 상기시켜야한다.

그래서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만이라도 알고만 싶어진다. 보여지는 것 만이라도 또렷하게 알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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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면 - 살면서 누구나 고민하는 인생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
이근후.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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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의 오래된 책들 중 가장 아끼는 것이기도 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밌게 살고 싶다'의 저자 이근후 선생. 읽은지 10년도 더 된 책인데, 나는 그때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걱정많은 사람이었나보다.

다시금 내가 이렇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걱정만 하고있는걸 보니 나이 앞자리가 바뀌기 직전의 삶이 시작되었고, 작년도, 그 전년도도 똑같이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던 터라 어떻게든 조언과 질타와 꾸짖음을 받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바운더리에 사람들이라 해봤자 워낙 교류가 없으니 직장,가족 뿐인 단촐한 인간관계라 타인이자 어른을 통해 아는 말이지만 새롭게 받아들이고 싶어 또 이렇게 이근후 선생에 글을 찾아나선 겪이다.


이번엔 이근후 선생과 이서원 소장의 담화에 내가 끼어들어 귀동냥하는 글이다.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를 주재로 수개월 걸쳐 매주 수요일마다 나는 대화를 재구성한 글로서 누구나 고민하고 있는 인생에 대한 질문 50개에 대한 각자의 답변들이다.

마음을 헤아리는 관점부터 시작하여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 그냥 세상 살아가는 그 자체에 대한 아득함을, 가족이든 부부관계든, 결국 사람과 사람에 대한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 결국 모든 근원적 답은 나로 통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내가 어떻게 행복해하고 사랑하며 다스릴 것인가에 대해 같이 고민 해준다.



📖열심히 사는데도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까요(청춘의 슬픔과 해법)_ 우리는 결과가 좋은 걸 소망하잖아요. 그걸 이루기 위해서 선택을 하고요. 선택은 자기딴에는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좌절이나 절망 같은 감정을 느끼는 거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구나!'하고. 통찰력이 조금 더 있는 사람은 '내 선택이 잘못됐구나!'라고 생각하죠. '내 맘대로 하긴 했는데, 내 맘대로 한 게 결과가 잘못되었구나!'이것만 알아도 굉장한 거예요.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친다 하더라도 결국 살아야 하는 것. 내일의 해는 뜰 것이고, 드럽고 아니꼬워도 해가 뜨고 있는 이상 나는 아무렇지 않게 어제처럼 또 살아야했다. 그게 청춘을 버티는 방식이었고, 나를 무디게 만드는 자기최면이기도 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그럴수도 있지, 넘어지는 김에 쉬어가고 열번 찍어 안넘어가면 열한번 찍는 이구역 미친자가 되어보자'고 마음먹고 사는척 한다. 그러곤 속으로 '이번에도 글러먹었네, 드럽게 안되네. 내 선택이 뭐 그렇지. 또 망한 업적 하나 추가요.' 라며 해탈+자책의 삶으로 살고있다. 일단 나란놈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누구보다 까탈스럽게 알아 차리는 정신머리는 있으니까 이게 통찰력이다 싶어하며 알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다음엔 이딴 것에 허무한 수고를 하지 않길 바라게된다.


📖가족에게는 왜 말조심을 안 하게 되는 걸까요?(가족을 대하는 법)_ 나에게도 다정하게 대해주는 거죠. 그래서 가족과 남을 바꿔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아요. 가족을 남처럼, 남을 가족처럼. 그러면 가족은 적당한 거리로 멀어져서 말조심을 하게 되고, 남은 적당한 거리로 가까워져서 말을 더 잘하게 되는 겁니다.

나를 잘 아니까, 그래서 더 쉽게 대하고 쉽게 뱉어버리는 과정. 하지만 생각보다 모르는 구석이 많은 조합 일 수도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예의를 지키고 한번 더 생각 하며 행동하기. 어떻게 보여질지를 걱정하며 의식하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바운더리를 벗어나 타인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면 그 무드를 계속 유지한채 살아봐도 좋겠다. 적당한 예의와 적당한 긴장감은 나도 그러하고 상대또한 가볍게 여기지 않을거라는 쌍방의 합의와도 같은 것이니까. 그러니 서로 하대하지 말자. 결국 돌고 돌아 그 끝은 나를 향하게 마련이니까.



📖자기만 아는 사람과 어떻게 같이 살죠?(자기중심적인 배우자와 사는 법)_ 그 사람에게 당신만 고치면 된다고 탓을 해요. 탓은 미움이지 사랑이 아니잖아요. 탓을 하면 자기중심인 사람은 반성은커녕 더 자기중심으로 들어가 버려요.

자기중심적인 배우자 만큼이나 자기중심적인 본인을 들여다 보는 법. 똑같은 사람 둘이서 각자를 탓하기 보단 타인을 긁어내는 마음. 싸움의 화근.

다행이 나는 유순한 사람이며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이와 살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 내가 자기중심적인 이구역 미친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상대의 행동에 나를 투영하여 반성하게만든다.

결국 이근후 저자의 이야기는 탓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해주라며 피해를 보는 사람이 가해하는 사람을 맞추라는 말로 번역이 되는데, 이게 오역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자기중심적인 이는 상담도 문제 의식에 대한 자각도 안하는 이 임을 우리가 잊고 있었다. 미워하는 마음 갖게되는 것도 결국 피해를 보고 있다 여기는 사람이며, 고통을 호소하는 이도 결국 내담자였다. 진실로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는 결론일까.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인가요?(의외로 쉬운 행복의 비결)_ 행복이라는 나무에 작은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면 돼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 즐거워해요. 더러는 나를 따라서 자기 나무에 비슷한 것을 달기도 하고요. 그런 게 더 많은 사람에게 퍼지면 좋겠습니다.

행복이 '최소한'이란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다고 믿는 저자. 아침에 눈뜨면 즐겁고, 오늘도 숨을 쉬는 것에 살아있다는 행복을 누리는 것. 아침을 아내가 차려주면 즐겁고 먹으니 맛있고, 그걸 보고있는 차려준 아내는 즐거워하는 삶. 나이가 들면서 즐거운 것들이 줄어든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다 즐거워지는 시선.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 매번 새롭고 놀라울 수 있는 마음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뜻을 나이가 들어 더 명확히 알게되었다는 말들 속에서 나는 매번 크고 화려한 것들에만 행복이라 지칭한건 아니었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 날이 있을까요? 꿈을 찾게 되는 날이요. 너무 기뻐 하늘 보고 소리를 지르는 날이요. 뭐 이대로 계속해서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요.'라며 노래 제목은 HAPPY이면서 가사는 행복하다는 말을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는 가사가있다. 나는 그러고 살고 있었다. 잘 웃고 잘 지내다가도 어느새 혼자 굴을 파고 들어가 마음의 벽을 치고 불을 끄고 문을 꽁꽁 걸어 잠그는 사람이면서 어떻게 행복의 비결을 순순히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마음이 최소한을 넘어 한줌도 되지 않는, 우울이 익숙한 사람이었는데 이 비결을 보며 내 근원적인 행복의 바닥부터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불현듯 문득문득 아무렇지 않게 살다 이따금씩 생각을 하게 될 때 내가 우울감의 비중보다 행복의 비중을 좀 더 두면서 입꼬리를 의식적으로나마 올려보며 살아본다면 이 비결을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 새겨본다.

살면서 누구나 고민하는 것들엔 기초적인 답변들이 따라 붙는다. 우리는 그걸 도덕적인 범위 내에서 모두 습득하며 자라왔다. 머리로는 잘 알고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직 준비가 안 된것. 알지만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금 곱씹어 읊어준다. 50년 경력의 정신과 의사와 25년 경력의 상담전문가는 다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의견에 나무라는 것 없이 자분자분 당신들의 사례와 이해하기 쉬운 예시들로 어르고 달래며 곁에서 듣기만하는 나를 구슬리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지식을 원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원했기에 이 책은 상냥했고 다정했다.

그걸 생각하면 아는 이야기이고 당연한 결론인데 이게 맞는지에 대한 의심만 커 갈때 니가 생각하는 그거 맞다며 긴장과 의구심을 풀라는 듯 말해주는 뉘앙스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어지간하면 사회생활 하는게 큰 문제 없이 무난하게 살아내고 있는 이라면 저자의 이야기들에 반박할 이유 없이 그게 맞다며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익히 겪어본 상황과 이미 알고있는 답변이지만 한번 더 상기시키며 니가 생각하는 그 결정이 맞으니 그대로 살아도 된다는 듯 어른이지만 나보다 더 산 어른이 어르고 달래는 글이라며 부담없이 다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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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와 0수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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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연좌제. 사회생활은 이어가지만 생활 자체는 고립된 듯 끊겨버린 관계성. 복제인간. 나를 닮은 나와 같은 존재이며 기억또한 동일해서 나를 대신하기 충분한 또 다른 인간. 기억판매. 영수가 밥벌이로 하는 기억 가공 작업이었고, 영수가 0수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한 작업물들. 세상이 인간을 기록하는 방식이며 돈벌이의 수단이기도 한 것. 고로 인간이 겪어낸 것들은 값어치가 있었고, 사람을 다시 살게끔 하는 계기가 된다는걸 보여준다. 영수와 0수, 오한과 기특. 김다울과 해도연. 해도연의 모습을 하고있는 또다른 해도연까지. 실존하던 영수와 돈으로 구현된 0수를 마주하는 과정. 영수 본인이 먼저 죽기 위해 0수가 살 방도를 모색하고 밥을 지어 먹여살리는 과정. 영수가 팔아버린 기억. 영수의 기억을 구입하는 사람. 그 기억을 돈벌이가 될 수 있도록 구현시키는 사람. 결국 모든 과정에는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이뤄지는 것들이었다. 사람이 없으면 안되는 세상인데 고립을 자처하고, 방호복으로 자신을 에워싸며 외부와의 위협을 차단함과 동시에 자진해서 고립의 길로 걸어가다 만나게되는 이야기. 영수의 모든 에피소드들은 결국 살려고 하는 행동들이었고 죽고싶었던 영수의 바둥거림도 살고싶었는데 방도를 몰라 차라리 죽기를 택했던 건 아닐지. 영수와 0수가 각자를 보는 시선 속에서 독자인 나는 0수가 아닌 진짜 영수의 마음을 가늠해보게된다.

영수로 태어났지만 0수처럼 살길 바라는 저자. 남의 인생인 양 관조하듯, 남의 일인 양 모른 척도 해보며 부담을 덜고 살아보는건 어떨지 아주 조심스레 당신의 삶에 또다른 0수를 만들어보라고 권하고있다. 실체화 하는 것이 아니니 비용은 안 들 테고, 다만 마음을 쓰고 생각을 이분화 시켜야 하니 머리는 좀 아프겠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에게 혼잣말을 해보기도 하고, 내 모습을 한 나를 마주하고 질타와 위로를 골고루 쏟아내며 살아낼 구실을 만들었으면 하는 이유를 갖게 하고있었다.

📖 최선을 다해 친절을 베풀었는데 사람들이 사나울 때.

술에 취해서 길을 못 찾는 건데 나는 목적지가 없는 건가 우울해질 때.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데 자꾸만 어제만 생각날 때.

나도 내가 싫을 때.

나도 나를 포기했나 싶을 때.

인생의 모든 감정이 쓸쓸함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볼 때 이 사람 많이 외롭구나, 털어 놓을 데가 없구나, 죽음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는 거구나로 모아지는 생각들이다. 혼자 사는게 익숙하다고 한들 그게 괜찮은건 아니라는 것. 계속 추억을 좀먹고 있지만 그것 또한 언젠가 소진이 되기 마련. 그래서 영수는 그 기억들이 사라지기전에 자신이 먼저 생을 끝내려는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게되었다. 영수든 0수든 영수 안에서 파생된 것이니 같은 추억을 공유할테고 야금야금 곱씹어가며 떠올리는 과거의 행복 찾기 방식은 똑같을 테니까.

📖 내가 나로 혼자가 아니라 너와 둘이라는 게 어쩌면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 살가운 일일지도 몰랐다.

외로워서 죽고싶었나, 살 이유가 없었기에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건가. 자살 연좌제로 인해 0수를 만들어 놓고 판깔아둔 후 죽을 각을 재면서도 진짜 죽어야 하는 이유라던가, 죽을 만한 당연한 현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영수의 세상이 너무 버석해서 그랬나 까지 생각하게만들었다.

독단적인 삶을 꾸려야하는 여건이 아니었다면 자연스레 자살연좌제도 도입이 안 되었을테고, 영수의 이야기가 글로 옮겨지지도 않았겠지. 코로나를 겪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개인방역을 앞세운 고립은 세상 곳곳에 또 다른 영수들을 만들어 놓은 듯 했다. 아니라고, 이제 완벽히 이전의 사회로 돌아왔다며 영수만 유별난 것이라는 뉘앙스로 말하진 못하겠지.


📖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왜 자살은 시도했나, 싶을만큼 열심히였다.

죽고싶다는 사람이 떡볶이는 먹고 싶다 했었고, 오늘을 일개미로 살아온 사람이 깜깜한 밤 강물에 일렁이는 가로등 불빛에 자신을 담궈버리기도한다. 열심히 산다고 모두가 생을 끝을 생각하지 않는건 아니다. 일말의 뉘앙스는 있겠으나 열심히 애쓰는 사람 일 수록 자살의 각을 재는 데에는 빈틈이 없을 수도 있다. 의외로 오늘까지의 내 몫을 반듯하게 마친 후 끝낼 사람들이 허다하다는 것. 꼼꼼함에 도가 튼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될 뒷일까지 생각하는 반듯한 사람일거니까 삶의 열의로 죽음의 이유를 나누지 않아야 할 것이다.

📖 ......그럼 너는, 그 기억이 없어서 그렇게 우울했던 건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죽고 싶을 만큼?

그렇다면 반대로, '나는 그 기억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았었나?'

기억의 일부를 팔았고, 그 판매한 기억의 일부는 가공이 되었고, 상품화된 기억은 누군가가 값을 치르고 구입을 해 또 다른 누군가의 기억으로 주입이 되고. 모든 재화는 돈이 된다는 물질 만능 주의의 세상은 여전하다는 걸 한번 더 실감하면서 값을 치르고라도 얻고자하는 탐나는 기억이 있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너의 평안을 위해서 너를 좀먹는 기억은 내가 얼마를 치르든 모조리 사서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릴게. 그러니 너는 내 곁에서 행복만 하면 되는거야. 라는 식의 로맨스 판타지 서사. 얼마나 애틋하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면 그럴까 싶은 마음을 헤아려본다. 아마 나라도 그러겠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덜 힘들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그가 나를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든 다 해보겠지. 그러고도 남겠지.,

📖 과거의 기억들이 적금 같았다. 힘들 때 언제든 빼서 쓸 수 있는, 틈틈이 소중히 모은 적금.

하루 이들 며칠 어느 계절을 그 적금만으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영수도 알았다. 적금도 바닥이 난다는 거. 과거의 기억도 오늘을 살아서 생긴 거라는 거.

죽이지 않았으나 죽였다고 착각을 했고, 그 사람을 보는 자신이 죽을듯 아팠다. 착각하는 그 기억을 버리고 싶어 팔았고, 그 기억을 내가 산다면 상대는 좀 편히 살지 않을까 해서 기억을 삼키며 그를 지켜낸다. 살아내는 방식과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 전부 지키고싶었던게 있었던 삶이었다. 영수의 처지가 짠했고, 0수를 대하는 영수의 시선과 손길에 마음이 쓰였다. 아니라고 부정 할 순 없었지만 곳곳에 드러나는 감정들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요즘 사람의 면면을 띄고 있었다.

뭐가 그리도 힘들었을까. 세상 사는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냐고 별거 아니라고 털고 일어나자고 등짝을 퉁퉁 쳐대고 싶지만 별거 아닌 건 없다는걸 나도 아니까 그냥 영수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쪼그려 앉아있다 '나 간다. 자라!' 라는 말만 툭 던져놓고 사라지고 싶어진다. 이놈 오늘 밤엔 별일 없겠지 싶은 마음으로.

아무리 세상이 휙휙 바뀐다 한들 저자가 말한 것 처럼 인간과 인생 자체를 복제하는 일은 없을 듯 하다. 그러니 우야든둥 살아는 봐야하는거라는 것. 내 몫을 할 다른놈을 지정할 만한 차선책 따윈 없다는 것. 그러니 어떠한 말로 위안과 위로는 못 되어 주더라도 일단 옆에만 있어주고싶게 했다. 적어도 허공을 보며 혼잣말만 하는 일 정도는 없도록. 무엇에 홀린듯 혼자 빈 방을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오는 말 말고, 일단 들어는 줄 수 있는 놈이 있다는 안도감이 들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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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 탄자니아 여행그림책
나태주 지음 / 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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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을, 여행의 단상을 다 담아둔 책. 2019년 부터 후원해 온 아이를 만나기 위한 움직임. 처음 사진으로 접한 아이를 직접 대면하기까지의 시간. 아이의 인생 절반을 시인이 후원해주었기에 그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과 시간들이 궁금한건 당연했을 것이다. 후원에 지나지 않고 직접 만나며 아이의 세상을 이해하고 응원하기까지의 마음들. 나이가 든다고 다 같은 어른이 아니듯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세상이 함께 애쓰고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시집은 총 3부작. 1부 탄자니아의 시에서는 후원하는 아이를 만나기까지의 여정과 지금껏 살아오며 마주하지 못했던 새삼스러운 세상을 알려준다.

2부 생명의 선물을 통해서는 여행을 다녀온 이후 익숙하게만 여기던 시인의 세계이지만 새삼이라는 단어를 덧붙여야 할 만큼 사람과 시간, 세상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간 살아오며 함께한 인연들에 대한 감사도 빼놓지 않았다.

마지막의 3부 먼 곳이라는 단어를 통해 시인이 오랜기간 머무르던 장소와 시간들을 같이 떠올려보며 어느하나 허투루 둘 수 없고, 특별하지 않았던 적이 없던 날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켜켜이 꼽아두는 어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곱고 반듯한 시선의 시집이라 할 수 있겠다.


📖오아시스_ 소년아, 그대도 부디 그대 인생의 사막길 지상의 강물이 땅속으로 스며 지하의 강물 이루듯 그대도 모래밭 사막의 인생길에서 보다 깊숙이, 보다 세차게 지상의 강물을 지하로 내려보내어 더욱 세찬 지하의 강물을 이루게 하라.

부유하고 차고 넘치는 세상고 있고, 내딛는 걸음마다 바스라지는 불완전한 세상도 있다는 걸 우린 안다. 모두에게 평등하길 바라지만 삶을 마주했을 땐 누구보다도 냉정해지는게 세상이더라. 저자는 자신이 살아왔던 고달픈 시절보다 더 절절하게 살아가는 여기 소년들의 마음을 떠올린다. 한국에서는 흔해서 고심하지 않던 것들이 이 곳에선 목숨을 쥐고 있는 것들이 될 수도 있으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달플 수 있다는걸 오아시스로 한번 더 깨우친다. 부디 이곳의 청춘들에게도 오아시스보다 더 크고 세찬 강물같은 순간들이 차올라 걱정없이 살 수 있기를 바라게 만든다.

어떠한 생의 인연 교차점 하나 없음에도 어른의 저자는 이곳의 사람들에게 인생에도 거짓말 같으며 기적과도 같은 오아시스가 솟아올라 하고픈 것 다 누리고 살았으면 하는 이미 살아본 자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대가 없는 기원이며 요청 없으나 바라게되는 세상에 대한 간청 같았다.

📖현자의 말_ 고맙다, 감사하다, 안녕히, 그러노라면 고맙지 않은 세상이 고마운 세상이 되고 감사하지 않은 사람이 감사한 사람이 되고 안녕하지 않은 너와 내가 안녕한 너와 내가 되지 않을까.

나의 외할머니도 그러하시지만, 이젠 나의 부모마저도 내가 하는 손길과 마음들에 감사하다며 꼬박꼬박 인사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셨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이렇게까지 다정히 표현 하신 적이 없었던거 같은데, 두분의 품을 떠나 가정을 꾸리고 어른으로서의 몫을 하는 사람으로 살다보니조금씩 바뀌신걸 느꼈다. 당신들이 나의 보호자였었으나 지금은 내가 당신들의 보호자가 되었고, 어떠한 일을 결정하거나 중대한 사안이 있다면 당신들의 의견보다 나의 의중을 더 먼저 묻고 의지하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부터겠지. 괜한 짐과 걱정을 안긴 것 같아하며 사사로운 일 마저도 감사하다며 마음 표현에 헤프도록 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으셨다. 저자는 죽음을 앞둔 현자가 입에 올린 말이라 하였기에 나는 이 걸 읽으면서 괜히 명치가 뜨끔해졌다. 나의 그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들로 죽음이 코앞에 다다른건 아닌가 겁을 먹게 하곤 있지만, 부디 죽음에 이르러서야 세상이 고맙게 느껴진걸 뒤늦게 안 사람이 아니라 좀 더 이르게 깨우친 진짜 어른이 되셨던 걸로 믿고싶어진다.

어린 아이의 성장이 뿌듯해지고, 같이 여행한 동행자의 청춘이 예뻐보이고, 어른으로서 애쓰는 동료이자 후배 작가의 마음씀씀이가 흐뭇해지는 사람. 모든 것에 감사하다는 말로 문장을 완성시킴으로서 멋드러지게 늙어가는 노년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시인. 마음속에 담아두기보다 글로 표현하고 문장으로 진심을 드러냄으로서 주변인들이 자신에게 베푸는 것들을 고마워할 줄 아는 어른의 세상이 책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시인이 직접 연필로 그린 산과 나무, 꽃, 마을의 풍경들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옮겨두어도 되겠지만, 단색의 서걱거리는 연필의 질감이 페이지마다 그대로 담겨있어 오히려 무엇을 보여주고 어떠한 마음을 표현하였는지를 더욱 확실하게 전해주기도했다. 잘 그려서 정확히 전해진다기보다 오롯한 마음으로 보여 주고픈 것들에만 손에 힘을 쏟아내어 전해준 순간의 단편들 같아서 만약 우리 할머니에게 오늘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림일기를 써서 보내달라하면 바로 이러한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여행그림책으로 묶여진 에세이라 그런지 지난달에 읽었던 이병률 저자의 좋아서 그래 처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손 끝으로 다양하게 표현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글은 내 마음을, 그림은 가장 보여주고픈 그 장면의 어떤 피사체를 옮겨담아두었다. 우리의 세상은 4K의 명확한 해상도로 구현되기도 하지만 나의 온전한 마음은 뭉툭하고 화려하지 않은 연필 한 자루로도 표현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어른의 세상살이 후일담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이기를 잘했다 했고, 오늘도 숨쉬는 사람이길 잘했다 하며, 여기 와서 만날 수 있어 잘했다며 다 잘했다며 똥깡아지라 부르는 손주의 모든 날이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는 어르신의 고운 시선같은 글. 나 또한 돌아보니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과 과정들이 천국이었다 단언 할 수 있도록 잘 사는 어른이 되어보고 싶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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