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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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정보가 없을때엔 지명을 책 제목으로 둔 줄 알았다.

책 뒷면에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양지영과 저자 양주연, 두 이름을 겹쳐 부르는 말이기도 하며, '익명 속에 머물러 있는 여자들을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 양씨 집안의 아가씨를 부르는 호칭이자 한번도 불러 본 적 없는 저자의 고모를 이르는 단어. 그녀는 있었으나 없다. 있었지만 있었던 이력까지 다들 묻어둔 채 살고 있었다. 존재에 대한 언급이 없던 사람들이다. 그제서야 책 표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옛날사진인데 어느 한 사람만 도려낸 듯 흔적이 없다. 대신 홀로그램같은 반짝이는 필름이 덧 씌워져 있을 뿐이다. 이 사람이 그 양양 이구나 싶어하며 책 표지와 뒷면의 서평 일부 만으로 이야기들을 추론해본다. 행복했던 순간을 숨기려 하진 않았을테고, 사진으로 어렴풋 가늠해보건데 주인공은 홀로 많이 울었으리라 짐작하며 그제서야 이것저것 검색으로 사전 지식을 채워보았다.

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 개봉이 동시에 이뤄졌다. 다큐멘터리형의 영상물. 2분 남짓의 메인 예고편을 보면 저자는 화목한 가정이라 믿었던 곳에서 숨겨두기만 했던 아빠의 자살한 누나를 알게된다. 가족의 비밀이었던 그녀에 대한 흔적을 조카가 따라가며 시절이 주는 설움과 챙김받지 못했던 대상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녀의 흔적을 긁어모으게 만든다. 왜 이야기를 안 하려 했던건지, 왜 그리도 그리워하지 않고 숨기기만 급급했는지를 남겨진 이들을 통해 알게되는 과정 속에서 양양은 과연 고모 뿐이었을까. 이름모를 양양들은 분명 존재했을 것이고, 고모 만큼이나 잊혀지고 외면당했을게 빤해서 저자 만큼이나 독자들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든다.


📖특별한 삶은 무엇이고, 특별하지 않은 삶은 무엇인지. 누가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또 누가 주인공이 될 수 없는지.

시절마다 특별한 삶에 대해 논하는 방식이 다르다. 특히나 더 엄격했을 과거로부터 시작하는데 과거에 잊혀진 가족이 있으니 그 생(生)에 대해 궁금 할 수 밖에. 일단 가정에서부터 주목받지 못했다. 사회에서도 제약이 많았고, 삶을 끝내는 것에도 뚜렷하게 기록되지 못한 그 생이 더 애달프다. 이만큼 특별한 생이 또 있을까를 생각하며 조금 다른 관점의 특별한 삶에 주목하고 있었다.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 시간은 온 마음으로 느끼며 나는 나의 시간을, 가족의 시간을 다시 꺼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매번 과거 회상의 방식으로 뒤늦게 그 순간을 기억한다. 사진, 영상, 각자의 기억으로. 모두가 서운함 없이 두루두루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긴 하지만 마냥 행복한 사람 곁에는 어딘가 모르게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 주눅든 마음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모자란 사랑을 시간이 지난후에라도 보살펴주고 싶다. 과거의 모자란 것에 지금의 따뜻한 시선과 더 큰 마음으로 메꿔놓으며 아쉬움과 설움을 토닥이게된다.

그 시절 저자의 아빠가 무조건 잘못했다며 타박하는게 아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었다. 보고 자란 것이 그러했으니 그게 잘못된 마음이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이제는 그래선 안된다 일러주고 덜 받은 사랑의 게이지를 지금이라도 채워보자며 구슬려주는 어른이 된 저자의 모습에서 각각의 자리에서 덜 아프게 영그는 방식이 이런거구나를 느꼈다.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일부러 타인의 행복과 사랑을 뺏들어 나의 복닥한 기쁨을 채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 않는 다는 말에 반기를 드는 것 대신, 그러한 희생의 존재를 알아주고 덕분에 얻은 더 큰 복이 나에게 왔음에 감사하며 그 마음을 귀히 여겨주는 방식으로 마음을 달리하길 바라게된다. 그 시절엔 '나'라는 존재가 분명 없었던 시대였고, 어떻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던 자신을 책망하기보단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마음으로서 그 흔적을 잘 보듬어 주었으면 싶었다. 나에게 고모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던 것 처럼, 고모역시 자신의 죽음을 누구보다 서럽게 여기며 기억해줄 조카가 생길지도 몰랐을테니까.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자기 앞에 놓인 화목과 다정함을 거부하진 않았으면 한다.

책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된 '양양'의 제작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이긴 하나 쿠키영상 혹은 보너스 트랙 같으면서도 제작 후일담과도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소설같지만 실제이고, 영화이지만 페이크다큐이길 바라게되는 주인공 지영의 짧은 생을 보여주고있다.

주인공은 있지만 없는, 그래서 존재의 의중을 물을 수는 없으나 남겨진 흔적을 통해 시대상에 끼워맞추는 식으로 가늠할 뿐이다. 소재의 중심에 있던 양지영에서 양주연으로 넘어갔으며, 용용의 시절까지 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부녀지간이지만 남보다 더 못한 사이인냥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던 지영의 성장기, 같은 부녀지간이지만 앞서 보았던 사이와는 다르게 이야길 하려고 애썼고, 그간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대화라는 걸 시도했던 주연의 관계. 그리고 이제는 모자의 관계로 성별이 바뀐 채 시작될 엄마 주연과 아들 용용(태명)의 이야기로 이야기의 끝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인냥 그렇게 다음 세대를 알려 준 후 끝이난다.

아버지가 묘를 이장하며 딸이 낸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당장에 된다, 안된다의 대답보다 고심 후 표현해 낸 진심. 아버지도 누나가 그리웠을 것이고, 빈 자리의 공허함을 분명 느꼈을 것이다. 그걸 표현하지 못하는 시대상과 가족내의 분위기는 과거의 이야기 일 뿐이다. 그런건 이제 없다. 그러니 이제 마음가는 대로 하는것이 지금의 양씨 집안을 꾸리는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법을 보여주어 마음을 덜어본다. 여전히 그녀의 생의 흔적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는 없다. 추측 할 뿐이며, 그녀와 함께 했던 이들과의 대화로 회상할 뿐이다. 어디에도 없던 양지영을 마지막으로 가족 묘비에 옮겨 둠으로서 이름으로나마 있었다는 흔적을 일부러라도 남겨놓음으로서 남겨진자들이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변화된 세상의 표식을 마주 할 수 있었다. 아직 무엇도 기록되지 않았고, 아직 무수하게 남길게 많을 양주연과 용용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세상은 이보다 더 뚜렷하고 세세하며 서운함이 없길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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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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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앉아서 모니터를 마주하고있는 저자는 @문자의 원형에 갖혀진 채로 우리와 만나고있다. 역시나 저자 다운 발상의 책 표지. 제법 많은 책을 읽었다 싶었는데 이 책을 안 읽었더라구. 그래서 오랫만에 마주한 저자의 글이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뭔가 굳건한 의지를 갖고 읽어내야만 할 듯한 문장이다.

나 또한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 하기보단 유선상의 연락이 익숙한 사람. 이러한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직장인 나부랭이로서, 그리고 대감님집 노비로서 오래 밥빌어먹고 살고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수단보다는 '이메일'로 자료를 주고받는게 더 흔해진 상태이다. 여건상 매번 연락도 어렵고, 직접적인 대면은 더더군다나 어려운 것이니 메일 전달로 각자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종의 흔적을 남기려는 것이기도 하며, 내 머리는 컴퓨터가 아니기에 그 기록물을 복기하며 업무의 흐름을 챙기는 것 이다. 그러니 나 또한 이메일 쓰기가 얼마나 중요한 밥벌이의 수단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 지금 회사에서만 12년 하고도 5개월을 일하고 있고, 그 이전에도 각각의 서비스업, 제조업에 발 담그고 살았으니 얼마나 많은 대면, 전화와 팩스,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지 대충 가늠이 갈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 자하는 이메일 쓰기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으니 더 격한 반응으로 공감하며 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글 맛 잘 살리는 건 익히 알고 있으니, 그 능력으로 어떻게 우리는 구워 삶아서 잘 하는 사람으로 바꿔치기 할지 기대하며 얻어갈 것들이 뭐가 더 있을지 틈을 노려보기로 한다.


📖허나 우리는 기후위기 뺨치게 걱정스러운 이메일을 써낼 수도 있는 존재이고 멸종위기에 처한 친절과 낭만과 유머를 되살릴 수도 있는 존재다.

입에 모터 단 듯 말하는 언변보다 손가락에 모터 단 듯 와랄라 써 내려가는 능력치가 더욱 큰 세대. 그래서 직장인들은 세상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모니터를 마주하고 있지만 키보드 위에서는 사람을 녹여 낼 수도 있고, 벼랑 끝으로 몰아두어 죽일둥 살릴둥 가시돋힌 논쟁도 가능한 사람인걸 언급했다. 업계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결국 사람을 구슬려야 하는 일이고, 사람의 의중이 가장 큰 것이니 그걸 붙잡을 구실이 결국 말과 글이었다.


📖내 실속을 챙기면서도 무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성냥하면서도 얕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돈 더 달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비굴하지 않을까? 거절하면서도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싸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을까?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바로 당겨와야 하는 것이고, 그걸 위해서 우리는 글로서 표현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팩트만을 나열해야하는 보고서같은 문체도 필요하고, 경직되어있을 상대를 말캉한 계절 인사나 시기에 맞는 인사로 시작되어 깨름직하거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내며 해치지 않는 사람인냥 접근해야하는 것이 결국 흰 페이지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액션이다. 문장 전달. 완벽한 의도를 가지고 쓰게되는 글. 완벽히 상대만을 향하고 있는 서술.



📖다정함이라는 기술은 결국 상대의 시간과 노고를 소중히 여기는 씀씀이다. 그것을 귀히 여길 때 돈 얘기도 구체적으로 쓰인다.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돈 얘기를 생략하지 말자. 첫 메일에 시원하게 적어버리자.

아이스브레이킹도 좋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목적을 갖고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서로가 궁금해하는 점, 상대에게 바라는 점, 그리고 그 선이 모호 할 적에 맞추는 서로의 정도까지. 그래서 때로는 자신이 쥔 패를 보여주며 일단 내가 제시 할 수 있는 최대는 이러하니 가능하겠는지, 아니면 조율할 수 있는 접점은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하게 묻는 것 또한 다정함 이라 할 수 있다. 에둘러 말하며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다정함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염두해야한다. 당신도 궁금해 할 것은 이러이러 할 것이니 팩트 먼저 제시하며 그 후에 가능 여부와 조율 타이밍을 맞추는 것. 서로 빙빙 둘러 말하며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안부만 주고받다 답답해 죽는게 아니라 인포 전달이 상위에 있어야 한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


📖거절 메일을 쓸 때마다 실감하는 건 인생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내 메일을 받을 상대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서 쿨하고 따뜻한 미덕을 두루 갖춘 답장을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 만날 사람은 만난다지만, 안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게 되는게 업계이다. 아예 타 업종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결국 한번은 마주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사람일은 모른다는 그 문장을 뇌리에 박아두자. 언제 어느 시점에서 마주 할 지 모르는게 사람이라는 것. 마냥 좋을 수는 없겠다만 혹여 성사되지 않는 건으로 마침표를 찍는 다 할 지언정 척을 지게 되는 일을 만들 이유는 없다는 것. 이건 메일 쓰기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필요한 인간 대처능력 중 하나로 보면 되겠다.


📖내가 속한 업계는 완전히 문자의 세계다. 이메일 창에서 날고 기는 자들이 바로 내 동료들이다. 우리는 주로 이메일로 일하고, 파일을 주고받고, 이메일로 감탄하고, 이메일로 싸운다. 아름다운 말만 주고받고 싶지만 알다시피 일이란 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출판 업계가 문장으로 날고 기는 사람들의 조합일테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럼에도 사무직으로 밥 값하는 이들 또한 하루 종일 문서만 부여잡고 있다보니 문장 구사력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업체를 통해 요청하거나 협업문의는 물론이고, 타 부서에게 월권이 아닌 적정 선에서 업무 조율, 시기마다 실적보고, 분기보고, 연말 성과보고, 내년도 사업계획서 작성과 브리핑까지. 어르고 구슬리고 달래가며 요청과 간청을 하는 문장을 썼다가 또 다른 창에서는 최소한의 단어 배열과 팩트 전달. 클라이언트 든 오너 든 원하는 바를 빠르게 전달 할 수 있는 핵심 문장 조합력까지. 결국 이것들이 모여야 좀 더 수월하고 나를 덜 갉아먹는 방식의 밥벌이가 되며 이 집구석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구실이 괴게된다. 그러니 나는 다르게 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과 다른 길을 개척할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본이 잡혀 있어야 무얼 해도 반은 간다는 점을 확실히 익혀두자.

아는 이야기들이라 더욱 받가웠다. 그리고 이 책을 지금이 아니고, 대학 졸업 시즌에 읽었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운이 좋았던 첫 직장에서의 사수. 그녀 덕에 사람을 구슬리는, 이른바 달디단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을 얻었다. 그렇게 좋게좋게 둥글게둥글게 라는 식의 대화체를 습득했고, 두번째 직장에서는 개떡같은 선임 덕에 그녀에게 일을 배우는게 아닌 또다른 루트를 뚫을 수 있었다. 거래처의 담당자들에게 배우는 진짜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의 업무를 쳐 낸 이력이 있다. 모르면 물어보는게, 덜 혼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전화든 이메일이든 일단 나를 소개하며 나의 패를 다 드러낸 적이 있다. 아는 바가 없으니 가르쳐 주시면 실수없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으니 도와달라는 간곡함. 신입의 패기라던가 젊은놈의 객기라던가 그런건 나중 일이었다. 가르쳐주지도 않는 선임이라는 자가 월말과 월초에 세치 혀로 사람을 후려칠 수 있다는 걸 수습기간에 겪었던 이력이 있기에 내 살길을 그쪽으로 틀어버린 것이다. 이 쪽에서 뺨 맞지 않으려면 저 쪽에서 싹싹빌며 뭐라도 구해내야하는 실정이 나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방식이었다. 이게 옳은 방향은 아니다. 거래처라도 결국 경쟁의 업체이기도하고, 돈으로 엮인 관계이다보니 상대의 수월한 방식으로 가르쳐 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얻어내야했다. 그걸 떠나서 뭘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으니 흐름을 알기 위한 방식으로 기록을 택했고, 흔적을 남겨 둔 것이다. 거래처가 한두군데가 아니다보니 직원마다 다양한 문장 구사 방식과 내용 전달 스킬을 얻어 낼 수 있었다. 과외선생님이 많았고, 과외선생님마다 문제를 접근하고 풀어내는 방식이 달랐던 것. 그걸 이맛저맛 다 먹어본 후 내 것으로 얻어내는 시간이 이슬아 저자의 책 만큼이나 친절했고, 또 빨리 나에게 스며들었다. 각 기업만의 방식, 연차가 주는 문체의 다양함, 담백해야 할 때와 미사여구를 늘여놓아도 되는지의 타이밍. 웃으며 두터운 가면을 써야하는 순간과 계절이든 개인사든 언뜻언뜻 안부를 물어도 될 지에 대한 가늠까지. 그러한 것들이 이제 툭 하면 와르르 쏟아지는 사람으로 살고 있어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진짜 생 초짜 신입이 들어온다면, 인턴쉽도 해 보지 않은 정말 보송보송한 햇병아리가 온다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다 알아먹지도 못하는 막내가 쭈뼛쭈뼛 사무실을 들어온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어진다. 신입은 그러하다. 선임이 부르기만 해도 뭘 말하지 않아도 그때부터 긴장하고 걱정한다는 것. 그러니 일단 이것 부터 읽고 생각을 해보자고. 생각이라는 걸 하는데, 너무 깊게 말고, 딱 이정도만 생각하며 살면 되는거고, 회사 밥 먹고 사는 시간동안에는 더 많은 걸 안해도 되니 이정도의 긴장감만 가져보자며 놓아주고싶은 책이라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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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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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게 없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교차하는 동네. 모든 것들이 있어서 여기 뤼미에르 빌딩의 거주자들 또한 어느하나 겹치는 캐릭터 없이 모든 존재들이 촘촘히 들어앉아있다. 그래서 더욱이 핍진하지만 이것이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의 환상은 아닐지를 가늠하게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살고 있지만 다각화의 시선이 때로는 착각과 오만이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하니 있지만 없을 수도 있고, 없는데 있을거라 생각을 하게되는 존재들이 하필이면 800번대 호수에 기거하는거라 여기며 보게된다.

그렇거 있잖아. '하필이면...' 시리즈 같은 것. 이렇게 모아 놓기도 어려울 조합. 그런데 내가 모를 뿐이지 내 주변에도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의혹과 생각들. 저자는 그 생각에 이야기를 입혀두었다. 어느 하나 짠하지 않은 존재들이 없다. 하필이라는 말에 또 하나의 자극적인 양념인 '어떻게 하다가...' 로 이어지는 우려섞인 걱정의 마음. 그래서인지 전부 짠내가 풍긴다.


801호부터 810호까지. 입주민을 지칭하는 평범한 단어들이 없다. 이 조합에 낀다면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바뀌어 한 자리 꿰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로 각자의 짠함과 고단함이 묻어있겠지만 유독 이들에게는 퀘퀘한 어둠의 냄새가 유독 짙다.

슬픔을 먹고 사는 박쥐인간. 타인의 슬픔을 관망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을 영위하는 것. 가출 소년에서 흡연 임산부로 이어지고 다시 거울장난하는 장애인으로 옮겨가는 슬픔의 시선. 모든 것이 자신을 기준으로 삼고 약한 존재와 대접받지 못하는 것들로 위안을 삼는 것을 보면서 우리 또한 박쥐인간의 유전자를 품고 있으나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임을 느낀다. 801호부터 강하게 느껴지는 익숙함. 티나지 않는 나의 다면성과 숨기고픈 성질머리들이 하나씩 까발려지게 될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청에서도 비둘기 밥을 준다는거 그거 진짜야? 여기 책에서만 그러는게 아니고?(허구의 이야기 일 것이라 단정 짓지만 어느샌가 진짜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저자의 사실감 넘치는 문장 덕분에 난 또 홀랑 속는 기분이야) 일단 이야기를 이끄는 존재들은 세상이 만들어 둔 평범함의 기준과 사뭇 다른 특혜 받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청각장애인이며 다른 감각으로 소통을 하는 남자, 왜소증이며 이 남자를 사랑은 하지만 이게 맞는지 계속 의심을 하는 여자.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분류로 인해 채용된 조직에서 이 둘의 만남과 친분마저 시선을 받게 될까 우려하는 여자의 앞선 걱정도 한몫한다. 특히나 공기업이 더욱 그러한 갈래를 반영하여 채용하지만 말이 채용이지 별개의 존재로 선긋기하는 꼴을 심심찮게 봐왔다. 그러니 왜소증 여자 또한 이 시선을 의식 하는 것일테고, 이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청각장애인 남자가 의아할 뿐이고, 이 조합을 가십거리인냥 짝짝 씹어댈 멀끔해보이지만 입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인간들의 온상이 명확하게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다들 아는 그 꼴이라 예상이 가능했다.

805호는 신박한 내용 전달 구조였다. 두 단으로 나뉜 이야기. 학창시절 암기할 때 쓰던 2단 기록인데 그걸 책에서 보니 생소한데 또 뤼미에르 피플들의 이야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문장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순환 구도의 이야기. 빚 - 매품 - 돈으로 때리는 게임 - 사고사 무언가 허술한데 그게 또 다들 그렇게 살듯 완벽함 없는 생의 허점 같아 이 순환 구도가 결국 돈과 돈에 휘둘리는 사람으로 이어짐을 볼 수 있다.

비단 여기 뤼미에르 피플들에게만 적용 될까? 이 이야기가 10년도 더 된 원작이 있는 개정판인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또한 10년 후에나 똑같은 화두가 될 듯한 소재. 자신들의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키우고, 병이 들었다고 외관상 보기 싫다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인간과 버려지는 존재가 마주하는 세상. 온전히 생과 사를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키우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티에게 이입하기보다 마티를 버린 주인에게 화가 나고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자체 또한 현실과 동일한 결과 처럼 보여 짜증을 유발한다 .(내용이 싫은게 아니라 너무 현실성 짙어서 그러함) 버려지는 것들이 맨땅에 헤딩하듯 겪어내는 세상은 동물이 아니라 자립청소년이 어둠의 세계에 발을 딛거나 옳지 못한 방향으로 남을 해하고 기득권을 취하는 것과 같은 씁쓸한 결말을 염두해두고 이야기가 흘러간다. 보호자에게 버려진 존재는 온전한 세상에 도킹 못 하는 요소를 모두 습득하여 삶을 이어가는 마티가 마냥 고양이로만 보이지 않는다는게 씁쓸한 이유가 된다.


밤섬이 어떤 곳이었더라? 노래로 섬을 재건하는 무당이라 봐야하나 종교인이라 봐야하나? 인간이 가늠하기 어려운 세상. 앞서 나온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미래따위 없고 현실이 버겁고 하루하루 허덕이는 이야기들이었다. 읽는 과정에서 지치고 암울해진이 우려되었는지 8층 존재들 중 '그나마' 희망의 싹을 틔울 마지막을 남겨 둔 듯 했다. 틀림없는 사실은 빛은 다시 돌아오고 희망이 있다면 절망은 저물기 마련이라는 느낌에서 마지막을 '되살아 나는 섬'으로 미리 못박아둔게 아닐까를 생각하게했다.



연민의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 본 다는 것에서 오는 모멸감의 감정 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은 시작은 연민이고 결말은 안타까움으로 마무리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뤼미에르 8층의 기운이 유달리 스산하고 기묘한게 아니라 그냥 이 도시 전체가 그러한데 8층의 입주민들이 조금 더 도드라질 뿐이고, 저자의 눈에 띄였을 뿐이겠지.

우리도 가끔 지인들과 이야기 할 때 희안하게 불행 배틀하며 자신의 고단한 생의 역사를 읊을 때가 있다. 결국 그거였다. 그러한 고단함 속에서도 '나는 지금 이렇게 잘 살아오고 있지 않냐?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대단해! 그러니 나 좀 기특하게 여겨줘!' 라는 의중이 숨겨져있다.

그러니 이들에게도 각자의 숨구멍을 찾고 있는 중일테니 마냥 짠하게만 보지 말고, 잘 하고 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나중엔 괜찮아 질 거라며 허망한 희망의 말이라도 더 얹어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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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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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이나 그룹형 글쓰기 교실, 자신의 책을 내기 위한 강좌들도 많던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다. 꾸준히 해 볼 자신도 없거니와 막상 내 앞에 놓여진 깨끗한 노트북 화면 보면 말문이 턱 막히고, 글들도 갈피를 못 잡을게 빤해서 이렇게 혼자 글쓰기 안내서와 독대하며 나를 더 까 내려가 볼 요량으로 명절 연휴 긴 시간동안 죽이되든 밥이되든 싸워볼까 싶다.

1부 당신에게는 어떤 문장이 있나요 / 2부 좋은 글은 어떻게 구성될까요

3부 말해지지 않은 것을 써볼까요 / 4부 쓰는 듯 살고, 사는 듯 읽으세요

에필로그: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총 4부로 나누어 글과 글을 쓰는 나를 이야기하는데, 결국 나는 4부의 문장으로 살고싶고, 에필로그의 문장이 곧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어차피 소설도 아니니까, 자신감이 하락하고 의욕마저 상실하기 전에 에필로그부터 읽어가며 뒷북치듯 뒤에서부터 읽어간 후 다시 앞에서 당당하게 페이지를 넘기는 독서 해작질을 감행했다.

저자는 말한다. 사는 게 그렇듯이 글쓰기에도 '판타지'란 건 없습니다. 그냥 한번 썼는데 멋진 글이 나왔다는 식의 '아름다운 드라마'같은 건 없습니다. 한 만큼 늡니다. 거기에 저자는 내 행색을 다 보았다는 듯 이 문장을 덧붙인다. 십수년 동안 뼈 빠지게 일만 하던 노동자가 가끔 책이나 잡지를 읽으며 글쓰기의 꿈을 키웠다고 이 글을 '잘'쓸 수 없습니다. 모질게 들리겠지만, 그게 현실(진실)입니다.

이 말에 정신차리라면 뒷통수를 얻어 맞은 후에야 눈에 힘이 들어가고 온 몸에 힘이 들어감을 느낀다. 우리가 밥벌이의 수단인 일을 하는 것과 똑같은 행위라는 점. 그냥 일을 한다고 자동으로 늘어서 잘 하게 되는 법이 없는 것 처럼, 뭔가를 해야 일이 늘듯 거저 글쓰기는 없었다.

'허투루'대해서 실력이 길러지지 않는 점. 그리고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어야 '글을 잘 쓰고야 말겠다'는 각오와 나란히 뛰어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나는 뒤쳐진 채로 방관만 했음을 느낀다. 나를 앞서서 힘차게 발을 구르고, 열심히 팔을 휘젓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연신 감탄만 하고 있었던게지.

1부 당신에게는 어떤 문장이 있나요의 끝엔 내가 진실로 묻고 싶었던 한마디가 부록처럼 이어져있다.

글감을 잘 풀어내기 위하여에 해당하는 답변이었다. 글을 잘 빚어내는 것도 좋지만 몇개의 핵심 단어와 문장을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떻게 풀어내어 잘 떠먹여 줄 것인가가 어렵다. 육하원칙의 '어떻게'와 '왜'의 경계이기도 한데 속시원히 내 마음을 다 꺼내어 풀어내고 싶은데 매번 엉키거나 한쪽만 과하게 뭉쳐지는 기분이다. 글의 시작은 담백하게, 윤라적 주제를 씌우려 하지 않으며 유일성에 더 큰 힘을 싣어주길 바라고있다. 보편타당한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며 그걸 기대하며 읽는 이들은 없다는 점.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주길 원하는 그것에 집중하라는 듯 ai가 빚어내고 gpt가 반듯하게 재단한 글에 속박당하지 말길 바라는 말들이었다.


3부 말해지지 않는 것을 써볼까요의 단락 중 많이 공감하며 읽었던 감정은 피부 밖에 있다는 이야기.

두달 전 즈음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온 일이 있었다. 그때 격양되어있던 기분과 이른바 욱하는 마음이 겹쳐서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이 와르르 쏟아지기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럴 때엔 격동보다는 평정심이 필요했다. 감정 자체는 글이 아니니 감정을 잘 구슬려서 감흥을 일으켜야했는데 그걸 다룰 기술이 없었던 것이다. '절제'는 넘치지 않게 조절하는 겁니다. 넘치는 걸 '과잉'이라 하듯 나만 붕 떠있고 독자만 무덤덤한 전달이 아니라 그 반대의 액션이 취해 지도록 감정의 매개체를 끌어오는 연습이 필요함을 느꼈다. 감정과 감정의 직거래 대신(이 때엔 매번 욱하고 왁하는 다급함이 양념처럼 뿌려진 상태) 거간꾼 같은 매개물에게 한번 거르고 옮겨져 말갛게 남겨진 기운을 전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저자는 말한다. 여전히 직업으로 하지 않을테지만 그럼에도 '잘'쓰고 싶다는 것. 강요하지 않고, 마감에 쫓기지 않고 한가로이 글을 쓰는 과정으로 얻어내는 글들의 진짜 힘을 기대하게된다.

습관같은, 그런데 이제 습관인지도 모르는 것들의 행동들의 틈에 습관같은 문장 기록, 일상같은 단어의 정확한 해석, 당연하게 여기는 독서의 찰나까지도. 그러면 '잘'쓰고 '적어도 나잇값 하는 어른'이 될 거라 했으니 당장은 어렵겠으나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즈음엔 나잇값도 하는데 잘 쓰고 잘 하는 좀 괜찮은 어른으로 바꿔 살아도 좋지 않을까를 기대하게된다.

📖하니포터 11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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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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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저자 이름으로서 주는 믿음이 있었기에 자세히 살펴 보지도 않고 덜컥 구입 한 것도 있었다. 지금것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 영화나 영상화 되는 이후 출간물을 염두하고 이야기를 꾸린게 아닐까 싶어지는 소재였다. 이야기의 중반부에는 조금 버겁다 싶은 문장의 장황함이 있었다.

절창이라는 제목 답게, 베인 상처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읽게되는 여성이 이야기를 끌고가고 있으며, 사랑인지 소유인지 집착인지 알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기도한다. 이 여인을 소유하고 있음으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능력을 필요로 한건지, 능력을 가진 여자를 사랑하기에 더 곁에 두고 싶었던 것인지, 그리고 그 여인을 위해 했던 행위로 인해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소실한 채 살아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다. 글로서 그 공간을 다 표현하지 못할까봐 세세하게 기록했으며, 때론 장황하기도 했다. 촘촘한 설명은 눈 앞에 확실히 현상을 그려내고 있긴 하나 한편으론 더디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새장 속 어여삐 여기는 애완 동물같은 그녀를 위해 독서 담당 상주 선생님으로 들어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은 단지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확고했던 목표. 남편을 죽이려 한건 아니라는 말은 그녀를 더 자극시킨다. 죽일 의도는 없었던 이, 상처로 모든걸 말하는 이, 그들의 능력으로 남편을 잃은 이. 모든 패는 다 공개되었다. 이로서 상황을 후반부에 황급히 마무리 지으려는 듯함을 느꼈다. 페이지는 얼마 안 남았는데 이야기는 끝맺어야하고, 그러니 갑자기 빨라지는 속도. 중반부의 느슨함이 우려스러웠는지 후반부에 빨라지는 서사들 주워담기.

이번 소설은 나에겐 미감이 뛰어난 영화나 넷플릭스 단편물 제작을 위해 쓰여진 시나리오처럼 와닿았고, 그래서 조금은 아쉬운 저자의 작품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이건 뭐, 전적으로 내 생각이니 다른 독자들의 의견이랑은 다를 수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대화들 속에서 고전을 인용하는 보스. 읽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던 아가씨. 그리고 새장처럼 그 집에 갖혀살며 서재의 책들과 이야기 하며 지낼 수 밖에 없던 조건. 책이라는 매개체 덕에 교사로 들어 올 수 있었고, 책 속에서 그것을 찾아 낼 수 있었던 이 집의 특성. 보스와 아가씨의 사랑은 애절하다거나 측은함의 느낌은 받지 못했고, 그저 책으로 흥미를 끌어내려했던 좀 알던 보스와 어떠한 매체와 접근할 수 없도록 갖혀진 공간에서 유일한 책을 통해 숨구멍을 트여보려했던 아가씨, 이들간의 흔한 작업으로 죽은 남편에 대한 애닳음과 복수만이 그득했던 선생만 다급했고, 조마조마했던 시간들 뿐만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독서 같은 걸 왜 배우나 생각했으면 내가 여기 올 일은 없었겠지? 시험이 아닌 한 그게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생각하라고 내버려두면 돼.

행위의 목적 자체가 세상에 만연한 쓸모없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데에 있다는 것. 결국 인간의 살아 있음 자체가 쓸모없다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음을, 책을 읽고 반드시 무언가를 느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정관념과 강박의 소산에 대한 방향까지 뻗어나가기엔 선생은 다급했고, 아가씨는 이 생활에 적응한듯 무뎌져있었음을 느끼게된다. 효용에 올인하다보면 결국 아가씨도 보스의 효용가치의 수단 일 뿐이고, 선생에게 아가씨 역시 남편의 사인을 알 수 있는 실마리의 끄나풀 그뿐이었다.


예쁘게 꾸며지고 가꿔지는 새장 속의 애완동물같아 측은하긴 하지만, 결국 또 한번의 일탈이나 탈출에 목숨까지 걸 여력을 두지 않는 그저그런 보스의 예쁜 소유물로만 보게된다. 이 사랑이 특별하다 하기엔 소유의 목적이 더 컸고, 유일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의 비중이 컸기에 이 사랑이 유독 귀하게 여겨지진 않는다. 모두가 멀리하지만 아가씨만 곁에 있으니까, 그저 시야에 걸리는 상대였기에 시간이 흐르며 같이 흘러가던 사랑의 감정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겠다. 운명을 믿는다거나 위험한 상황 속에서 싹트는 사랑을 더 소중히 여기는 그런 낭만주의는 아니라 그런지 특별함으로 포장 할 수 없었다. 시야에 얻어걸린, 주변에 있어서 익숙하게 받아들여진 결국 어그러질 존재의 사랑일 뿐이라 말하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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