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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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용하는 온라인 인터넷 서점의 소설 MD님은 “살아남은 모든 여성에게 존경과 사랑을”이라는 문구로 소개를 했다.

 

 

심시선이라는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이뤄진 가족의 이야기. 어머니이고 할머니인 심시선 여사의 10주기를 기점으로 남들과는 다른 제사를 지내며 심시선 여사를 기억하는 이야기이다. 두 번의 결혼과 다른 성으로 이뤄진 자식들. 그리고 그녀를 각자의 방식으로 추억하는 손주들.

그 시절 여인 중 가장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 심시선. 예술가이면서 비극적 천재화가의 뮤즈. 방송인이면서, 칼럼리스트이고, 통쾌한 언변으로 세대를 아울렀던 작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사이다 발언을 해주는 최고의 유명인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가득하다.

책속에서만 존재해서 아쉽고, 또 어쩌면 책속에서라도 존재해주어 감사한 그녀. 단락마다 소개되던 그녀의 인터뷰 내용과 칼럼, 자전 소설의 짤막한 문장들은 하나라도 놓치기 아쉽다. 그래서인지 밑줄이 많이 그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어 ‘시선으로부터,’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커지는 마음들이다.

​01_ “난 항상 할머니가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대 여자들 중에는 말야.”

그 지점에서 우윤의 의견은 지수와 갈렸다. 우윤은 할머니가 행복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가진 조각들이 다르네, 할머니가 나눠준 조각들이 다른가보네,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역시 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만났던 심시선 가계도. 흔한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싶은 것. 고모들 사이에서 “....걔?”라고 불리운 심여사의 셋째 명준의 자식인 우윤. 이 10주기 제사를 이끄는 첫째 명혜의 둘째 지수. 각자가 다른 색으로 기억하는 할머니와의 기억들. 우리가 알던 그 시절의 흔한 할머니 상은 아니겠구나 싶은 시선의 뿌리들.

​09_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어머니의 유언 같은 말을 꼭 지키고 싶었지만 10주기 만큼은 그녀의 뿌리들다운 방식으로 추모하는 제사. 일부만 고생하며 차리고, 죽은이가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거하게 내어 두는게 아니었다. 역시 심 여사 자식들다운 발상이었다. 어찌하다보니 나의 부모 또한 얼굴도 모르는 조상을 위해 몇 십년 동안 그리 고생을 하시는게 어린 나는 마뜩치 않았다. 이렇게 한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왜 그 많은 자식놈들 중에 나의 엄마와 아빠만 그리 고생을 하나 싶은 삐뚤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왜 진즉 이렇게 하지 않았던 것일까. 추모하고 마음만 있다면 그게 다인데, 고생은 고생대로 했고, 주변에선 당연하게 여겼으나 그 당연함이 귀한 시간을 내어 수고로움을 감수한 이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왜 없었나 생각이 든다.

22_ 아이들을 움직이는 엔진은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 네, 다른 사람입니다. 부모도 결국 다른 사람입니다. 세상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걷어내주시기야 해야겠지만, 가능성이 조금 번쩍대다 마는지 오래 타는지 저가 알아서 확인 하도록 두십시오.

심 여사가 1984년 초청된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들의 일부이다. 이 이야기들을 빌어 볼 때 다섯 손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걸 어른들이 굳이 조작하려 하지 않음에 감사하게 느끼기도 했다.

회사에서 뜻하지 않게 염산테러를 당했지만 꿋꿋하게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화수나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떠난 하와이에서 만난 이의 도움으로 무지게 사진을 얻고,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려할 때 마음속에 감춰있던 움직임에 반응하고 칠레 연안 유조선에서 야생동물 구조를 위해 비행기 표를 바꾼 지수. 어릴 때 크게 아팠던 것에 대한 기억에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파도를 타면서 이겨내려 애쓴 우윤. 엄연히 보면 심 여사의 핏줄이 아니지만 그녀의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인 듯한 삶을 사는 규림. 곤충 학자인 아빠를 닮은건지 새에 빠져있지만 가치관만은 뚜렷한 해림까지.

내가 보기엔 모두 ‘시선’스럽게 잘 살아가고있고, 각자 처한 환경에서 잘 버텨주는 거라 보였다.

31_ “심시선 여사를 닮았으면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지수의 행동을 보고 명혜가 했던 말. 그래, 심시선 여사의 손주라면 어련히 잘 할 거라는 그런 암묵적인 믿음 같은 것.

가부장제가 필요 없는 곳. 아버지의 성을 따라 살든 심 여사의 성을 따라 살든 어쨌든 살아가는 것에는 이름 앞에 붙은 성씨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

여자가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됨을 상기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 자체로서 살아감에 스스로를 던져도 좋다는 먼저 살아온 선배가 해주는 이야기들의 기록.

과거의 1세대 심시선 여사가 했던 말들은 3세대 화수, 지수, 우윤, 규림, 해림이 살아가는데 기초가 되어줄 귀한 문장들이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요즘 치부되는 꼰대적 발상이 아니어 좋다. 그 시절엔 튀는 언변이라 하겠지만 결국 꼭 필요한 생각들. 그래 우리 꼰대적 인생 말고 ‘시선’적 인생을 살아보자. 무엇을 하더라도 실패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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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른 돈 공부 - 1페이지로 보는 돈의 흐름을 꿰뚫는 법 세상에서 가장 빠른 시리즈
보도사 편집부 지음, 정소영 옮김, 이토 료타 외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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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우리 인생은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삶이더라. 그렇다보니 나랑 평생 함께 붙어있어야 하는 돈이라는 놈이 어떤 녀석인지는 좀 알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나도 흥미를 갖게되었다.

지금까지는 큰 유혹 없이 나름 잘 살아오고 있다고 믿었는데, 아직 나에게 남은 날은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이 남아있다. 그러하니 돈에 대한 지식을 탄탄하게 갖추어 쉽게 휘둘리거나 속는 일이 없도록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다들 주 거래 인행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부모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고, 그 다음이 회사 주거래 은행에 따라 급여통장이 발행되니 편하게 거기에 모든걸 맡기는 사람도 있을 것. 제1금융권인 일반은행과 특수은행. 그리고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외국계은행. 제2금융권으로 분류되기도하는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기구, 우체국.

금리와 대출 용이한 목적에 따라, 전국 지점이 많아 어디서든 거래하기 쉬운 곳, 회원들의 이익 중심이 되는 은행, 외국에서 거래를 자주 해야하는 이유가 있거나 외국에서 거주하는 가족에게 송금하기 수월한 곳, 각각의 목적과 서비스의 상태를 골라가며 거래하는게 한곳에만 파고들며 거래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은행거래 방식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돈이 사람을 웃기고, 돈이 사람을 울리는 참으로 얄궂은 돈이라는 놈. 그렇다보니 평생 공부하고 알아가야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돈 공부'를 읽고보니 내가 아는 것도 있었고, 새롭게 정의를 고쳐나간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을 경제경영 도서이며 재태크를 위한 도서 목록으로 분류하기도 해야겠지만 중,고등학생의 방학 경제 필독서로 분류해도 좋지 않을까. 수능대비 문학만 읽지 말고, 평생 나와 붙어있어야하는 '돈'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어릴때 세워줄 수 있다면 좀 더 내실이 알찬 어른으로 성장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이 수능이다. 평소같으면 수능 끝나고 아이들과 맛있는것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놀이공원도 가야하는 즐거운 시간이겠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어디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이니 이러한 경제 관련 도서를 챙겨주며 앞으로 아르바이트며 직장에서 자신이 일한 노고의 대가를 받았을때 어떻게 운용을 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된다면 은행가서나 세금 고지서를 받아들고 당황하거나 쩔쩔매지 않는 똑부러지는 어른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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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가까운 사이 -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너와 나의 거리
댄싱스네일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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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상단에 있는 한 문장에 마음이 계속 가더라.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너와 나의 거리


사춘기는 진즉 지났으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받는 미적지근한 감정.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감성의 온도이다. 


나도 관태기(인간관계 권태를 느끼는 것) 인가? 내 멘탈에 디바이스 케어를  할 타이밍인가? 그래봤자 회사 동료들과 손가락에 꼽힐 만큼의 친구. SNS와 메신저에는 두자릿수의 인원까지가 한계치.(한때 인맥 좀 넓혀본다고 근근히 100명을 채웠으나 내 취향에 맞지 않다는걸 인지하고 그만둠) 메신저 대화목록 스크롤을 이리저리 넘겨 보아도 근 한달치에서는 대화하는 인물들은 딱 정해져있더라는 것. 그런데도 왜 내 마음에 공간이 없는건가 싶다. 게임 바보라도 스테디셀러와도 같은 고전 게임인 테트리스 하나는 기깔나게 잘 하는데, 감정의 테트리스는 왜 이리도 안되는 걸까. 곧고 길쭉한 마음의 블럭은 나오지 않아서 이리저리 방향키를 눌러가며 애쓰는 걸까. 


P37_ 핵심 미덕이 '양보'였던 탓일까. 그게 나에게 익숙하고 유일하다시피 한 교류 방식이기에 편하다고 착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스스로 편하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행동하면서도 머리로는 늘상 내가 더 배려한다고 여기는 인식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양보가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 내가 딱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피로도 당연 높을 수 밖에. 나는 온전히 100을 주었는데, 되돌아온건 고작 60이라는 생각을 하면 무엇때문에 그러한지 되려 나를 향한 수십개의 질문의 화살을 던지기도 한다. 항상 내가 맞춰오는 방식은 에너지 소모도 클 뿐만 아니라 감정의 에너지도 훅훅 줄어든다. 우리 연비 나쁜 이런 감정 놀이는 좀 줄여보자. 내가 느껴온 바를 상대도 한번쯤은 생각 해 보도록 나를 맞춰 줄 수 있도록 방향전환 해보자. 기계들도 스마트해지고, 연비들도 최고사향으로 높아지는데, 고작해봐야 100년도 못 쓸 나란 놈의 멘탈 연비도 스마트해보자.


P41_ '관심의 흐름'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생에 걸쳐 타인의 과도한 관심과 무관심 사이에서 관계의 균형을 찾기 위한 여정을 반복한다. 그 과정이 언제나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다채롭고 의미 있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을까.

이런게 다 샤이관종이라니ㅋㅋㅋㅋㅋㅋ 요즘 신조어 만드는 분들의 작명 센스에 물개박수를 보낸다. 그 샤이관종이라는 사람이 나 일줄이야.


SNS는 하지만 일거수 일투족을 다 내어주긴 싫고(별거 없는 삶이라 너무 별거 없는게 티 날까봐 조마조마 한거지), 고민고민해서 올린 사진과 영상에 좋아요를 많이 받고 싶긴 한 그야말로 샤이관종 중에서 으뜸가는 인간. 인싸가 되고픈 아싸. 시소를 타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그 끄트머리에 있어야 엉덩방아를 찢든 하늘로 올라갈 만큼 위로 솟아나든 할 텐데 재미나게 놀곤 싶으면서도 겁나서 중앙에 앉아버리는 마음. 딱 그 짝이다.


그저 그때그때 그 감정에 따라 충실하기로 해보면 어떨까. 자랑하고픈 날이라면 사진 도배를 해서라도 "나 여기있어요!"라고 알리기도하고, 또 어느 때엔 동굴로 들어가고프리만큼 관심이 꺼려진다면 비공개를 하면서 나를 숨겨보기도 하는 방법. 이렇게 말하는 나도 결국엔 샤이관종.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 샤이관종 탈출하는 강의라도 들으러 다녀야되나?)



P89_ 세상에는 '착한 사람'과 '나쁜 놈'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나 역시 속해 있는 관계 속에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도무지 납득되지 않던 관계까지도 조금은 아량 있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세상 모두가 당신을 향해 좋아요를 말해 줄 수 없다. 어쩌다보니 "좋아요"라는 이 한마디가 SNS상에서도 이뤄지겠지만 현실에서도 늘 존재하니 이놈의 "좋아요"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게 눈에 보인다. 


암튼, 얽혀진 인간관계속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사람이다보니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순 없다는걸 체감한다. 나는 막내딸이기도 하지만 며느리이기도하고, 한 회사의 구성원이기도하지만 정기적인 날짜에만 통화를 하는 거래처 직원이기도하다. 조심조심 운전하는 운전자이기도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갑갑한 상대편 차주가 되기도 한다. 


착한사람과 나쁜놈 대신에 착한사람과 조금 덜 착한사람의 구분은 지나친 욕심일까. 내가 어느 각도에 따라 마냥 좋은 사람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픈 사람으로 보여질텐데, 좀 무뎌지는 방법도 배워 볼 만하다. 그렇게 살다보면 입체적인 모습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지 않을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도 있으니 마냥 허무맹랑한 생각은 아닐꺼야.


P152★_ 우리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두와 잘 지내지도 않아도 된다.(생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즈니스 관계는 제외된다.) 싫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싫어하며 서서히 멀어져도 괜찮다. 인싸면 어떻고 아싸면 어떠한가. 각자의 성향과 가치관에 맞게 관계를 맺어 나가면 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하고픈 문장이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굳이 그렇게 만인의 연인이 되어야하는 이유도 없다. 그러니 내 감정을 닳아가며 타인의 기분에 맞춰서 조립하지 말자. 억지로 끼워맞추다보면 맞지 않은 신발을 신은 것 처럼 생채기가 생기고 또, 빨리 지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빨리 시들어질 것이다. 내가 맞춰주지 않으면 원상복귀 될 관계였으니 말이다. 평안 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 하지 않던가 뭐든간에 마음이 가야 하는 것이니 내 마음 닳아가며 이중고생 안하면 좋겠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 유지.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딱 그만큼. 한발짝 더 다가가기보단 거기 그냥 있어주는 존재 자체로의 각자의 이야기들. 말하기엔 이렇게나 쉬운데 행동으로 옮기려니 왜 이리도 어려운지 모르겠다. 공식이라면 외우면 되는 것이고(이제 성인이되고 느꼈다. 공식 외우고 딱딱 가르침만 받던 그 시절의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것) 상황에 관계없이 똑같은 행동을 해야 된다면 연습을 하면 되는데, 이노무 인생살이에서의 관계 형성은 수만가지의 예시와 그에 따른 적절한 행동이 동반되어야 되다보니 머리가 터질 노릇이다. 차라리 5지선다의 문제라면 어느것을 고를까요 알아맞춰봅시다 라며 보기들을  손으로 따라가며 때려 맞추기라도 할텐데, 장문의 서술형과 같은 이야기들에 아득해지기만 한다. 이래서 사람은 죽을때까지 공부를 해야 된다고 하나보다. 

오늘도 나와 마주할 그대들과 나와의 적정 거리.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안전유지 거리. 당신들과 내가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 쿨하지만 마음은 따숩게, 다정하지만 필요에 따라 냉철하게, 냉탕과 온탕을 이쪽 저쪽 발담그기 하면서 최적의 온도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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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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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이는 성장 소설로 분류하기도 했고, 또 어떤이는 언어로 소통하는 행위에 대한 주인공과 독자를 향한 응원의 이야길 담은 소설이라 했다.

생각보다 막힘없이 술술 읽혀진게 소설에만 갖혀있지 않는 일상적 인간에 대한 이야기여서라고 느꼈다. 어느 소속에서든 한번은 볼 법한 이가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그가 극복해가는 방식 또한 너무나 드라마틱하도록 특별한게 아니었으며, 너무나 흔해빠진 것도 아닌 적잖히 유추가 되며 힐끗힐끗 앞이 보이는 내용들이라 복잡하게 머리 쥐어짜며 읽는 소설이 아니어서 좋았다.

​잘 해주면 사랑에 빠진다고 소갤하는 사람. 누군가 한 손을 내밀어 주면 두 손을 내밀고, 껴안아 주면 스스로 녹아버리는 눈사람이라 이야길 하고, 잘해주기만 하면 돌멩이도 사랑하는 바보라고 스스로를 이야길 했다. 그러다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열네 살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녀석.

스스로를 다짐하듯 말하는 아이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지만 글로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귀여워죽겠다. 하하하하하.

말 더듬는 소년이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와 언어 교정원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을 관찰하며 자신의 상태와 비교하며 이야길 들려준다. 우리는 극복이라는 말을 참 쉽게 하지만 온전히 '극복'했다며 마침표를 찍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말 더듬는걸 어떻게든 이겨내보려는 다부짐이 느껴지다가도 이렇게 스르륵 녹아내리기도 잘 하는 변화무쌍한 심경의 문장을 보니 팔랑거리는 소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P12_ 자기도 못 하는 걸 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는 나쁜 어른. 원장은 내 마음이 들리기라도 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쉽게 고칠 수 있었던거면 진즉에 고쳐졌겠지. 내가 쉽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른 이도 똑같을 거라는 생각을 해선 안된다. 무심코 단어들을 뱉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입술끝에 걸려있다 힘겹게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 모두의 생김새가 다르듯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또한 다양할 수 밖에 없다는걸 알아주길 바라는 단락이라 여겨졌다.

 

P66_ 하기 어려운 말. 할 수 없는 말. 해도 해도 더듬는 말. 단어와 문장을 낙서하듯 써 내려간 깨알 같은 글씨가 장마다 가득했다. 그것은 마치 입술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가둬 둔 감옥 같았다. ..... 입술에 살짝 올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더듬지 않았다. 참 이상하지. 말이 뭐길래, 소리가 뭐길래. 이렇게 한마디 하는 게 힘든 걸까.

그 언어교정원 참 맘에 든다. '스프링 언어 교정원'의 원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목구멍과 입꼬리에 달린 단어들을 살살 긁어낸다.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노트에 적는 것 만으로도 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쓰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기에 어쩌면 손끝으로 더 정교하게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세심하고 신중했기에 입 밖으로 흘려버리는게 어려웠던건 아닐까 하는 다른 관점으로 보고싶어졌다.

 

P114_ 어차피 나만 보는 노트인데도 솔직한 마음을 쓰는 것이 어렵다. 직접 겪은 일을 쓰는 것도, 그때의 기분과 감정을 정확하게 쓰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럴 땐 거짓말을 쓴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닌 것처럼 그 일을 쓰고 엄마를 생각할때 드는 마음을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넣어 말한다.

엄마의 느슨한 태도와 걸 맞지 않는 집착을 가진 폭력. 이따금 느껴지는 아들을 향한 애정. 엄마의 애인에게서 받는 상처는 언어를 교정하러 갔던 곳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편이되어준다. 그 부분을 보자면 왠지 성장드라마에서 한번쯤은 나와줄법한 장면이고, 여기에 빈틈없이 캐릭터들이 다 심어지고 있었다. 언억교정원 원장이라는 자가 나타나 소년의 엄마보다 더더욱 보호자 처럼 굴지를 않나 할머니는 친손자처럼 보듬어 주질 않나. 자양강장제를 들고와선 일단 뭘좀 먹여주고 시작하려는 모습과 이 집안에서 제일 머리좋기로 손꼽히는 이모같은 이의 등장으로 똑소리나는 대응까지.

화면이며 제일 꽉차는 한컷이 완성된다. 어허어허 오디오물리더라도 할말은 다 해야겠다는 소년의 보호자같은 이들의 목소리들. 어디 이거 언어교정원 그룹원이 맞나 싶을 정도여서 이 교정원 진짜 제대로 가르쳤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마음의 이야기를 글로 적은걸 보는 원장. '용서'와 '복수'라는 단어가 너무 많다며 다시 '용복'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데 여기 닉네임 맛집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찰지게 지어주더라. 싫은데 내가 왜 이걸 싫어하는지 알게 해주면서도, 미워하고픈데 미워하긴 또 싫은 단어들로 지어주니 밀당을 제대로 한다 싶었다.

소년은 이름이 바뀌면서 생각도 바뀌고, 뭔가 마음이 다부져지는 게 보였다. 꼭 하고자 하는 말을 입밖으로 뱉어내는게 다는 아니라 여겼다. 말은 하나의 수단 일 뿐이라 느꼈다. 단숨에 읽기 좋은 길이감과 복잡하지 않은 인물. 알게모르게 내 주변에 있을 법한 이들. 그래서 더욱 페이지가 빨리 넘겨졌고 언어 교정원 원장의 커리큘럼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나보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이 한 문장에 마침표 / 물음표 / 느낌표 / 쉼표 그 어느것도 끝맺음을 안 한 이유. 그 이유를 조금 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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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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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이 1900년대의 조선 김해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서인지 익숙한 지명과 사투리들은 낯설다기보단 오히려 음성인식되듯 아주 자연스러운 사투리로 쏙쏙 들어왔다.

어쩌면 나의 어머니 일수도 있고, 나의 할머니의 이야기 일수도 있는 이민 1세대 여성의 순간을 그려내고있다. '사진 신부'라는 낯선 단어. 하지만 당사자들은 그 '사진 신부'가 되어 포와에만 간다면 옷과 먹을것이 주렁주렁 열린다는 나무도 있고, 사탕수수라는 농장의 지주이며, 차도있고 돈도 많은 그곳의 남자들과 잘 살수 있을거란 기대를 품고 타국으로 떠나게된다.

왜놈들의 억압도 없고, 여자이기에 차별받던 높은 학업의 문턱도 없을거란 희망을 품지만 마냥 행복하게 놔두지많은 않았다. 내 가족, 내 새끼들 안 굶기게 하기위해 손이 부르트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털고 일어나야했던 고된 순간들. 그 속에 '사진 신부'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언니동생하기도하고 동무가 가족보다 더 애틋한 사람이되어 힘을 얻는다.


✎공부만 할 수 있다면 호강하지 못해도 좋았다. 설령 고생을 한다고 해도 한 번쯤은 자신만을 위해서 하고 싶었다.

이렇게나 배움의 열망이 큰 버들인데, 마음이 아팠다. 다들 그렇듯 나를 위한 것 보다 내가 희생해야됨이 당연했던 그 시절. 동생들은 공부를 시킬 지언정 본인은 일을하고 가정을 유지할 수있는 환경을 만드는게 꼭 나의 엄마를 보는 듯 했다. 언니는 언니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마냥 어린 놈은 아들이니깐 대를 위해서라는 말도안되는 핑계. 둘째딸은 둘째라서 해주면 안되겠냐 싶지만 이 위치는 원한것도 아닌데 가족을 위해서 생계를 위해서라는 그런 역할긋은 왜 만들어 두었나 모르겠다.

 

거울 속 여자, 사진 속 남자

✎“어무이요. 쪼매만 더 고생하이소. 지가 호강시켜 드릴게예.

버들이 말했다.

“치아라. 내가 자식 덕 볼라꼬 니를 그 먼 데로 보내는 줄 아나? ...”

결국 '사진 신부'가 되기로한 버들. 어머니와 가족의 곁을 떠나고 나라를 떠나 아무리 팔을 쭈욱 뻗어도 닿지 않을 곳으로 영영 가버릴 아이. 돈을 받고 팔려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어머니는 성공해서 호강시켜드린다는 버들의 말이 당신의 가슴에 비수가 된듯 쿡쿡 찌른다. 하고싶다는 것도 제대로 맘껏 시켜주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 되려 당신을 위로하고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릴까. 핏덩이같은 아직도 그냥 앤데, 이제 보내버리면 영영 못 만날거 같은 마음에 어머니는 마음을 다잡고, 이른 아침 뜨듯한 밥을 먹이고, 혹여 가는 동안 배라도 곯을까 주먹밥을 싸주고, 옷가지와 베갯잇, 혹시 모를 손주가 될 생명이 입을 베냇저고리까지 살뜰히 만들어 챙겨준다. 그래 엄만 그랬어. 정 떼어두려고 맘에 없는 말은 하지만 뭐라도 챙겨주고픈 손은 따뜻하고 또 안쓰럽기까지 하지.

알로하, 포와

✎하루하루 새롭고 즐거운 생활에 빠져 언제부턴가 어머니와 동생들 생각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감싸 안고 있던 소중한 물건들을 가방에 빼앗기고 그만 버려진 보자기가 마치 어머니 같았다. 버들은 죄책감에 털썩 주저앉아 빈 보자기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조선에서 바로 갈 수 없는 포와. 조선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모든 항목을 통과해야만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포와. 그동안 사진속의 남편이 될 사람이 준 돈으로 처음 즐겨보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들. 남편이라는 사람이 준 돈으로 예쁜옷도 사입고 처음으로 내가 고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 쓸 수 있는 가방도 구입하는 재미.  하지만 한켠에서 아려오는 죄책감. 나만 이렇게 호강해도 되나 싶은 미안함과 남겨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왜 안 그러겠어. 눈에 밟히는 어린 동생들과 자신의 몫까지 일하고있을 어머니의 손을 생각하면 울음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 일거야.

 

5월의 신부들

✎반지는 살갗에 상처를 내고서야 제 자리를 찾았다. 버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면사포는 되돌려 줘야 하고 꽃은 시들겠지만 반지는 영원히 손가락에 남아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고 친정을 도울 수 있다는 증표 같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반지를 늘려준다는 말은 버들의 결혼이 순조롭지 못함을 예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맞지않은 반지를 욱여 넣으면서 그 자리가 본인의 자리라고 믿고 싶었겠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사진 신부'로 온 조선의 여인들 중에 본인의 남편이 될 사람은 외모를 속이지도 않은 듯 하니 모든게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조건 또한 속이지 않았고, 조선의 내 가족에게 보탬이되고 나도 공부를 할 수 있을 미래의 나를 짜맞추려 한게 짠했다. 어찌어찌 하더라도 이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하는 버들.

 

삶의 터전

✎어쩌면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건지 몰랐다. 버들은 자기 살기에도 벅찼다.

눈뜨면 시작될 하루가 버들은 버겁기만하다.

조선을 떠나오기전 생각한 포와는 사시사철 날이 따숩지도 옷가지가 주렁주렁 열리는 신기한 나무도 없다. 당장이라도 피부를 태울 듯한 햇살 아래에서의 고된 노동과 함께 이어지는 현실 자각의 날들. 지주가 되어있을 남편도, 사진속의 말쑥한 청년도, 달콤한 글들로 설레게 만든 사람도, 자기차처럼 배경으로 두고 찍은 호탕한 모습도 모두 없다.

그래서 홍주도 송화도 먼저 연락할 수도 없었고 찾아가보지도 못한다. 생판 처음 들어본 나라에 나는 이방인인냥 뚝 떨어졌고, 거기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되는데 지지대가 되어주어야할 남편은 정을 주지 않으니 혼자서 모든걸 이겨낼 어린 버들은 많이 지쳤을테지. 어쩌면 공부는 맘껏 못하더라도 나고자란 익숙한 마을에서 어머니의 품삯을 도우며 큰 시련없이 잔잔하게 사는게 나은 선택이었을까 하는 후회도 분명 했을거라 느껴졌다. 오늘을 살아갈 버들은 자신을 돌볼 겨를 없이 세븐 캠프에 맞는 사람으로 변해야 했으니 말이다.

1919년

✎어두운 발밑을 핑계 삼아 태완의 팔짱을 꼭 끼고 걷다 보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는 불행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목석같은 남편이 나를 그리 대했던 이유도, 마을사람들이 버들과 태완에 대해 쉬쉬했던 것들도 모든걸 한바탕 울음으로 털어낸 후 조금씩 변화된 두 사람. 그렇게 둘은 의지를 했고 그 속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았다고 여겼다. 마냥 따뜻할 것 같던 포와에 찾아오는 스콜처럼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픈 행복 뒤에는 깎아내리는 듯한 불행의 절벽이 있다는건 슬픈 일이다. 왜 그리도 빨리, 자주 찾아오는지 모를 날들. 이런 소설을 볼땐 느낀다. 소설에서라도 한번쯤은 눈 딱 감고 이들이 행복하게 내버려두면 안되나 싶은 순간이 많다. 나는 비록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리 고생한 버들에게 한번은 스콜이 비켜가길 바라는데 맘같지 않아 지금 이렇게 행복해할 그녀의 얼굴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나의 엄마들

✎도대체 엄마 가슴속엔 상처로 얼룩진 이야기가 얼마나 들어 있는 걸까. 그런데 엄마의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그곳에 살고 있을 송화가 떠올랐다. 나는 얼른 그 모습을 지워 버렸다.

함께 시스터 런드리를 운영하는 버들의 이야기에서 시간이 한달음에 펄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넘어온다.(너무 순식간이었고, 이제 급하게 끝을 내야 하는 단락인가보다 하는게 느껴졌다.) 태완과 버들이 딸이라면 짓고팠던 진주라는 이름. 펄은 정말 버들의 딸이 된다. 펄이 딱 '사진 신부'가 되던 버들의 나이가 될때 이야기는 몇줄의 단어로 출생의 비밀을 로즈(홍주)의 추억상자들로 줄줄 풀어낸다. 진짜 버들의 딸이던 여자아이는 죽고, 산달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던 송화의 아이가 펄이 되기로 한다. 송화는 결국 무병을 이기지 못해 조선으로 돌아가 본인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아이들은 자라고 홍주를 재혼을하고 로즈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게 된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펄은 자기의 엄마가 버들이 아니라 송화라는 것에 혼돈이 오지만 이걸 알지 못했다면 평생 가슴에 뭍어두고 품어줬을 엄마들(버들, 홍주, 송화)에게 한편으론 감사함을 느끼고 굳이 엄마들에게 알려 마음의 짐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엄마가 쉬엄쉬엄 말했다. 편안하고 환한 얼굴이었다. 나는 울음을 꾹 참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가난해서 팔려 오거나 일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처럼 꿈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비록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엄마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로서 최선의 삶을 살아왔고, 그 덕에 나는(펄)은 좀 더 수월하게 사는 걸지도 모름을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정리. 송화의 아이가 펄이 될 수 밖에 없던 내용이 조금이라도 더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나만 느끼는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급하게 제목에 걸맞도록 나의 엄마들에게 잘 살아와줘서 고맙다고 하고픈 끝맺음. 시간이 된다면 여건이 되는거라면 작가님과의 대화나 인터뷰를 통해 듣고픈 후반부의 내용이 많다. 질문도 하고싶고. 이건 무지개계모임의 그녀들이 감추고싶은 오프더레코드의 일부라고 여겨야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온 엄마들. 시대와 장소를 구분짓지 않아도 엄마들은 어떠한 언어를 막론하고도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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