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겨레문학상의 스물한 번째 수상작이며 작가의 데뷔작. 그리고 낯설지 않은 단어의 책 제목과 함께 내가 몸 담고 있고, 밥벌어 먹고있는 분야의 이야기라 2023년의 첫 책은 만사 다 제쳐두고 이게 먼저겠구나 싶었다. 출간 당시 '새로운 시대의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으로 회사란 무엇이며 조직의 실체와 모순에 대해 그려두었다고 했다.


1부의 이야기들. 선주에게 인도되기 전 배가 누웠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에 대한 질문보다 배가 누운 그 자체에 집중한다. 사측의 잘못은 없다. 재난재해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사건의 결말을 이미 적어 둔 후 풀어가려한다. 결과는 나와있으니 모든 과정은 결과에 맞춰 짜여진다. 자연이 만들어둔 결과이니 이는 사측은 보험사를 통해 보상을 받으려는 과정을 그린다. 문대리가 보게될 이 조선업의 꼴이 어떻게 될지도 눈에 그려지지만 잡지사에서 일하다 도망치듯 중국 조선소로 입사한 그 였지만 업이 달라진다 한들 조직이라는 큰 틀은 어딜가나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오너는 조선업을 앞세워 자금줄을 끌어당겨 필리핀 휴양시설에 몰아넣고 산업의 불황으로 안그래도 어려운 조선소는 제대로 찬서리를 맞는다. 어느 선주가 배가 누워있는 조선소에 일을 맡기겠냐는거지. 회사의 중대 사안에 대한 책임은 머리 굵은 자들의 사임으로 이어진다. 모든 책임을 떠앉고 사임하는게 답은 아닌데 어느 곳이든 그런 액션을 취하면 한동안은 잠잠해진다.

2부는 1부와 다른 이야기로 탄성을 주어 이야기를 끌어당긴다. 1부가 암울했고 이래도 되나 싶으며 당장이라도 진흙탕에서 빨리 발을 빼는게 상책이라고 보여지는 곳에서 빈자리의 사장석이 황사장으로 바뀌면서 빠르게 내달린다. 시스템이 바뀌고 조직이 개편되고 곪아있던걸 긁어냄으로서 진짜 제대로된 회사가 되나 싶은 방향으로 돌아선다. 그때 오너는 2년 정도 누워만 있던 그 배를 일으켜 세우라고 지시한다. 모든 시스템을 뭉개고 오직 이유없이 누워있는 배를 일으키는 것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된다. 이제 좀 돌아가나 싶은 회사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썩어버린 그 배를 일으키고 황사장은 썩은 일부인냥 또 다시 내려놓고 조선소를 떠난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을 정면으로 맞딱들이며 흘러갔고 맞춰갔던 문대리 역시 조선소를 떠나게된다.


📖 14_ 이 모든 참 같은 거짓, 거짓 같은 참이 모조리 참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고 곧 진짜 보상금이 회사 계좌에 찍힐 터였다. 문서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문서란 엉성하고 허술한 현실에서 부스스 떨어져 내린 각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가 문서를 우습게 보는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문서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현실을, 회사를, 정부나 국가를, 종교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누운배 한 척이 그렇게 됐듯 사실이라는 것은,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쥐고 흔들 수 있었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

우리 부서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백방 입으로 씨름해봐야 득이 될 건 없다. 우리는 서류싸움이다. 기록이 남아있느냐와 그렇지 않느냐로 판가름난다. 근거 자료가 있어야만 대응을 할 수 있다. 모든건 기록해두어야한다. 믿어줄 사람은 없다. 말보다 종이 한장의 힘이 얼마나 센지 느낄 것이다.

기록이라는 것이 모든게 진실 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자료가된다. 내 의견에 뒷받침 할 만한 요소가 되는 그것이 문서였다. 사건이 일어 날 때엔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예고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글어버린 틈을 메꾸는 것이 문서이고 흔적이었다.

📖 16_ 이길 사람은 바위와 돌멩이처럼 이미 정해져 있었다. 늘 말들 하듯, 직급이 깡패였다.

꼬우면 니가 사장 하던가를 책 속에서 들으니 속이 다 시원한 만큼 속이 다 허해진다. 현실이나 책속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이 서글퍼진다. 그렇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겪과 별반 다를게 없는 굴레다.

📖 20_ 이전에도, 또 다른 회사에서도 똑같이 해왔다는 말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모른다, 확인하겠다, 말만 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서 들어들 오세요. 이 회의는 주간 공정 회의입니다. 회의 이름에 걸맞게 지난주 생산 실적을 확인, 정리하고 다가올 한 주의 생산을 제고할 방안을 미리 세운다는 관점에서 준비들 해오세요. 이 회의에 참석한 여러분은 모두 관리자고 책임잡니다.

관리자와 책임자이지만 부서 대표로 들어가는 회의에서는 서로가 적이다. 싸움닭이 될 뿐이었다. 내 탓이 아니라고 명시를 해야만 잘못을 덜 수 있기에 확정짓는 듯한 뉘앙스의 말은 꺼내지도 않는다. 확인해보겠다는 말이 태반이다. 알지만 모르는 사안이다. 알고있지만 이 판에서는 뱉지 않는 팩트들은 다 뒷전에 숨겨두고있다. 그래야만 제 모가지를 건사할 수 있고 언제 반격해 올지 모르는 이들을 역습할 이른바 원기옥을 키우는 거지.

부서장이나 임원진 회의는 늘 그랬다. 확인해보겠다는 말을 금지시키면 눈알 굴리는 소리밖에 안 날테지.

📖 36_ 결국 쉬어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쉬고 다시 이 그칠 줄 모르는 바담 풍이 불어닥치는 난리동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쉬어가든 쉬지 않든, 결국 인생을 담배 연기처럼 바람 속에 태워 날려버리는 것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나는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황 사장 같은 사람조차, 또 이전 팀장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나는 이미 3년이나 일했고 결혼, 출산, 승진, 어쩌면 이직까지 수많은 일이 밀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

...

배운다는 걸 똑같이 따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따라 하는 건 배우는 방법이다. 따라 하려고 배우는 게 아니라 더 잘하려고, 가르치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배우는 거다. 여러분 모두 아직 젊고 많은 일을 배워나갈 때니 이 말을 기억해줬으면 싶습니다. 우리가, 또 어떤 사람도 여러분보다 더 나은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먼저 태어났고 먼저 배웠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어떤 것을 가르칠 뿐입니다. 그것이 선생, 먼저 난 사람이라는 말뜻입니다. 배우고 익히되 우리처럼 되지는 마십시오. 부디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근 직전의 최부장의 고별인사였다. 많은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가르치는 사람으로써, 또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깨닫고 배웠다는 말. 아직 나는 이러한 말을 하는 사수나 부서장을 만나진 못한 듯 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업에서는 감사하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이는 없었다. 사라질때엔 다들 바람처럼 자신의 모든 흔적을 쓸어담아 치부까지 싸악 들어내서 갖고 가버리더라. 더러는 도망가듯 사라지기도 했다. 같이 일해서 고맙고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더 나은 이유가 아니라 먼저 태어났기에 했던 순리의 과정이라고 말해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분명 일하면서도 배울 것들이 손에 쥐어질텐데 역시 소설속에나 있는 인물일까.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 연관성이 없는 업종을 건너뛰기 하듯 이직해왔다. 문대리보다 더 의외의 이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웨딩업, 철강업, 지금의 조선업까지. 역시 사람의 인생이 대학 전공에 따라 가진 않지. 그렇게만 이어진다면 너무 순탄했겠지.

문대리가 먼저 말한 쉬어가는 것밖에 안되는 타이밍이라 했던 말과 고민의 답을 최부장이 툭 내어두고 갔다. 이 길이 옳지도 끝이지도 않았다. 이 길로도 갈 수 있다는 경우의 수 일부를 제시해준 듯 했다. 각자의 이정표가 있으니 에둘러가든 뛰어가든 그건 각자의 방식이고 이곳이 꼭 답은 아니란뜻 처럼 보였다. 요즘 광고로 많이 보이는 잡코리아의 카피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선배와 옥상에서 나누는 이야기였지 아마. 꿈은 꾸는 자의 것이 아니야. 버티는 자의 몫이지. 버텨, 버틸 수 있다. 버 튀어.....(튀어) 그리고 그 선배는 튀었다. 퇴사하며 인사하고 다른 곳으로 이직했지 아마. 약간 다른 길로 새어버린 이야기이지만 문대리에게 숨구멍을 툭 밀어준 최부장의 마지막 멘트가 좋았다.

📖 37_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젊음이 인생의 금화라던 황사장의 말 역시 수사가 아니다. 이대로 10년, 20년 또 어느 회사에서 삶을 보내든 그 회사가 모두 이렇다면 내 인생의 금화는 결국 몇 푼 월급으로, 지폐로 바뀌어 녹아버릴 테고 나는 그저 노인이 돼 있을 터였다.그다음은 끔찍하다. 명예퇴직, 권고퇴직, 그런 말 아닌 말로 수십 년 회사 일에만 길들고 늙은 사람인 채 양계장에서 풀어준 노계처럼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렇다. 회사다 갖다 쓰는 내 젊음은 다음달 한장의 급여 명세서와 바꾸게된다. 20대에 들어와 나는 어느새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젊음을 주고 꼬박꼬박 그만큼의 급여를 받아갔다. 퀭한 눈과 굽어진 어깨, 고장난 손목이 그간의 세월의 찌꺼기로 남아있는 듯 하다. 10년치의 젊음과 쾌활함은 결혼하고 집을사고 차를 사게 해주었다. 또 10년치의 내 노고를 이 회사는 기꺼이 받아줄 것인가는 모를 일이다. 지난 10년만큼의 값어치가 유지될지는 내 손이 아니라 오너의 연봉계약서 마지막 싸인에 달려있겠지. 연봉 협상이 아니라 연봉 통보가 될 터였다. 정치싸움에 기꺼이 참전할 용사는 되지 못할 문지기 수준의 병사인데 이젠 내 능력을 믿어야할지 어느 줄에 모가지를 받쳐야할지는 아직도 고민중이다. 회사란 그런 곳이니까.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3년 올해 처음 완독했던 이혁진 작가의 '누운 배'를 다 읽고 곧장 이어서 읽기 시작한 것 역시 이혁진 작가의 작품이었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있는 '관리자들'을 선택하여 이어 읽었다. 특정 작가의 작품을 연달아 읽은 적은 없는듯 한데 확실히 세밀한 묘사로 인해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영상을 보고 있는 느낌이 강해서 이해하기도 쉽고 그만큼 집중도 잘 되었다. 과연 이 책도 그러할지 기대를 해본다.


📖 2_ 관계가 대등하지 않으면 거래도 공정할 수 없다. 우위에 선 쪽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장도 알고 본인 역시 인부들에게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있었고, 소장이 그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반장은 뭐가 계속 찜찜하면서도 어쨌든 이야기는 됐자고, 한 다리 걸쳐 놓은 셈이라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에서 강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도움을 주는 것뿐 아니라 받는 것도 관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이라고.

소장은 이걸 사람 부리는 방식이라며 한대리에게 대단한 스킬을 전수하듯 말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 돌부리에 맞아 돌아가고 고여있던 웅덩이에 같이 휩쓸려 흐려지고 처음의 맑고 청량했던 빛이 혼탁해진다 하지만 처음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이 똥물이라면 결과는 더한 오물로 변하는걸 멧돼지 사건으로 깨우치게 되었다. 첵의 초반이지만 바로 알겠더라. 아.... 이 집단의 우두머리들에겐 배울게 없겠구나. 날때부터 영감을 받고 스스로 터득한 잔재주는 아닐테고 소장도 막내시절 자신을 가르치던 선임을 통해 짓밟히듯 깨지고 배워먹은 버릇일텐데 왜 이런건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만 받아먹고 더욱더 고약해지나 모르겠다.

📖 3_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짐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소장이 이렇게 말하고 흡족해 할 모습. 자신이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이지만 본인이 생각해도 그럴싸하게 느껴졌는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웃었을 장면을 생각하니 뭔 사단을 내더라도 낼 인물이구나 싶어졌다. 책임은 지는게 아니라 지우는 거라는 말. 어차피 방패막이는 따로있다는 소리.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두었다는 꿍꿍이. 왠지 이 말을 듣고나니 산업재해로 인해 관리자들과 대표들이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기사와 뉴스 꼭지를 볼 때 이들도 책임을 지는게 아니라 책임 지어지도록 마련된 허수아비가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 처음 씌워진 잘못된 생각으로 모든 것들이 옳게 보이지 않았다.


📖 6_ 어쩌면 저렇게들 뻔하고 뭘 모를까. 역시나 관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갈라 세우고 갈라 세우고 오로지 어떻게든 갈라 세우는 일이었다. 줄을 세우고 편을 갈라서 저희끼리 알아서 치고받도록, 그러느라 뭐가 중요하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 생각도 못 하도록. 인간이란 고작 그런 것이다. 서로 믿지 못하고 지기 싫어한다. 그 속성마저 남들만 그렇고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그래서 싸우고, 그래서 싸우기때문에 싸울수록 더 편향되고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그 불신을 극복하지도, 서로 이기거나 져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진흙탕 밑바닥까지 서로 끌고 들어가기만 한다.

몰라서 모른채 하는 것이 아니다. 알지만 직급이 깡패고 갑을관계가 밥줄과 이어지다보니 소장이 장단 지어주는 대로 인부들은 춤출 수 밖에 없었다. 명절에 호주머니 두둑히 채워 나가려면 일을 해야헸고, 소장의 다그치는 완공일까지 어떻게든 해 내야 했다. 그래야만 그들의 손에 돈이 쥐어지니 시키면 시키는대로, 이른바 까라면 깔 수 밖에 없는 실정인데 소장은 그게 바보같아보이고 미련해보이며 자신이 이 무리를 쥐고 흔드는 우두머리라는 확신이 들어 어떻게하면 제 맘대로 더 갖고 놀지 궁리만 하게 되는 행색이다.

📖 8_ 결국 자기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살아 있고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의 숙명인 것 같았다. 잔인하고 비겁하게 거짓말하거나 침묵하면서, 자신의 잘못과 죄를 죽은 사람에게 떠넘기면서, 그것이 산 사람의 몫, 생존의 대가 같았다.

계속 물음을 던진다. 독자에게 묻는 문장은 없지만 자연스레 그 문장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니가 현경이었다면? 한대리였다면 어쩔껀데? 라는 질문을 하면서 답을 찾는다. 결국 나도 산 사람일테고, 선일은 그대로 죽은 자로 남아있는데 책임을 물으며 진실을 알린다 한들 이 목소리가 과연 어딘가에 닿기나 할지. 최악의 경우인 소장에게만 닿아 이 판을 떠나는걸로만 시시하게 마침표를 찍을지로 수없이 가정을 해본다.

똑같아지는게 당연한 비율이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래도 나는 좀 다른 사람으로 살아도 되지 않나 싶은 정의감과 함께 덜 더러운 인간으로 살아보고픈 시도를 하는게 맞을까? 당장 닥쳐온 현실이 빤한데 그게 가능할까? 물을 사람도 없는데 계속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앞서 읽었던 '누운 배' 처럼 회사라는 집단을 통해 시작된다. 이 집단 역시 계급이 나뉜 이해관계들이며 주인공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그럴 수 밖에 없는 처지와 함께 소설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빤한 현실의 이야기를 들여다 놓은 듯 해서 씁쓸하고 미안함이 드는 사건 수사 종결을 보인다. 현실로 옮겨온다면 아마도 평일 저녁 어느 지역 뉴스의 3분이 채 되지 않는 작업현장 사건사고 보도로 짤막하게 전달 될 것이고 기승전결의 마지막 결말의 리포터 보도는 관리자의 허술함과 현장직에 대한 아쉬운 부분을 내비치며 좀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보인다는 말로 마무리가 될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사건사고들은 빈번히 일어나고 이렇게 보도하고 알린다 한들 이후에도 약간의 전후상황만 다를뿐 별반 다를바 없는 이유로 어떤이는 희생을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현장에서 빤한 결말이 보이는데도 흐린눈으로 못 본 척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식으로 이미 벌어진 일이니 남은 이는 살아가야하지 않겠냐며 남겨진 이들끼리 수근대겠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러한 방식으로 흘러갈게 훤히 보이는 세상이고, 예나 지금이나 변하는게 없이 굴러가는 집단이다.그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굳이 왜 그래야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울컥울컥 하지만서도 내가 한대리였다면 소장의 지시를 거역하고 손 털고 나올 배포가 있었을지, 아닌 것은 아니라며 말할 당참이 있었을지(옳고 그른걸 구분해 어필하는 것도 손아래사람에겐 당차고 용감함을 양 주먹에 쥐어야 한다. 그게 계급이고 직급빨이다.) 생각하보지만 딱히 답이 안 나온다. '누운 배'의 한 문장처럼 직급이 깡패니까.

여기 이 집단엔 빤한 사람들이 태반이라 현경의 후반 행보가 놀랍고 때론 통쾌하기도 했다. 이 바닥이 한다리건너 알음알음 소개받는 일일텐데 그걸 다 걷어차고 소장이 하는 꼴을 깨 부쉬듯 굴착기를 굴리는 현장감은 영상으로 보지 않아도 현경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눈에 힘이 쥐어지며 턱아래가 지끈거리며 어금니가 아리어진다.

이해관계를 사전적의미로 찾아보면 그에 파생된 갈등이라는 단어도 덤으로 읽게된다. 어쩔 수 없는 갈등이 일어나는 무리라는 뜻도 있겠지. 그럼에도 우리는 얽혀 살아야하는 상황인데 때때로 이 짓이 질리도록 정이 떨어진다. 이러한 이벤트 덕분인데 옳은데로 정석대로, 이른바 FM대로 사는게 그렇게도 바보같은 짓이고 꽉 막힌 사람처럼 보이고 막대해도 될 부류로 치부된다면 이 세상은 참 재미없고 졸렬하게 다가올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의 이해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장 소설 전문가(?)다운 특정 직군에 대한 생각들과 사회생활을 하며 얻게되는 많은 감정들을 담아내었다. 어느 집단이든 계급은 존재한다는 기본 개념은 여전하다. 지금은 같은 사무실에 앉아있지만 퇴근 후 이곳을 빠져나가면 각각 다른 삶으로 스며들게된다. 특히 4명의 인물들은 시작점도 달랐고 도착지도 다를 것이다. 다만 지금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이유는 우연찮게 교차되는 순간에 만났기에 가능한 것이라 말해주고싶다.

연봉, 집안, 아파트, 자동차.... 작가의 말 대로 누군가에겐 스펙이고 누군가에겐 자격지심의 원천일 자본의 표상에 붙들린 채 교환되지 못하는 진심과 욕망. 섞이지 못할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자신과는 너무 다르기에 끌렸을지도 모르고, 자신과 너무 다르기에 부담스럽지만 때론 갖고싶다는 욕심이 울컥하고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제목 '사랑의 이해'는 사랑하지만 상대의 사정을 헤아려 받아들이는 과정의 순간도 찾아오고, 때로는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게 된다는 가정을 하며 이익과 손해를 아우르며 저울질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러다 결국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이해의 순간도 찾아오는게 사랑이고 이해였다.


말장난 같지만 다 사랑하기에 가능한 고민이며 결정이고, 결론이었다. 인물들의 직업을 빌어보면 적당히 나이대가 나온다. 상수와 미경은 내 또래일테고, 종현과 수영은 나보다 두어살 아래의 이제 사회생활에 익숙해질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그 정도겠다. 사랑만 쫒을 수 없는 나이. 사랑이라는 환상이 흐릿해지고 현실이 더욱 또렷해지기에 청춘로맨스 영화처럼 사랑하나만 바라보며 직진 할 수 없는 나이. 그래서 때론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지만서도 어찌보면 저런게 현실이지 싶어지는 그들의 애정 종착지. 그래서 또 한번 감탄한다. 직장 내에서 얻어지는 이슈와 에피소드들로 이뤄졌던 '누운 배'와 '관리자들'을 통해 얻어진 단단한 스토리에 로맨스를 딱 두 방울 정도 떨어뜨린 소설.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듯하며 알려지진 않았지만 다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흔하지않은 인물들로 만들어 내었다. 다만 드라마는 정말 예쁘고 멋진 배우가 연기했다는게 현실과 많이 동떨어지는 것일 뿐. 암튼 어른들의 사랑은 이렇게 잴게 많고 비교할게 점점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 갖기 전까지 아무리 따지고 비교하고 뜯어봐야 유리창 너머 보이는 가방, 옷걸이에 걸린 코트였다. 좋아 보일 뿐인지, 정말 좋은지, 그저 그런지 열두 번 환생해도 모른 채 콧물 같은 미련, 재생 휴지 같은 후회만 남는 것이다. 아무리 풀고 닦아 봤자 코밑만 벗겨지고 쓰라려, 다 집어 던지고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싶어지는... ...

좋아하는 감정은 있지만 마냥 드러내서는 안되는 위치. 내가 너무 잘나서가 아니라 상대와 비교 했을 때 내가 너무 모자란 사람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수영. 반듯해보이고 누구에게나 호감있는 사람을 내가 좋아할 때에 상대가 포기하거나 실망할 것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 덜 가지진 자들은 항상 이렇다. 내 손해를 먼저 떠올리기보단 상대가 얻게되는 손실비용을 먼저 따진다. 수영이 유별나게 여겨질수도 있겠지만 직군전환이 절실한 불안정한 위치도 한 몫 할테고, 돈으로 등급을 메기고 돈으로 상대를 바라보게되는 은행에서 일하다보니 보여지는 시야폭이 거기에 맞춰진 것이라 느꼈다.

눈인사 한번으로 모든걸 스캔 하며 상대의 재력기반과 기품까지 빠삭하게 알아채는 직업병이 수영의 감정을 더 가두는 것 처럼 보였다.

📖 좋아할수록 많은 것이 보이지만 그만큼 못 본 척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기쁨과 슬픔은 함께 늘어난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는 걸 무시하고싶지만 너무 잘 드러나니 어찌 할 수 없는 마음. 그런데 이걸 티내선 안되는 상황. 상수와 수영은 서로를 택하는 것 대신 다른 이를 선택했기에 끊어내어야 하는 마음이었다. 차라리 미련 두지 말 걸, 애초에 앞뒤 재지 말고 마음만을 믿고 먼저 사랑해 볼 걸 이라는 후회가 와르르 밀려오는게 보였다.

결국 이것 도 다 욕심이었다.

📖 사랑했지만 사랑을 믿지는 않았다.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만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종현이나 상수에게서 구하려고 했을 뿐 자신에게서 구하려고도, 차라리 깨끗이 체념해 버리지도 않았다. 누구라도 자신과 같은 처지였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종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수, 그리고 그 자신이란 명백히 안수영, 자기 자신이었다. 부서지는 모든 관계가 그렇듯, 자신이 망친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자신이 망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망칠 수 있는 것은 모두, 스스로 망쳐 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와 자유로, 유혹하고 유혹당할 수 있는 그 힘과 권리로.

욕심이었고 고집이었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믿지 않은 자의 결말이었다. 무엇하나 손해보기 싫은 이의 결론일 수도 있겠고, 어느하날 선택하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거라 결론을 낸 이의 마침표 일 수도 있겠다. 나로 인해 상수, 종현, 미경에게까지 쥐어질 행복하지 않을 삶에 수영 자신이 일조했다는 몫을 남기기 싫어 모두의 손을 놓아버린 걸 지도 모르겠다. 아님, 내가 완벽한 행복을 얻지 못 할 바엔 모두의 행복 또한 있어서는 안된다는 수영의 내재된 이기심이라 봐야할까?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 사랑갖곤 평생 사랑할 자신이 없다는 말이겠지.

결국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앞세우지만 사랑만 놓아 둘 수 없는 현실에 주저하는 존재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선씨네마인드
박지선.황별이.최윤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를 보기위해 멀티플렉스를 찾아가기보단 주말에 하는 영화소개 채널에 귀를 열어두는 편이다. 나보다 훨씬 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으로 알려주는 이들의 코멘트와 함께 보고 있노라면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인지, 이건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내용인지를 알 수 있더라는 것. 어떤 이가 소개하느냐에 따라, 어떤 내용에 포커스를 맞춰 이야기를 풀어내느냐에따라 같은 작품도 다른 해석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러한 영화 분석 채널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갖지 못한 배경 지식을 기반으로 한 관점 분석이라는 것이다. 보통은 영화전문 유튜버, 배우, 성우, 작가가 알려주는 분석에 익숙해져 있을 즈음 범죄심리학자가 말해주는 영화 이야기. 확실히 솔깃한 이야기다.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국내 최고의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교수가 영화를 분석하는 콘텐츠 '지선씨네마인드'를 시작하게된다. 영화는 사건과 사고와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소재이지 않던가. 그러니 작품 하나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갈등과 내면의 심리가 숨어있을 터. 감독이 의도했던 캐릭터를 배우들이 구체화 했다면 이제는 박지선 교수가 그 인물 하나하나의 음영을 넣어주는 차례라고 보면 좋겠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명작 14편을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좀 더 디테일하고 색다른 시선에서 보는 것. 이미 아는 영화라도 다시금 궁금하게 만드는 시선이다. 미처 알지 못하고 스쳐간 이들의 심리와 내면의 갈등들. 외부 자극으로 인해 어떻게 또 변해갈지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추격자_ 피해자는 모두 피해자일 뿐이죠. 고귀한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가 따로 나눠져 있진 않다고 생각해요.

운이 좋은건지 촉지 좋았던 것인지 박지선 교수가 이야기하는 영화는 대부분 다 본 것이었다.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더라도 케이블채널에서 첫장면부터는 못 보더라도 진득히 앉아 엔딩크레딧까지 봤던 것들. 그 중 첫 장이었던 추격자. 공포물을 잘 보지 못하는 쫄보가 성인이 되고 영화관에서 보았던 폭력성이 짙은 작품. 그래서 더욱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을 바로 첫 장에서 다루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는 것.

심리분석관과 범인 간의 심리전도 팽팽했지만, 심리분석관이 범죄자의 본질과 심리를 파악해 자백을 이끌어가는 과정을 박지선 교수의 코멘트를 보니 이것이 전문가의 관점이구나 싶어진다. 지영민의 심리상태와 동네 주민들이 지영민의 단면만을 보고 해석한 인간의 단편적인 견해들까지. 비뚤어진 과시욕과 관심을 받고싶어하는 모습은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나온다. '아! 이 사람은 일반적으로 내가 아는 인간의 모습은 아니구나!' 살임범이라 지목하지 않았으나 자백함으로써 자랑하고파하고 주목받고 싶어하는 일반화되지 않은 비딱한 과욕.

나는 지영민의 심리에만 주목했었지, 미진에 대한 기본 인물 배경에 주목하지 않았 던 것 같다. 박지선 교수가 말했듯 미진의 캐릭터가 '성매매 여성'으로 지정했던 이유가 있을까? 일면식도 없던 동네 주민이었어도 지영민은 미진을 살해했을지 모른다. 그에겐 이 모든 과정에 동기가 뚜렷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마지막에 한번 더 짚어주지 않았다면 그러려니하며 넘어갔을 지정된 캐릭터의 아쉬움을 이제서야 공감하게된다.




위플래쉬_ 희생양을 통해서 플레처에대한 공포를 덜어 내고 싶었겠죠. 사회심리학에서 '공정 세상 신념'이란, 세상은 공정하기 때문에 '좋은 일은 착한 사람', '안좋은 일은 나쁜 사람'에게 생긴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말합니다. ... ...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피해자를 탓하며 불안을 줄이고자 하는 무서운 심리적 기제의 작용이죠.

올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심리학 용어, 가스라이팅. 언젠가부터 이 단어가 일상언어로 쓰이고 있음을 느낀다. 위플래쉬를 볼 때엔 플레처 교수가 학생들을 세뇌시킨다고만 느꼈지 이게 더 큰 범주로서 사람을 제 맘대로 움직 일 수도 있다는 것에 놀라게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릴때부터 일상언어처럼 습득한 '착한 사람', '나쁜 사람'에 대한 확고한 분류법으로 내면을 알아가려 노력하기보단 직관적으로 간파하려함을 느낀다.

저 사람은 지금까지 내가 살며 느낀 사회적인 동향으로 볼 때엔 나쁜 사람의 범주에 가깝다고 느끼는 순간 부터 해가 될 까봐 미리 선긋기하며 이 선을 넘어선 안 된다며 자기방어의 태세를 갖춘다. '나'를 기준으로 나보다 나쁜 사람이어야 내가 사는데에 덜 손해 본다는 뜻을 품는 거지.

생각해보면 세상은 공정하기 때문이라는 미사여구보단 내가 공정하기 때문에 라는 단어가 숨어있다는걸 느낀다.




위플래쉬_ 언어폭력 역시 신체적 폭력 못지않은 수준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정서적 학대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피해자는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리게 될 뿐만 아니라 사회성이 떨어지는 후유증을 겪기도 합니다. 사회의 규칙을 깨려 하는 반사회성, 혹은 사회적 참여를 회피하려는 비사회성을 띠게 되기도 하고요.

사전적 정의를 보면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합 할 때에 쓰는 수단이나 힘을 말하는 것이 폭력이다. 일반적으로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무기로 억누르는 힘도 이르는데에 언어와 상대를 마주할 때 조성하는 분위기까지 포함해야 됨을 느낀다. 이러한 것이 반복되다보면 자동 반사 능력처럼 그 존재에 대한 이름만 명시해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하겠지. 가끔 이러한 것을 일삼는 존재들을 보면 자신이 군림하고자하는 욕망도 커 보인다.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내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 강압적이고 독재적으로 통치하려하는 반대적인 성향. 과연 이러한 인물들은 모두 원하는 결말로 끝이 났을지 궁금해진다.

올드보이_ 자기 정체성이 곧 복수가 되기에 이른 두 사람은 복수에 몰입할수록 원래의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 회복이 근본 목표였다면 두 사람은 복수를 실패했다고 봐야겠죠. 진작 아물었을 수도 있는 상처가 더 깊어졌을 뿐입니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교양과목 심리학 교수가 했던 말인데 당시에는 교수가 몹시도 아량이 넓은 사람인가보다라며 나이들면 다 저렇게 변하는 것인지, 심리학 교수라서 이해의 폭이 넓은가 싶어하며 흘려들었던게 살다보니 그 말이 맞았단걸 한참 후에야 느낀다.

이 영화와 완전 맞아떨어지는 문장은 아니겠지만 복수와 용서는 참으로 멀게만 느껴지는 간극이긴 하다.

복구 오롯이 나의 분을 삭히기 위해 충분한 도구 일지, 나를 갉아먹기에 알맞은 독 일지는 분명 알고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화로 둘러싸여있으니 보이지 않겠지. 나를 다스리는 것 또한 큰 공부가 필요하고 긴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다 안다고 여겼지만 어떠한 코멘트가 붙느냐에 따라 다각도로 해석되는 인간의 내면을 보고있자면 내가 놓치고 있던 심리와 찰나가 숨겨진 듯 하여 놀라웠다.(이전에 봤던건 수박 겉 핥기 식의 흐린눈으로 봤던거라 반성했네) 사람이어서 가능했겠다는 추측과 사람이길 포기한 너머의 숨은뜻에 내가 알고있던 인간의 다면성을 배우는 한 권이 되었다. 박지선 교수가 고심하고 분석했던 14편의 영화 외에도 새로이 개봉될 영화에 어떠한 코멘터리가 붙을 수 있을지 비교해보면서 독자로서 팬으로서 신작 분석 요청 리스트를 꾸려봐도 재밌을 듯 하다.

◎위즈덤하우스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암기과목이어 노력만 하면 점수가 잘 나오던 파트였다. 이해하고 해석하려하기보단 이미 지나온 과거의 이야기들 이기에 통으로 외워 시험을 보던 과거의 기억들. 툭하면 와르르 쏟아지는 시대별 사건 나열도 가능한 사람인데 내 머릿속에는 공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한국사의 문화와 사상적 측면에서 슬픈 비극의 한 단락이 비어있는채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과거이며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되는 흔적이다.




이곡이 원나라 황제에게 공녀 제도를 없애 달라 창한 서신을 보고 소설로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허주은 작가. 작가가 아니었다면 나 또한 기억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아픈 역사를 외면하고 살았을 듯 하다.

국가가 부강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그 고통을 고루 감내하는게 당연한걸까 싶으면서도 가장 따스한 부모의 품을 떠날 수 밖에 없던 꽃같은 아이들의 청춘은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 책과 마주 할 수 있었다.


📖 울부짖는 딸들이 명나라 선덕제의 명령에 따라 배에 실려 머나먼 나라로 향한다고 했다. 그때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육지 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이 이야기의 중심. 꽃다운 여인들이 팔려가듯 끌여가야만 했던 시대. 딸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든 숨겨야만 했고, 나라는 그 숨겨둔 처자들을 어떻게든 끄집어내 나라를 위한답시고 타국으로 보내버린다. 원하지 않은 애국을 강요했다. 그 슬픔과 고통은 당연히 각자가 감내해야 할 아픔이었다.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나라는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진 않았다.



📖 종사관 나리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고...... .

환이는 제주로 내려와 몇년간 떨어져 지낸 동생 매월과 재회를 한다.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던 이유. 노경심방에게 딸을 부탁해야만 했던 민 종사관. 아버지의 부재는 당신이 수사하던 사건으로 인해 해를 입은것이라 판단을 하며 부친이 써 놓은 일지를 통해 사건이 일어난 시초를 향해 거슬러 올라간다.

여인들의 실종. 그리고 사망. 한 두명이 아닌데에도 세상은 개의치 않다는 듯 흘러간다. 환이는 아버지 뿐만 아니라 열세명의 처자들이 사라졌고, 살해되었음을 알게된다. 노경 심방을 비롯하여 마을의 촌장이라는 문촌장이나 홍목사도 아이들이 믿고 의지할 어른들은 모두 손을 놓은 듯한 태도에 환이 못지 않게 이 글을 읽는 나도 울컥울컥 한다. 어찌 할 수 없는 인재(人災)인가 아니면 어떠한 배후가 있기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외면의 시선들인가 헷갈리게된다.

그리고 종사관은 복선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간 써왔던 일지를 환이에게 전달해달라 부탁을 한다. 아마 자식을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을 읽은 복선이기에 어떻게든 이 내용을 환이에게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자신도 어떤 이의 금쪽같은 자식이니 나의 부모 만큼이나 애틋해하는 아비의 눈을 종사관의 시선에서 느꼈겠지.

📖 우리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몇 톨의 애정을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굶주린 어린아이 둘이었다. 한 사람이 베푸는 사랑에는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월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자매다. 이 수사가 끝날 때까지 밧줄의 매듭처럼 엮인 사이다.

자매라면 믿고 의지할 유일한 가족인데 내가 생각하는 자매의 모습과 살짝 다르다. 환이와 매월도 성향이 다르듯 나의 언니와 내 성향도 정 반대. 세상 선하고 화가 없는 언니와 진득한 맛이없고 화르륵 타오르기도하는 괄괄한 나. 그래도 언니가 많이 보듬어주고 양보해주며 감싸준 덕에 현실 자매여도 투닥거림없이 잘 지내고있음에 감사해진다.

아무래도 부모의 사랑은 한정적이나 자식들이 나눠갖기에는 모자람이 있겠지. 노경심방에게 맡겨진 매월은 아비의 사랑이 그리웠을 것이고, 늘 곁에 있을 환이를 시샘했을 것이다. 어찌 할 수 없는 매월의 기운이 있어 할망에게 자라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 아이니깐. 받아도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사랑과 몇년간 만남이 없어 더욱 멀어졌을 자매사이. 어미도 아비도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의지하고 살아갈 사람은 환이와 매월 그녀 둘 뿐이어서 어떻게든 붙들고 살아야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행방으로 시작된 이야기지만 자매들의 이야기로 파생되어 나와 다른 성향의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방식도 배운다.



📖 그의 바람은 가희가 아름다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명나라 사절이 훔쳐 갈 미모를 다시는 갖지 못하도록.

티 없이 맑고 예쁘게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털끝 하나 다치는 일 없이 세상의 고난은 피해서 무탈히 자라주길 바라는 간절함인데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어떻게든 숨겨야했고, 피눈물나는 마음으로 해를 입혀서라도 흉진 얼굴로 살 지언정 끌려가지 않도록 했어야하는 마음. 부모라면 천냥 빚을 져서라도 평생을 당신이 고생하며 아프더라도 그 모든건 자기 선에서 끝내려 했으리라. 애 끓는 부정(父情)이 때론 다른 방향을 향하기도 하는데 그게 이 이야기의 큰 산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 "나도 아직은 확실히 몰라. 다른 세계의 메아리가 들린다는 것밖에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매월의 말은 노경심방 곁에 살며 굿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는 일을 하고 있기에 느끼는 기운은 아닐 것이다.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뜻도 있을 것이고, 모르고 지나치는 소외된 자들의 울음은 늘 존재하다는걸 일러주고 싶은 문장이다.

굳이 제주에서 이 일이 일어났겠냐만은 이야기의 중심을 제주의 작은 마을로 둔게 고립되고 소외받으며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 작은 무리의 부류를 뜻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이며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계집애라는 편견과 어린놈이 어른들 하시는 말씀에 따를 것이지 뭐가 그리 토를 달겠냐는 훈수를 둔다면 아무도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지 못할 것이다. 영영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반까지 환이가 일러주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 환이가 매월이보다 좀 더 오래 아버지 곁에 있어서라기보단 환이의 시점에서 듣는 이야기여서 그럴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본다. 자주 보지 못한 매월이여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없는 건 아닐터. 다만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라고 보고싶다. 행복했던 기억을 자주자주 꺼내어 보듬어주는 환이의 성향과 마음 한 켠에 잘 담아두고 누가 볼 새라 아끼고 싶은 매월이였던 점. 같은 뱃속에서 나온 딸들이라도 생김새와 성격이 다른 것 처럼 부모를 회상하는 방식도 다른 것이니 애틋함의 깊이를 키재기 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다.


후반부로 가면 아빠찾는 딸들의 애끓는 마음을 벗어나 내 자식만이라도 잘 먹여살리고픈 욕망으로 가득한 비뚤어진 부성도 나타난다. 내 자식들 만큼이나 같은 땅을 밟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모두 귀한 존재들이다. 제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위한답시고 해왔던 행동은 결코 옳은 사랑의 방식은 아니라 말해주고싶다.

400페이지가넘는 두툼한 두께를 보면 쉽사리 도전할 소설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이기에 흥미가 가며 상세한 묘사는 영상으로 보여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건 멀티플렉스관에서 보는 영화보다는 방 안 불 다 꺼두고 모니터의 빛만으로 집중하며 보는 넷플릭스의 어둡고 스산한 기운의 영상미가 겹쳐보이기도 하다. 중반의 다소 지루해지는 타이밍도 있지만 결국 환이와 매월이는 해 낼 거라는 확신을 갖고 보면 완독 할 수 있다고 일러주고 싶다.

역사관련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청소년이라면 분명 집중해서 읽을 소설. 이번 겨울방학에 부모와 아이 모두 도전해볼만한 한 권.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