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025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수상작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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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에겐 먼 이야기라 생각하며 살았으나 그건 오만한 삶의 태도였다. 찰나는 언제든 존재했고, 멀게만 여겨진 순간들마저 발치에 다다를 때가 있음을 느끼는 시기다. 만물이 소생한다며 꽃같은 3월에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읽었다. 그리고 그 여운을 길게 적어두기도 했다. 그리고 이 봄이 채 가기도 전에 '죽은 다음'을 골랐다. 이건 앞서 읽었던 이야기에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고, 내가 겪어왔던 몇해 전 봄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이기도했다.

겨울에서 봄. 그렇게 나를 에워싼 몇몇의 가족들과 작별을 했다. 상주가 되기도했고, 유가족이 되기도했었다. 그래도 몇번 해본 놈이라고 처음과 다르게 두번째부터는 장례식장에서 돌아가는 일들이 눈에 보였다. 골라야 할 것, 먼저 계산해야 할 것, 시간에 따라 해야하는 순서, 그리고 어떻게 보내는 것까지도. 경황없이 여기저기 불려가며 사인하고 카드긁고, 이체하던 내가 눈에 비춰보이면서, 똑같은 표정을 한 사촌동생을 붙들고 같이 가서 선택했고, 집에서 챙겨간 손수건을 쥐어주고, 밥숟가락을 목구멍에 밀어 넣도록 감시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어질 다음 순서, 걸릴 시간을 한번이지만 아주 또렷하게 겪고나니 고단함이 가득 베인 상주의 얼굴이 애틋해져 내 외투를 둘둘 감아 친척들 안 볼때 구석에 뉘여서 눈을 붙이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더라.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고, 겪어낸 사람만이 아는 '죽은 다음'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그게 여기에 담겨있다.

목차에는 장례를 치르는 절차를 뼈대로 삼아 그 상황마다 해야하는 일들, 그 순간마다 도와주시는 장례 담당자들의 인터뷰와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생소한 장례언어와 과정을 또렷하게 담아내였다. 상을 치뤄본 사람들에겐 그 과정을 복기하는 기회를 주었고, 아직 겪어보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절차가 있음을 알려주는 가이드북과도 같은 책이다. 주제분류가 사회과학, 사회문제, 사회학으로 구분지어져있지만 직업탐구의 영역이기도하며 장례라는 것에 대한 르포라 할 수도 있겠다. 나라가 지정해 둔 정규 교육과정을 이탈없이 다 이수했던 사람임에도 당장에 닥쳐온 이 장례과정은 생소했고 두려웠다. 모든 걸 내가 결정해야하는데 아무도 가르쳐 준 이가 없었다. 금기시 되어지는 사항도 아닌데 쉬쉬하기는 커녕 입밖으로 꺼내어주는 세상이 아니었다. 결국 맞딱들여야 알게되는 현실이다. 이 또한 장례 노동에 관한 근로자들의 현장이며, 살면서 반드시 겪어내게될 순간이라는 걸 상기시켜주는 글이다.

처음 접하는 이들은 많이 낯선 내용 일 것이며, 생소한 환경이다. 시신 복원이라는 것도, 장례지도사의 성별을 따지우는 분위기도,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먼저 선뜻 이야기를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알아야하는 근로 현장이며 진행 절차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서 근로자의 날을 빌어 이렇게 장례 노동에 관한 이야기와 내 생각들을 써내려본다.


사람 한명이 생을 다했는데 그를 둘러싼 많은 이들이 울기도하고 애닳아하기도하지만 분노하기도하고, 고인을 두고 싸우기도한다. 이 과정은 마음 쓰임의 극단적인 지점을 자극하기도하며, 모든 절차는 돈으로 치르게되다보니 타인의 손을 빌려 이 수고로움을 정리하며 고인의 끝을 마무리짓는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과 자금의 문제이기도했다. 그래서 고인은 말이 없고, 남은 사람만 곱절로 힘든 과정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자신의 생의 끝을 본 후 수습할 '남은 자'들에 대한 걱정이다. 당사자는 소위 죽으면 그뿐인데,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한 걱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겪어본 자들이 알지 않겠는가. 나 또한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로 살아왔으니 더욱 그러하겠다. 이렇게 살면서 터득한 학습 효과는 무섭게 와닿는다.

'잘' 죽는 것. 이왕이면 '잘'. 죽는 것 마저도 '잘'하고픈 욕심을 부려보는 것. 그래서 '잘'마치고 '잘'가라는 인사를 받고픈 마음이 가장 크겠지.



📖이거 괜찮은 직업이다_ 나도 죽으면 금방은 슬퍼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다시 웃고 일상을 살아가겠지요.

서운해 할 이유가 아니다. 당연한 거다. 그게 삼 사람의 일이고 생이 남아있는 자들의 당연한 몫의 이치이다. 알면서도 서글퍼질 수도 있겠다만 마냥 서운해하고 마냥 애닳아한다고 변하는 건 없으니 이왕지사 서로 웃으며 안녕하고 웃으며 떠올리길 바라게된다. 간소한 장례를 원하고, 마냥 슬퍼만 하지 않길 바라는 이유는 남겨진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라는 점이 공통된 마음이었다.

좋은 기억만, 행복했던 순간만 남겨놓아도 추억할 거리들은 차고 넘칠테니, 웃으며 애틋한 존재로 남고싶은 마음이 이해가된다.


📖'없음'과 '있었음' 사이에 채울 슬픔조차 알지 못했던 것은 나의 개인적인 무지가 아니었다. 어느 책에서 말한 것처럼 "죽음은 우리의 교과 과정에 빠져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배운 것이 없다. 장례는 더욱더.

화장기사인 이해루님의 인터뷰를 통해 장례란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기보단 고인의 시신을 처리하는 기간이란 말에 공감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지의 순간에서 나를 다스릴 겨를도 없이 고인을 보내는 과정은 일시정지가 되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위 라인작업물처럼 느껴지기도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전적으로 믿을 수 밖에 없고, 내 모자란 손 대신 당신들의 능숙한 손을 빌어 준비 할 수 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준다.

어느 집단이든 결국 집구석 싸움같더라. 연령을 구분지으며 일컫는 나이든 능숙한 장례인? 어리고 선한, 젋은 장례인?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힘 좋은 남자 장례인? 보기드문 여자 화장기사? 성별을 바라는 것 또한 아니다. 그들에게 직장이고, 나에게는 내 일을 대신 맡아 할 장례인, 그러니 그러한 담당자 자체일 뿐이다.

어느 시점부터, 누가 무얼 바라고 이러한 선긋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멀찍이 3자의 입장에서 보았고, 맞딱들여 겪어봤던 사람으로서 그냥 내가 알지 못하고 갖지 못하는 능력을 대신해줄 전문가만 연결되길 바라게된다.


나도 나이를 먹은건지 이제는 결혼식장 보다 장례식장을 더 자주 가고있음을 느낀다. 몇번 가보니 주변을 쓰윽 흝어본 후 대강의 그림이 나온다. 가족관계, 자손의 여부, 재력의 정도, 사회생활로 엮여진 이해관계의 범위까지. 헌데 이제는 내 삶의 끄트머리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부양가족은 있지만, 내 장례를 치뤄 줄 자식은 없다. 나이들어 효도받자고 애를 낳을 순 없다. 어찌어지 하다보면 나는 연고 없는 자의 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시사하는 단락이기도했다. 그래서 이 파트가 흘려 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우스개소리로 가는데엔 순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득해서 보이지 않다가도 언젠가 발치에 닿아있을 죽음과 내 마지막을 수습할 누군가에 대한 걱정을 하기 마련이다. 이 부분에서는 법륭상의 연고자의 범위와 보건복지부 행정 처리 지침의 장사 업무에 관한 사항을 자세하게 기록하고있다. 그리고 더더욱 생소하게 느껴지는 공영장례에 대한 복지 개념도 정리를 해 두었다. 중 후반부에 적어둔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애도할 권리'로 이어진다는 말에 사후 지켜져야하는 존엄을 머릿속에 정리해본다.

장례지도사, 화장기사, 시신 복원사, 수의 제작자. 장례업 노동자가 말하는 임종에서 빈소까지. 한달음에 끝이 나는 정리과정. 인간의 마지막이라 여겼던 곳에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장례 노동자들의 작업환경과 그들의 노고까지. 환영받지 못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절대 사라질 수 없고, 홀대 받아서는 안 되는 직업군. 운명, 기술, 마음, 제도, 문화를 횡단하며 모든 것들의 죽음에 애도를 덧붙여 일하는 노동자들이 담아두고 살았던 이야기들로 낯선 상복을 입고 앉아있던 몇년 전 나를 떠올리게 했다.

많은 장례식장도 가 봤고, 사흘동안 낯선 장례식장 바닥에서 셀수 없을 정도로 절을 하고 공허해하던 상주의 삶을 살아봤던 이가 읽어 낸 책 한권. 생각 이상으로 더욱 와닿고 감사하며 고생스러웠을 손길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들이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직업군을 소개하고 근로 환경에 대해 토론하면서 이 책이 중요한 교육 자료로 삼아주면 좋겠다. 알지못했던 직업세계에 대한 영역 확장의 기회를 마련해주면 어떨지. 그리고 자라는 청소년들은 이 직업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어떠한 작업을 하는 근로자인지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을 통해 직업의 다양성과 결코 내 삶과 분리 시킬 수 없는 사람들임을 가르쳐주면서 죽음과 애도의 방식, 고인을 배웅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존재로서의 대우, 혈연관계를 벗어난 죽음에 대한 태도와 고인을 애도하는 범위 확장성까지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개선점을 찾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교사인 친구들에게 이 책을 슬쩍 권해보고싶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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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대학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7
김동식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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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작가의 첫 중편소설. 사랑, 돈, 영생이라는 키워드로 뭉쳐진 이 한권에는 인간을 불편하게 하는 수법을 연구하는 세 대학생 악마의 실험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악마는 이러한 툴만 제시 할 뿐 악마보다 더 악마같은 사람들의 면을 보여준다. 인간을 파멸 시키기 위해 다양한 트릭을 심어둔 악마인데, 그 수법을 넘어선 인간들은 악의 정점을 넘어서게된다. 인간다움을 넘어선 인간같지 않음에 대한 비릿한 단상을 보여준다. 역시, 인간이 제일 무섭다 것은 변하지 않음을 상기시키는 씁쓸한 내용들이다.

역시나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와 표현력은 소설의 길이에 상관없이 김동식 스러운 문장으로 구현되니 읽는 재미는 여전함을 느낀다.


📖너는 가볍게 말하지만, 한 사람을 강제로 사랑하게 하는 일은 엄청난 일이다. 인간 하나의 영혼이 걸린 무게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래서 드는 에너지 또한 어마어마하다. 내 물론 그녀가 지금 당장 너를 사랑하게 만들어줄 순 있긴 하나, 그러면 네 남은 수명의 60년은 삭감될거다.

악마 아블로-사랑 / 악마 비델 - 돈 / 악마 벨 - 영생. 학생 악마들이 보았을 때 인간 파멸의 가장 빠른 감정과 심리는 이 세개였다. 악마와 거래를 하게되고, 대가를 치를 지언정 솔깃할 수 밖에 없는 조건. 외면하고싶지만 결국 눈물을 머금고 할 수 밖에 없는 조금 빠르고 편해보이는 삶의 행태들. 나름 인생의 능력치가 조금 쌓인 30대 후반의 내가 보더라도 낮게 욕 한번 지껄이고 인간 파멸 시뮬레이션에 자발적인 인간이 될 듯 하다.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으니까. '어차피-', '한번만?' 이라는 얄팍한 자기합리화로 이 달콤한 제안들 받아들이겠지. 그리고 끝 모를 욕심이 내 발목을 잡겠지. 나는 아닐꺼라 장담 할 수 없는 것이 한없이 평범하고, 튀지 않는 사람들 마저도 다 이렇게 악마와 거래를 트고 악인이 되어가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사랑이 고팠고, 사랑이 절실했던, 어디에나 있을 법한 대학생 성국을 통해 욕심에는 끝이 없고, 바라는 것에는 정도가 없음을 확고하게 인지시켜준다. 결핍과도 같았던 감정을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이 가진 생의 시간으로 교환한다. 오로지 나만을 향한 호감도 수치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호감을 살 만한 타이밍을 알려주는 것, 그 수치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얻어 낼 수 있는 찰나를 얻는 것. 수중에 쥐어진 돈이 아니라 나도 나의 끝을 모르는 생(人生)을 잘라 갖고간다는데 무슨 대수겠냐를 보여주는 것. 사람의 마음은 내가 어떻게 한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내가 바란다고 다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명시한 후 유혹을 흘려낸다. 그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어 준다는 뉘앙스는 뒷일을 생각하기보단 당장 내 앞에 놓여진 사람들과의 애틋함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놈의 세상은 혼자선 절대 못 사는 사회이니 물질적이고 형상화 되어있는 것보다 가장 크게 와 닿는 사랑을 보면 그만큼 위대한 감각임을 드러내며 인간의 가장 약한 곳을 자극한다. 욕심을 내고 그 욕심이 스스로를 잘라먹는 것을 통해 예견된 끝이겠지만 그걸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이제 도준은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도 거침없이 기뻐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에게 이건 단지 도박에 불과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끔찍하게 죽든 말든 무감각했다. 어서 다음 게임을 열라고 비델을 바라볼 뿐이다.

죽음은 두렵다. 스스로의 죽음은 말할것 없고, 타인의 죽음, 일면식도 없는 이의 사망 소식 마저도 마음이 요동치는건 당연한 감정이다. 그래서 요즘 유명인의 자살이나 평범한 시민의 사고사의 기사 하단에는 이러한 사망 사건을 접한 후 우울감이나 감정의 고통이 있을 시에는 주저말고 자살예방센터로 연락하라는 문구 기재가 의무화 되어있다. 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울컥한데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주머니를 불릴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그에 대한 카테고리는 점점 축소되고 세밀화 되며 명확화게 될 수록 금액이 오르는 꼴을 취하고있다.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과 깊이 빠져들었을 때의 눈빛은 서로 다른 온도를 갖고있다. 이른바 '어차피-'라는 부사를 앞세워 태어나면 죽는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그 순서를 당기거나 미룰 수 있는 능력도 없지만 단지 죽을 날을 맞추는 것인데 죄책감이 크겠냐는 뭉뜽그린 마음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돈을 불리는 도박의 일종인거지 스스로가 생명을 좌지우지 한다고 믿진 않는다. 그냥 죽음을 맞추는 것이고, 그건 그 사람의 생의 끝이 그럴 뿐이지 자신과는 별개의 것으로 확실히 분리를 하며 감정소모를 하지 않는다. 비델은 베팅을 하는 도준의 욕망을 통해 생과 사의 과정으로 불행하도록 시간을 두고 쥐어 짜낸다. 베팅하는 금액이 커질수록, 잃었다가 또 전부를 거는 과정을 통해 심리적 불행을 함께 얹어준다. 도준은 스스로가 불행에 흠뻑 젖어있는지도 모르도록.



📖저를 만난 그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겠죠. 고민하다가, 시간을 역재생하여 과거로 돌아가는 선택을 말입니다. 그것까지도 정해진 결과였으니까. 그렇게 과거로 돌아간 그는 또다시 똑같은 삶을 반복하다가 다시 저를 만나 과거로 돌아가고, 또 똑같은 삶을 반복하다가 다시 저를 만나고, 다시 또, 다시, 다시, 영원히 맴돌게 되는거에요.

마지막으로 시간을 되돌릴 판을 꾸린 벨의 영생과 불행의 상관관계. 인간이 심심찮게 말하는 '과거로 돌아 갈 수 있다면-'으로 물꼬를 트는 이야기에 얻어낸 삶의 무한 반복 굴레. 악마는 미끼를 던졌고, 인간은 그걸 덥썩 물었다. 원하는 바였으니까, 그리고 그리 한 번 쯤은 해보고픈 선택이니까. 다시 그 순간이 오면 다른 선택을 통해 후회도 덜하고 더 나은 삶을 살꺼라는 확고한 의지가 있으니 다들 그런 망상을 하는 것에 벨은 기대를 건 것.

사람들은 모른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라는 점과, 또 한바퀴 돈 후 그 자리에 오더라도 변하지 않을거라는 걸.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는 것임을 한번더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다. 어떻든 간에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내가 아는 인간은 그러했고, 책 속의 인간들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다들 이렇게 한결같이 자신의 세상을 되돌리길 바라더라.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많은 이유는 후회스러운 마음과 함께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에 시선이 간 탓이겠지. 지금의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기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 가서 다른 선택이라면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한 몫 할테지만 모든 것이 원하는대로, 뜻하는대로 되지 않음에 변수를 생각해주길 바란다.(이것저것 재지 않고 벨과 거래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마저도 눈에 안 들어올게 뻔하니 잔소리를 하는 내 입만 아프겠지)


📖작품해설_ 그들은 이간 욕망을 비틀어 가학적인 것으로 몰아가며, 특수한 방법으로만 가능한 특수한 욕망으로 인간을 굴복시킨다. 그것은 자발적이라기보다는 훈육된 결과이며, 인간이 가진 인식상의 맹점을 활용한 트릭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악마의 수법이지만, 사실 인간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는 아닌 셈이다.

저자는 이 포인트를 위해서 앞에 확실히 보장이 되어질 사랑과 돈이라는 감정과 물질의 밑밥을 깔아 둔 듯 하다. 진짜 알려주고픈 것은 당신의 생을 번복하는 것이니 말이다. 한방? 한탕? 못지 않은 한 번의 기회. 도의는 이미 버렸고, 버린 만큼의 보람이라도 얻도록 악마의 거래가 흡족할 만큼의 성과를 거두길 바라고있다. 괜히 악마겠는가. 그들은 우리를 간파했고, 저자가 생각하는 딱 그만큼의 변수에서만 움직인다. 시작은 악마의 제시였고, 끝은 인간이 안달복달하며 거래를 유지하길 바라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겠지. 영생에 대한 재해석. 직선으로 쭈욱 이어지는 생의 연장선상이 아닌, 과거와 현재의 일정부분에 갖혀 무한 굴레에 맴도는 것. 이것도 영생의 한 갈래인 걸 우린 잊고 있었다. 어쨋든 삶은 계속 될 테니까. 누군가에겐 행복한 순간일 것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되돌리고싶은 타이밍의 정점일 것이고. 결국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붕뜬 마음의 구간인데 여기에 머문다? 감정 과잉의 감옥이 따로없을 듯 하다.

저자는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런 예감이 드네요. 저의 작가 인생 내내 '악마'란 존재를 주구장창 써먹을 것 같은 예감이요. 그러면 그게 악마와 계약한 거 아니겠습니까.' 라는 말에서 인간은 수 많은 후회와 고민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약점을 소재로 다양한 인간 민낯을 보게 될 거라는 예감을 하게 만든다. 알면서 속고, 알면서 바라게되며, 알면서 또 좋다고 따라가 후회할 짓거리만 곱절로 얻어내는 인간이라는 존재. 나는 아닌 것 처럼 멀찍이 떨어져 혀끝을 차며 말하는 것 같지만, 결국 나도 그러한 족속이라 또 얼마나 골려먹을지 기대아닌 기대를 하며 웃픈 김동식 월드의 사람이야기를 기대해 볼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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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용혜 안전가옥 쇼-트 32
김진영 지음 / 안전가옥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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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기도 한 저자의 이력. 그래서 그런지 인물묘사가 문장 가득히 도드라지지 않아도 특징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영상이 구현되는 느낌을 받게된다. 영상의 무드는 공중파 중에 MBC에서 할 법한 늦은밤 드라마 시리즈? 티빙에서 할 듯한 단편? 약간 그러한 영상의 결을 띄고 있다. 인간의 죄의식, 폭력성에 무게를 둔 소재는 책 제목에서 대놓고 언급한 괴물이 용혜라는 주인공을 가르키는 것 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대놓고 괴물=용혜 이기전에 저자가 숨겨둔 진짜 괴물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예견하게 만든다.


인물들이 제법 많이 나온다. 주요 키워드를 적어가며 읽다보면 드라마가 시작 되기 전 홍보차 상세페이지로 알려둔 인물관계도가 내 손에서 만들어진다. 이야기는 총 6장의 챕터로 나뉘어져있고, 시작부터 강렬하게 이야기의 물꼬를 틔운다.

부모가 여덟 살 딸아이를 유괴 방조하려 하지만 그것은 실패에 그치고,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붉은 반점과 기이한 식성에 대해 언급하며 조금 다른, 조금 특이한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제시하며 그들이 이 이야기의 이 소설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의 전체를 긁어내어 적어뒀다 할 수도 있겠고, 스포가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인물 흐름도를 통해 좀 더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며 눈앞에 영상이 구현되는 재미를 누렸으면 싶다.


나는 도신케미컬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진득하게 유지되었으면 어떨까를 생각해봤다. 유건재의 이야기를, 그리고 기숙사 309호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에 비중을 뒀다면 단순히 추리소설, 미스터리소설로 분류되지 않고 사회적 사건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그러면 김진영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며 마주하는 시선들마저도 변형되으리라 여겨졌다.

희영, 용혜, 지현을 통해 내가 타인을 대했던 시점을 되돌아봤다. 육안으로 보여지는, 소설속 인물들은 남들과 다른 외형을 통해 일반적이지 못한 그들을 바라보는 온도차는 달랐다.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냥 자신보다 달랐고, 그 다름이 혐오로 덧씌워져 단순하고도 무식하게 괴물로 치부해버리는 과정을 엿 보게된다. 적어도 당신은 아닐거 같지? 그래도 막상 이러한 사람이 당신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면 꺼리게 될 것이다. 지극히 자신만 정상이라는 사고에 굳어버렸을테니 나는 다를거라는 발뺌의 말은 넣어뒀음 좋겠다. 모든걸 포용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는 사람이 많았다면 '괴물,용혜'도 나오지 않았을테니까.

인간들 속에 섞여 흐릿하게 살아가는 진짜 괴물은 영영 건져내지 못했다. 흐릿하게 퍼지며 흔적을 스스로 지웠을 뿐. 이건 인과응보라 할 수도 없다. 인과응보에 해당한다면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게 맞을테니까. 죽음은 최고 형벌이 될 수 없다. 괴물과 인간의 경계. 유건재도 처음엔 괴물이 아니었을테지만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본다면 인간과 괴물은 서로 다른,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비틀어진채로 진화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도드라지지 않았고, 붉은 반점으로 뚜렷한 특이점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괴물이 되고있던 인간들. 외양과 내면 그 어떤것이 중요한 분류방법인지를 생각해보다보면 책을 읽은 시간보다 더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 보여진다. 고로 나는 아직도 답을 못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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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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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서야 읽었나 싶은 글들. 짧은 호흡이지만 읽고 난 후엔 깊게 몰아쉬게되는 한탄. 나도 결국 이러한 인간들 중 하나겠지 라는 씁쓸함.


📖무인도의 부자 노인_ 통조림 몇 개 때문에 한 노인을 죽이려고 했을 때, 저희는 짐승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노인을 살려주고 나니, 그제야 저희는 사회 속에 사는 인간이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살았습니다.

다들 알고 있었으나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사실. 아마 저 노인은 구조가 되어도 일상으로 복귀 하더라도 여기서 약속한 금액을 치르지 않을 거라는 것. 당장의 신변 위협을 막기 위한 급급한 대응이었다. 아무런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공간에서 자신이 부자인지 아닌지 어찌 알까. 그러니 나같아도 저렇게 살고자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며 암암리의 눈감아주기가 아니었을까를 가늠하게된다. 그 노인이 내가 되지 않을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 거짓말이 사람들을 살렸고, 그 거짓말이 헛되더라도 살아서 나갈 구실을 마련해두었다.


📖낮인간, 밤인간_ 인류는 여전히 낮인간이고 밤인간이었다.

밤에 좀비로 변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낮인간이었고, 낮에 좀비로 변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밤인간이었다. 서로를 나눈 경계선은 사라지질 않았고, 서로를 향한 적대심도 사라지질 않았다.

나와 같지 않음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는 것. 교류가 없음에도 단지 나와 같은 결을 띄지 않는 것 만으로도 부정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 사람의 본성이라 하기엔 너무 악랄하고, 사회화가 인간을 이렇게 변화되게 했다 하자니 모든걸 세상 탓으로 돌리는 것 같아 씁쓸해지는 인간관계의 방식.

여기엔 단순히 낮인간과 밤인간으로 크게 나누어 두었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별 시덥잖은 것으로도 선긋기를 하고있다. 자신이 정해둔 선 넘어에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배척하고보는 행태. 그렇게 수 많은 선을 긋다보면 자신이 그어둔 선에 언젠가 자신도 밟히게 되는걸 모르는 거겠지.

📖신의 소원_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인간처럼 똑똑해졌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소원이었다. 잭, 마르크스, 김군, 스크류지가 못미더운 이들은 그들을 죽였고, 마지막이라 했던 희망의 아이의 소원은 이와 같았다. '인간처럼 똑똑졌으면 좋겠다?' 인간.... 처럼? 그 똑똑하다는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조건과 다른 이상을 갖고 있기에 나 이외엔 모두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생명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똑똑했던 걸까? 그 모든 예상 답변을 제외하고 마지막이라 여겼던 소녀의 대답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소원이라 여긴걸까? 모든 것들이 인간처럼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이건 소원이 아니라 또 다른 재양의 시작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나도 인간이지만, 살면서 가장 무서운건 '인간 처럼-'으로 시작되는 말 이니까. 당신이 아는 것보다,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기대치를 낮춰야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확률. 암튼, 나는 그러한 확률로 사는 인간 중 하나라 그런지 천진난만한 소녀의 소원은 가장 리스크가 큰 소원이라 생각하게된다.(삶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보는 나의 견해는 이러한데, 긍정적인 사람이 이 단편을 본다면 이 소원이 가장 확신에 찬 답변으로 여길수도 있겠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그게 이 단편이 주고픈 이야기로 보였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_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무엇이든 차별을 하는 것들은 희대의 몰상식한 것들이고, 매장당해 마땅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세상에 모든 차별이 사라졌다는 말을 끝으로, 나와 다름에 놀리는 사람도 없으며, 스스로를 창피해하지도 않는 방식. 그냥 별것 아닌 당연한 일이라 했으나 절대 당연할 수 없는 현재를 기분좋게 비꼬고있다.

사회가 잘못했고, 비선 실세의 비리가 이유였고, 인류는 아무 죄가 없다. 단지 그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피해를 입었을 뿐이고, 차별과 멸시를 받을 근거가 없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차별을 하는 자가 벌을 받는게 당연하며 그 마음가짐 또한 엄중히 처벌해야하는 비뚤어진 성향임을 밝혔다. 그런데 우린 알면서 못한다. 아는데 못하는게 더 나쁜거 맞지 않나? 비교의 문제, 다름의 인식, 타인보다 우월한 것에서 오는 쓸모없는 자존감. 우리도 가능은 하겠다. 단지 제 머릿속으로는 수만가지 생각을 하더라도 별 신경 쓰지 않을테니 입밖으로 꺼내지도, 눈으로 타인을 훑지도, 손가락으로 특정인을 찔러 주목시키지만 않으면 된다. 제 몸 하나 제어 못하는게 가장 큰 문제겠지.


📖인간 재활용_ 죄송합니다. 참, 아쉽게 됐습니다.

돈이 많다고 인생의 운 마저도 많이 가졌다 할 수 없었다. 두석규 회장은 불의의 교통사고가 나 사망한 딸을 살리려 한다. 타인의 시체들을 조각해 관에 넣어 주술을 걸면 다시 환생 할 수 있다? 헌데 그 확률은? 그렇게 3분의 1의 확률, 7분의 1의 확률, 23분의 확률, 또 안되면 그보다 더한 경우의 수를 덧덴 확률. 그 많은 확률의 1이 되지 못한 딸의 조각난 시체는 또 그렇게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또 조각이나 더 많은 확률 중 하나의 환생을 바라게된다. 끌려오든 죽여오든 다른 시체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리고 그들 속의 사정은 모른채.

조각나고 뜯기고 형체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살리고픈 부정이야 오죽하겠냐만 그렇게 해서 살린들 감사하다 여기게 될까? 자신의 유일한 신체는 한줌 뿐이고 다른 이들의 것으로 얻어사는것. 일단 뺏기지 않고픈, 다 움켜쥐어야 속이 시원한 아빠이기 이전에 다 끼고 살아야하는 재력가의 선을넘는 욕심이겠지.

📖흐르는 물이 되어_ 뭐야? 과부하가 걸려도 폭발해도 별거 아니잖아? 얼른 공장을 복구해서 다시 가동해야지!

인류의 욕심. 의존하게되는 상태. 생의 유일함이라 여기는 기대치. 별거 아니라 여기는 확고한 믿음. 자신이 온전히 깨끗해 질 것이라 여기는 자기중심적 사고. '나'만 깨끗하게 정화되는게 아니다 '나'마저도 깨끗하게 정화되어 사라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 어느 한 명은 아닐거라 장담하겠지만 어차피 같은 인간, 같은 족속이다. 이 상황이 코앞에 왔을 때 다들 같은 생각을 하게 될 테니 나는 그나마 나은 생각과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라 열외시키지 말길. 너나나나 결국 닥쳐보면 다 같은 생각만 할 뿐이다.

노동하는 작가의 소설집이라는 문장을 덧붙여 저자를 소개하고있다. 국문을, 문예창작을 배우지 않았고 다른 업을 이어가며 글을 쓴 사람. 그것만으로도 그를 지칭하느 프레임은 눈에 띈다. 거기다가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사람이라는 소개는 더욱 이 글이 특별 할 수 밖에 없을을 우위에 두려 애쓴다. 그런데 굳이 그러한 애쓰는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아도 글은 기가막히다. 호흡은 짧으며 거기에 말하고자하는 내용은 확실히 전달이되고, 지루할 틈 없이 몰아부치긴하나 각각의 인물들이 어떠한 성격을 띄고, 어떠한 갈등을 이루는지. 결국 어찌 되어 이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딱딱딱 나눠서 알려주고있다. 그야말로 기승전결이 확실하며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확실히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력. 이는 환상소설이라 하기도, 일반 소설이라 하기도 애매하다. SF소설이라 해도 될만하지만 과하게 몰입하지 않았기에 특정분야에 흥미 없는 사람에게도 읽혀지는 것에 거부담이 없었다.

낯선 디스토피아든 세계관이라 하든 딥하게 빠져드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에 드는 문장 모음집이었다. 눈앞에 놓여진 세상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있노라면 꼭 이러한 문장으로 세상이 뒤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게 딱 '회색 인간'이 가진 세상의 농도였다. 출간일이 2017년이더라. 그때의 내가 봤다면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2025년의 내가 보며 감탄하는 이유는 세상이 마냥 아름답지 않기도 하거니와 내 눈앞에 놓여진 시대의 흐름을 보고 있자면 이 꼴이 좌우 대칭을 이루지 못하고 어딘가 찌그러진 채 돌고있어 결국에는 누군가에 의해 꼬여버린 세상이 이런 꼴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에 감탄을하며 이틀만에 문장을 삼키듯 보게 만들었다.

몇몇의 단편은 이 책을 읽은이와 긴 대화를 나누며 더 파고들었음 어떨까는 생각하게 만들었다. 각각의 단편이 주는 키워드를 가지고 때때로 멍하니 세상을 보며 저자의 이야기에 외전, 또는 후일담 방식으로 이야길 이어가도 괜찮겠다는 나름의 독자 첨삭을 해볼까 싶어진다.

이 작품 다음으로 출간된 책을 골라야하나, 최근 출간된 신작을 읽어야하나 즐거운 고민에 빠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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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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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저자의 글은 마냥 허구의 것도 아니고, 환상문학 특유의 이해하기 어려운 광활한 세계관이 없어 마음에 들었다. 적당한 선에서의 서늘함과 씁쓸함도 가진 채 세상을 향해 하고픈 말을 슬쩍 끼워넣기를 하는 능숙함이 좋았다. 훌훌 읽히지만 생각은 술술하고 지나치기 어려운 글들이라 완독 후에도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한참동안 책 표지를 뚫어지게 보게하는 매력을 지닌 필력이다.

그래서 또 홀린듯 신간이 나오자마자 단숨에 읽어내게 만들었다. 판타지, 호러, 청소년소설의 장르를 한데 모아 이른바 '무얼 좋아 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라는 듯이 그득한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것은 레트로 텔레비전 탑과 고미술점이 늘어선 골목의 끝. 밤 11시에 문을 열어 새벽 4시까지 운영하는 수상한 가게. 돈을 벌 목적은 없어보이는 호랑골동품점. 이 상점은 사회 구조적 문제와 부조리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한이 깃든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이 곳을 지키는 호미, 신령한 땅의 기운이 오랜 시간을 들여 여기에 서린 불온한 힘을 정화하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 중 미처 정화되지 못한 물건들이 인간을 꾀어 탈주하고(인간을 꾀어 데리고 나감을 당하게되니(?) 서로의 이끌림이었다고 보자) 그 덕에 우리는 그 물건이 품은 이야기를 들게된다.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_ 내가 딸한테 들었는데, 사람이 일단 몸을 쭉 펴야 마음도 펴진대.

성냥에 깃든 소녀들의 한은 장소와 시대만 달라졌지 여전히 대우받지 못하는 곳의 이야기에 닿아있다. 처우개선에 대한 것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했던 바,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소재로한 영화도 있는걸 보면 여전한 곳인걸 생각하게만든다.

그 무리 속에서 서로가 똘똘 뭉치기보단 경쟁자로 삼으며 실적을 위해서 경주마처럼 옆을 볼 틈을 안주려는 마음. 미선이 바라던 '그럼에도 우리는 잘 버티자' 싶어했으나 다른 이들에겐 눈엣가시같은 것으로만 치부되기도 했다. 그 마음을, 그 진심을 알지만 다수의 흐름을 거스르면 되려 흠이 잡히게될 상황에 주저했던 규리를 보게된다.

호랑골동품점의 물건들의 한은 그 옛날 자신이 겪었던 것, 그리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그 상황에 놓인 이들을 꾀었고, 다시 그 상황에 놓여져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곳으로 돌아와 고해성사 하듯 물건을 탐했던 것을 반성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토로하며 알지만 외면했던 진짜를 시원스럽게 말한다. 무거운 마음을 꺼내두었다. 속이 시원했고, 이제 해야 할 일은 독자들이 상상하는 그것으로 진심을 쏟아본다.


📖19세기, 그림자인형 와양쿨릿_ 그 손을 잡아줄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엔 짠했었다. 무엇보다 그의 여건이. 하지만 끝에도 짠하다.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불쌍했다. 결국 제 입 풀칠하는 것과 저 좋자고 여흥만을 생각하는 것과 여전한 이기심으로 영영 혼자 저러다 죽어도 싸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행실이었다.

각각의 이야기를 가진 물건이 나올 때마다 휴대폰을 들어 검색을 먼저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와양쿨릿. 어? 이거 내가 아는 그건데? 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인형. 애니메이션에서도 한 번 즈음은 보았을 그림자놀이에 사용되는 꼭두각시인형. 이 인형으로 김택구의 이야기를 연결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 흔하게 존재한다는 것. 역시나 이야기 속이든 현실이든 이러한 사람의 줏대는 달라질 기미가 없다는 것. 그래서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 같아 환상소설으로 분류되는게 맞는가 의아해지기도 한다.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_ 마지막 한 번은 부르지 않은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영원한 이별을 확인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대화를 하고 싶다는 열망을 눌렀다.

놓지 못하는 마음, 놓아주지 못하는 애닳음.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가 갖고있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면 언젠가 한 번은 받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 애틋한 마음이 이토록 가득한데 꿈이든 현실이든 진짜 한 번은 드라마틱한 순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간곡한 마음. 그건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에도 깃들어 있고, 지금을 살아가며 저 혼자 죽지 못해 살고있는 지운에게도 이 애틋함이 담겨있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살고 있는 와중에도 먼저 떠난이들을 만나려고 계획하게되는 삶의 마침표 준비과정.

앞에서 보았던 두 편의 단편과는 달리 이 마음을 나도 알고 있어서, 사는게 마냥 행복하지 않아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씁쓸함이 담겨있다. 그래도 다행이지. 이유요가 그 집을 방문해 같이 밥을 먹어주었고, 잠시나마 했던 통화와 벚꽃을 피우지 않으려 애썼다는 그들의 애틋한 투정이 있었으니 살게될거다. 살아도 되겠다 싶은 마음을 먹게 해주어 감사해진다.



📖17세기, 짚인형 제웅_ 그 몸짓이 그저 애달팠다. 가장 믿던 상대에게 버림받고도 애정을 갈구하는 것이 어찌 흉할까. 흉한 것은 그 믿음을 저버린 쪽이 아닌가.

SNS의 흔한 오피스 썰이라 해도 믿을 만한 이야기. 내 상사 이야기인데 한번 들어볼래? 처럼 어찌 그리도 당연한 수순으로 외도+이혼+자녀해외유학+기러기엄마+유리천장 콤보로 사람을 쥐어짤까. 마음의 공허함이 결국 몸으로 나타나기까지했고 작고 사사로워 보이는 물건에 마음을 쓰는 것은 집착으로 이어지는 어딘가모르게 익숙한 수순. 애틋하고 애절한 쪽이 늘 작고 여린 것이어야되고 흉한 것은 그 마음을 알면서도 믿음을 저버리며 외면하는 쪽으로 갈리게되더라. 주연이 제웅을 다시 데리고 간 이유는 결국 약자의 편에서 눈물지어 봤기에 더 애틋하게 품어주고싶었노라 보여졌다. 17세기의 제웅은 어떤것도 받지 못했겠지만, 지금의 제웅은 차고 넘치게 사랑받는 제웅으로 남겠지.


결국 다들 하나같이 애틋하고 애잔하다. 그런데, 또 다들 꾸역꾸역 잘 살아간다. 그래서 더 마음쓰이고 정을주고 버티는 것에 더욱 눈길이 간다.

저자는 '<호랑골동품점>을 읽는 동안 여러분이 조금 덜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각각의 물건이 갖고있는 이야기와 그 물건에 빗대어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보면 읽어내는 '내가' 덜 외롭기 보단 이야기속 '네가' 덜 외롭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선순위를 앞에 두며 순번을 바꿔주고픈 마음을 갖게된다.

기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뒷골이 뻐근해지는 내용이 없어 읽기 수월했다. 어린시절 보았던 '은비까비'가 생각나기도 했으며 '배추도사와 무도사'에서 만났던 동화의 한 장면처럼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깔끔하게 느낌표 엔딩울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유요가 전해준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만 몇년 뒤 소하연이 내어주는 호랑골동품점 시즌2의 세상도 궁금해진다.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작고 여린것에 진심을 열어두고 살며, 외로움의 비빌언덕을 찾게된다.

과거의 것들이 성냥, 와양쿨릿, 제웅, 콩주머니가 그것이었다면, 다음 호미가 상점에 놓아둘 물건은 무엇이 될지 생각하며 이후의 이야기를 기다려보고 싶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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