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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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서간문을 발견했다. 에세이라 해야할지, 서간문이라 해야할지 모호하지만 한없이 적극적이고 스스럼없는 대문자E의 글방지기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다만 글을 적고,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임은 분명하다며 쪼잘쪼잘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문장들이다.

저자가 지향하는 글쓰기의 철학과 그간의 경험, 많은 에세이들을 읽고 느꼈던 문장 다스리기를 담아두었다. 편지 같아도 그 사이사이 끼워진 팁과 영감을 돋우는 키워드를 찾는 방식들은 참고서의 형태로 베여있다. 일주일에 한 편씩 따라 읽으며 독자가 글을 쓰게 만드는 애틋함이 담긴 편지글이다. 그래서 달콤한 구슬림과 때때로 둠뿍 담아둔 귀여운 문장 독촉들은 내가 꼭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를 가진 사람처럼 만들어둔다. 이미 오랜시간동안 일상을 글로 옮기고, 사진으로 남기며 블로그에 기록해두는 습관을 갖고있다. 처음엔 내 기억력을 믿지 못했던 것이고, 또 한편으론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씩 다른 무언가를 찾고 흔적을 남겨놓기 위함이기도했다. 하루를 살아내고 그 틈에서 잔잔한 행복을 한 줌씩 만들어두다보면 줌치에 넣어도 헐겁던 일상이 따뜻한 무언가로 가득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나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정말 저자처럼 나는 어쩌면,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잘 쓰고픈 마음과 더 멋지게 표현해두고픈 마음을 얹어 제대로된 에세이로 써보고싶게 만들어낸다.


쓰기는 언어에서 가장 단단하고 구조적인 영역이라 했다.구성과 구조, 앞뒤 문장의 연결성, 이야기의 방향성, 맥락과 논리적 구조의 관계. 의심하지 않는 문장의 단단함. 대단한 교훈이 아니더라도 잘 맺어진 아귀가 들어맞는 밀도. 그걸 바라며 쓰게된다. 저자가 말해주는 쓰기의 뼈대는 이러한데 내가 잘 하고 있는게 맞는지, 이러한 단단한 심지에 적절한 살을 덧붙이는 과정이 허술하지 않는지. 그래서 쓰고, 보고, 고치기를 반복하게된다.

잘 하려고 몸에 힘을 주고 글을 쓰고 있는걸 어찌그리도 잘 아는지 빈 문서는 우리의 친구이지만 저자는 빈문서에서도 코박고 가라앉을 수 있음에 주의하라했다. 일상의 말투로 문장을 시작하고, 편하게 문장을 흘리라했다. 나는 매번 손에 힘을 주고 글을 썼고, 어깨를 한껏 웅크려 적는게 당연했던 사람인데 힘빼기의 기술부터 연마하며 새로 걸음마를 하듯, 새로 글을 배우듯, 그렇게 새로 시작하게 만들었다.

📖가장 구체적인 삶의 증거_ 나만 보는 일기도 좋지만, 누군가 훗날 읽게 되더라도 그날을 그려볼 수 있도록 써보세요. 같은 하루를 살았더라도 지금 그것에 주목한 사람은 나뿐일 테니까요.

어린시절의 일기만 봐도 그렇다. 쓰고 지우고, 또 때로는 뜯어내며 진심이 담긴 유일한 공간이지만 가족이든 친구든 허술한 자물쇠로 잠겨진 비밀 일기장을 들춰보는 아찔한 상상. 그만큼 내 이야기가 궁금했을 타인들의 관심. 어린녀석이 글빨이 좋아 훔쳐보는 맛이 있다는 듯 흥미진진해보이는 눈짓. 결국 내가 겪는 세계를 증언 할 수 있는 유일한 화자이며 역사를 기록할 독점 기회라는 것. 그래서 생생하게 남기고픈 욕망이 글을 적게 한다. 원동력이란게 이런건가 싶을 정도의 손가락 들썩거림에 신이 나게 만든다.



📖이토록 훌륭한 조력자_ 분명 중요한 얘기가 될 것 같았는데 막상 쓰고 보면 이게 뭔가 싶은 얘기고요. 별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꺼내본 이야기가 알고 보니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얘기입니다. 어쨋든 과거의 나는 정말 수고했어요.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이번에는 그 글을 넘겨받은 지금의 내가 일해야 할 차례입니다.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쓰는 것.

너무 잘 쓰려 하기보다 쓰는 이가 신나길 바란다는 저자. 이야기의 길을 꺾고 싶으면 꺾어보라는 방목형 글선생. 현생에서 해보지 못했던 것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과감히 시도하고, 솔직해져 보기도 하라며 글 속에서라도 자유를 찾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초고니까! 초고는 얼마든지 주워 담았다가 다시 쏟아 볼 수 있으니 하고싶은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라는 문장적 허용. 그러게, 초고인데, 일단 아무것도 없는 바탕에서 시작인데 뭐가 무섭고 쪼글리나 몰라. 이런들 저런들 우린 초고 위에 수많은 퇴고를 반복할 각오로 시작한건데 겁먹었던 내가 아까워지그래.



📖삶의 표식_ 남들 신경쓰지 말고, 훗날 나를 위해 남기는 시절의 표석을 세워보세요. 너무나 진짜인 내용을 쓰고, 문장을 다듬으며 멀어져봅시다. 문장들 위에 오래 머무를수록 어쩐지 더이상 내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거예요.

생각해보면 어린시절 글쓰기의 순간부터 남들을 의식해왔다. 지금 학생들은 어찌 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9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일기는 나의 일과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과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였다. 평범한 순간속에서도 재미난 무언가를 발견해야했고, 두루뭉술한 하루에서도 반짝이는 무언가를 굳이 드러내며 내 일기가 재밌음을 알려야만 했다. 그래야 선생님의 색깔 볼펜이 긴 코멘트를 남기게 만들었고, 잘했다는 도장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꾸며진 문장으로 내 삶을 허왕되게 부풀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은 지루한 날도 있고, 고요한 순간도 있으며, 번뜩이는 찰나도 있고, 다시금 잔잔한 시간의 흐름도 있을텐데 그시절의 나는 왜 그리도 시트콤 같은 세상이 되길 바란건지 생각해본다. 잘 보이고 싶고, 잘 쓴다 칭찬 받고 싶고, 그렇게 또래들 속에서도 표본이 되어 박수받는 글쟁이고픈 마음이 나를 부풀렸나보다. 이제는 글 속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되기보단 데칼코마니처럼 나를 닮은 또 다른 나로 꾹꾹 눌러보게된다. 타인들의 관심은 한때이며, 주구장창 읽고, 또 살펴볼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렇게 치장 없는 글을 써야겠다는 걸로 마음의 방향을 틀어둔다.

설령 이게 흥행도 덜하고, 시선을 덜 받는 심심하기 그지없는 글이라도, 일단 나는 그러고 싶어진다. 저자도 그러라했으니까 내 길이 맞겠지!


기록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헌데 이 방향이 맞는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궁금했다. 제대로 된 쓰기의 능력이.

그렇다고 내가 에세이를 낼 것도 아니고, 고작 일상을 기록하는 일상블로거인데 수업을 듣고, 피드백을 받는게 타산이 맞는가에 대한 물음이 컸다. 물론 배운다고 그게 공중분해 되는건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기록하는데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컸던게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러니까 저자의 연서와도 같은 문장은 무얼 해라 마라 하는게 아니라 이게 괜찮은데? 한번 해볼래? 라며 에둘러 이야길 한다.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길 하다가도 '오늘 해야하는 쓰기 비법은 이거야! 이거 딱 하나만 기억해!' 라는 듯 마지막해 해야할 것들을 툭 하고 흘리고 사라진다. 다그침은 없고, 일단 해보라며 했고, 할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은 듣지 않고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강요없는 조언에 순순히 따르게됨을 느낀다. 언제까지 해오라, 어디까지 해봐라 라는 식의 제한선을 두지 않지만 한번은 해보고싶게 만드는 묘한 능력. 그래서 삶을 단어와 문장에 녹혀보고, 그 일상속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을 기록하고, 순간과 순간을 덧붙여 시절의 나를 옮겨심어두게 만든다. 이리저리 써보고, 또 만지작거려보면 이게 맞다고. 이런게 진짜 글이라고 호들갑떨며 잘했다 해줄 저자의 들뜬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아 내가 뭐라도 된냥 으쓱해지게 한다.

그래서 쓰는 일에 더욱 적극적이고 싶어지고, 마음을 덧붙이는 단어를 더 신중히써보고싶은 마음을 쥐게된다. 쓰는 것이 두려운 사람, 쓰는 것이 일이 되지 않길 바라는 사람. 그리고, 쓰는 것을 내 삶과 나란히 두어 긴 호흡으로 이어가픈 사람, 강의실 일대일 수업을 주저하는 그냥 나같은 사람에게 부담없이 읽고 시작하자는 말로 툭 내밀고 싶게 만든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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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기분은 어때요? - 불안장애를 겪은 심리치료사의 상담 일지
조슈아 플레처 지음, 정지인 옮김 / 김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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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기록입니다.


장애라고 하면 뭔가 온전치 못한거 같아 입 밖으로 뱉는게 어려워지는 단어다. 거기다 불안장애? 과거에 비해 이러한 심리 상태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 있다 한들 심리치료사에게 자문을 구하고, 센터를 방문한다 하면 걱정 반 우려 반으로 측은한 시선을 받게된다. 그래서 숨긴다. 숨기는게 일종의 자기방어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나의 상태를 확실히 알고 치료를 받는건 옳은 것인데도 말이지. 누군가에게 말 하기 주저하게되고, 그렇다고 당당하게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도 망설여진다면 일단 이러한 업을 삼고 있는 자의 상담일지 책으로 나를 다싀려보고, 책 속의 상담 세션에 나를 숨겨 청강하듯 들어본 후 방향성을 잡아가는 것도 좋은 갈래라 본다.

한 때 불안장애를 겪고, 이제는 저명한 불안 전문 심리치료사가 된 조슈아 플레처의 심리 에세이. 겪어 봤으니 더 잘 아는 사람의 진짜 조언. 논문이니 전문 서적이니 하는 글로 배운 것이 아니라 겪어 봤다는 것 만으로도, 앓아 봤다는 것 만으로도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는 사람의 내담자 상담세션. 벽돌 책 같아도 그 속에 들어가면 진짜 짧게만 느껴지는 상담 시간들이다.

심리치료사 한 명과 이야기하는 것 같아도, 13가지 내면의 목소리들이 너무도 나 같아서, 나랑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의 다양한 마음들이 한데 뭉쳐있는거 같아 어려움 없이 읽어가게된다. 걱정 좀 덜고, 경계도 좀 덜고, 가면 좀 벗고, 편안하게 시작해본다. 그는 내 이야길 들어 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불안의 기원들_ 성취에 대한 걱정, 자신이 부족하다는 염려, 남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 자신이 사회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상태인지 확인하는 일 등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인간이 갖고있는 각각의 감정들. 그 중 불안은 그러한 요소 중 일부인데 우리는 이 분야에 취약했다. 불안이 커지면 다른 감각들도 예민해지게되고, 모든 과정의 결과에 불안 탓을 돌린다. 잘 된 것 보다 잘못된 것에 이 감정의 핑계를 대며 과한 질타를 얹는다. 공황이나 강박, 내면불안과 사회불안, 극단적인 예측의 시발점은 불안이었다. 인과관계 속 전후 상황에 호 보다 불호의 상황엔 늘 이 녀석이 들러붙어 썩은 미소를 짓는달까? 갈래도 다양하고, 주기도 짧아 반복성이 짙다. 그러니 불안은 불안을 낳았고, 불안은 더 큰 불안을 땡겨왔다. 이 위협의 메커니즘에 대한 대비와 자기방어가 자존감을 무너뜨리다보니 얘를 어찌 살피고 구슬려야 할 지를 계속 질문에 질문을 얻어가며 네 명의 심리치료과정에서 나와 닮은 구석, 또 내가 외면했다가 새삼 알게되는 면면을 얹어보며 이야기 너머의 나도 같이 상담을 요청하게된다.


📖리바이1_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자기 얼굴에서 흘러내리게 두었고, 나도 가만히 있었다. 그에겐 이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았고, 나는 그에게 그 공간을 내어주었다.

타인에게 눈물을 보이는 순간은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어렵다. 괜스레 내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 느낌이 가장 큰 문제라 여기게된다. 그의 다양한 감정 중 다정이나, 구원이는 눈 속에 있는건지 눈빛으로 이 마음을 드러내어준다. '맺힌게 많은가보다, 안쓰럽다, 뭐가 그리 괴로운지 알아내서 해결 해줄게.' 라는 상담자의 시선. 내담자의 어려운 걸음이 헛되지 않게 시작하는 상담자의 자세.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 들어줄 마음과 기다려줄 여력을 마련하는 것이 어찌보면 상담자가 하는 일이고, 벌이의 수단이겠다만 이 과정을 살뜰히 준비하여 마주하는 것에 쓸데없는 걱정을 덜어본다.


📖노아2_ 여기 와서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신발에 스프링이 달려 있으면, 흙탕물을 헤치고 갈 때 좀 더 쉽게 지나갈 수 있죠.

생각보다 불안이 뻗어낸 갈래는 다양하고 또 복잡하다. 얽히고 얽힌 관계들 속을 비집고 다양한 방법으로 거슬리고 거북하게 만든다. 특히나 사회적 불안은 상호작용을 이루고 살아야하는 관계 속에서 더욱 날이 선 채로 다가온다.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니고, 혼자 성과를 이뤄야하는 방식이 아닌 생(인생)이다보니 내가 나를 평가하는 시선보다 남들이 나를 대하는 눈빛에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연기하는 삶을 이어간다. 비판의 입장을 얻어서도 안되고, 거부반응을 일으킬 액션을 취해서도 안되며, 호감으로 대중의 인식을 사야만 옳은 삶이라 여기니 이 얼마나 피곤하고 긴장되는 과정인가를 생각해본다. 자신이 안전하고자 거부에 대한 공포를 지우기 위해 겹겹이 선한 사람으로 감아두는게 편한데 그게 자신을 얼마나 옥죄는지도 알아주었음 싶다.

혼자 였을 때 마음이 편한가? 또 그렇지도 않다. 무리속에 섞여있지 못하다는 불안감, 소속되어있을 때엔 이 무리에서 튀지 않고 자연스레 스며들어야 한다는 강박감. 압박과 강박. 그리고 이 온전치 못한 감정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게 맞는건지에 대한 의심. 이 물음에 대한 끝맺음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답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내담자. 알지만 쉽게 무시하지 못하는 이 얽힌 고리.

사춘기에 가장 많이 겪었던 마음의 소리였다. 나 또한 겪었고, 아마 모든 이들이 한 번 쯤은 겪어낸 마음의 소리였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옅어지느냐 더 진득해지느냐의 차이겠지. 사회적 불안과 사회적 갈등은 계속 쥐고 살아야하는 요소인데 얘를 어떻게 데리고 사느냐의 문제겠지.


불안, 공황 다음으로 가장 많이 갖고있는요소인 우울. 우울감의 또 다른 이름은 고립감이 아닐까. 갖혀있다가 와르르 쏟아질거 같은 감정. 무감정의 고요가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울컥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

상담을 하면서도 그가 가진 내면의 목소리는 다양한 말들로 자기만의 위로 방식을 찾는다. 공허한 말로 안심시키려 하지 말라고도 하며, 힘들어 하고 있는데 어찌 그러냐고 반박을 하는 구원이의 소리. 좀 더 크게 보며 이후에 일어 날 수도 있는 상황을 미리 인짛하고있는 탐정의 생각. 그리고 상담자 본인이 갖고있는 불안이의 마음 역시 무서워 한다는 점. 상담자도 불안이를 지니고 있으며, 걱정에 걱정을 얹어 마음을 쓰고 있음을 비춰낸다. 결국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불안을 지니고 있음을 한번 더 상기시킨다. 없지 않아, 그저 얘를 어떻게 다스릴지 아는 것 뿐임을 상담자는 한번 더 인지하고 내담자를 어떠한 방향으로 당겨올지, 당겨오지 못하더라도 어떻게 같이 걸음을 맞춰줄지를 고민해준다.


📖불안에게 보내는 편지_ 인생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서도 고마워. 네가 없다면 난 롤러코스터와 공포영화의 스릴을 결코 온전히 즐기지 못할 것야.

불안에게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의 과정을 거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눈물과 망설임이 있었을지를 생각해본다. 소리내어 말하는 걸 듣지 못할 감정이니 편지를 쓰면서 손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꾹꾹 눌러 감정을 표현한다. 이 진심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여기는 마음에서 어떻게든 불안에게 마음이 닿길 바라는 심정을 가늠해본다.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이 감정을 용서해주길 바란다니! 어떻게든 구슬리고 달래서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길 원하는 상담자.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조시는 상담자이며 장기적인 내담자의 역할을 겸하고 있음을 느낀다. 계속 자신을 들여다보며 안위를 살펴야만 자신에게 방문한 내담자를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알기때문. 감정의 트랙을 한바퀴 다 돌게 될 즈음 결승점, 곧 끝이라 여기는 것은 없다는걸 알기때문에 지칠 타이밍 마다 이렇게 부탁하고 노력해주길 간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중히 부탁한다며 전후 과정을 상세히 일러준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 점을 유념해달라며 구슬리기도 한다. 불안에게 '너'라고 지칭하며 너로서 해야 하는 일임을 알지만, 그래도 노력이라는 걸 해달라는 어조는 이겨먹을 생각이 없다는걸 어필한다. 그러니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며 더 좋아지길 바란다며 항시 고마운 것을 상기시킨다.

다들 한번씩 해봤을 어린시절 인형놀이가 떠올랐다. 각각의 개성이 도드라진 허상의 무엇에게 다같이 재밌게 놀자며 다가가던 상냥한 말들이 허공에 피어오른다. 조시는 그렇게 해할 의도가 없음을 강력히 어필하며 소외될법한 마음을 살폈다. 불안 전문 심리치료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다스리고 들여다보는 것에는 소흘하지 않기에 이 모든것들이 가능했음을 짐작한다.

심리치료사에겐 내담자의 이야기들로도 머릿속이 가득 찰 것이다. 이 어지러운 문장들 속에서 답을 찾고, 그 답을 찾는 것에 예시가 되어줄 자신의 이력까지도 돌봐야만 우리가 말하는 좋은 상담과 올바른 치료가 이뤄지겠지. 멈추지 않아야했고, 머물지 않아야 했음 알렸다.


상담, 심리치료, 치유, 마음돌봄을 이야기 할 때엔 마음이 무겁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보여야만 가능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현자에게 자문을 구하기 위함이지만 좁은 바늘 구멍에 대고 외치는 힘겨운 외침같기 때문이다.(와르르 쏟아낸들 상담하는 사람은 환자로 온 흔한 케이스 중 하니일테니 크게 와 닿지 않겠지 싶은 우려가득한 마음) 우리는 이들이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만 들어왔을 뿐 상담자이며 치료사라는 자의 의중은 매번 배제되었다. 다만 이 책은 이러한 치료사도 결국 사람라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면의 목소리가 다양한 사람인 것을 다시금 느낀다. 특히나 심리치료사이지만 13가지의 내면의 목소리가 짤막하게 뱉어내는 문장에는 익숙한 투덜거림도 있었고, 때론 과한 걱정, 또 한편으로는 의심 가득한 목소리의 물음도 있었다. 이걸 표정이나 목소리로 드러내어 내담자가 알아채도록 할 것이냐, 억겹의 필터링을 통해 최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 할 것이냐로 갈래가 나뉨을 느꼈다. 내담자들은 느낄 것이다. 속앓이 하는 것 보다 이렇게 목소리를 내어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 만으로도 치료가 되고, 내가 머무는 세계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의 갈래에서 어디를 더 유념히 들여다 봐야하는지 방향성만 툭툭 놓아 주는 것 만으로도 그들은 알아서 제 갈길을 찾아간다. 구조적인 흐름을 펼쳐보며 올바른 위치만 조정해주는 몫. 그 몫에 대한 이야기가 의중을 묻고 궁금해하는 조시의 상담 방식임을 느낀다.

그래서, 지금 내 기분은 어떻냐고? 말하면 들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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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 대체 가능
단요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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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을거라 기대하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독립적인 존재들. 자신은 절대 닮지 않았다며 외형적 동일함마저 부정하면서, 자식에게서 보여지는 면에서는 동일함을 바라는 모순적인 태도. 결코 민호와 같은 선상에 놓지 않으려하는 성정을 통해서 주인공의 대략적인 캐릭터를 가늠 할 수 있었다. 혈연지간이라는 가장 사적인 존재의 교류는 항상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 점에서 민형과 민호는 갈렸고, 그 뿌리를 쥐고 태어난 우연과 지연 마저도 아버지와 삼촌을 빼닮아있음을 느꼈다. 민형이 치를 떨던 혈연, 허나 부정 할 수 없는 성향. 결국 죽음을 바라는 존재는 동생이 아니라 그만큼 닮아있는 자신을 향해 있음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많이 들어봤던 저자의 필명. 2020년대에 알려진 작가 단요. 저자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으나 생각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야기꾼처첨 느껴졌다. 알려진 '다이브'의 청소년 소설 갈래는 물론이고, 스릴러 분야의 '피와 기름', SF소설로 문윤성 SF문학상까지 수상했던 '개의 설계사'만 봐도 우리에게 해줄 말이 많은 사람인듯하다.

모친의 장례식장에서 쌍둥이 딸 중 한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시점은 모든 죽음들과 엮여있는 아들이자 아빠인 민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모친의 장례를 정리한 후 이제 딸의 장례를 준비해야하는 상황. 그런데 생각보다 민형은 담담하다. 이미 예견했던 사망이 아님에도 상주로서의 자세가 내가 아는 보통이들과는 확연히 다름을 느끼게 만든다. 형제들에겐 퍼다주기 바빴던 부모이지만 자신은 어떠한 것도 지원받지 못한 채 저 혼자 장성했고, 노모의 병원비를 담당하며 이른바 아들노릇을 도맡아왔다. 자신의 총명한 머리를 닮았다면 쭉 잘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녀석들은 재수에 재수를 거듭했고, 한놈은 어렵사리 민형의 모교 치대에 입학, 또 한놈은 이번에도 고배를 마신다. 닮아도 너무 닮은 두 딸 중 한명의 사망. 그 당황스러운 순간 민형은 저 아이가 지연인지 우연인지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 쓸모있는 놈이 살아야하고 인정받아야함이 마땅하다 여기는 자에게 딸의 구분보다 의사의 딸에 걸맞는 실효성을 먼저 떠올려 죽은자와 산자의 역할을 바꾸려 산 자에게 도모하길 원한다. 이 정신없는 감정과 역할의 변화 속에서 민형은 어떻게 들키지 않고 오랫동안 원하는 바를 유지할지에만 집중한다. ... 역시 제 정신 아니다.



📖민형은 자신의 꼬락서니가 오래전의 그 노인들 같지 않은가 생각했다.

현실을 붙잡는 대신 무한히 이연시키는 방식으로 삶을 지탱하는 사람들, 수술을 감내할 바에는 죽고 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시절이 차라리 나았다.

초라하게 살지 않으려 아등바등했고, 인정받기위해 간절하게 애써왔다. 아플 때 수술받고, 적절한 처치를 받으며 덜 고된 삶을 기대하며 여기까지 온 민형이었다. 닮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길을 걷게된 민호와는 확연히 다르며 이 곳처럼 의료가 열악한 곳에서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하고 단순히 오늘의 고통을 버틸 진통제만 바라는 삶은 더더욱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속으로 하찮아하는 민형이었다. 자신의 모친만 봐도 그러하다. 밑빠진 독에 물 부어 민호를 갱생시키려 애썼으나 금전적인 지원은 의사라는 이유로 중간에 끼인 둘째인 자신이 감당하고 있었다. 사회성이 결여된것 처럼 여기더라도 능력이 있고, 재력이 있다면 어느정도 커버가 되는 세상이다. 직업이 의사이니 능력이 좋아 환자가 끊이지 않는다면 병원에서든 수술방에서든 존경을 받게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돈으로 대변된다. 그걸로 때때로 최저점의 인성만 무마시킨다면 사는데에 큰 지장이 없다는걸 온몸으로 느껴왔다. 시골 페이닥터이며 주말부부가 된다한들 아내와 자식들은 모든 인프라가 꾸려진 곳에서 생활패턴에서부터 상위버전이 기초적인 것으로 살 수 있다면 모든걸 감내할 수 있다 생각했다. 영끌이라 할 만큼 알아주는 동네에 집을사고 그 학군에서 기반을 닦는다면 쌍둥이 딸들은 어쩌면 자신보다 더 높은 클래스의 삶을 누릴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삶의 행복 척도가 돈과 명예인 사람의 아주 전형적인 자세였다.




📖당신은 그 기질이 심해. 좀 극심해. 특히 자기 성에 안 차면 사람으로도 안 보는 게 느껴져. 상대 사정을 봐주면서 좋게 좋게 넘어갈 줄 알아야 하는데, 기어코 어느 때건 손모가지를 잘라 버리려고 해. 그러니까 안 잘린 사람들도 옆에서 보면서 질려 하지. 그건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아. 내가 한 번만 삐끗하면 저 인간 태도가 어떻겠구나 하고......

못하면 욕을 먹어야지. 못할 수도 있는데 못하는 놈이 잘하는 사람들처럼 살려는건 잘못이고. 교만이든 탐욕이든, 일종의 죄야

죄가 있으면 용서도 있어야지. 세상 사람들이 꼭 당신처럼만 생각하는 건 아니라니까.

고생은 고생대로 한다 생각하며 자신을 측은하게 여기는 중인데, 이른바 남편 잘 만다 어려운거 없이 사는 아내가 고마워 할 줄 모르며 한탄한다 여긴다. 쌍둥이 독박육아가, 주말부부로서 도움을 못 받는 형편이, 모든게 능력과 세상이 만든 삶의 레벨에 민형보다 훨씬 뒤쳐져있지만 결혼 잘 해 잘 누리고 살면 이정도는 감내해야하는게 아니냐는 듯 채린을 보는 민형의 시선. 민형의 편에서 보면 채린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기도했다. 둘이 처음 만난 시점에는 민호가 있었고, 외도의 과정에도 민호가 있었으니 괜한 트집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으며, 이렇게 기질 비교와 사람의 성향에 대한 훈계는 곧 민호가 더 나은사람인냥 삐딱하게 받아들이기 딱 좋은 꼴로 민형을 쑤셔댔다.




📖용서가 믿음의 연장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겁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장래에 바뀌리라는 믿음을 전제하고 이루어지는 행위니까요. 비교할 만한 일로는...... 처벌은 과거에 대한 행위고, 잊는 건 아예 시간을 벗어나려는 시도지요.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미래를 현재로 끌어옴으로써 계속되기 마련이니까,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용서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민형이 벌려놓은 사건에 한 발짝 떨어져있는 존재. 하지만 각자의 성향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엮여있는 인물들 간의 서사를 대강 아는 조카 우혁의 말들에서도 민형은 마냥 좋은 사람이 아님을 자각하면서, 민호 또한 마냥 나쁜 사람이 아님을 전해듣는다. 민형은 그게 더 싫었다. 올바르지 못했던 삶인데 다들 부정하거나 과거를 꾸짖기보다 지금에라도 잘 살려 애쓰는걸 되려 응원하고있는 꼴이 보기 싫었다. 어머니든 형이든, 조카든 하나같이.

이렇게 같은 배에서 찰나의 시간차로 나온 사이인데 너무 다른 삶을 살고, 각각의 기질 추구하는 바가 다른 둘. 그냥 그게 싫은 거였다. 믿는 이유가 뭐지? 그만큼 믿음을 주지 못하는 행실로 살아왔는데도 꾸준히 지지받는 삶이 꼴사나웠고, 민형의 기준에서는 이미 나락에 다다른 놈은 채린이든 쌍둥이 딸이든, 형이든, 조카든 다 이렇게 챙겨주는지. 사람 됨됨이가 어떻든 평판이 어떻든 적어도 민형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정해놓은 기준에는 한참 모자른데 말이다. 이 또한 죽은 채린에게 물어본다면 위에 언급했던 문장과 똑같은 소릴 하지 않을까.




📖뭔가 계속 뺏기는 기분이 들어. 우린 그냥 탁구공인 거야. 탁구대 위에서 왔다 갔다. 그러다가 테이블 너머로 떨어져서 아예 사라지고. 사라지면 잠깐 공을 찾아보다가, 그냥 다른 공 구해서 새 게임 하고. 삼촌이 우릴 좋아하는 건, 공이 있으면 탁구를 칠 수 있기 때문이고, 우리는 특히 재미있는 게임이 되는 공이기 때문이야.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 난 그렇게 느껴.

쌍둥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빠. 집에 없는 아빠. 돈만 벌어오는 아빠. 엄마를 외롭게 했던 아빠. 엄마를 죽게 만든 아빠. 아빠의 자리를 채우지 못했던 아빠. 능력에 따라 대우했던 아빠. 대학간 사람만 챙기는 아빠. 위로와 응원보다는 도출된 결과를 더 중요시했던 아빠. 삼촌에게 자격지심이 있는 아빠. 의대다니는 딸을 선택했던 아빠. 죽은 딸에 대한 슬픔은 없던 아빠. 딸 장례보다 환자 수술이 더 중요했던 아빠. 완전범죄를 꿈꿨던 아빠.

엄마를 도왔던 삼촌. 엄마를 사랑했던 삼촌. 아빠와 정반대의 삼촌. 쌍둥이를 잘 챙겼던 삼촌. 아빠라 부르고싶었던 삼촌. 쌍둥이를 구별할 줄 알았던 삼촌. 하지만 내 아빠가 될 순 없는 삼촌. 다정하고 한없이 상냥하더라도 그 이상이 될 수 없는 삼촌.

쌍둥이들에게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래서 완전한 사랑도, 넘치는 애틋함도 바랄 수 없었다. 각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상황극을 하다보니 엇비슷 하더라도 아귀가 맞는 돌봄은 아니었다는 점. 그러니 쌍둥이는 보여지는 이들에게 애정을 갈구했으나 어디든 제대로 받아 볼 수 없었다. 쌍둥이들은 민형 민호 형제들에게 때때로 필요한 아이템이었고, 제 기능을 다 하면 버려진다고 느끼게된다. 꼭 필요하진 않다는 확신을 받았다. 영영 아빠가 원하는 딸이 될 수 없다는걸 느끼면서 안착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는 아이들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민형을 묘사하는 문장들에서 이혁진의 광인 속 준연을 닮아있었다. 완벽하고자 했으며, 타인에게 인정받는 젠틀함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모든 문장들이 자기방어의 수단처럼 비춰졌다. 아내가 자살하든, 딸을 바꿔치기하여 죽음을 알리든, 쌍둥이 동생을 살해하든 그 모든 악행은 자신이 살려고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뉘앙스를 흘린다.

소설은 당연히 비극으로 달음질친다. 딸도 바꿔치기 한 판에 뭐가 두려울까 싶은 이의 눈은 살기어린 상태로 변질되어간다. 정도를 알았다면 이렇게 선을 넘지 않았겠지. 아내와 어떠한 이유에서 사별한들 자식들을 지키려 했을테고, 오랜시간 함께해오지 않은 공백을 메우려고 애를 썼을거다. 입시가 내맘같지 않은걸 안타까워하며 재수 삼수의 길을 응원하지만 꼭 그게 답일까 하며 하향지원이라던가 다른 길을 찾아보자 구슬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아빠들은 그러했다. 하지만 민형은 손에 쥐는게 남들보다는 많아야하고, 타인의 시선과 속닥거리는 세치 혀에서 빈틈을 주지 않으려한 결말이니 책속이 아니라 책밖의 어딘가에서 엇비슷한 삶을 사는 이가 존재할거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잘나 보여야하고, 그만큼 진짜 잘난 맛으로 사는 사람. 자신이 부모를 통해 얻어내지 못한 처우에 관한건 응어리로 남아있다고 칠 수 있다. 그러하지 않은 유년시절이 어디있던가. 헌데, 지연과 우연을 바꾸는 시점부터 이 사람은 상종하기 어려운 캐릭터임을 느끼게했다. 정말 생물학적 아버지니까 죽고 살고를 지정 할 수 있는 결정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며 최근 드라마 '미지의 서울'의 미지와 미래를 나란히 두며 나와 닮은, 하지만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한 헌신의 정도를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고, 나와 같은 존재로서 일생을 비교당하고 곁눈질하는 삶. 합을 맞추어 나아가는 2인 3각의 게임처럼 평생을 어깨동무하며 구령을 맞출 수 없는게 사람의 인생이다. 나 만큼이나 나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의 애틋함을 강조하는게 드라마이고 책속의 쌍둥이들이었다. 그러한 미워죽겠지만 결국 내 반쪽이라 생각하는 이들의 관계성을 철저하게 무시한 둘의 다른 성장. 주변인의 태도와 받아들이는 이의 다른 해석이벌어진 틈으로 스며들어 이 지경까지 간거라 보지만 악은 악을 키웠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약을 구하는 수단으로 민형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설정을 해 둔 뉘앙스와 함께, 우혁과의 자리를 가지며 삼촌 둘의 평판을 조카의 입장에서 들어보려고 했다는 점(내가 해석한 민형의 캐릭터는 그 시간조차 아깝고, 우혁을 믿고 조언을 들을만큼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지)은 눈이 돌아간 상태의 민형이 받아들인 상황일까를 생각한다. 악에 받친 민형이라면 에둘러 약을 구하기보단 그냥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약을 얻는게 더 빨랐을텐데 말이지. 그리고 본인의 생각이 곧 법이라 여길만큼 생각하는 자가 이제와서 타인의 평판에 궁금증을 가진다는 것 마저도.

어그러진 인간, 쓸데없이 확고한 신념, 왜 이러한 비뚤어진 마음은 한쪽으로 치우쳐있어 하나를 잡아먹어야 성에 차는건지. 사람의 후천적인 악의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이 모든 이야기들이 소설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현실에선 옮겨놓지 않고싶은 인물로 기억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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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안녕
유월 지음 / 서사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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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이님과 황보름 작가의 추천이라면 왠지 복잡한 인물 서사 없을 것 같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사람냄새도 나고, 각각의 인물이 가진 아픔도 있음직해 보였다. 어떻게 잘 버텨 나갈 것인지, 극복이라는 단어보다는 스며드는 삶에서 답을 찾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빌런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책 제목처럼 '마침내, 안녕'이라 할 만큼 딱 견뎌 낼 만큼의 빌런짓을 할 인물들은 내가 사는 세상에도 있잖아? 그럼 이 이야기도 비슷한 결을 띄지 않을까? 라는 자문자답을 해가며 큰 고민 없이 책에 빠져들었다.



📖아이는 늘 어른들을 용서한다_ 자신의 삶을 무던히 받아들이는 아이가 너무도 어른 같았다. 그 용감함이 애잔해서 도연은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

모든 게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도, 사실은 이혼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기 두려워 방패로 삼은 말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아이는 늘 어른들을 용서한다. 나쁜 부모조차 세상에 기댈 곳은 그들밖에 없으니까.

요즘 티비프로그램을 보면 버릇없는 아이 고치고자하는 양육방식 제시 프로, 과한 학습패턴에 지쳐있거나 이게 맞는지 확인하는 영재육성 프로, 돈 많은 유명인 자식들이 사회생활이랖시고 혼자 세상 다니며(카메라 뒤의 무수한 어른들은 안보이는척) 견문 넓히는 어린이 기행 프로까지. 이런 패턴의 리얼리티를 가장한 픽션에 질려서 티비를 안 켠지 제법되었다. 그런데 이 단편은 이야기가 다르다. 면접교섭센터에서 만난 아이는 체구는 작더라도, 이 녀석 뒤를 지탱하는 그림자는 아주 커 보였다. 제 몸보다 곱절의 능력을 발휘하여 어른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면들을 스스로 해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어른의 몫 마저도 다 감당할 아이의 눈빛은 딱히 누굴 원망할 새도 없이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이 목표인 삶으로 보였다.

아이가 원하는 해피엔딩은 무엇이었을까? 다 이해한다는 듯 어떠한 의견도 피력하지 않고 자신에게 얽혀있는 어른들을 지켜 볼 뿐이고, 그들의 바람대로 이뤄지도록 내버려두려하는 이준을 통해 이녀석 진짜 아프긴 한걸까? 외로움과 서글픔, 그 모든 아픔이 너무 커서 고통의 존재유무도 모르고 웃자라버린거 같아 완독 후에도 이 친구의 근심없는 성장기를 바라게되었다.


📖아이는 늘 어른들을 용서한다_ 민 교수의 말이 도연의 마음에 찬찬히 담겼다.

"그런데 백 선생, 잘 안 해도 돼요."

이준을 바라보는 도연의 시선, 도연을 향해있는 민교수의 시선. 아마 비슷한 결의 눈빛이 아닐까. 케묻지 않아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어림짐작이겠지만 상대의 표정과 눈빛의 온도를 읽어가며 마음을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의 따뜻한 한마디. 언제든 당신을 향해 내 마음을 열려있다는 말에 마음을 놓아본다. 당장 실행에 옮기진 않겠지만 나를 위한 대나무밭 같은 사람이 있음에 존재 자체로도 위안을 얻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안녕을 바라며 언제든 내가 손 닿을 곳에 내 편이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교차되고 있었다.




📖건강한 감자_ 그건 언니가 도연에게 남긴 유일한 말이었다.

열심히 말고, 그냥 살아.

도연의 언니. 매번 애틋하고 매번 미안한 존재. 태움은 언니를 태워 존재를 소실시켰다. 언니는 열심히 말고, 그냥 살아보라 말했다. 어떻게든 애쓰고 열심히 살아본들 달라지지 않는 상황이었으니 언니는 도연만이라도 덜 애쓰고 살길 바란 진심가득한 걱정의 한마디였다.

그리고, 사건을 통해 만난 시재에게도 똑같은 말로 위로를 전한 것 이었다. 이 말을 하고 언니는 사라졌지만, 시재는 이 말을 듣고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진심의 간절함과도 같아보였다.




📖도연의 첫 번째 직업_ "초심자에게 제일 필요한 건 그 미안한 마음이에요. 그 마음이 결국 공부하게 만들거든. 어떤 내담자에게는 상담사의 열심히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기도 해요. 빠른 치유가 정답은 아니니까. 당장 시작합시다. 내가 도와줄게요."

어렵다. 도와주겠다는 마음, 도와주고픈 의지, 빨리 작업과정이 이루어져 손에 쥐어지는 결과가 나오는게 맞는걸까 느리더라도 지긋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천천히 내딛을 수 있도록 발을 맞춰주는게 확실한 과정일까.

우리는 보다 빠른 치유와 확실한 변화를 바라며 전문 기관을 찾게된다. 돈이든 시간이든 내담자에게는 소비되는 몫이 클 테니 무엇이 되었든 리스크를 줄이고자하는 지원의 조언은 선임으로서의 당연한 작업 지시였으리라 봐 진다.

📖도연의 첫 번째 직업_ 막막했던 말들이 견고하게 막아둔 둑을 무너뜨리듯 터져 나왔다.

"그래도 말로 뱉고 나니 좀 낫죠?"

지원의 나지막한 말에 도연은 무엇이 나은지 알지 못한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연에게 언니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치부는 아니지만 입 밖으로 뱉는 순간 상대는 일면식도 없는 언니를 어떻게 평가 할 지 모르는 것도 있었고, 무작정 위로로 덮어 없애려 할 듯한 타인의 말이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잘못 한 것이 없는 언니였고, 또한 잘못 한 것이 없는 도연이지만 이 말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괜찮다고만 말할 그 무수한 입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과거형을 시작해 조금씩 틔워가는 그날의 이야기. 누구에게 툭 하고 털어 본 적이 없었으니 이게 나아지는건지 알 수 없는 마음상태.

단지 상대가 담담하게 들어주고, 이야기를 마칠 때 까지 기다려주는 과정. 과한 액션 없이 담백한 청중이 되어주는 것. 지금껏 그러한 사람이 없어 입을 다물고있었던 도연이었나보다. 애써 뱉어보는 위로와 황급히 표정을 고쳐먹고 슬프고 애석해하는 피드백이 없는 것이 더 감사하기도 하거든.



📖탈주하는 기차_ "지금 모습 그 자체로도 괜찮아요. 굳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

...

"오늘이 아니면 얘기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바짝 말라가는 풀 같으니까 햇볕 그만 쬐고 물 좀 많이 마셔요. 볕에 타 죽을까 봐 걱정돼."

...

...

누군가의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일로 만난 사람에게 마음 따위 주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어떤 것도 맡기지 않겠다고, 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참지 않겠다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겠다고.

꼭 언니로 인해 이러한 마음을 고쳐먹은 게 아니었다. 나를 우선으로 두려고 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을 주면 그만큼의 기대를 하게되고, 내가 원하는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상대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서운함이 자라났다. 그러니 나부터 지키나는 마음. 그게 필요했다.



📖너무 가까워 보이지 않는 것들_ "그걸 모르겠다. 괜찮아지고 있는지 아닌지 헷갈리는데 괜찮아져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도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족 얘기 하는게 공포였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거 보면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

책 제목 '마침내, 안녕'은 어느 독자가 말해 준 것 처럼 고대하던 안녕처럼 보였다. 이제는 웃으며 손 인사 할 수 있을 정도의 겨를을 지닌 것. 완전히 없던 일이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덜하고, 숨쉬는 타이밍을 찾아낸 삶이라는 말 같아서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살아집니다, 살아도 됩니다.'를 말해주는 삶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슬픔 없는 사람 없고, 고난 없는 사람 없으며, 아픔 없는 사람 또한 없는거 안다. 각자가 가진 삶의 생채기가 가장 쓰리고 아프다. 어쩔 수 없다. 내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삶인데, 살다보면 그 고통은 무던히 견뎌야하는 당연한 과정이고, 타인을 살피는 데에 치중하는 생을 살게되는게 어른의 삶이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 비중을 좀 줄여도 괜찮다는 점을 다양한 관계속에서의 이유를 내어주었다. 다양한 인간군상은 '도연'에게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맞춰주며 살아 갈 수 없음과 함께 도연이 가진 히스토리에 대한 특별함보단 그럴수도 있는 삶이라는걸 보여주고자했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우울과 불안, 분노와 자책을 가진 이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상황. 어떠한 이유가 된들 상처는 존재했고, 그 속에서 어떻게 극복하느냐 보단 어떻게 흘려보내도 되느냐로 시선을 옮겨보고싶어진다. 극복이라는 것 대신에 회복과 흘려보내는 과정. 흘러가는대로 나둬보면서 그렇게 그때의 나와 멀어진다면 '마침내, 안녕'할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삶. 그리고 그 비워진 자리에 채워갈 또 다른 나의 삶을 반기며 '마침내,안녕'하며 맞아주는 과정이 있어 도연에 대한 걱정어린 마음을 덜어보게된다.



영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 있어 온전히 모든 감정과 서사를 전달 할 수 있을지, 어느 에피소드에 중점을 둘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문장들이 가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 적절한 무게를 잘 전달해주길 바란다. 자칫 그 순간에 머무는 고립된 마음으로 보여지지 않도록 대사를 하는 배우의 톤 완급조절도 중요할테니, 글 맛 잘 살려줄 배우가 나타나 도연을 책 밖으로 꺼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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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언규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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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출판사의 책 소개는 저자 주언규가 내어놓은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조언집이라 말하고있다. 제일 가까운 형님이 차 떼고 포 떼고 바로 밀어넣는 현실 후기라 말한다면 소개가 더 정확할까? 무작정 열심히 살라고 하지도 않았고, 무작정 큰 꿈을 가지라는 말도 안했다. 마지막에 기록해 둔 '실패를 이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다섯 가지'의 항목을 보면 실패가 두려우면 그 리스크를 앉아서라도 도전하지 말고 비용을 최소화 해서 작게 시작하라 말하기도 했고, 성공이 없을까봐 주저한다면 검증된 성과를 벤치마킹을 하면서 제 깜냥에 맞는 출발선에 서서 달리라고 해준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이게 직설적일 수도 있겠다만 몇번의 고비에서 절어본 사람이라면 이게 훨씬 먹히는 말 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무른 위로보단 막막한 현실 속에서 다시 일어설 방법을 툭툭 내비쳐주는 게 받아먹기 더 쉬울 사람들일테니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잰걸음 이골이 난 상태라면 이 즈음에서 주언규의 조언을 들어봐도 좋겠다.



📖후회를 실패로 두지 마세요_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더 나은 반응을 보일지 고민한다. 이런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결국 더 좋은 선택을 하게 되면서 성공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래서 실패 후 그자리에 주저 앉느냐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 후다닥 자리를 털고 일어나느냐로 갈리겠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첫 직장 선임이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실패는 할 수 있다. 실수도 당연하고.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니 오히려 그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번째는 실수였고, 두번째는 습관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알려주더라. 실수가 습관이 되어서는 안되고, 착오를 예사로 보아서도 안된다는 것. 실수에 예민해야하고, 습관에 젖어들어서도 안되는다는 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갔던 길도 제대로 한번 더 살펴보는 행동. 그게 후회를 줄이는 확실한 습관이라는 점이 저자가 하는 말과 비슷한 결 처럼 느껴졌다.



📖무너진 자신감을 회복하는 방법_ 신뢰가 생길 때 우리는 '쌓인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신뢰가 없어졌을 때 '무너진다'고 말한다. 자신감은 태도가 아니라 구조이다. 작게, 자주, 실현 가능한 약속부터 시작해라.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는 '작은 승리'들이 결국 미래의 나에게 강력한 신뢰와 자산이 된다.

모래성게임이었다. 신뢰는 손으로 토닥이면 더욱 견고해졌고, 야금야금 긁혀 나가다보면 모래 무덤이 버틴다 한들 눈 깜짝 할 사이에 스러지는 꼴을 보게된다. 그게 자신감이기도했고 타인에게 얻어지는 신뢰도이기도 하다. 별거 아닌거 같아도 나중엔 그 모든게 별거가 되는 우스운 꼴이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며 모든게 허물어지더라도 자신감과 신뢰는 나의 지지대 처럼 양쪽을 버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도록 끝까지 유지해야함을 언급했다.


돈과 커리어, 인생의 모든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먼저 겪어내온 저자의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조언집.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80만 인생 멘토인 저자.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나 개미처럼 일해서 모으는 게 다인 나같은 사람에겐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이른바 장사를 하거나 자기 사업을 할 생각조차 없던 사람이고, 장난스레 말하듯 대감님집 노비로 사는게 천생 직업이라 생각하고있는 직장인으로서 몇 번의 좌절을 거쳤고, 자산을 불리는 실전 경험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처음 사업을 시작 했을 때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반복되는 실패에서 느꼈던 혼란, 시작점이 달랐던 사람들을 보며 갖게된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도 가감없이 들려준다. 처음부터 탄탄대로가 아니었고, 지금까지 곧게 성공의 퀘스트만 뚫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 중요하게 여겼던 것과 불안과 두려움 틈에서 버텨낸 시간을 말하는데, 말하는 방식은 학교 선배나 회사 선임이었던 사람이 사석에서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테이블에서 짝다리로 팔을 괴며 툭툭 던지는 말로 느껴진다. 거창하지 않다는 뜻이고, 무게잡지 않는다는 말이기도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뜨듯한 위로의 온도나 보드라운 응원의 토닥임이 없다. 뜬구름없이 다 잘될 거라는 무책임한 응원이 없어 되려 마음에 든다. 마냥 쓰지도, 마냥 달지도 않아 적당히 귀로 듣고 목구멍으로 쓴 소주 삼키며 내 것으로 야금야금 부어넣는 이야기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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