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 이곳은 도쿄의 유일한 한국어 책방
김승복 지음 / 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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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즈음 해보는 생각. 그리고 나도 해보는 망상같은 것. 직접 운영하는 책방을 여는 것이다. 어릴적부터 해오던 노년의 그림인데, 이렇게 뭉게뭉게 이쁜 상상을 하다가도 현실적인 놈이라 고정수입과 운영에 관해 깊게 파고들다보면 꿈은 꿈으로 남기는게 가장 좋다는 생각으로 선을 긋게된다.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며 가지고 있는 책들 중고서점에 팔지 말고 다 놔둬보라는 남편. 북카페든 동네서점이든 숙박업 로비에 서재를 마련하든 알 수 없는 것이라며 단정짓지 마라 하는데, T의 성향을 가진 인간은 꿈보단 현실이 우위에 있어서 허상만 그리다 남들 운영하는 책방 방문하는걸로 갈증을 해소하게된다.

나같은 사람도 잠시잠깐 꿈꾸는게 책방운영인데, 관련 업을 한 사람에겐 얼마나 더 낭만처럼 여겨지고 반짝거릴 미래처럼 보일까.

책 제목은 정말정말 낭만치사량에 버금가는 문장으로 사람을 왈랑거리게 만든다.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것'이니 이 좋아하는 마음을 누르지 말고 훨훨 날려보자는 심산. 그러게요. 그렇게 좋은데 왜 억누르고 사나 싶으면서도 전후사정도 고려해가며 어떻게 살고 어떻게 꾸려야 할지를 알려주는 이른바 책방 가이드북 같으면서도 드라마같이 척척 이뤄지는 책방 운영일지를 들여다보게된다.

한국에서도 살아남기 어려운 책방인데 그 장소를 일본으로 옮겨두었다. 세계적인 책방거리인 도쿄 진보초에 일본 내 유일한 한국 책방. 작가보다 대표로서의 역할을 하게되는 저자의 책방 오픈과 이후의 이야기. 저자는 일본에서 쿠온이라는 출판에이전시와 출판사를 개업하여 활동을 해온 이른바 '21세기 조선통신사'이기도했다. 한국문학을 알리고, 이 좋은 글들을 나만 알기 아쉬우니 여기저지 입김 불어넣으며 소개하는 이야기 중계자.

좋아하는게 업이 되면 이렇게까지 좋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좋으면 좋을수록 영역을 넓혀가며 몸집을 불려간다. 매해 'K-BOOK 페스티벌'도 개최하는 성과를 거둔다. 10년이 되어버린 책거리의 이야기. 18년전부터 책을 인생이자 업으로 삼아 이어온 기록을 보며 찐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만들었다.

내가 책 사랑하는 건 발톱의 때만도 못한 거였음을 실감하고, 완벽 무결하고 이토록 애틋한 사랑이 있을까 싶어지는 저자의 노력들에 감복하며 읽게 만든다.

📖책을 읽는 사람은 아름답다, 책을 사는 사람은 더 아름답다_ 책방에 와서 책을 사는 것만큼 당연한 일은 없겠지만 나는 그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멋있어 보인다.

요즘 책방에는 책 사는 사람보다 SNS에 게시하기 위한 사진 찍는 사람이 더 많다고 들었다. 읽는 수단이 아니라, 보여지기 위한 수단의 물품이 되어버린 시대. 책 세상이 얼마나 재미난지보다 즉각적인 시각화된 것에 익숙해진 삶. 그럼에도 이 업을 계속 이어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구미씨 처럼 책 사는 재미를 아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겠지.

지역마다 자리잡은 동네 서점의 책 한권을 사기도하고, 여행가거나 시간 날 때 찾은 대형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문구의 책 제목이나 눈에 띄던 책 표지를 발견하는 순간. 이러한 소소한 기쁨을 반기는 이가 있기에 진보초를 지키고, 타국에서의 책장사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라는 걸 느낀다.


📖초록은 동색_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널리 알리기 위한 편집자의 노력. 물론 회사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복잡하고 성가신 일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성큼성큼 해내는 그를 보면 나 역시 그의 행보를 응원하게 된다. 가치 있는 일을 재미있게,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는 동지들이 많이 생기는 법이다.

출판 뿐만 아니라 어떠한 무의 것을 유의 것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어 놓기 까지. 그 수고로움과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의 손길. 그래서 이러한 제작과 출간은 내 새끼 한명을 낳아 키우는 것 만큼의 아주 큰 공을 들이게된다. 이 녀석이 세상에 나와 누군가에게 읽혀지기까지. 그리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손길에 유랑하듯 이동하며 영역을 확장시키기까지. 이 말도 안 되는 힘을 알기에 김승복 대표는 '토네이도'가 되어 사람들을 휩쓸리게 한다는 말이 나왔겠지. 김승복 매직이라 할 만큼의 나비효과. 역시 사람의 역량 하나로 연결되고 확장된다는 것에 확인하게 되었다.


올해가 딱 10주년. 2025년이 책거리의 10살 이 되는 시점이더라.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인생의 제법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 그 시간을 책방에 쏟아도 손해 볼 것 없는 삶이라 여긴 저자의 활동에 감탄하게 될 뿐이다.

어린시절 내가 책방 주인이 되는 꿈을 꾸게 한 동네 서점이 있다. 책 좋아하는 아이인데, 맘껏 책을 사 읽을 여력은 안되고, 달에 한번 아버지 월급받은 다음날이나 학교에서 상장 받은 날 보상이라도 되듯 한 권씩 쥐어지던 그날의 벅참. 그리고 고심하며 고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파고 있어도 싫은 내색 없이 책방의 한 켠을 내어주셨던 사장님. 이젠 내가 그때 사장님의 나이가 되고나니 그러한 어른들이 나를 이렇게 키웠다고 생각하게된다. 그래서 책이 주는 무한한 힘을 여전히 믿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책방이 가진 깊이 또한 알다보니 부디 낭만은 물론이고, 오래오래 유지 될 수 있는 지속성의 매출을 기반한 다양한 활동에 응원을 하게된다. 나는 못 하겠지만 당신들은 할 수 있다는 응원을 심어보며, 각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단단하게 키워질 책방의 위력을 지켜보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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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자는 고백 - 십만 권의 책과 한 통의 마음
김소영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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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 부터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할 때가 있다. 막상 서점이나 도서관에 왔는데 남들 다 읽는다는 베스트셀러부터 훑어야 하는지, 그나마 머릿속에 외우고 있던 저자의 신간부터 읽어야할지, SNS상의 인플루언서나 좋아하던 배우가 읽고있다고 게시했던 책 부터 미리 선점해야할지. 유명한 상을 수상한 저자의 대표작은 남들 다 읽는 것 같아 집어 들었다가도 내가 원하는 문장의 결이 아니다보니 나는 대중성과 떨어지는 글만 찾아 읽는 듯 해 보편적인 독서 성향은 아닌것 같다는 의문까지 들기도 한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읽는다는데, 나도 그 속도에 맞춰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록 책과 더 멀어지는 경험을 한 적들. 독서 수렁에 빠진 것 같아 망설이게되는 책 선택의 과정.

이토록 줏대없는 책 선택의 과정. 그렇다보니 누군가의 추천을 받는 걸 좋아한다. 자신의 이름을 내 걸 만큼 그 책을 언급했다면 허투루 고르지 않았을 것 같고, 완독하고, 곱씹어보고를 반복했을 듯한 추천사를 좋아한다. 적어도 그러한 사람들이 말해준 책이라면 실패 할 것 같진 않았거든. 그래서 책발소북클럽의 추천 도서들을 좋아한다. 직접 이 북클럽 큐레이션을 구독하진 않았으나 뒤늦게라도 찾아보며 내 편협한 독서 습관을 넓혀보려 애쓰는데 도움을 받았다.

처음엔 김소영저자로부터 시작되었고, 이후로는 한국문단의 작가와 명사들로 영역이 확장되어 다양한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알려주는 넓은 이야기의 세상이라 한 분야만 파고드는 것이 정석이 아님을 깨닫게되었고, 새로운 이야기와 세상이 있음에 뒤늦게 알아가는 재미를 누리게 해 주었다.


책 읽는 사람이 없다며 출판계와 문학계에 대한 우려섞인 말들을 하는 언론들. 그럼에도 나와 같은 사람. 읽는 재미가 세상 행복한 취미이자 일상인 사람들에겐 내가 못 보고 지나친 틈새의 보석같은 책 추천들이라 '같이 읽자는 고백'의 말들을 계속 받아보고 싶어진다.

나를 자랑하기 위해서의 마음이 아니라, 내가 받은 이 감정을 같이 공유하고싶고, 그러한 일에 대한 지속성을 기대하는 행보라서 김소영 대표의 이 마음에 애독가의 힘을 싣어본다.

명사 37인 중 내가 모르는 모르는 사람을 찾는게 더 쉬울 듯한 선택이다. 내 책장의 큰 지분을 차지하고있는 이석원, 정세랑, 김초엽, 장류진, 이슬아, 최은영, 정보라.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중인 박상영, 김혼비, 송길영, 강민혁, 요조, 장기하, 오상진 등. 한 쪽으로 치우쳐진 것이 아닌 다방면의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모여져 더 좋았다. 그리고 최신작에 쏠려있는 추천도 아니었다는 점. 2022년에 추천하는 책이 2002년의 출간 작이었다는 것도 눈에 띄었다. 잊고 지나갔을 법한 이야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에 남을 문장으로 가득하다는 뜻이니 이러한건 무조건 읽어줘야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나만 모르고 지나칠 뻔 했으니 더욱 곱씹고 잘근잘근 내 것으로 다져서 머릿속에 콕콕 박아두고싶어졌다.

책갈피 박스세트에서 보이는 문장과 컬러. 매번 책갈피 하나 없이 책 읽고, 눈에 보이는 포스트잇이나 메모지 북북 찢어 끼워두곤하던 내 성향을 고치게 만들고 책 사이에 끼워두는 책갈피 마저도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일러주는 느낌을 받는다.

그때 그때 애정가는 책갈피를 하나 챙겨 고이 꼽아두기도하고, 오늘 하루를 다 잡는 듯한 마음가짐을 얹어 이 책갈피를 책상위에 올려두기도한다.

그렇게 애틋한 문장들에 숨을 불어넣어 시선이 가는 곳곳에 놓아두고싶어진다.


📖가라앉기보다 움직이길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_ 책을 다시 펼쳐보며, 그 아룸다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볼 시간을 기다리겠습니다. 여러 우려들이 여전하지만, 봄의 기쁨도 놓치지 않는 나날 보내시길요!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책들은 매번 반성을 하며 읽게된다. 내가 모르던 세상의 노동환경, 내가 시선을 주지 않았던 곳에서 일어나는 부단한 움직임들. 쉼 없는 노동으로 하루하루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노동의 굴레. 인생의 바닥이라 할 지언정 그 틈에서도 삶의 여유를 찾아내고 이어가는 모습은 아름답고 멋지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이 겪는 생의 일부라 보여지겠지만 결국 이 사회가 꾸려가는 노후화된 미래의 예보같은 것. 그래서 이 개인의 현재와 훗날 이어질 모든 이들의 미래는 이어져있음을 간과해선 안되도록 일러준다.

취약한 계층, 가장 집요하게 착취하는 사회, 밝지 않은 미래.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들. 그들이 원하는 집과 꿈에 대한 생각과 함께 우리가 바라는 집과 이상은 무엇인지를 계속 번갈아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동명의 영화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관점을 달리해 보는 세상. 또 그러한 세상을 어떠한 시선으로 마주할 지에 대한 과정을 배운다. 나는 매번 글로 배우고 깨우치는 삶을 살고있다.


📖인생의 남은 페이지를 새로 써나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_ 곧 이 책을 읽고 난 뒤 독자분들의 마음과 기억에 남을 장면들이 무엇일지, 저는 굉장히 궁금합니다. 어떤 장면을 가장 좋아해주실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한가지 장면에만 몰표가 나오진 않을 것이라는 거예요.

영미 문학 말고도 다른 세계의 문학을 읽는 것에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주인공의 이름이 머릿속에 한번에 착안되지 않는 것도 있고, 정서가 안 맞다고 해야할까? 문장을 풀어내는 스타일이 기존에 읽던 문학과 달라서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 모든게 편견이고 옹졸한 읽기의 성향이었다.

생각보다 후루룩 읽히는건 물론이고, 알려주었듯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한다. 그리고 세상이 반응하고 그녀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또한 대중의 시선과 미디어가 포커스를 맞춰가는 관점의 진행에 따라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 상황이 올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 사건이 나에게 시작되어 퍼지고 부풀려진다면에 대한 가설을 계속 세우게 만들었다.

생은 인간 스스로 자꾸 거듭 태어나게 만든다 했던 문장. 모르고 지나칠뻔 했는데, 덕분에 또 깨우치고 감탄하게 만들었다.


📖홀로 버티는 사람들의 삶과 한숨이 들려올 때_ 스스로 안다고 자만했지만, 실제론 제가 몰랐던 삶의 다양한 면면들을 이 책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개중에 내가 먼저 읽었던 책도 있어 반가웠지만, 이 파트 만큼 반가웠을까. 남형도 기자의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여기서 만만나게되니 반가웠다. 나 또한 어떤 이의 추천으로 읽었던 책이다. 옥상달빛이 밤시간 라디오를 할 때에 남형도 기자가 게스트로 와서 책 소개와 함께 책에 얽힌 이야기를 했던 날이 있다. 그날 라디오를 다 듣고 바로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단박에 글을 삼키듯 읽었던 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기자 한명이 체험한다고 뭐가 바뀌겠냐는 마음보다는, 동참하려는 마음이 새로웠고, 직접 겪어보지 못한다면 오롯이 알기 어려운 것들까지도 꼼꼼히 적어둔 표현력 덕분에 생생하게 그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역시나 눈으로 머리로만 아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우치면서 상세하고 사실적으로 구현해준 이의 문장 덕분에 나는 직접 부딪혀보지 않고도 그 고통과 설움을 가늠할 수 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면 그저 재밌고, 리얼리티 가득한 에세이라 말하겠지만 덕분에 이렇게도 설명 할 수가 있겠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한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알려주고싶다는 마음을 먹게했다. 그리고 내가 완독 후 가졌던 마음의 결과 나만 느끼는 단순한 감상평이 아닌 듯 해서 공감해주는 이가 있는 기쁨도 누릴 수 있던 편지이기도 했다.


목차를 보면 추천하는 이유를 시작하는 문장으로 두고, 추천자명을 기록해 두기만 했지 어떠한 책인지는 언급해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나처럼 독서 편식이 심한 사람에겐 책 제목이나 저자명을 두고 제멋대로 유추해보고 읽을지 말지부터 정하게되는데 모든 추천의 편지들은 책 이야기를 함에 있어 서두에 두지 않았던게 나에겐 득이 되는 상황이었다. 궁금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뭐길래 라는 마음으로 눈으로 편지의 문장을 따라 갔던 것 같다. 같이 읽고자하는 이유가 확실했다. 나만 알고 있기 아쉬워서, 내 글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분명 내가 추천하는 이 글 또한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감, 최근에 다시 읽어보니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얻었고, 당신이라면 내가 가진 감정에 또 하나의 감각을 얹어 느끼는 바가 풍성 할 것이라는 기대섞인 반짝이는 문장들. 편식이 심하더라도 한번쯤은? 호기심에? 그렇게 재밌다니까 시작해볼까? 라는 마음을 먹기에 충분한 달디단 회유의 이야기속에서 나는 그렇게 이것저것 탐닉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한 분야만 파는 것도, 신간만 읽어가는 습관도, 베스트셀러부터 깨부수자는 마음도 모두다 옳다. 독서의 방식엔 꼭 이래야만 한다는 틀은 없으니까. 다만, 때때로, 이따끔씩 이러한 과정이 지루하고 힘에 부칠 즈음 몰래 쓰윽 건네는 편지와 함께 이것도 읽어봐, 네가 좋아할 것 같아 골랐어. 라는 듯한 애정 가득한 문장이라면 한 번 즈음 옆길로 새어가며 다른 경로의 책 읽기도 재미난 독서인의 생활이 아닐지. 일단 나는 좋았으니까, 나같은 마음으로 책을 마주하는 이라면 독서의 막다른길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일단 이 책 아무 페이지나 펴보고 다시 시작해보자 북돋워주고싶어진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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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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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많이 읽어왔더라. 올해 30주년이니까 하나씩만 읽어도 책장을 빼곡히 채우는 기간이다. 하니포터로 1년간 활동하며 알아간 저자도 있겠지만 이전부터 내가 궁금해서 찾아보고 구입했던 책이 훨씬 더 많았다. 소재의 신선함, 술술 읽혀지는 이야기에 내 목소리를 덧붙여가던 서평도 제법되더라. 일단 읽다 중도 포기했던 글들이 없었던걸로 보아 확실히 재미나다. 소설 좋아하는 사람에겐 한겨레문학상이 고민없이 볼만한 것들이거든. 나도 이렇게 잘 챙겨보는데 다른 독자들은 오죽할까. 국내에서 가장 공신력있는 장편소설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고, 30주년이라는 기념할만한 해가 되기도했으니 이 기회를 삼아 역대 수상 작가들이 본인 당선작을 모티프로 앤솔로지를 출간했겠지. 당선작의 프롤로그라 할 수도 있고, 특정 등장인물의 서사를 다 풀어놓지 못해 아쉬웠다면 이 기회를 통해 시선을 틀어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가 주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찾아 읽으려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잘 살고 있긴 한건지. 혹시 내가 오해하고있는건 아닌지. 그냥 흘려보내도 될텐데 이야기 속의 인물이 자책하고있는 건 아닌지. 전작에서 잘 살고 있다면 모를까 다들 하나같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라도 듣고픈 마음이 컸다.

그 많은 도서전 인파를 뚫고 책 한권을 손에 쥐고 와서 빗속을 헤쳐 카페에서 읽어가던 이야기들. 당신들이 참 많이 궁금했어!

목차에 따라 읽어도 될테고, 이미 눈에 익은 저자명을 따라서 골라 읽어가는 것도 괜찮았다. 잘 지내고 있는건지 혹시나 먼저 떠난 인물에 대한 그리움으로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지 않은건지 싶은 인물이 떠올라 그것부터 읽었고, 그렇게 이야기들 사이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읽었다.



📖옥이_ 네 어드레 이 험한 델 와 있네? 내래 옥이 살기 좋은 세상 만들자고 투쟁하였더니만.

가장 궁금했던 인물이었고, 가장 반기며 먼저 찾아본 파트였다. 작년 이맘때 읽었던 체공녀 강주룡의 등장인물. 주룡의 희생이 있었으니 남겨진 사람들은 그저 애썼던 주룡을 생각해서 잘 살아주면 되는데, 어찌 그게 말처럼 잘 될까. 생각보다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세상이었고, 그러니 차라리 세상을 바꾸려하지 말고, 나랑 같이 세상 꾸역꾸역 살아내어보았음 낫지 않았을까 하며 옥이의 마음에 같은 애닳음을 보태게 되더라.



📖빵과 우유_ 어떻게 자살할 사람이 아이들 빵과 우유를 챙기느냐고. 그런데 어떻게 안 챙기겠어요? 지긋지긋하지만 챙길 건 챙겨야죠.

삶의 의욕을 놓고 싶어도, 살아가는 매 순간이 지옥구덩이인지 지뢰밭인지 모호하다 싶어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들이 있다. 때마다 챙겨야하는 것들, 매번 하던 행동, 오랫동안 해오던 습관. 삼시세끼 밥달라고하는 내 배꼽시계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주변의 자극들. 이게 나를 둘러싼 세상인가 싶으면서도 변화된 환경이 매번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모든걸 놓고 싶어도 기어이 해내는 능력. 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겠다만 외면하고 지나치기엔 내가 나를 용서치 않기에 해내는 꼴. 단전에서 올라오는 여럿의 자아가 나에게 화내고 나를 탓하고 다시금 나를 타이는 과정이 처연해지기도 한다. 그게 모성이든 아니든 말이다.



📖서강대교를 걷다_ 뭐야, 당신... 인간이야? 지금 죽으려고 저 다리위에서 뛰어내린 거야? 인어가 묻는다.

뭐야, 당신 인어야? 지금 죽으려고 수면 위로 올라 가려는 거야? 그녀가 묻는다.

그러지 말고 우리가 서로 몸을 바꾸는 건 어떨까? 인간으로서의 당신은 죽고, 은빛 인어로서의 당신이 새로 태어나는 거지. 인어가 제안한다.

은빛 인어로서의 당신은 죽고, 인간으로서의 당신은 새로 태어나고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는 둘 다 자살에 성공하는 셈이네.

다들 죽고 싶어 했던 적... 한 번은 있겠지? 나만 많은건 아니지? 그때의 나도 이러한 인어를 만났다면 모종의 거래를 이뤘을까를 생각해봤다.

자살에 실패한 사람. 구해주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먹지 못하는 사람. 자살 한 곳에서 또 자살할 일은 없을테니 적어도 여기에 있을 순간만은 걱정 말라고 가족에게 말해놓는 사람의 무거운 마음. 사는게 매번 행복하지 않다는게 수시로 느껴질 때에 드는 생각이었는데 이게 문장으로 표현되어 마주하니 기분이 묘해지네.



📖너를 응원해_ 꽃 같은 아이들이었다. 그는 그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는데, 그가 무슨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아이의 세상엔 뭐가 들어있나 싶고 걱정이 많아질테지만 우리도 그 나이를 겪어왔듯 아이들을 나름의 세계를 키워가고있었다. 그래서 이 모습을 보는게 뿌듯해졌다. 같은 상황을 두고 부모가 느끼는 반응과 아이가 하는 행동에서 세상이 변화되었고, 아이라고 움츠려있지만은 않음을 느꼈다. 세상이 달라지는 만큼 부모의 어린 시절 보다 더 멋진 청소년기를 겪어가고있는 중임에 기특하고 대견해졌다. 어른은 걱정이 많고, 아이는 그 걱정의 영역을 넘어 더 먼 세상을 보고 있음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역시나 걱정은 기우임을 알려줬다.



모든 이야기의 시간은 주인공을 기점으로 돌아가지만 때때로 가장자리에 머무는 존재에게 마음이 가기도한다. 외전처럼 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싶고, 그 인물 나름의 고민을 들어주고싶은 생각도 든다.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라기보단 나란 놈이 그런 가장자리에 지정되어있는 주목받지 못하는 피규어같이 느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관점을 달리해 이야기를 꾸리면 또 다른 장르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각자만의 서사가 있고, 그 서사 속에 주인공으로 배치되기때문에 흐름을 꺾어 둘 수도 있고, 장르마저 바꿔 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책 속의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바란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반추하는 과정에서 처음 원작을 읽은 후 기록한 서평을 다시 훑어보며 그때의 내가 가진 생각과 지금 다시 들여다보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져있기에 과거의 처음 완독, 지금의 서른 번의 힌트로 복기, 새삼 시간이 지난 후 처음 읽었던 원작 복습의 과정을 따라가니 내가 지나치던 장면까지 시선이 감을 느꼈다.

결국 같은 글이지만 내가 어떤 마음과 어떠한 상황에서 읽어내느냐에 따라 선명도와 깊이, 문장의 흡입력 또한 달라짐을 느꼈다. 그래서 묵혀두고 또 한번 읽어내어도 재밌겠단 생각을 하며 이 재미난 복기의 과정을 내년 한겨레문학상 작품에서도 할 수 있는 독서 활동이길 바라게된다. 그러려면 또 30년 후에 나오려나? 다음번엔 이 텀이 조금 짧아지길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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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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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뭔가 더 말을 할 듯 하다가 입을 다문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아뇨, 아무것도' 에서 끝이 났지만 진심은 '아닌게 아닌거 아는데 말하면 뭔 일 날거 같아서 말 못하겠어요' 라는 듯 입안에서 맴도는 이야기가 더 많을 듯하다. 채 말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15편의 단편으로 담아두었다.

짧은 소설이라 부담이 없지만, 어딘가 찜찜하고, 씁쓸하기도하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했다.

저자는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불투명한 틈새에서 이야기를 당겨왔음을 시사했다. 겉으로 보면 별거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그렇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은 기분은 아닌 감각들. 거기서 시작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기시감이 드는건 기분탓으로 치부해야할까? 아닌거 알지만 들춰보면 어딘가 있을법한. 그래서 마냥 없던 이야기는 아닌듯 하며, 그래도 굳이 이런 일이 있겠냐는 듯한 애매한 감정을 쥐게 만든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감정이 아니다. 그래서 기묘하다 할 수 있고, 석연치 않다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흔적이 남는다. 뭐랄까 요즘처럼 덥고 습한날 마시다 놓아둔 컵 아래 남은 물자국 같은 잔상이라 하면 표현이 적절할까? 평범한 세상으로 보여지는데 후미진곳 어느 지점, 허투루 보았던 멀쩡하던 표면의 어딘가. 거기서부터 시작될 이야기가 딱 저자의 단편들이었다. 청탁 없이 마감 없이 분량 제한 없이, 그냥 쓰고싶어 쓴 글이라 했고, 순수한 창작의 욕구가 빚어낸 작품들. 오롯이 쓰고 싶어 쓰여진 글이니 훌렁훌렁 날개를 달고 제 맘대로 흘러가는게 더 기묘했던 듯 하다. 인물의 말 한마디, 이야기가 꾸려지는 상황에서 공포도 아닌것이, 스릴러도 아닌 것이 생활밀착형 스산한 씁쓸함이 있다. 허탈함에서 오는 것, 공허함에서 오는 것, 재미나게 이야기를 끌고 가다 딱 끊어버려 오는 것. 묘한 감각의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단편. 이 책이 여름 소설의 따끔한 맛이 된 듯 하다.

📖아뇨, 아무것도_ 제가 보는 장면이 아주 먼 미래는 아니거든요.

친하지 않은 동료와 회식 후 함께 탄 택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디자인팀 신입. 어떻게 반응하라는거지? 호기심을 갖고 케물으며 이야기의 물꼬를 틔워야하는건지 헷갈린다. 적막이 흐르는 택시안의 기운이 싫어 아무말이나 한 느낌은 아니다. 늘 보이는게 아닌, 가끔씩이라는 말이 더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신입과 제대로 말하는건 처음인데 주제가 이런거라고? 그런데 그게 맞다면? 진짜 본거였다면? 아주 먼 미래가 아니었다면 좀 더 정확하게 말해주면 안되는거였어? 라고 성질부리고 싶어지는 상황에 놓인다.

예상했던 상황과 달리 의외의 순간에 저 말을 하게된다. 그래서 폴이 그렇게 신분을 감추듯 외형을 숨기고 살았던 이유가 뭔지, 그걸 왜 보면 안되는건지에 대한건? 그래서 선미씨가 봤을지도 모르는 그 이후의 장면은 무엇일지 집요하게 묻고싶어진다. 먼 미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떠한 상황을 알려주며 조심하라던가 무지 행복할 것이라는 정도의 분위기 파악이라도 일러주었다면 선미씨의 예언같은 스포가 고마워질텐데, 원망만 커지게한다. 아무것도 아닌걸 보고 아무것도 아니라 말해야하는 찜찜함. 타인의 앞날을 보고도 아무것도 못 본척 살아야하는 선미씨는 매번 이러한 감정으로 살텐데, 이 찜찜함을 갖고 매일을 어떻게 사나.

📖작가의 말_ '그냥' 읽고 있을 당신께도 반가운 마음을 건넨다.

이 배열을 하고도 무사히 원고를 넘길 수 있다는 대단한 능력. 어떠한 원고 청탁도 없이 내가 쓰고 싶어서 썼고, 내가 내고 싶어서 낸 책이라는게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본건 아니지만 이런 책은 처음이기도했다. 작가의 말이 맨 앞이나 뒤가 되는게 대부분인 룰을 어기면서 꿍꿍이라도 있는듯 적었을 저자를 생각하면 하고픈게 많고, 말하고픈것 또한 많은 사람인게 느껴졌다.


📖초능력_ 전 실없는 사람이라고 타박하며 혀를 찰 테고. 그렇게 저는 초등력을 가진 남편과 함께 늙어갈 겁니다. 아주 지겨워 죽겠어요.

지겨워죽겠다 하지만 전혀 지겹지 않아서 일부러 싫은 티를 내는 일종의 어설픈 푸념. 사는게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는데, 이런거 너무 좋아하면 팔불출될까봐 하는 입에 발린 말.



📖친구의 연인의 친구들_ 처음부터 그게 솔직한 심경이었는데, 그 간사한 마음을 인정하기 힘들었나 봐요. 그래서 더 화가 났던것 같고.

장미의 진심을, 정식씨의 본심을 서로에게 알리지 않은 채 상황이 종료되었고, 그 둘의 속내를 제 3자만 알고있어야할까. 일기를 통해 둘의 뭉그러진 관계를 대강 그려본다. 서로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했으니 한 사람은 펜으로 허상의 무엇을 적어두고, 또 한 사람은 뒤늦게 그 흔적으로 삼류소설로 살을 덧붙인다. 의중은 중요하지 않지. 오로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걸로만 믿어내는게 수월하다는 걸 장미와 정식을 통해 느낀다.

인정하기 힘든게 아니라 그렇게 인정해야 본인이 편하니 좋게좋게 포장하는 거겠지.


📖테니스를 쳐야 하는 이유_ 당신이 테니스를 쳐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아름다움도 이 세상에 꼭 존재할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결국 이유가 있던 찰나였고, 꼭 필요로 했던 만남들 뿐이었음을 알려준다. 테니스를 칠 수 밖에 없던 과정, 그 라켓을 건네받는 것이 우연도 아니었다는 것. 이유를 모르고 그러려니 살아도 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살아온 모든 순간엔 특별함과 가미되었던 삶이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돌아가야하는 이유가 있고, 다시 쳐야만 하는 확고한 운명임을 인지하는 과정. 모든 사람들이 티미같은 삶을 산다고 봐야할까, 티미였기에 이러한 운명같은 우연이 있었던 걸까. 이유 없는 이유는 없다했다. 그러니 존재할 이유는 없다하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말장난 같고, 놀려먹는 것 같아도, 그게 그럴 수 밖에 없고, 다 그런거라고 또 한번 말장난을 얹는 듯하다. 저자는 또 이렇게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도 제일 확실한 답으로 쌀보리게임 하듯 독자와 문장놀이를 하고있었다.

명쾌함은 없다. 그렇다고 답이 없냐? 또 그건 아니거든. 그런데 머뭇거리고 긴가민가한 상황을 곳곳에 찔러두었다. 머뭇거림, 주저함, 놓침, 외면. 일상에서 심심찮게 마주했던 감정과 상황인데 거진 다 불편하고 불투명한 걸로 치부하다보니 기억에서 배제한 채 살고있음을 느꼈다. 저자는 이 틈의 감정을 긁어모아 이야기를 꾸렸다. 불편한걸 마주하는 순간 당신의 표정은? 당신이 그린 이후의 이야기는 뭘로 정리하면될지를 물어보지만 답을 기다리진 않은 듯 하다. 모호한 감정을 자극시키며 독자의 세상에 이러한 날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는 듯 꾹꾹 눌러두고 사라지는 듯 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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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 - 이 계절을 함께 건너는 당신에게
하태완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5월
평점 :
품절


무해한 사람들의 다정한 글이 좋다. 달디단 시선으로 자신 곁의 것들에 눈맞춤을 하는 사람의 선함이 좋다. 사사로운 것에도 애틋함을 담아내는 마음의 결이 참 예쁘게 보인다. 눈에 힘을 주기보다 시선의 온도를 높여 따숩게 바라보는 사람의 상냥함을 흐뭇하게 보게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결을 지닌 사람이다. 입에 욕을 달고 살거나 장난이라해도 험한 말이 오고가는, 그게 친근함의 표현이라 생각하는 사람보다 눈 맞춤, 말 한마디에 진심이 한껏 뭉쳐있는 사람이 더 좋다. 나 또한 그러고 살고싶어 성질머리가 뻗치는 순간이 오면 이렇게 말캉한 에세이를 찾게된다.

하태완 저자의 책을 마주한게 2023년이니까 2년만이구나. 2년동안 또 성질머리가 꼬일대로 꼬여버렸을 테니 하태완의 글로서 마음의 결을 쓰다듬어 볼까 싶어 꼭꼭 씹어먹듯 에세이를 읽어내려갔다.


저자는 여전히 사랑스러움을 도처에 심어두고있었다. 환경이라는게 무섭다고 이러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로 인해 번지는 선함과 따스함은 생각보다 빨리 번지고 깊게 스민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의 글을 주기적으로 읽어가며 내 안에 모자란 애틋함을 채우게된다. 그리고 여전히 잘한 선택임을 느낀다.

사랑의 언어들은 언제 보아도 사람을 나른하게 만든다. 이게 연애를 갈망하든, 연애 초반이든, 신혼초이든. 그리고 나처럼 긴 연애를 끝낸 후 결혼을 하고, 10년이 넘는 무탈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한들 이러한 진득한 애정지수는 넘치더라도 가득히 채워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삶에 대한 의심이 들고 내가 나를 지켜내는 일이 버거워지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해코지하듯 할퀴는 마음을 먹게되니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며, 함께 사랑하며 살자'는 마음을 계속 주입시켜놔야됨을 느낀다.

저자는 말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픈 마음을 놓지 않는 당신, 그 모든 흔들림은 의미 있다'라고했고, 나를 지켜내는 사랑과 관계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용기,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이라 했으니 나도 그 응원을 받아보려한다.


저자가 남겨놓는 글들은 보통 SNS에서 많이 보게되는데, 사랑스러운 사진, 애틋한 찰나와 함께 적어놓는 기록인데 이는 80년대생들은 알만한 싸이월드의 기록에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이러한 글을 에세이라는 부류로 분류하지 않고, 사사로운 글이라 치부하듯 책으로 나오는걸 탐탁치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다. SNS에서 퍼다 나르는 글로도 충분한데 책으로 나오냐는 식의 문장을 하대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겐 이러한 글이 소비하기 아까운 문장이라도, 나같은 사람들에겐 곱씹어보고 다시금 마음을 다 잡게되는 글이라는 걸 말해주고싶다. 그러니 날이 선 사람들의 글로 위축되기보단 저자의 글을 좋아하고 아끼는 독자들을 위해 꾸준하고 더욱 진득하게 함께해주었으면 하며 프롤로그부터 밑줄을 그어본다.

착함과 선함은 때때로 타인들에게 바보같이 보이고, 미련한짓으로 보여지기도한다. 상대에게 위협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찌르는듯한 말로 그 마음을 찢으려할까. 나는 여전히 그대들의 타고난 착함과 책임감, 천진하지만 야무진 마음이 좋다. 굳이 내비치지 않으려하는 본인의 우울과 슬픔도 익히 알고있기에 감추려하는 그 마음도 내가 먼저 알아채어 내가 받은만큼 행복을 주고싶다.

그러니 나나 너나 우리 주눅 들지 않고 떳떳하게 행복을 만끽하면 좋겠다. 행복을 간절히 바라면 안 올거라 여겨 입에 올리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우리는 그러지 말자. 내 몫의, 그리고 네 몫의 행복을 야무지게 끌어오자.

📖삶 하나_ 이왕이면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지나치게 미워하지 않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일인 분의 행복이라도 우리의 몫으로 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간에 주름만들고, 세모눈을 뜨고, 짜증섞인 깊은 숨을 내쉬면 뭐가 달라질까? 그렇게 뜨거운 숨을 뱉어내었을 때 상황이 달라진다면 어쩔 수 없겠다만 바뀌는건 없더라. 그러니 미운 마음과 뜨거운 화를 토해내기보단 오늘 나에게 주어진 내 것의 행복을 팡팡 터뜨려 나를 감싸주고싶어진다.

찌푸리고, 후회하고, 증오하고, 자책하는거 그거 스스로를 더 아프게 할퀴기만 하더라구. 그러니 삶 하나, 그거 딱 하나뿐인 유일한 내 몫이니 사랑에 겨워하며 무너질 찰나마다 든든하게 버틸 재간을 마련해주는 사랑스러운 단단함을 곳곳에 박아놓고 싶다.


📖슬픔이 가난했으면_ 금전적 가난을 반기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나 또한 다를 바 없지만, 슬픔과 어둠에 있어서만큼은 찢어지게 가난해지고 싶다. 호주머니를 아무리 헤집어도 작은 슬픔 하나 발견되지 않는 삶이고 싶다.

우리는 행복이나 기쁨이 풍족하길 바라지 슬픔이 가난하길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이든 차고 넘치는 부유함을 기대하지 가난을 기대하진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틈을 노려 가난을 바란다. 요행을 바라며 유형의 무언가를 늘려대는 게 아닌,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 허상의 것이지만 슬픔이 가난하길 원하는 것 정도는 들어줄만 하지 않을까?


📖우린 너무 청춘이니까_ 지금껏 나를 무척 슬프게 했던 건 대다수가 나의 시절을 바쳐 사랑한 것들이지만, 지레 겁먹고 다름 날의 마중을 머뭇거리기엔 남은 기쁨이 아직 많다. 가볍게, 가끔 힘차게 매일을 살자. 낭비하기엔 우린 너무 청춘이니까.

그 당시에는 너무 애틋했고, 유일한 것이기도 했으며,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한들 그 모든 찰나와 인연들이 영원불멸하진 않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했다. 그건 진실이었다. 죽고 못살듯 붙어다니던 대학시절 동기들. 학창시절 만큼 절절한 사이도 없다 했으나 졸업, 각자 다른 분야의 취업, 다른 지역 거주, 각자의 가정을 꾸림으로 뜨문뜨문 연락이 멀어지고, 가끔 SNS에 의무적인 하트만 눌러주는 사이가 된다. 먹고 살기 바쁘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 가족들의 조사에만 찾아보고, 또 그런 날이 안 오는게 더 나은 사이. 그 시절이 아까운 것도 아니고, 지금의 상황이 안타까운것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고 나이가 먹어가며 자연스레 이뤄지는 수순임을 알기에 억지로 부여잡지 않았으면 싶다.

그때도 청춘이고, 지금도 청춘이다. 오늘은 또 오늘로서 엮일 사람들과 일상이 있을테니 우린 그저 오늘의 몫으로 남겨진 것에만 집중하면 좋겠다.

... 어차피 닿을 인연이면 몇년에 한번 가뭄에 콩나듯 연락이 와도 반갑고 기쁘다. 상대가 나를 잊지 않았다는 것으로만 가득히 행복해하자.


📖순간을 기억하는 것_ 누군가는 사탕 주고 빼빼로 주는 날들이 상술에 불과하다지만, 상술에 일부러 당하고 싶은 사랑도 있음을 알려주는 사람. 낭만이 밥 먹여주고 우리를 배불리는 건 아니지만, 잊지 않은 만큼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깜박하지 않은 낭만 덕에 사랑하는 사람이 찰나인들 환하게 웃어준다면, 그것만으로 너무 커다란 행복일 테니까.

나는 이런 상술적인 날을 좋아한다. 이 하루를 빌려서 내 마음을 슬쩍 내밀기 좋은 구실이 되니까. 그래서 이런 날이면 작게나마 간식과 소소한 이벤트를 통해 나에게 상대가 어떠한 존재인지 알아차리도록 티를 내어본다. 뜻밖이라 생각할테지만 남들 다 챙기는 그런날이니 나도 해봤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좋다. 낭만이 밥 먹여주지도 않고, 내 돈과 시간을 할애해서 만드는 이벤트이지만 상대가 고마워해주는 말 한마디 놀랐다는 표정, 잘 먹었다며 건네는 인사가 나를 더 나은사람처럼 띄워주니 돈 쓴 보람이 이런거라며 이럴라고 돈번다고 농을 건넨다.

낭만 덕에 우리는 오늘 그 어떤 사람보다 행복할테니 이런 구실이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상술에 훌렁 넘어가는 사람으로 쭈욱 살지 모.


📖한 줌만큼의 정성_ 사랑만큼 비효율적인 것도 없지만, 사랑이라서 가능해지는 것들.

효율성은 떨어질지라도 효용가치는 항상 상위에 머무는 것. 그게 사랑이라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시간을 쪼개어 순간을 공유하는 것. 바빠도 연락 한번 해보고, 이동시간이 길어도 1분 얼굴 보는 것에도 만족하는 과정. 참아내는 마음보다 다다르는 마음이 더 크니까 가능한 가성비 떨어지는 방식들. 그게 사랑이라 가성비를 운운하지 않게 됨을 느낀다. 효율이 떨어지니 쉴때 보면 되지 라는 빈말도 하지만, 보고싶을 떄 봐야하고 듣고 싶을 때 들어야하고, 만지고 싶을 때 손을 잡아 체온을 느껴야했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은 어제와 오늘 별다를 것 없이 흔해빠진 일상에 '너'라는 존재를 곳곳에 심어두는 방식이다. 내 삶은 삶대로 살되 책갈피를 끼워두는 것 처럼 틈틈이 그 틈을 메워보는 것. 그게 나를 더 촘촘하게 만들고 상대를 불안하지 않게 만드는 사랑의 방식이고 한줌의 정성이다. 내 찰나는 늘 당신의 것이라는 안정감을 주고픈 것. 타인이 보면 비효율, 우리가 보면 효용최대가치. 결국 우리만 좋으면 모든 등식은 성립된다.


📖비밀 언덕_ 네 위로 어떤 눅눅함이 왕창 쏟아져 퍽 우스운 꼴이 된대도 아무렴 괜찮아. 젖은 몸인들 아유 예뻐라, 하며 가득 안아 품어줄게. 도처에 흐드러진 사랑을 몰래 꺾어 모두 네게만 줄게. 주변이 온통 가시덤불이라면 그사이에 아늑한 집이라도 지어줄게. 말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내가 알아채 줄게. 자그마한 나를 쉼 없이 보듬느라 조금씩 투영됐을 가냘픔까지 좋아할게. 그러니까 우리 자주 웃고 가끔 울자. 여태 잘해왔듯 서로의 가장 웃기고 좋은 사람이 되자.

비밀 언덕이며,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서로. 유일한 나의 대나무 밭이며, 오롯한 나의 등받이같은 사람. 몸이든 마음이든 돌아갈 집같은 든든함 존재. 가끔 생각을 한다. 내가 전생에 어떤 업을 살았길래 이러한 복을 얻었나 싶은 것. 날카롭기만하고, 휘어지지 못하고 매번 부러지는게 익숙한 사람인데 나에 비해 말캉하고 폭닥한 사람이 내 곁을 지켜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나의 날이 선 마음을 자신의 푸근함으로 다 뭉개어두는 사람을 보면 천성이 이런가 싶은 생각을 하다가도, 본업에서는 한껏 예민하고 정확한 걸 보았을 때 이 사람은 나에게 특화된 능력이 있음을 깨닳게했다.

어린시절 나를 화초처럼 키워낸게 부모라면, 다큰 어른을 온실 속 여린 꽃나무로 이리저리 살피는건 남편의 몫으로 위임된게 분명해보였다. 말못하고 표현못하는 식물에게도 다정한 말을 건네고 애틋한 마음을 다해 키우면 예쁘게 자란다 했던 그런 뜬구름 없는 이야기도 이 사람에겐 그게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음을 실감하게된다. 부족하지 않을 표현과 진득한 진심은 역시나 내가 꾸준히 사용하고픈 유일무일한 대나무밭이며 몸에 힘을 빼고 기대고픈 사람이다. 이게 사랑이지 뭐 별거겠어 라는 말로 떳떳하게 기쁘고 행복해 하고 싶다.


📖관계와 권태_ 그리고 애를 태우기보다 애를 쓰는 데에 시간을 들였으면 좋겠다. 본디 사랑은 주저하기보다 먼저 발으리 구르는 마음의 편을 들어주기 마련이니까. 부디 그 모습 그대로 근사한 사랑이 되기를.

마지막 한마디. '부디 그 모습 그대로 근사한 사랑이 되기를'바라는 간절함. 근사함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본다. 거의 같다 할지, 그럴듯하게 괜찮다고 해야할지 망설였다. 생각보다 그럴듯한 괜찮음을 넘어선 것이 내가 바라보게되는 당신의 근사함이다. 내 상항선보다 우위에 있어 매번 그득한 마음을 얻어내는 사랑. 그래서 매번 느끼는 이 관계의 벅참이 내가 바라는 낙원이라는 세상임을 다시한번 느낀다.


생각해보면 나는 바라는것 이상의 벅찬 마음과 진득한 사랑을 받고 있는 듯 하다. 타인과 비교 할 수록, 다른 경우의 사건들을 나란히 두어도 내 선에서 최고의 행복임을 자부하게된다. 대단한 부를 축적하지 않아도, 매사 부지런한 사람이라 다행이다. 요행을 바라지만 또 한 켠에서는 그만큼의 성실함을 쌓아가는 사람. 올곧은 애정으로 표현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아 받는 사람이 조갈나지 않도록하는 풍성함. 그래서 나는 매번 저자의 책을 읽으며 내 곁의 배우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더해본다. 다음 생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번 생에서는 나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났구나 떠벌려도 될 만큼의 애틋한 사람이 곁에 있어 든든하다.

저자가 말하는 낙원은 딱 그정도의 폭닥함이라 정의내려본다.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 없이 안락한 공간이 사랑하는 사람의 곁 이라는 점. 가수 싸이가 낙원이라는 가사에 녹여낸 말 처럼, '비와 바람도 세상과 사람도 우릴 막지 말라'는 것 처럼 어떠한 시련이 있다 한들 두 팔 벌려 나를 향해 오는 사람의 품에 쏘옥 들어 간 후라면 세상 두려울 것 없다는 점. 그게 우리가 바라는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는 낙원임을 실감한다.

그러니 사랑에 불안한 사람들과 사랑에 확신 없는 사람들이라면 저자의 말들에 나를 녹여두어 각자만의 낙원을 찾았으면 좋겠다. 별거 아닌거 같아도 별거 이상으로 행복한 공간임을 내가 증명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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