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이야기
조예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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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여름이다. 그럼, 조예은 월드가 피어오르기 딱 좋은 시기라는거지. 조예은 월드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 여름에 신작 발표는 눅눅한 세상을 티나지 않지만 서늘하게 만들어주는 무풍 에어컨 같은 존재. 뜬금없이 펼쳐지는 SF판타지형 소설이 아닌, 어딘가 한번쯤은 이러한 이야기가 휩쓸고 갔을지도 모를 세상의 소리라서 관심이가고, 저자가 이 이야기속에 숨겨둔 진짜 하고픈 말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희열을 느끼고 싶어진다. 세상이 물에 잠긴거나 다름없어 보이는 습도에 어디든 시원한 곳만 찾게되는 요즘. 그리고 머리도 쉬고, 눈도 쉬고싶은 휴가. 집중하지 않으려 했으나 신간 출간이다. 그럼 어쩌겠어. 읽어야지.

혼자 맞이하는 휴가를 빌미삼아(=남편과 휴가가 달리 잡힘)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빵, 그리고 조예은 월드가 응축되어있는 신작 치즈이야기로 온전한 내몫의 행복을 찾아보게된다.

저자는 '무덥고 습한 계절에, 차가운 바닥을 뒹굴며 먹는 주전부리 같은 이야기들이 되기를'바란다고 전했다. '짜고, 달고, 역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의 이야기인데, 이 단어들은 쉽사리 멀리 할 수 없는 마력의 무언가들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별도의 추천사나 줄거리 서치 없이, 저자 이름 하나 믿고 고른거겠지. 2020년 봄의 '칵테일, 러브, 좀비', 2022년 여름의 '트로피컬나이트'. 그리고 2025년 7월의 '치즈 이야기' 조예은표 습기어린 3부작의 완결형 이야기. 서점 소설 MD는 이렇게 세 번째 여름 테마파트 개장을 표현했지만, 3부작으로 끝나기 아쉬우니 일단 이거 완독 후 다음 여름을 미리 기대하게만든다.


📖치즈 이야기_ 엄마에게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 한 가지를 던졌습니다. 그때, 집을 나간 후에 단 한 번이라도 방안에 두고 온 저를 떠올린 적 있느냐고요. 엄마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깜박햇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 '나'의 유년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당신'의 현재를 대변하는 썩어가는 과정.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의 무게는 상당히 가뿟하다. 무게를 잡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속에 담긴 내용은 한없이 축축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화자는 이 일이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길 해주니 당황스럽다. 분명한 원망이 서려있는데, 그놈의 블루치즈라는 것으로 환상을 만들고 사랑의 대상을 그것으로 옮겨버린다. 자신을 측은하게 만들지 않으려 하는 상상이 더 저릿하게 만든다. 어린시절의 그는 슬프고 무서웠을텐데, 지금의 그는 여전히 응어리져있는게 분명해보이는데 썩어가는 엄마를 마주하며 '잘 숙성된 치즈의 냄새'로 이 상황을 묘사해내어 흥미로운 순간이 다가왔다는 듯 경쾌한 어조를 내비친다. 그래서 화자가 얼마나 고대한 날인지를 가늠하게 만든다.

한 두번 놓친 상황이 아니었다. 깜박했다 하기엔 그 횟수가 잦아졌고, 그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남겨진 이에 대한 걱정은 안중에도 없이, 당신의 쾌락만을 찾았다. 모정이 숨겨진게 아니라 애초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당신의 돌봄이 필요한 작은 생명에 대한 외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 외소하고 몸이 쭈그러든 늙어버린 당신이 되려 돌봄이 필요 한 상황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다 큰 자식에게 기생하는 과정. 똑같이 당하고, 똑같이 '깜박햇서'라는 말로 깊은 고립의 시간에 대한 대답을 듣는다면 과거의 행실에 반성을 하게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생각보다 사람은 바뀌지 않더라.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라 했다.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그런가 이야기 밖의 내가 화자를 뜯어 말리며, 그래도 자식된 도리를 운운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면 안되지 않겠냐며 생각을 고쳐먹게 만들지 않게된다.

그리도 동경에 마지 않던 치즈를 마주하고 먹었을 때 허무했던 상황. 머릿속에 수없이 그려냈던 맛의 확장성이 아니었던 일종의 배신감. 그건 그대로 엄마에게로 대상이 옮겨진 것이기도 했다. 사랑을 갈구했고, 자신을 향한 몽글거리는 시선을 기대했던 이전, 꼼짝없이 자신의 앞에 누워 고분고분해진 늙은 엄마를 대하는 기대치가 확 떨어진 식어버린 관심까지. 사랑하려 했으나 미워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부스러기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보증금 돌려받기_ 저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요...... 제가 눌러드려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만든건 다 당신이 자처한게 아니냐며 어금니를 꽉꽉 눌러가며 또박또박 말하게된다. 당신에겐 한낱 노후자금이거나 당장 필요하지 않는 여윳돈의 일부일텐데 나에겐 당장의 내일을 좌지우지할 삶이었다는 걸 알면서 그걸 쥐고 흔드는 꼴. 헌데 이게 책 속의 이야기 뿐일까? 당장 죽고 사는게 뚜렷하게 갈리는 상황이 아닌 것 처럼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죽을 듯한 고통의 감각을 온몸으로 얻어맞는다.

집이 잘 팔리길 바라며 둘러보러 온 사람에게 한없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포장하며 집주인과 한통속이 되기도하며, 집이 안 팔리는게 왜 내 탓이냐며 성질을 내다가도 나도 이사갈 집에 돈을 내야하지 않겠냐고 읍소하게된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돈을 돌려주는게 당연하지 않냐며 몰아세우기도 하다가 그간의 전적을 살피며 단념하기도하며 매 순간마다 악인이 되었다 인간으로 돌아오는 무한 반복을 거듭한다. 꿈을 꾸고 환영을 마주하는건 어쩌면 본성의 자아가 악마를 끄집어내어 지금 네가 하는 모습이 딱 이 꼴이지 않냐며 비춰주지만 결국 본인의 또다른 자아임을 깨닫지 못한다. 악에 악으로 치닫게 만든건 결국 당신들이지 않냐는 식으로 나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만들지 않았냐는 것으로 사람이 악마가 되는 과정을 조근조근하게 일러준다.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_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걸, 그애의 다른 선택지를 막고 의사를 조종하며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얻는다는 건 모를 터였다.

나를 갈아 넣는다는 말. 내가 못하는 건 너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는 연민어린 시선. 이건 단지 나 처럼 살지 말라는 뜻의 애틋함이 아닌 듯 하다. 나는 도저히 이 상황에서 꽃을 피워 낼 자신이 없으니 너는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으로 응축된 세뇌와 질척거리는 강요를 끼얹어주었다. 고맙지만 부담되는 과한 챙김.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지 않으니 받아들이는 현실. 희생은 대물림되고, 온전치 못한 애정도 엄마를 통해 딸들로 휘어져 흘러간다.

치즈 이야기의 모친이나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의 모친이나. 그들도 그들의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온전치 못했던건 아닐까를 생각한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잘 하는 걸테고, 학습된 효과는 무시 할 수 없을테니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들의 부모가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않았고, 두 이야기의 모친들 역시 사랑을 그렇게 받아 누린 적이 없었기에 이 사달이 난게 아닌지로 잘잘못의 영역을 확장하게된다.

이들와 관계가 어그러진 이유. 어떻게든 멱살잡아 옳게 만들고 싶어 언니가 엄마의 탈을 쓴 채 동생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 줄 것 처럼 하다가 인형놀이하는 주인으로 역할을 바꿔 꿰차기까지. 선희라는 아바타 게임에 목숨이 다 소진되어야 끝나는 게임일까? 누가 하나 죽어야 허탈하게 반성하며 닭똥같은 눈물 흘려야 제대로 된 반성을 할 듯 하다. 그전엔 이거 쉽게 안 끝날 꼴이야.



📖두번째 해연_ 축적한 지식과 기억이 한순간에 납작해지리라는 예감이. 보이지 않는 저만의 서랍에 늘 존재하던 애증의 순간들이 언젠가는 부옇게 뭉개질 거라는 사실이. 백연에게 기억이란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고유의 암호였다.

정체성의 변화. 관계의 재정립. 외형적 동일함, 기존의 축적된 데이터가 주는 동일성의 영역. 그렇다고 해연A와 해연B가 완벽히 동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었던 시절 해연A, 기억을 물려받고 데이터화 된 외형을 구축해낸 사이보그 해연B. 현실의 상실, 환각처럼 구현된 허상의 존재. 그것으로 우리는 상실에 대한 감정과 그리움에 대한 애틋함을 완벽히 충족 해 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소설속 인물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진지하게 답을 찾게 만든다. 어디부터가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과정을 얹은 변질된 모습인지. 두번째 해연처럼 두번째의 내가 이 세상에 나인척 살아간다면 이미 죽어버릴 순간의 나는 마음이 편할까, 되려 미안함이 커질까?(각각의 단편들이 하나같이 나를 물음표 살인마로 만든다. 되묻게 만드는 지점이 너무 많네) 이로인해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고어로 분류가 되며 모든 인간들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기억의 굴레로 가둬두는 또하나의 감옥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괜한 걱정이겠다만 당장의 나의 노후에 해연B 만큼의 꽤나 정교한 남편B가 구축된다면 행복의 연장선이라면서 반길 자신이 없어진다. 적어도 나는 알잖아. 진짜 같지 않은, 진짜 인척 하는 진짜 같은 가짜라는 걸.



📖안락의 섬_ 저는...... 그냥 안 태어날래요.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걸 보는 일은 너무 슬퍼요. 더군다나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게 하필 나라면.

안락의 섬에서 어딘가 모르게, 며칠 전 먼저 읽었던 손원평의 '젊음의 나라'가 떠오르기도했다. 손원평은 유닛A~F로 구분하여 젊음이 지난 이들의 남겨진 생의 분류를 보여주었다. 젊지 못한 이들이 젊었을 때 얻어낸 부로 살아가는 노년의 세상 분류를 보여줬다면, 안락의 섬에서는 안락을 제공하며, 이른바 자신이 선택하는 생의 끝을 제공한다. 이건 올 초 읽었던 '죽은 다음'이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의 이야기의 소재들을 기반으로 한 행복의 끝을 찾으려는 인간의 결정을 보여주는 듯 하다. 반려견이 생의 끝이 보이니 생을 마감하고나면 자신의 끝도 이어 붙이려는 모습이 담긴다. 이는 반려견이 있는 이들에게 비슷한 양상을 보이던 견주의 마음이기도했다. 이게 비단 견주의 마음 뿐일까. 사랑하는 이률 보낼 준비하는 사람들이 갖게되는 심적 고통과 결정이기도했다. 그래서 그러한 마음을 실행에 옮기려 안락의 섬으로 찾아 간 것이다.

소중한 것들 덕에 행복했지만, 그 소중한 것이 소멸되면 모른척 외면했던 슬픔이나 고통이 한번에 밀려올까봐 두려워한다. 그게 무서워 다시 태어나길 거부한다면 현재의 행복이 얼마나 꽉채워져있길래 그러나 싶어하며 이 관계의 애틋함을 세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가늠하게 만든다.

반려견이 눈을 감았고, 이제 안락을 준비해야하는 후 작업. 사흘 뒤로 정해진 생의 끝. 안락에 드는걸 반려견이 반길까? 자신을 따라온다는걸 반가워하며 꼬리흔들고 달려올까? 한여름밤의 꿈같은 상황이었다. 변한건 없다. 아니, 변한게 있다. 반려견은 작은 유골함에 있고, 그는 죽지 않았다는 것.

혼자 감당하는 몫을 택했고, 반려견을 유일하게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아 행복했던 순간이 소멸되지 않도록 번복하며 떠올리는 역할을 자처하기로했다. 둘이 안락에 들며 무(無)것으로 지우지 않고, 적어도 자신만이라도 반려견을 기억하는 방법을 택했으니 적어도 반려견만은 온전한 안락에 닿아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단순한 책 표지. '치즈 이야기'라며 전혀 가늠 할 수 없도록 만들어낸 제목. 치즈 구멍 마다 쿰쿰하게 묵히고 방치하며 쉽사리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곰팡이마냥 들러붙어있다. 그래서 이 덩어리들을 쉽사리 손대며 긁어내기어렵다. 휴지로 쓰윽 닦아내며 흔적을 지우고싶지만 야무지게 스며들어있어 결국 자국이 남는다. 그게 이 단편들이 가진 마음의 딱지였다. 역시나 여름의 기운처럼 습하고 눅눅하고, 개운치 못해 미련을 섞어가며 이 존재들이 멀끔히 살아내길 바라게되지만 어느하나 마음대로 될 수 없음을 안다. 하루 이틀 만에 이뤄진 일들도 아니다. 오랜시간동안 꾸준하고 진득하게 인물들을 쥐어짰으니 이건 두고두고 흔적이 남을 것이다. 옷으로 가릴지언정 적어도 나는 알고있는 표식이었다. 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하나 고민이 많다. 정말 발치에 닿은 죽음은 아니지만 그 기운에 버금가는 다양한 형태의 자극들.

무덥고 습한 계절, 눅눅하고 진득한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달라질까? 계절이 바뀌는 것 처럼, 상황이 달라지면 숨 쉬는게 편해질지. 쉽게 변하지 않겠다만 이들이 겪는 이 여름이 지나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그들에게도 닿아지길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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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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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났던 작품이 너무 좋았다면, 그 기억을 곱게 넣어두었다가 몇번이고 곱씹어보기도하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해당 저자의 행보를 따라가게된다. 손원평 저자의 작품이 그러하다. 그래서 단독 작품은 물론이고, 앤솔러지 출간작도 챙겨보면서 저자가 앞서 바라보는 생각들에 나도 생각을 보태어 머리를 굴려본다. 나에게 답변을 바라는 이는 없겠지만 작품을 완독 한 후 내 생각을 정리하게 만드는 소설. 그래서 손원평 저자의 작품은 독후감을 제출해야 속이 후련할 듯한 긴 후일담을 남겨두게된다.

역시나 이번 작품도 읽고 난 후 촘촘한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먼 미래도 아닐 듯 하고, 나만 비켜 갈 것 같지도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같은 제목의 청소년판이 따로 출간되었던데, 이 또한 생소하지만 그럴듯한 이유가 된다. 글자 폰트와 크기만 다를 뿐 청소년판과 성인판이 구분되어있는 점이 매력있다. 그래서 말인데 청소년들도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어진다. 젊음에 다다르기 전 어리다 할 만한 축에 속하는 존재들이 보는 책 속의 나라는 어떻게 느껴질지가 궁금하다. 나이들고 늙게되는 과정은 여전히 당연한 시간의 흐름인데 청소년들이 보는 젊음의 무리와 노년의 무리속 각각의 목소리는 어떻게 와닿게 될까.

나는 젊음의 끄트머리라 봐야 할 나이이다. 유나라의 나이는 이미 지난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유나라의 입장도 각각의 유닛 등급에 따른 인물들의 성향도 모두 이해되는 사람이다. 엘리야가 느끼는 혐오의 감정도 알만하고, 유나라의 부모가 걱정스러워했던 아이의 인물 의존도에 대한 우려까지.

젊음의 나라를 이야기하지만 젊음은 영원 할 수 없고, 나 또한 그 순리가 예외로 적용될 수 없음을 알기에 한 때는 젊었고, 이제는 늙음이 당연하게 쥐어질 삶의 인간이라 민아 이모처럼 생의 끝을 내가 정할 수 있을지. 그마저도 두려워하며 회피하는 사람이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유닛을 보면 결국 부에 대한 등급표였음도 알 수 있다. 이건 각자의 젊은 시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가 되기도하지만, 열심히 살아낸 것과 상관없이 원하지 않는 세상의 간섭도 적용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한부의 삶이라 선고를 받았지만 오진이었던 상황. 최상위 유닛에서 짧고 굵은 화려한 생의 끝을 생각했으나 오진으로 인해 생각보다 더 길게 봐야했던 자신의 노후. 그렇게 하위 유닛으로 내려가며 삶의 반경이 달라지고 날이 선 상태로 주변을 대해야했던 최근을 떠올리면 내가 원하는데로 흘러가는 삶은 없음을 느낀다.

학교가 요양 보호 시설로 바뀌고, 세금의 대부분이 노인 복지의 자금으로 채워지는 과정. 먼 미래 같았지만 지금의 세상 또한 그렇게 흘러가고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인구 소멸에 대한 걱정과 함께 노령화에 대한 불안감. 저출생과 출산을 하지않는 젊은층에 대한 쓴소리. 인력에 대한 비용보다 AI를 통해 획일화되고 간결화된 일상들까지. 이주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최근 다양한 서적을 통해 나역시도 한참을 고민했던 존엄사에 대한 결정권 또한 심심찮게 야기되어가는 세상이다.

가까운 미래? 책 속에만 가둬두기엔 너무 현실감 넘치는 요소들이 가득해서 이 소설은 SF소설이라 분류 할 수도 없고, 마냥 허상의 판타지 소설이라 나누어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어렵다. 나를 키워낸 세상과 내가 기대할 세상이 섞여있는데 어느지점까지 허상의 것이라 믿고, 어느 단락까지 예견된 미래라 봐야할까. 시카모어 섬까진 가지 않더라도, 지금을 영위하고있는 내 경제상태와 이 시점을 기준으로 10년후, 20년후의 나를 그려보게된다. 유닛 등급에 따른 내 노후까지 점칠해보며 각각의 집단에서 과연 내 몫의 행복을 얻어내며 남은 생을 살아 갈 수 있을지 계산하게 만들었다.

나는 한때는 젊었고, 젊음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늙음만 남았다. 늙음이 기대되기보단 어찌 살아야 할지 머리를 싸메고 젊은 시절보다 더 견고하게 생을 짜맞춰야하는 일이 주어졌음을 느낀다.


나의 청춘은 지금 어느 지점에 머물고 있을까. 청년이라하기엔 너무 나이든? 중년이라 하기엔 또 조금 이른듯한? 그 애매한 지점에서 노년의 그들을 바라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과거의 노년이 누린 시대와 내가 곧 다다르게될 노년의 세상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하루가 다르게 적응해야하는 삶의 퀘스트들. 저자가 걱정하고 우려했던 모든 갈래가 나를 거치고 있다. 부양해야하는 부모가 있고, 결혼은 했으나 출산을 하지 않고, 외로움을 의지해야하는 반려동물은 없지만 평생 없이 살거라는 보장은 못한다. 사회활동을 하며 매해 연초마다 오르는 복지 관련 세금은 내가 당장 누리는 것이 없음에도 기꺼이 의무적으로 납부해야하는 체계. 소멸되는 인구만큼이나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로 내 몫으로 감당할 지분이 커지는 세상. 나는 노부모를 부양하지만, 나와 남편은? 자식 없는 둘은 각자 서로를 살펴야하고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하는 몫의 무언가를 마련해야한다. 지금 내가 누리는 젊음으로서의 젊음의 나라는 바쁘고 빠듯하다. 현실 아닌 척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 손원평이 꾸려놓은 세상. 그래서 내가 감당해야 할 지점은 어느어느 항목인지 한번 더 인지하며 내 젊음을 어찌 써먹어야될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머리를 굴려봐야겠다. 아.... 오랫만에 마른세수 하게 만드는 소재를 만나 포스트잇 플래그가 가득 붙어있는 책이 되어버렸다. 



📖꿈에 주름이 져 있어도 되는 거야? 그렇게 계속 접고 접으면 꿈이 너무 작아지잖아. 그러다가 못 찾으면, 꿈이 어디로 사라져버리면 어떡해?

어린 유나라가 민아 이모와 나눴던 이야기의 일부이다. 꿈만 꿔도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꿈이 있어서 살아갈 이유가 되었고, 꿈 덕에 내일이 기대되는 삶이 분명 존재했다. 민아 이모도 그러했지만 지금의 그녀는 꿈을 고이 접고 또 접어 꾹꾹 눌러 쉽사리 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을 해 둔듯한 뉘앙스로 말을 해준다. '이렇게 꿈이 몰래 숨어 있다가 언젠가 활짝 피는 꽃처럼 팡! 터질지 몰라.' 이건 어린 유나라에게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민아 이모 스스로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 같은 것 이었다. 안될 걸 알지만 그래도 될거라는 일말의 기대.



📖그녀의 자식으로 산 고양이와 개들은 행복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열세 명, 혹은 열세 마리의 동물들이 할머니의 삶에 외로움의 방패막이로 차례로 소비되고 갔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나에게 다들 이러한 뉘앙스로 이야길 해왔다. 지금이야 남편도 있고, 맞벌이고 사회활동을 계속 하지만 나이들어서는 그계 게속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적적할텐데 지금이라도 반려 동물을 키워서 애정도 주고 살아보라고 훈수를 뒀다. 애 없으니 애 키우는 보람 대신 동물 기르는데에 쏟아보라는건데, 나는 내 한몸 건사하는건 물론이고 내 사회활동으로 인해 하루 대부분을 혼자 집을 지켜야 할 반려 동물의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단순히 내 단기적 외로움에 투입하고 싶지는 않다. 반려 동물의 생은 인간보다 짧다. 그래서 그것들의 끝을 다 지켜봐야한다. 생사고락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소비하는 감정의 폭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그렇다. 자신 없다면 시작도 안하는게 맞는 답일지도 모르겠다.



📖많이 노력하고 더 애쓴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혜택이, 노력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가정을 이루지 않고, 그저 사회보장제도를 계속 누릴 수 있도록 수 쓴 것밖에 없는 사람에게 오랜 기간 주어졌다니.

어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회가 마련해주는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 인력을 사용한 활동으로 소득이 일정부분 늘어나게되면 국가가 지원해주는 비용을 얻지 못하게되어 그럴바엔 아예 사회활동을 중단한다는 무리. 이른바 숨만 쉬어도 세상이 돈을 주는데 뭐하러 고생하냐는 식의 허점을 노린 거저 사는 삶. 애쓰고 살아내려하는 사람들이 바보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약은 인간들. 그래서 때때로 이러한 제도에 환멸감이 느껴지기도하며, 이러한 인간을 고발하여 저자에게 쓰여지는 세금을 모조리 환수하고 싶어지는 날카로운 성질머리를 드러내게된다.




📖강한 법규 아래에서 인간이 얼마나 고분고분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씁쓸했다.

하위 유닛으로 갈 수록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가진사람만이 가능한 발언권이었다. 튀는게 두려운 사람들.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무리였다. 당연한 권리이지만 이름이 거론되고, 관리자들의 시선에 거슬리면 혹여라도 밉보여 이 무리에서 강제 이탈하게 될 까봐 한껏 몸을 움츠리게되는 무리. 책 속에서는 유닛F가 그러했고, 현실에서는 최저생계지원비를 제공받거나 그마저도 지원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실감하게하는 유나라가 겪고있던 근무조건이며 유닛체계였다.



📖나는 재희에게 죽음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사실 죽음의 형태가 그 사람의 계급을 드러낸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최근 존엄사 관련 책도 몇권 읽었고, 가족, 지인들의 부고도 많이 접했던 근래의 기억. 죽음의 고인이 된 당사자의 재력의 일부이기도 했고, 남겨진 가족이 일시금으로 처리 할 수 있는 부의 부피이기도했다. 죽어서도 돈이 필요했고, 죽음만큼이나 몫돈이 필요한 적이 또 있었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니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과 마침표를 찍듯 세상에서 무(無) 상태로 전환되는 과정 모두 공평함은 없었다. 지켜보니 그러했다. 그것은 일종의 생전의 능력치 정산내역서와도 같았다.



📖하지만 내 안을 채운 게 논리도 합리도 아닌 혐오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을 때, 멈춰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노인이라는 존재를 그저 '늙어 있는 상태의 사람'으로 인지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차츰 알게 되었어요. 그들도 한때의 나였다는 사실을요.

시간이 흘러 나도 그들의 수순을 밟을 것이고, 내 한시절 처럼 반짝이고 탐스러운 청년의 시선엔 고루하며 꽉 막혀 보일 한낯 노인으로 분류 될 것임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수술하고 관리하고 세월에 맞선다 한들 결국 늙고 나이듦은 어떠한 것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이치를 받아들이고있다. 다만 내가 노인이 된다 하더라도 이렇게는 되지 않아야지 하는 마음은 있다. 유닛의 분류가 삶의 성적표가 될 수 없다고 했던 유나라.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내 맘대로 흘러가는 세월은 아닐 것이니 결과가 유닛A라도 본받아선 안되는 인성의 존재가 있었고, 유닛F인게 의아하게 여겨지는 반듯한 어르신의 기품도 있었으니 제력에서 줄세우기하는 유닛 분류가 아닌 인성과 인격 자체를 아우르는 늙어있지만 단정한 어르신으로 불리워지고 싶은 욕심을 가지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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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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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시장의 핫한 문구가 있지. '넷플릭스 왜 보나.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이 하나로 모든게 정해지는 성해나 저자의 신간 혼모노가 궁금했다. 판매 순위도 높으며, 제법 재미난 추천사를 써준 박정민과 이기호 저자의 입김이 한 몫 한 듯 한데, 내가 성해나 저자의 글을 읽은 적이 없더라구.


대강의 줄거리는 익히 아는 바 이제 4개의 큰 단락으로 나눠 기하가 외동아들에서 형이 되던 그 때, 어린 재하가 8살 많은 형과 함께 병원 진료를 받으러 다니던 시절로부터 이야기는 교차된다. 이후 혼자의 세상을 꾸리며 자연스레 가족이라는 엉성한 울타리를 벗어나게된 순간과 이후의 삶을 이야기한다. 재하를 때리던 친부도, 새로 꾸린 가정에서 어떻게든 잘 살려고 애쓴 모친도 상실한 채 짙은 어둠만 더해진 어른의 재하는 타국에서 형의 흔적을 찾고 또 한번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뒤늦게 형이었던 존재에게 안부를 전하게된다.

부모의 재혼, 의도하지 않게 형제가 된 둘.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과거와 현재. 이야기들을 보면 교차되는 입장에서 어느 한 지점도 마주치지 않고 겹쳐지지 않으며 한 템포 늦거나 빠르게 스쳐 갈 뿐이다. 마주하는 과정이 없다. 똑똑히 마주보고 대하는 마음의 교류가 없다보니 이렇게 마음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불편함 심기를 표출하고, 또 한 쪽은 반대로 티내지 않으려 억누르기도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라는게 기하와 재하를 두고 하는 말이지 않을까를 생각하게된다. 어떻게든 닿아보고 마주할 구실을 만드는 기하 아버지와 재하 어머니. 각자의 선에서 무던히 애쓰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4년에서 끝맺어진 성글었던 가족의 과거와 남겨진 각자의 자식들.


진심은 왜 그리 늦게 받아들여지고, 후회나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되새김질되어 미안함만 쉼없이 밀려오는지. 이제사 모든걸 헤아리고 받아들이며 어떻게든 마음들을 고이 모아두고 싶으나 그럴 수 없음에 씁쓸하게 그 흔적들에만 애틋한 시선만 주게된다.



📖아버지가 부르는 '네'가 내가 아니라는 배신감.

어제까지는 사진관집 외아들이었고, 이제는 8살어린 동생이 있는 형이되었다. 동시에 사망한 엄마의 자리에 새어머니라는 분이 오셨다. 기하에게 의중을 묻기도 전에 온 이방인이며 가족이었다. 모든게 자신의 위주로 돌아가던 세상에 자리를 뺏긴 상황.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진관 쇼윈도에 항상 기하의 사진이 있던 영역을 비집고 들어온 작은 아이. 아버지의 시선은 오로지 기하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나누어야 한다는 점. 우선순위가 아니게 되는 것. 친 동생과는 또 다른 애정의 분배. 기하는 그 균형을 잃었고, 이 집에서 지탱하던 존재감도 잃었다는 것을 느낀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는 온전한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진다.


📖일종의 채무와 같다는 것을요. 혈육 사이라면 자연스러울 어떤 책임이나 보살핌이 저와 그들 사이에선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요.

나누는게 낯선 기하였다면, 재하는 받는 것이 낯선 입장이다. 폭력을 쓰는 친부. 그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살려 애썼던 어머니와 재하. 그러니 누군가의 호의와 선의가 낯설고 당혹스럽다. 받아 본 적 없는 손길이며 기대한 적 없는 마음이었기에 이걸 받았을 때 얼마나 더 큰 무언가로 되갚아야하는지에 대한 걱정이 크다. 새아버지는 어머니가 좋아서 가정을 합친거지, 병원비드는 자식놈을 원한건 아니었을테니 어머니의 짐짝이되고, 새아버지의 근심이 되어 가정의 파탄에 자신이 불씨가 될까 조마조마한 여린 마음이 안쓰러워진다.

저 또래의 아이들은 눈치로 큰다는 말을 실감한다. 세상물정 모르는 것 같아도 도르륵 굴러가는 눈망울이 온갖 걱정과 근심을 다 흡수해 버리더라. 그래서 어른의 따뜻한 애정을 채무로 받아들이고 갚아야한다는 고심가득한 눈빛에서 이건 쉽사리 바뀌지 않는 성향이겠구나를 느꼈다.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타인의 호의지만, 행복보다는 근심으로 마음에 쌓아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 녀석 커서도 이러겠구나 싶은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현실로 보여졌다.


📖가감 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것도 어떤 관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태어난 것일까요.

자신의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이라도 같이 가준 형이 좋아하니까 그 감정을 깨기 싫었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여느 형제와는 달랐던 것임을 확신하게된다.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것.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표현이 어떤 이에겐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를 재하를 통해 배운다. 사사로운 것에도 고민을하고 주저하는 것을 보며 당연하지 않은 관계, 이른바 억지로 엮여진 관계에선 어느하나 쉬운 것이 없음에 재하가 성인이 된 후에도 관계 형성에 어려워하고 마음을 열 지 못하겠구나를 느낀다. 태어 날 때 부터 그 마음을 갖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는데, 재하가 가진 삶의 반경이 대부분 이러한 조건에서 재하를 쥐고있었기에 만들어진 어른으로서 미안한 감정이 크게 다가왔다.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어쩔 수 없이 어린 기하와 어른의 기하가 남긴 상념보다 어린 재하와 어른의 재하가 꺼내어 둔 마음에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표현이 과한 비하라 할 순 있겠다만 미워하는 감정을 표출하고, 싫은 마음을 내색했던 기하였다. 재하보다 8살 더 많은 형이 아니라, 그냥 어른이었다. 그럼에도 재하의 마음을 들여볼 여력이 없던 성글던 기하였으니 질타하는게 아니라 얄미워서 그런 마음이 들었다. 진료실에 한번이라도 같이 들어가 줬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소스가 뭉텅이진 중국냉면의 땅콩소스를 잘 풀어주는 무심했던 표정과 애쓰는 손길에서 둘 다 어쩔 수 없이 서툰 마음었다는게 느껴졌기에 이러한 마음도 그냥 단지 제3자의 뾰족했던 마음쏠림이었음에 잔소리를 멈춰본다.

기하가 이전 직장의 명함 뒷편에 황급히 휘갈기며 현재 연락처를 적어 줬더라면, 지금은 거기 다니는데 조만간 관두려한다 흘리듯 말해줬더라면 재하는 어떤 마음으로 우편을 보냈을지 생각해본다. 그땐 아니었고, 지금은 달라진 마음쓰임이었다면. 결국 그때 기하형도 어렸구나, 어려서 그랬구나로 점칠되었을 텐데. 그래서 아쉽고 마음이 또 한번 정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게 된다.

내가 두고 왔던 마음의 계절. 멀찍이서 보면 단란했던 가족사진. 그 속에 재혼가정이었는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의 어색한 관계가 보이지않는 벽에 가로막혀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애쓰는 새어머니와 밀어내는 아이, 치료에 애쓰는 새아버지와 짐짝처럼 여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아이의 맞닿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인화된 사진에서 여느 가정에나 있을법한 두툼한 앨범에 끼워진 그 한장이 소중하고 그리워진다.

최선을 다했고, 되려 친자식보다 타인의 자식에게 시선이 걸려있던 순간인데 그 땐 몰랐다. 그리고 그 때의 부모 나이를 넘어선 기하와 재하는 뒤늦게 마음을 더듬어 본다. 자책을 못하지만 그때의 자신들과 그때의 부모에게 미안함 뒤늦게 들이민다. 이제서야 그리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바뀌진 않겠지만 그렇게라도 그 시절을 꺼내먹는다면 두고 왔던 시절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오래 곱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그대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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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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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저자의 글맛과 박정민 대표의 실행력의 조합인데 이걸 듣는소설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만큼 오디오북으로 먼저 접해야 할지, 늘상 읽는 방식인 지류책으로 마주해야할지. 이미 소개글을 통해 오디오북에 캐스팅된 리스트를 보니 대충 그들의 목소리가 알아서 구현 될 테니 나는 당연하게 문자들을 통해 눈앞에 영상을 구현하고, 음성을 덧입혀보기로 했다.

책 표지 때문에 이게 청소년소설인가 싶기도했다. 뭔가 18세 소녀의 덜 익은 여름의 찰나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서 로맨스학원물인가 싶게 만들기도하는데, 표지가 잘못했다 싶을 정도로 어른의 뜨겁고도 강렬했던 여름 한 가운데를 넘어가는 시절 이야기였다. 책 박스라고 표현하는게 맞나? 책 커버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비디오 대여점을 연상시키는 고전 테이프 곽의 형태를 띄어서 어린 열매와 할아버지의 추억 연결고리인 영화 마스크가 가진 상징성을 책 겉면에 옮겨둔 느낌도 들었다.


책이 가진 무드는 딱 이거라며 단정지을 순 없겠으나 각각의 단락에서 풍기는 늬앙스가 영화 리틀포레스트, 넷플릭스 너의 시간 속으로, JTBC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스틸컷을 옮겨온 느낌을 받게했다. 이것들이 전부 내가 애정하는 영상과 이야기들이라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뭔가 깔끔하게 끝맺어지는 엔딩도 이른바 권선징악의 착한사람들은 모두모두 행복하게 되었습니다를 향한 마침표도 없으나 자신의 삶에서 유난히도 덥고 길었던 여름을 무난히 버텨냈고, 완주라 할 수 있는 만큼의 시절을 겪어낸 열매의 한 계절을 담아 둔 듯 하다. 오로지 열매의 입장에서는 낯선 도서 완주에서 뒤늦은 성장통과 같은 또 한번의 사춘기를 겪어낸 것 만으로도 잘 살아왔음을 이야기 하고싶은거겠지. 그러니 완주라는 곳에서 첫 여름을 보낸 의미가 제목에 가장 뚜렷하게 자리잡고있고, 처음 겪고있는 마음들 속에서 외면하거나 방치 하지 않고 잘 살아온 것으로 완주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게된다.


인생을 사계절로 놓고 봐도 열매의 시절은 완연한 여름이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서 있는 시간도 있을테고 어저귀 근처 숲들처럼 나무들이 가려주는 그늘덕에 한템포 쉬어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을 떠올리게하는 양미를 보기도하고, 가장 단순한 먹고사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 된다는 걸 수미 엄마를 통해 뱃속의 든든한 안정감을 찾기도한다. 애라를 만나는 순간에는 열매가 돌아가야 할 곳을 알려주며 더이상 외면하지 않아야 하는 현실을 비춰주며 이야기의 중 후반부에서는 열매의 여름이 다 끝날 즈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구나를 예상하게 만들었다. 사는것, 살아내는 것이 버거워 질 즈음 열매는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순간을 끄집어낸다. 이른바 사람이 살면서 아무런 걱정 없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현재의 고난을 회피하고 외면하려는 것이기도했다. 그러면 이 순간이 덜 고달프니까. 그러니 열매에게는 할아버지가 비빌언덕이고 빡빡한 세상의 도피처이기도했다.

수미가 밉지만 마냥 미워하긴 열매가 그녀에게 의지하고 함께했던 시절이 불쌍해진다. 그래서 일단 생존이나 해 있으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어차피 내 손을 떠난 돈. 당장 갚으라해도 현실적으로 안되니 주구장창 미안해하며 야금야금 갚아나가길 바라는 해탈의 마음이 기록되어있다. 자신이 하는 성우일이 마음만큼 되지 않고 그게 몸으로 퍼져 마음의 병이 육체의 상흔처럼 나타난거 같아 치료를 받는 과정도 초반에 나온다.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고단한 일은 한번에 와르르 쏟아진다. 그게 얄미운 어른의 삶이기도했다. 수미 엄마는 다 큰 어른으로 나오는 열매가 여전히 챙김받고싶은 아이인걸 들키게 만드는 인물이기도하다. 애틋한 관계였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남보다 못한 부모와 형제에게서는 사랑을 얻어내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수시로 고팠고, 틈틈이 곯아있었다. 그걸 무심하지만 툭툭 내어주는 수미엄마의 밥과 말에 잠시 눌러앉아도 될 안전한 공간임을 인식한다.

어제귀(강동경)은 영영 모르고 지냈을 시절의 일부를 채워주는 인물인데 진짜 외계인인지 사람인지, 허상은 아닌거 같은데 그렇게 존재하다 또 그렇게 상실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다 커서 하는 풋사랑같기도 했고, 열매가 가지지 못한 시야와 품어두지 못하는 성정을 갖고있는 허상의 키다리아저씨 같은 느낌. 키다리 청년이라 해야하나? 후반부 존재의 상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마냥 눈물짓진 않게되며 알아서 잘 살겠지, 또 알아서 다른 세상에서 어저귀로 살겠지라며 그의 평안한 순간을 응원하게 만들었다. 현재를 자각하게 만들고 열매의 일부가 투영된 듯 비슷한 상황을 하고있는 애라는 거울 같으면서도 데칼코마니는 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다. 군데군데 비슷한 처지와 직군, 그리고 현재의 상황. 콘트리트와 높은 벽, CCTV로 자신을 가두고 살 것인지, 전남친이 슬쩍 흘려둔 오디션 1차합격을 빌미로 그 틈을 벌려 나올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는 인물이다. 아무리 거울을 본들 나를 정확하게 볼 순 없지. 그러니 차라리 나랑 비슷한 사람을 마주앉혀두고 깨닿는게 확실함을 보여줬다. 이제는 나갈 시기가 된것임을 암시하는 애라와의 만남.

수미를 보면 순간순간 얄미움이 그득해지겠지만, 되도록 오래오래 꾸준하고 천천히 돈 갚으며 열매의 주변에 멀쩡히 살아주길 바라게 될 것이고, 살면서 숨차는 시기가 오면 잠잠히 생각에 잠겨 할아버지와 함께하던 어린날의 어떤날을 데려다 앉혀 둘 것이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던 여름은 잘 난거 같지만, 어찌 평생 여름이 안 올거라 예견하겠는가. 시간이 흐르는 것 처럼 계절은 돌고 다시 돌아 올 것이다. 그러니 다음 회차의 여름이 오면 열매는 지금보단 덜 고생하며 무던히 나고 있을거라는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게된다.

자극적이지 않아 슴슴하니 시원하게 훌렁 목구멍으로 쏟아내는 여름의 냉국같은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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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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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야기는 출간 될 때마다 찾아 읽게된다. 일상의 모습을 책에 옮겨담아두니 이질감 없이 내용에 빠져 들 수 있었다. 작년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 그러했고, 그 이전 작품들도 나에겐 하나같이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나만 알고싶은 작가라 하지만, 다들 아는 소설가. 한창 SF소설에 빠져 있다가도 저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읽어가다보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내 주변의 소리들이 소설로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골랐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공간이지만 다들 다르게 여기고,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장소. 어떤 이에겐 한없이 늘어지고슾 쉼의 공간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가시방석과도 같은 만남의 장소, 그리움이 곳곳에 스민 흔적, 그림자처럼 지내며 생계의 수단이 되는 일터, 한 없이 비교하게되는 보이지 않는 부의 계층점이 되곤 한다. 이는 소설속의 인물들만 여기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에 생각을 모아본다. 나 또한 그러한 상념을 해봤고, 내가 소설 속 인물 중 한명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는 세상에 등을 맞대고 살고 있음에 이번에도 사실주의적이며 현실반영이 그득한 소설이라 말하고싶다.


이놈의 방 한칸이 주는 다양한 감정과 각각의 이야기. 완독 후 내 방에 누워 멀쩡한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비록 온전한 내 몫이 아니라 은행과 공동지분으로 빌려쓰는 삶이지만 어떠한 굴곡 없이, 무수한 사연 없이 살 수 있길, 그저 무탈하고 평온한 방에 재미없다 한들 그리 잔잔하게 살고싶어지는 감정에 푹 절여든다.


📖홈파티_ '초대'와 '방문', '침입'과 '도주'로 시작됐다.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반드시 누군가 무대에 등장해야 했다. 혹은 반대로 사라지거나.

호의보다는 과시가 더 컸던 모임. 성민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연은 그리 받아들였으리라 본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과 함께 그나물에 그밥과도 같은 맥락으로 모인 사람들. 하긴, 삶의 갭이 크지 않아야 공감도 할 수 있고 대화도 통하기 마련이니까. 사회에서 통용되는 직군이 다르다 할 지라도 소득이나 소비의 형태가 비슷하면 이렇게 모여서 즐길 수 있음을 느낀다. 먹고 즐기는 것 하나부터, 입고 사는 것들까지. 그들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워낙 두터워서 그들은 초대와 방문이라 했을 지라도 이연은 그 무리에서 침입이었고 도주로 끝난 상황이었다. 성민이 섞어보려 했으나 전혀 섞이거나 동화되지 않는 홈파티였고, 인간관계의 무리였다. 이연은 이들과 평생 이웃하거나 평생 홈파티 일원으로 마주 할 일은 없을거라 여기겠지. 내 장담컨데 그 파티가 끝난 후 이연은 테이블 위에 올라가있는 와인안주마냥 주기적으로 씹히고 뜯길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다들 그러니까.


📖숲속 작은 집_ "그냥 대충대충 해.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별 차이'에 대한 감각이 지호와 나의 큰 차이였다.

돈에만 목적을 두는 사람, 돈에 마음을 얹어보는 사람. 그리고 돈 자체의 의미만 전해지길 바라는 사람, 돈을 건네는 사람의 진짜 목적을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 '별 차이'가 없길 바라지만 은주와 지호가 갖는 차이가 그렇게 다르다. 그 '차이'에 가려진 은주와 지호의 갈라진 틈. 그건 아마 평생가지 않을까. 지금은 같이 산다 한들 살아온 환경이 달랐고, 불리워지는 명칭이 다르며, 사회가 바라는 쓰임이 다른 둘이라 이 찰나의 차이에도 큰 갭이 숨어있었다. 숲속 작은 집에 있다 했지만 결코 작지 않고, 계속 달라지고 벌어질 차이가 될 것이다.

📖숲속 작은 집_ 그걸 보면 당장 알 수 있을 텐데 지호 앞에서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바지 주머니 속 '감사합니다'를, 구겨진 '감사합니다'를 손끝으로 마냥 만지작거렸다.

이 마음을 나만 느끼지 않았다는 것. 은주가 고심하며 적어둔 영어의 감사인사. 혹시 영어를 모를까봐 그 나라의 언어를 그리듯 적어두며 잘 보이는 곳에 가지런히 팁을 모셔두는 마음. 적어도 당신의 수고스러움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정중함이었다. 팁이 당연한게 아닐테지만 나의 사사로운 부스러기들을 치워주니 보고도 못본 척 해주고, 알아도 모른체 하며 이전의 상태로 돌려주는 사람에 대한 부탁이기도했다. 은주가 발견한 흔적은 내 눈에만 띄는 어긋남이지만 직접적으로 팁을 바란 적이 없었고, 금액에 따라 달라지는 처리 대응에 살짝 빈정이 상하는 건 오로지 그녀가 예민해서라고 생각할게 뻔한 지호.

근데 이게 참,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는게 단순한 보답과 보상에 대한 마음에서 시작된게 자신이 갖고있는 재력으로 의미가 넘어가고 자산의 상태와 그걸 대하는 마인드로 불이 붙듯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것이다. 성향일 뿐이었을텐데 지호의 씀씀이와 벌이, 은주의 재정상태와 한시적으로 중단된 소득의 정지상황. 꼭 이게 이 쪽으로 넘어가서 마음이 삐뚤어지는게 흔한 부부싸움의 시작같아 괜시리 머쓱해지기도 한다.

돈을 주는 입장은 마음의 표시인데 이에 대한 상대의 적절한 보상이나 당연한 고마움을 바라는 표정이 그려진다. 친정엄마-은주, 은주-현지 호텔 도우미, 은주-지호의 관계까지. 돈이 얽히면 티를 내진 않지만 티나게 되어있는 마음의 단차가 생겨버리는 기분이다.


📖이물감_ 차분하면서도 조금은 뻔뻔하고 활달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간부나 임원들을 보며 배운 바가 있다. 기태는 바로 그런 접대 자리에서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 하지 않은 말을 통해 원하는 걸 얻는 이들을 자주 목격해왔다. 그리고 그럴 때 상대가 넌지시 남긴 힌트를 열심히 주워가며 의중을 살피고, 아쉬운 이야기를 해온 쪽은 늘 기태였다.

이물감. 식도를 타고 역주행하는 역하고 기분나쁜 울컥거림. 그건 기태의 몸속에서 반응하는 작용 뿐만 아니라 기태가 희주와 지수를 대하는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흔적이 남는 마음과 미련이었다. 전 아내 희주가 잘 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 파트너인 지수가 마냥 자신만은 바라진 않는 것. 내가 없이도 잘되고, 내가 아니어도 잘 사는 듯한 그들의 세상에 미련이 있어 질척거리는 찐득함처럼 보였다.

외로움과 그리움. 그게 기태의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것으로 간주해본다. 보고 배운게 그런거라 적당히 밟고 올라가는 어투와 눈치껏 추켜세워주기도하는 기태의 말들. 그 말의 찌꺼기와 기태가 주변 여자들을 대하는 찐득한 미련으로 식도염은 평생 따라다닐거라 예견해본다.

📖빗방울처럼_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그 답 또한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하지만 대답 따위 아무도 들려주지 않을테지.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안부인사, 때로는 빈말, 또 한켠에서는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뭉툭한 한마디 정도. 그게 '므슨 일 있었습니까?'로 시작되는 대화의 시작이었다. 왠지 모르게 상대방이 이러한 궁금증의 질문을 받길 바라는 듯한 어슬렁거림이 지수에게 뭍어났다.

다들 궁금해하지도 않고, 궁금하지만 직접적으로 물어오지 않는 남편의 부재였다. 그 부재는 부풀어오른 벽지처럼 곪아 터진다. 지수에겐 무슨 일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는데 말 할 곳이 없다. 물어 오는 사람도 없다. 둘이 행복해야 할 곳에 하나가 없다. 그러니 애꿎은 물혹이 그 자리를 눌러 흠을 만들었다. 그게 꼭 먼저 가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이고, 자신을 탓하는 썩은 미련같기도했다. 전세사기도, 청약포기도, 빚을 떠앉고 대출금에 허덕이는 것 마저도 남편 준호에게 칼끝을 겨눈 듯한 것에 먹먹하기만하다.

빗방울 같은 누수의 흔적은 준호가 지수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이라 봐야할까? 이제 그만 울고 편히 떠나라는 듯 도배하며 말끔히 흔적을 지웠지만 지수에게 들리는 툭툭 투두둑 거리는 빗방울의 소리. 결국 집이든 지수든 준호를 그리워하는 남겨진 것들에 대한 애닳음이었다.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들이었다. 적어도 남들 눈치 안 보고 오롯이 내가 안녕하길 바라는 입장들. 각자의 단편 속에서는 겉과 속이 다르게 작용하여 겉으로는 다들 괜찮은척 했고, 실상은 문드러져있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그게 측은하고 꼭 나같고, 또 훗날의 내가 될 수 있을 듯 했다. 이러한 마음들은 절대 나를 비켜가는 적이 없던 상황처럼 보이기도했다. 각각의 단편들은 책 속에만 사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살면서 한번은 겪어볼만한 그리고 흔한 일들을 살아내는 사람들어있다. 그래서 이들의 안녕을 바라지만 다들 안녕하지 못할께 눈에 보였다.

가장 편히 쉬어야 할 그 공간이 가장 볼품없게 쪼그라들고 서럽운 눈물 짜내는 공간이 된 것 같아 측은과 동질감이 섞여들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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