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피버 - 긴 겨울 끝, 내 인생의 열병 같은 봄을 만났다
백민아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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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리디 어워즈 로맨스 E북 신인상을 수상한 백민아 작가의 대표작이 눈에 들어왔다.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통해 치유와 희망을 배우는 이야기로 나도 위로받고싶기도 했다. tvN에서 드라마로 제작되 2026년 01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하니 늘 그러했듯 영상화 되기 전에 원작을 읽어보며 글로서도 눈앞에 영상이 그려지는 신기함을 누려볼까한다.


일단 700페이지의 벽돌책. 얼마전에 500페이지도 근근히 읽었는데, 712페이지? 와... 나 괜찮을까 싶어하며 주말에 깨작깨작 책 앞부분을 넘겨 읽었고, 이후에는 생각보다 후루룩 읽어졌다. 마치 대본집을 읽는 느낌이랄까? 드라마로 제작되어 있지만 아직 방영 전 이니 대본집이 나온건 아니었다. 원작을 가지고 극본을 연출하는 사람도 원작자 백민아 저자가 아니라 김아정 드라마작가님이셨다. 그러니 이건 확실히 드라마를 위해 각색된게 아닌 원래 소설인데도 배역들이 각자의 대사를 갖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니 술술 읽혀들어가게했다.

완독 후 곰곰이 생각해봤다. 다양한 드라마를 챙겨보진 않는데,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들이 몇 개 있더라구.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드라마와 비슷한 결을 띄고 있는 뉘앙스를 얻었다. 이 소설은 이도우 작가님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따뜻함과 폭닥함을 갖고 있다면 이해가 빠르려나? 요즘처럼 자극적인 소재들이 난무한 컨텐츠들 속에서 잔잔하겠지만 그래도 여러번 눈길을 주고 싶은 사람 사는 이야기. 아픈 날도 있고, 더러는 오해로 가득차 있어 서러움으로 움츠러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곁에 있는 사람 덕에 살아낼 용기를 얻고, 더 잘 살아가고픈 욕심이 생기는 이야기. 딱 그런 결을 띄고 있어서 어찌보면 심심할테지만 또 한편으로는 슴슴하니 목구멍에 걸리는 것 없이 후루룩 넘기며 속을 뜨듯하게 데울 만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나에게 그들은 그렇게 기억이 될 듯 하다.

소설은 트라우마로 인해 상처를 안고 시골 학교로 2년간 근무하고 돌아갈 교환교사 윤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름은 따뜻하고 화사한 봄인데, 얼굴에는 곧 비가 쏟아 질 듯한 흐린 상태이며 교류도 적고 말수도 적은, 어둠이 가득한 봄선생. 그러한 무채색의 봄선생에게 나비처럼 다가오는 남자 선재규.(소설을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내가 나비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외형은 근육질의 키크고 사투리 짙은 걸쭉하고 장대한 청년이라는 점. 팔랑팔랑 나비가 아니라 저벅저벅 대형 나방이라 해두자( ͡~ ͜ʖ ͡°))

고2담임 윤봄과 학급 학생의 보호자이자 삼촌이며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 없는 윤봄과 정 반대의 결을 지닌 선재규. 윤봄이 아는 선재규의 처음과 선재규가 처음 마주쳤던 윤봄은 다른 시작이었고, 몇몇의 사건으로 인해 윤봄은 제 이름을 찾듯 환해졌고, 밝아졌으며, 과거의 오해들이 해결되지 않은채 딱딱하게 굳어져있던 편견의 꺼풀을 벗어낸 선재규의 뒤 늦은 성장의 시간이기도했다.

깍쟁이같은 서울여자와 투박하지만 내 사람 챙기는 것 하나는 기가막힌 시골 직진남의 조합. 유명한 대학교수 아버지와 수려한 외모의 배우 엄마 아래 부모의 장점만 물려받은 봄과는 상반된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혈혈단신으로 세상에 내던져 졌으며, 친 혈육도 아닌 어찌보면 남남이기도한 조카를 데려다 키우는 자수성가형이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곧은 남자. 보여지는 것에 익숙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밀이 많고, 보여지는 것에는 상관없이 내실을 다지고 자기 사람 챙기는 것에만 집중하는 성향마저도 다른 주인공이다. 일단 윤봄과 선재규는 어떠한 성정도 겹치지 않는 극과 극의 사람이다. 그래서 이 조합이 재밌다. 혼자 있으면 세상 단조로운 삶이지만 둘이 맞붙여놓으면 사소한것도 웃게되고 걱정스러운 일들도 별게 아닌 듯 되어버리니 각자가 가진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은 조합이기도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에겐 좋은 사람이 끌어주고 나서주기도 한다는 점. 한결을 걱정하는 교사 봄. 반 친구 세진의 예민한 내신관리에 같이 마음쓰고 불안한 마음을 잡아주는 한결. 부모가 없다는 설움이 덜하도록 애쓰는 삼촌 덕에 큰 이탈 없이 잘 자라주고있는 한결. 방관만 할 뿐 직접적인 도움의 손길이나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 속에서도 오갈곳 없는 어린 재규를 재워주고 마음써줬던 숙박업소 사장님. 배정된 업무에 대한 예민함보다 같이 으쌰으쌰 잘 해보자며 밥친구도 되어주고 걱정거리도 분담해주는 2학년 1반과 3반 담임 선생님. 첫 만남의 오해는 오해로 끝이나게 했고, 너무 사랑하고 애틋하고 잘하니까 더 잘 하길 바랬던 세진과 세진 부모&오빠와의 관계성. 답사 때 만났던 학생을 기억하고 가출임을 짐작 후 외면하지 않고 세진을 챙기며 낯선 곳에서의 불안함을 경험하지 않도록 챙겼던 필립의 귀한마음. 핑계의 구실을 삼고 싶었고, 저보다 잘난 동생이 얄밉고 그래서 모든 탓을 돌리며 자신의 잘못과 일그러진 행실은 외면하는 강자인척하는 약자 윤청과 다 져주고 큰 소란 안 일으키려하는 윤봄. 자연재해로 불안하던 밤, 자신의 집을 내어주며 동네사람들의 안위를 챙기던 재규.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를 챙기고 병원에 데리고가 검사하고 예방접종 놓아주며 버려진 생명에 대한 마음을 쓰기도하는 봄. 자신의 신변도 보장하기 못하던 낯선 중국땅에서 자기를 챙기기보단 남의 위험을 모른채 하지 않았던 청년 재규와 그 고마움을 알고 지금까지 함께하려는 중국 사장님. 각각의 단상들이 조금 뒤죽박죽 적혀있긴 하지만 어느 하나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엮여있고 설킨 관계이지만 서로가 꽉 붙들고 있기에 살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못하면 도움을 받아 볼 수도 있었고, 그 고마움을 앉고 살다 내 능력에서 해결이 가능 하다면 기꺼이 마음을 써가는 과정을 만나봤다. 사람 윤봄이 누릴 인생의 봄도,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깨우는 계절의 봄도, 마음을 다스리며 주변을 바라보는 공기의 흐름의 봄 마저도 선한 누군가로 인해 순풍처럼 밀려 올 수 있고, 밀려 보낼 수도 있음을 알게 했다. 봄이 모르고 살아온 재규의 어린시절을 보듬기도했고, 봄이 이야기 후반부에 겪게되는 마녀사냥과 그 사건의 실마리를 끄집어내는 것도, 내 사람 챙기고픈 애정의 공기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봄의 열병이 아니라, 세상 모든 기운을 끌어오는 따뜻한 세상의 시작과도 같은 그럼 봄.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선한 사람으로 살고싶어지게 만들었고,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2026년 1월부터 종영 후 마주하게될 그 해 봄 역시도 따뜻하고 산뜻하길 바라게된다.

우리에겐 이 봄이 다시 만날 수 없는 유일한 봄이니까.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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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우정 -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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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을 읽은 지 두 해가 지났다. 저자를 키운 두분을 떠나보낸 후 다시는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줄 알았다. 보고픔에 대한 해결이라기보단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속으로 삼키지 않을까 생각 했으나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이들이자 가장 이해하고 싶던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노년 탐구'에세이를 출간했더라. 역시나 저자다운 극복의 방식이구나 싶었지. 당신을 알고 싶다고, 나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말에 하나같이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삶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던 이들의 속내. 그리고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당신들의 진심에 대한 것들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랬을지도 모르겠고, 이야기를 하고팠을지도 모르는데, 어느하나 물어보거나 눈길을 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단절시켰을지도 모를 아쉬움에 페이지마다 마음이 쓰여 쓰다듬게되는 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사람 사는 이야기. 이번에도 나는 저자덕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알아가는 노년 탐구와 노년 예습의 기록이다.



📖일흔이 넘어도 여전히 내가 모르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 스스로 뒤통수 치는 기분 좋은 배신이, 삶에 숨겨진 또 다른 재미라는 걸. 그녀는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시시때때로 변화되는 세상이라 한치 앞도 모르는 내일이라 했다. 그래서 책을 통해 현재의 노년을 학습하지만 이 예측이 나의 노년과 같은 결을 띄고 있을 거라는 확신은 할 수 없다. 가늠을 하는 것이지 확고한 확정의 미래라 믿을 수도 없다. 이러한 마음이 이 파트의 정열님에게도 해당되는 거겠지? 그녀도 당신이 할미 래퍼가 될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비록 원하는 그룹의 새로운 멤버가 되진 못했으나 일단 도전이라는 걸 해봤으니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고 싶은 일에 용기를 내본 자신에게 오히려 더 고마운 마음이 든다는 뿌듯한 표정이 눈 앞에 그려졌다. '수니와 칠공주'의 최초 연습생의 자격도 주어졌으니까, 데뷔 준비하는 76세 래퍼 연습생이라는 신박함까지 얻은거잖아? 이래서 나이드는게 신나고, 재미난 것 같아 그녀의 세상이 부러워진다. 나는 잔잔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일상인데, 나보다 더 재밌게 사시는 것 같으니 샘이 나기도 했다.


📖'적응'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이 보여준 노년의 삶의 어느 시기보다 많은 것을 잃고, 많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었다. ... ... 그 시간 앞에서 어떤 이들은 당황했고, 어떤 이들은 분노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노년의 적응은 또 다른 말로는 노년의 감내 이기도 했다.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점이다. 부정하기엔 몸이 먼저 반응했으니 따르는게 마음을 덜 다치는 방식임을 알지만 뜻때로 되지 않아 서글프다. 그래서 당황하기도하고, 자책하기도 하겠지. 그럴수록 하루 세 끼를 건강하게 챙기고, 꾸준히 몸을 움직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로 하루를 채워 나가는 것에 습관을 가지라 일러주셨다. 나에게 대접한다는 마음, '잘 먹겠습니다'를 넘어선 '잘 살겠습니다'의 기도. 적응+훈련=열심히 살아온 당신이 그 증표라는 것에 고마워하기. 당연함이 제일 어려운 것임을 알려주는 말들.


📖노인들도 세상 살아가는 걸 배워야 해.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하며 살아가지 않도록.

폴더 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꿔 사용해보기. 키오스크 주문해보기. 무인 매장에 카드 인식 후 들어가보기. 딸이 배송 주문해주는 화장품 말고, 올리브영에 직접 가서 테스트 해보고 마음에 드는 화장품도 구입하고 적립을 해보기.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커피 주문해서 사진찍어 자식들에게 자랑하기. 카톡 어플 깔아 손주들과 일상 대화 나누기. 지금껏 안하고 못하고 살아 왔던 것에 야금야금 하나씩 할 수 있는 목록으로 전환해보기.

내가 친정엄마에게 가르쳐주는 지금의 세상살이 방식이다. 30여년 전 당신이 나를 키웠다면, 지금은 내가 당신의 새로운 시선이 되어 하나하나 일러드리고 있다. 어렸던 내가 넘어지면 일어나길 기다려주셨던 것 처럼, 지금의 나는 진땀 빼는 낯선 기계 옆에 나란히 서서 시연도 해보고 직접 하실 때엔 성질머리와 세트로 손이 먼저 가기보단 눈짓으로 그거그거 누르라며 어설픈 안내자로 살고 있다. 잘했다고, 다음에 또 한번 해보자 하며 살살 구슬리고 어르고 달래고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래도 딸이 곁에 있어서 배울 수 있네 라며 말하시지만,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당황하면 포기하지말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잘 모르니 가르쳐 달라고 말해보라고 전한다. 그러면 열에 여덜은 무조건 천천히 가르쳐 주실테니 타인의 손길을 거절하지 말라고, 혹여나 안 해주면 속으로 '에잇, 너도 나이들어 봐라!'라며 얄미운 악담을 읖조리면 엄마가 덜 부끄러울거라고 같이 키득거리며 웃어넘긴다.

노년은 모든게 멈춘게 아니다. 계속 배우고 얻어내고 쌓아가는 똑같은 생의 과정인건데 다만 그 소화의 속도가 더딜 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위축되지 말라고 말씀을 드리지만, 어느 시점부터 나도 움츠려 들까봐 걱정이되기도 한다. 우리 쪼그라들지 말자.


📖나는 결코 여든의 마음이 되어볼 수 없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저자도 그러하고, 나도 도그러하지만 온전히 여든의 마음을 스캔하듯 완벽하게 습득 할 순 없다. 그건 아마 일흔아홉도 못할껄? 그래도 우린 저자 덕에 짐작은 해봤으니까 막상 여든에 도래했을 때 덜 당황하고 의연하게 대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미리 맛본 여든의 세상에 감사하게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처럼, 한 노인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여러 눈길 중 하나가 되기.

나는 이 말을 듣고 지금껏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었나 아쉬워했다. 어린 것들에 대해서만 손길과 눈길을 주고 살았다. 어쩌면 그건 정말 당연한 사회 속 공동체가 가지는 자세 일 것이다. 헌데 그만큼 한 노인을 지키는 데에도 시선들이 필요했다. 목적없이 방황하는 사람이 없는지, 무언가를 하려는 행동에 더딘 움직임이 있는건 아닐지. 일단 기다려주며 시선은 따라가되 정말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사근히 다가가 의중을 묻고 손길에 보탬이 되는 것. 기다려보다가 누구의 손길 없이도 이뤄내어 제갈길을 가신다면 그제서야 시선을 거두어보는 것. 그러한 눈길을 습관화 해 보는 것. 당신의 노년과 나의 노년에 힘을 얻는 시선을 추가하고 포개어보는 방식. 절실한 세상살이임을 알고나니 이 문장이 기특해 계속 쓰다듬게 된다.



📖작가님은 아직 모를 거예요.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하루가 어떤 건지. 그분들에겐 어쩌면 작가님과 나누는 통화가 하루의 유일한 대화일지도 몰라요.

사춘기 시절엔 누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싶겠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아 아쉽고 서글퍼진다. 가족이든 친구든 세상은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여겨 입을 다물게되고 그렇게 옹졸해진 입가 주름은 더더욱 열기 어려워진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의 활동을 통해 '독거노인 안부 묻기' 봉사활동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자체 제도에 대해 무지한 것도 있겠지만, 홍보가 덜 된것도 있지 않을까. 몰라서 못하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이러한 활동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한지 홍보가 더 된다면 많은 이들의 소통과 다정한 참견이 버티는 삶에서 살아내는 삶으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토록 많은 띠지를 붙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하며 앞으로 있을 날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돌려 보게 될지도 몰랐다.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없으며, 지금 함께하는 가족들이 훗날에도 영원 불멸하게 존재 할 거라는 희망을 갖고사는 꿈 많은 인간도 아닌데 왜 앞으로의 시간들에 포기하는 법을 모른체하며 살길 바란걸까.

책 표지에 세로로 적힌 문장을 다시한번 매만져본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이 한마디를 통해 어느 존재의 인간이든 어떠한 형태로 변화되는 자신에게든 홀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른 포기를 통해 존재의 의미까지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있어 꾸준히 재밌고, 촘촘히 신나게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끝까지 재미난 사람이고 싶으니까!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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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 미깡의 술 만화 백과
미깡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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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지 못하는 주류의 세계와함께 철마다 먹는, 분위기에 맞춰 마시는, 상황에 따라 즐기는 술 이야기를 들어보며 어렵지않은 주류 만화 사전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즐겨보기로했다.

술 매니아 답게 목차는 1차와 2차로 나누어두었다. 1차에서 한잔, 2차에서 또 한잔 하자는 그런 의미겠지? 1차에서는 서양술을, 2차에서는 동양술에 대한 이야길 하는데, 아는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어 재미나고, 모르는 이야기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세계를 알려주는 듯 해 신기한 눈빛으로 그림을 따라가게된다.

미깡은 성인 이 된 후 이어진 술과의 추억도 꺼내어주는데 술쟁이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올려줬다 싶은 호프집 알바시절은 물론이고, 직장인의 퇴근 후 회식자리에서 마주하게된 폭탄주나 잊을 수 없는 신혼여행에서의 캔맥주에 대한 이야기. 매년 가족이 둘러앉아 매실 꼭지 따는 것은 물론이고(이제는 미깡의 딸이 그 일을 해준다) 100일 후 술만 건져내어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술정에 대한 소소한 일과들을 풀어낸다.

각 주류에는 짧은 호흡으로 술와 저자와의 인연에 대한 것, 마지막엔 술에 관한 지식도 알려주는데 길지 않아서 더욱 집중하기에도 좋았고, 각 회차속 소 주제는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 나같은 방구석 홈술러라면 그날그날 내 앞에 차려진 술상과 주류를 책 속에 담겨있는 회차와 맞추어 보며 한잔을 기울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나 1차 서양술에서의 폭탄주, 잭콕캔, 와인, 샴페인에 대한 파트, 2차 동양술에서는 희석식 소주, 막걸리, 매실주에 대한 기록과 내 추억이 많이 겹치는 것 같아서 더 빨리 읽혀지고 더 아끼게되는 페이지였다.


직장인생활 10년 정도 해 본 사람이라면 아는 회식에서의 폭탄주 추억. 코로나 이전에는 회식도 자주했고, 시작하면서부터 소맥 말아서 젓가락으로 잔 속을 탕탕 치며 섞어주고 후루룩 다 마셔버리던 기억이 가득하다. 퇴근 후 회식장소로 가면서 숙취해소제 종류별로 목구멍에 털어넣고, 가방에 선임, 부장, 이사의 몫까지 챙겨가서 하나하나 챙겨드리며 이쁜짓하려 애쓰던 시절. 이제는 그러한 회식 문화가 사라졌고, 부서장도 술을 즐기지 않는 분으로 교체된 후로 이러한 폭탄주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게된게 떠올라 다들 이런 직장인 시절을 겪어왔구나 싶어 공감이 되었다.

이제는 뭐 남편이랑 고기집 가서 소맥 한잔으로 즐겁게 시작하는게 둘이 즐기는 소소한 폭탄주가 명맥을 이어가고있는거지.

저자의 부부가 신혼여행지에서의 잭콕 캔 추억을 떠올려주었다면 나에게는 코젤 흑맥주가 그러하다. 처음 가본 체코. 처음 마셔본 짙은색의 맥주. 입술이 닿는곳에 얹어진 굵은 설탕 알갱이, 커피인가 카라멜인가 싶은 짙은 내음과 함께 들어오는 맥주의 향. 그래서 신혼여행 다녀온지 11년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다. 언제 한번 또 우리는 체코에서 흑맥주와 꼴레뇨를 즐길지 상상만 하곤하는데 이러한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한 순간으로 남는 듯 하다.


지금도 여전히 소주는 잘 못 마시지만 대학 1학년 때에 20도가 넘는 알콜램프 속에 빠진 듯한 그 아찔한 순간. 이걸 왜 마시나 싶은데, 한방에 목구멍으로 털어놓던 동기들, 다같이 내일이 없는 듯 소주병을 둘러놓던 선배와 교수까지. 지금이야 소주의 도수가 반으로 훅 줄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쓴맛을 한 병에 꽉꽉 눌러 넣은 듯한 소주 이야기도 담겨있다.


부지런한 엄마 밑에서 자란 딸래미들은 매실에 대한 기억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땡글거리는 열매를 씻고 말리고, 이쑤시개로 툭툭 떼어내는 꼭지의 잔손질. 너무 향긋하고 맛있게 느껴져 엄마의 잔꾐에 넘어가 아작하고 씹었을 때 손발끝이 저릿하게 느껴지는 신맛의 강렬함. 또 한번 딸래미 속인 것에 뿌듯해하는 엄마의 쳐진 눈꼬리하며, 그 사이 항아리 소독하고 닦아내고 엎어둔 것 다시 원위치 시킨 후 켜켜이 담느라 바쁜 아빠. 어떠한 의식을 치르는 듯 진지하고 각이 살아있던 손놀림까지. 은행에서 얻어온 숫자 큰 달력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매실주 뜨는 날. 그 날이 되면 또 한번 이뤄지는 매실주에 대한 경건한 손놀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했던게 남아있음에도 올해도 또 하는 우리집의 연례행사. 명절에 삼촌들 오면 챙겨주고, 감사한 사람들, 부탁해야하는 순간에 빈손이 부끄럽지 않도록 챙기게되는 고귀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던 매실주. 그래서 그런가 미깡의 술 이야기는 술에 대한 기록 뿐만 아니라 술이 가지고 있는 독자의 추억까지 끄집어 내는 능력을 갖고 있어 마음에 드는 그림 에세이로 남을 듯 하다.

술을 안 먹는 사람은 여전히 안 먹을테고,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알고싶고 다양하게 즐기고싶은 술의 세상. 어떠한 이야기는 추억을 끄집어내기 딱 좋은 향긋한 술의 단락이 있고, 에일 맥주 같은 파트들은 전문적으로 찾아보지 않는다면 모르고 지나칠 귀한 지식이라 알은체 해보고싶어지는 부분이다.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영화속 한잔, 거기에 더티 버전의 마티니라니. 언제 한번 바에서 시켜보고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파트.

사케집에서 맨 아래에 적혀있는 제일 싼 제품 말고, 이제는 알은체하며 라벨 보고 사케 고르는 능력을 키워보는 단락까지. 잔잔바리 지식으로 술쟁이 레벨 올리기 이만큼 좋은게 있을까 싶은 에세이.



뒤풀이 외전의 '좋아하는 술을 계속 마시기 위해' 애써야하는 필수 생활습관까지.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다양하고 맛있게 술 즐기려면 진짜 미깡의 말대로 해야 할 듯 하다. 먹는게 좋고, 마시는게 행복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즐기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미깡이 건내주는 주류 생활 모음이 근래에 만나본 제일 재미난 그림 에세이로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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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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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전 지식 없던 인간은 시봉이가 개라는 것과 어지간해선 도전 하지 않는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라는 것에 대한 압박과 걱정이 컸다. 일단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멀찍이서 관상용처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바라보는 것만 좋아한다. 이건 자라온 환경에 대한 영향일 수도 있을 듯 하다. 물론 온전이 이시봉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개-사람에 대한 연대가 있을법한 이야기에 젖어들며 편히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이해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며 읽으려 도전했다. 일단 휴가 때 읽으려 했으나 근 한달이 걸려서야 완독하게되었고, 명랑한 이시봉을 앞세운 채 서로의 전유물로만 남기려했던 각자만의 사랑과 욕심 속에서 상황에 관계없이 반박없고 원망없는 이놈, 이시봉 요녀석만이 견주를 향한 애틋한 시선뿐임을 알게되었다.


제목부터 여기 주인공은 시봉인 듯 하지만, 남겨진 시봉을 데려다 키우는 시습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리고 시봉을 데리고 왔지만 여기엔 없는 아버지. 시봉의 부모, 그 부모를 보살피던 김상우와 박유정이 두터운 이야기의 핵심일테고, 시봉을 둘러싼 어딘가 하나씩은 헛점이 있는 정용, 수아, 리다, 동생 시현의 세상이 그려지고, 시봉을 데리고 왔으나 지금은 사망한 아버지 주변으로 동료였던 이시봉아저씨를 통해 차마 가족에게 꺼내지 못했던 회사에서의 이야기들을 듣게된다. 김상우와 박유정, 그리고 앙시앙 하우스의 대표인 정채민이 비숑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려 했던 이유. 그리고 박유정의 아들인 김태형의 존재까지. 거기에 사이사이 끼워지는 비숑과 스페인 왕가의 이야기는 너무 촘촘하게 설명이 되어있어 진짜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해 나 마저도 시봉이가 진짜 왕가의 뼈대있는 개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빼곡한 글 뿐이며 어떠한 사진이나 그시절 초상화로 남겨뒀을 법한 그림이 삽입되어있지 않음에도 눈에 그려지는 풍경들. 허리는 잘록하고, 치마는 풍성하며, 목이 버텨줄까 싶은 부풀린 머리를 한 왕비 마리아 루이사와 그녀의 머리스타일을 빼다 박았을 듯한 비숑들까지. 바로 직전까지 그들의 초상화를 본 것 처럼 선명해서 역시나 저자다운 표현력에 감탄하게된다. 그래서 계속 홀린듯 보게되고, 또 한편으론 시봉이 쟤가 뭐라고를 연발하며 이들의 격한 감정들을 따라가게된다.

소위 그사세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과 사뭇 다르다는 것. 자기들만의 나라가 있는 듯, 그 곳에서는 그들이 만든 룰을 따르고, 그들이 창시해낸 역사를 이어가려는 것. 그게 내가 만난 앙시앙 하우스의 꺼풀이였다. 정채민 대표가 꾸려놓은 판에 뛰어든 사람들. 그게 법이라 믿고 행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속게 되고, 빠져들게 되며 비숑들을 추대하게 만드는 과정. 하필 거기에 시봉도 한 몫 할 수 밖에 없는 뿌리였음에 시습이 정채민 대표를 외면하더라도 한 번은 앙시앙 하우스를 밟게 되어, 이 사달이 나게 되지 않았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번은 겪었어야할 시봉의 혈통이 가진 마음아픈 역사 정도?


이시봉은 사람의 이름을 띄고 있지만, 결국 개다. 그리고 그 개의 마음을 빼다 박은 시습을 통해 세상을 흘깃거리며 주변을 보게 만든다. 백수 청년. 새벽에 시봉과 아파트 뒷산 산책과 공원 혼술 걸치고 내려오는 한량같은 삶. 학교 중퇴에 무력감만 쥐고 사는 듯한 청년을 따라가다보면 그와 반대로 사는 여동생 시현의 세상도 보게되고, 헬스에 미친 정용이나 입이 험한 편의점 알바생인 수아를 통해 웹툰같은 인물들 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인물들로 다시금 덧씌워진다. 사람과 대면하는 것 보다 개와 마주하는걸 편하게 여기는 사람. 그리고 가족보다 더 애틋한 관계 속에서 '이 작은게 뭐라고....'를 연발하며 명랑하고 짧으며 투쟁 없으나 반박도 없고, 무얼해도 견주만 바라보는 이 놈의 순수한 본능 덕에 사는 것임을 느끼게 만든다.


박유정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종교인이 종교만 생각하고,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만 생각하고, 고리대금업자가 이자만 생각하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만 보려만 한다는 점. 그게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풀어내는 사랑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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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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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총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이야기를 이끄는 '장'에게 이유없는 납치 이슈가 보이는데 이걸 기점으로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닥쳐온건지를 풀어낸다. 1부는 책 제목과 동일한 말뚝에 대한 이야기. 장이 살고있는 대한민국, 그리고 장 앞에 높여진 말뚝으로 인해 세상이 주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마지막 3부는 장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한 이유를 하나씩 쓸어담으며 어떻게 정리하는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왜 하필 장에게 이러한 시련들이 몰려왔던건지를 알려주는데, 왜 그리 말뚝만 보면 이유없이 눈물이 난건지 알려주는데 후반으로가면 장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짠함보다. 장을 둘러싼 세상을 사는 이들의 짠함에 뜨거운 눈물을 보태게된다.


다들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장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다. 해주와 더 오래 함께하고싶었고, 태이가 미운 날도 있었으나 그냥 어디서든 잘 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진희 선배에게 업무 압박으로 출근하기 싫은 요건 하나가 더 추가되지 않았음 하는 마음도 컸다. 행원이 된 후 시작이 지역으로 파견이 아니라 본사에 있고 싶었고, 왜 자신이 유부녀를 꾀는 사람으로 오해받아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왜? 왜? 내가 왜? 라는 물음을 세상에 던지지만 수긍할만한 그럴듯한 답은 얻지 못한다.

태이의 유품을 들고온 데보라가 장의 차에서 틀던 데이식스의 해피를 들으며 장이 원하는 삶이 딱 이거라 싶은 느낌을 받는다. 더욱 서러운건 그 노래 가사마저 자신이 행복하다는 느낌표 가득한 말들은 하지 않는다. 계속 물음을 던진다. 그런 날이 있을까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대로 계속해서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요? 라며 이만큼 힘들었는데 이제는 행복해도 되는거 아니겠냐고 답을 정해놓고 계속 묻는다. 그냥 쉽게 쉽게 살고 싶은데 장의 하루하루는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 딱 이 노래의 가사 화자가 장을 보고 쓴거라 보여지는 말뚝들 속 장의 세상이다.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세상이기도하다.

결국 소설 속 장이나 현실의 나나 뭘 더 얻으려 하는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돈다발이 뚝 떨어지길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삶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한 사람인데, 그게 어렵다. 아마 말뚝이 된 이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욕심을 내고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계엄 상황까지 만들어 세상을 흔드는 자들 만큼의 힘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걱정없이, 매일 웃는 날을 바라는데 그에 대한 답은 어느 누구도 주지 않았다.

불행은 순차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분배가 되지 않는 항목이라는 점이 야속하다. 돈 50만원이 없어 대출을 신청하지만 그마저도 자격이 되지 않아 거절당하고, 직급에 눌려서 부당한 지시를 받기도한다. 시작점이 다르니 누군가는 쉽게 얻는 것이 다른 누군가는 목숨을 담보잡힐 만큼의 어려운 순간이라는 점에서 말뚝들을 보면 얼마나 애닳고 살았을까 싶음이 전해져 눈물이나고 마음이 쓰인다.

순탄한 적이 없던 삶, 불행은 연거푸 들이닥친다는 머피의 법칙보다 무서운 룰, 매번 두가지의 선택지를 모두 쥘 수 없는 밸런스 게임 같은 세상이다. 장의 명함을 입에 물고 말뚝이 된 자의 행적을 따라 갈 것인지, 반대의 세상을 사는 대민그룹의 차남의 꽁무니를 따를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만 놓고 봐도 장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그간 살아온 삶의 판세를 바꿀 수 있는 패가 될텐데 아니나 다를까 욕망보다는 사람답게 사는 것을 택한다. 이걸 고르면 변하지 않을 빤한 세상이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그걸 고집한다.

어느 시점부터는 장이 왜 납치를 당했는지, 왜 그냥 돌려보낸 건지, 진실로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쏠리지 않는다. 이건 말뚝 1호가 왜 명함을 입에 물고 그렇게 세상에 떨어진 건지 궁금하지 않아하며 빨리 수습하거나 가림막으로 주목 받는 것을 차단하려는 걸 통해 세상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건을 덮고, 시간이 흘러감에 자연스레 잊혀지길 원하고 있음도 내비쳤다. 장의 사건을 진지하지 못하게 받아들이는 형사, 말뚝을 가리고 담아가는 것에 어떠한 이유도 묻지 않고 위에서 지시하니 그대로 따르기만 하게 되는 행동. 이상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반박하지 않는 시대상이 책 속에 옮겨 져 있다.

한무더기로 나타나 울게 만드는 말뚝들. 사람들이 실컷 울고 마음을 쓸 시간을 안 줬던 그간의 사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쟝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사건을 되돌려보면서 계속 나를 탓하고 나를 원망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하필'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 원망이라도 해야 덜 억울하겠다 싶은 무수한 사회적 재난들. 잔잔하던 세상에 어느 날 느닷없이, 그렇게 훅 하고 들어오는 슬픔은 꽁꽁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 아니었다. 그렇게 바닷가에도 머물러있고, 광화문 광장에도 몰려있고, 내 집에도 머무르고 있었다. 매일 마주했지만 외면했던 슬픔의 덩어리들이다. 맘 껏 애도하길 바라며 말뚝은 눈물을 끌어냈고, 속이라도 시원하게 눈물을 흘리게 판을 꾸려주었다. 내 앞에 당도한 슬픔마저 물리적인 것들로 인해 제지 당하지 못하도록 아주 옴팡지게 울어주고 마음써주고 싶어진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재력이든, 사회적인 지위든, 명성이든 할 수 있는건 다 해보는 무서운 사람들. 사건은 덮어버리는 대기업의 차남, 계엄을 선포한 나라의 대표와 반대되는 사람들. 밸런스 게임에서 누가봐도 질 수 밖에 없는 선택지인 이들을 알면서도 지지하는건 우리의 삶은 장기전이기 때문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동행하게된다. 그놈의 '언젠가'를 믿기 때문에 그 마음이 모이고 모여 몸집을 키웠을 때의 한방을 믿기에 지는 싸움에 미련함을 덧대는게 아닐까.

뭘 더 크게 바라지 않는다. 바라는게 크면 되갚아야하는 것도 그만큼 늘어나니까. 그러니 딱 내가 감당 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욕심내지 않고 쥘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을 원하게된다. Tell me it's okay to be happy!


📖하니포터 11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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