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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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이야기해주는 어린시절 이야기. 많이 생각하고 고민 한 후 꾹꾹 눌러담아 보였던 시집 속 몇 안되는 단어들 말고, 좀 더 편히 이야기하며 툭툭 건네주는 여린 저자의 성장과정. 엄마의 빈자리 보다 할머니의 부재가 더 두려웠던 시절. 오랜 시간은 아니나 함께 이야기하고 일상을 나눴던 아버지와의 추억. 또래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 어린이 친구들과 마음을 주고받았던 순간들까지. 귀한 마음들 덕분에 저자는 인생의 뜨거운 여름의 한복판과도 같은 순간을 무탈히 지내왔음을 느낀다.

저마다의 상처를 갖고 있으며 그걸 어찌 버티고 어찌 겪어내느냐에 따라 인생을 마주하는 마음이 달라 질 수 있음을 저자를 통해 배워간다. 조손가정의 어린이로 성장했음에도 잘 자랐고, 잘 컸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부모의 부재로 인해 모자란 애착형성의 아쉬움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삶을 살아 가는 과정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살아가며 겪게되는 아픔과 슬픔, 환희와 기쁨의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품는지를 잘 배웠고, 기특하게 잘 써먹으며 멋진 어른으로 살아주고 있음에 대한 감사하다는 의미이다.

우린 각자의 슬픔이 가장 깊고 아픈 것이라 말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제일 불행하다는 듯 떠벌리는게 영웅심리 중 하나의 갈래인 듯 한데 저자와 독자가 바라는 방향은 그게 아니다. 내가 겪어낸 순간은 아팠지만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니며, 때때로 떠올리며 시절을 잘 살아낸 어린 나를 애틋해하며 잘컸다고 다독여주자는 눈짓 정도? 내가 나를 알아봐주고 위해주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니 우리의 여름이 축축한 장마의 시간을 거쳐 반짝이고 환한 맑음을 바라며 살아보자며 싱긋 웃는 느낌을 가득히 전해받기로 한다.

📖자랑 같지만,_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밥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끼 식사를 위해 집을 치우고 장을 보고 그릇을 닦으며. 몸에 좋고 마음에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시간은 새벽 2시 13분. 밥을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밥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대해 시를 써야겠다고 혼자 생각합니다.

자랑 맞지.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걸 맞춰주고픈 마음. 내가 당신을 위하고 있으며 당신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는 표현. 비싸고 좋은 것도 분명 좋은 대접이겠지만 정성과 노력을 담뿍 담아 내 손으로 상대를 위해 무언가 해 줄 수있어 뿌듯한 감정을 얻는 다는 것. 어릴 적 할머니가 어린 저자를 키워낸 방식이 그러했고, 그러한 노력의 맛을 꼭꼭 씹어 먹고 자란 어른의 저자도 할머니를 닮아 그 표현을 대물림 받아 표현하는 것. 받은 만큼 표현 할 수 있고, 얻은 만큼 나눌 수 있는 감정의 전달과정. 이 책은 어린 시절 자신을 먹여 살린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이며, 그 기억으로 잘 먹고 살아내고 있다는 자랑과도 같은 손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햇빛 냄새_ 하지만 슬픔 없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슬픈 것은 슬픈 대로 그대로, 조금 더 두기로 했다.

1부의 이야기를 보면 울컥하는 부분이 많다. 할머니와 오이지. 아버지의 눈물, 에어로빅과 성난 마음, 부드럽고 고소한 호두맛 아이스크림. 외로웠고, 가난했고, 그래서 때때로 서러웠다. 그게 왜 아이의 탓이겠는가. 하지만 어른들은 어찌 할 수 없음에 화를 낸다. 아이를 향한 화가 아니라 이러한 여건에 대한 울화지만 아이는 눈치를 보게되고 움츠러들게된다. 결핍은 불안을 당겨왔고, 불안은 또 다른 걱정을 황급히 불러들여온다. 엄마가 없는건 괜찮지만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앞선 걱정. 자신은 아직 아이인데, 어른이 되려면 멀었는데 할머니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 듯 해 조바심도 난다. 그래서 저자는 어린 시절 자신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할머니와 아빠, 친구들이 주변을 에워싼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산다. 그래야만 지금을 살아내는 데에 덜 외롭고, 덜 무서운 듯 자신을 방어한다. 욕심처럼 움켜쥐고 붙들여 놓을 수 없는 시간이며 존재들이다. 그러니 기뻤던 순간도 슬펐던 순간도 다 안아들고 산다. 존재의 부재를 부정하는 것보다 순응하며 그마저도 담아주는 삶이 덜 슬프고 외로우니 말이다.



📖당신의 여름 과일이 궁금합니다_ 두려움도 미움도 잊어버리고 문득 '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하게 되는 마음이. 그러니 매일 아침 현관문을 나서며 상상합니다. 저 방에서 할머니가 나와 오늘 나에게 하나의 심부름을 준다면 무얼까.

-기쁘렴.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수박이 이렇게 뭉클한 과일이었던가. 스스로 해 보도록 바라봐주는 과정과 설령 잘 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타박하지 않는 마음. 그럴 수 있다고 직접 겪어보게 만들어주며 그 실패의 결과 또한 어른이 먼저 감싸안는 방법. 할머니가 깨우치도록 하는 방식은 그런 것 이었다. 조손가정이라고 스스로가 할머니 힘들지 않도록, 적당히 잘 하자는 마음이 더 큰 아이를 위해 할머니는 당신의 울타리 안에서만이라도 다 괜찮다며 그럴 수 있다는걸 알려주고픈 수고로운 행동에 어린 저자는 더 많은걸 배우게된다. 수박보다 크고 달큰한 것은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그러고도 혹여 네게 힘이 남아 있다면_ 선물을 받은 그가 그것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이뤄내고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뜻밖의 선물처럼 여기면 좋겠다. 길을 걷다 우연히 옷깃 속으로 떨어지는 조그만 낙엽 같은 기쁨 정도면 좋겠다.

나눔과 베품. 그러한 마음들을 강요하거나 닦달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자라온 환경이 그러했고, 키워낸 어른들의 성정이 그대로 스민 것일 뿐. 때론 감사했고, 또 어떤 날엔 서러움에 눈물이 장판위로 올라온 빗물만큼이나 가득 할 때 얻어진 외로움. 그냥 그걸 덜어내기 위한 마음이었고, 나만 덜어내기엔 또 미안한 마음이 큰 감정이니 같이 덜어내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타인의 기대와 반응, 그리고 주변의 시선보단 오롯이 내가 덜 슬플 방법과 내가 덜 아플 방법을 찾아낸 것 중 하나의 선택지라 보여졌다. 나 좋자고 하는 선행이고, 내가 뿌듯하자고 하는 마음의 나눔 정도. 그러니 이 마음이 잇닿은 너머의 누군가는 혼자라는 사실보다 기분좋은 호혜의 순간을 얻었다고 바라게 되나보다.

행복했던 순간은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찰나였으나 그 찰나들이 있었기에 제법 괜찮은 어른으로 클 수 있었다. 겪어낸 시간들 덕에 편히 슬픔과 상반되는 행복의 감정을 모두 알려줄 수 있는 이야기꾼이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할머니, 아버지, 후배와 언니들, 남편과 반겨동물 둘, 계수나무 숲과 아이들의 편지. 우리도 익히 아는 단어들 이지만 이 단어가 저자의 곁에선 이야기가 되고 살아가는 양분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시인의 여름이 책 표지만큼이나 더 푸르고 반짝이나보다.

나를 에워싼 단어들이 무엇으로 이뤄졌는지를 떠올려본다. 나도 그 단어들 덕에 살아냈고 살아갈테니 말이다. 부디 내 삶의 여름도 물기 가득 머금은 그런 날 보다 반짝이며 환한, 그렇지만 때때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런 싱그러운 순간으로 남아주길 바라게된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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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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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사실주의 라는 틀로 엮어진 글을 읽었던 책을 읽은지 반년이 흘렀다. 월급사실주의에 옴팡지게 젖어들어 사는 직장인 나부랭이로서 올해 두번째로 출간된 이 책을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실정이다. 입에 풀칠하는 것에 애쓰며 사는 사람인지라 또 이렇게 이 세계에서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걸로 위안 받으려고 책을 들게된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이라니. 내 주변 사람이 이런 캐릭터로 불리운다면 얄밉기도 하겠다만 부러움이 더 크지 않을까. 인성이 개떡같고 지랄맞아도 일이 잘 풀리고 하는 것마다 인정받아 능력치에 대한 보상이 두둑하다면 그보다 좋은건 없을테니 말이다. 때때로 밉상짓이라 할 지라도, 하는 짓이 마냥 이뻐보이진 않더라도 한 번 쯤은 나도 요렇게 인성에 비해 잘 풀리는 뭘 해도 되는놈이길 바라게된다.




📖등대_ 궁지에 몰리면 자신 같은 종업원을 보호해주지는 않을 테다. 그렇다고 앞에 나서 저들에게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느냐며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잘 지켜보다가 위험을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어떻게든 그 세상 속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위치.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듯한 바쁜 사위. 그렇게 유용한 인재가 되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짤리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게되는 수습직원. 정직원 전환이 뭐라고, 이 과정만 잘 버텨내면 정식 직원이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 정신이 팔리고 앞에 뵈는게 없어지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세뇌. 그렇게 달달하게 유혹하고 빨때 꼽아 쪽 빨아먹고 위기의 순간엔 가장 먼저 내동댕이 쳐지게되는 위치.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워가면 더 많이 보이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건 밑바닥을 밟기만 하지 빗자루로 쓸어본 적 없는 인간들의 하는 조직생활의 허울 아닐까.



📖두 친구_ 적어도 의료보험을 내주고 일정한 급여를 주는 직장이 생겼다는 면에서, 또한 가족이 아닌 어딘가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면에서, 지현에게 조무사 일은 일종의 구원이었다.

한참동안 없는 사람인냥 지낸 시간들이 길었던 사이. 친구였으나 지금은 친구라 말하기도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 한 사람은 환자로, 또 다른 한 사람은 간호조무사로 같은 공간에서 만난다. 단박에 알아 볼 만큼 오랜 기억을 나눈 사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떠올려보니 한 때 친구라는 관계로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는 것. 이제와서 새삼스러운 듯 반가워하며 그간의 안부를 물어보고 하지도 않을 밥 약속과 만남을 기대하며 얼굴 보기를 바라는 반가움을 건네본다. 그 시절엔 똑같은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입장차이가 한겹 더 씌워진다. 갑과 을로 따질 순 없겠으나 사람이, 결국은 직업이, 어쩌다보니 상황이 그렇게 높고 낮은 격차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런가? 눈대중으로 재어보며 자신이 한 단계 더 높다는 이들이 으레 그렇듯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네게 되고, 보다 아랫단은 밟고 있는 이들이 마뜩치 않지만 빨리 대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대답을 얼버무리곤 한다.

이러한 관계까지 친구라 하는게 맞을까?



📖식물성 관상_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이해하는 척하며 마음에 없는 말을 마음에 있는 말처럼 하는 게 일을 잘하는 걸까? 그러다보면 '자낳괴'가 되는 걸까?

비건 식당의 매니저로 스카웃 될 수 있었던 것. 관상? 관성? 분위기? 결국 오너가 잘 쥐고 이리저리 흔들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기에 가능했던걸까? 군말없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자신의 견해는 철저하게 배제한 피노키오같은 그런 직원. 사업가의 마인드는 그렇게 돈을 쫒고, 신념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해가는 인간이어야 짤리지 않고 밥벌이가 가능한 거겠지. 식물성 관상은 물주고 햇빛주면 주는대로 잘 받아들이고 키워내는 반항기 없는 그런 관상임을 착하게 그려낸 허상으로 보여졌다. 보이사 밑에 있게되면 자발적 식물성 관상으로 변해 주관이나 객관이나 모든 관념을 버려 둔 후 일해야 할 테니 나는 죽어도 그짓거리는 못하겠다. 결국 나는 태생보다 삶 자체가 식물성 관상은 아닌걸로.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파트에서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국소설이 드물다.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작년에 출간되었던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보다 좀 더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특수성을 띤 직업군보다는 다수가 경험했거나 다수의 손을 거치는 직업군에서 일어날만한 에피소드를 담아냈다. 그리고 한번 쯤 생각해봤을 만한 갈등을 특수한 상황으로 몰지 않고 으레 겪어야 될 만한 과정의 일부처럼 담아내어 나만 겪을 일이 아니라 나도 겪을 일로 풀어주어 나만 특이한 인간으로 내몰지 않아 고맙게 느껴졌다.

보여지는 건 화려한 프리랜서의 아나운서 이지만 매 회 재계약을 기대해야했고, 실적이 안 좋으면 다음번은 없는 삶이었다. 당장의 평온보다 다음을 위한 관계 유지가 중요한 것. 그래서 더욱 허탈해지는 나란놈 포장방식에 무딘 인간으로 살아야 했다. 돌봄교실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교육 가치관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헸고, 그 와중에 비용 수급도 확실히 해야했다. 아이들에겐 착해야했고, 돈앞에선 냉정한 사람으로 버텨야 하는 극한의 감정 노동이 필요했다. 단순 사무직이든 서비스 직군이든 특수성을 띈 작업자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 무리에서 적응을 해야했고, 수습 직원에서 정직원 전환을 위해 눈칫밥도 체할만큼 먹어야만 사위가 뚜렷하게 구분이 되었다. 그렇게 목메이듯 산다고 모두가 목구멍 뚫리는 사이다를 얻을 순 없었다. 가장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나가리(국어사전에 등재된 명사 맞음)될 수 있다는걸 잊지 말자. 조직세계에서 선입선출은 당연한게 아니다. 시작은 같은 학생이었으나 그 갈래에는 무한한 변주가 있다. 한 때 같은 교복을 입고 다니던 학교의 같은 반 친구라 할 지라도 성인이 되고 밥벌이를 시작하고 내 갈길 찾아 가고나면 학창시절의 동등한 위치는 모두 옛말로 쓰여진다. 그래서일까? 앳된 얼굴이 아직 남아있어도 이름도 알고 얼굴도 눈에 익은 사람이지만 먼저 알은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못나고 니가 잘난 문제가 아니다. 엮였을 때 좋을 거 없어 뵈는 각자의 삶 바운더리 때문인 것이다. 니가 잘나서 피하는 것도, 니가 나보다 못해보여 무시한 것도 아니였다. 그냥 그 상황을 겪어야하는 과정이 피곤해서 그렇더라구. 알바의 세상은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조건없는 모임의 장이었다. 조건이 필요 있겠나. 결국 시급 맞춰 몸써가며 돈 벌려고 모이는 목적만 가진 컨베이어 벨트 앞 작업자 1과 2로 구분되는 것 뿐이다. 웃긴게 여기서도 지들끼리 서열을 나누고 공장밖에서는 좀 더 잘난 사람으로 살았더라는 라떼시절을 들먹거리는 걸 보면 여기든 거기든 왕노릇 하고 싶어하고 가르치려하는 사람들이 꼭 하나씩 있더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와중에 나는 잘난놈, 니네랑은 다른 놈을 티내고 싶을까? 프리랜서라고 계약된 금액을 제공받고 작업을 할 때엔 그 역할만 수행하는게 돈에 대한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주는 입장이라고 통역사의 사상까지 돈을 주고 바꿔 원하는 대로 변주를 준다는 것. 그렇게 한다면 능력을 산 게 아니라 그냥 예시 인물 1의 인격을 산건데 그건 어디서 보상받나 싶어진다. 오너가 원하는 상(像)으로 만들어져 결국 오너의 미니미가 되어 일을 처리하는 것. 내 주관없이 네 주관으로 일하는 것. 오너 마인드가 아니라 오너 확성기가 되어 가는 과정. 사업가 마인드 인 척 하면서 사업가 마임을 하고 있는 모양새. 오너 확성기가 인풋과 아웃풋이 달라지는 순간 오너의 아웃을 감당해야 함을 잊어선 안된다. 시작은 모든걸 수용하는 말 잘 듣는 인재에서 끝은 할 줄 아는게 없는 놈이 시키는대로도 안하는 금쪽이가 된다는 점이다.

확실히 작년에 봐온 단편보다는 현실감이 고봉으로 담긴 이야기였다. 어느 부분은 겪어봤고 들어도 봤으며,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만 봤던 이야기들이 많았다. 20년 가까이 겪어보니 성인군자로서 보살미소 지으며 으쌰으쌰 해가는 아귀가 딱딱 맞는 조합의 밥벌이 전당은 없다. 오죽하면 밥벌이 전쟁터라 했고, 아침에 눈뜨면 회사 때문에 미쳐 돌아버린 동태눈깔로 출근을 하겠냔 말이다(너무 좋아 행복에 겨워 초점을 잃는 그런 상태=반어법)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은 결국 지 복을 미리 끌어다쓴 영특하면서도 앙큼한 사람이었다. 일단 이 능선은 넘어가야 다음 퀘스트를 해 볼 조건이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성에 비해 잘 풀리는 것도 지 복이고 지 일머리라는 거다. 그래서 그런가. 이 문장의 조건이 나로 직결되면 좋겠다. 누가 뭐라하든 일단 나부터 잘되고 봐야지 싶은 마음이 큰 월급사실주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잘 되고 난 후에 생각이란걸 해보고싶은 욕망이 크다.

나만그래? 나만 그리 느껴? 인성에 비해 더 잘 풀리고픈 마음? 욕심과 욕망이라 수근거릴지라도 나도 그딴 시기 받으면서라도 잘나보고 싶고, 능력 인정받아 보고싶은 검은 속내를 슬쩍 내비치고 싶어진다. 이상 밥벌이 인생 20년을 채워가고 있는 이구역 고인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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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의 시선 (반양장) -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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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이번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이 타이틀이 대단하기에 기대감을 잔뜩 안고 보게된 책. 시작도 끝도 단박에 헤치워버리게 만드는 당연한 이유를 가진 글이다. 청소년 시절을 겪는 이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쳤고, 아팠던 과거를 지닌 어른이 뒤늦게라도 이 책을 읽고 그 시절을 잘 다독여주었으면 싶어지는 소재였다.


강율. 중3. 타인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 타인과 시선을 교환하는 것보다 아래를 바라보는게 익숙한 이유를 가진 주인공. 과거 겪었던 사건으로 인해 정상 범주에 속하는 것들을 해주길 바라는 엄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과 마음의 병, 일시적인 현상, 어린 나이이니 금방 정상으로 돌아올거라는 어른들의 진단 속에서 어떤것이 '인간다운'것인지를 모르는 외계인같은 자신의 정체성.

진욱, 민우,동휘,그리고 지민과 도해. 이름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것 처럼 율이 가진 심연의 고민들을 각자의 방법으로 녹여주는 존재.

같은 반인 아이들과 달리 이도해는 다른 반이지만 율이 먼저 궁금해하며 그 친구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과거의 사건을 묻지 않았는데도 먼저 알려주며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고있기에 사라지지 않기를 사라지려 하더라도 부디 마침표 없는 쉼표의 삶처럼 살아주길 바라게된다. 북극성으로 가지 않기를, 그리고 같은 세상에서 숨쉬고 버텨내길 바라면서.



📖기억하는 건, 발_ 득이 될 것 없는 상황에 나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연 이들 모두 신고를 하고 경찰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존재니까.

율이 과거의 기억에 묶여있을 수 밖에 없는 과정. 눈앞의 아버지를 잃게되는 순간.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없던 상황. 그렇게 살아 난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그렇게 살았음에도 잘 살아내지 않고 있음을 인지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마음의 단호함. 사춘기 마음의 방황보다 더 아픈 사랑하는 이의 상실과 그 모든 이유가 자신에서 온 것이라 여기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생각보다 더 많은 고통속에서 살아내는 중임을 보였다. 병원의 치료만으로도 해결이 될런지, 어떻게 해야만 이전의 모습, 아니 지금보다 나은 상태가 될런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아이의 불안정한 시선과 괜찮은척 하려는 말투들에 마음이 쓰였다.


📖한밤의 거래_ 타인 같은 건 생각할 여력도 없거든.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곧 익숙해지는 거야. 원래 그런 집이라고 받아들이면 그만인 거지.

학교 생활의 윤택함을 위해 일부러 친한척 하려했고 관계의 이유를 만들었던 또래지만 역시나 그 구성원들도 각자의 고민과 각각의 슬픔을 겪어내는 중임을 알게된다. 잘 사는 집 아이, 재능있는 아이, 그래서 모두의 인기를 받는 아이라 생각했지만 그러한 진욱 또한 누구에게도 말못할 가정사가 있었고, 감추고 싶고 다들 몰라주길 바라는 곪아버린 아픔이 있었다. 바로잡거나 어떻게든 전환시키기보단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마음을 닫아두면 그만이라 여겼던 진욱을 통해 그 것이 옳은 답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된다. 율은 진욱도 진욱의 아버지도 어떠한 필터 없이 직관적으로 바라본 사람이니까. 모든걸 다 안다는 듯한 말보단 담백하게 진실된 한마디로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해줌 이 부자간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만나게 된다.


📖강한 사람이 되려고_ 지금은 엄마가 나를 지켜 주지만 엄마는 늙어 가고, 필연적으로 언젠간 나보다 약해질 것이다. 그때가 닥치기 전에 나는 강해져야한 한다. 감정을 죽이고, 타인을 버리고, 오직 나의 이득만을 위해서. 그래서 지금까지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해 달려왔다.

율은 자신의 상처를 오롯이 본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를 어떻게든 메꿔야한다는 의무감도 갖고 있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그리 해야됨을 느끼는 삶. 그래서 나약해져서도 안되고, 철없이 굴어서도 안된다는 자기검열속에서 애가 애처럼 굴지 못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음을 느낀다. 자신의 몫의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까지 해내야 함을 살아있으니 그렇게 살아낸 댓가를 치르듯 얹어진 무게였다.



📖각자만의 세계_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가진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가난을 숨겨야했던 진욱, 또래의 중심이 되고팠고 모든 소문의 근원으로 인기를 바라던 동휘의 세상, 공부도 잘하고 자존심도 세지만 강한 자존심만큼 자존감을 가지지 못한 민우의 세상도 그랬고, 이곳이 아니라 자신만의 별이 있었으며 이름도 도해가 아닌 북극성으로 불리우길 바라는 부디 반짝이는 삶이길 기대한 도해의 세상까지. 비슷할 수는 있으니 같을 수 없는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겠자만 그래도 이해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평생 반복하며 살아야하는 삶인것을 알려주었다.



📖쓰레기 집_ 자식에게 부모는 세계야. 싫어도 애정을 갈구하게 되는 세계.

밉다고, 싫다고 하지만 말만 그러 할 뿐 완벽하게 미워하고 없어지길 바랄 순 없는 내 세상의 시작점. 자식에게 부모는 그러한 세상의 시작점이다. 미워하리만큼 사랑하고 매번 그리워하고 손길과 시선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런 감정. 그래서 도해도 그 집에서 더 멀리 도망치지 못했고, 율은 얻어진 삶 만큼 더 완벽하게 살고자 마음의 갑옷을 채웠고, 진욱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축구에 목메듯 모든걸 걸었던 과정을 통해 이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하니까 사랑해서 그렇게 바뀔 수 밖에 없었음에 짠하고 가엾게 느껴졌다.


📖쓰레기 집_ 별이 아름답다는 낭만적인 이유에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일 수 없었기에 별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래를 보는 순간 비참한 현실을 맞닥뜨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비참하지만 그 세계마저 자신의 마음대로 바꿔버리면 껍데기만 있던 엄마마저 사라질까봐 그 곳에서 버틸 방법을 찾은게 고개를 올려다 보는 법이었던 도해. 북극성이 얼마나 반짝이던지를 알아차려주던 율처럼 어떻게든 다시 도해가 자신의 구역에서 반짝이고 살아있음을 알려주길 바라게되는 마음. 졸업식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프롤로그에서도 잘 살고 있다고 명확하게 알리진 않았으나 율의 노트가 다시 돌아 온 것 처럼,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더라도 꾸준히 빛을 내어 알려주는 북극성처럼 도해도 그렇게 빛나고 있길 기대하게 되는 끝맺음이다.


'난생처음 타인의 시선이 궁금해졌다.'는 말.

발밑 아래만 보던 강율이 하늘을 보게 만드는 순간, 그리고 고개를 떨구지 않고 눈을 보며 그 사람을 궁금해하고, 눈빛 너머의 생각들에 관심이 생기는 과정. 안으로만 파고 들던 마음을, 제자리걸음만 하던 표현의 방식을 진욱과 지민, 도해를 통해 드러낼 결심을 먹는 것. 그렇게 변해가고, 몸이든 마음이든 지금보다 한뼘 더 키워 나가는 것. 그렇게 율이가 바라보는 장면 속에서 어떻게 버텨내고, 기다리며 기대하는지를 따라가는 과정.

설령 모두를 만족시킬 해피엔딩은 아닐 지언정,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의 마침표가 있는 듯 하여 마음을 놓이게하는 끝맺음까지. 율의 시선을 따라가보길 잘했다 싶은 마음과 함께, 섣불리 조언하지도 다그치지도 않고 기다려봤던 마음의 진득함이 헛된게 아니었음에 또 한번 감사해지는 글로 문장속에 녹여진 아이들의 말과 눈맞춤에 어른의 내가 또 한번 위로받고 마음의 평안을 찾게된다.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가제본 서평단이되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된 기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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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루프 창비교육 성장소설 11
박서련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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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하니 귀여운 책 표지 하며, 내가 여고생으로 타임루프 된건 아닐까 싶도록 심장 왈랑왈랑거리게 만드는 책 제목까지. 총 3부작으로 나뉘어진 이야기는 각 파트마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관점이 조금씩 달라고 단편마다 보는 재미의 다양성이 있었다. 그리고 나뉘어진 파트에 따라 작가의 말을 읽어보며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작가가 그 시절을 어떻게 보내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만약'이라는 단어 뒤에 이어붙이는 나름의 생각들에 나만 이러한 시절을 보내진 않았구나 싶어하며 다수의 작가상을 받은 저자 박서련 또한 동시대를 겪어온 소녀였고, 어린마음에 품고있던 고민이 많은 여린 아이였음에 결국 우린 다 애틋한 시절을 겪었음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1부의 단편은 지금의 아이들도 겪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솔직한 마음을 전하지만 그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토라지듯 뾰루퉁하게 마음을 튕겨내게 되는 또래 이야기들. 소멸되는 마을.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왔고, 살아왔던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지금 세대의 아이들로 이어지는 공감대와 여기서 끝이 나버릴 듯한 아쉬운 연대의 마침표. 아이들끼리 서로 좋아하고 질투하고, 그렇지만 내 곁에 두고싶은 소중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까지. 학교, 마을, 유치원. 소속된 집단과 시대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각각의 세대와 시절을 살고있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2부는 상상해봄직한 이야기 이며, 기대하며 꼭 그리되면 얼마나 좋을지를 갈망하게되는 사랑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이다. 1부가 저자의 경험을 바탕에 둔 글들이었다면 2부는 상상력에 기대어 써내려간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면 달에 사는 사람들은 되려 보름지구를 보며 같은 마음으로 소원을 빌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담았고, 고백부부는 말 그대로 GO&BACK 을 반복하며 고백의 루프를 도는 이야기. 내 세상엔 없을거 같아서 상상하고 꿈꿔보는 달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의 널뛰기 담아놓았다. 나와 같은 30대라면 아마 알꺼야. 그시절, 우리가 A4용지에 다단까지 나눠가며 빼곡하게 프린트해서 돌려보던 인터넷 소설같은 이야기.

3부는 청소년의 마음으로, 그 시절의 우리로 타임루프하듯 적은 글이 아닌 진짜 학생 박서련이 쓴 글이 싣려있다. 청소년 박서련이 청소년소설을 쓴 진짜 청소년의 이야기들. 누군가는 날것의 감성이라 숨길법도 한데 역시나 잘 쓴 글이라 그런지 이러한 글의 세세한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면 먼저 공개한 1부와 2부랑 비슷한 결의 또 다른 갈래라고 봐도 무관할 작품들이다. 손톱아래에 난 가시. 어쩌면 자신도 무리속에 둥글게 살지 못하고 삐죽 삐져나온 가시같은 사람은 아닐까를 생각하게하는 괜한 감정 이입과 더불어 엄마의 손이 아닌 언니의 손에서 자라게되는 비죽이 비져나온 삶같은 자신을 그려낸다. 마지막 작품 발톱은 아버지의 사망. 그리고 새엄마와 사는 아이의 이야기. 그녀는 살갑게 다가오지만 주저하고 밀어내던 아이. 새엄마라는 사람의 뱃속에 있는 동생이라고 불러야하는 생명이 자라고있다. 소녀의 인생만 무너진게 아니다. 그녀의 삶에도 사랑하는 이가 소멸된 상태. 각각의 슬픔은 존재하지만 함께 버텨내어야 한다. 어떻게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므로. 엄마라는 호칭인 또 다른 어른에게 이젠 자신도 믿음직스러움을 내비치고 싶어 목욕을 마치고 나온 그녀의 말캉해진 발톱을 깎아주겠다는 말을 하게된다.


📖솔직한 마음_ 이유가 있어서 사람을 사귀면 따돌리는 데에도 이야기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돼.

원따라고 불리우는 이가 한 말 치고는 너무 뼈때리는 문장이다. 결국 얘도 이유가 있어서 원따라는 아이에게 다가가며 괜한 친근함으로 아이들의 시선을 돌릴 계획이라는 것에 친구를 사귀는 진심은 없어보인다. 진짜 걔의 이름, 원따의 진짜 이름석자도 모르면서 알은체하고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으려 했던 탁한 마음. 이름을 먼저 물었어야지 싶어하며 늦게 깨닫는 만큼 부디 원따라는 별명 말고 진실로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게 된다.

그 속에서 따돌리고 무시하고, 괄시해봤자 멀찍이서 바라보면 더 잘나지도 않는 것들이 그렇더라고 해주고픈 어른의 훈수를 할 수 밖에 없어진다.(이렇게 말해봤자 저 또래의 아이들에겐 절대로 안 먹힐 꼰대 멘트겠지만)


📖안녕,장수극장_ 어른이 되면 우리 모두 다른 길을 걷겠지만 우리가 이 마을에서 자란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억지스러운 내레이션이라고 했지만 그 문장은 모두를 울컥하게 만들었고, 각자의 시절에 배경처럼 있던 그 곳을 추억하게하는 제법 달큰한 멘트였다. 누군가의 꿈이었고, 누군가의 생의 터전이었으며, 누군가의 놀이터이기도 했고, 이젠 누군가의 기억의 한 자락이 될만한 장소를 공유하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는 것. 이제사 떠올려보면 좋든 싫든 내 삶의 일부를 아는 것에 대한 안녕은 늘 아쉽고 서글프며 애틋해지기 마련이다.


📖고백루프_ 설명 하려고 노력해 봤자 이해 못할 게 뻔하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하면 바로 지금,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내가 어떤 시간들을 통과해 왔는지를.

주저하는 마음. 그리고 묵히히겐 너무 애틋한 나를.(마음이라 하기보단 '나'자체가 애틋해진걸 강조하고싶다) 얼마나 고심했을지를, 그리고 이 마음이 얼마나 큰 지를 꼭 알려주고픈 두근거림을. 첫사랑, 첫고백. 뭐든 처음 하는 그 마음이 이렇게 클 수 있고, 매일을 반복하리만큼 시뮬레이션 돌려보며 꽉 채워진 씬이 되길 바라는 진심이 가득한거 같아 이 모습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시절의 살아온 우리를, 또 다른 시절을 바라게되며 예견해보는 건조한 순간을. 때로는 왈랑거리는 마음을 감출 길 없는 그 때를 그렸고 시절에 포옥 빠져있던 그 때 쓴 글을 모든 시절을 겪어온 우리가 다시 읽어내는 과정을 모두 담아내었다.

각각의 글이 그렇다고 너무 허황되느냐? 그건 또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더욱 빨려들어가듯 읽었고, 어느 캐릭터도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함으로 명치를 퍽퍽 치게 만드는 일도 없어 후루룩 읽어낼 수 있었다. 결국 우린 같은 시절을 살았고, 어느 시대든 그 나이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자라고 있음에 나란 놈이 모나거나 특이한 것이 아님에 안도하게 된다.

이 글을 읽을 그대들이여! 학생이라는 신분과 아직 아이라는 연령 구분으로 각자의 고민과 걱정에 화끈거릴 소년 소녀들이여! 이 또한 우리가 자라는 과정이며,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중이고, 보다 괜찮은 어른으로 살기 위해 흠뻑 젖어들게되는 감정의 깊이이니 우리 이런 이야기들에 같이 공감하지만 깊이 고민하지 말고 머리쥐어뜯어가며 아파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머리방울 하나에 쌍둥이라 깔깔거리며 웃어 본 적도 있고, 내꺼 따라 했다며 도다리눈 부릅뜬 적 있지 않던가. 학기마다 급식메이트 찾느라 눈치게임하듯 눈알 굴려본적 수두룩하고, 인터넷 소설의 그녀들처럼 나에게도 드라마틱하고 기가막힌 고백을 누군가 해주길 바란 적 밤마다 꿈으로 주구장창 꿨으니까.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말 못할 고민도, 변화된 구성원에 대한 슬픔과 인정을 해야만 하는 과정을 다 겪어왔으니까. 이 모든 챕터를 다 넘겨야만 어른이 될 조건이 채워진다 생각하며 읽으면 내가 어른이 될 단계의 어느 지점까지 다다른건지도 감이 잡힐 듯 하니 일단 재미나게 읽고나서 고민해보자. 한 달음에 읽어질 테니 중간에 덮어버릴 걱정말고 말이야.


📖 창비교육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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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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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격정적인 단어지만 이만한 표현력이 없다 싶은 제목. 그래서 이러한 지랄맞음이 얼마나 켜켜이 쌓여 저자의 삶을 채웠나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덮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지랄맞음이 풍년이라 버텼지 그마저도 표출하지 못했으면 어찌 살았을까 싶은 저자의 세월이다. 찰떡같은 제목에 물개박수라도 치고싶은 심정을 담아본다.




책을 펼처 몇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다른 책과는 다른 글로 시작됨을 느낀다. '이 책이 점자 도서 혹은 전자책으로 만들어졌을 때를 위해 간략한 표지 설명을 덧붙입니다.' 로 시작되는 것. 그렇다. 저자에게도 필요한 사항이고, 저자 뿐만 아니라 결국 모든 이에게도 필요했을 사항인데 오늘에서에 새삼스러워지는 문장을 마주했다.

저자는 장애인이며, 마사지사이며, 여성으로 이 세상을 마주한다. 열 다섯, 시력을 잃기 시작한 이후 각종 문학을 탐닉하였고 그의 인생과 뜨거운 감성이 만나 이토록 화끈한 글들이 만들어졌다.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로서 나온 첫 단행본.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으레 떠올리듯 처연하게 바라봐 주길 바라며 쓴 장애인 일상 수기는 아니다. 자칫하면 숨기고싶으며 때로는 서러움에 북받치기도하고, 그 때의 어린 자신이 짠해 눈물 한바가지 와르르 쏟아낼만도 한데 생각보다 덤덤하다. 속에 묵혀서 덤덤하고 담담한게 아니라 확 질러버리고, 왈칵 쏟아내 버려 주어 담담한 것이다. 그래서 버틴거지 그러지 못했음 이 지랄맞은 세상에 어찌 마주했을까를 생각해본다. 때때로 시트콤 같으면서 가끔씩 영화의 한 장면같은 애잔함도 크다. 그래서 각각의 단편들을 넘나들때마다 와르르 불타올랐다가 다시금 사르르 녹아내리는 온도차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헌데 다 읽고나니 느껴진다. 이렇게 살았으니 버텼지 이 지랄맞음이라도 있었으니 살았지.

그렇게 지랄맞도록 냉탕온탕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던 청소년기, 아니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시간까지. 몇번씩 시간을 넘나들게 된다. 부디 그 장면마다 화끈하고 후끈한 인물간 대화에 놀라지 않도록 심장부여잡고 저자의 삶에 전투적으로 개입해보길 바란다.



📖에릭 사티가 내리던 타이베이_ 우리가 원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상이었다. 그 사소함이 우리에게는 특별함이었다.

로코물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입에 달고 살았던 단어 '극복' 아니, 더 찰지게 '극뽀옥!' 이건 자신이 할 수 있음에도 안 했던 행실에 대한 자기 암시를 말했던 거지 저자가 생각하는 그 모든 사전에 대한 해결은 아니라는 점이다. 평범을 기대하지만 누군가에겐 평범을 넘어선 비범한 바람에 대한 것이라는 걸 떠올려 볼 때 저자의 해외여행 에피소드가 그러했다.

시간도 있고, 돈도 있어도 맘대로 떠나지 못하는 삶. 동행인이 있어야만 가능하고, 복지관에 부탁하고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쉬이 구해지지 않는 도움의 손.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으레 동반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짧은 생각. 항상 케어하고 주변을 살펴줄 사람이 24시간 상주할거라 생각했던 오만함이다. 각각의 변화되는 장소마다 도움이 필요했다. 항공사의 케어 서비스라던가 승무원의 세심한 안내라던가 전담가이드가 필요한 것. 그리고 보이지도 않는데 왜 힘들게 해외여행까지 왔냐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에 담담해질 방어태세까지 갖추어야 되는 곱절의 고된 시간들.

볼 수 없을 뿐이지 그 나라 특유의 기운, 살갗에 닿는 공기의 감촉, 낯선 음식을 마주하는 설레임과 다른언어로 표현하는 무수한 말들의 생경함. 그건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낯설고도 자극적이며 진득하게 남겨지는 삶의 새로운 자극점이라는 것이다. 그걸 무디게 받아들이도록 장애가 생긴 건 아니며 그러한 감각에 무뎌진것도 아니기에 이러한 과정이 더욱 소중하고 간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덧+ 관광지여서 그랬을까, 사람들의 기본 소양이 그러한 것일까. 대기 줄이 몹시 긴 미슐랭가이드 식당이지만 그 식당은 몸이 불편한 노약자를 위해 작은 테이블 하나를 항상 비워두는 마음을 가진 곳이었고, 풍등을 날리러 간 작은 상점은 같은 언어를 쓰는 여행객들의 가시돋힌 말보다 어색한 한국말로 괜찮다며 간이 의자를 내어 쉬라고 해주는 보드라운 마음에 울컥해진다. 이건 제한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든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상태의 사지 멀쩡한 인간이든 내어주고 받아주는 마음의 차이에서 새삼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운동화 할머니_ 마음이 괴로웠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났다.

나는 늙은 부모를 부양할 수 있을까?

부모가 평생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

나는 엄마한테 미안해서 울었다.


가장 울컥하고, 뜨거웠던 단편이다. 아마 나이를 먹어가며 어른 행세를 하고 사는 나의 또래들이라면 느닷없이 느껴지는 감정을 이 단편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나만 어른이지, 나만 잘났지 싶어하며 살다보니 나보다 곱절을 사신 노쇠한 부모가 뒤늦게 눈에 들어온다. 부양에는 의무를 두진 않으나 키워주고 사람구실 시켜주신 분에 대한 도리라 하면 그들의 나은 노후를 일정부분 마련해드리는게 도리일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방식으로만 해석하려했던 과정을 운동화 할머니를 통해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시력을 잃은 자신은 과연 부양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될런지, 되려 책임을 더 얹어주는 상태는 아닌지를 생각하며 되려 부양받아야될 시절에도 자식을 살폈을 어머니가 떠올라 마음이 힘을 잃게된다.

저자의 말 대로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이다. 시력도 잃었고, 엄마도 잃었으며, 사랑하는 이도 잃은것도 모자라 도망치듯 떠나와도 마음편히 누일 고향을 잃은 상태. 그 모든 상실의 빈틈을 오롯이 견뎌 낼 것은 산 자가 해야하는 몫이었다.



📖그녀가 핼러윈에 갔을까_ 내 기준으로 당신을 판단하고 한심하게 여겼습니다. 미안합니다. 진실로 반성합니다.

내가 보는 시선,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판단하는 견해. 그 모든 것이 매우 사사로운 편견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는 흘려버릴 말 일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흘려듣지 못할 따가운 마음의 표현법이라는 것에 대해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는 저자의 글에서 아무도 뭐라하는 이가 없음에도 마음에 담아놓는 생각을 탈탈 털어 반듯하게 개어두는 습관에 감탄하게만든다.

어쩔 수 없다. 팔은 안으로 굽고, 자신이 보는 세상이 전부 일 수 밖에 없고, 제 입으로 내뱉는 것들이 진실이며 옳은 것일 수 밖에 없는게 사람이란 작자의 휘어버린 잣대인데 어쩌겠는가. 코리안타임 따위 없는 약속된 시간의 방문, 선을 넘지 않는 언사와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의무까지 가진 사람이니 바른 인간이라고밖에 여길 수 없는 여건이다. 표현해내는 것들이 단정했으니 누구나 그리 여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의 죽음이나 불합리한 상황에서 가볍게 여기는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어 공감을 끌어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가벼운 화젯거리로 동조를 구하며 굳이 생각할 이유조차 없을 가십거리라 할 지라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님은 물론이고, 때로는 흘리듯 아무렇게나 쏟아낸 단어들에도 살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걸 저자는 한번 더 되새기며 상황과 처지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서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며 어떠한 마음으로 마음을 읽어나갈지에 대한 공부를 한번 더 한 듯 보였다.




📖비극으로 끝날 줄 알았지_ 그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내가 자랑스러웠다. 처음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무척 사랑스럽게 생각되었다.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며 새로운 꿈과 함께 자신감이 피어났다.


초등학교 졸업식엔 아파서 못 갔고, 중학교 졸업식은 분명 등교는 했으나 졸업 후 새로운 시작의 갈래가 달랐으며 또래와 고민의 교차점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을 창피해하며 꺼리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컸기에 즐기지 못했다. 애써 버텼던 고등학교 졸업식 또한 축하받지 못하는 시간이었기에 자신을 위해 꽃다발 한아름 안아들고 찾아와주어 모두가 자신의 일 인냥 기뻐하는 그 달뜬 감정을 모르고 살았다. 알고 싶지만 알려주는 이가 없는 시절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엔딩은 매번 비극이고 축하를 받는 것이 익숙치 않은 저자의 삶에서 공모전 입상 후 시상식에서 마주한 지인들의 반응은 결국 축하받고 응원받으며 잘했다고 애썼다며 노고를 보상받으며 다독임 당하는 것이 당연한 삶의 과정임을 일깨워주었다. 그게 가족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또한 좋은 사람들을 통해 얻은 뒤늦은 감정이었다.

저자의 눈에는 형태도 색도 없는 검은 꽃이지만, 새벽시장까지 달려가 향이 있는 꽃들로만 골라 챙겨와주고 손에 안겨주며 뿌듯해 했을 그 마음을 시간에 따라 차근차근 떠올려 코앞의 마주한 꽃에 다다를 때엔 세상엔 비극을 더한 비극은 없다는 걸 저자 본인의 삶으로 증명해 낸 것으로 보였다.

다행이다. 저자가 써내려간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니 이제 진득한 해피엔딩으로 기분좋게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렇게라도 할 말 다 하고, 먼저 성질 부려가며 바득바득 마음의 독기를 뱉었으니 살아냈지 그 지랄맞음이 없었음 어쩔뻔 했나 싶어진다. 지랄맞은 성격 덕에 장하게 살았다고 앞으로는 더 하면 더 했지 덜한 삶의 시간은 없을 듯 하니 우리 이왕 이렇게 살기로 마음 먹은거 이 구역에서 가장 지랄맞은 인간으로 뜨겁고 화끈하며 단단하게 살아보자고 하이파이브를 세게 해보고싶어진다.

(어릴적부터 엄마랑 입씨름하는 알싸한 단편들에서 눈앞에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터라 내가 다 조마조마 했으며 같이 광광 울고싶어지는 순간이 제법 많으니 눈물샘 수도꼭지가 약한 사람들은 알아서 완급조절 하길 바란다)

📖이 책은 달 출판사를 통해 서평단이 되어 비매품 도서를 먼저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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