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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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24 브런치북 대상작으로 선정된 현직 기관사 작가가 풀어주는 썰들. 입담도 말맛도 소재들도 재미요소 가득하며 대학 때 통학하며 주구장창 탔던 부산지하철 2호선 기관사의 이야기라 관심도 갔고 친근감도 가득해진다. 삽화 또한 예사롭지 않다. 흥미로우면서도 또 진지한 그림체에 피식 웃게된다. 진지하게 웃길 줄 아는 글과 그림이라는 예고장 같이 느껴진다. 그럼 주저할게 있나 후루룩 읽어가며 기관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관찰기에 스며들어본다.





📖비 오는 날의 지하철과 '쟈철에페'_ 하지만 그럼에도 지하철을 이용하러 오는 손님들이 있다는건, 내 손님들의 일이 중요한 일인 동시에 내가 하는 일 역시도 우리 도시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비오면 모두가 예민해진다. 장우산의 경우는 오므려서 묶어두지 않아서 누군가의 다리를 스쳐가며 닦아내는게 맘에 안들기도 하고, 3단우산은 밟히기도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미끄럽고 축축하니 심기를 거슬리게 하기 딱 좋은 조건. 타는 사람이야 그뿐이겠다만 그 큰 지하철을 모는 사람은 습기로 인해 젖어든 노면과의 싸움. 그리고 생각도 못한 쟈철에페인의 공격을 어찌 방어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눈치싸움이 포함되어있었다. 가끔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한다. 비오는 날 배깔고 누워서 이불 덮고(여기에는 비오는데 공기는 또 선선해서 선풍기를 틀든 온도가 낮아야 이불 덮는 맛이 있다) 여기에 책이나 음료 한잔을 곁에 두고 한량짓 고 싶은 방구석 평화주의자가 되고싶으나 현생에 치여서 결국 꾸역꾸역 출근하고 학교가고 일상을 이어간다.

나나 저자나 결국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앞세워 어떠한 이유에서든 변함없는 삶의 고리를 엮어가야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엮어가는 일상에 저자의 몫도 있고 말이다. 꼭 필요한 일. 그래서 더욱 티가 안 나는 일. 그러니 더욱 꾸준하고 부지런해야만 하는 일. 있으면 티가 안나고 없으면 티가 더욱 크게 나는 그게 저자가 가진 몫의 일로 보인다.



📖수요 없는 공급, 차 놓치는 꿈_ 주변 사람들과 아웅다웅하지만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기적처럼 느껴진다. 별 볼일 없고 평탄한 것만 같았던 내 소소한 일상이 실은 기적의 연속임을 실감하게 된다.

잘 하려고 애쓰다보면 꼭 이렇게 망작의 길로 빠지는 꿈을 꾸게된다. 불안이 걱정을 키우고, 걱정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그로인해 잘 하면서도 계속 헛다리 짚듯 버벅거리는 것. 눈 떴을 때 안도와 동시에 꿈이라 망정이지 현실이었으면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의 수순이 앞에 그려진다.

나는 지인과의 안부에 꼭 이런말로 끝맺음을 하게 되곤 한다. '오늘도 무탈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뭐 거창하고 대단하고 드라마틱하며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행운의 날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별일이 없이 유순하게 흘러가는 것. 되새겨보면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뜻깊은 날이 아닐지 몰라도 걱정하며 미간 좁히는 일이 덜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를 기대하며 나는 그냥 무탈히, 무던히 넘어가길 간곡히 바랄 뿐이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의 주인공_ 누가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했으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는가? 필연적인 존재는 누구였는가? 아마 아까보다 더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물음을 바꿔보겠다. 뭐가 없어도 됐는가? 누가 없어도 됐겠는가? 방금의 상황에서 누가 필요 없는 존재였는가? 그렇다. 필요 없는 존재란 없었고, 모두가 필수 불가결했다.

각각의 작품에는 주연과 조연이 있다. 비중의 차이도 있을 것이며 극을 이끌어가는 주된 인물로 구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지의 여부에 따라 얼굴도장 많이 찍은놈은 주연이 되고, 배경이 되는 인물은 조연, 혹은 단역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 또한 상호 유기적이라서 조연이 없으면 주연이라 굳이 말할 필요 없는 1인극이 되고 말 것이고, 주연이 없으면 이야기의 중심이 없는 흐리멍텅한 문장과 장면들로 의미없는 시간늘리기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있어야 되니 존재하고 없어도 될 것이라면 진즉 사라지고 말 존재였을 것이다. 허투루 쓸 수 없는 인력은 조직내에 절대 그냥 두지 않더라는 직장인 고인물로서 하는 이야기이다.

그저 보여지는 것, 남들에게 비춰지는 것. 허울 좋고 말하기 좋은 것이 주연으로 삼아지는 조직사회였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굳은일과 수고로운 것들을 서슴치 않고 빠른 손놀림으로 별거 아닌양 휩쓸고 지나가는 각 분야의 달인들이 있기에 사건이라 할 만큼의 이야깃거리도 안되는 걸로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생활의 달인이 별거 있나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린게 다들 생활의 달인들이지.





📖핵융합보다 제어하기 어려운 냉난방 조절_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부재하게 되었을 때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하철의 냉난방이나 시계의 건전지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건강이나 사랑, 가족, 친구, 내 영혼 같은 소중하지만 당연하다고 여기기 쉬운 것들의 건전지가 다 닳는다면. 단순히 불편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불편을 넘어 불행의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삶의 조율. 뭐든 적당히가 어렵다. 모자라면 더 부지런을 떨며 채우면 되겠고, 넘치면 욕심 부리지 않고 그 선에서 멈추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 그래서 늘 화를 품게 되고 짜증으로 덮여있는 성질머리가 된 듯 하다. 더우면 손부채질 몇번 더 하면 되고, 추우면 가방에서 얇은 옷 한겹 더 입으면 되는데 그게 싫은거지. 굳이 내가 왜? 로 시작되며, 내 말이 우선이 되어야 속시원한 자기중심적인 맞춤형 지하철을 바라는 것이다.

나는 성질머리가 개떡같아서 1차로는 참지만 2차는 못 참는 주둥이를 갖고있다. 그렇게 더워서 안달복달이면 지가 차를 몰고 다니던가, 택시를 타던가. 추우면 지하철 타지말고 땡볕에서 뛰던가로 극단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암요암요. 기관사가 그랬다간 민원 폭탄으로 파묻힐수도 있겠다. 이렇게 할말 다 하고 살 수 없으니 본인은 동태가 되고, 여름엔 걱정인형을 자처하게 되나보다. 불편을 감수할 생각 없는 사람들로 변화된 세상. 불편을 삼키고 불만을 한번이라도 눌러서 깔고 앉을 생각 없는 엉덩이에 가시돋힌 사람. 과연 당신의 가족이, 당신의 사랑하는 이가 그걸 받아들이는 입장에 있다면 똑같은 말을 뱉어낼 수 있을까? 일면식 없는 사람이라 더 독을 쏟아내는건 아닌지를 생각해본다.

텔러들이 고객을 응대 할 적에 누군가의 가족이기도 하니 폭언과 고성을 금지해달라는 문구가 나오는 것 처럼, 누굴 상대하든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는 지울 수 없는 오프닝 시그널이 존재하면 좋겠다.


📖분노의 화신과 13 기관사, 그리고 최후의 티타임_ 이 묵직한 말들에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따라붙는다. 그게 이 단어들에 무게감을 부여한다. 분명 부담되는 일이다. 하지만 동전의 앞뒷면처럼 세상 어디에나 양면성은 존재한다. 책임감은 부담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2부의 지하철 어벤저스 열전의 이 대목과 연결되는 3부의 '철도 역사상 가장 억세게 운좋았던 행운의 기관사 이야기'를 함께 이어붙이고 싶다. 기관사가 되기의해 다수의 시험과 사람을 쪼글리게 만드는 면접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임감.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엮여있는 업을 갖고 살아야하는 직업이자 그 자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 사명감만 있어서는 안되며 빠른 대처능력과 판단력도 고루 갖추고 있어야만 하는 멀티맨. 그러니 더 예민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고, 더욱 날카롭게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찾아 낼 수 밖에 없는 3번 면접관님의 간절함이었다. 나의 실수나 과오가 나로 인해 끝이 난다면 굳이 악역을 자처할 필요가 없지. 하지만 그게 아니기에 더욱 명확하고 확고함이 필요한 직업이라는걸 면접장과 대조되는 면담의 온도차로 13인의 기관사들은 더욱 진심을 얻어 간 듯 보였다.

같은 사람이라 한들 상황와 위치와 조건에 따라 사명감이 커지고 쪼그라들기 마련임을 느낀다. 나름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조금씩 다른 직군에서 일해본 바로 나같이 회사 지박령이 되기보다 본분만 하고 선긋기 좋아하는 사람마저도 달라지게 하는 것이 있더라는 거지. 없던 의협심이 생기기도하며 개인주의적 인간이 공동체주의적인 공공의 뜻을 중시하려는 성향으로 바뀌기도 하는 걸 보면, 그 조직의 밀집도와 내실에 따라 사람도 바뀌고, 구성원의 탄탄함도 달라짐을 느낀다. 아마 3번 면접관님의 모습이 훗날 저자의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까를 조심스레 예견해본다.(기관사님 이 직업에 뼈를 묻으셔야 된다는 소립니다!!)



📖완벽주의자 기관사들의 루틴_ 뒤에 탄 승객 수백 명의 안전과 시간을 책임지고 있기에. 마찬가지로 당신이 삶을 살다가 어떤 개인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적당히 포기하지 말고 기관사적 관점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보길 바란다. 직장일을 대하듯 책임감을 가지고 내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내야 한다. 까짓 조금 불편하더라도 말이다.

맞다. 포기하면 편하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줄어든다. 그만큼 당장에 편하고, 습관이 되어버리면 엄청 불편하지 않으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하루가 된다는 소리다. 뭐랄까, 숨쉬고 있으니 살아간다는 뉘앙스이며 출근을 해야하니 가서 일하는 거라는 식의 어쩔 수 없는 이유를 들먹이며 마지못해 하는 삶. 당장 누가 쓴소리하며 호통치진 않는다. 다만, 그게 지속되면 매너리즘이 들러붙어 버리겠지.

헌데 이왕 사는 삶,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얻은 직장인데 그게 되겠냐는게 저자의 마인드. 그리고 동료들의 부지런한 행동들이다. 같이 섞여 있으니 서로 물들고 변화시키며 서로를 북돋으며 나 역시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두 주먹을 쥐게 된다.

완벽을 기대하는 책임감. 나로 인해 끝나기 보다 나로 인해 지속이 되며 더 나은 목표점으로 다다르길 기대하는 긍정에 긍정을 얹은 사람들. 이런 조직이면 누구든 완벽주의자를 지향하는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될거 같아 부러워진다.



📖늙은 열차의 시간_ 늙는다는 게 이런 거 아닐까? 미안할 일이 많아지는 거.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려주는 내게 미안하단 말을 셀 수 없이 하시던 이웃 할머니. 마음의 시간은 더디게 흘러서 몸의 시간을 따라갈 수 없었고, 그게 그들을 사과하게 만들었다. 아직 서른네 살에 불과해서 제대로 된 세월을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처럼 주변의 늙어가는 사람과 환경을 보며 짐작만 할 뿐이었다.

저자는 20년 넘은 노쇠한 열차를 늙은 열차의 시간으로 보았고, 그걸 한 인간의 노화와 나이듦 속에서 세상에 스며드는 과정을 교차하며 이야길 했다. 종종 수리가 필요한 열차. 때때로 고장이 나고 정비를 통해 복구가 필요한 시간을 알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잡고 어서 올라 타길 기다려주는 시간도 닮아있음을 느낀다. 늙는게 슬픈건 사실이다. 예전만 못하고 마음과는 다르게 느리며 때때로 잔고장이 일어난다. 최고의 순간을 기점으로 삼아 영원의 지속성을 바랄 수 없는건 인간인든 기계든 매한가지임을 보며 솔직히 아쉽긴하다. 은퇴한 열차들이 타국의 수출로 다른 회차의 삶도 있으니 마냥 씁쓸하게 보지만 말자. 짐작만 하는 거지 확정된 인생 회차는 아니잖아? 우린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 미리 겪은건 아니다. 그러니 늙은 열차의 시간이 결코 서운하며 서러움투성이 일거라는 엔딩에 몰입하지 말자. 기관사적 관점 그거 있잖아. 그거에 이 시간을 대입해 삶의 지속성을 유지하면 또 다른 시간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치 앞도 모르는게 사람 일이랬으니 미리 새드엔딩을 만들어두지 말자는거다. 때때로 미안한 일이 있겠지만 그걸 앞세워 미안함을 당연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늙은 열차의 시간에 오늘 쓰고 남은 내 열정을 한덩이 툭 내어줘볼까 싶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더라.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있는 인력 덕에 우리는 오늘 하루도 아무런 걱정과 불편함 없이 보내고 있음에 감사해진다. 가끔 이 감사한 평온함을 당연하게 여기게 될 때도 있으며 이 배려가 익숙함으로 여겨지기도 해서 각성하듯 이들의 고충을 읽어가며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음에 실감하게 된다. 어떤 이의 수고로움, 어떤 이의 배려와 희생이 있기에 편하고 익숙하게 일상을 겪어내고 있으니 얼마가 감사한 삶인거냐구. 나는 또 오늘을 빚지고 살고있음에 큰 보답은 못하더라도 눈맞춤하며 꾸벅 인사하게 된다.

그런거 있잖아. 남들 쉴때 나도 쉬고 싶은 직업이었으면 좋겠고, 9 to 6 에다 워라벨도 있고, 당연한 생리현상에 대한 걱정없는 일상을 겪어내고픈 것. 책임소재는 되도록이면 남이 해줬으면 싶고, 타인의 액션으로 인해 내가 겪게될 트라우마도 없었으면 싶은 것. 내 몫의 것만 하는 걸로 월급받아 영위하고픈 삶이지만 그게 안되는 직군의 이야기. 사명감을 넘어선 소명의식까지 있는 너른 마음보다 더 큰 사람의 이야기 덕에 당연한 것이 결코 당연한게 아님을 깨닫는다.

내 일이 힘들다고 마냥 징징거리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쩔수 없이 힘든 업의 순간이 가득한 이야기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을 사랑하고 좀 더 꾸준히, 그리고 오래 하고픈 마음이 가득한 사람의 글임은 분명하다. 기관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절차를 거쳐야하며 시험과 교육이 이렇게 많은지도 난생 처음 알게되었으며 직업병이 생길 정도로 지하의 쇳가루에 파뭍혀 사는 시간. 그렇게 미간 좁혀가며 집중하더라도 때때로 아기 손님들의 눈맞춤에 사르르 녹아버리고 무장해제되어 마구 손인사하게 만드는 영락없는 지하철 멋쟁이 기관사아저씨. 짬이나고, 사측에서 배려를 해주신다면 북토크를 통해 더 많은 썰들을 듣고싶게 만드는 썰부자 기관사님의 이야기. 부디 이 책이 인기를 등에 업고 지하세계의 은밀한 이야기 버전2가 나오길 기대해보는 1인이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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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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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이 아님에도 생각이 많아지고 문장들이 주는 힘이 세게 느껴져서 한참을 생각하게만들었는데 그러한 말의 힘을 지닌 저자의 최근작도 읽었고 고민했으며 또 전하고자하는 이야기의 깊이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생각이 많아져 한참 후에 글을 적게 되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나름 평온하다 여기는 가정의 가장. 그리고 자신이 꾸리고 있는 단란한 가족. 비록 펄롱은 흔히 생각하는 친부모의 밑에서 자라진 못했으나 좋은 어른을 둔 덕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자신으로 부터 뻗어진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들을 더 단단하게 지키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아내, 딸들, 그리고 그들을 배 곯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직장.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살고 있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있으며, 빠듯하더라도 산타를 대신해 아이들이 바라는 선물을 살 수 있는 따뜻한 어른으로 살아간다. 펄롱 자신은 어려운 시절을 겪었지만 딸들에게는 그러한 풍파가 다가오지 않기를, 오더라도 자신이 막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생각이 많다. 오늘이 무사했으니 내일도 그러하기를. 받을 돈이 얼마인지, 또 내일 얼마를 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사람이다.

아내 아일린은 펄롱의 성향을 때때로 구박하기도 하는데 남들에 다 퍼주듯 나누고 돕는 성정에 핀잔을 주지만 그렇기에 그를 남편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본다. 살아가는데에 주변을 살피고 따뜻함을 지닌 사람이니 그에 대한 걱정은 그가 받을 상처와 세상으로 인해 또 한번 배신당하거나 외면당할까를 앞서 걱정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가족이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그런 말이 있다. 때때로 흐린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알지만 모른척 해야 하고, 이게 잘못된 거라는걸 판단이 섯으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자신의 위치나 사회적인 시선으로 인해 튀는 행동이 될 수도 있으며 보이지않는 계급이나 이해관계로 인해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으니 그 모든 짐을 떠 앉는 위험수당을 부러 겪으려 하지 말자는 것.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 조직이나 집단 안에서 알아서 할 일이니 먼저 나서지 말자는 아내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목소리였다. 아내는 자신이 품고 있는 가족, 어린 딸들을 지키고픈 마음이 커 보였다. 부모가 있고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니 자신의 따들은 펄롱이 보고 고민을 하던 수녀원의 아이들과는 부류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단호한 입장이다. 거기에도 아이들을 보살피는 수녀들이 있으니 우리보다 더 세심하게 볼 것이라며 펄롱의 의문을 덮어버리고픈 마음.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말하던 단호한 입장.

하지만 펄롱의 시선은 다르다. 자신도 누군가의 걱정스러운 시선과 손길로 자라왔으니 수녀원의 아이들과 자신의 어린 시절을 교차하고 있었다. 자신을 보살폈던 미시즈 윌슨이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 남편이 없는 것 처럼, 펄롱 자신도 수녀원의 아이들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픈 마음이었다. 댓가를 바라지 않았던 미시즈 윌슨의 행동을 이제 갚을 차례가 된 거라 믿는 단호함이다.

자신이 자라온 여건과 자신을 만들어온 히스토리가 있기에 펄롱은 그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없었던 것. 여기서부터 나는 계속 나를 향해 질문을 하며 책을 읽게된다. 나는 펄롱과 같은 성장 히스토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주변에도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온 지인이 없는 조건이다. 매체에서만 봐 왔고, 내가 경제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때때로 여유가 생길 때 조금씩 기부를 하는 걸로 후천적 선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인간이다. 나란 놈이 수녀원의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석탄만 옮기고 내 일은 여기서 끝이니 간섭이든 관여든 아무것도 하지 말자로 단호하게 선을 그을 것인가. 아이들의 행색을 살피고 불안한 시선들에 예의주시하며 그 집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긁어낼 것인가. 나는 펄롱같은 인간인가, 아니면 아일린같은 생각이 더 지배적인가. 이 물음에 단박에 대답을 하지도, 똑 부러지는 답변을 내어놓지도 못한 채 문장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여기서 펄롱이 말하던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한점 부끄럼이 없을 수 있을지를 되뇌인다. 나는 여기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어떠한 종교의 믿음과 신념이 있기에 꼭 해야 하는 성품이라고 단정짓고 싶지 않다. 종교에 대한 인식이 썩 좋은 편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종교를 떠나서 한 사람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른으로서,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는 인간으로서 이 문장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는 게 맞다고 보는 입장이다.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었기에 도와주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그저 그 사람의 폭이 넓고 선한 시선과 주저하지 않았던 행동이었기에 가능한 일들이라 말하고 싶다. 세상엔 정말 많은 부류가 있다. 펄롱처럼 유년기를 겪었으나 펄롱과 같은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인물도 수두룩하고, 다 가진 자로서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반대되는 계층의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지 입에 들어가는 것에만 정신이 팔리고 자기만 잘 사는게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듯 말이다. 자신의 수고로움이 어떻게 상황을 변화 시킬지. 모두가 흐린 눈으로 보는 것에 반기를 들고 책의 제목과도 같은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쓴다는 것. 분명 에너지가 쓰이고 평온하기만 할 자신의 삶에 작은 물결이 칠 경우가 있을 것이고, 때론 큰 너울로 다가 오게 될 것이다. 그걸 감내하는 것으로 도와주고자 하는 이의 여건이 달라진다면 흔쾌히 맞바꾸려하는 마음. 책은 그걸 사소한 마음이라 했고, 우린 그걸 대단한 마음이라 하게된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펄롱은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 말했고, 코 앞에 닥처온 고생길이 보인다고 했다. 헌데 나는 최악은 이미 넘어 선 듯 보였다. 펄롱이 나서지 않았다면, 사소하다고 여겼던 행동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펄롱의 삶은 평온했을지라도 그 아이가 겪을 상황은 최악의 정점을 찍고 끝을 모르는 일들만 지속될수도 있었던 걸 생각하면 나눠가졌기에 덜어진 고통으로 정리하고싶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손을 내밀어 끄집어 내어주었기에 최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최악이라 한다면 펄롱의 다정하고 친절하며 희생과 대가를 바라지 않던 마음이 무의미 해지기에 우리는 이걸 진하고 깊은 마음이라 두고두고 회자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무언가를 강요하는 어조를 띄우지 않았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 각자의 몫으로 두었다. 이야기 초반에 노인이 펄롱에게 했던 말 처럼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를 떠올려보면 이 모든 선택과 결정은 각자의 자유에 두겠으나 한 사람의 선택과 한 사람의 시선이 어떠한 방향으로 흐름을 바꿀지는 알 수 없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펄롱이 잘했고, 아일린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티를 내지 않을뿐이지 나도 그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일린처럼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내가 살고 봐야하고, 나를 둘러싼 내 바운더리만큼 중요한게 없으니 말이다. 그러한 마음이 무조건 나쁜것이 아니지만 우린 펄롱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어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하는지를 알아가자는거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다 같은 마음을 쥐고 책을 마주 할 것이다. 일단 마음은 굳게 가져본다. 행동으로 옮기는 영향력이나 실행력에 차이는 있겠으나 일단 우리는 펄롱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은 이미 가져 본 셈이다. 나도 사소한 것이라 여기는 것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고, 주저하긴 하겠다만 손을 내밀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우리 여기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사소한 것이라 여기고 부담없이 마음을 두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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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나 방송인이 아닌, 인플루언서나 기업인이 아닌, 정말 좋은 뜻을 갖고 인생 2막을 시작하신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시작하신 박사님들의 이야기였다. 생업을 은퇴한 할아버지 장난감 박사님들이 계시는 키니스 장난감 병원의 이야기. 유퀴즈에서 보았던 토이 테일즈가 인형들의 병원이었다면 키니스 장난감 병원은 완구류에 대한 실버인력의 무상수리와 보급을 통해 친환경적인 활동에 목적을 두고있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뜻한다. 고장난 장난감을 무상으로 수리하여 줌으로써 물건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며, 자원의 재활용을 통한 친환경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곳. 그리고 이 병원에서 장난감 수리 작업에 참여하고 장난감 박사의 자격을 취득하신 어르신들의 이야기.

역시나 타인의 세상살이 이야기 엿보기는 재미나고 기대된다. 그리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더더군다나 들을 기회가 잘 없다보니 귀하고 감사하다.

키니스 장난감 병원의 이사장이며 설립을 담당한 김종일 이사장님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박사님의 이야기를 다 들어 볼 수 있어 더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 말하고 싶어진다.



📖할아버지와 장난감_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청난 대의가 있었다기보다 저는 그저 더 일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2의 창업, 취업이 아니라 그냥 두번째 일, 제가 할 수 있는 또다른 일을 찾고 싶었던 것뿐이예요.

35년간 대학에서 공학을 가르치다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키니스 장난감 병원을 설립한 김종일 이사장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드라이버를 들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장난감을 고치고 싶다고 말하는 멋진 꿈을 가지신 분. 운이 좋아 학교에 갈 형편이 되었고, 으레 그렇듯 학교,군복무, 취업, 결혼, 자녀양육, 부모 봉양 이후 드디어 찾아온 자신만의 시간. 정년. 교수로 35년간 봉직 후 정년 퇴직. 물러서야 하는 나이라는 정년이라지만 아직 남아있는 나머지 인생이 있다는 것. 그러니 새로 태어나 살아갈 계획을 세운 것이 여기라는 점에서 놀라울 따름이다.

은퇴 후 삶의 뼈대가 봉사라는 것.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타인을 위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갈망. '봉사'와 자신이 평생동안 공부하며 밥벌이가 되어준 '전자전기 공학' 그러니까 '수리' 그 아귀가 맞아 떨어진 장난감 병원. 밥 벌어 먹을 만큼 잘한다는 것에 좀 더 줄기를 이어가 그걸로 봉사를 할 수 있는 구실을 마련한다는 것. 남은 생을 오롯이 욕심으로 채우지 않았기에 가능한 결과였고, 그렇게 계속 손을 쉬지 않고자 하는 마음과 자신이 꾸준히 어딘가에 쓰여지길 바라는 마음이 합쳐졌기에 가능하리라 보였다. 역시나 평생 일하던 사람이니 쉬는 건 스스로도 용납이 안 되나보다.


📖예스 키즈 존_ 아이를 챙겨달라 말합니다. 이렇게 아기들만이 아닌 어른과 함께하는 장소라면 보호자는 장소마다 갖고 있는 특성에 따라, 아이를 보호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기 위해 때로는 아이의 행동을 제지할 줄도 알아야지요.

키즈 존을 허용하느냐와 마느냐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조카들은 많으나 내가 품어 낳은 자식은 없으니 남편과 조용히 있고 플 때엔 노키즈존으로 가게되는것이 당연하고, 조카들과 함께한다면 정적을 감수하고 북적거리는 키즈존으로 오감의 전투테세를 갖추고 입장하게된다. 아이들이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 아이들을 케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존재 할 수도 있기에 더욱 예민하게 키즈존에서 아이들의 방어벽이 되려 자처하게된다. '보호자가 아이를 온전히 관리할 수 없다면 아이들에 대한 안전과 배려를 장담할 수 없다'는 선언은 당연한 것이겠지. 그러니 장난감을 치료하러 온 병원도 그리해야하 하는 곳이다. 장난감이 있다고 당연히 예스 키즈 존이 되어주겠지만 그 속에서도 안전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니 우리는 아이를 챙겨야 하는 의무와 본분을 지닌 어른이라는걸 김종일 이사장의 글로 한번 더 상기하게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 한 아이를 올바르고 반듯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다양한 어른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걸 다시금 배우게되는 대목이다.



📖장난감은 과학과 예술의 종합체_ 장난감은 어린이의 몸과 마음 성장을 돕습니다.

말하자면 '한 사람을 어떤 어른으로 키워낼 것인가'하는 심오한 철학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이 말은 다시 말하자면 장난감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한 조각이 들어 있다는 말이 됩니다.

나 역시 풍족한 장난감의 세상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다. 엄마 아빠 언니 나로 이뤄진 단란한 4인가족이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떠올리지만 우리집엔 삼촌, 이모, 고모가 장남인 아빠와 왕형수인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그러니까 내 유년시절은 삼촌과 이모로 촘촘히 메워진 울타리에서 자랐으니 입이 많은 대식구들 사이에서 장난감이라 한들 길건너 슈퍼마켓 아줌마의 고구마 줄기가 소근육 발달의 교구가 되었고, 윗층 주인집 할머니 손주가 갖고노는 봉제인형 한번 만져보는 것이 유일한 촉감놀이였으며, 유치원 교구장의 공동 소꿉놀이가 다였던 시절이다. 그래서 가뭄에 콩나는 것 보다 더 귀하게 선물받던 장난감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속의 이미지로 남겨져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사주셨던 노란 꿈돌이 인형, 어디서 사오신건지 알 수는 없지만 크고 촘촘한 트리 대신 마당의 화분을 집으로 들여와 달아두던 조악하지만 나름 귀여움으로 한껏 치장한 트리 오너먼트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지금의 어린 친구들 역시 자기안의 소중한 장난감이 분명 존재 할 것이다. 이렇게 진하고 선명하게 행복한 추억이 되어줄 장난감이 있다는 건 어른이 되어도 잊을 수 없는 유년시절의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남아있을 것이니 박사님들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너무 잘 알게되었다. 쉽게 버리고 쉽게 또 사주는 요즘의 흔한 세상 살이 방식이라지만 하나를 가져도 귀히 여기고 소중히 간직 할 수 있으며 꾸준히 애정을 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좋은 장난감 교육이 아닐까.




📖내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말_ 어느 곳에 속해 있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자신의 나이나 위치에 상관없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책임감은 절로 생깁니다. '최선'이라는 것이 때로는 모호하게 느껴지지요. 원래 '최선'은 타인이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늠하고 평하는 겁니다. 그러니 기실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은 무거운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알 수 있으니까요.

박사님들의 업무는 영리를 목적에 둔 것이 아니다보니 꾸준함과 성실함이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당신의 일에 장인 정신을 갖는 면에서는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한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정말로 그저 '좋은 일 한다'를 넘어서 사명감이 있었기에 13년을 유지해 올 수 있었고 고정적인 출근과 퇴근을 통해 키니스 장난감 병원의 진료시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라 할 수 있었다. 내 일에 최선과 떳떳함, 자랑스러움과 자부심. 그건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정확한 고용 관계 뿐만 아니라 내 노고를 되려 지불하고 받게되는 봉사의 과정에도 다름이 없는 것이라는 걸 또 한번 배우게 된다.


📖이 나이에도 용기는 필요합니다_ 이렇게 뜻하지 않은 새로움이 이 나이에도 광활하게 펼쳐질지 모릅니다. 물론 장난감 병원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여러분, 그저 용기를 내주세요. 인생은 참 깁니다. 무엇이든 해봅시다. 무엇이든 만나봅시다.

나라가 정해 놓은 정년의 연령 이후의 삶은 분명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게 짧지 만은 않더라. 그러니 그 긴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 할 때 김종일 이사장은 이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냥 해보자'라고 시작하며 꾸준한 용기를 주입해왔고 지금에서도 이렇게 출근할 곳이 생겼으며, 자신을 찾는 곳이 생겼고, 그의 노고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직 있다는 것이다.

돈이 안되는 것, 누군가의 후원으로 유지가 되는 곳, 그만큼 서류적인 부수 업무도 필요하고 보이지 않는 활동이 있어야만 하는 것. 비영리 목적이니 항상 잡음은 있을거라는 가정도 세워야 하며 각종 애로사항을 어떻게 겪어나가야 할 지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겠지만 여기에 계신 박사님들은 '드디어 내 할 일을 만났다'라고 말하시는 것에서 설립의 취지와 운영의 지속성을 찾았다고 했다.

타인을 위한 봉사로 시작되었고, 내 몫의 무언가를 지속 할 수 있는 노동의 장소가 되었으며, 먼저 살아본 삶의 연장자로서 해 줄 수 있는 노하우 전수장이 되기도 하며, 과거 살아온 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다양한 연령과의 만남이 인생을 더욱 다채롭게 살 수 있는 자극제가 되어주는 병원. 아프면 찾아가는 곳이 으레 병원이듯 아이들의 친구인 장난감이 아프면 주저없이 가는 곳이 재활용 수거함이나 쓰레기봉투 속이 아니라 이곳이 되어준다면 동심의 연장과 물건의 가치에 대한 공부, 자원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이 친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써왔는지를 눈으로 직접 마주할 때 겪게되는 오감의 자극까지. 박사님들의 치료 덕에 아이와 어른, 장난감까지 모두가 치유하고 상처를 한 번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셔 다시금 감사함을 전해본다.

이 단체에 대한 홍보의 목적도 분명 있겠다만 아이의 친구를 치료하는 곳의 소개하는 책자이며 어른들의 동심을 찾아냄과 함께 다가올 정년을 어떻게 살아볼 것인가에 대한 안내도 이뤄지는 다방면의 가이드 북이니 부담없이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어진다. 너는 정년 안 올거 같지? 금방이다?

그리고, 너는 못 할거 같지? 해보면 재밌을껄? 하며 유혹하는 문장도 제법 많이 숨어있으니 조심하라고도 일러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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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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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하나같이 마음속의 돈키호테를 바라며 살고 있었다. 꿈은 꿈꾸는 것이니 꿈일 수 밖에 없다는(?) 언어유희에 반기를 들듯 삶의 전환점이 되어지고,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행복해 질 수 없고 더이상 그게 좋아질 수 없다는 말들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꿈꿔보라고 옆구리 쿡쿡 찔러가며 잠재워둔 꿈을 깨워보는 느낌마저 든다. 돈키호테가 산초가 되어지고, 산초였던 이가 어느새 돈키호테보다 더욱 배포가 큰 이로 바뀌는 과정. 돈아저씨가 솔에게 돈키호테라는 닉네임을 물려주듯 때로는 시대에 순응하기도 해야하지만 그럼에도 끌리면 꿀리지 않고 나아가는 돌진우선 주의자로 나서보는 것도 살아볼만한 삶의 방식인 듯 하다. 안하고 후회할래? 해보고 후회할래? 뭘 하든 후회는 하기 마련인데 이왕 결정되어있는 후회가득한 후반전이라면 일단 밀어붙여가며 해보는게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고, 조금이라도 덜 원망스럽지 않을까? 실패든 성공이든 뭐든간에 시도는 했으니까 미련은 없을테지.




📖셀프 고용_ 누가 알아준다고 모험을 떠나는 건 아니란다. 나만의 길을 가는 데 남의 시선 따윈 중요치 않아. 안 그러니 솔아?

지랄맞은 운명의 뒷통수는 한방에 몰아서 온다지? 1년 전 남친은 양다리를 걸치다 도망갔고, 올해엔 인간들의 제 밥그릇 찾기에서 져버린 진솔은 퇴사를 했다. 졌다는 말보단 뺏겼다는 말이 더 정확한거 같지. 드러운 방송국 놈들의 땅따먹기에 제 것 한줌 못 쥔 솔이였다. 그래서 그렇게 고향으로 내려왔다. 성심당 말곤 뭐 없다는 대전으로. 닭 튀기는 엄마의 가게로 퇴근없는 취업전선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하나 갈망 할 때 솔은 어릴적 추억이 서린 돈키호테 비디오가게를 발견한다. 한창 예민하고 또 때론 감수성이 차고 넘치던 시절을 버티게 해준 라만차 클럽의 멤버들이 있고, 돈키호테를 닮은 돈아저씨가 있던 곳. 그 아지트는 카페가 되었고, 그 추억이 서린 것들은 그 건물 지하로 옮겨졌으며 돈아저씨는 사라졌다. 문득 궁금하긴 했으나 정말 어디간 걸까 싶은 사람.

사람이 그리운 것도 있었겠지만 솔에겐 그 시절이 더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남과는 조금 다른, 그래서 더 특별한 어른의 모습을 통해 솔은 어떤 어른으로 살아야 할지를 야금야금 배워나가는 시절이 가장 행복했고 재미난 순간인걸 회상장면에서 느낄 수 있지.


📖낮에 꾸는 꿈_ 내 인생 3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가슴이 뛰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게 꿈이다. 밤잠을 방해하는 꿈이 아니라 낮에 꾸는 꿈 말이다.

방송국 놈들에게 질려서 다시는 그러한 일을 안 하리라 마음먹고 내려온 것 이었으나 결국 제일 잘하는 그걸로 다시 시작하는 솔. 다만 원하는 촬영의 소재와 프로그램의 방향은 본인이 제일 궁금해 했고, 본인이 가장 먼저 답을 듣고픈 물음에 답을 찾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솔이 꿈꿔왔고 꿈이 이뤄지며 개운하게 해결되는 수순이 프로그램 제작에 일정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보였다.

시작은 돈아저씨를 찾는 것 이었으나 학창시절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 했던 라만차클럽의 대주나 새롬의 안부가 궁금했을터. 이른바 먹고 사니즘에 양옆 돌아볼 틈이 없었으니 어른이 된 솔이나 다른 이들이나 여력을 주기 어려웠을거다. 나만 해도 그러하니까. 뭐,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를 시작으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랬다고 어른의 삶이 그런거며 이제와 만나봐서 뭐하겠냐는 자문자답에 취해있기 딱 좋은 시절이겠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_ 어떤 용기로 한 교수 같은 권력에 맞서 싸울 수 있었는지를, 그건 부끄러웠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문이기도 했다.

아저씨는 이렇게 답했다. 한 교수 같은 사람이 이 사회의 지식인으로 인정받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그걸 깨기 위해 나섰다고. 지식인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 사람의 주변엔 많은 이들의 영향으로 갈래가 달라지기도하고, 그로 인해 인생의 방향성도 정해진다 하니 돈아저씨는 여타 다른 어른들과는 세계관부터 달라 아이들은 재미난 어른이 곁에 있어 평범하고 흔하게 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극복해 나아갈지 어느게 옳은 것인지도 구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라만차클럽의 한빈이나 대주, 새롬 뿐만 아니라 돈아저씨의 진짜 본케인 장영수로서 살면서 학과 동기였던 권사무장, 동료 선생이었던 박원장의 이야기를 들었때 얼마나 올곧은 사람인지를 알게된다. 특히나 출판사에서 같이 일했던 승아씨의 이야기와 민PD를 통해 옳고 그른 것을 앞에 두고 휘지 못하고 부러져버리는 사람을 보면서 유연하지 못했고 흔들리지도 못했으나 진실되고 정확했던 사람을 통해 당장은 아니더라고 결국 그의 이야기가 다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진실은 승리한다는 말을 자막에 넣어주고픈 만큼 말이다.



김호연 저자의 이야기엔 우직하고 올곧으면서 또 한편으론 외골수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 사회 부적응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하면서도 그를 믿어주고 기대해주며 기다려 주는 이의 시선으로 사람이 어떻게 변해하고 세상에 어떻게 스미는지를 보여준다.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와 나의 돈키호테의 돈사장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고, 그의 세계가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인물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더 알고싶어지게 만드는 사람이 되기도하고, 왜 저러나 싶어하며 시선 밖으로 보내버리는 존재로서 치부하기도 한다. 염여사나 진솔이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는 책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우린 돈키호테의 세계관을 그냥 고전 소설의 일부로 생각하며 나의 삶과는 별개의 작품으로 이름만 들어본 그거? 라고 넘기게 될 것이다. 저자의 글 맛은 우리 주변에 있을법 하면서도 내가 외면하고 넘겨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술술 읽히고 더 빨리 와닿게 만드는 점이다.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탄력을 잃을 즈음 흔한 사랑이야기를 넣어가며 분량을 늘리거나 소재의 변화를 주지 않아서 더욱 마음에 든다. 더군다나 솔PD가 겪어온 청소년 시절과 현재의 시점은 80년대생인 나의 과거와 맞물려서 추억 회상용과 함께 모든 시절을 겪어온 세대가 공감하기 딱 좋은 요소가 있어서 더욱 반갑게 느껴지고 쉼 없이 읽게 만들었다.

내가 돈키호테를 읽어 본 적이 있던가? 이 이야기를 보면 나는 영락없는 산초 재질인데, 돈아저씨가 필사에 많은 공을 들였던 돈키호테를 읽으면 나도 어느정도 돈키호테같은 기질이 생길 수 있을까 싶어하며 오늘은 완독의 기쁨과 함께 고전을 들춰보며 나도 아는 인물들이 있다며 알은체를 해 볼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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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문학과지성 시인선 601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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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터가 왈랑거리게 만든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 있던가? 를 묻는건지, 아니면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 있었지로 마침표를 찍는 자문자답의 과거회상형인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말이다. 이건 저자가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담았으며, 동시에 독자들에게 그대들에게도 이러한 시절이 있었느냐고 물으며 이 책으로 인해 과거 여행하듯 당신의 사랑이 차고 넘치던 시절로 가보자며 추억팔이 하게 만드는 시집으로 보였다.

애닳고, 구구절절하며,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짠한 사랑을 수없이 해본 능력치는 없으나 적당히 서럽기도 했고, 적당히 간절하기도 했던 청춘의 순간이 있었으니 결국 이 시집의 제목에 해당하는 '사랑의 바보'로서 내 애정 루트와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사랑의 방향이 같을지 다를지를 생각해보며 짧은 문장 긴 여운 속으로 빠져들어 보게된다.


📖농밀_ 당신의 눈에 빛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당신 눈 속에 반사된 풍경 안에 / 내 모습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이 제목을 보고 짙고 빽빽한 무언가를 떠올려야 할까? 아니면 서로의 관계가 두텁고 가까운 것으로 정의해야할까? 상대를 향한 마음이 촘촘하고 빽빽해서 다른 무언가가 스밀 틈이 없음으로 그만큼 우리로서 관계가 두텁고 가깝게 여기고픈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크게 에둘러 생각해야 할까?

서로를 향하는 눈빛의 온도는 지금의 계절만큼이나 뜨겁고 진득하다. 그렇기에 유독 더 반짝일 것이다. 그리고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상대가 보고있는 프레임속에는 항상 '내 모습'도 함께 들어가 있을 것이다. 모든 시선들이 '서로'를 기준으로 삼았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어느 풍경이든 어떤 배경이든 내모습이 기준이 되어 계절과 시간을 살아낼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프레임이 존재 할 테지만 겹쳐 보이는건 네가 바라보고있는 내 모습일것이고 나 또한 내가 보고있는 네 모습이니 이 모든게 진득한 관계 일 수 밖에 없다는 표현이다. 다만 마지막에 적어둔 '별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 당신 눈동자가 흔들린 거라 믿게 되었습니다'로 미루어 보아 혹여라고 굳건하던 시선이 옳게 마주 보기 어려워지고 외면하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알아차릴 네 눈속에 내가 있을테니 그것만 기억해달라는 간절함이 보여졌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_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산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 영원을 붙잡았던 적

그렇다. 이 감정은 병이다. 그래서 치료도 필요하고 예방도 필요한데 생각만큼 약발이 잘 듣지않아 애를 먹인다. 손을 씻어 세균을 털어내듯 시선을 거두어 감정의 감염을 차단하기도 어려운 질병이다. 모든 시작은 당신으로 시작했고, 그 끝도 당신으로 끝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는걸 이미 알기에 영원을 붙잡고도 애원하고픈 마음이 마지막 문장에 담겨있다. 나는 왜 이 시를 보면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라는 노래가 생각이 날까.

사랑이라면 모든걸 내어두어도 아깝지 않을 청춘이 시작되던 스무살에 들었던 노래이며 짝사랑에 진득하게 취해 있던 그 해 겨울 이 가사때문에 꺼이꺼이 울게 만들었던 것이 지금 이 시의 구절과 닮아있다. 노래 가사중에 '이 세상의 모든 이별 노래가 당신 얘길거라 생각해 본 적'이라는 파트가 있다. 그러고보니 문장의 끝마다 '~적'이라며 내가 하던 행동들이 다 이 때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게 아니었다면 이러한 행동들이 수반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러한 생각 자체도 하지 않았을테니 이토록 미련한 행동들과 상황은 결국 다 사랑한 적으로 시작된 눈물나게 씁쓸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 누군가는 이 맘을 모를 것이고 말다.




📖과녁_ 사랑이 끝나면 / 말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되어 미쳐 다닌다

사랑의 끝은 행복이 아니라 남남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 모든 감정과 상황을 쓰레기봉투에 꾹꾹 눌러담고 싶게 만드는 엔딩. 그래서 결국 그와의 사랑은 쓰레기통에 쳐 넣을 만큼 보기싫고 담아두고 싶지 않아 미간을 찡그리게 만든다. 모든 화살의 끝은 그로 정해두고 싶은 것이다. 누굴 탓하겠나 싶어하며 그 사람을 과녁에 박아두는 것이다. 손으로 셈을 할 수도 없을 많큼 행복했고 사랑스러웠으며 기쁘기도하고 소중했던 기억마저 쿡쿡 찔러가며 시절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사랑의 끝. 같은 단어와 같은 장소, 같은 사물을 보고도 사랑을 하던 순간과 사랑을 끝낸 순간엔 모든 의미가 달라지고 보여지는 형상조차 달라진다. 사랑의 언어가 풀어주는 의미와 그렇지 못한 지금의 내가 두껍게 칠하며 부정하는 그 의미들. 그토록 보기싫고 지워버리고 싶은 사랑인데, 과연 우리는 그 사랑을 덮어버릴 만큼의 더 크고 두터운 사랑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단지 그와 나눴던 사랑의 언어가 옳게 해석되지 못했을 뿐이고, 그 언어를 척하면 척하고 알아줄 공용어를 사용하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라 여겨주면 좋겠다. 사랑의 언어는 잘못이 없으니까. 그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표현한 사람이 잘못한 거니까.



📖그네_ 당신을 쫒는 것은 답이 아닐지도요

어제의 세계와 그 세계를 갉아먹었던 불순한 버릇들과 꽃은 왜 이리 붉은 것인지에 관한 의문들을 선명하게요

되뇌이며 말을 하지만 모든 문장의 끝엔 확신이 없다. ~것일지도, ~겠지요, ~아닐지도요 로 끝맺음을 하는 걸 보면 지금 믿고 싶은 이 감정의 확신이 무조건 적인 응원과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을 내비치는 확고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 시의 시작이 '그래도 가려 합니다'로 먼저 마음을 툭 하고 던져둔건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당신으로 인해 이 세계가 듣고 싶은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 뿐이니 부디 나와 당신이 아닌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이 듣기 싫은 것들로 가득하더라도 나만이라도 듣고 싶은 것들로 덧씌워 받아들이고자 하는 다짐으로 보였다. 두 눈 질끈 감고 감내하겠다는 다짐이다. 내 마음을 밀어 당신에게 다가 간 만큼이 느껴진다면 당신도 딱 그만큼이라도 마음을 밀어 보여주길 바라는 기대감이 가득한 단어들까지. 당신을 쫒아가며 애닳게 향하는 마음이 타인이 보아도 아니라 할 지언정 확고한 답이 없음을 빤히 보아도 그래도 가려하는 거니 내가 밀어 보낸 마음 딱 그정도라도 표현하며 알고 있음을 표현해주기 바라는 간절함. 그러니까 들켜도 되는, 들키고픈 마음이 가엾게 여겨진다.

모두가 축복하고 응원하며 기대하게 만드는 사랑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힘을 싣어 줄 테니 애걸복걸 하는 마음이 앞서지않았다. 다만 한쪽만 애절하거나 빨리 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상황. 분명 애타는 마음을 알텐데도 모르고 살고자하는 이를 보며 유리벽 앞에서 사랑을 내밀지 못하는 가여운 마음에 우리는 더 동요하게된다.

내가 좋아하는 이도우 작가님의 문장이 머릿속에 가득해지는 순간이다. '당신의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그 무탈한 사랑이 제일 어렵다. 그래서 우린 이 이야기에 내 한 시절을 뜯어내어 빨리 딱지가 앉아 더 아프지 않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겹쳐있는 쓰린 순간을 켜켜이 덧대어 놓아보면 그 순간의 선택 덕분에 내 사랑이 더 외롭고 아프게만 남지 않을거라는 기대를 하게된다. 제발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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