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시티 뷰 -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우신영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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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 '지켜야 할 세계'를 제법 흥미롭게 읽었기에 이번 수상작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컸다. 그래서 또 이렇게 챙겨보게되는구나. 이번엔 우신영 저자의 시티-뷰. 저자의 이름이 생소하긴 하나 책소개에 적혀있는 소재를 살펴보니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관심이 갔다. 뭔가 현대 생활 밀착형 소설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마냥 허구의 이야기는 아닐테니 머릿속에 영상을 그려보며 이 작품이 OTT를 통해 구현되면 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읽게되고, 꼬여있는 이야기들과 인물이 감추고 있는 숨은 뜻을 찾는 그야말로 머리싸움하게되는 글이 아니다보니 더욱 단숨에 이들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정공법으로 그들의 진심을 긁어 낼 수 있었다.

바다를 메워 만들어진 도시 송도. 필라테스 센터가 편의점보다 많고, 온종일 걸어도 노인을 보기 힘든, 아찔한 높이의 유리 빌딩이 거대한 숲을 이룬 신도시. 마천루 숲 아래 묻혀 있는 바다처럼, 욕망은 도시생활자들의 고상한 가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의사 석진과 필라테스 센터장인 수미. 각자의 욕망과 결핍을 서로에게 감춘 채 이른바 쇼윈도 부부로서 SNS상 워너비 커플로 만들어둔다. 그리고 각자의 욕망과 사사로운 마음들은 다른쪽을 향해 있다. 수미는 자신의 헬스 트레이너에게, 석진은 자신의 환자인 공단 노동자 유화에게 눈길을 돌리게 된다. 상대에 대한 미안한 마음? 그런건 애초에 없지. 있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사소한 부도덕이라 하니 어쩌면 이 둘은 자라온 환경과 성향이 다름에도 결국 똑같은 부류였기에 결혼을 했고, 그렇게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의 집안 재력을 무시 할 수 없는 형편, 상대의 번지르르한 직업을 외면 할 수 없는 실정. 잘난 집안의 돈 많고 예쁜 사람, 못사는 집안에서 공부머리 하나로 용이 나버린 이른바 '~사'자 돌림의 능력가진 사람. 각자의 결핍에 아귀가 맞는 충족요건이니 애정보단 생존의 유연한 지위를 우선시하는 조합을 보며 제대로 신도시 워너비 부부 다운 재질임을 느낀다.

이야기가 깊어질 수록 서로는 뭔가를 알아낸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걸 명확하게 드러내어 불편한 심기임을 표현하지 않았다. 석진에게 풍겨지는 싸구려 화장품 냄새에도 차분했다. 외국인 관광객에 묶어 파는 알로에 마스크팩이나 달팽이크림 같은 냄새에도 평정심을 가장한 수미를 보며 평소 성격같지 않았던 대응에 독자인 나는 '얘 성격에? 말을 안한다고?'라는 의문이 가득했으나 자신이 청렴하지 못하니 긁어내지 않더라. 석진은 또 어떠한가. 어디선가 본 적있는, 그렇지만 확신하지 않으려하는 수미의 옆구리의 작은 타투. 새긴지 얼마 안 된 듯 홍조와 부기가 남아있지만 그 날개 타투로 왈가왈부하지 않는 이른바 흐린눈으로 외면하는 방식을 보며 이러니 같이 사나보다. 결국 부부는 이렇게 서로의 싫어하는 모습을 가장 먼저 닮아가나보다 싶어졌다. 때때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사랑이라 보이고 싶지만 경멸한 것들만 보려했다. 내가 익히 아는 부부랑 다른 관점이지.

알지만 꺼내선 안되는 금기어 같기도 하며, 그렇게 상대를 까발리기엔 자신이 깨끗한 마음이지 못하기에 알고 있지만, 짐작은 가지만 자신의 고고한 입에 그러한 상황을 입에 올리지 않는 기분이랄까? 그들은 결국 껍데기는 달랐으나 그 속에 숨겨진 속내는 도긴개긴인 격.




📖석진에게 바뀌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제 가족의 등을 데워주고 배를 불려주는 남자였다. 하지만 배부른 소리란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은 등 따시고 배불러도 아쉬운 소리를 하게끔 욕망의 구조가 설계된 동물인 터.

보여지는 삶에 대한 충족은 남편에게 얻고, 숨겨도 티가 안날만한 욕망에 대한 충족은 거의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트레이너에게 채우는 욕망 충족에 몹시도 성실한 수미의 인생 철학을 옅보게 된다. 애들은 시터 이모님이 키우고, 남편은 서재라 부르는 동굴에 박혀있고, 그럼 염수미는 어디에 있냐고? 화려한 필라테스 센터 원장으로 살고, 또 한켠에는 고층 바에서 이렇게 젊고 탱탱한 연하의 남자와 비싼 와인을 나눠마시는 삶으로 드라마같은 인생을 유지한다. 뭔가.... 사랑과 전쟁에서 볼법한 부부의 균열 밑밥같네?(요즘 부부리얼리티는 모르겠다. TV를 안봐서 비교 불가)




📖시골 쥐들은 말이야, 항상 뭘 그렇게까지 하냐 싶을 만큼 해야 해. 노력도, 연기도, 서울말도. 도시 쥐 비슷하게 보이려면.

여기서 느껴지는 석진의 결핍과 약점. 어린시절 자극이 되어버린 부모의 갈등과 가정형편. 그 때부터 시작된 곱절의 노력. 그리고 양가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재력에 늘 굽어있는 마음. 페이닥터로 살며 실적에 더욱 연연할 수 밖에 없는 눈칫밥 그득히 먹은 자의 시선. 뭐, 이러한 형편 마저도 처가에서 돈 들이고 신경 써 주어 병원을 차리니 수미를 채근하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상황을 안 만드는 미지근한 사람이 된다. 그렇게 미적지그리한 인간이 거짓말을 해서까지 수미와 정 반대이며 어쩌면 석진의 과거랑 많이 닮아있는 유화를 만나는 모습이 나름의 일탈 같으면서도 석진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는 수미의 우월감이라는 감정을, 석진은 유화를 통해 얻어내고 싶었던게 아닐까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이란 결국 줄세우기를 통해 쟤보다 내가 더 나은 것임을 증명받는 과정에서 얻는 쾌락을 바란건지도 모르겠다.




📖심사평_ 의도를 한껏 밀어놓고 인물들의 복잡한 욕망과 그 욕망의 발원지를 면도칼로 저미듯 해부해간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마지막 페이지에 적어두었는데 그걸 보니 수미와 석진이 진짜 원하는 삶의 진심이 보였다. 화려한 도시 시티 뷰를 담기 위해 많은 유리를 청소하는 일꾼.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두고 높은곳에서 위험한 일을 감내한다. 목숨줄을 걸고 생계의 밥줄을 이어가는 사람. 그 한편엔 실내 클라이밍 현수막이 걸려있다. 도시인의 억압된 야성과 본능을 되찾으라는 말. 누군가는 목숨줄을 걸어둔 채 하강 하는 곳이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욕망의 줄을 걸어두고 눈을 굴리며 기를 쓰고 올라가는 반대의 삶. 그게 이 시티-뷰의 주인공이며 그들이 외도한 인물의 상반된 삶의 방향이라 할 수도 있겠다.

결혼을 했음에도 외도를 하게되는 각각의 인물. 외도? 바람? 어떠한 포장을 하더라도 참작의 사유가 되거나 그럴만 했겠다 하는 수긍으로 이들을 가엾게 볼 마음은 없다. 송도 원장부부를 멀찍이 내다보는 입장에서는 서로가 가해자이며 서로가 피해자로 누가 먼저 시작했고 누가 딥하게 외도를 했냐에 대한 시작점 줄세우기가 무색해보였다.

모두 반질반질하니 화려한 삶이다.(유화와 남자친구였던 해룡을 제외하고) 뭐 화려함의 밝기는 다를 지언정 필라테스 센터로 사는 원장 수미, 처가의 등에 업힌 채 바지사장처럼 이름으로 장인장모 위신 세워주는 내과 원장 석진, 멀끔하고 반듯하게 틈이 보이지 않도록 가꾸지만 속내는 신물 올라오도록 단백질 쉐이크 먹어가며 최저가 닭가슴살로 냉장고든 뱃속이든 채워가는 주니, 고향을 떠나 더 나은 삶이길 바라며 한국으로 넘어와 고된 일을 하지만 짙은 마스카라로 자신을 추켜세우며 면도 칼을 삼키는 유화까지.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먼저 일러둔 시티-뷰의 배경. 그 화려함만을 본다면 나 또한 욕심나는 삶의 배경이다. 헌데 마음 한켠에 남는 어딘가 모를 불편함이 스믈스믈 기어나오더니 기어코 이야기 끝에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나로 떫은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돈으로 메꾸는 것에는 도가 텄지만 그걸 제외하고나면 남는게 없다. 수미가 굳이 석진과 재혼 할 사유도, 주니가 수미의 비유를 맞출 이유도, 석진이 수미의 심기를 안 건들이고 살아야하는 목적도, 옥란이 이 큰 집에 형제들을 케어하며 개수발까지 들 상황도, 유화가 면도칼을 삼키면서까지 기어코 살아야 하나 싶은 타국에서의 삶도. 결국 화려함이 눈에 익어버려 그것만 쫓아가는 불나방같은 삶으로 자진해서 걸어들어간 자들의 세상이 바로 이 시티-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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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촉법소년 네오픽션 ON시리즈 29
김선미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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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그리고 마냥 측은해지지도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읽었다. 진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모두가 알아야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읽다보면 화딱지나며 울컥하기도하고, 뭐 이딴 일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성질이 솟구치지만 소설같아도 소설만큼이나 현실에는 촉법소년이라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망나니마냥 깽판치는 연놈들이 많다는 거다.

네오픽션 ON시리즈 29권으로 만난 범죄 앤솔러지 촉법소년. 다섯명의 작가가 서로 다르게 바라보았을 촉법소년의 면면이 이 한권에 모여있다. 여기에는 사건의 피해자가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하고, 피해자의 부모나 교사 등 주위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한다. 가해자의 목소리를 빌려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했으며 소설이긴하나 다양한 인물시점으로 촉법소년과 소년범죄의 실상을 여실이 드러내주었다. 이젠 하도 흔해져서 모든 감각이 무뎌진게 아닐까 싶었으나 글로 읽은 이야기는 그간 봐왔던 영상이나 기사들로 켜켜이 쌓이다보니 머릿속에 그 현장이 그려져 더욱 사람에게 질려버리는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성인의 덩치마냥 훌쩍 커 버렸으나 아직은 보호받아야 할 아이 인 척 하는 설익은 인간. 누군가가 기분이 나빠져도, 다치고 상처 입는 상황이 주어져도, 심지어 죽더라도 괜찮다는게 말이 될까? 촉법소년이라서 괜찮다는 저 덤덤한 모양새는 과연 이 제도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되면서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던 어떤이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뿐이다.



📖레퍼토리_ 나 같은 밥벌레도 형사처벌 늪에서 빼내 소년원으로 보내주는 좋은 법이지. 교정교육으로 비행을 예방할 거라는 순진한 발상은 안타깝긴 하지만.

히어로도 아닌 것이 다크 빌런도 되지 못하는 놈이 뭐라도 된것 마냥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기도하고, 자신의 기분에 맞춰주지 않는다 하여 이러한 일을 저지르는 상황. 소년원에서 썩는게 그 2년이라는 시간이 길었다며 심신미약, 우발적 살인으로 9호 처분을 받고 6개월말 살다가 나왔어야하는데 그전 절도 보호관찰때문에 재수없이 10호받았다며 짜증을 내는 목소리. 교정교육과 예방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게 의미가 있을까. 뚜렷한 목적의식이라도 있는게 아니라 그저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위해 행위에 죄책감이 없다는 것. 한 번이 어려운거지, 반복되다보면 습관이되고 무뎌진다는 말을 이러한 상황에 쓰니 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이미 교정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는데 므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행정상 절차. 아마 소년원에 이어 교도소 수감과 석방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뉘우침 보다 또 똑같은 삶의 반복 이어갈 삶처럼 느껴졌다. 부디 이 인간의 주변에 무해한 사람들의 사건사고가 없기를 이 인간의 행동반경에서 멀어지길 바랄 뿐이다.


📖징벌_ 그때 난 어렸어, 어렸다고. 뭘 몰라서 그랬어. 그런데 이건 아니잖아. 말로 할 수 있잖아.

그때도 지금도 말로 할 수 있었다.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너는 해도 되고, 네가 당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웃기지. 진솔은 연예인이랍시고 자신을 케어해주는 주변 사람들을 하대하고 있다. 매니저도 안다. 그렇지만 얘가 캐스팅이 안 되면 자신의 밥벌이도 끊길 것이니 비유를 맞춰줘야했고, 떠받들어 주며 오냐오냐 해주며 감정을 꾹꾹 누르고 버틴다.

전진솔에겐 이러한 까칠함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소년 시절 왕따와 학교폭력을 일삼던 무리였다. 그러한 비행이 도를 넘다보니 단편에서는 2045년 청소년들의 촉법소년 징벌 강화를 위해 '정신 징벌'이 제정된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대상자는 징벌 포켓에 들어가 자신이 벌인 일을 똑같이 당하고, 미래까지 엉망이 되는 경험을 체험하는데 그 충격은 실제로 당하는 것과 흡사하도록 구성되어있다. 정신을 놓거나 극도의 불안 장애를 얻으며 사회에 대한 공포를 얻게 된다. 과거 자신들이 상대에게 했고, 상대가 겪었던 만큼 그대로 겪는 상황을 통해 정신징벌 집행의 과정을 보여준다. 논란 끝에 법은 통과되었으나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신 징벌 연구소장 최연희는 단호하게 말한다.

"잊지 말아요, 우리는 이제 가해자의 인권 따위를 우위에 두지 않기로 했어요."

그렇다. 상대의 인권을 존중해 주지 않은 채 청소년이며 아직 보호 받아야 할 덜 자란 아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았었다. 존중 받고 싶다면 그에 맞는 행실을 했어야겠지. 설령 이러한 상대의 존중과 예의를 모른다 할 지라도, 다 커서는 사람 구실을 했어야 하는데 제 버릇 개 못 준 겪으로 살아왔으니 그만틈 되돌려받고있음에 나도 연구소장과 같은 마음으로 감정을 뺀 채 바라보게 되었다. 백방 말해봐야 소용이 없구나. 직접 겪어봐야 피눈물 흘리며 싹싹 빌게되는 모습을 보니 반성? 갱생? 그런건 말로 해서는 이뤄지지 않는 부류임에 다시금 변할거라는 기대를 놓게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감정의 억제나 해선 안된다는 도덕적 정의는 분명 교육받았을텐데 이들의 머릿속엔 남아있는게 없어 보였고, 촉법소년을 위해 시청각 교육이든 언어순화와 대화의 과정이든 피부로 즉각적으로 와닿는 강력한 대응과 비교 할 때 무의함에 회의감이 든다. 어릴때 교사들이 꼭 그런 레퍼토리를 한 적이 있지. '꼭 매를 들어야 말을 듣니?' 라는 문장. 진솔에겐 딱 그정도, 똑같이 위해를 가해야만 타격을 받는 것을 통해 순화교육만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의 갱생확률이 있긴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네메시스의 역주_ 오늘 너 때문에 돈 엄청 썼으니까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다 갚아야 한다!

개인적인 복수, 그리고 법이 다 채우지 못한 틈. 범죄의 양면. 예린이 선택한 건 핏불 테리어를 통한 복수였다. 단편의 시작은 디데이부터 이 일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을 역순으로 보여준다. 복수를 위한 과정을 결말부터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계기까지 거꾸로 올라가다보면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수긍하게된다. 해서는 안 되는 것 이지만 그럴만큼의 이유가 타당해보였던 슬픈 목적. 이야기 초반을 보면 복수를 위해 예린를 칠 것 처럼 돌진하는 장면이 보여진다. 조사관도 알고 예린도 안다. 일부러 그러했다는 것. 자신의 아들이 예린의 개에게 물렸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위협을 주고 싶었던 것으로 속에서 드글거리는 화가 진정 이 아버지 뿐인가를 생각하다가 후반에 가면 모두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누굴 탓해야할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들의 잘못을 타이르기 보단 수습하느라 쓴 돈과 시간,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에 흠이 간 것이 짜증스러운 부모의 말을 통해 하루는 가정에서 뉘우치고 옳고 그름의 정확한 정의와 함께 잘못을 뉘우칠 만한 회귀의 과정을 영영 얻을 순 없음을 비춰낸다.


📖OK목장의 혈투_ 그러니까 이 또라이 선생님아, 외지인이면 외지인답게 그냥 곱게 있다 꺼지세요. 왜 남의 일에 끼어들어, 끼어들기를. 그냥 모른척하고 꺼지라고!

아이를 키우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댔지? 아이를 망나니를 키우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한거였다! 라는 말로 이 단편을 표현 할 수 있었다. 그 십자가 귀고리를 한 아이는 아버지를 등에 엎은 후 제 멋대로 구는 악마로 변해있었고, 아버지는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 온 마을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허허실실 자선가 행세를 했다. 그리고 봉사와 나눔이라는 이름을 거들먹거리며 보여지기에는 참 좋은 사람으로 살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놈의 허울을 덮기 위해 바삐 살았다. 알면서도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 알지만 어찌 할 수 없는 권력과 재력 앞에서 보고도 못본척, 들어도 모르는척 그렇게 벙어리 귀머거리 봉사로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사건이라고 한 건 지역사회가 가지는 결속력이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서 외지인이나 힘없는 사람을 한순간에 병신취급하고 되려 네가 이상한 놈이라는 방식으로 몰아세우기 때문에 저자는 소설의 배경을 지방의 소도시로 지정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를 바로 잡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겠다. 촉법소년이라는 소재에 빌붙어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권력 앞의 외면을 통해 정작 도움 받아야 할 아이가 손가락질 받는 상황을 보면서 모든게 완벽하게 어그러진 세상임을 느꼈다.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_ 당신도 나와 똑같은 심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가해자가 사실과 다르게 빠져나간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이에요.

그는 선을 넘지 않았지. 이미 예전부터 선을 넘었기에 더이상의 넘을 정도의 선이 없었을 뿐인 상황이다. 부모가 자식놈의 범죄를 촉법소년이라는 것으로 덮어두면 평생 잘 먹고 잘 살줄 알았겠지.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자연스레 잊혀질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부모가 자식놈의 명줄을 제 손으로 비틀었음을 느낀다. 자식놈이 반성하며 살아갈 몇번의 기회를 매번 외면 한 것도 부모였으니까. 제 자식 만큼이나 남의 자식도 그만큼 귀한 줄 알아야 하는데 꼭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야만 실감하는 모습을 보면 어불성설로 끝까지 자기 아들만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일관하는 모습에서 역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고쳐쓰이질 못할 인간 심은 데에 똑같은 인간이 나는 거였다는 걸 느낀다.

마지막 문장에서 사람이라면, 적어도 어른이라면 반성과 후회의 기미가 있길 기대한 내가 바보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사람을 죽였음에도 그는 자신의 아들을 교통사고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을 제 손으로 벌하였다며 끝까지 과거의 잘못을 들먹이진 않겠지. 어째 죽어서도 고쳐먹을 껀덕지가 없어뵈나 모르겠군.

.... 그리고 나에게는 촉법소년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었다. 다는 말로 아들을 감싸는 아버지라는 작자의 세치 혀를 잘라버리고 싶게 만들기도 했다.

다섯편의 이야기들은 호흡이 길지 않았고, 바로바로 상황을 직시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세세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익히 아는 사건들로 인해 데이터가 많이 쌓여있으니 몇몇의 문장들로 모든 극의 배경과 에피소드들이 머릿속에 구현되었다. 그리고 다시 책 표지를 봤다. 눈은 뜨고 있으나 동공이 풀린건지 집중을 해야하지만 관심이 없는건지 알 수 없는 눈빛과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을 듣긴 들겠지만 담아두지 않겠다는 낯빛통해 일단 이 책에 있는 촉법소년들은 말귀를 알아 먹지 못할 애들의 조합이었음에 다시금 명치가 갑갑해져온다.

과연 법이 저 아이들을 봐주기 위해 이러고 있는 걸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흉악 소년범죄는 일부이며, 대부분은 교화가 가능했고 그러한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가정으로 돌아가 다시금 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촉법 연령을 낮추는 것으로 법 개편을 요구하기도 한다지만 연령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보호를 해주고, 개화의 기회를 주는 것. 글쎄, 나로서는 촉법소년으로 불리워 질만한 시도를 한 것으로도 잘못된 사안을 인지하지 않고 했다고 간주하게 된다. 이들이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잘못된 것이며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고, 자신으로 인해 빚어진 사건에 대해 반성과 사과의 마음이 순수한 100% 진심으로 사죄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출판사에서 홍보문구로 기록해둔 카드 문구의 마지막을 보면 욱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법의 가호를 받는 건 과연 누구인가' 라는 문장을 통해 또래들 사이에서 영웅이 된 것 마냥 떠벌려 질까 무서워지며 결국 이러한 모든 사건은 피해자의 손을 잡아 주려 하기보단 '애는 착해요~'라는 말로 덜 영근 인간을 감싸기에 급급해보여 마음이 아린다.

법이 저 아이들을 봐주었고, 법이 당한 사람들을 다독인다. 그냥 '괜찮아? 괜찮아!' 라고 하면 끝나는 이 다섯편의 피해자들 속에서 우리가 진짜 봐 주어야 하는 존재를 놓치고 있는건 아닌지를 걱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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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김창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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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필독서가 될 것이고, 생활하면서 글을 쓰는 활동이 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이라면 곁에 두고 보며 나를 다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나도 책상 위에 올려두며 손이 닿는 곳에 항상 두려한다.

직장인 나부랭이로 살면서 내가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더라. 입사 11년차로 과장 나부랭이는 마냥 모르쇠로 일관된 포지션을 유지 할 수 없다는 것. 분기별로 실적 보고는 물론이며, 오너와 실무진에게 요청에 즉각적으로 작성해 전달해야하는 자료들(연말이 두려운 이유), 그리고 공문서 발행까지. 명확한 주제 전달은 물론이며 군더더기 없는 문장 구사. 논증에 대한 확실한 피력이 필요한 것이 문서이다보니 결국 나는 밥벌이 하는 세계 안에서 저널리즘 글쓰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전했다. 시각이나 접근법만 달리해도 새로워지는 게 콘텐츠의 세계라는 것. 언론인이라면 글을 쓸 때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내 글만이 줄 수 있는 걸 항상 생각하기. 그리고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움이 바로 나의 브랜드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글이 완성됨을 느낀다.


총 3장의 갈래로 나눠두었으며 부록으로는 역대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과 작물 부분 당선작 사례를 들어두며 사례들 속에서 어떤 글쓰를 해야 할 지를 탐닉하는 과정을 이어가기로 한다.

1장) 저널리즘 글쓰기의 기초 / 2장) 논술, 설득하는 글쓰기 / 3장) 작문, 뇌를 깨우는 글쓰기

그 중 어느 현장이든 사용 할 수 있는 설득하는 글쓰기가 가장 얻어갈 게 많은 부분이라 여겼다. 논리적 표현과 논리적 구성. 이건 대입 논술 공부를 하면서 많이 접했던 파트이긴 하나 대입과 함께 내 머릿속에 지웠던 단어이기도 하다. 결국 표현력&구성력 / 논증법 / 논제 정리를 통해 내용의 정확성과 적절성에 밸런스를 맞춰 표현의 강함에 치중하기 보단 튼실한 내용을 쌓아하는 방식을 얻어 갈 수 있었다.

논증은 결국 주장함에 있는 힘인데 구성요소를 촘촘하게 만들어 사이사이에 전제를 배치하여 설득을 하는 방식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내려주었다. 나만 그런가? 근거가 되는 사례 제시에 있어서 다양하다며 이것저것을 내어두지만 나열하기만 하고 정리하며 일관됨을 피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는 건 많지만 그게 정확히 무얼 말하는지 알려주지 못하는 자료 줄세우기 밖에 되지 못한다. 하나의 사례를 들더라도 왜 주장을 뒷받침 하는 지에 대한 친절하고도 정확한 정리가 있어야만 그 논증은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이건 언론인이든 대입이든 취업 준비든 해두면 두고두고 유용하게 쓰일듯한 글쓰기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논제 속에 숨어있는 충돌하는 가치를 찾는 과정의 반복, 반론을 고려하며 논증하면서 합리성을 키우고 설득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야말로 말싸움 글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툴이니 업무연락이나 협의를 빙자한 니탓내탓 편가르며 잘잘못 가리게되는 회의석상에 칼자루를 쥐는 힘이라 느꼈다.



기초가 기반이 되어야 하고, 그걸 가지고 응용하며 설득력을 붙이는 과정. 마지막으로 내 것의 글, 나의 색이 뚜렷한 작문으로서 타인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을 통해 작문 전형에 맞춰진 비슷한 글밥속에서 나를 튀게 만드는 방식.역시나 깊이 탐구하는 건 기본이며, 본질을 통해 나를 더 우위에 두는 과정. 그래서 결국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뜯어봐야 답이구나를 느낀다.

언론고시라 할 만큼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강의를 들을 여력이 되진 않으니 이렇게 현직 언론인이 공부한 저널리즘 글쓰기의 스킬을 읽어가며 나름의 글쓰기 습관을 다시금 돌아보며 리뉴얼하는 과정을 가져보니 더욱 잘 쓸 수 있는 글의 스타일을 찾아가고픈 마음이 커진다.

결국 글을 쓰기에 앞서 글을 보는 눈이 필요했고, 정도의 선과 함께 어떠한 방식을 더해야만 목표치에 다다를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성이 조금 세워진 듯 하다. 여전히 이렇게 쓰면 안 될 글에 허우적거리기 보단 이러한 인문학 도서로 도움을 받는 과정은 나이가 들어도 해야하는 학습이라 느낀다.


📖하니포터9기로서 한겨레출판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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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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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상반되는 평온한 표지. 이건 마치 풍류를 즐기는 양반가의 한량스러움을 현대판으로 재 해석한게 아닐까 싶은 나른함이다. 공원에서 즐기는 낮술이라니. 그늘이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밉지 않은 시간. 좋아하는 책과 좋아하는 술이 함께하는 노곤한 시간을 표현한 것. 나같은 놈을 위한 표지라고 느껴졌다. 공원 갈 때면 책 한권을 챙기고, 평일 저녁 남편과 하는 홈술이나 주말에 즐기는 야밤의 와인한잔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람이 말하고 표현하는 언어라면 당연 나도 습득이 가능 할 듯 했다. 그래서 당연스레 펼치게 되었고, 먹을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의 풍성한 표현력에 이 가을 나를 무럭무럭 살찌울만한 식욕증가제가 되어버렸다.



📖여름나기 밑반찬 열전_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저자는 먹고 마시는 이야기를 아주 맛깔나게 담아두었다. 저자의 산문집은 오늘 뭐먹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선택지를 내어준다. '오늘 뭐 먹지?'의 개정판이라 하는 이 '술꾼들의 모국어'는 새롭게 단장한 표지와 본문 디자인도 그러하지만 제목이 주는 힘이 있다. ~꾼이라는 단어가 주는 유니크함이 있거든. 타고난(?) 까다로운 식성이 하나를 먹더라도 더욱 맛있고 기분좋게 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식견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얻어진 데이터들이 지금의 저자를 만들지 않았을까를 짐작해본다.

공부머리도 있는 사람이 먹는머리의 재능까지 겸비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음식사진 하나 없는 이 글에서도 입안에 침을 돌게하고 그래서 나도 오늘 저녁에 저걸 먹어봐?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듯 하거든. 특히나 이 파트에서는 요즘은 잘 찾아 보기 어려운 가죽나물도 있고, 고생고생해서 만드는 시래기반찬에 대한 이야기. 내 손으로는 매번 실패해서 결국 친정엄마의 손을 빌어 얻어먹게 만드는 오이지에 대한 꼬들한 아삭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역시 먹고 즐기는 것에는 켜켜이 쌓인 경험을 무시 못 하나보다. 고추장 속에 질척하니 박혀있는 가죽나물은 물에 말은 밥에 하나씩 뜯어 올려 먹는 묘한 향과 질깃한 식감이 있으며, 시래기나물은 그 집의 부엌 주인이 얼마나 바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진 지를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척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자식들은 엄마의 입맛과 손맛을 닮아 자라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파트. 나 또한 저자 못지 않게 엄마의 입맛을 빼다 박은 사람으로서 여름나기 밑반찬이 나를 키웠고, 또 나를 무르익게 만들 듯 하다. 나를 키워내던 엄마의 나이가 이제 내 나이에 다다른 상태인데, 과연 나도 이러한 묵직한 한방의 밑반찬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엇비슷하게 맛을 내더라도 오래도록 엄마 손맛 타령하며 계속 얻어먹고 싶어지는 마음을 들게하는 문장들이었다.



📖가을무 삼단케이크_ 봄에 싹텄던 것들은 여름에 왕성히 자라 마침내 가을이면 완숙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맛에 있어서만은 가을이 쇠락의 계절이 아니라 절정의 계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절정은 단맛으로 표현된다. 모든 먹거리들은 가을에 가장 달콤해진다.

가을무가 맛있긴 하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 무도 아작 베어물면 사방으로 물이 튀고 달근하니 퍼석함 없이 배를 씹어먹는 것 마냥 양 볼에 수분이 가득 퍼지는 맛이 있다. 그래서 그 즈음 해먹는 무반찬은 다른 식재료의 맛까지 싸그리 잡아채어 누가 메인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매력적인 한입거리로 만든다. 생선무조림을 해두면 말캉하고 살캉한 무에 생선의 감칠맛에 쪽쪽 들어가있고, 맑은 소고기 뭇국을 끓여두면 전날 내가 과음을 했던가 싶을 정도로 위장이 시원하고 개운하게 싸그리 내려가는 느낌을 받게된다. 살짝 달큰하고 새콤하게 무쳐낸 생채는 만들자마자 먹으면 아작거리는 맛 덕분에 씹는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하루를 냉장고에서 묵히면 수분이 빠져나와 적당히 유연해지고 부피도 줄어 젓가락 두어번 듬뿍 옮겨 담아 뜨끈한 밥에 생채만 넣고 내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처럼 양푼에 비벼 먹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묘한 기쁨이 있다.(생채를 담았던 반찬통에 찰박거리는 무채국물은 다른 국거리 없어도 될 정도로 수저로 퍼 먹으며 국물김치의 자리를 메꿔주기도 한다) 이러한 가을무의 맛에 홀려봤던 사람이라 그런가 나와 같은 결의 혀를 가진 사람임에 반가움이 가득해진다.

어린시절 무를 깎아서 간식으러 먹어 봤던 사람이 알려주는 맛의 스펙트럼. 어린시절 얻어진 귀한 경험이 지금의 저자를 만들었고, 그걸 백분 공감하며 같이 그 시절을 회상 하게 만들어준 나의 어린시절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 국물 그 감자탕_ 첫맛이 주는 놀라움 속에는 어린 나를 동료처럼 존중해준 어머니의 '신뢰'라든가, 내게 맛있는 감자탕을 먹이고 싶어 한 남자친구의 '애정'같은 마법의 조미료가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목구멍에서 국자가 튀어 나오는 고통을 느끼며, 잊지 못할 첫 국물의 맛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저자에게 '간순이'의 시절이 있었다면 나에겐 '간재미야' 시절이 있다. 많은 시동생들을 한 집에서 먹여 키우던 형수였던 나의 어머니. 딸린 식구는 많은데 이것저것 다양하게 먹을 형편이 되지 못했던 시절. 집에서 부업하던 낮에는 거실에서 전자제품 시야기(일본식 한자어)칼질을 같이하던 동네 이모들과 간단한 한끼를 떼우기 위해 갖은 나물반찬을 해서 양을 늘려야 했고, 저녁이면 학교 마치고 돌아오는 시동생들을 배불리 먹여야 했기에 밑반찬과 양을 그득하니 해야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즈음엔 내가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이었으니 그 곳이 놀이터였고 공부방이었고 급식소였다. 그러니 시야기하던 이모들을 불러와 간보라 할 수도 없었고, 형수가 하는건 뭐든 다 맛있어하며 다 먹어치우던 시동생 놈들을 불러 세워 짜니, 다니, 싱겁니를 케 물을 수 없었으니 조막만한 놈을 보조로 세워두고 병아리 입에 나물 한줄기, 새끼손가락으로 양념 한번 쿡 찍어 혓바닥에 톡 쳐주는 그 양념이 '간재미야'가 활약을 하던 순간이었다. 당신도 알 맛이었다. 맛이 없을 수 없지. 그럼에도 오물랑거리며 입을 연신 삐죽거리며 먹어본 후 잔뜩 심각한 얼굴로 꼬소하니 싱겁니 짜니를 논하던 쪼무래기. 이 집 밥상의 내가 좌지우지 한다는 그런 오만함으로 살았던 세월 덕분에 저자 못지 않게 갖은 식재료와 양념에는 모든 추억이 있고, 남들보다 할말이 많은 '간재미야'의 기록들이 쌓여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신뢰'와 한 남자의 '애정'으로 채워진 입맛의 결들. 그 누구도 카피하지 못할 촘촘한 맛 덕분에 저자는 먹는 행복이 유독 더 깊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까막고기의 시절부터 시작하여, 달에 한번씩만 먹을 수 있던 고로케, 감칠맛과 씹는 맛이 남다른 불린오징어튀김의 역사까지.

자칭 술꾼이라 말하던 저자가 알려주는 음식들은 안주 일체라기보단 '권여선을 키워낸 음식들'의 조합이라 할 수 있겠다. 어린시절 키워냈고 버텨내게 했던 힘의 원천이며 어른이 된 저자가 술과 함께 먹으며 위로받는 위안의 맛이기도 하더라. 밥이랑 먹으면 밥 반찬이 되어주는 것이고, 술이랑 즐기면 술안주가 되어주니 삶의 애환을 달래고 그 시절 추억의 맛으로 감질맛을 더하면 그게 뭐 술꾼을 위한 상차림인거지 다를게 있겠나 싶다.

어릴 때 다양하게 느끼고 살려낸 입맛은 평생을 살아가게 함을 저자의 글로 느끼고, 내 입맛의 결로 증명하게된다. 배달 어플과 식당 리뷰를 찾아보며 먹을건 예전보다 더 다양해지고 화려해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좀 더 소박하지만 잔손이 많이 가고 SNS에 올릴만큼의 땟깔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마지막 젓가락질이 아쉬워지는 그 맛에 더욱 집중하게 됨을 느낀다.

타이밍도 기가막히지. 명절 연휴다. 먹을게 넘쳐나고 입맛도 더욱 살아나는 계절이다. 나는 또 며느리 노릇 한답시고 튀김 튀겨내고 전 부치고 기름앞에서 온갖 생쑈를 해가며 음식을 바리바리 싸 놓고 준비를 하겠지만 내가 만든 것 보다 친정엄마가 해둔 똑같은 음식 다른 손맛에 관심가지며 주방에 널려진 채반의 밥보자기를 뒤적이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내가 살아낸 맛의 시절을 되새겨 볼 수 있었고, 세상엔 먹을게 많고 기억 할 것도 많으며 이런 재미 덕분에 나는 또 먹어제낌을 느낀다. 술꾼의 모국어는 결국 나의 0순위의 언어였음을 실감한다.



📖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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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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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을 살펴보면 8년간 모아온 작품을 엮어 낸 책이라 했다. 이야기꾼 김려령의 글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상식이나 제도에 질문을 던졌고, 물밑의 갈등을 고스란히 띄워올려 전형적인 가족서사의 이야기를 현재를 고스란히 옮겨둔 현실적인 가족서사의 판으로 갈아엎어두었다. 그래서 예민해진 인물을 마주 할 땐 더 익숙하다 싶은 설정이라여겼다. 세상에 그렇게 애틋하고 눈물나는 가족은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 가족이 가,족같은 경우도 더러있고, 생판 남이 평생 손발 맞춰온 영혼의 단짝마냥 짝짝꿍이 맞을 때도 있으니 그걸 잘 까발려줘서 속도감있게 완독 할 수 있었다. 결국 프론트맨처럼 내세웠던 기술자들이야말로 부모 노후 밑천과 동생의 통장까지 긁어가며 제 살길 찾아갔던 자식놈보다 훨씬 나은 놈이란걸 다시한번 느끼며 세상이 정해준 인연의 고리가 당연한 법은 없음을 느끼게 된다.





📖기술자들_ '이것저것'들의 역사가 궁금했다. 지금의 일들도 이미 그의 이것저것 속에 포함됐을 거였다. 그렇긴 하지. 하고 최가 빠르게 수긍했다. 얼마나 모호하고 적확한 표현인가. 완곡한 자기비하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든 해야 했던 지난 일들을 꾸밈없이 그러모은 말이었다.

출판사 홍보멘트에는 유사 가족이라 했던 두 중년의 동행.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영혼의 콤비 이자 피만 안 나눈 형제같다는 말이 입에 착착 감기는 둘의 이야기였다. 최에 대한 서사는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구인승 승합차에 있는 이유를 알려두었다. 하지만 조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아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뭘 했대? 뭐 하던 사람인데? 라는 물음을 가지고, 빨리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다.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었고, 밖에서만 맴도는 사람이지만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았으며, 배 곯고 살 사람은 아닌거 같았다. 최도 최지만 조도 어지간한 풍파 다 겪었을 것이고, 사람에게 더럽고 치사한 것들을 다 겪어낸 관상을 지녔으리라 생각되었다.

조의 '이것저것'들의 역사. 지금도 '이것저것'을 해오고 있으니 이 친구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라 여겨지며 제법 장편으로 이뤄저 아주 긴 이야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최도 아마 그 '이것저것'의 역사의 큰 사건으로 각인이 될 것이고 말이다. 승합차 위의 삶에서 조만간 24시간 30년 경력자 콤비 상시 대기 설비소를 하나 차리지 않을까. 번듯한 광고와 SNS인플루언서 고용해서 광고 도배하는 것이 아닌, 찐 후기들로 가득해서 맘카페나 지역 커뮤니티에 쌍엄지 받는 그런 아재들의 설비소 같은 곳으로 돌고돌아 나도 추천 받아 DM 대신 전화하게될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



📖상자_ 상대의 취향은 존중하나 자신이 못 견디겠으니 떠난 이별이었다. 그가 말을 마칠 때쯤 나도 정이 뚝 떨어졌다. 사람 싫어지는 거 한순간이었다.

동갑내기의 연애. 프로포즈는 없었으나 자연스레 먼 미래를 함께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되는 삶의 이상향이 비슷한 커플. 아이가 싫은 건 아니지만 열정을 쏟을 자신이 없고, 아이 때문에 포기하는 일이 생기면 애를 원망할 것 같다는 것. 그래서 신중할 수 밖에 없음을 비췄던 둘이다. 유년기를 회상하며 50대엔 자유로은 삶을 바라는 이들. 그런데 어떠한 일이 생긴 그 다음 날 별것 아닌 듯한 일에 별것이 되어 헤어졌다.

부친의 콜을 받고 가족끼리 식사를 하게된 그녀. 친오빠가 아이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모친이 그간 간직해온 그녀의 어린시절 물품의 전달. 모친은 여러겹의 마음이 쌓여 고민하다 물건의 주인인 그녀에게 전달했다. 혹여 손주를 애틋해하는 마음보다 다 큰 딸의 어린시절이 더 소중하다 여길까 마음이 닳던 시모로서의 입장. 며느리가 마음상할까 벌써부터 걱정만 가득하니 이제는 돌려준다는 그녀의 낡은 담요와 갖가지 유아기 물품. 그 상자가 이 균열의 시작이었다. 우연찮게 보게된 그녀의 어린시절 물품에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여러 소설을 쓰다시피 하더만 제멋대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녀에게 하는 말이 가관이다. '우선... 이건 절대로 네 문제가 아니라는 것부터 말하고 싶어. 순전히 내 문제야. 그러니까 뭔가 잘못됐다면 내가 이상한거지,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뜻이야.'로 니탓 아니라는 척하지만 결국 너랑나랑은 같을 수 없다며 착한이별인척 하는 꼬락서니였다.

소유주에 따른 다른 의미, 확대 해석하며 사물에 대한 히스토리를 히스테리로 바꿔버리는 급발진 전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시키 뭐라 씨부리는거야?'라고....(자주 욱함, 그것도 혼자서만 그러지 입밖으로 못 꺼내는 인간의 욕지거리 최대치) 그리고, '이 시키 이별 생각하고 있다가 구실 하나 찾아서 지 혼자 처연한척 아픈 이별한다고 지랄하는거 아냐?'라고 밖에는 이해가 안 되더라.

그의 행동에 나는 이렇게밖에 해석 할 수 없었다. 이미 이별을 준비했거나, 그녀가 가족과 나눴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은 받아보며 살지 못한 가족간의 애정지수에 평생 나는 그녀의 가족관에 대해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사랑 덜받고 산 사람이구나에 괜시리 씩씩거리며 제풀에 꺾여 이별을 고한 것이라고 밖에 여기지 못하겠더라.

아귀가 딱딱 들어맞아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을 찾는건 쉽지 않지만 이런 것에 욱하고 악하는 인간이라면 빨리 잘라내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유년기 마저 지가 뭐라고 가족 관찰 프로그램의 솔루션마냥 이래라 저래라 하냐는 거지. 그녀가 연 건 어린시절의 히스토리가 아니라, 뭐 뭍은 놈 털어낼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였다고 쿨하게 여겨주길 바랄 뿐이다.




📖황금 꽃다발_ 부지런히 살았다고 해서 돈도 부지런히 모인 것은 아니나, 어미가 자식놈 산 세월을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나. 큰놈은 안식년이라고 몇년마다 쉬더만, 작은놈이라고 그리 못할 건 뭐란 말인가, 너도 쉬어라. 새끼가 어미 옆에서 쉬는 게 무슨 흉이더냐. 푹 쉬거라.

전작 '상자'에 욱 한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놈은 또 뭔 빌런인가 싶은 놈과 뭐만 해도 짠한 놈을 둔 어미의 태몽이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긍정적이긴 하나 제 속 차리는게 시원찮고, 하는 일 마다 잘 되었음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고, 그래서 마음이 닳고, 애가 쓰이는 막내. 그리고 제 밥그릇에 만족못하고 당당하게 부모에게 손벌리고, 동생놈의 돈까지 긁어모아 지 하고픈거 하는 첫째놈. 첫째놈은 잘나서 티비에도 나오고 제 글로 사랑받더니 애틋한 가족이 있었기에 그 글이 있는 것이라는 듯 지 입맛에 맞는 서사로 포장을 한다. 너는 동치미국수가 그리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어미는 입짧은 놈이 그나마 잘 먹는 거였기에 한거지 가난이 가당키나 하나 싶은 모습. 가난했고, 그랬지만 행복했고, 그덕에 그 모든 스토리가 글로 표현된다는 듯 보기좋게 포장하며 사는 놈. 어미는 또 거기에 돌뿌리 박을 수 있나. 저놈의 장단에 맞춰주며 인터뷰를 하지만 그 황금꽃다발의 태몽은 그 놈이 아닌 저 놈이라는 말에 속도 없고, 벨도 없는 막내놈이 또 마냥 애린다. 고루고루 잘난 놈으로, 고루고루 이쁜 놈으로 살아주면 좋겠지만, 모습도, 재능도 반반으로 사이좋게 나눠 가졌으면 이 아린 마음이 덜 했을까를 떠올려보게 만든다. 착한놈은 또 착해 빠져, 미운 놈은 장독 위에 쌓인 눈더미로 바락바락 씻어제껴도 밉상인 건 한 뱃 속에 나와도 답이 없음을 보여준다.



📖뼛조각_ 이 수술로 아버지를 내 엄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작정인 듯했다. 무릎은 멀쩡했으므로. 아버지는 이것으로 근심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므로. 주무시면 안 됩니다. 네. 지금 이 의사는 내가 아니라 아버지의 근심을 수술하고 있다. 내 엄살의 싹을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이었다.

중학생 때 우연히 알게된 몸속 뼛조각 하나. 좀 더 큰 병원에가서 검사해보니 선천적 유합 부전.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세포들이 하나의 뼈로 발달하지 못한 조각 하나라는 것. 그것은 아들에게 엄살과 핑계의 조각이었고, 아버지에게는 물려주어선 안되는 죄스러운 대물림의 조각이었다. 다 커서도 아들에겐 나약한 마음을 갖게되며 이리저리 피할 구실이 그 작은 뼛조각이 되었다. 못살게 굴고 싶었고, 혹사시켜서라도 미워하고프며 원망의 끝은 다 그것으로 인한 것이라며 정직원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보단 이 조각으로 인해 수술을 해야하고 퇴사 할 수 밖에 없다는 방식으로 저 편한방식으로 회피의 구실이 되었다. 간단하다했지만 입원과 퇴원이 필요하고, 간병을 해줄 보호자가 있어야하는 것. 그게 이 뼛조각을 있게 만든 아버지였다. 수술 전이든 후든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이는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 길 없는 아들은 1.5cm 뼛조각을 빼 내고, 5cm의 흉터가 남았고, 아버지는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이 있으면 있던대로, 없어도 없어지지 않은 흉터자국에 또 미안해하며 살게 될 거라는 걸 느끼게 했다. 아들은 이제 뼛조각 핑계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마도 흉터자국을 핑계삼아 아버지에게 또다른 마음의 짐을 덮어주고도 남을 행동에 철없음보다 미련한 짓이라 잔소리를 할까 싶다가도 말을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입자_ 이제 나는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 열심히 산 결과가 늘 썼으므로 설렁설렁 살기로 했다. 내 노력의 결과가 조금이라도 달았다면 없는 힘도 짜내가며 살았을 거였다. 가난해도 자식이 번 돈은 아까워서 못 쓴다는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사람들은 바닥까지 긁어 퍼줘도 뒷주머니 찼다고 욕하는 내 부모를 어떻게 볼까. 박박 긁어 먹히는 노력. 그런 거 이제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그럼에도 돈 벌 궁리 하는 건 나 뿐. 지어지는 집은 많고, 인구수는 줄고 있다 하건만 내가 편히 뉘일 집은 하나 없는 실정. 어떻게든 벗어나고픈 집. 그래서 악착같이 벗어났던 곳이지만 대한민국의 혈연의 고리는 도망친다고 도망쳐지지 않는다. 부친의 암 선고, 등본만 떼어도 알 수 있는 자식놈의 거처 이동경로. 잘 살면 잘 산다고 뜯어가고, 못 살면 밥벌이 안 하냐고 몰아세우는 낳아만 준 사람들. 그렇게 소라게의 집 이동만도 못한 거처 이동 중에 귀신같이 알고 찾아며 뜯어낼 궁리하느라 바쁜 모친.(다행인건 부친이 암 선고를 받아 둘이 손잡고 독촉하러 오진 않는다) 곰팡내 가득한 집, 상해빠진 미역국을 끓이면 괜찮다고 먹어대는 딸. 그래야 돈 뜯으러 오는 텀이 줄어드는 이 관계. 세입자의 딸 거처에서 돈을 훔쳤다는 모친의 영상. CCTV는 모든 정황을 그녀의 모친만을 가르킨다. 보증금으로 그 돈을 메꿀 것인가, 아님 모친을 신고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더이상 혈연의 고리에 끌려다니기 싫다면 행불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 엄마 아빠 동생놈 없다는 셈 치고 살아도 되지. 이미 남보다 못한 사람으로 살아 왔는데, 그까짓거 라는 생각으로 팔다리 다 잘라내듯 그렇게 끊어낸다. 가족은 우리가 아는 형태의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이건 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만한 그런 집안이 따로 없구나 싶겠다만 세상엔 이러한 집구석이 제법 많다는 걸 느끼는 바다. 그렇다. 오죽하면......



📖청소_ 더이상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긴 시간이 흐른 날. 그녀는 아직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먼 곳에 있는 그녀에게 누군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하나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없습니다. 다 닦고 다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고 왔습니다.

제일 애닳다. 연년생의 남매를 키운, 남편 없이 육아와 사회생활을 도맡아오던 그녀는 회사생활을 정리했고, 그렇게 쉬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하루하루 할당량에 맞춰 비워낸다. 청소라기보단 비워낸다. 냉장고 구석부터 시작해서 싱크대 선반, 먼지가 쌓이던 베란다며, 화장실..... 그 틈틈히 남매가 여자를 대하는 말투와 시선이 느껴진다. 시키는걸 하되 먼저 나서지 않는, 긍정적인 대답보다는 마뜩잖은 뉘앙스이지만 결국 잔소리들어가며 할 거라는 걸 알고 툴툴거리며 수긍하는 반응. 그렇게 아이를 키웠고, 자신을 소비했고, 남편의 자리까지 채운 만49세의 그녀는 멀끔하게 흔적들을 버렸다.(비워냈다는 말보다 버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러고 다시 시작이 아니라 집을 나갔다. 어떠한 일련의 사건이 있었기에 버려두고 나온 건지, 다 버리고 시작하기 위함이었던 것인지, 낡고 쓸모가 없어진 물건을 버리며 자신도 버린 건 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하루씩 날을 잡아 끄집어내어 버리는 걸 보고 생각이 들더라. 이 사람 집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삶 자체를 정리하고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 살다보니 그런 눈치만 늘더라. 묵은 일을 해내는게 아니라 다시 할 일이 없을 것 같으니 굳이굳이 일을 만들어 해치우는 모습. 그래서 그녀는 어디로 간건지. 어디에 있긴 한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남매는 두고두고 후회를 하고 있을게 빤했다. 숱한 시그널에는 무뎠고, 후회한들 바뀔 구실은 전혀 없다는 것. 말끔히 비워진 공간에서 흔적찾기. 여러모로 늦었고, 놓친 순간들이다.



성질머리 세우게 되는 글도 있고, 그냥 마냥 가엾은 인물도 있다. 세입자의 원주는 마음이 쓰이고, 걱정만 하게된다. 아마 내 친구였다면 분명 엄마는 나보다 원주를 더 걱정해서 찬거리든 계절에 맞는 방한용품이나 혼자 살면서 챙기기 어려운 것들을 싸그리 쥐어줬을게 뻔한 생이라 행불자가 될 지언정 친구인 나에게는 실종되어주지 말아달라 간곡히 일러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그러니까 부모에게 자식은 상자에 고이 담아두고픈 찰나를 안겨주었고, 혹여나 하나라도 잘못되는 것이 있으면 뼛조각의 아버지처럼 모두 당신의 탓인냥 걱정과 근심의 집합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만사 제쳐두고 다큰놈의 병수발을 하며 모든 것에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역할이 나뉘어진다. 밉든 곱든 제 새끼는결국 내가 품을 삶의 몫. 황금 꽃다발의 어머니처럼 못되쳐먹었다고 궁시렁 거리지만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들을까봐 자식놈의 허울을 덮어버리는 사람으로 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재영의 학창시절 교우관계로 어려워 할 때면 어떻게 해서든 내 자식을 미워하는 시선을 끊어내고 싶어 캥거루맘을 자처하면서까지 교문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오해의 숲에 진짜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지. 내 새끼 마음 쓰는 것만 덜하면 되니까. 그리고 마지막의 순간에 다다를 땐 청소를 통해 혹여라고 있을 당신의 선에서 성가신것, 버려도 될 만한것을 정리하면서 그리워 할 틈과 마음을 다잡을 것 마저도 싸그리 정리해 두고 가는 모습에서 '결국 엄마는 그런 사람'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 존재의 무언가로 남아있다. 가족, 부모라는 감투는 어쨋거나 저쨋거나 결국 내 비빌 언덕이란 말을 하게되나보다. 지랄맞은 딸년이어도 당신들이 아니었음 품어 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사람 구실 할 수 있도록 가르쳐 놓을 사람은 결국 당신 뿐이더라는 말로 김려령의 글과 나의 살아온 세월을 교차해보며 나의 그대들의 애쓴 마음에 감사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게된다.

'살아 계실 때 잘하자. 곁에 있을 때 잘하자. 뒤늦게 피눈물 흘리지 말자.'를 또 한번 실감하지만 이 반성과 다짐도 며칠 못 갈걸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해두고 때때로 개딸 모드가 되어 잔소리 폭격 하며 성깔 내새울때마다 수양하듯 읽어볼까 싶다. 당연하다 싶은 상식과 제도속에 당신의 가족은 무수한 포기를 했고, 수차례 반복된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을 차선으로 두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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