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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평점 :
소개글을 살펴보면 8년간 모아온 작품을 엮어 낸 책이라 했다. 이야기꾼 김려령의 글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상식이나 제도에 질문을 던졌고, 물밑의 갈등을 고스란히 띄워올려 전형적인 가족서사의 이야기를 현재를 고스란히 옮겨둔 현실적인 가족서사의 판으로 갈아엎어두었다. 그래서 예민해진 인물을 마주 할 땐 더 익숙하다 싶은 설정이라여겼다. 세상에 그렇게 애틋하고 눈물나는 가족은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 가족이 가,족같은 경우도 더러있고, 생판 남이 평생 손발 맞춰온 영혼의 단짝마냥 짝짝꿍이 맞을 때도 있으니 그걸 잘 까발려줘서 속도감있게 완독 할 수 있었다. 결국 프론트맨처럼 내세웠던 기술자들이야말로 부모 노후 밑천과 동생의 통장까지 긁어가며 제 살길 찾아갔던 자식놈보다 훨씬 나은 놈이란걸 다시한번 느끼며 세상이 정해준 인연의 고리가 당연한 법은 없음을 느끼게 된다.
📖기술자들_ '이것저것'들의 역사가 궁금했다. 지금의 일들도 이미 그의 이것저것 속에 포함됐을 거였다. 그렇긴 하지. 하고 최가 빠르게 수긍했다. 얼마나 모호하고 적확한 표현인가. 완곡한 자기비하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든 해야 했던 지난 일들을 꾸밈없이 그러모은 말이었다.
출판사 홍보멘트에는 유사 가족이라 했던 두 중년의 동행.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영혼의 콤비 이자 피만 안 나눈 형제같다는 말이 입에 착착 감기는 둘의 이야기였다. 최에 대한 서사는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구인승 승합차에 있는 이유를 알려두었다. 하지만 조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아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뭘 했대? 뭐 하던 사람인데? 라는 물음을 가지고, 빨리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다.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었고, 밖에서만 맴도는 사람이지만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았으며, 배 곯고 살 사람은 아닌거 같았다. 최도 최지만 조도 어지간한 풍파 다 겪었을 것이고, 사람에게 더럽고 치사한 것들을 다 겪어낸 관상을 지녔으리라 생각되었다.
조의 '이것저것'들의 역사. 지금도 '이것저것'을 해오고 있으니 이 친구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라 여겨지며 제법 장편으로 이뤄저 아주 긴 이야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최도 아마 그 '이것저것'의 역사의 큰 사건으로 각인이 될 것이고 말이다. 승합차 위의 삶에서 조만간 24시간 30년 경력자 콤비 상시 대기 설비소를 하나 차리지 않을까. 번듯한 광고와 SNS인플루언서 고용해서 광고 도배하는 것이 아닌, 찐 후기들로 가득해서 맘카페나 지역 커뮤니티에 쌍엄지 받는 그런 아재들의 설비소 같은 곳으로 돌고돌아 나도 추천 받아 DM 대신 전화하게될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
📖상자_ 상대의 취향은 존중하나 자신이 못 견디겠으니 떠난 이별이었다. 그가 말을 마칠 때쯤 나도 정이 뚝 떨어졌다. 사람 싫어지는 거 한순간이었다.
동갑내기의 연애. 프로포즈는 없었으나 자연스레 먼 미래를 함께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되는 삶의 이상향이 비슷한 커플. 아이가 싫은 건 아니지만 열정을 쏟을 자신이 없고, 아이 때문에 포기하는 일이 생기면 애를 원망할 것 같다는 것. 그래서 신중할 수 밖에 없음을 비췄던 둘이다. 유년기를 회상하며 50대엔 자유로은 삶을 바라는 이들. 그런데 어떠한 일이 생긴 그 다음 날 별것 아닌 듯한 일에 별것이 되어 헤어졌다.
부친의 콜을 받고 가족끼리 식사를 하게된 그녀. 친오빠가 아이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모친이 그간 간직해온 그녀의 어린시절 물품의 전달. 모친은 여러겹의 마음이 쌓여 고민하다 물건의 주인인 그녀에게 전달했다. 혹여 손주를 애틋해하는 마음보다 다 큰 딸의 어린시절이 더 소중하다 여길까 마음이 닳던 시모로서의 입장. 며느리가 마음상할까 벌써부터 걱정만 가득하니 이제는 돌려준다는 그녀의 낡은 담요와 갖가지 유아기 물품. 그 상자가 이 균열의 시작이었다. 우연찮게 보게된 그녀의 어린시절 물품에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여러 소설을 쓰다시피 하더만 제멋대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녀에게 하는 말이 가관이다. '우선... 이건 절대로 네 문제가 아니라는 것부터 말하고 싶어. 순전히 내 문제야. 그러니까 뭔가 잘못됐다면 내가 이상한거지,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뜻이야.'로 니탓 아니라는 척하지만 결국 너랑나랑은 같을 수 없다며 착한이별인척 하는 꼬락서니였다.
소유주에 따른 다른 의미, 확대 해석하며 사물에 대한 히스토리를 히스테리로 바꿔버리는 급발진 전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시키 뭐라 씨부리는거야?'라고....(자주 욱함, 그것도 혼자서만 그러지 입밖으로 못 꺼내는 인간의 욕지거리 최대치) 그리고, '이 시키 이별 생각하고 있다가 구실 하나 찾아서 지 혼자 처연한척 아픈 이별한다고 지랄하는거 아냐?'라고 밖에는 이해가 안 되더라.
그의 행동에 나는 이렇게밖에 해석 할 수 없었다. 이미 이별을 준비했거나, 그녀가 가족과 나눴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은 받아보며 살지 못한 가족간의 애정지수에 평생 나는 그녀의 가족관에 대해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사랑 덜받고 산 사람이구나에 괜시리 씩씩거리며 제풀에 꺾여 이별을 고한 것이라고 밖에 여기지 못하겠더라.
아귀가 딱딱 들어맞아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을 찾는건 쉽지 않지만 이런 것에 욱하고 악하는 인간이라면 빨리 잘라내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유년기 마저 지가 뭐라고 가족 관찰 프로그램의 솔루션마냥 이래라 저래라 하냐는 거지. 그녀가 연 건 어린시절의 히스토리가 아니라, 뭐 뭍은 놈 털어낼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였다고 쿨하게 여겨주길 바랄 뿐이다.
📖황금 꽃다발_ 부지런히 살았다고 해서 돈도 부지런히 모인 것은 아니나, 어미가 자식놈 산 세월을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나. 큰놈은 안식년이라고 몇년마다 쉬더만, 작은놈이라고 그리 못할 건 뭐란 말인가, 너도 쉬어라. 새끼가 어미 옆에서 쉬는 게 무슨 흉이더냐. 푹 쉬거라.
전작 '상자'에 욱 한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놈은 또 뭔 빌런인가 싶은 놈과 뭐만 해도 짠한 놈을 둔 어미의 태몽이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긍정적이긴 하나 제 속 차리는게 시원찮고, 하는 일 마다 잘 되었음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고, 그래서 마음이 닳고, 애가 쓰이는 막내. 그리고 제 밥그릇에 만족못하고 당당하게 부모에게 손벌리고, 동생놈의 돈까지 긁어모아 지 하고픈거 하는 첫째놈. 첫째놈은 잘나서 티비에도 나오고 제 글로 사랑받더니 애틋한 가족이 있었기에 그 글이 있는 것이라는 듯 지 입맛에 맞는 서사로 포장을 한다. 너는 동치미국수가 그리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어미는 입짧은 놈이 그나마 잘 먹는 거였기에 한거지 가난이 가당키나 하나 싶은 모습. 가난했고, 그랬지만 행복했고, 그덕에 그 모든 스토리가 글로 표현된다는 듯 보기좋게 포장하며 사는 놈. 어미는 또 거기에 돌뿌리 박을 수 있나. 저놈의 장단에 맞춰주며 인터뷰를 하지만 그 황금꽃다발의 태몽은 그 놈이 아닌 저 놈이라는 말에 속도 없고, 벨도 없는 막내놈이 또 마냥 애린다. 고루고루 잘난 놈으로, 고루고루 이쁜 놈으로 살아주면 좋겠지만, 모습도, 재능도 반반으로 사이좋게 나눠 가졌으면 이 아린 마음이 덜 했을까를 떠올려보게 만든다. 착한놈은 또 착해 빠져, 미운 놈은 장독 위에 쌓인 눈더미로 바락바락 씻어제껴도 밉상인 건 한 뱃 속에 나와도 답이 없음을 보여준다.
📖뼛조각_ 이 수술로 아버지를 내 엄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작정인 듯했다. 무릎은 멀쩡했으므로. 아버지는 이것으로 근심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므로. 주무시면 안 됩니다. 네. 지금 이 의사는 내가 아니라 아버지의 근심을 수술하고 있다. 내 엄살의 싹을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이었다.
중학생 때 우연히 알게된 몸속 뼛조각 하나. 좀 더 큰 병원에가서 검사해보니 선천적 유합 부전.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세포들이 하나의 뼈로 발달하지 못한 조각 하나라는 것. 그것은 아들에게 엄살과 핑계의 조각이었고, 아버지에게는 물려주어선 안되는 죄스러운 대물림의 조각이었다. 다 커서도 아들에겐 나약한 마음을 갖게되며 이리저리 피할 구실이 그 작은 뼛조각이 되었다. 못살게 굴고 싶었고, 혹사시켜서라도 미워하고프며 원망의 끝은 다 그것으로 인한 것이라며 정직원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보단 이 조각으로 인해 수술을 해야하고 퇴사 할 수 밖에 없다는 방식으로 저 편한방식으로 회피의 구실이 되었다. 간단하다했지만 입원과 퇴원이 필요하고, 간병을 해줄 보호자가 있어야하는 것. 그게 이 뼛조각을 있게 만든 아버지였다. 수술 전이든 후든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이는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 길 없는 아들은 1.5cm 뼛조각을 빼 내고, 5cm의 흉터가 남았고, 아버지는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이 있으면 있던대로, 없어도 없어지지 않은 흉터자국에 또 미안해하며 살게 될 거라는 걸 느끼게 했다. 아들은 이제 뼛조각 핑계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마도 흉터자국을 핑계삼아 아버지에게 또다른 마음의 짐을 덮어주고도 남을 행동에 철없음보다 미련한 짓이라 잔소리를 할까 싶다가도 말을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입자_ 이제 나는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 열심히 산 결과가 늘 썼으므로 설렁설렁 살기로 했다. 내 노력의 결과가 조금이라도 달았다면 없는 힘도 짜내가며 살았을 거였다. 가난해도 자식이 번 돈은 아까워서 못 쓴다는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사람들은 바닥까지 긁어 퍼줘도 뒷주머니 찼다고 욕하는 내 부모를 어떻게 볼까. 박박 긁어 먹히는 노력. 그런 거 이제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그럼에도 돈 벌 궁리 하는 건 나 뿐. 지어지는 집은 많고, 인구수는 줄고 있다 하건만 내가 편히 뉘일 집은 하나 없는 실정. 어떻게든 벗어나고픈 집. 그래서 악착같이 벗어났던 곳이지만 대한민국의 혈연의 고리는 도망친다고 도망쳐지지 않는다. 부친의 암 선고, 등본만 떼어도 알 수 있는 자식놈의 거처 이동경로. 잘 살면 잘 산다고 뜯어가고, 못 살면 밥벌이 안 하냐고 몰아세우는 낳아만 준 사람들. 그렇게 소라게의 집 이동만도 못한 거처 이동 중에 귀신같이 알고 찾아며 뜯어낼 궁리하느라 바쁜 모친.(다행인건 부친이 암 선고를 받아 둘이 손잡고 독촉하러 오진 않는다) 곰팡내 가득한 집, 상해빠진 미역국을 끓이면 괜찮다고 먹어대는 딸. 그래야 돈 뜯으러 오는 텀이 줄어드는 이 관계. 세입자의 딸 거처에서 돈을 훔쳤다는 모친의 영상. CCTV는 모든 정황을 그녀의 모친만을 가르킨다. 보증금으로 그 돈을 메꿀 것인가, 아님 모친을 신고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더이상 혈연의 고리에 끌려다니기 싫다면 행불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 엄마 아빠 동생놈 없다는 셈 치고 살아도 되지. 이미 남보다 못한 사람으로 살아 왔는데, 그까짓거 라는 생각으로 팔다리 다 잘라내듯 그렇게 끊어낸다. 가족은 우리가 아는 형태의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이건 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만한 그런 집안이 따로 없구나 싶겠다만 세상엔 이러한 집구석이 제법 많다는 걸 느끼는 바다. 그렇다. 오죽하면......
📖청소_ 더이상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긴 시간이 흐른 날. 그녀는 아직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먼 곳에 있는 그녀에게 누군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하나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없습니다. 다 닦고 다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고 왔습니다.
제일 애닳다. 연년생의 남매를 키운, 남편 없이 육아와 사회생활을 도맡아오던 그녀는 회사생활을 정리했고, 그렇게 쉬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하루하루 할당량에 맞춰 비워낸다. 청소라기보단 비워낸다. 냉장고 구석부터 시작해서 싱크대 선반, 먼지가 쌓이던 베란다며, 화장실..... 그 틈틈히 남매가 여자를 대하는 말투와 시선이 느껴진다. 시키는걸 하되 먼저 나서지 않는, 긍정적인 대답보다는 마뜩잖은 뉘앙스이지만 결국 잔소리들어가며 할 거라는 걸 알고 툴툴거리며 수긍하는 반응. 그렇게 아이를 키웠고, 자신을 소비했고, 남편의 자리까지 채운 만49세의 그녀는 멀끔하게 흔적들을 버렸다.(비워냈다는 말보다 버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러고 다시 시작이 아니라 집을 나갔다. 어떠한 일련의 사건이 있었기에 버려두고 나온 건지, 다 버리고 시작하기 위함이었던 것인지, 낡고 쓸모가 없어진 물건을 버리며 자신도 버린 건 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하루씩 날을 잡아 끄집어내어 버리는 걸 보고 생각이 들더라. 이 사람 집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삶 자체를 정리하고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 살다보니 그런 눈치만 늘더라. 묵은 일을 해내는게 아니라 다시 할 일이 없을 것 같으니 굳이굳이 일을 만들어 해치우는 모습. 그래서 그녀는 어디로 간건지. 어디에 있긴 한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남매는 두고두고 후회를 하고 있을게 빤했다. 숱한 시그널에는 무뎠고, 후회한들 바뀔 구실은 전혀 없다는 것. 말끔히 비워진 공간에서 흔적찾기. 여러모로 늦었고, 놓친 순간들이다.
성질머리 세우게 되는 글도 있고, 그냥 마냥 가엾은 인물도 있다. 세입자의 원주는 마음이 쓰이고, 걱정만 하게된다. 아마 내 친구였다면 분명 엄마는 나보다 원주를 더 걱정해서 찬거리든 계절에 맞는 방한용품이나 혼자 살면서 챙기기 어려운 것들을 싸그리 쥐어줬을게 뻔한 생이라 행불자가 될 지언정 친구인 나에게는 실종되어주지 말아달라 간곡히 일러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그러니까 부모에게 자식은 상자에 고이 담아두고픈 찰나를 안겨주었고, 혹여나 하나라도 잘못되는 것이 있으면 뼛조각의 아버지처럼 모두 당신의 탓인냥 걱정과 근심의 집합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만사 제쳐두고 다큰놈의 병수발을 하며 모든 것에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역할이 나뉘어진다. 밉든 곱든 제 새끼는결국 내가 품을 삶의 몫. 황금 꽃다발의 어머니처럼 못되쳐먹었다고 궁시렁 거리지만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들을까봐 자식놈의 허울을 덮어버리는 사람으로 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재영의 학창시절 교우관계로 어려워 할 때면 어떻게 해서든 내 자식을 미워하는 시선을 끊어내고 싶어 캥거루맘을 자처하면서까지 교문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오해의 숲에 진짜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지. 내 새끼 마음 쓰는 것만 덜하면 되니까. 그리고 마지막의 순간에 다다를 땐 청소를 통해 혹여라고 있을 당신의 선에서 성가신것, 버려도 될 만한것을 정리하면서 그리워 할 틈과 마음을 다잡을 것 마저도 싸그리 정리해 두고 가는 모습에서 '결국 엄마는 그런 사람'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 존재의 무언가로 남아있다. 가족, 부모라는 감투는 어쨋거나 저쨋거나 결국 내 비빌 언덕이란 말을 하게되나보다. 지랄맞은 딸년이어도 당신들이 아니었음 품어 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사람 구실 할 수 있도록 가르쳐 놓을 사람은 결국 당신 뿐이더라는 말로 김려령의 글과 나의 살아온 세월을 교차해보며 나의 그대들의 애쓴 마음에 감사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게된다.
'살아 계실 때 잘하자. 곁에 있을 때 잘하자. 뒤늦게 피눈물 흘리지 말자.'를 또 한번 실감하지만 이 반성과 다짐도 며칠 못 갈걸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해두고 때때로 개딸 모드가 되어 잔소리 폭격 하며 성깔 내새울때마다 수양하듯 읽어볼까 싶다. 당연하다 싶은 상식과 제도속에 당신의 가족은 무수한 포기를 했고, 수차례 반복된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을 차선으로 두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