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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독백 - 발견, 영감 그리고
임승원 지음 / 필름(Feelm) / 2024년 10월
평점 :
신기한 책을 발견했다. 책등이며 책장의 끄트머리가 표지의 색처럼 주황으로 염색되어있는게 고전 원서 같기도 하면서 비밀에 쌓여있는 듯한 이야기를 꺼내보게 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마지막 단어가...모놀로그가 아니네? 원올로그? 이런 단어도 있었나 싶어하며 모놀로그를 검색해서 내가 아는 정의가 맞는지 한번 더 확인 후 앞의 스펠링을 w로 바꿔서 다시 검색해봤다. 이 책의 저자의 유튜브가 상위에 검색된다. 나무위키가 친절하게 알려주네. 독백이라는 단어와 저자 임승원의 won을 합쳐서 wonologue라는 말로 유튜브를 개설하여 운영중인 크리에이터. 언어 유희에 능한 사람이다 싶으면서 이정도의 위트와 생각이라면 그가 전하는 독백도 마냥 가볍지는 않을거라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남아있는 오늘의 시간을 함께 하려한다.
📖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해준 당신에게
그렇지 모. 모두를 만족 시킬 순 없지. 모두가 나를 좋아 할 순 없으며, 반대로 모두가 나를 싫어 할 수도 없으니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더 집중하는 방향을 기대하며 이 책을 선택한 나같은 독자에게 전하고픈 말들이길 기대하게 만든다.
📖이 책은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지 않아도 되는 책입니다.
인트로를 지나서 가이드 문구들을 넘어보면 발견 / 영감 / 원의독백 / 코멘터리로 이어지는 4개의 분류.
처음 발견은 스스로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나를 둘러싸고있는, 나를 표현하기 좋은 단어들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이자 단단하게 지키고자 하는 자신만의 사상등이 적혀있는데 이는 그 시절 그 나이 대에 생각했던 신념이며 좀 더 진득하게 이어가고픈 진심이 담겨있었다.
영감을 주는 것들. 좀 더 긴 호흡으로 말하는 것들에는 자신이 해왔고, 이후에도 계속 해가길 바라는 미래의 자신에게 전하는 듯한 충고.
원의 독백. 유튜버로서의 삶으로 살다보니 바라보게되는 모습들. 두 눈으로 보는 것이 익숙했던 사람이 카메라 렌즈로 한번더 꺾은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서 듣는 또 다른 삶의 굴절.
코멘터리. 원의 독백을 먼저 읽고 추천 남겨주는 사람들의 인터뷰. 모두가 하나같이 원올로그의 덕후가 되어 원의 독백으로 인해 자기만의 독백의 순간이 오길 기대하는 사람들의 바람들. 그러니 이 모든 챕터를 다 읽고 나면 당신들도 코멘터리를 남겨줄 수 있을 만큼의 원을 덕질하길 바라는 마음처럼 여겨졌다.
글쎄, 아직 나는 완독 하기 전이니까 마지막 코멘터리에 대한 생각은 여백으로 남겨두고 읽어보겠어.
📖 그저 이 이야기는 '가능성'입니다. 누구나 가능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평범한 저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시작점 정도라고 할까요.
기대하지 말라하지만 결국은 당신도 기대 하게 될 텐데, 그래도 그 마음을 접을거야? 그럴꺼야? 라는 식의 살짝 얄미운 확신에 대한 확인 문장. 원은 말한다. 위대한 철학적 가치관도, 전문적인 작가로서의 길을 이어온 문인도 아님을. 그렇지만 그럼에도 글을 쓸 수 있었고, 이렇게 내 눈앞에도 있듯 결과물로 손에 쥘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걸 보니 남편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 '언제까지 남의 이야기에 대한 코멘터리만 써 줄 꺼야? 당신도 당신 이야길 써도 될거 같은데, 이미 충분할 거 같은데 왜 망설여? 크리에이터 수업도 들어보며 독립출판 클래스도 많이 하더만 해보는게 어때? 브런치에서도 쓸 수 있고, 당신 블로그에 간행물로 하다가 시도해봐도 되지 않아? 해볼래? 강요는 아니고, 해도 좋을거 같아서....' 이 많은 문장들이 한방에 와르르 쏟아져 나에게 온 건 아니고 잘 지내다가도 한 마디 씩 툭툭 던져가며 잔잔한 내 마음에 물결을 치고 아닌척 쑥 빠져버리곤 했다. 내가 남의 의야기는 잘 듣고 감 나라 배 나라는 잘 할 수 있는데 내 이야기는 한 없이 평범하고 지루해서 안된다고 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 답변을 해주는 사람이다. 저 사람들도 그리 대단한 삶은 아냐. 결국 이야기는 표현하기 나름이니까. 충분하니까 해봐. 기한을 잡지 말고 그냥 써봐. 라는 식의 대화로 나의 가능성에 대해 말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남편이든, 저자든 모두 하나같이 '가능성'에 대한 큰 힘을 믿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가능성'은 늘 과반수를 넘지 못하는 그거 그런 작은 외침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 이외의 사람들은 어찌그리도 그 단어가 크다고 여길까. 가능성의 가능성이라. 믿음에 많은 배신을 당한 나라서 그런가 가능성이 줄 힘을 아직 잘 모르겠다.
📖 일찍 일어나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출근하고, 함께 밥을 먹으러 가고, 퇴근 시간이 되면 일제히 집을 향해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버스에 오르는 삶. 그래야 나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걸 알아줄 테니까.
이건 평범한 삶이길 바라는 사람의 기대치이며 무난하게 살고 싶어하는 군중속 무리를 지향하는 인간의 심리다. 내가 그렇다. 꿈과 열정을 버리고 택한 삶이 이런 것이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있는 삶의 패턴이다. 소심한 관종끼가 다분했던, E의 기질이 한줌 정도 더 있던 10대엔 특별한 삶을 꿈꾸며 남들이 놀 때 그렇게 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픈 사람이 되고자 했다. 허나 내 인생에 입김을 불어넣는 사람들에게 휘청이다보니 20대 후반부터는 저자가 말하는 루틴을 갖고 24시간을 주5회씩 도장 찍어내듯 복사 붙여넣기 하고 있는 삶으로 살고 있다. 싫은건 아닌데, 그렇다고 기깔나게 좋은것 또 아니고, 때때로 이전에 꿈꾸던 삶이 어떤지 맛도 보지 못해서 그런가 뒷북치듯 이제서야 눈길이 가긴 한다. 이제는 E의 성향보다 하다못해 소문자 I의 성향으로 기울어진 삶으로 굳혀진 인생이되었다. 남들 쉴 때 다 쉬고 남들 일할 때 그냥저냥 일하며 얇고 길게 가는 삶이 최고구나를 생각한다. 내 사업 보다 남의 회사 노비마냥 출퇴근 똑바로하고 하라는 것만 야무지게 한 후 더 잘 하려고도 안하는 월1회 통장 찍히는 만큼의 삶. 이러한 삶의 방향성만 봐도 나는 크리에이터가 되긴 글러먹은 떡잎같네.
📖 그래서 나는 무작정 호의를 베풀 수 없다. 베풀었던 호의가 손해로 돌아오면 상실감은 몇 배로 크다. 절대로 손해 보지 않으리. 굳게 결심하고 야심차게 집 밖으로 나선 그날 아침, 이름 모를 남자의 어깨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내 사과를 받았다.
.... .... 이윽고 그 승리가 나를 괴물로 만들었다는 걸 깨닫는다. 배려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자들. 나는 내가 혐오하는 그들 중 하나였다.
이런 생각과 마음들. 그거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못된 성질머리 구간 아니었나? 나도 종종 그리 생각했는데 말이다. 당연하리만큼 삐딱하게 봐지는 삶의 매운 구간인데 이게 있어야지 다른 사람들의 미운 구석을 알 수 있고 나도 그 사람을 미워함과 동시에 그러한 짓을 따라 하고 있다는 걱 자각하며 나는 저딴 인간처럼 살지 말아야지를 알아채는 과정더라. 그래도 이정도면 양반이지. 똑같이 했더라도 금새 알아차리고 고개 저어가며 머릿속에 있는 나쁜놈을 떨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나마 나는 혐오하는 것들 중에 개선이 될 놈이라 생각하기로 하자.
📖 모든 것을 안고 갈 수도 없다. 하고 싶은 것들 중에 하나만 할 수 있다. ... ...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연비 주행'을 해야한다.
삶은 장거리 운전이었다. 엔진소리 빵빵 틔워가며 전력질주 한들 코앞에 있는 신호에 멈춰버리면 연비도 안 좋고, 브레이크 밟는 횟수만 늘어날 뿐이다. 그러니 좀 길게 보고 좌우 사이드미러며 룸미러로 내 뒤를 경주마처럼 압박하는 것들에도 주시하며 이리저리 차선도 변경 할 줄 아는 요령피우는 놈으로 살고파진다. 매일매일 왕복 60KM를 운전하고 다니다보니 나도 요령이라는게 생긴 것 처럼, 내 삶을 주행 하는데에도 딱 이정도의 꼼수가 하나씩 늘어가길 바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내 차 뒤에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여두고 있다. 할 줄 안다고 나대다가 시야밖의 무언가에 큰 이벤트가 생길 수도 있으니 하나 정도의 제어장치를 쥐고 있는 셈이다. 연비 주행하고, 눈치 주행하며, 떄때로 꼼수 변경도 하면서 그렇게 마음의 엔진이며 절제의 브레이크 패드가 다른 이들보다 늦게 마모되길 바라는 삶의 주행. 그걸 바라는 거다.
📖 무조건 좋아하는 걸 하라니. 내 인생을 책임져 줄 건가? BUT,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일머리를 아는 것 만큼이 중요한게,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며, 그 것에 대한 재미를 알아서 뭘 하더라도 눈에 총기가 있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욕망덩어리가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게 결국 지 좋은 것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거니까 어떻게든 해 내고 싶은 마음, 더 잘 하고파서 근질거리는 손. 그게 잘할라고 하는 사람들의 드글드글 거리는 손이라는 것에서 보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이길 자는 없음에 말의 힘을 보태본다. 뭘 하든 애정만큼 큰 부스터는 없는걸 나도 느끼며 살아왔으니 저자가 한 이말은 진짜 찐이다.
관련 전공자가 가진 어휘 구사력이라던지 말을 끌어가는 힘을 무시 할 순 없다. 하지만, 비 전공자(나처럼 저자도 경영학 전공이네?)가 끌어 낼 수 있는 마음의 일렁임은 또 다른 끌림을 안겨준다. 사적인 발견이며 누구나 영감이 되는 나, 너 우리에 대한. 모두의 오리지널리티에 관한 기록이 담긴 이 시그널은 결국 우리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것에서 부터 시작했다. 코멘터리 파트에서 보면 류덕환 배우는 저자의 글을 본 후 모두가 독백하길 바라며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나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건 오롯한 '나의 독백'뿐임을 말해줬다. 마케터이자 작가인 이승희님은 책에서 다큐를 마주했다고 적어둔 문장에서 확신했다. 그가 하고픈 말은 결국 '다큐 3일', '인생극장' 같은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와 닮아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생각, 지금만 느낄 수 있는 감각, 잊고 싶지 않아서 시작한 '원의 독백'처럼 당신들만의 독백 파트를 꼭 마련하길 바란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나는 블로그를 통해 나만의 독백을 하고있었음을 깨우치게 한 저자의 단상들을 통해 나도 나만의 독백을 긴 호흡으로 끌어가고 싶어진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