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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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소설 맛집이라고 불리우는 백온유 저자의 이야기들.

'유원'도 읽었고, 당연히 '페퍼민트'도 완독 후 독서기록까지 남겼기에 자연스레 이 작품도 읽어야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출간일이 한참 지난 후에야 이 책을 만났다. 앞서 만났던 두 작품과는 다른 관심의 시선이었다. 저자의 작품에는 용서와 화해, 죽음과 돌봄의 문제들을 볼 땐 청소년만 읽기에는 아까운 묵직함이 있었다. 청소년소설 분야에 카테고리가 걸려있지만 성인들도 읽어봤음직한 작품. 그래서 더욱 스스럼없이 작품을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경우 없는 세계'는 작품이 출간 되기 전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를 보고 내가 굳이?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과연 이 키워드에 공감을 가질만한 단어가 있을까를 생각해보며 다음에 시간 될 때 읽지 싶어 미뤄두고 있었다.


내가 공감 못할 것 같던 세계속의 이야기이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해왔던 마음이 따끔거리며 아프게 와닿는 것들이다. 가출, 노숙, 소매치기. 떠도는 삶. 갈 곳이 없는 아이들. 그 세계속에서 살았고 어른이 된 인수의 이야기이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청소년인 이호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경우를 떠올리며 이호만큼은 자신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툭툭 얹어진다.


책의 제목이자, 등장인물로 나오는 경우. '경우 없는 세계'는 사전적 의미인 사리나 도리가 없는 세계를 말하지만, 책의 중반에서 나오는 인수와 똑같은 가출 청소년인 경우의 등장으로 사전적 의미만 가진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후반부에는 경우라는 친구가 없는 세상이 됨을 알 수 있다.


📖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법은 누가 알려주는 걸까. 그런 게 체득이 되는 인간들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걸까. 동이 틀 무렵 창가에 어른거리는 고양이 그림자를 눈으로 좇으며 우리는 망했다고 홀로 중얼거렸다.

채근하고 때리는 것이 익숙한 아버지. 그걸 잠자코 맞기만 하는 어머니. 이건 아닌거 같아 대들어보지만 엄마를 지켰다는 생각보다 두분에게서 받는 냉대를 통해 주인공 인수는 이 집에 굳이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집을 나왔지만 자신을 애타게 찾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그렇게 급하게 세상으로 던져졌으니 당장의 먹고자는 것부터가 녹록치 않다. 도둑 고양이마냥 숨어다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숨어자거나 남의 것을 훔쳐 사는 삶. 어딜가더라도 편하지 않으며 시선이 바삐 움직이며 누가봐도 불안한 모습. 부모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 뿐인데 모든것이 두렵고 무섭다. 그렇다고 또 다시 그 매질의 소굴로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 딱히 선택권이 없는 인수였다.

다양한 르포나 재연프로그램을 통해 익히 봐온 수순으로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팸을 형성하여 살아낸다. 건전하지 못하지만 벌이가 쉬운 분야를 선택하고, 법의 울타리를 벗어난 근로조건이라도 받아만 준다면 수용 할 수 밖에 없는 약체. 나쁜건 알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한다. 때리고 채이는 부모의 곁을 갈 것인가. 의심하고 무시하는 관찰소로 들어갈 것이냐. 떠돌이의 삶에 만족 할 것이냐. 차라리 소년원으로 들어가고싶다고 하는 아이들의 말을 수용 할 것이냐.

내 눈엔 하나같이 제 이야기들만 하며 설움만 터뜨리는 느낌이다. 어느 한명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이가 없다.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서 방관하는 어른. 자신의 잘못됨을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아이. 그 속에서 경우만큼은 달랐고, 그래서 더 눈에 띄였으며, 인수나 성연의 눈에는 아니꼬웠을지도 모르겠다. 계속 그렇게 살라고 하는 건 악담 중의 악담이겠지만 얘들도 자신들이 남들에게 그렇게 비춰보임을 알면서도 쉬이 놓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이호를 바라보는 어른의 인수처럼 모든게 시간이 약이니 세월의 흐름만을 기다려야할까.


📖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후회를 곱씹는 일에만 성실히 복무했다. 아무것도 갈구하지 않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삶에 애착을 가지지 않는 소심한 방식으로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건 경우가 전혀 바라지 않는 방식일 테지.

이호의 방황과 갈등. 그 모든 고민의 날카로움을 똑같이 겪어냈던 인수. 저렇게 이야기해주며 그럴듯한 정답 까지는 아니지만 도와준다는 말로 자신을 붙들어줄 어른, 또는 사회단체가 있었다면 어른의 인수는 지금처럼 헛것이 보이고, 그날의 기억에 붙들리지 않고 살아 낼 여력이 생겨날까. 삶에 애착이라는 것. 살아가고픈 이유가 뚜렷하다는 것. 내일이 기대되는 삶이 있는 것. 인수의 삶에서 A나 경우의 환영, 또는 알 수 없는 그림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삶에 재미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점. 아마.... 이호가 인수의 말처럼 학교를 가고, 올바른 형태의 알바를 하며, 으레 그렇듯 또래처럼 사는 걸 본다면 그걸로 대리만족과 함께 그때의 악몽에서 살짝 발을 뺄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본다.

붙잡아두었고 흘려보내지 않은 이호의 찰나를 통해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것 처럼, 인수의 그 시절에도 고맙다고 할 만한 비빌 언덕을 만났다면 삶이 달라졌겠지를 예견해본다. 이렇게 긍정 회로를 돌려본들 이미 시간은 흘러왔고, 변한건 없었다. 다만 이호를 통해 어린 인수도 함께 위로 받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학교를 잘 다녀왔는지를 묻는 어른, 오늘은 므슨 일이 없었는지 마음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을 가지는 서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 양육자의 사랑과 신뢰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너는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말은 칭찬으로 다가올까, 상처로 남을까. 스스로 던진 이 질문의 답을 오래도록 고민했다.

작가의 말에서 턱하니 울대를 쳐 맞은 기분이다. 고만고만한 사람들 속에서 살다보니 당연히 살가운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나이의 앞자리가 2로 바뀔 즈음 모두에게 어른 소리를 들으며 성글지만 청년의 수순으로 넘어가는 걸로 알았다. 가출청소년, 매맞는 아이들, 보호받지 못하는 학생들. 그건 사건을 파헤치는 늦은밤 현장르포속 내가 가본적 없는 도시의 아주 특이케이스로만 알았다. 제대로 우물안 개구리로 철모르게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사랑 받고 자란 티가 난다'며 가볍게 입을 놀릴 수 있었다. 그들의 속사정은 알려하고도 하지 않은 채 쉽게쉽게 뱉어냈다.

가출청소년. 선한 인상을 주는 단어는 아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조건이 될 수 밖에 없는 형편과 사정따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을 놓고 봤을 때 우리가 지금껏 가졌던 시선과 잣대로 보는게 맞을까를 되물어본다. 그렇다고 모두가 경우의 입장이라 보고 돕는게 이로울지, 성연같은 아이는 아닐거라고 덮어두는게 이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긴 할지. 이럴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선택의 처음엔 어른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 시발점이 되었으리란 생각을 왜 배제해뒀는지. 계속 묻고, 또 그 물음을 두고 다른 관점을 열어 만약을 덧붙여본다.

따뜻한 가정. 나를 예뻐해주는 부모. 딱 그 나이 만큼의 맑음을 갖고 자라는 아이들. 재력이 풍족하진 않으나 감성이 메마르지 않는 환경. 그야말로 즐거운 나의 집. 아끼고 사랑받는 방법을 받는 사랑을 통해 자연스레 습득하며 꽉 찬 마음으로 커갈 수 있는 것. 흔히 말하는 사랑 받아봐서 사랑 할 줄도 아는 사람으로 반듯하게 자랄 수 있는 귀한 울타리. 그걸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왜 그토록 바라는게 많았던건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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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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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다음 페이지를 먼저 훑어 보지 않아도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곤 한다. SF소설의 독파력을 좀 쌓아두었더니 다음 페이지에 보여질 세상의 미래가 보인달까? 그게 당연했으면 싶은 이유는 이후의 이야기가 절망보다는 희망의 방향으로 기울어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두고 김칸비 만화가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왜 인간인가? 인간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존을 건 사투,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고립의 끝. 하지만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희망인지 정말인지 모호하다. 우리의 삶이 늘 그렇듯이.'

삶이 항상 해피엔딩이 될 순 없고, 가이드라인에 따라 흘러가듯 유유히 이어지는 방식은 아니다. 어떻게든 버텨내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인간이며, 인간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그 순간을 넘서야하고, 넘어 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힌트 같았다. 그래서인지 다형의 코 앞에 닥쳐온 시련, 혹은 인생의 가장 큰 선택의 순간을 잘 넘겨 인간다운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사람 사는게 나와 같은 마음만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없고, 나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는 이도 없다. 어디든 대립이 되는 인물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의지와 간절함이 더해지는 느낌도 든다. 이야기의 초반 다형이 터널에 머무를 수 없도록 자극하는 황필규. 전형적인 밉상의 캐릭터이며 자신의 이득은 당연한 것이고, 남들의 희생이 단체생활에 필요한 부분이라 여기는 인물이다. 어찌보면 권력을 등에 지고 자기 살 길은 터 넣고 남들을 쥐어짜는 악역이기도 한데 이 자가 이 책의 말미에도 이리 당당하게 요구하며 다형을 내몰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며 이야기를 따라가도 좋다.

터널로 들어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괴생명체를 피해 해저 터널로 들어와 자진 고립을 감수해야 했던 존재. 짠물이 들어오는 순간 더이상 이 곳도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지만 터널 밖의 세상이 두려움으로 가득한 것. 이건 어찌보면 요즘 사람들이 갖고있는 마음의 빗장 같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본다. 마음을 닫아두고 타인의 자극을 외면 하는 것. 밖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해결 할 수 있진 않을까를 고심하며 어떻게든 마음의 확장을 기대하기보단 점점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그야말로 요즘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터널103이지 않을까를 생각해본다.

무피귀는 학창시절 과학실에서 보았던 인체모형을 떠올리게 했다. 키는 성인 남성의 두 배에 육박했고, 피부가 없는 탓에 근육, 힘줄, 인대 뼈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존재. 눈꺼풀 없이 돌출된 안구. 그것을 움직이는 실타래와 같은 근육의 움직임.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아닌 몰골. 낯선곳, 변화된 환경에 발가벗겨진 채 그대로 방치된 또 다른 인간의 거죽과 동시에 심연 불완전한 마음과도 이어짐을 느꼈다.

다형은 터널 안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무엇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터널 밖을 나섰고, 터널 밖에서 무피귀와 그간 모르고 지내온 같은듯 다른 인간들과 마주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심한다. 그러면서 만난 싱아. 무피귀로 변하기 이전의 그야말로 다형과 같은 모습을 한 아이. 무피귀가 되려는 모체의 상태에서 나왔던 터널 밖의 생존 아이. 싱아를 통해 미리 짐작해보는 이들의 앞날.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로 어린순은 나물로도 먹고, 약재로도 쓰이는 어디서든 잘 자라는 풀. 그리고 6월 경 흰 꽃을 피우는 것에 대한 학명으로 다형은 싱아의 도움으로 꽃을 피울 것이고, 싱아로 인해 어디서든 잘 자라는 것 마냥 어디서든 해결책을 제시 해 줄 것을 이름에 숨겨놓음을 생각해봤다.




준익이 말했던 무피귀. 그리고 바이러스 감염을 빌미로 이뤄진 연구를 빙자한 인간 병기의 결말. 물리거나 할퀴인 인간이 똑같이 변하는 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했던 말 처럼 사람의 탈을쓰고 악인으로 바뀌고 상대를 해할 수 있는 것은 큰 작심 없이 이룰 수 있는 이기심으로 보였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 만들었고, 자신은 아닐거라 했지만 환경에 휩쓸려 악인이 되는 것은 한순간임을 무피귀와 무피귀를 만들어낸 연구진들을 통해 어쩌면 우리도 반반한 인간의 낯짝을 한 무피귀가 될 수 있음을 내비친 대목이었다.

태관은 아버지의 이야기로 횡설수설하며 자신의 이득을 위해 서슴없는 행보를 이어가다 결국 제 발에 걸려 넘어진 인간의 약은 수를 보여주었다. 가뭄을 탓하라 했고, 운 좋으면 살아남아보라는 말을 통해 극한 상황속에서 협업보다는 개인의 득을 꾀하며 그 값을 톡톡히 치르는 모습이 보인다.

때로는 권선징악이 너무 흔한 결말 같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바라게된다. 현실에서 잘 없는 깔끔한 엔딩이니 이러한 책 속 이야기에서 만이라도 이뤄져 주면 그래도 세상은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이 이길 수 있는 껀덕지(?)가 있긴 한가보다 싶어지니 태관의 에피소드가 스치는 인물 중 하나이지만 그래도 다형에게 전화위복이 되어주는 듯 해 한시름 덜본다.




똑같이 생긴 사람들만 있는 내륙. 그리고 간절한 마음이 이뤄낸 결말. 다형의 입가에 지어진 주름. 함께 꾼 악몽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던 순간.

결국 내가 원했고, 저자가 바라는 이 이야기의 끝이 마지막 문장에 걸려있다. 마음의 꺼풀이 벗겨져있지 않은, 힘줄과 근육의 핏빛 서늘함이 없는 완전히 꽉 채워진 이야기의 끝이지만 어딘가 아쉽다. 다형이 열어낸 터널의 문. 어쩌면 다형의 마음 깊숙이 막혀있던 마음의 빗장까지도 열린게 확실한지. 많은 이들에게 두루두루 쓰여지며 결국 봄의 끝에 꽃을 피우는 식물 싱아처럼 싱아가 보게될 세상의 모습은 어떨지 이야기가 좀 더 이어지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터널103의 문은 같은 외형을 하고 있으나 서로 다른 모습을 감춘 마음의 문과도 같았다. 스멀스멀 들어오는 타인의 인기척에도 벽을 쌓고 살 것인지. 어떻게든 열어 또 다른 세계로 이어질 다리를 건널지에 대한 것을 나는 다형을 통해 계속 이입하게 되었다. 익숙한 소재이며 충분이 예견 가능한 흐름이지만 그럼에도 궁금하고 살아나주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의 끝엔 나도 이 옹졸한 마음의 문을 열고 넓은 곳에서 유영하고픈 바람이 가득 얹어져있기에 완독 할 수 있었다.


📖창비를 통해 가제본만은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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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문상훈 지음 / 위너스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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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문상훈은 유튜버이기 전에 배우였다. 그것도 뒤늦게 D.P를 시청하며 김루리를 알았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김정훈이라는 배역을 가진 이 사람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유튜브의 빠더너스 구독자도 아니며 SNS를 팔로우 하지도 않은 팬도 아닌 일반인이 가진 시선으로 이 책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_ 기분도 남 눈치 보면서 들고 생각도 다른 사람 허락받고 한다니. 취향과 호오의 기준이 내게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말 좋은 건지 자꾸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게 된다. 나는 뭐 하나 하려고 해도 늘 누가 옆에서 지켜봐 주어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득 외롭다.

어릴적 일기장 검사를 하던 시절. 그때엔 솔직한 내 감정보다는 타인이 내 감정을 읽고 판단하게 될 상황을 고려하여 적곤했다. 그 어린놈이 얼마나 잔망스러우면 그럴까 싶겠지만 정작 나는 그러한 시선보다는 내 솔직함을 들키는게 더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왜 이깟 감정으로 서운해하거나 슬퍼했는지, 왜 이게 너는 더 중요하다 여기는건지 반문하게될 어른의 질문에 논리정연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어 모든게 다 좋고 행복하고 기쁘다고 적었던 듯 하다. 그러면 한없이 맑고 밝은 티없는 또래 아이처럼 보였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자라온 어린이는 청년의 시절을 거쳐 성인으로 자라면서도 크게 바뀌지 못했다. 본성과 천성이 그러한것도 있겠다만 남 눈치 엄청 보며 둥글둥글 두루두루 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사는 인간으로 물컹하게 살다보니 내 호감보다 타인의 호감을, 내 서운함보다는 타인의 서운함에 더 빨리 반응하게 되었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외로움의 감정을 가진 저자. 혼자서는 내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독자. 잘 살려고 하다보니, 잘 해내려 하다보니, 결국 잘 살자고 하는 짓이 나를 지워낸 일 같아 마음이 아린다.



📖편지1_ 내가 아무리 너를 미워해봤자 밀어낼 수 없는 작은 방에 같이 지내는 기분이야. 그래서 이제 받아들여 보려고. 이제는 안 미워하겠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노력해볼게. 적어도 너를 인정할게. 이 말을 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내 모든 결핍들에게

편지의 시작은 서투른 짝사랑에 대한 뒤늦은 고백같다. 자주 만나진 못했으나 알고 지낸 사이. 하지만 한동안 안부를 묻지 않은듯한 어색한 인사. 그렇게 안부를 물으며 지난 시간들 속 미안함과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 담겨있다. 보통 이러한 글은 이렇게 짝사랑이나 오랜 절친, 얄밉게 굴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다시금 잘 지내보자는 식의 화해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게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편지라는 것. 무시하고 얕잡아보았던 그리고 외면하며 미워하고팠던 결핍에 대한 것이라는 게, 결국 후회로 가득한 예전에 나에게 용서를 비는 느낌이다. 무시하고 지나가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 과거이지만 그 시절에게도 꼭 한번 미안하다 말하고 싶어하는 쭈뼛거림. 과연 이 사람에게 매순간 오롯이 감정이 쉬는 날이 있긴 할까 싶어진다.


📖ㅊㅊ_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말이 겸손의 너스레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믿어서 실패할 때의 데미지가 작았으면 좋겠다. 성공이 어색하고 실패가 익숙하면 좋겠다. 시도해온 일들보다 도전해볼 다음 기회가 훨씬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때가 왔을 때 그 이유를 싱겁게 나이나 세월에서 찾이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것을 인생의 패배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도전할 힘도 용기도 없는 것을 굴복으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싱그러운 청춘이다. 삶을 놓고 볼 때 활기찬 것이 가장 빛나는 타이밍일 것이다. 헌데 우린 과연 그 맑고 청량했던 순간을 오롯이 즐기며 보냈던가? 지나고보니 그게 청춘이었고, 되돌려보니 대충 그 즈음이 청춘이었겠구나 짐작할 뿐이다. 진득한 울적함도 있었고, 앞날에 대한 고민도 깊었으며, 어떻게 살아야하나 막막함에 코앞이 어둑했는데 그 어둠에 익숙해 멀리 볼 생각조차 안했나보다. 이제와 생각하건데 대충 그즈음이 제일 화사했고 반짝였던 눈빛을 갖고 살았던 듯 하다.

글쎄, 나는 저자와 다른 생각을 하며 ㅊㅊ을 기대해본다. 성공이 어색하고 실패가 익숙하면 좋겠다 했지만 나는 달랐으면 싶다. 인생에서 ㅊㅊ이라 부를 만큼의 예쁜 날이 또 올지는 알 수 없다만 인생 2회차 ㅊㅊ 맞이를 할 적엔 지금 회차의 망설임과 주저함, 포기와 실패를 모른 채 온전히 기회와 행운, 행복과 환희만 얻어가는 회차이면 좋겠다. 그렇다면 분명 매 순간 설레고, 내일이 기다려지며 미래의 내가 더 기대가 될 테니 다음번엔 지금과 다른 ㅊㅊ을 살아보면 어떨까를 기대하게되다.




📖그 예쁜 모양의 돌들 때문에 이제는 죽는 것이 겁이 난다_ 좋았던 기억은 좋아서 동그랗고, 불행했던 기억은 자꾸 매만져서 동그래진 그 돌들. 원래 모양이 어땠는지 구분할 수 없다. 무엇을 두고 가고 무엇을 들고 갈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 들고 가고 싶은데 내 힘으로 들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기억을 하나라도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죽기가 싫다.

마음이 둥글어 진다는 것. 뾰족하게 살다보니 어느순간 상대를 찌르는 만큼 나도 많이 찔려봤다는 것. 결국 시간이 지난 후엔 기억도 안 날 만큼 흔해빠진 찰나였을 뿐이라는 것. 다 지나고보니 내 삶을 송두리째 쥐고 흔들만한 대단한 사건이라 할 수도 없다는 것.

그러게. 그 때의 나는 그게 제일 힘든 순간이었는데, 살다보니 그것도 아니네. 이래서 알다가도 모를 생인가봐.




📖편지2_ 네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해.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네 이름 옆에 내 이름을 같이 적어내도 어색하지 않기를 기도도하고. 그것이 매일 나를 열심히 살아가게 해. 고마워.

어릴적의 나는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싶었고, 현재의 나는 네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길 바라게된다. 비범하고 위대한 인물이 되고자했던 어릴적에 비해 지금은 말이지, 거창한 이름 석자보다 곁에 두고있으면 든든한 이름을 가진 그런 단단하고 묵직한 사람이길 바랄뿐이다. 그게 당신에게 필요한 '나'이길 바라면서 나에게도 항상 함께해줄 '나'였으면 싶은. 결국 모든 것들에게 유용하며 소중한 그런 '나'로 마침표를 찍길 바란다.

..... 바라는게 너무 많나? 이왕 바라는게 많은 거 욕심 더 부려보고 싶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동료, 누군가의 친구. 그리고 '나'의 진짜 '나'로.




📖내가 짝사랑을 하는 동안에1_ 잠이 오지 않는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천장 벽지 무늬에 배어드는 너의 얼굴이 점점 또렷해질 때, 너의 행복을 소원으로 말하고 싶어서 소원을 빌 수 있는 보름달이 빨리 뜨길 바랄 때, 너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더 잘 살기로 다짐할 때 우리는 마주 보는 것보다 더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짝사랑하는 것들이 참 많다. 애정의 쌍방 과실로 이뤄진 나의 배우자 뿐만 아니라, 짝사랑하는 것들 생각해본다. 음.... 그것들을 나열해보니 말이다. 사랑의 깊이와 정도를 생각하면 나란히 두어도 차이가 날테니 배우자에 대한 마음도 일종의 짝사랑이라 봐도 무망하겠지? 과실상계를 따지지 않고 일단 내 마음이 가는 것들에 대해 논하자면 그 끝은 어떠한 경로를 통하든 같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의 행복이 당신의 행복이었고, 당신의 기쁨을 보는 순간이 내 기쁨이었으니 사랑 바라고, 시작하며, 깊어지는 매 단계에서 새삼스레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이정도 반하면 병이다 싶을 정도로 새롭고 또 뜻깊은 타이밍을 맞이한다. 그래서 배우는게 많아진다. 모르고 지나쳤을 찰나인데, 짝사랑이 불러 일으킨 예민함 덕에 나는 많이 얻어가는 짝사랑 이득형 인간이었다.



완독 후 느낀 감정은 20대의 내가 이병률작가의 끌림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라 말하고싶다. 생각이 많고 감정의 겹도 촘촘하기 이를데 없는 내 감정을 말하기에 딱 들어맞는 문장들 처럼 보여졌다. 20년 전의 청년이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의 책등이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손때가 가득 담긴, 책 모서리가 나풀거리는 것에 내 청춘을 대변했다면 지금의 20대는 아마 문상훈의 글로 위로받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문상훈이라는 사람이 평범하고 흔한 이시대의 청년 같이 보일지라도 마음의 겹을 들춰보면 생각이 많고 고민도 많으며 자신에 대해선 한없이 엄격하고 생각보다 보여지는 시선에 매우 단호한 사람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렇게 심오하고 진지해서는 안 될거 같아 살풋 위트의 겹을 덮어놔 타인으로 하여금 부담없이 말을 걸 수 있도록 마주하는 곳에 낮은 둔턱을 둔 배려의 배려를 포개어 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다정했고, 상냥하며, 이를데 없이 선함이 뭍어난다. 그래서 나란히 있으면 나 역시도 상냥함에 물들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그의 진짜 일기이며 우리가 몰랐을 억겁의 밤 동안 스스로를 다그친 자책의 페이지라 얼마나 많은 설움과 꺽꺽거리는 울음이 있었을까 싶어지며 참 장하게 잘 큰 청년임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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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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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읽을 수 밖에 없는 페이지와 등장인물들의 방대한 사색들. 완독하기 위해서라도 집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토록 말 많은 인물들이라니. 말이 많다기보다 상대를 두고 상념이 지나치게 큰 인물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등장인물이라해봐야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인데 페이지는 벽돌 수준이다. 술에 대해 손톱만큼도 알지 못하며, 음악에 대해서는 발톱만큼도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준연과 해원, 그리고 하진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저절로 위스키가 궁금해지는 내용이다.

누가봐도 어른이며 어느정도 삶에 익숙해져있을 40대의 남녀들. 친구이지만 친구는 될 수 없었고, 오래 곁에 두고 싶었지만 결국 어느 하나 이어지지 못한 파산된 조합이다.


말 그대로 광인의 이야기다. 사랑때문에 미쳤다기보단 자신의 욕망에 지배당해 미칠 수 밖에 없었고, 후반부에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 할 수 밖에 없었음을 부친과 모친의 배경을 설명하며 죄를 감싸기 급급하다. 한 여자를 갖고 싶었던게 맞는지, 한 여자를 통해 자신의 더 큰 욕망을 갖고싶었던게 아닌지, 그리고 진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눈이 뒤집힌 이 인간은 어디까지 미친짓을 할 수 있을지를 따라가며 악이 악을 덮을 끝을 따라가본다.


내가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면 좋겠고, 내가 선택한 사람 또한 나에게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 이것이 전혀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이며 또 이야기 후반부에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릴 수 밖에 없는 계기로 보였다. 시작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지만 후반엔 싫은 사람. 그리고 미운 사람. 강사와 제자, 취미가 같은 위스키 애호가로 시작했지만 그 관계가 한 여자를 두고 서로 좋아하지만 눈치게임을 하며 고백 장전 후 틀어진 관계를 보면 결국엔 좋은 사람이었냐 싫은 사람이었냐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거라 느꼈다. 책을 읽게된 처음에는 이 부분이 어른으로서 사회생활을 좀 해본 40대로서 느끼는 나에게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구별법이라 생각했지만 완독 후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다시 살펴보니 결국 이러한 사람의 분류 방식은 내 입맛에 맞게 해주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대한 설명을 멋있는척, 현자인척 하는 허세 넘치는 소리라는 것이다.


해원은 당장에 필요한 돈이 아닌 있어도 그만 없어도 큰 어려움 없는 여유 자금이었고, 준연은 그 금액이 어머니를 낫게 해드릴수 있겠다는 기대감고 맞바꿀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해원이 건넨 돈은 가진자의 여유이며 상대에게 자신이 그만큼 당신을 믿고 있음을 증명하는 믿음의 크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은연중에 비춰지는 해원의 행실을 보면 당신의 삶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 베풀 수 있는 관용의 범위로 보여졌다. 이 돈이라면 당장의 병원비를 마련 할 수 있고, 준연의 근심도 덜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해원은 준연에게 가서 렛슨과 함께 붕 떠있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담소의 판이 마련 될 수 있을테니 결국 해원 좋으려고 하는 시간의 비용이었다.



📖그게 조건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쉽지 않다는 걸, 사랑하고 더 사랑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고, 웃고, 나를 안아 줬다는 걸, 더 좋은 걸 타고났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사람, 더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그걸 해내는 사람 두루 다 겪어 본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런 환함이,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깨끗함이 찬란하고 소중한 능력이라는 걸. 한줌처럼 작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사랑하는 강력하고 드넓은 능력, 그건 나이를 먹고 실망과 낙담, 체념 들이 퇴적하면서, 흔히 말하듯 세상을 알게 되면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기 마련인 것이었다.

준연을 알지 못했다면 하진또한 해원의 삶에는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빛을 갖고있다 생각할 만큼 해원은 하진의 반짝거림에 매료된 걸 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의 배경과는 다른 성장 과정.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잘 자란 뿌리가 단단해보이는 사람. 해원과 다른 삶의 결을 갖고 있어 더욱 탐나는 사람. 동경의 존재를 너머 빼앗고 싶은 사람의 성향. 가질 수 있는 걸 다 가진 해원이니 이 또한 욕망의 촉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마음의 그 자기 편향이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달라지는 건 생각일 뿐이었다. 경험이 쌓이고 분별이 늘면 자기 편향을 따라야 할 때와 생각을 따라야 할 때에 대한 분별도 생기니까. 하지만 그 경험과 분별 역시 대부분은 자기 편향의 범위 안에서 생기기 마련이었다. 마음이 자기 편향이라는 걸 알지 못할수록 더욱.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쌓을 수 있는 경험만 쌓으면서 분별 역시 그만큼의 경험과 의견들 속에서만 자라난다. 온실 속의 화초들이다 고만고만하게 자라듯이. 그래서 인간이란 저마다 고만고만한 크기로 편협하고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자기 마음을 따라서, 그 마음의 크기 안에서 안주하기 마련이니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내가 사람들과 달라서가 아니라 같아서였다.

해원 또한 자기편향이 아주 짙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인간의 성향 전제조건 설명서 처럼 여겨졌다. 자기 편향의 범위, 자기가 보고 자란 환경, 자기가 겪어왔던 삶의 방식, 싫어도 습득 할 수 밖에 없던 세월의 경험치. 결국 만나고 봐왔던 사람에게서 얻은 고만고만한 마음의 전달. 싫어도 외면하고 싶어도 해원이 아버지를 닮은 것 처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부자간의 고만고만한 삶의 방식의 연장선을 알려주는 인간편향에 대한 설명서였다.


📖회사에서는 꼭 결과를 내야 하지만 집이란 건 어떻게 보면 그게 이미 결과 아닌가 싶어요. 별별 일이 다 있어 왔고 앞으로 더 그럴 테지만 우리가 부부고 부모자식 간이라는, 그게 달라지진 않을 거니까요. 생각해 보면 예전엔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괴로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떻게든 계속 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음, 그래도 그때처럼 괴롭진 않은 거 같아요.

사랑도 가정도 인간 자체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같이 으쌰으쌰 해야만 더 잘 살수 있다는 걸 알려준 반데사르. 편하고 여유롭기위해 얼마나 치열했을지 가늠은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서로 지치지 않고 자분자분 걸어온게 분명해보이는 인물. 어쩔 수 없다는 듯 자기편향속에 갖혀있던 해원에게 잠시나마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이야기 후반부에도 잠깐 비춰지는 반데사르의 의견들을 보면서 이기적이라 할 지라도 해원에게 좀 더 센 자극을 줬더라면 이 이야기의 끝이 달라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뭐, 이렇게 반데사르가 말한들 달라질 해원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를 걸게 만드는 반듯함이었다.



📖인간이란 남의 눈으로 보고 남의 입으로 먹고 남의 귀로 듣는다. 아닌 척하지만 결국 그래. 서로 남 눈치나 보며, 그 눈에 얽매여 착한 척 예쁜 척 잘난 척 아는 척하면서 남들이 뭐가 좋다고 하는지 남들이 뭐가 비싸다고 하는지, 남들이 뭐가 최신이고 뭐가 유행이라고 하는지 개처럼 축축한 코나 벌름, 벌름, 벌름, 오죽하면, 개 팔자를 부러워하는 유일한 동물이, 개도 닭도 금붕어도 아니고 인간이겠느냐?

아버지는 이렇게 돈벌이 수단을 기가막히게 아는 장사치의 시선으로 인간을 이야기했다. 제 모습을 빗대어 말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러니 그러한 면면을 다 아는 아비가 하는 이야기는 다 맞다는 듯 자신감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앞서 보았던 자기편향의 모습과 함께 그 자기편향의 대물림을 받은 해원 또한 아닌척하려 발버둥을 쳤지만 거푸집마냥 닮아있었다. 이걸 보고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고 해야하나? 자신이랑 똑 닮은 사람으로 키웠으니 그 점에서는 성공한 사람이겠군.


📖사랑이 진실을 만드는 진실이고 의미를 만드는 의미라는 건, 사랑이면 뭐든 할 수 있고 사랑으로 뭐든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야말로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었다.

사랑때문이라는 핑계를 가지고 해원은 할 수 있는 짓거리를 다 했다. 광인 답게 미친 짓을 자행했다. 처음이 어려웠지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 한 후에는 눈에 뵈는 것 없이 더 한 짓도 하며 사랑인척 살았다.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모든걸 제 뜻대로 했고, 제 손으로 다 말아먹었다. 왜 모든 후회와 자책는 싸그리 다 말아먹고 회귀 할 수 없을 때 하게 되는 것일까. 학습된 시련이 아니기에 다 겪어봐야 체감할 수 있는 것일까?

벽돌 책이지만 벽돌의 두께를 체감할 수 없도록 전자책으로 읽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두께가 주는 압박으로 휴대하며 읽긴 어려웠으리라 보여진다. 말이 많은 사람들이라기보단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인물들이었다. 그럴수 있지. 입밖으로 내 뱉기보단 생각하며 곱씹다가 실수 없이 말하고싶어하는 사람들이겠지 싶었으나 중후반부로 가다보니 이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그토록 미사여구를 줄줄이 늘여놓았구나 싶었다. 어떤것도 정당방위가 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특히 해원은 더 그랬다. 부모를 닮고 싶지 않아 했으나 부모의 그런 면면들만 빼다 박은 더한 인물이 되어버렸더라. 안 그러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두고 싶었고 지키기 위해 그랬다는 변명은 이사람이 더 한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예감하게 만들었다. 꼭 자기 것으로 만들어놔야 속이 시원한 사람. 손에 쥔게 많지만 더 많이 쥐고 픈 욕망이 넘치는 사람. 어떻게든 가져야만 속이 시원한 사람. 결론보다는 그걸 얻기 위한 과정의 쾌락에 미쳐있는 사람. 그게 해원이었다. 준연을 감싸고 해원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양면성들 중 가장 더러운 꼴 까지 보인 해원을 통해 우리 또한 숨겨둔 악인이 그 짓까지 하지 않기를 바라며 사랑을 넘어선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해줬다.

사람이..... 미쳐 날뛰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악인이었다.

불을 지르고 난 후 결혼과 공장을 세우고 마지막 위스키를 입안에 털어 넣을 때 가지 그간의 속도에 비해 지루함이 있지만 그래도 이 자식이 얼마나 끝까지 갈런가 싶어하며 완독하게 만든 책. 역시나 저자의 이번 책도 나는 완독 해 버렸다. 다음 작품이 또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그 때도 이렇게 각 잡고 열심히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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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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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져들면 진득하니 다 읽고나서야 속이 후련한 저자 파고들기. 작년 말과 올해 초는 진득하게 조예은 월드에 젖어있는 느낌이다.

이전에 출간된 작품이지만 최근작 부터 읽게되어 이제서야 마주한 트로피컬 나이트. 역시나 표지가 심상치 않다.




고기와 석류_ 썩은고기를 먹고, 사람을 씹으며 그렇게 사는 석류. 옥주는 지금껏 간병인으로 살아왔지만 결국 남은건 혼자였고, 자신을 간병해줄 이가 없음에 괴물인 석류를 보살피는 것. 암으로 죽든 누군가에게 갉아먹혀 죽든 죽는건 매한가지이니 곁에 남아있다가 죽고나면 자신을 갉아먹을 석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 혼자보다 그 편이 나음을 선택한 옥주의 서글픈 마지막.



릴리의 손_ 차원과 차원의 틈. 서로 마주 할 일 없는 세상과 세상사이에 칼로 그은듯 잘려진 단면으로 이상한나라의 앨리스인냥 낯선 세상으로 흘러가는 인물. 연주의 잘려진 손을 잡았던 릴리. 연주의 이름으로 살며 그 세상에 맞춰사는 릴리를 보는 연주. 연주로 사는것에 익숙해진 릴리. 물은 어디로 가고 어디로든 흐르듯 세상도 그리 될 테니 어떻게든 닿을거라는 믿음. 모든 순간 어떻게든 감각이 기억하고 곁에 있을거라는 안도.



새해엔 쿠스쿠스_가까운 데에 사는 사촌이며 또래라서 항상 비교의 대상인 유리와 연우. 고모와 엄마는 자신의 주된 자랑이 자식들 자랑뿐이었고, 그것이 가장 큰 자부심과 체면이었다. 쟤도 가니까 너도 가야지. 쟤가 하니까 너도 해야지. 그런식의 비교와 더 잘난 자식으로 키우고픈 마음. 어르고 혼을 내보다 결국엔 사랑한다는 말로 회유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주길 바라는 욕망의 한 마디. 고모의 자랑이자 전부였던 연우는 사라졌고, 그렇게 어릴적 보았던 모로코의 쿠스쿠스를 먹으러 갔다. 성인이 된 후에도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길 바라던 엄마와 유리. 연우보단 조금 늦었지만 유리도 그 끈을 끊어낸다. 그리고 연우가 보내온 사진들과 메세지들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며 탈출을 시도한다. 엄마들에겐 최악의 반항이라 생각하겠지만 본인들에겐 최선의 숨구멍이었다.


가장 작은 신_ 먼지바람으로 둘러싸인 세상. 사이렌처럼 울리는 재난 알림. 집 밖으로 나가기 무서운 상황. 자발적 고립. 나만 집 안에 있으면 괜찮을거야. 나머지는 택배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문 앞까지 알아서 챙겨주니까 그렇게 내 사정거리 안에서만 살아도 된다 여기는 수안. 자발적 단절을 하며 사는 동창이 최고의 호구가 될거라며 다단계 영업을 하는 미주. 모든 감각이 예민할대로 예민해진 수안은 자신을 상대로 영업하는 걸 알면서도 틈을 내어준다. 그간 외로웠고 심심했고 고요했었으니까. 그렇게 먼지의 신이랍시고 다단계 대가리에 붙들려있던 미주를 구하는 수안. 호구잡힌거 알면서 미주에게 자리를 내어주었고, 먼지바람이 위험한걸 알면서도 밖으로 나와 미주를 찾은 이유. 수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온 더 큰 이유가 있었던 것.




먼저 '칵테일, 러브, 좀비'와 '꿰맨 눈의 마을' 읽은 후 뒤늦게 접한 '트로피컬 나이트'라 그런가 어딘가 하나씩 아쉬운 부분이 있다. 총 8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이 책에서 일부는 결론을 독자에게 맡긴 듯한 이른 마무리로 아쉬운 감정이 있다. 특히나 앞부분의 단편 두 작품이 그러했다. 소외받은 아이들을 그렸고, 외로움과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를 무겁거나 암울하지 않게 표하려 했던 면은 새로웠으나 좋은 결말이나 기분좋은 끝맺음은 없을거라는 걸 알기에 결말을 읽는이들에게 넘겨버린듯한 느낌이 들었다.(행복한 결말은 되려 이질적이고, 그렇다고 어둠의 밑바닥까지 긁어내기엔 또 서글픈게 있으니 일단 상황은 던져주되 슬픔의 수거는 셀프입니다! 요런 기분이랄까?) 그래서 이번 단편 모음집들은 전부 이렇게 끝나려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새해엔 쿠스쿠스는 어른이지만 양육자에겐 여전히 미성숙하여 당신들의 손이 닿아야만 될꺼라고 여기는 이들로 인해 스스로 상처를 내는 존재가 그려진다. 이걸 보면 할로우 키즈 - 새해엔 쿠스쿠스 - 고기와 석류로 이어지는 우리 세대들의 인생 미리보기가 되는건 아닐까 싶어지는 단면을 마주하게된다. 호러는 귀신이나 알 수 없는 형체의 악한 무언가가 나와서 두려운게 아니었다. 있을 법한 이야기들 속에서 나도 어느새 거기에 익숙해져 이게 행복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삶 자체가 되어버린게 무섭고 두려운 거였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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