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지켜라 - 풋내기 경찰관 다카기 군의 좌충우돌 성장기
노나미 아사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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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나의 첫 직장과 첫 출근이 떠올랐다. 어색한 복장, 긴장된 웃음을 지으며 뭘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나의 모습은 정말 촌스러운 사회 초년생 그 자체였다. 누구에게나 이랬던 시절이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순간, 절대 이곳에서 적응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 속에서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나면서 이 세상의 수많은 '일하는 인간들'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을을 지켜라>는 부제인 '풋내기 경찰관 다카기 군의 좌충우돌 성장기'라는 구절처럼 이제 막 신입 경찰관이 된 주인공에 관한 성장 소설이다. 성장이라고 해서 신입 경찰관이 유능하고 능력 있는 영웅 경찰관이 되는 스펙터클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 그녀에게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경찰관이 된 주인공은 귀에 피어싱을 하고 욱하는 성격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한때 좀 놀던 남자였다. 경찰관이 된 후에도 욱하는 성격 덕분에 본인은 물론 자신을 교육하는 반장부터 소장까지 끝없이 곤란하게 하고 늘 꾸중을 듣는 괴짜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 본인이 왜 경찰을 하는지,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데 있다.

다른 책과 비교하면 작은 사이즈이긴 하지만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꽤 두꺼운 책이다. <마을을 지켜라>라는 제목을 보고 나름 경찰관이 주인공이니 약간의 스릴러가 포함된 이야기가 아닐까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평이한 내용의 성장소설이었다. 물론 실습 기간 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로 자신만의 사명감을 가지게 되는 경찰관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내용답게 범인을 쫓는다거나 동료를 잃을 위기에 처하는 등의 소소하지만 꽤 재미있는 사건, 사고가 곳곳에 숨어있다.

'이 주인공 골 때리네'
신입 경찰관 주제에 자신의 성질을 못 이겨 사고를 치지 않나, 죽은 시체를 처음 본 후에 계속 악몽에 시달리는 종잡을 수 없는 괴짜 주인공의 행동을 보면서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일본 사람이 쓴 소설 속 경찰관인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지만 모든 것이 어설프고 객기 넘치는 한 때의 나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법한 순간일 것이다. 열심히 일한 후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주말 오후, 시원한 선풍기 틀어놓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서 킥킥대며 읽기 좋은 책이다.

<마을을 지켜라>의 주인공은 파출소 출근을 하는 첫 장부터 방화사건을 해결하면서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지게 되는 마지막 장까지 비약적이지는 않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고, 도와주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사회의 일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 책이 지루하지 않고 옅은 미소를 띠면서 읽혔던 이유는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는 그 누군가도 <마을을 지켜라>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제대로 '일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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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흔적을 걷다 - 남산 위에 신사 제주 아래 벙커
정명섭 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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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끝나는 역사가 아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슬프지만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 많은 근대 역사의 잔재들이 우리들과 같은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우리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일제의 흔적을 걷다>는 잊혀졌거나 처음부터 알지 못했던, 우리 땅안에 있지만 전혀 다른 공간을 찾아가는 기행문과 같은 책이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겠지만 작가의 노력 덕분에 깊숙히 숨겨져 있던 가슴아픈 역사적 사실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서울을 출발해서 저 아래 제주까지 우리 땅 곳곳에 남아있는 장소들을 작가와 함께 걸어다니며 긴 여행을 함께 한 기분이 들었다.

용산 미군기지, 경희궁의 방공호에서 남산까지 서울에 남아있는 일제의 흔적은 가끔 TV방송을 통해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곳이 예전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장소였다는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역사적 사실을 자세히 말해준다. 왜 그 장소가 그 곳에 있는지,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는지 등 일년 중 특정한 날이 되면 몇 번씩 듣게되는 비통한 역사의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의 시작과 현재를 제대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청나라가 탐을 냈고 일본이 차지했던 용산에는 이제 미군이 자리 잡고 있다. 달러로 결제해야 하고, 우편번호와 전화번호 모두 캘리포니아의 것을 사용하고 있는 이곳은 우리 근대사의 혼란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일제의 흔적을 걷다>를 기행문이라고 말한 이유는 각 장소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에 책을 읽은 독자들도 찾아갈 수 있도록 가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먼 가덕도의 외양포 포대와 같은 곳은 찾아가기 힘들겠지만 서울 안에 위치한 곳이나 인천 개항누리길로 알려져 있는 장소, 목표와 군산의 가옥들, 제주의 성산일출봉등은 충분히 일반 독자들도 답사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장소이다.

특히 각 장소에 대한 설명과 함께 첨부한 사진 덕분에 일제의 흔적들이 어떤 형태로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인천개항누리길에서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일본 제 1은행 인천지점과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동척 목포 지점 금고의 사진을 보고 생각난 곳이 있다.
현재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이용하고 있는 곳인데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조선식산은행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 했던 곳으로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금융기관이었다. 다양한 전시물과 기획전시가 있어서 자주 찾는 장소 중의 한 곳인데 이 곳도 일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모르고 본다면 이 곳은 근대풍의 엔틱한 건물일 뿐이지만 장소의 진실을 알고 보면 일제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비통한 역사의 흔적인 것이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많은 장소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 중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군산 시마타니 금고와 이영춘 가옥에 관한 이야기였다. 근대문화를 관광명소로 적극 홍보하고 있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여행지인 군산은 만약에 이 책을 모르고 갔다면 대구근대역사관을 바라봤을때 처럼 독특하고 이국적인 장소가 많아 사진찍기 좋은 여행지 중의 한 곳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군산을 가게 된다면 <일제의 흔적을 걷다>에서 읽은 시마타니의 금고와 이영춘 가옥을 꼭 찾아가보고 싶다. 부를 간직하기 위해 세워둔 건물 전체가 금고인 시마타니 금고, 자신만의 제국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건물에서 해방 후에 이영춘 박사의 헌신적이고 따뜻한 의술이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역사를 알고 본다면 분명 이국적인 옛 집이 아니라 가슴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장소일 것이다.

<일제의 흔적을 걷다> 한 권을 들고 근대문화유산 답사를 다녀도 좋겠다. 이 책을 기준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남겨져 있는 일제의 잔재를 찾아보는 걷기 여행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일제와 관련된 역사는 현재 진행형일 뿐만 아니라 만족스럽지 않게 흘러가고 있는 화나고 슬픈 우리의 역사이다. 괴롭다고 피해서는 안된다. 이미 우리는 많은 순간들에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수많은 일제의 잔재들 중 공간과 관련된 흔적을 차분하게 말해주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놓쳤던 슬픔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꼭 넣고 싶었지만 들어가지 못한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에 풀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더 많은 장소를 알려주는 다음 책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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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 어느 심리학자의 물렁한 삶에 찾아온 작고 따스하고 산뜻한 골칫거리
닐스 우덴베리 지음, 신견식 옮김 / 샘터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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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작은 마루가 달린 한옥에 살았던 적이 있다. 밤이 되면 내 방문 앞에서 늘 고양이가 울어댔다. 어른들은 고양이가 영악해서 애들이 있는 방을 잘 안다고 했다. 왜 우는지는, 정확하게 내 방문 앞에서 우는지도 몰랐다. 창호문 넘어 어렴풋이 비치는 고양이의 실루엣과 마치 아기가 울어대듯 끝없이 야옹거리는 고양이는 어린 시절 내게 엄청난 공포였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를 정말 싫어했었다. 개와 달리 먹이를 주거나 불러도 오지 않고 잘못 만지기라도 하면 사납게 할퀴어대는 고양이를 도대체 왜 키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고양이는 그냥 사납고 길들이기 어려운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고양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도 많이 생기고 더불어 길거리에는 개 대신에 고양이가 돌아다녔다. 우연히 지인이 키우는 고양이를 몇 번 돌볼 기회가 있었다. 날씬한 일반 고양이가 아닌 우리가 흔히 부르는 개냥이였던 그 고양이는 발로 지긋이 밟아도 귀찮다는 듯 누워있고 오라고 할 때는 들은척은 하지 않으면서도 지나가면서 다리를 한번 툭 치며 애정을 표시했다. 늘 주인만을 바라보며 애정을 갈구하는 개와 달리 주인을 귀찮게 하지 않지만 주변에서 한껏 늘어져 지켜보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니, 이런 매력이 있어서 고양이를 키우는 건가 싶었다. 이런 나의 불확실한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완성해 준 책이 바로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였다.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라는 제목을 보고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직접 인간과의 생활에 대해서 말하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스웨덴의 노교수가 황혼에 우연히 만나게 된 고양이와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잔잔한 에세이이자, 신경의학과 교수답게 고양이에 대한 나름 체계적인 이론과 관찰 결과를 말하고 있다. 노부부는 완벽한 자신들만의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생활 속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찾아왔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어느새 고양이는 '나비'라는 이름을 가지고 노부부에게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얘가 대체 어딜 갔지? 무슨 일 생겼나? 실망해서 우리는 버렸나? 우리에게, 아니 그보다는 우리 마당과 집에 고양이가 묶인 게 아니라 우리가 나비에게 묶여버렸다.

책에는 특별히 사건이나 놀랄만한 반전같은 것은 없다. 노교수가 고양이와 함께 하면서 느낀 점과 고양이에 대해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예전에 고양이와는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처럼 박사도 역시 고양이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 역시 공존의 한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바로 이 순간에 나비는 내 컴퓨터에서 50센티미터 떨어진 자기 바구니에 누워있다. 머리는 수건 깊이 파묻고 있다. 꼬리는 바구니 가장자리 위로 몇 센티 걸려있다. 곁에 있는 그 무엇도 내가 글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주택단지인 우리 동네에도 길고양이들이 많다. 가끔 참치캔이 있으면 마당에 놔두곤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머물 의사가 없는가 보다. 우리집 식구들이 고양이를 그렇게 예뻐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걸까? 담벼락 위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를 워이~놀라게 해서 날 싫어하는 걸까?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를 읽고 보니 우리 집은 자기들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한 게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박사에게 '나비'가 왔듯이 내게도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왔으면 좋겠다. 고양이는 박사가 자신의 기분을 모른다고 하지만 노박사는 어느 누구 보다 섬세하게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은 고양이대백과 사전이 아니다. 고양이에 대한 A to Z를 알 수는 없지만 어느 날 우연히 내 삶 안에 고양이가 한 발을 내딛는다면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최소한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 노부부가 고양이 '나비'를 한 발짝 떨어져 기다리고, 보살피고, 함께 공유하는 것처럼 만약에 내게도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생긴다면 그때 다시 한번 더 이 책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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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6.9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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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우물이나 물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꼭 들르는 곳으로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과 같은 곳이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월간 샘터>는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한 손안에 들어가는 작고 얇은 이 잡지를 읽는 내내 나는 물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옛사람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잡지마다 특성이 뚜렷한데 샘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가슴이 따뜻한 잡지였다. 페이지마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소복하게 담겨 있었다.

샘터는 무척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세이부터 글쓰기, 과학 분야, 여행, 커피 등 관심 있는 부분을 먼저 찾아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각 분야별로 짧지만 깊이 있는 글이 담겨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어봐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짧은 호흡이지만 정보와 감성을 함께 전달해 주는 샘터의 글은 글 쓰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이번 9월호에서는 마치 내게 조언을 해주는 듯한 '법륜 스님의 마음공부'가 특히 인상 깊었다. 몇 개월 전부터 시작해서 앞으로도 한동안 뒤숭숭할 내 마음을 다잡게 도와주는 법륜스님의 글을 몇 번이고 읽어봤다. 그리고 글쓰기 팁을 알려주는 '서민의 글쓰기'와 '고고학이 살아있다'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샘터는 정보와 지식을 알려주는 코너도 있지만 독자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글도 많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더욱 진솔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었다.
샘터는 출판사에서 홀로 만드는 잡지가 아니라 샘터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잡지이다. 특집의 주제에 맞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도되고 군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행복 등 자유롭게 글을 쓰는 코너도 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샘터로 가는 길은 언제든지 열려있으니 두드려 보길 바란다. 스마트한 시대에 발맞춰 카카오톡을 통해서도 사연을 접수할 수 있다고 하니 글을 쓰는 것에 부담을 가지지 말고 도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잡지는 저렴한 가격 대비 많은 것을 선물해 주는 책이다. 나는 지인들의 생일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잡지 1년 구독 선물을 해주는 걸 좋아한다. 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읽어볼 수 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을 받을 수도 있는 사람 냄새나는 잡지는 가끔 그 어떤 고전, 명작보다 더 깊은 울림을 던져주기도 한다.

이름처럼 샘터에 모여 앉아서 소곤소곤 얘기 나누는 듯한 <월간 샘터>의 다음 호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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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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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책을 읽은 후에 느껴지는 감정과 행동도 제각각이다.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며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책이 있는가 하면, 잊고 싶지 않은 문장이 많아서 메모를 하면서 읽는 책도 있다. 혼자 읽고 생각하고 쓰는데 익숙한 내게 가장 난감한 책은 바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처럼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책이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회사 동료에게 질문을 한 것이다. "혹시 이 책 읽어봤어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문제가 맞는지,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게 이런 의미인지 등을 홀로 모니터를 보면서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의견을 나누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제목 그대로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명의 남학생이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한 후에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두 명의 학생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가 바로 책의 저자이다. 아이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 평범한 엄마였던 그녀는 '왜 내 아이가 그런 짓을?' 이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1부에서는 총격 사건을 시작으로 사건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과 사건 이전에 아이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아이의 시간을 꼼꼼히 나눠 그 당시 아이의 행동과 말을 기억하며 왜 내가 그토록 사랑했고 사랑을 줬던 내 아이가 끔찍한 일은 저질렀는지에 대해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아이를 키우면서 놓쳤던 많은 것들을 알아차리라는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이 책을 뭐라고 한마디로 단정하기에는 힘이 든다. 자극적인 사건과 심리묘사가 있으나 실제 일어났던 일이니 소설은 아니고, 가해자의 엄마가 사건을 말하고 있지만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형식의 자전적 에세이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책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에 바치는 16년
가해자의 엄마로 자신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 쓴 책은 아니다. 자신과 그녀의 아들, 아들이 죽인 희생자들의 고통이 줄어들기 위한 기록이다. 그리고 더 이상 '내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말과 함께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부모들이 생겨나지 않기 위해 알려주는 지침서와 같은 책이다.

딜런이 안기고 몸을 부비고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사진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고 안도한다. 길에 나가 아무나 붙들고 사진첩을 보여주고 싶다. '보세요.' 하고 말하고 싶다. '이거 봐요. 나 미친 엄마 아니예요.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보라고요!'

"좋은 부모라면 아이들이 어떤 상황인지 알죠." 컴퓨터교사의 말이 어떤 악의에 찬 독설보다도 더 아프게 나를 찔렀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깊은 호수와도 같은 책이었다. 슬프고 격한 감정들이 가득할 거라는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책은 사건에 관한 객관적인 진실과 저자가 겪은 감정들, 사건 이후에 자신의 아들이 왜 그런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내고 고민하면서 좌절했던 마음을 너무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고요한 슬픔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기에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찌릿했다.

우리는 요즘 충격적이고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많은 사건, 사고들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해자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면 그 사람도 제대로 된 환경에서 자라지는 못 했을 것이다. 1999년부터 저자가 가장 고통스럽게 들었던 말들을 2016년의 우리도 도돌이표처럼 하고 있다. 피해자의 이야기가 있듯이 가해자의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가해자들이 우리 곁에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과 진한 우정이 나누는 친구들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자녀가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의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무섭고 가슴 아픈 일이다.

'내가 부모인데 어떻게 내 아이를 제대로 모를 수가 있겠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누구보다 가깝지만 그래서 더 낯설 수도 있는 존재가 바로 자녀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그만큼 자극이 가득한 이 시대에 부모들은 더욱 자녀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가 부모들에게 자녀 양육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주는 책은 아니다. 누구라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저자의 처절함과 막막함을 나누고 늦기전에 깨닫고 행동하게 해주는 책이다.
'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자의 슬픈 조언이 책을 읽는 내내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불편한 감정이 들 것 같아서 피하면 안 된다. 슬프고 두렵지만 엄마라면, 꼭 한 번은 읽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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