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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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무려 518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어져 내려온 왕조를 몇 마디로 단정 지을 순 없다. 긴 역사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승자에 의해 왜곡되어 기억되듯, 조선 역시 일제강점기라는 슬픈 역사 속에서 찬란한 빛이 사그라든 채 전해져 내려왔다.

하지만 우리에겐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위대한 기록 유산이 있다. 태조 이성계부터 철종까지 무려 25 대 472년간의 기록이 꼼꼼하게 남겨진 우리의 <조선왕조실록>. 대부분의 역사 기록물들이 뒤를 이른 나라의 시각에서 평가한 것과 달리 <조선왕조실록>은 사관들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시스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역사서로 남아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선왕조실록>은 역사 기록물임과 동시에 가장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10년간의 구상과 자료조사 기간 그리고 5년간의 집필이라는 저자의 끈질긴 노력 속에서 태어났다. 이번에 다산북스에서 출간된 <조선왕조실록>은 총 2권으로 1권에서는 태조, 2권에서는 정종과 태종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와 드라마를 좋아해 조선의 왕들 중 적어도 태조와 태종에 대해서는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알던 것들이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이 역사서라 재미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이 그 생각을 바꿔줄 것이다. 각 권이 한 편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역사 소설과 같았다. 


조선을 개창하기 전 12년 전인 우왕 6년의 일이다. 이때만 해도 이성계는 고려를 구한 영웅이었다. 이 영웅이 고려 왕조를 무너뜨린 줄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이성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왕조실록 1>은 이성계 집안이 어떻게 고려를 떠났고 다시 돌아왔는지부터 시작한다. 흔들리는 고려 왕조와 떠오르는 이성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간략하게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통해 조선이 세워졌다'라는 한 문장에 왜, 어떻게 그리고 그 후라는 자세함이 덧붙여진다. 혼돈의 시대, 그 어지러움을 바로잡기 위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등장하고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왕조만큼이나 매력적이었고 슬펐다. 

고려의 무장이었으나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2번에 거친 왕자의 난으로 아들 이방원과의 갈등 속에서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조선왕조실록 1>은 500여 년을 길게 이어져 갈 조선을 세운 탁월한 리더인 태조 이성계에 대한 모든 것을 들려준다.

태조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혁명적 토지 개혁을 단행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고려를 멸망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 짊어질 수 있는 극도의 증오를 동시에 받으면서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가는 저승에는 함께 이 왕국을 만들었으나 먼저 왕국을 떠난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는 언제나 그랬듯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조선왕조실록 2>는 인정받지 못한 왕인 정종과 태조 이성계가 죽는 날까지 날을 세운 이방원, 태종에 대한 이야기이다. 새로운 왕조가 시작된다고 모든 혼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개국보다 나라의 틀을 바로잡는 시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조선왕조실록 2>의 정종과 태종의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이다. 여전한 태조와의 갈등,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당시에도 위치가 불안했던 정종, 태조만큼이나 잘 알려진 태종의 시대. 각 왕의 시대가 자르듯 끝나고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태조와 정종, 태종 3대에 걸친 노력 속에서 조선의 기본이 제대로 다져졌다.

역사에 흥미가 있다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조선왕조나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조선왕조실록>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학창시절에 외웠던 태정태새문단세를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길지 않은 문장으로 잘 풀어놓았다. 한편의 역사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어떤 활극 못지않은 극적이고 속도감 넘치는 역사 이야기였다. <조선왕조실록>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지 몰랐다. 

'<조선왕조실록>에 담긴 역사 하나하나는 단지 흥미 있는 옛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되새기며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지식들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조선왕조실록>은 단지 아주 오래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이곳에서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나타난다.

현실은 과거의 다른 형태이다. 현실과 미래를 알고 싶다면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봐야 되지 않을까. 세종부터 고종, 순종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줄 또 다른 <조선왕조실록>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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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 - 줄 서는 가게에 숨겨진 서비스와 공간의 비밀
현성운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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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꿈꾼다. 자기만의 색깔이 입혀진 독특하고 맛있는 음식점. 하지만 한국에서 외식업 창업 후 5년까지의 생존율은 고작 27%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27%에 속한 가게는 어떻길래 치열한 대한민국 외식업계에서 살아남았을까. <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책에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해 온 저자의 노하우와 맞춤 매뉴얼, 일곱 명의 대박집 사장님의 인터뷰까지 담았다. <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는 창업을 준비 중인 사람부터 음식 맛에는 자신 있지만 서비스적인 면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사장님들까지, 북적이는 가게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봐야 할 책이다. 


<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는 총 5장으로, 1장 직원과 손님 모두 행복해지는 사장의 리더십 '가게의 제1 고객은 직원이다'를 시작으로 다시 찾고 싶은 가게를 만드는 서비스 디자인의 법칙, 저절로 매출이 오르는 장사 매뉴얼, 장사는 좌석을 파는 사업이다 그리고 5장 한국의 숨은 장사 천재들, 대박집 사장이 직접 밝히는 작은 가게 성공 전략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별한 메뉴를 파는 것도 아닌데, 목 좋은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닌데 유독 그 가게만 잘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에는 저자가 찾은 '잘 되는 가게들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저자는 가장 먼저 직원이 만족해야 가게를 찾는 고객들도 만족하고 가게의 이익으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지역에서 꽤 알려진 식당에서는 직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고, 손님 서비스에 대한 자율권을 부여했다. 영업 시작 전 20분 동안의 조회를 통해 직원들과의 대화뿐만 아니라 손님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을 바로바로 고쳐 나간다. 


맛있는 음식과 특색 있는 분위기로 자꾸만 찾고 싶은 가게가 있다. 손님들의 재방문율이 높은 가게는 당연히 매출이 높은 가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손님들이 자꾸 찾고 싶은 가게로 만들 수 있을까. <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음식점이라면 무조건 맛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맛은 30%, 나머지 70%가 가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특별히 맛있는 집도 아닌데 자꾸만 찾게 되는 곳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맛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확하고 섬세한 맞춤형 서비스'였다. 손님의 취향과 기호를 기억해 주는 가게, 친근함과 신뢰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포차를 통해 어떻게 손님들을 서비스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친밀함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내 가게만을 나타내는 시그니처 서비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손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일지라도 이 질문을 늘 가슴에 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브랜드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독창적인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원가와 비용을 알아야 하고 직원들을 관리하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손님도 만족하고 가게의 매출도 끌어올릴 수 있는 메뉴 개발과 함께 어떻게 팔아야 할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에서는 식재료 원가 계산부터 적절한 인원관리까지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준다.

여러 정보들 중에서 'POS 데이터'를 놓치지 않고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객을 분석하고 판매 및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되는 빅데이터. 바로 POS 데이터는 외식업계의 빅데이터이다. 대기업에서는 이미 POS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출 전략을 세운다고 한다. 소시민들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도 이런 빅데이터를 적용해 본다면 매출 향상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빅데이터와 함께 눈여겨봐야 할 것이 바로 'SNS 마케팅'이다. 대행업체에 맡기지 않더라도 조금의 노력만 들인다면 많은 돈을 들인 홍보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은 마케팅이 바로 'SNS 마케팅'이다. <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의 저자는 손님을 가게의 홍보 요원으로 만들라고 강조한다. 음식의 비주얼과 SNS 마케팅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니 가장 먼저 비주얼을 통해 손님의 감탄을 자아내 SNS에 올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게 조명, 작은 인테리어 소품도 신경 쓰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SNS에 가게 사진을 올리는 손님들에게 무료 음료 등 대가를 제공하는 방법도 사용해 보자.  


<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에는 장사 잘 되는 가게를 위한 여러 가지 조언이 담겨있다. 외식업에 대한 조언이지만 맛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이 책은 오직 손님을 배려하고, 직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가게를 만들라고 한다. 놓치기 쉬운 서비스의 디테일을 콕 집어서 알려준다. 음식점을 방문했을 때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편안함이나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에 대해,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많은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직원들에 대한 조언이다. 그것은 비단 가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도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지 않는 가게. 열심히 일한다면 나도 언젠가는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가게. 눈앞의 이익보다 직원들의 미래를 지원하는 가게. 책 속에서 소개하는 유독 잘 되는 가게들의 공통점은 바로 직원들과 함께 성장해 간다는 것이었다. 

외식업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건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이 소모되고 있고, 하고 있는 일에서 더 이상 비전을 찾을 수 없을 때 직원들은 떠난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없어서 마음에 든다. 지금 당장 실천해 볼 수 있는 쉬운 방법들을 알려줘서 좋았다. 이미 가게를 운영 중인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조언일 수도 있다. 장사가 잘 되고 있다면 문제없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매출이 조금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왜 유독 그 가게만 잘될까>가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의 조언 하나를 실천한다고 내일 당장 매출이 오르지는 않는다. 요점은 왜 같은 음식을 파는데 그 가게는 잘 되고, 나는 안 되는가이다. 장사의 기본, 서비스의 기본, 직원들과의 기본 관계, 모든 것은 기본이 탄탄해야 높이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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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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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는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쓴 존 그린의 신작이다. TV 영화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안녕, 헤이즐'과 원작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꼭 보고, 읽어 봐야지 목록에 넣어둔 영화와 책이다. 아직 그 둘 다 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존 그린의 이번 책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를 편견이나 비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는 의미 있는 이야기였고 기대한 것보다는 조금 지루한 내용이었다. 아마 이미 오래전 지나온 길에 대한 이야기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 누구나 거쳐온 그 시간 속의 이야기.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의 주인공 에이자는 조금 더 특별하고 힘겹게 지나고 있다. 손가락 끝에 생채기를 냄으로 끊임없이 자기가 병균에 감염되지 않았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에이자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그 외에는 평범한 고등학생 소녀이다.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강박증이 있는 소녀의 성장기'라고 하겠다. 

억만장자 CEO 러셀 피킷이 실종되었다. 행방을 제보하는 시민에게 10만 달러의 현상금이 지급된다는 소식에 에이자의 친구인 데이지는 그의 집으로 가서 행적을 추적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의 아들 데이비스와 예전에 캠프에서 만난 적이 있고 강 건너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카누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한다. 그녀들이 원하는 피킷에 대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지만 대신 에이자는 데이비스와 다시 연락을 하게 된다.

이야기는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고요하다. 에이자의 강박에 대한 증상, 결국엔 손 소독제까지 마시게 되는 상황도 벌어지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에이자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라 그런지 늘 그래왔듯, 일상의 한 부분인 양 큰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아픔은 당사자 밖에 모른다.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는 끊임없이 자신과 이야기하는 에이자의 독백이 이어진다. 강박증이라는 특정한 증상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모습에서 일반 청소년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찾아볼 수 있었다. 


'넌 네 머릿속에만 갇혀 있다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범'이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분명 에이자는 벗어난 아이이다. 그렇다면 그 '평범'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행동해야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켜야 할 항목이 있는 걸까.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분명 그녀는 남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졌다. 그래서 성장 과정이 남들보다 조금 더 힘들고 이겨내야 할 상황이 더 많을 것이다. 그녀뿐일까. 누구나 자신만의 증상이 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조금 힘들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는 오래전 지나온 시간, 에이자는 현재 극복해 나가고 있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를 힘겹게 보낸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야기가 조금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거나, 아직 그때의 감정들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은 후 표지를 보니 에이자가 늘 이야기하는 나선형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의 나선형에 갇혀 끊임없이 내려갈 때가 있었다.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는 그 시간, 우리 모두가 자라온 과정을 떠올릴 수 있는 누군가의 성장 소설이다. 책보다 영화로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인 것 같다. 20세기 폭스에서 영화화하기로 결정 났다니 영화가 개봉되면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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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 - 남과 다른 글은 어떻게 쓰는가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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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은 후 팬이 되었다. 블로그와 팟캐스트 등을 통해 알려주는 글쓰기 조언들을 꼼꼼히 새겨들었다. 저자의 이야기는 딱 내가 원하는 글쓰기 조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원국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한한 응원 때문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들렸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연습만 한다면 당신도 충분히 멋진 글을 쓸 수 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끊임없이 내게 할 수 있다 이야기해 줬다. 

글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끔 말하는 기억이 있다. 책보다는 실제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 배우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방송국 작가로 일하시는 분의 수업을 들었다. 이제 나도 진짜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구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다.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고 왜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은지 쓰라고 했다. 열심히 썼다. 수강생들의 글을 모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그리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비판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A4 용지 2/3 정도 글을 써냈는데 기억나는 것은 단 한 줄, '짧은 글이 아닌, 긴 글을 쓰고 싶어요.' 강사가 말했다. "지금도 글을 길게 썼는데 뭘 더 길게 쓰고 싶은 건가요?" 

첫 수업이 끝나고 나를 포함한 3명이 바로 안내데스크로 가 수강을 취소했다. 그녀는 오만했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글과 생각과 열정은 일단 무시하고 시작했다. 자신이 정답이라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더라도 자신의 글이 최고가 아님을, 많은 책을 읽고 있더라도 수강생 모두가 자신보다 책을 적게 읽고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이다. 그런 사람이 쓰는 글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녀의 수업 덕분에 글쓰기에 대한 수업이나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생겼다. 오만하지 않은 글을 쓰는 사람, 자신의 글이 최고라는 교만이 없는 사람. 그것이 바로 내가 글쓰기 책을 고르는 기준이다. 그리고 <강원국의 글쓰기>는 내 기준에 딱 들어맞는 책이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옆에 두고 읽고 읽고 또 읽고 싶은 글쓰기 책이다.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 조언은 글과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이곳저곳에서 들려준 글쓰기 방법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쓰기 위해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100권 가까이 읽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는 독서와 글쓰기 방법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작가가 28년 동안 경험한 글쓰기 노하우와 함께 말이다.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가 알려주는 글쓰기 노하우를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는 오로지 책을 읽는 당사자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쓰느라 힘들었다. 이제 당신이 읽느라 고생할 차례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으며 많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물론 독자들이 보기 쉽게 첫째, 둘째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도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이 무척 많았다.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읽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본인이 가장 원하는 부분을 찾아서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모든 글은 독립적이며 실용적이다. 

많은 사람이 글쓰기에 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글이라는 것을 평생 써왔기 때문에 글쓰기에 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썼다, 못 썼다 평하면서 잘 쓰는 사람을 무시하려 든다. 동시에, 글쓰기 두려워 글을 멀리한다. 그러면서 글쓰기는 부질없는 짓이라며 폄하한다.


글쓰기에 관한 많은 책이 있다. 어쨌든 글을 잘 쓰려면 직접, 많이 써보는 수밖에 없다. 잘 알지만, 계속 글쓰기 노하우 책을 읽는 이유는 첫 단어를 쓰기가 여전히 어렵고 두렵기 때문이다. 본인의 노하우를 기본으로 글쓰기에 대한 책 100여권의 팁을 담았다는 저자의 말처럼 <강원국의 글쓰기>안에는 이미 알고 있는 방법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고 또 읽고 싶은 이유는 바로, '어떻게'라는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해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그의 책은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질문한다. "평소에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기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 낼까요?" 저자가 답한다. "첫째는 독서, 둘째는 토론, 셋째는 학습 그리고 마지막은 메모다." 묻고 답하기 식으로 설명하는 <강원국의 글쓰기>책은 글쓰기 노하우에 대한 책을 처음 읽는 사람들부터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글쓰기 책 프로 독서가들까지 만족시켜 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이다. 살아 있는 것만이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죽은 것은 그저 떠내려간다. 깨어 있는 사람은 기억을 거슬러 글을 쓴다. 기억은 또한 죽은 것도 살려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내가 죽지 않는 한 그들도 죽지 않고 살아간다고. 인생에서 남는 것은 기억뿐이다. 글로 쓴 추억만 남는다. 

나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상상력이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재능이 아니라 연습이다. 간절함에 따라 조금 더 잘 쓰고 못쓰고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누구나 작가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쓰는 방법을 이야기하지만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강조한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우선 나는 왜 쓰고 싶은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목표가 명확하면 출발은 금방이다. 속도는 빠르게 올라간다.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꾸만 가는 방법만을 찾고 있는 것이다.

SNS 덕분에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말하는 온라인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왜 온라인에 글을 쓰는지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둘째, 목표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일관성이다. 마지막으로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SNS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글쓰기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이왕 글을 쓰기로 했다면 분명한 목표를 세워 글쓰기 능력과 성취의 보람을 함께 느껴보면 좋지 않을까.


글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다. 이들은 글을 들고 독자 앞에 나선다.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고 이렇게 생각하고 느꼈고 깨달았다'고 얘기한다. 자신을 드러낸다. 이것이 나라고 외치는 것이 글쓰기다. 관심받기를 싫어한다면 왜 글을 쓰는가. 정치인과 언론인의 글은 말할 것도 없고 문인과 과학자, 철학자, 연예인 할 것 없이 글을 쓰는 이유는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당장 뭐라도 쓰고 싶어 머릿속이 온갖 이야기로 가득했고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좋은 책은 빠른 길을 알려주는 것보다 하고 싶게 만드는 열정을 심어준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쓰고 싶은 욕망과 함께 글쓰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알려준다.

책을 읽는 내내 왜 글을 쓰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 마음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는지 등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물론 아직 모든 질문에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잔뜩 생겼으니 <강원국의 글쓰기> 일독의 결과로 만족한다. 읽고 읽고 또 읽다 보면 강원국의 글쓰기가 아니라 나만의 글쓰기 노하우도 생기겠지. 읽느라 고생하라 했지만 읽느라 즐거웠다. 당신도 나처럼 책을 읽으며 즐겁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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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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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책을 만났다. 다른 책도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가를 찾았다. 아무런 정보없이 처음 <모스크바의 신사>를 받아 들었을때, 무척 남감했다. 먼저 700페이지가 넘는 두께가 부담스러웠다. 러시아에 관한 소설은 이름부터 배경까지 모든 것이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과연 내가 <모스크바의 신사>를 잘 읽어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책장을 넘길수록 다음 장이 궁금했고 잠잘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더더더 읽고 싶어지는 책이 되었다. 

그냥 소설일 뿐일까. 주인공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의 수감이 시작된 1922년, 러시아에 진짜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 궁금해 책을 읽다 멈추고 검색을 했다. 1917년 10월에 혁명이 일어났고 1922년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세워졌다.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사회주의 사회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과거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그것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시를 쓴 백작은 자신이 머물던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에서 평생 갇혀 지내게 된다.

당시의 러시아는 말 그대로 세상이 뒤집힌 시대였다.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토록 혼란스럽고 격정적인 시대를 이토록 평온하게 표현하다니. 책을 읽을수록 깊은 호수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라앉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자꾸만 빠져들었다. 오래만에 묘하게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1922년 호텔 연금이 시작된 해부터 1954년까지 로스토프 백작이라는 인간의 32년간 삶을 고스런히 보여준다. 백작 또는 당시에 백작과 함께 지냈던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소설화 시킨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스크바의 신사>의 묘사와 감정들은 무척 디테일하다. 러시아 혁명후의 이야기지만 이 책은 혁명 후 러시아의 상황이나 혁명을 돌파해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백작은 혁명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잃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현실에 적응해 간다. 과연 이런 인물이 있을까. 

부유하고 고귀한 백작은 하루아침에 스위트룸에서 작은 골방으로 쫒겨난다. 그것보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평생을 메트로폴 호텔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죽음만이 그를 자유롭게 할뿐. 그에게 주어진 자유는 호텔 안이 전부였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호텔이라는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가 머무는 곳은 호텔 안이지만 그의 삶은 러시아의 변화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겪는다. 그런 변화 과정들이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이해되도록 만드는 작가의 글솜씨가 놀라웠다.


긍정적이고 지적이며 겸손한 백작의 성격은 예전과는 다른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호텔 안의 직원, 호텔 투숙객들과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가는 백작의 행동은 흥미로웠다. 백작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킨 니나 쿨리코바라는 아홉 살 배기 여자아이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러시아 여배우 안나와의 관계, 32년간 좋은 친구이자 직장동료로 함께 지낸 에밀, 안드레이, 마리아등 <모스크바의 신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백작처럼 따뜻하고 독특하고 즐거웠다. 하물며 백작을 감시하고 미워하는 악역인 비숍의 행동조차 '각자 자기만의 이유가 있으니까'라고 납득하게 된다. 제목처럼 책 속의 모든 인물이 각자 나름대로의 신사였다. 

백작의 삶은 크게 소피야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니나가 잠시 맡아달라는 그녀의 딸 소피야는 어느새 백작의 딸, 소피야 로스토프로 살아간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누구보다 똑똑한 백작의 전부인 소피야. 아마 백작에게 소피야가 없었다면 그의 삶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감금된 장소가 호텔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었다면 그는 32년간을 버티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모스크바의 신사>는 단순하게 혼란의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의 인생을 읊조리는 책이 아니다. 결코 마지막까지 읽지 않고서는 알수 없는 이유들.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있는 소설이었다. 


"그 옛날 너에게 평생 메트로폴을 떠날 수 없다는 연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네가 러시아 최고 행운가가 되리라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가 말했다. 

지독한 불운이 나중에는 행운이 되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모스크바의 신사>의 백작에게 평생 연금형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아마 책을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도 어떤 부분에서는 혼란스러운 러시아에서 벗어난 호텔에서의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분노가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글 뒤에 숨겨진 백작의 좌절과 혼돈을 느낄 수 있었던 구절에서는 과연 이런 삶을, 산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살아낸다고 말해야 할까. 끊임없이 질문했다. 글과 주인공은 평온한데 책을 읽는 내 머릿속만 혼란으로 가득찼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잔잔한 호수에서 갑자기 꽤 큰 물고기가 뭍으로 펄떡 뛰어나와서 놀래키는 느낌이었다. 이야기의 흐름보다 상황에 대처하는 백작의 우아함에 빠져있었다. 32년간 그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제 백작은 그 엄청난 일을 준비했을까. 

읽을수록 책의 두께가 상관 없어지는 책이었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러시아의 격정적인 시대를 담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러시아를 살아온 열정적인 투사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역사의 변화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자신만의 삶을 고요하게 이끌어가는 백작의 이야기이다. 급변하는 사건들이 많지만 <모스크바의 신사>는 그 모든 굴곡을 당연한 듯 꿀꺽 삼켜 버린다. 신기한 책이다. 미국 작가가 쓴 볼셰비키 혁명 이후를 사는 러시아 인의 이야기. 32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도록 이끌어가는 작가의 힘. 흥미로운 책이다. 흥미로운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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