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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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예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예전 평점 기준으로 별 네 개 줬을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책을 읽었을 때 번역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기억은 남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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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87.데이비드 흄-이준호

 

88.우리한텐 미래가 없어-백승화 외

 

89.내해의 어부-어슐러 K. 르귄

 

90.창백한 언덕 풍경-가즈오 이시구로

 

91.칼잡이들의 세계사-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92.우부메의 여름-교고쿠 나츠히코

 

93.일곱명의 술래잡기-미쓰다 신조

 

94.영어로 뭐게요 대머리가-강현 외

 

95.도망치지 않고 뭐하느냐-김주영 외

 

96.소문의 여자-오쿠다 히데오

 

97.악스-이사카 코타로

 

98.나와 밍들의 세계-양진 외

 

99.산시로-나쓰메 소세키

 

100.조이랜드-스티븐 킹

 

101.피리술사-미야베 미유키

 

102.모리스-E.M. 포스터

 

103.괴물,조선의 또 다른 풍격-곽재식

 

104.보몽에게 보내는 편지 외-장 자크 루소

 

105.선악의 저편-프리드리히 니체

 

106.지리/기술/제도-제프리 삭스

 

107.헤겔 정신현상학 입문-하세가와 히로시

 

108.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에드문트 후설

 

109.알렉산드리아 사중주:마운트올리브-로렌스 더럴

 

110.알렉산드리아 사중주:클레어-로렌스 더러

 

111.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1953~1960)-아서 C. 클라크

 

112.정복왕 윌리엄-폴 쥠토르

 

113.전날의 섬-움베르토 에코

 

114.류성룡, 7년이 전쟁-이종수

 

115.천안문-조너선 D. 스펜스

 

116.육식저택-고바야시 야스미

 

117.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118.빛을 두려워하는-더글라스 케네디

 

119.하이데거와 나치즘-박찬국

 

120.한국의 레지스탕스-조한성

 

121.모든 것이 F가 된다-모리 히로시

 

122.갈증-아멜리 노통브

 

123.헤겔의 변증법-줄리 E. 메이비

 

124.다시, 헤겔을 읽다-이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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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7년의 전쟁

1. 갑자기 나타난 손님처럼 임진왜란은 조선에 들이닥쳤다. 평화에 젖어 있던 조선은 예상할 수 없는 전쟁의 시작에, 전쟁이 일상화된 전국시대를 거친 전쟁의 베테랑들인 일본군의 거침없는 진군에 혼비백산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수도인 서울을 빼앗긴다. 겁먹은 왕 선조는 자신의 목숨을 살리고자 조선을 버리고 명나라로 가려 했고, 신하들은 울면서 선조의 행동을 제지한다. 여기까지 보면 조선 조정은 혼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비규환의 현장 그 자체다. 임진왜란 시기 5년간 영의정의 자리에 올라 있으며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자 최선을 다한 류성룡은 그 현실을 가감없이 <징비록>에 써서 남긴다. <징비록>을 쓰면서 류성룡은 실제 체험한 전쟁을 다시 추체험해야했고, 그 추체험은 그의 마음에 깊이 남아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징비록>은 안타까운 전쟁사의 기록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도 <징비록>을 볼 수 있다. 이야기의 관점에서 보면, <징비록>에 쓰여진 임진왜란은 일본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욕망에서 시작하여 이순신 장군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멋진 이야기로도 보인다. 이 두 가지 관점이 서로 완벽하게 다르지는 않을 터. 안타깝고 슬프고 혼란스러운 전쟁의 기록과 멋진 이야기는 같은 물건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달리 보이는 것처럼, 다른 듯하지만 같은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된다. 임진왜란은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책을 써서 남기면 멋진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2.책은 전쟁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왕인 선조의 행동만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었다. 적통으로서 왕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왕위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선조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시종일관 자기 권력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다. 공이 있어 인기 있는 신하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고(그는 심지어 아들인 광해군마저 자신의 권력을 빼앗는 존재처럼 여겨 끊임없이 견제한다) 시험하고, 자신의 평판이 나빠지거나 불리해지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나쁜 평판을 피하려고 온갖 수를 부리는 임금의 모습을 어찌 좋게 볼 수 있을까? 최악의 상황에서도 신하들을 시험하려고 왕위에서 물러 나겠다는 선위 파동을 계속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자기 정당화만 하려는 임금을 임금다운 임금으로서 바라볼 수는 없을 터. 그 이전에도 그랬지만, 책을 읽으면서 선조에 대한 내 평가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임금답지 임금을 가지지 못한 채로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백성들은 고통받고, 나라는 망가지고, 신하들은 임금의 뒷치다꺼리를 하다 못해 책임까지 져야 하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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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

1. 묘한 일이다. 책을 다 읽었는데 책은 끝나지 않았다. 엔딩은 열려 있고, 작가는 소설의 결말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채 책을 끝맺는다. 두 가지 결말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마지막에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독자에게 맡긴다는 늬앙스를 띄운다. 처음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폭풍우로 난파된 배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한 청년이 다프네라는 배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배, 어딘가 이상하다. 거대한 배안에, 온갖 기계에, 온갖 물건들, 새들과 식물들이 가득한데 아무도 없다. 여기는 새로운 노아의 방주인가? 아니면 죽은 자들이 찾아가는 고독한 낙원인가? 아니면 고독한 자들의 지옥인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배 안에서 주인공은 낮의 햇빛을 피한 채 밤에만 술에 취한 채 배안을 떠돌아 다닌다. 배안을 떠돌아 다닌 뒤에는 방안에 앉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여인에게 낭만적인 어조로 사랑의 편지를 쓴다. 주인공의 행적을 묘사하던 소설의 화자는 급작스럽게 주인공의 과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자신의 이런 이야기 전환을 이해해달라면서.^^ 실험적인 소설들이 많이 쓰이면서 문학의 방향성을 모색하던 18세기 유럽의 소설들도 아닌, 20세기에 쓰여진 소설이 이런 식이라면 분명 무언가 작가의 의도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탈리아 지방의 소영주의 자식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아버지를 따라서 급작스럽게 한 성의 수비전에 참가한다. 전쟁의 근황과 상황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주인공이 살아가는 17세기의 과학지식이 또 갑자기 등장한다. 지금 보면 말도 안되는, 과학도 아닌 거의 미신에 가까운 이론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당당하게 그게 과학이라고 말한다. 당대의 지식과 우주관, 과학관이 묘사되고, 소설은 다시 전쟁과 배 안을 헤매 다니는 주인공의 모습을 왔다갔다 하기 시작한다. 두 장면의 교차는 이 소설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가 그랬던 것처럼.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라면 <전날의 섬>의 이런 전개가 어쩌면 익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만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읽은 나는 새삼 , 이게 움베르토 에코지라는 말을 내뱉을 뿐이다. 아버지의 용감한 무용담으로 목숨을 구한 주인공은, 자신의 비겁한 행동이 부끄러워 더 과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어린 시절 부끄러운 행동을 저지른 주인공은,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자기 자신에게 정당화하기 위해 가상의 쌍둥이 동생인 페란테라는 인물을 만들어 가상의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마지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이 가상의 쌍둥이 동생인 페란테 때문인 듯. 이 가상의 쌍둥이 동생 이야기는 지금도 어김없이 이어지며 주인공의 부끄럽고, 잘못된 행동을 자기 자신에게 정당화는 데 이용된다. 아버지는 너무나 용감해서 전쟁 중에 허망하게 죽고, 주인공은 아버지의 용맹함으로 이득을 얻은 뒤에 전쟁은 휴전으로 막을 내린다. 고향으로 돌아가나 주인공은 고향의 생활에 적응 못해 파리로 간다. 소설의 화자는 과거와 현재를 마음대로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과거와 현재의 교차 속에 17세기의 많은 것들이 소설 속에서 살아 숨쉬게 만든다. 생활사, 세계관, 사회상, 사상, 과학, 기술, 예술, 종교... 파리의 사교계에 입문하고 사랑을 느낀 여인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는 주인공은 말도 안되는 공명약에 대한 이론을 습득하고, 그걸로 장광설을 펼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기운이라느니, 상처 부위와의 공명이라느니, 지금 들으면 사이비 의학에 불과한 이론을 거침없이 전개하며 사람들에게 공명약이 진정한 과학으로 인정받게 만든 교설을 전개한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을 느낀 여인의 행동을 보고 그녀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거침없는 착각을 전개한다. 그 착각의 끝에 그는 새롭게 프랑스의 권력을 잡은 마자랭에 의해 반역 혐의로 체포된다. 마자랭은 그를 불러내어 기회를 주겠다며 임무를 의뢰한다. 대항해시대 속에서 치열하게 식민지를 둘러싼 싸움을 전개하던 당시 유럽 국가들에게 정확한 경도의 일자 변경선을 찾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마자랭은 당시 부정확한 해도 문제로 고생을 하던 프랑스의 입장에서, 해도에서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이던 영국의 전문가 바드 박사의 항해를 따라가서 정보를 얻어내라는 말을 한다. 죄를 벗기 위해 주인공은 그 말에 따라 바드 박사가 탄 아마릴리스 호로 향한다.

 

... 무언가 말을 많이 한 거 같은데 아직 이야기는 많이 남았다.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어서 소설 속 화자처럼 내 맘대로 대충 적어본다. 다른 사람인 척 바드 박사 염탐, 다시 등장하는 당대의 과학 기술, 말도 안되는 과학에 설득된 사람들과 그걸 믿는 이들의 행동, 난파, 다프네에 등장한 살아 있는 사람, 신부인 그와의 논쟁, 성서를 옹호한 신부의 거침없는 노아의 대홍수 옹호, 자신들이 있는 배 다프네에서 보이는 섬이 그들이 그렇게 찾는 일자 변경선 너머의 섬이라는 신부의 주장(, 눈에 보이는 그 섬이 전날의 섬이라는 말), 섬에 가려던 신부의 실종, 실의에 빠진 주인공이 쓰기 시작하는 페란테의 소설. 그전까지는 그래도 현실의 시간대를 넘나들던 이 소설은 여기서부터 가상과 현실이 서로 섞이는 메타소설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페란테의 무수한 악행의 열거. 파리에 와서 이중, 삼중, 사중의 간첩 행위로 재상의 신임을 얻는데다 주인공인 척 주인공이 사랑하는 릴리아의 사랑을 받고,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기. 리슐리외가 죽어 후임인 마자랭에 의해 위기에 처하나 릴리아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제2다프네를 타고 항해하기. 항해의 끝에 릴리아를 선원 들에게 팔려고 하다 분노한 작가인 주인공에 의해 페란테가 천벌을 받아 죽고, 죽은 뒤에도 죽은 자들의 나라에서 벌 받기. 죽어 가는 릴리아를 향한 주인공의 안타까움. 그 릴리아가 자신이 보이는 섬에 도달했다는 사실의 열거. 현실과 분리되어 있던 가상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더니 어느새 현실과 가상이 일치하는 상황 앞에서 주인공은 릴리아를 구하기 위해 섬으로 달려나가고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끝이 난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가는 그 뒤에 두 가지 다른 결말과 열려 있는 듯한 마무리로 소설을 끝내고, 소설은 그렇게 독자의 품으로 넘어간다. 이야기가 계속 되는 소설, 소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소설이 되어 독자의 머릿속을 뱅글뱅글 무환하게 순환하는 소설. 이야기와 소설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은 그 무한한 이야기와 소설의 흐름을 맴도는 것뿐. 그렇게 나와 주인공과 소설의 화자와 <전날의 섬>과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이야기는 돌고 돌고 또 돈다.


류성룡, 7년의 전쟁


2. 독서모임에서 <마지막 목격자들>을 가지고 전쟁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떨지는 예상했던대로 였습니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런데 전쟁을 가지고 이 이상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보죠. 우리는 전쟁을 해야 합니다, 전쟁은 좋은 것입니다, 사람은 많이 죽을수록 좋습니다, 살인은 좋은 것입니다, 대량 살상 무기는 권장해야 합니다.... 이 무슨 미친 말입니까?^^;; 전쟁을 가지고 내릴 수 있는 결말이 뻔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뻔해야 하고, 뻔할 수 밖에 없는 게 전쟁 이야기의 결말이니까요. 여기에 미학을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의 아름다움, 살육의 아름다움, 파괴의 아름다움, 대량학살의 아름다움, 피가 뿜어져 나오는 미... 무슨 예비 사이코패스 범죄자 담론도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 정해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건 미학이 아니라 윤리학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너무나 뻔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실천이성의 담론 같은. 독서 모임에서 나오는 전쟁 이야기의 결말이 뻔한 것은 그게 반드시 필요해서입니다. 다 같이 죽자고, 다 같이 파괴하자고, 다 같이 대량살육에 가담하자고, 다 같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죽이자고 책읽고 독서하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전쟁이라는 비극의 진실을 바라보고, 그것이 무슨 영향을 끼쳤고, 앞으로는 그런 비극이 어떻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또 하나의 전쟁 책을 펼쳐듭니다. <류성룡, 7년의 전쟁>. 류성룡이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인 임진왜란을 둘러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기 않기를 바라며 쓴 <징비록>에 기반한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생각합니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면 임진왜란과 같은 어리석은 상황이 나오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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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격자들

1.제가 이 책을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한 건, 마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벌어지던 때였습니다. 전쟁 관련 뉴스를 보고, 저는 이 책을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하고, 전쟁에 관해 한 번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고 여기 모인 분들고 그렇고,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잖아요?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쟁은 낯설기 그지 없는 그 무엇입니다. 영화에서 보거나 뉴스로 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전쟁을 실제로서 겪은 적이 없기 때문에, 저는 전쟁을 직접적인 삶으로서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전쟁을 삶으로서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고 전쟁에 대해 조금 더 진솔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집중해서 이야기하기를 바라면서.


전날의 섬

2.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전작주의를 꿈꾸면서, 내가 움베르토 에코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쓴 소설을 다 읽으려 했다. 하지만 그가 출판한 소설들을 다 읽기 전에 그는 세상을 떠나버렸고, 나의 전작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게 된다. 그리고 2022323일 오늘, 나는 그가 살아 생전에 나의 움베르토 에코 전작주의를 실패하게 만들었던 유일한 소설 <전날의 섬> 읽기에 도전 중이다. 원래는 상, 하 분권으로 나뉘어 있던 책의 합본이라 책이 두껍다.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오는 양장본 책답게 종이 가득 활자가 빽빽하게 박혀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다. 왜냐고? 오늘 반드시 움베르토 에코 소설 전작주의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미련을 두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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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4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짜라투스트라 2022-03-24 11:52   좋아요 0 | URL
아, 수정하였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3-24 0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짜라투스트라 2022-03-24 11:52   좋아요 0 | URL
글을 수정하였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