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공감의 위험
지지지난 주까지 방영했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본방 사수하면서 시청한 덕에 주인공 5인의 이름을 외울 정도다. 채송화 교수, … (여기서는 대표로 1인만!) 주인공은 5인으로, 그들이 실력있는 의사인 것은 당연하겠지만 개인의 성격이 제각각인 것과 딴판으로 주인공이 모두 하나같이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환자 가족과도 적극 공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조금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드라마니까… 현실에서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의료인의 모습을 드라마에서 보면서 신비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드라마니까 가상의 인물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12회까지 방영된 드라마의 감동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손난로 같은 온기가 아직 남아 있다.
저자의 딸 알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공감 연구자인 저자를 감동시킨 의료진을 만났다고 한다. 저자의 경험담이 픽션이 아니라면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등장한 의사들이 가상의 인물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어서 이 대목에서 놀라면서 책의 핵심을 놓치고 일단 책읽기를 멈췄다. 미국의 의사는 의술 말고도 공감을 더 배우는지 아니면 공감을 잘 하는 사람들이 우연히 병원 한 곳에 모인 것일까. 궁금하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의 미션 베이 의료센터Medical Center at Mission Bay를 세우는 데는 약 15억 달러가 들어갔다. 이 의료센터의 중심을 차지하는 베니오프 아동 병원Benioff Children’s Hospital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화된 병원 중 하나다. 거울처럼 비치는 외벽 사이사이에는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있고, 복도에는 배경음악이 흐르며, 전시된 예술 작품도 자주 교체된다. 그 병원을 향해 걸어가며 나는 속이 뒤집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딸 알마가 태어난 날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지만, 동시에 최악의 날이기도 했다. 알마는 길고 힘겨운 진통 끝에 새벽 2시 직전에 베니오프 병원의 수술실에서 태어났다. 아내와 나는 알마의 울음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울였지만 수술실에는 정적만 감돌았다. 의사와 간호사의 얼굴에 걱정이 떠올랐다. 알마는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나중에 우리는 출산 중 알마가 뇌졸중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알마는 베니오프의 신생아집중치료실로 실려 가 마치 전쟁터에서 목숨만 건진 것 같은 처참한 상태로 열램프 아래 누워 있었다. 알마의 인생 최초의 순간들을 거치며 나는 두 가지를 알게 됐다. 첫째는 내게 알마를 보호하고 싶다는 바람이 그 어떤 바람보다 강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이미 알마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의료진이 행진을 하듯이 차례로 알마의 침상 곁을 다녀갔다. 새벽 5시와 정오와 자정에 왔고, 때로는 1분, 때로는 20분을 머물렀다. 대개 예고도 없이 왔고, 항상 새로운 소식을 갖고 왔다. 감염의 징후는 점점 사라졌지만, 두개골 아래 염증의 신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알마의 뇌졸중 발작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수년간 계속될 수도 있었다. 의사들은 단순히 알마의 차트를 해석해줄 뿐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마치 그들이 차트에 적힐 내용에 영향을 미칠 힘이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형벌처럼 느껴지는 결과를 받아들면 우리는 자비를 구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신생아집중치료실 직원들이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우리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주고, 함께 앉아서 걱정을 나눴다. 한 의사는 몇 가지 나쁜 소식을 전한 뒤, 아직 어두운 이른 아침에 한 시간 동안 내 곁에서 아버지가 된다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진짜 생명선은 신생아과 의료부 팀장이자 알마의 담당의인 리즈 로저스Liz Rogers였다. 리즈의 머리칼은 모자이크였다. 밤색 머리칼인데 몇몇 군데는 회색 줄이 들어가 있고 또 어떤 부분은 금발이 환하게 빛났다. 그의 얼굴도 모자이크였다. 알마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우리 눈을 살피는 그의 눈은 슬퍼 보였다. 리즈는 알마의 병실에 들어올 때마다 아내와 나를 포옹해주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울었고, 자기 아이들에 관해서도 얘기해주었다.

나는 수년 동안 공감을 연구했지만, 그렇게 깊은 방식으로 공감을 받은 것은 매우 드문 경험이었다. 이 의사와 간호사, 테크니션은 우리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삶에서 가장 힘든 때에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주었다. 우리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았다. 신생아집중치료실은 삶과 죽음 사이의 칼날 같은 틈새에서 태어난, 심각한 조산아들을 치료하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어떤 아기들은 너무 연약해서 다리를 들기만 해도 뇌에서 피가 날 정도였다. 이곳의 가족들은 대부분의 부모가 상상도 할 수 없을 공포에 직면해 있다. 슬픔이 빛이라면 우주에서도 신생아집중치료실이 있는 곳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리즈를 비롯한 의사와 간호사, 직원 들은 이런 비참을 목격하고 마주한 채 일한다. 그러고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 모든 게 다 괜찮다는 듯 행동하고, 다음날 다시 자신을 내어줄 준비를 한 채 병원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공감의 슈퍼히어로들 같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 보살핌에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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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0-01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로님께 여쭤 볼까요?^^
저도 실은 예전부터 그게 좀 궁금했어요.
 

<밥의 인문학>(2015), <채소의 인문학>(2018), <고기의 인문학>(2020)을 내놓은 정혜경 교수(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의 신간 <바다의 인문학>이 나왔다. 음식 4부작의 위업을 이루었다!

9월 2주 신간 중에서 음식 관련 도서가 눈에 많이 띄는데 그 책들을 모아 보았다.



#클래식과_음식의_궁합
#신간 #클래식은_왜_그래
#히가시노_오쿠다_광팬_집중__코시국_달랠_日_추리물_온다
#그녀가_연쇄살인마_힌트는_뜨거운_밥_위에_얹은_버터라는데
#역사에_질문하는_뼈_한_조각_외
#완벽한_아내를_위한_레시피
#건건록_外
#서머싯_몸의_단편선과_장편_풍자소설
#미각의_번역
#입안_가득_소환되는_인생_음식_의_추억
#음악이_멈춘_순간_진짜_음악이_시작된다
#북카페 #스너프_외
#이_책 #바다음식의_인문학_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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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10-01 08: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먹는 거 엄청 좋아라 하는데, 막상 음식에 대한 책은 별로 읽은 기억이 없네용~~ 4부작까지 쓰셨다니 궁금한 맘이 생기네요~~

오거서 2021-10-01 12:10   좋아요 1 | URL
음식 책까지 빠트리지 않고 섭렵했다면 지금보다 살이 더 쪘을 것 같아요. 날씬한 걸로 만족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

행복한책읽기 2021-10-01 10: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박. 오거서님 서재는 바다처럼 넓고 깊군요. 새로이 알았습니다.^^

오거서 2021-10-01 10:33   좋아요 1 | URL
행복한책읽기님이 제 서재의 숨겨진 면모를 알아봐주시는군요.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꾸벅꾸벅… ^^;;
그런데 바다처럼 넓고 깊은 서재를 만들고 싶어 새로 지었는데 텅텅 비어 있어요 ㅎㅎㅎㅎ
 

우리는 외부인보다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더 배려한다. 하지만 같은 집단에 속한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열성 팬들을 모집했다. 그들은 맨유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글을 썼고, 다른 건물에 가서 맨유팀에 대한 짧은 헌정 비디오를 촬영하기로 했다. 선한 사마리아인 연구와 유사하게, 참가자들은 이동하는 길에 조깅을 하다가 발목을 삐어 쓰러지는 사람(사실은 배우)을 만나게 된다. 몇몇 경우에 그 사람은 맨유 유니폼을입고 있었고, 또 다른 경우에는 당시 맨유 팬들이 가장 미워하던 경쟁팀인 리버풀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그냥 아무 표시 없는 운동복을 입은 경우도 있었다. 발을 삔 사람이 맨유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참가자의 90퍼센트 이상이 멈춰서 그를 도왔지만, 그 사람이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는 고통으로 몸을 뒤틀고 있는데도 70퍼센트가 그냥 지나쳐 가버렸다.
전형적인 부족주의이다. 하지만 아주 단순한 넛지 하나만 더해도 이런 부족주의를 없앨 수 있다. 후속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맨유가 아니라 자신이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에 관한 글을 쓰게 했다. 이번에도 그들은 캠퍼스를 가로질러 비디오를 촬영하러 가고, 조깅을 하다가 발을 삔 사람과 마주친다. 이번에는 참가자들이 맨유 팬을 도운 비율과 거의 비슷한 비율로 리버풀 팬을 도왔다. 그러나 그냥 운동복을 입은 사람을 도운 비율이 여전히 더 낮은 것을 보면, 이 연구가 주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아무 부족에도 속하지 않은 것보다는 어떤 부족에라도 속해 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적절한 심리적 유인을 쓰면 공감이 부족주의를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런 연구 대부분은 다른 집단보다 공감을 더 잘하는 집단일 가능성이 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사이코패스들이 공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나머지 사람들 역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사람이 정말로 바뀌는 것일까? 유동주의자들은 마음을 근육에 비유한다. 운동을 해서 근육이 더 강해질 수 있는 것처럼 적합한 연습을 하면 지능을 키우거나 성격을 바꾸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육은 한 가지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속근이라고 알려진 근섬유는 두껍고 강하며 빨리 지친다. 속근은 빨리 달리기, 스쿼트, 역기 들기를 할 수 있게 해주지만 오랫동안 그 상태를 지속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근은 더 얇고 약하지만 더 오래 버틸 수있어서 마라톤 같은 활동을 뒷받침해준다.
댄 뱃슨과 크리스천 키저스를 비롯한 여러 심리학자는 공감의 속근 변화를 끌어냈다. 그들은 사람들의 동기에 변화를 줌으로써 그들이 공감을 하는 방향으로 더 잘 조율되도록 부추겼다. 그들의 자극이 낸 효과는 1분 혹은 한 시간정도 지속될 수 있지만 오래도록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 신학생들이 항상 급하게 쫓기는 느낌을 받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시간을 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또 한편으로 우리 대부분은 지나치며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할 만큼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상상해 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다면, 사이코패스들은 계속 냉담하게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례적 상황은 사람들을 각자의 공감 범위 안에서 더 높은 강도 쪽으로 이끌어가지만, 유도하는 자극이 없어지면 다시 원래의 설정값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목표는 공감의 지근을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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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21-09-30 1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격몽요결에서 본 ‘마음은 얼마든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라던 말이 생각납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426750)

mini74 2021-09-30 17: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넛지하면 저는 변기에 파리그림이 먼저 따올라요 ㅎㅎ 공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런 넛지도 참좋내요 *^^*

scott 2021-09-30 2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감의 지근! 키워야 하는데
코로나 팬더믹 시대에 각자도생의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2018 뉴욕타임즈 주목할 만한 도서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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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뉴욕타임즈가 주목할 만한 도서 100 권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오늘 방문했다. 검색 결과에 보이는 주소를 클릭하여 해당 페이지로 이동하면 그렇지 않았지만, 해당 페이지 주소를 입력하여 직접 바로 접속하면 구독을 강요하는(구독을 취소하는 버튼이 있지만 작동하지 않는) 팝업이 나타나서 페이지 내용을 가리기 때문에 2018년에 주목할 만한 도서 100 권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행복한책읽기님이 이런 상황을 알려 주었다. 비록 이 페이지에서 책 한 권씩 클릭하는 재미를 나누지 못하지만, 어떤 책들이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페이지에 있는 책들을 통째로 캡처하여 가져왔다. 


100권의 책을 캡처한 이미지 크기는 상하로 아주 매우 너무 길고 파일 용량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페이퍼를 표시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밝힌다. 알라딘 시스템의 빠릿하지 못한 성능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지만, 평소 같으면 결코 사용하지 않는 매우 특별한 캡처 이미지를 사용한 페이퍼 구성이 처리 지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일방적인 오해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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