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작품을 제외하고,
『고민하는 힘』 속에서 인용된 책들이다.






1. 마르크스인가 베버인가

2.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3. 베버, 직업으로서 학문

4. 애덤 스미스, 국부론

5. 나카노 고지, 청빈의 사상

6. 톨스토이, 인생론

7. 에드문트 후설. 유럽 여러 과학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

8.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 도피

9.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이외에 제목만 언급된 책들도 있다.

단테, 신곡
괴테, 파우스트
칸트, 순수이성비판
칸트, 실천이성비판
플라톤.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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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빠 2016-09-22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가 많네요..
 
 전출처 : 낭만인생 > 리뷰는 딱 질색이다.

아이폰을 사용한다. 그제 iOS 10 업그레이드를 하고나서부터 북플 앱에서 긴 문단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글을 읽지만 어쩔 수 없이 드문드문 읽는다.
글읽기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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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2016-09-21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 업그레이드 하셨는데 생각지도 못한 데서 부작용이? 비교해보니 정말로 문장이 끊어져서(조기 줄바꿈 현상?) 나오네요.

cyrus 2016-09-21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딩님이 오거서님이 겪은 문제를 제 블로그에 댓글로 알려주신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오거서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무슨 문제인지 이해가 됩니다. 제 폰은 안드로이드인데 어떤 날에는 문단과 문단 간격이 크게 벌어지기도 해요. 그리고 그림과 문단이 시작되는 첫 문장 사이의 간격이 붙어 있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IANx0bVd7s

베르디: 레퀴엠(진혼곡)
Missa da Requiem

I. 진혼곡과 자비송 (Requiem et Kyrie) - 합창, 4중창
II. 진노의 날 (Dies irae)
 1. 진노의 날(Dies irae) - 합창
 2. 이상한 나팔 소리(Tuba mirum) – 합창, 베이스
 3. 기록한 문서는(Liber scriptus) – 메조소프라노, 합창
 4. 불쌍한 나(Quid sum miser)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5. 전능하신 대왕이여(Rex tremendae) – 합창, 4중창
 6. 헤아려 주소서(Recordare)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7. 슬퍼하나이다(Ingemisco) - 테너
 8. 저주받은 자(Confutatis) – 베이스, 합창
 9. 눈물의 날(Lacrymosa) – 4중창, 합창
III. 봉헌송 (Offœrtorium) - 4중창
IV. 거룩하시다 (Sanctus) - 합창
V. 하나님의 어린 양 (Agnus Dei)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합창
VI. 영성체송 (Lux Æterna) – 메조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VII. 우리를 구원하소서 (Libera me) – 소프라노, 합창
 1. 나를 구원하소서(Libera me)
 2. 진노의 날(Dies irae)
 3. 영원한 죽음(Requiem aeternam)
 4. 저를 구원하소서(Libera me)

•연주자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Elizabeth Schwarzkopf)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 (Christa Ludwig)
테너, 니콜라이 게다 (Nicolai Gedda)
베이스, 니콜라이 갸로프 (Nicolai Ghiaurov)

필하모니아 관현악단 (Philarmonia Orchestra)
필하모니아 합창단 (Philharmonia Chorus)
지휘,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Carlo Maria Giulini)


•연주시간: 약 1 시간 27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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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20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지구의 작은 진노를 느낀 다음 날에 소개된 선곡이라서 기분이 묘합니다. ^^

오거서 2016-09-20 20:03   좋아요 0 | URL
베르디 레퀴엠에서 진노의 날이 단연 돋보이죠. 에고. 우연의 일치가 이런 거네요. ^^
 

강상중 『고민하는 힘』 중 7 ~ 9 장


7.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나쓰메 소세키가 묘사한 남녀의 사랑에는 특징이 있어서 때로는 ˝삼각관계만을 썼다˝, ˝불륜만을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쓰메 소세키가 근대 지식인의 `연애가 지닌 환상의 비극`과 같은 측면을 묘사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128)

예를 들면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는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는 아버지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는 조건으로 자산가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라는 압력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친구인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와의 금지된 사랑 쪽에 `진실한 사랑`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미치요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정작 미치요의 각오가 단단해지자 겁을 집어먹습니다. (128)

『행인』의 이치로는 아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어떤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동생에게 아내를 유혹해 볼 것을 의뢰합니다. (128)

나는 개인적으로 『문』에 나오는 소스케와 요오네 부부를 좋아합니다. 과거에 친구를 배반할 정도로 열렬하게 사랑했던 그들은 현재 참회의 마음을 가지고 의욕이 없는 은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생활 속에는 재 속에 남아 있는 불꽃 같은 따스함이 있습니다. (138)

부부 관계만 보면 도저히 구제할 수 없을 듯이 보이는 『길 위의 생』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와 교코의 실제 모습과 가장 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상당히 냉엄한 부분이 있지만, 주인공 겐조가 아내의 급한 출산에 허둥대는 장면 등은 매우 사실적이어서 쉽게 자를 수 없는 인연 같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부부가 처절한 심리전을 진행하듯이 전개되는 『명암』에서도 쓰다와 노부의 마음이 이상한 형태로 `동지`처럼 결합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138)

생각해 보면 부부에게는 부모 자식 같은 혈연관계가 없습 니다. 원래는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한쪽이 세상을 떠나면 비탄에 잠기고 상대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모습을 바꾸면서 서로 속에 존재하고 그렇게 쌓인 것이 자기 인생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라서 사랑이 성취되었는지 어떤지는 인생이 끝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138)

또 하나 덧붙인다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속에는 다소 악녀적인 여성이 등장하지만 극단적인 바람둥이는 나오지 않습니다. 묘사되어 있는 것은 새롭고 신기한 모험이 아니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계입니다. 앞에서 연애 환상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관점을 달리해 보면 나쓰메 소세키는 일상의 남녀 모습 속에 최대의 모험적인 연애가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39)

또 하나 나쓰메 소세키의 등장인물들에 대해 말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이 남녀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라는 의미에서 그들은 결코 사랑에 대해 게으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39)

8.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나쓰메 소세키에게 여자가 찾아와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듣기에 매우 괴로울 정도의 비통한 이야기였습니다. 여자는 이야기를 마친 뒤에 나쓰메 소세키에게 “만약 나와 같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을 쓴다면 그 여자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살아야 한다고 쓸 것인지” 묻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 여자가 세상에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렇지만 여자에게 “죽지 말고 살아야 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늘 자기 가슴속에 “죽음은 삶보다 귀하다는 말이 떠돌고 있었음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살아 있는 이유는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이렇게 몇 백 년, 몇 천 년 계속 되어 온 생명의 습관을 자기 대에서 끝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이라면 죽어도 좋겠지요˝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늘 삶보다 죽음이 귀하다고 믿고 있던 내 희망과 조언은 마침내 불쾌함으로 가득한 삶이라는 것을 초월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것은 나 스스로 평범한 자연주의자임을 드러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물끄러미 내 마음을 바라보고 있다.˝

`사상적으로는 죽음의 존엄을 존중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천수를 누려야 한다. 스스로 생명을 끊어서는 안 된다. 자기 생명은 자기 것이 아니라 조상들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론(正論)입니다. (147-148)

여기서 나는 다시 『마음』에 나오는 `선생`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유와 고립과 자아로 가득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 대가로 쓸쓸함을 맛보아야 하겠지요˝라고 선생은 말합니다. (150)

9. 늙어서 `최강`이 되라

나쓰메 소세키가 세상을 떠난 것이 쉰 살, 막스 베버가 세상을 떠난 것이 쉰여섯 살 때였으니까 이미 그들이 살았던 세월을 뛰어넘었습니다. (156)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는 `노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157)

그렇지만 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어딘가에 뻔뻔함에 대한 동경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친구인 마사오카 시키 (正岡子規)와 자기를 비교해서 말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시키는 천재지만 나는 천재가 아닌 수재일 뿐이다. 따라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재는 천성적으로 뻔뻔한 사람이지만 수재는 뻔뻔함이 없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속에 그런 콤플렉스가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분발해서 언젠가 자기도 뚫고 나가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는 뻔뻔해지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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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6-09-18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끼의 글들이 잘 소개되어 반가웠습니다. <도련님>의 배경인 시코쿠 마쓰야마에서는 지금도 소세끼를 팔아서 관광상품으로 잘 벌어먹고 있더군요. 소설에서는 무척 촌놈이라고 씹어댔는데.. 영국유학도 무척 내성적이라 고민을 많이했더군요.. 그러면서도 결국 그 아픔들을 모아 문학이 탄생합니다. ^^

오거서 2016-09-19 09:17   좋아요 0 | URL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나쓰메 소세키를 잘 알지 못합니다. <고민하는 힘>을 읽으면서 제 무지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자는 고민하는 힘이라고 하였지만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소설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상중 『고민하는 힘』 중 2 ~ 6 장


2.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는 많은 작품에서 돈을 주요한 키워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작가들과 다른 점입니다.

앞 장에서 다룬 『마음』도 그러해서 돈이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근원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47)

『그 후』에서는 다이스케가 자기 진퇴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 돈이며, 『명암』 등에서도 생활비 문제가 부부 관계의 애로사항으로 묘사됩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결국 모든 것이 돈인가…˝라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될 정도입니다. (47)

그리고 등장인물 가운데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잔뜩 악취를 풍기는 속물 자산가`가 나옵니다. 이는 나쓰메 소세키 문학의 특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가네다는 매우 희화화된 캐릭터지만 『그 후』에 나오는 다이스케의 아버지나 『행인』의 이치로의 아버지 등 은 사상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인종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훌륭한 인물로 묘사된 것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48)

3.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쓰메 소세키가 기묘한 꿈을 열 편 엮어서 쓴 『몽십야』에 이런 생각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제 7 화에 나오는 배를 타고 가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70)

그 남자는 왜 큰 배의 승객이 되어 배를 타고 있는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배는 배를 추월해서 지나가 앞쪽에서 지고 있는 태양의 뒤를 쫓아가겠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선장에게 행선지를 물어보았지만 대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배를 타고 있는 것은 대부분 외국인입니다. (70)

이런 와중에 우리는 어떤 지성을 믿거나 선택하면 좋을까요?

하나는 『몽십야』의 배를 탄 남자처럼 우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가?˝와 같은 것들이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수용하고 탐욕스럽게 지의 최첨단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며 `알고 있잖아?!`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결연한 각오가 필요할 것입니다. (74)


4. 청춘은 아름다운가?

내 청춘을 생각할 때 늘 그립게 떠오르는 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입니다. (82)

2 장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말류 의식`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시로』에는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처럼 허무하게 시대를 비평하는 인물은 없지만, 많든 적든 그와 비슷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83)

『산시로』 속에 매우 신경 쓰이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산시로가 열차에 투신자살해 몸이 잘린 젊은 여성의 시체를 보는 장면입니다. 이야기의 흐름과 관계가 없이 조금은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장면은 없어도 좋을 텐데`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나쓰메 소세키가 ˝청춘이란 밝은 것만이 아니고 한 꺼풀 벗기면 죽음과 맞닿아 있는 잔혹한 것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86)

5. 믿는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막스 베버는 자기를 가리켜 `종교적인 음치`라고 자조하듯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이 없는 시대에 믿음을 지닌 신자처럼 자기 지성을 믿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04)

나쓰메 소세키 또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행인』이 그러한데, 주인공인 이치로는 과도한 자의식 때문에 아내를 믿지 못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에도 그 괴로움을 기대지 못하고 고민만 깊어갑니다. 그 모습은 나쓰메 소세키를 떠올리게 합니다. (104)

또한 『문』은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구원을 받고 싶다˝고 갈망하며 종교에 귀의했지만 결국 믿음을 얻지 못하고 속세로 돌아오는 지식인의 이야기입니다. (105)

6.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잠깐 이야기를 돌려서, 이와 반대로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예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 봅시다.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에 나오는 다이스케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110)

이 역시 독단적인 말이지만, 『그 후』는 나쓰메 소세키가 깊은 의도를 갖고 집필한 일종의 복수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12)

『그 후』라는 제목과 달리 다이스케와 미치요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경제적 곤란에 시달리는 현실적인 생활자가 되었겠지요. (112)

나는 나쓰메 소세키가 『그 후』의 다이스케와 비슷한 경험, 또는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그 후』는 그것을 모델로 삼아 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113)

그래서 나는 `사람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타자로부터 배려` 그리고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일하는 의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다시 『그 후』의 다이스케를 생각해 봅시다. 이전의 다이스케는 완전히 `자기 세계` 속에서 살았습니다. 즉 자기 완결이라는 원 안에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미치요를 사랑하게 되면서 갑자기 원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현실 세계 속의 새로운 원과 연결하려고 할 때 아버지와 형이라는 가족으로부터 인연이 끊어집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구조입니다.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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