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에서 막 돌아왔지만, 여행이 끝났다고 당장은 말하고 싶지 않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떠나고 싶기 때문이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가 어쩌면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잠시 벗어난 일상의 현실을 맞이하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던가. 이 말은 여행자의 심정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닐까. 세계는 넓고 갈 곳은 정말 많다. 이번에도 절실히 느꼈다. 스페인은 엄청 넓은데 제한된 시간 때문에 관광지로 유명한 몇몇 도시를 들렀을 뿐이다. 그럼에도 스페인의 매력에 반했다. 태양이 강렬한 나라, 역사가 깊고, 경치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음식도 좋고… 아직 들르지 못한 미지에 대한 기대감이 새로 생겨난다.
이제까지 일상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일을 우선하는 한편 두 갈래 길에서 가지 못하는 길처럼 유럽을 동경한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열심히 나 자신과 타협하며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지나온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다시 살게 된다면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작년 겨울에 유럽 여행을 결행하였다.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천만다행이다 싶다.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아마 다시 없을 것 같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올겨울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여행을 주저하지 않았다.
일부러 끝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행지에서 체험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디게 만들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마침표를 찍지 않은 여행길에 다시 오르는 그날을 위해서 공부하는 심정으로 책을 읽어야겠다. 이번에는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꾸준히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자, 심기일전!
여행의 피로감이 엄청나지만 책읽기와 공부의 각오가 사그라지기 전에 책과 씨름하였다. 귀국편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어떤 책을 선택할 지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을 키우다가 게을러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스페인 여행의 막바지임에도, 스페인 여행 내내 궁금했던 스페인 역사를 시작으로 책읽기 목표를 정하면서 고민을 끝냈다. 결심하고 바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게으름과 핑계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진다. 서희석과 호세 안토니오 팔마가 함께 지은 『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을유문화사,2015)를 골랐다.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알기 쉽게 씌여진 책인 것 같다.
여행 전 예습은 부진하였지만, 아직 여행의 끝을 선언하지 않았으니까 여행 후 휴식하는 동안 책을 읽으면서 복습으로 만회하고 여행을 정리하고자 한다. 여행을 복기하면서 여행하는 기분을 조금이라도 살린다면 기분좋은 덤이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