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4
윌리엄 포크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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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문학동네/민은영 옮김)』은 노벨문학상 및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1942년 작으로 단편집 “모세여 내려가라”의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207p)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카뮈와 마르케스의 찬사에서 ‘위대함’은 거듭 등장한다. 1929년 『소리와 분노』, 1936년 『압살롬, 압살롬!』등 대표작들을 이미 선보인 후의 작품이라는 점은 기대를 높힌다. 늙은 곰의 이야기이자 노인의 이야기이며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한 “곰”은 ‘한정된 시간’이라는 조건에 묶인 인간과 그에 반하는 ‘영원’에 대한 그림이기도 하다.

 

 

“남자 하나가 있었다. 이번에는 개도 함께였다. 곰 올드벤까지 친다면 동물 두 마리, 분 호갠벡까지 친다면 남자 두 명이었다.(중략) 이들 중 때 묻지 않고 강의한 존재는 오직 샘과 올드벤과 잡종견 라이언뿐이었다.(9p)”로 시작되는 첫 번째 막의 주 무대는 숲 속이다. 열 여섯 살 소년이 지난 6년간 들어온, 보고 체험한 황야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중독성 있는 포크너식 열거법으로 펼쳐낸다. 이름도 얻은 늙은 곰, ‘죽을 운명마저 벗어던진 고독하고 막강한 늙은 곰’을 잡기 위한 추적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반복될수록 소년도 자라난다. 장성한 성인으로, 무엇보다 사냥꾼으로.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함을 소년은 이미 알고 있었고 끈기도 터득하고 있었다.(16p)”

 

 

열 살 때부터 소년은 멘토인 샘 파더스의 곁에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그 자체로 신성한 숲과 신화같은 곰을 향하는 인간들의 추적은 같은 듯 다른 동기로 움직이고 차이나는 종결을 짓는다. “소년은 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시간이 생겨나 시간이 되는 곳,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망각의 그늘 아래 죽음을 면제받은 늙은 곰과 죽음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된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25p)” 가장 강한 적을 쫓는 레이스의 외적 단순함 사이사이로 존재와 어긋남, 무서움과 두려움의 차이, 지키고 존중해야 할 것과 그럼에도 훼손하고 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더 비울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시계와 나침반이었다. 아직도 그는 오염된 존재였던 것이다.(30p)" 처음으로 소년이 곰과 맞닥뜨리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반복되는 문장은 소년의 경외심 가득한 진지함을 보여준다. ”샘이 가르쳐주고 연습시킨 대로(30p)“, ”샘이 가르쳐주고 연습시킨 다음 방법에 따라(30p)“, ”다시 한 번 샘이 가르쳐주고 연습시킨 마지막 방법을 쓰고(31p)“ 나서야 비로소 잊지 못할 순간을 맞는다. ”샘 파더스가 소년의 선생님이고 뒷마당에서 토끼와 다람쥐를 쫓던 시절이 소년의 유치원이었다면, 늙은 곰이 뛰어다니는 황야는 그의 대학이었고 긴 세월 짝도 새끼도 없이 살며 성별이 없는 스스로의 조상이 된 늙은 수곰은 그의 모교였다.(36p)“

 

 

분 호겐백은 푸르스름한 개 라이언을 마음의 단짝으로 삼고 샘은 곰 올드벤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정신은 물론 내적 동기 일체는 곰에게 온전히 연결돼 있었고 “괜찭아요.”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어요. 그냥 놔버린 거요.” “그래요, 노인들은 그럴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러다가 한숨 잘 자고 일어난다거나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마음을 바꾸기도 하지요.(88p)”에서처럼 죽음도 결코 육신의 문제가 아님을, 존재이유가 사라질 때 ‘스스로 그냥 놔버린 현상’일 수 있음을 본다. 이는 현대의 일상에서도 마음을 공유하는 대상과의 하나됨과 분리 곧 상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4장에서 새로운 시공간으로 배경이 전환되고 분위기는 환기된다. 소년은 스물 한 살 청년이 되었고 황야가 아닌 그가 상속받기로 되어 있는 땅(99p)에서 친척 형 매캐슬린을 만나고 있다. 상속자이지만 그 자격도 칭호도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펴는 아이작과 설득하고 반론하는 매캐슬린의 대화가 이어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성경 속 천지창조부터 신대륙 발견과 노예제도, 부끄러운 가계의 역사와 그 속에 엄연히 행해졌던 비인간적인 일들을 드러낸다. 특히 노예 장부의 간략하고 무심한 어조가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도 당시의 실상을 그려보게끔 하고 참담함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 장부는 200년 동안 기록했지만 완성하지 못했을뿐더러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청산하지 못할 기록의 연장이었다. 어느 땅 전체의 역사가 축소판으로 그 연대기에 담겨 있어, 이를 곱하고 조합하면 전쟁에서 항복한 이후 23년, 노예해방 이후 24년에 걸친 남부 전체의 역사가 될 것이다.(153p)”

 

 

5장에서 아이작은 다시 한번 그가 소년이었을 때 학교인 동시에 모든 곳이었던 황야를 찾는다. 제재회사가 벌목을 하고 열차가 달리는 곳으로 바뀌었지만 이 작품의 가장 뭉클한 재회를 선사한다. “어느 날, 겸손이 무엇이고 긍지가 무엇인지 설명할 줄도 모르는 한 노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에서 소년은 늙은 곰과 조그만 잡종개를 보고, 겸손이든 긍지든, 둘 중 하나만 얻으면 둘 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156p)” 개발과 파괴를 섞어내는 인간의 손과 죽지도 변치도 않는 자연을 대비시키고, 영원한 멘토 샘을 불러낸다. “라이언에게도 샘에게도 죽음이란 없었으므로(202p)”로 시작되는 영속성의 이유는 설득적이고 옛 언어로 스승을 불러보는 장면에서는 마음 깊이 충만함이 차오른다. 아이작이 걸어갈 앞으로의 길을 예상할 수 있게 만든다.

 

 

인용이 많아졌지만 새겨둘 문장이 그만큼 빼곡하다. 되새기며 음미하게 되는 문장은 다음 장면으로 스토리를 쫓는 리듬을 헐겁게 늘린다. 단어보다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어 멈춘 채 장면에서 눈을 돌리고 어딘가를 두리번 거리게 했다. “압살롬, 압살롬!” 다음으로 읽는 포크너이기에 나름의 각오를 했지만 분량 면에서도, 문체에서도 늪처럼 길게 끌어당기는 마성적인 문장은 훨씬 덜했다. 해설에서 역자는 원문의 외형적인 구조만을 따르는 번역보다는 의미 전달을 중시한 번역을 택함으로 소통에 중점을 두었음을 밝히는데(213p) 그렇다면 원문은 몇 문장이 결합된 형식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곰”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각자가 취하고 감당할 자세와 태도를 묻는 질문지다. 동시에 삶에서 소중한 가치를 향한 영원불멸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혼자는 아니었으나 고독했다. 고독이 여름의 짙은 초록으로 그를 에워쌌다. 숲은 변하지 않았다. 여름의 초록, 가을의 단풍과 비처럼, 그리고 강철 같은 겨울 추위와 눈처럼, 영원한 숲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1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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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어른 - 김지은 평론집
김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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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어른/2016/문학동네』은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의 첫 번째 평론집으로 저자는 철학을 전공하고 동화작가로 등단했으며 가르치는 일과 쓰고 전하는 일을 통해 어린이와 성인들을 만나고 있다. 특별히 우리말로 옮기거나 해설한 작품들이 하나같이 인상 깊었다. 연속되는 만남이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평론집을 읽게까지 한 셈이다. 가장 최근작으로는 고정순 그림, 안데르센 원작의 “그림자”로 흑백의 묵직한 질문에 미심쩍은 답을 모색할 때 김지은의 해설은 놓치거나 넘기지 않아 안도하게끔 돕는 길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믹 잭슨 글/존 브로들리 그림)”의 장면 수정도 불필요한 오해를 거둘 수 있으니 든든한 마음이다.

 

 

“동화작가는 작품을 쓰고 쥐도 새도 모르게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어른이다. 이 이야기 안에는 너희만 있으니까 염려 말라고 상냥하게 거짓말해주는 어른이다.(6p)” “어른 없는 안전한 시간들(6p)”을 만들어주는 동화작가의 정체성을 잘 설명한다. “거짓말하는 어른”은 자유로운 이야기 세상, 안전한 그곳으로 부재, 목소리, 꿈이라는 주제로 세 번에 걸친 여행을 보여준다. 소제목 안에서 소환된 작품들은 주제 또는 사건과 배경으로 견주어 새로운 ‘아, 그렇구나’를 찾아내게도 하고 생생한 숨을 지닌 인물들을 불러내어 유쾌하게 때론 짠하게 대면하게끔 한다. 읽은 책들은 반갑지만 읽지 못한 책들이 스스로를 부끄럽게도 하고, 급한 마음까지 들며 자연히 도서목록은 쌓여간다.

 

 

“어린이의 상처를 직접 어루만지고 함께 굶주리는 일은 어떤 사설이나 보고서도 해낼 수 없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중략) 공주와 기철이와 유정이가 따뜻하게 잠들 수 있도록 그날 밤 이불을 덮어주고 곁에 누워주는 동화를 더 많이 만나고 싶다.(33p)” 어른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린시절 이와같은 동화를 갖는다는 것,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곁에 있을 친구, 백 살이 되어도 꿈처럼 돌아가 꺼내볼 수 있는 보물을 지니는 것과 같다. “자유, 살게 하는 힘”편에서는 ‘변신 모티프’를 다루며 변신은 자유의 수단이자 해방을 향한 유일한 통로임에도 “하지만 가장 실현 가능해 보이는 변신은 ‘성장’이다(68p)”라는 말로 공감케 한다.

 

 

“묻지 않는 어른 앞에서 어린이는 입을 잃어버린다. 이 경우 입은 오직 대답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데, 훈련된 대답은 말이 아니다. 말을 할 수 없는 입은 몸에서 사라진 기관이나 다름없다.(91p)” 5월 5일 어린이날 이 문장을 읽으며 ‘묻지도 듣지도’않았던, 줄로 재단하고 한 치, 두 치 이탈을 세며 ‘너는 왜’ 또는 ‘왜 너는’을 반복하고 사로잡히던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평만 봐도 매력 넘칠 것 같은 “주병국 주방장”을 읽으며 헛헛함을 채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책은 마음으로 아끼는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곁에 수년간 꽂혀있기만 한 이영서의 “책과 노니는 집”이다. “동화 가운데 이 작품만큼 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203p)” 이 문장이면 됐다.

 

줄과 체크와 동그라미와 물결무늬로 가득해진 “거짓말하는 어른”은 어린이를 향해 말하는 동화에서 어른이 더 귀담아 듣게 되는, 귀기울여야 하고 흘려보내서는 안되는 지점들이 빼곡하다. 무딘 눈으로 알 수 없었던 것들을 깊고도 세심하게 살펴주기에 소중하다. 앞으로도 김지은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그 작품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듯하다. 사람들이 놓치고 외면한 얼굴들이 작품 안에서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말을 건다. 읽고 발견하고 깨달을 때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실현가능한 변신, 성장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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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고정순 그림, 배수아 옮김, 김지은 해설 / 길벗어린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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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그림자(고정순 그림/배수아 옮김)』가 길벗어린이 출판사의 기다리던 작가앨범 시리즈로 나왔다. 표지부터 강렬하게 시선을 붙잡는데 어두운 화면 속 미소 띤 사람과 무표정한 또 하나의 얼굴이 겹쳐져 한참을 바라보게 한다. 게다가 표지의 이름들은 면면이 최고 아닌가, 배수아 번역에 김지은 해설이라니, 그에 더해 블랙홀처럼 독자를 빨아들이는 고정순 그림으로 만날 안데르센은 이미 환상적이다. 비늘처럼 번득이는 은빛 면지를 지나면 두 번의 타이틀 표지를 거쳐 현실같은 이야기 세상으로 입장하게 된다.

 

 

추운 나라 출신의 똑똑한 학자는 여행 온 더운 나라의 폭염에 심신이 지쳐간다. 그림자가 쪼그라들 정도로 속수무책 뜨거운 열기, 그나마 밤이 내려야 기운을 차리고 머무는 곳 주변의 활기를 감상할 수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건 학자의 맞은 편 집이다. 빛에 둘러싸인 꽃들 사이 광채를 던지는 실루엣을 본 이후 그녀는 누구일지, 그녀가 사는 공간조차 알거나 닿기에 어렵다. 저녁이면 역시 되살아나는 듯한 그림자에게 장난스레 읖조린 말, “(중략) 문이 반쯤 열려 있으니 그림자가 머리를 좀 쓸 줄 안다면 안으로 살짝 들어가서 살펴본 다음 나에게 모두 말해 줄 텐데! 그림자야, 그렇게 하지 않겠니? 그렇게만 해 준다면 네가 얼마나 쓸모 있는 존재일까!(19p)” 들어가서 살펴보라는 무심한 격려에 그림자는 학자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사라진다. 슬쩍 들어가 버린다. 갑자기 자신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을 뒤늦게 발견한 학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이 세계의 진실, 선함, 그리고 아름다움에 관한 책들을 썼다.(23p)”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림자의 방문을 받게 된 학자는 호기심과 놀라움에 사로잡힌다. 잃어버렸던 그림자가 성공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간 빚진 것이 있다면 지불하겠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당신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 나에게 전처럼 하대하지 말고 존칭을 써달라는 요청을 한다. 그림자는 태연히 명령에 가까운 제안을 하고 그림자의 주인이었던 학자는 오히려 당황하며 묘한 위축감을 느낀다. 한 참 후 다시 찾아온 그림자는 동반 여행을 제안한다. “어때요, 내 그림자가 되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게? 당신과 함께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행 경비는 내가 다 대겠어요!(36p)” 인간이 된 그림자는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낸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온다는 학자의 말에 “그런데 세상이 원래 그렇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럴 거고요.(36p)”라거나 하대하지 말아달라 요청했던 자신은 학자를 ‘너’라 부르고 싶다고 분명히한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바가 절반을 이루어진 것 아닌가(40p) 이유를 대며.

 

 

그림자는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확장은 공존을 염두에 두지 않아 가치를 흔들어 혼란스럽게 뒤섞고 당황한 순간에 가로채간다. 갈퀴같은 손은 자비라곤 없기에 폭력성은 두렵기 그지없다. 학자가 양보하고 한 걸음씩 받아주자 그림자는 모든 것을 내놓으라 한다. 작품해설에서 김지은 평론가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인정받고자 했던 안데르센은 사람 사이의 일에서 실패를 거듭하면서 몹시 힘겨워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에드바르 콜린과의 일화에 안데르센이 충격받았다는데 독자인 나 역시 심장이 덜컥한다. 너-당신의 호칭문제는 관계를 지속하는 인간에게 늘 여러 모습으로 개입한다. 선의나 순수한 감정이 ‘그건 당신 착각이고요’로 돌아올 수도 있고, 어제의 친근한 표정이 새로운 의미로 옷을 갈아입은 채 ‘증거 있으세요’ 얼음벽을 칠 수도 있다.

 

 

하지만 해설은 나와 타자보다는 “한 사람의 이중적 자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내 안에서 힘을 겨루는 두 개의 자아, 이중의 인격, 익숙하고도 생경한 대치, 자동반응으로써 또는 갈등을 통한 일련의 선택과 행동, 극복하고 싶지만 챗바퀴 돌 듯 반복해서 갇히는 손쉬운 내면의 방어기제들, 핑계와 합리화 등을 생각할 때 깨어있는 의식으로 성장하고 조금씩 더 나아지기를, 나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해 진다. 안데르센의 ”그림자“를 이제라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페이지마다 웅변하는 고정순 작가의 그림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증폭시킨다. 싸한 냉기, 당황해 귀가 먹먹하고 웅웅거리고 애처롭게 시선이 흔들릴 것 같은 심정이 모두 화면 안에 녹아있는 느낌이다. ”어머니 이야기(북하우스)“와 함께 또 하나의 묵직한 안데르센을 발견해 기쁘다. ”그림자“에 영향을 주었다는 ”페터 슐레밀의 이상한 이야기“도 ”그림자 그림“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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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 -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폴 S. 보이어 지음, 김종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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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보이어의 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위즈덤하우스/김종원 옮김)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최고의 미국사 입문서!”라는 카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세계사의 바다를 두루 살피는 커다란 숙제는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 여기에서 최소한의 꼭 필요한 배경지식 취하기라는 구체적인 목표에는 안성맞춤이다. 여전히 세계뉴스의 선두에서 목소리를 내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살필 때 저자의 머리말이 하나의 가이드를 제시한다. 하지만 짧음을 추구하는 것도 나름의 이점이 있다. 간결한 구성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냉정히 판단하게 하고, 이야기의 주요한 맥락에 집중하게 하며, 핵심적인 여러 전환점과 지속적인 주제를 정확히 집어낼 수 있게 한다.(11p)”

 

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는 선사시대부터 2011년까지 아홉 개의 장으로 나누어 소제목을 중심으로 역사의 페이지들을 보여준다. 식민지 시대에는 충돌, 새로운 질병, 식민지의 가차 없는 확장으로 인디언이 큰 피해를 보는 양상이 비극적으로 계속되었다.(27p)” “식민지 시대에 도입된 노예제도는 내전의 씨앗을 심음과 동시에 인종주의라는 결과물을 남겼다.(28p)”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이 그들의 가치관을 새로이 정립하고 토착 인디언들을 내몰거나 인종갈등의 막을 올리게 된다. 책장을 넘길수록 오래 전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일례로, 보스턴 차 사건과 명예혁명 등 기억 속의 제목들이 먼지를 털고 빠르게 정렬된다.

 

버지니아주의 제임스 매디슨이 기록한 토론을 보면, 정치 이론과 고대부터 현재까지 존재한 정체들에 관한 대표들의 해박한 지식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로크식의 자연권 이론-또한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이론-을 인용하며, 정부의 적법성의 원천을 대중의 동의에서 찾았다.(57p)” 철학자들의 철학자라는 데이비드 흄을 비롯해 마키아벨리나 홉스 등도 등장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문화, 예술이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반영하거나 작동케 했는가다. 빛나는 고전이나 인물들이 남긴 흔적과 영향력은 그 시공간적 배경의 생생함을 간직하고 있다. 문학적 창작력이 폭발했던 시기로 1850년대의 작품 목록이 또 다른 필독서 리스트를 작성케 한다.

 

마지막 장은 1969년부터 2011계속되는 역사소설가와는 달리, 역사가는 해피엔딩을 선택할 능력이 없다.(204p)”라는 근사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으로써 최소단위의 역사를 간직한 나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게끔 하는 글이다. 책이 출간된 해인 2012년 저자가 유명을 달리해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 게 아쉬운 점이나 ‘2011년 이후의 미국이 부록으로 추가되었다. 9장의 마지막 페이지는 저자의 소회와도 같은 결론이 담겨있어 곱씹어보게 한다. 윌리엄 포크너 전작 읽기를 위해 선택한 책인데 앞으로도 필요할 때마다 다시 펼쳐보며, 입문을 넘어 깊이있게 탐색하는 계기가 되어주리라 생각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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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 압살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9
윌리엄 포크너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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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의 『압살롬, 압살롬!(민음사/이태동 옮김)』은 1936년 작품으로 “소리와 분노” 7년 후에 출간되었다. 현지인 미국에서는 포크너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 포크너 작품들 가운데 가장 적게 이해된 가장 위대한 작품(552p, 해설)이라는 평가는 읽으면서도 무엇을 읽고 있는가 혼란한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집중하게 했다. “그의 읽기 어려운 산문시에 가까운 복잡한 문체 역시 난해함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참여를 요구하고 그의 주제 의식을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549p)”는 해설은 찾아내어야 할 것 또는 들어야 할 감추어진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만든다.

 

 

“1833년 6월의 그 일요일 아침, 서트펜이 그 어디선가 말을 타고 이 거리에 처음 나타났고, (중략) 토지를 수탈해서(중략) 대저택을 짓고, (중략) 결혼해서 두 아이를 (중략) 얻었고, 그에게 할당된 생애를 비참하게(중략) 마쳤다.(15p)” 작품 서두에 이미 스토리는 공개되었다. 비극임을 인치며 과거로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이야기는 이후 복잡한 곁길들을 탐색하며 종말을 향한다. 동일한 내용은 바로 앞 10p에도 조금 변형된 문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길이를 달리하며, 꾸밈말이나 수식을 추가하며, 비장함을 더하거나 빼며 골자는 반복된다. 사건 자체를 끈질기게 반복할 때 가장 중심에는 서트펜 대령이 있다.

 

 

서트펜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악령같은 운명을 지닌 자, 이 세상에 실제로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걸어다니는 그림자(250p), 또는 번거로움도 아랑곳 하지않고 괄호를 여닫으며 병기하거나, 대화를 중단시켜 가면서 강조하는 “악귀”, “불한당 같은 악귀”다. 반면 로자는 “악귀는 아니었어. 악한이기는 했으나, (중략) 미치광이이기는 했지만, 광기는 역시 광기 그 자체의 피해자가 아닐까?(244p)”라는 논리를 편다. 서트펜은 왜 악귀가 되었을까, 그는 누구일까를 추적하는 곁길들이 서트펜의 유일한 친구의 손자인 퀜틴 컴프슨을 비롯한 다른 화자들을 통한 사건의 묘사이자 해석으로 펼쳐지기에 단순하지 않다.

 

 

서트펜에게는 스스로 합리화 시킨 ‘최고 선’인 ‘계획’이 있었다. 서트펜이 남부 요크나파토파 군, 제퍼슨 읍에서 요지부동 확고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면서 필요한 사회적 지위의 수단이었던 콜드필드 가문과 그 딸들, 처음에 앨런 그리고 후에 서트펜의 딸보다 어렸던 앨런의 동생 로자까지 비운으로 이끈다. “그래, 이 남부에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운명적인 저주가 내려졌던 거야.(28p)”할 만큼 비극은 서트펜 얼굴을 한 아들, 헨리 서트펜과 성격과 정신을 물려받아 “서트펜계‘라 할수 있는 딸 주디스 서트펜에게도 이어지고, 자신이 설정한 틀만이 기준인, 멈춰 돌아보지 못하고 탐욕스럽게 헤치고 질주하는 집착은 그가 손을 뻗은 대상들을 황폐케 한다.

 

이 집착이 질주하는 이유는일을 서둘 필요성과 자기도 모르게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을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48p)“,시간은 화살이다, 서둘러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마을을 지나 달리거나(51p)“ 조급히 시간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서트펜이 더 이상 젊지 않은 시기가 오자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만은 아니었어. 문제는 오히려 그 시간의 부족을 깊이 파고 들어갔다는 데 있었어. 그는 시간 부족으로 인한 농축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어.(399p)“ '한정된 시간'이라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조건을 초월할 수 없음에도 겸허함 대신 자만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본다.

 

 

‘계획’과 더불어 비극의 두 번재 축, 집착, 질주, 광기의 동기는 서트펜의 ‘순진함’이다. “서트펜은 순진한 것이 탈이었어. 갑자기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발견했어.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일을 해야만 된다는 것이었어.(319p)” 인종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는 지점으로 “그는 나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 그것을 말하지도 못했다고.(343p)”이후 폭발 같은 각성과 가출은 ‘계획’을 발동시키는 시발점이 되고 순진함은 불타는 맹목에 기름을 붙는다.

 

 

비극의 와중에도 서트펜의 두 자녀에게 발견할 수 있는 아버지와는 다른 온기가 그나마 위안으로 남는다. 자기 방식의 속죄를 위해 스스로를 유폐시켰던 헨리와 충격과 절망에도 손을 내밀고 챙겼던 주디스의 마지막 시간들도 여운이 남는다.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누가 압살롬인가?”, 또는 “왜 압살롬인가?”였다. 다윗과 압살롬을 서트펜과 찰스 본에 대입할 수는 절대로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름을 기다렸던, 이름이 불리워지기만을 바랬던, 인정받지 못해 괴로워했고 결국 다윗을 대적했던 압살롬은 일정 시기 또는 찰스 본 전 생애를 통한 정서의 간절함에서 겹쳐보인다.

 

 

오만가지를 다 갖다 붙이는 듯한, 그 지리멸렬 중에도 톡 쏘는 액센트를 발산하는 만연체의 복문들, 안은 문장과 안긴 문장, 종속절의 릴레이, 부연에 부연을 쌓는 문장이 해설에서도 말했듯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오르게 했다. 긴 근거제시, 이유 설명과 설득 후에 단문으로 앞의 내용을 부정하고, 번복하는 이유를 다시 제시하기 시작하는 패턴의 문장들-그는 미친 사람이었어(242p)~ ,그래, 그는 결코 미친 사람은 아니었어.(243p)/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러나 나는 그를 용서했어.(249p) 등-,도 독특하고 265p중반부터 270p까지의 끊어지지 않는 한 문장은 “백년의 고독”의 잊지못할 장문이 연상된다.

 

 

대화의 질문 또는 시간적 배경을 기점으로 영화 장면 전환처럼 그 당시 상황으로 이동해버리기도 한다. 아름다운 문장들도 즐비하다. 표현의 탁월함을 놀라움으로 지켜보게 만든다. “그녀는 하나의 변신-결혼 생활의 파탄 아니면 간통-에서 다음으로,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축적된 먼지 같은 세월과 나라는 거창한 자아를 짊어지고 옮겨 가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 누에고치에서 나온 나방처럼 과거를 일절 현재에 들여 놓지 않고 현재를 일절 뒤에 남기지 않은 채 하나의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변화하여 가는, 만개한 장미나 목련이 금년 6월에서 내년 6월로 말없이 옮겨 가는 것처럼 완전한 모양으로 양순하게, 아무런 뼈대도, 실체도, 어떤 죽은 순수한 혼이 없는 풍성한 껍데기 먼지도, 아무것도 태양과 땅 사이 어느 곳에도 남기지 않고 다음 모습으로 변신하는 그런 여자였어.(287p)”처럼.

 

 

같은 장면이 다시 그려질 때마다 중요한 요소, 결정적 단서가 돌연 추가되어 인물의 감정에 확 공감하며 빨려들게 되는데 찰스 본의 주검 앞에서 주디스는 왜 눈물 한 방울 조차 흘리지 않았을까의 의문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비로소 풀리는 점도 그렇다. 그때까지 짐작했던 나름의 추측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으며 이후 주디스의 행동, 그녀가 살아낸 삶과 맞이한 죽음까지도 파노라마처럼 재생케 한다.

 

 

“압살롬, 압살롬!”은 눈에 비치는 활자를 읽어나가는 책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숙고해야 하는, 정지에 정지를 거듭해야 하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남북전쟁 이후의 남부, 흑백 인종 차별과 계급질서 문제, 만연한 남녀차별 등의 배경읽기도 필요하다. 여러 목소리를 가져와 인간의 다양한 선택과 배척, 그로 인한 책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반면교사적 울림도 주는 다층적인 작품이라 생각된다. 초독의 아쉬운 점은 주 화자인 퀜틴 컴프슨을 중심으로 하는 포크너 논문을 봤을때 퀜틴에 집중하지 못했던 점이다. 포크너의 첫 작품을 시작으로 다른 작품을 읽어나갈 때, 또 언젠가 다시 압살롬을 읽는다면 전혀 새롭게 다가오고, 이 아쉬움 또한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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