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레터 - 잎맥의 사랑 연대기
황모과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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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 한 대학 연구팀은 긍정의 말을 들려준 식물이 더 잘 자랐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반려식물을 키우며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이들도 주변에 만날 수 있다. 수동적인 대상에 머무는걸 넘어 만일 식물이 적극적 기록자라면 어떨까. 기록을 저장하고 전달하고 소통의 매개가 되며 개인을 넘어 종족의 명멸을 지켜보고 지켜내는 증인이라면. 황모과의 그린 레터(다산책방, 2024, 268쪽 분량)는 민족의 굴곡진 역사 틈바구니에서 개인이 감당한 아프고 아름다운 여정을 섬세하게 담는다.


그저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기만을 꿈꿨는데, 삶은 각오보다 훨씬 많은 일을 제게 짐 지웠습니다. 모두에게 그랬듯이요.”(P.44) 프룬의 말이다. 소설은 여섯 개 장에서 네 명의 화자가 그들이 살아낸 시간을 복기한다. 프룬과 로밀야는 같은 쿠진족이라 같은 언어와 문화를 지녔다. 둘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운명처럼 이끌린다. 마을의 청혼 방식대로 비티스디아 뜰을 가꾸고 잎사귀를 건넨 푸룬은 함께할 시간을 꿈꾸면서 서로의 다름도 존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사이에 철조망이 생긴다. 조금만 기다리기로 한 사이에 철조망은 철벽이 되고 나란히 걷던 돌담은 국경이 된다. 프룬은 키운 사람의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식물의 잎을 골라내어 잎사귀 앨범, 엽첩을 만든다. 그가 미래를 기대하며 반복했던 노동은 한낱 착취의 도구였음도 너무 늦게 깨닫는다. 1, 푸룬의 이야기를 채우는 세 번째 엽첩은 삼십 년 후, 평생을 그리워한 아내 로밀야에게 건네는 작별인사다.

 

연구원인 이륀은 푸룬의 증손녀다. 그녀는 얼음산국에서 쿠진족을 미개하다 간주하기에 자신이 사 분의 일 쿠진임도 감추고 있다. 그녀는 업무 외 자기 시간을 할애해서 증조할아버지가 소중히 가꾼 식물을 연구한다. 전 세계에 단 11종뿐인 희귀식물 비티스디아다. 잎사귀가 실재로 메시지를 드러낼지 궁금하지만 완벽하게 추론할 수 없는 영역은 쉽게 해답을 주지 않는다. 이때 도착한 메일은 쿠진족 발루의 해독키였다. 발루의 선조 할머니 이야기가 시작된다. 로밀야의 이야기다. 로밀야는 잎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버텨 온 삶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인간의 오랜 싸움을”(p.102) 기록한다.

 

소설은 꼭 맞물리는 서사를 구축함으로 안타까움을 더한다. 정교하게 어긋나는 운명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구조적 폭거 앞에 인간의 무력함과 그럼에도의 역설을 보여준다. 실리를 앞세운 이들은 자원을 빼앗고, 경제를 침탈하고, 영토를 나누고, 왕래와 소통을 금한다. 주인은 한 순간에 종이 되고 언어와 문화를 금지당하고 혈통은 조롱당한다. “얼음산국이 주도한 광산 사업과 테러리스트 소탕 작전, 밀림국이 집행한 쿠진족 강제 불임 시술 등 민족말살정책, 그리고 열도국의 종교적 원리주의가 초래한 제노사이드 등, 세 강대국이 애써 감추고 싶은 이야기로만 남았다. 감춰진 이야기 속에서 쿠진이란 이름은 사라져 갔다.”(p.75)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폭압을 소설은 고발한다. 로밀야의 흔적을 추적하다 도달한 밑동 마을의 폐허, 그곳 남은 자의 증언과 주민의 삼 분의 이가 묻힌 자리는 우리 역사의 냉혹한 지점들도 겹쳐보였다.

 

푸룬도 로밀야도 생 전체를 건 사랑을 대전제로 삼고 운명에 맞선다. 동시에 곁에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만을 외치지 않았다. 로밀야는 난민인 엘하디 언니를 다정히 대했고, 푸룬은 파윈과 아이린을 곁에 허락했다. 이 역시 사랑이고 환대였다. 최선의 표식이었다. 소설은 가상의 시간과 공간으로 독자를 데려가지만 기시감 짙은 역사의 굴곡을 선연하게 묘사한다. 사 대에 걸친 사랑의 연대기는 오대까지 이어지며 여전히 생동하는 이들처럼 기리고 호명한다. 화자가 쓴 편지, 잎에 남긴 메시지(잎이 새기고 있는 메시지), 엽첩과 별지 등 필사적인 기록의 의지, 소통의 희망이 숭고하게 여겨지고 끝내 결실을 맺는다.

 

현실에 뿌리내린 SF를 선보이는 황모과는 말과 국가를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작가는 언어의 세계, 좁게는 한국어, 그중에서도 활자의 세계”(p.262)가 모국이라고 밝힌다. 소설을 재독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감정이 요동하는 작품이다. 그토록 순전한 사랑이 완벽하게 어긋나버리는 운명 때문에 독자가 앞서서 억울하다. 무언가 조치를 취하고 싶으나 속수무책이다. 이처럼 무너지는 심정들이 도처에 얼마나 많을지 체감하게 만든다. 현재 진행중인 비극을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어머니가 아버지가 눈물 흘리고 있을지를 소설은 일깨운다. 가상과 현실의 절묘한 결합, 악하고 어리석은 시스템에 부속으로 기능하는 무감각에 대한 비판도 날카롭지만 면면히 흐르는 사랑은 작품 전체를 애틋함으로 채운다. 완전한 끝이나 소멸은 없다. 소설은 희망을 품는다. 경고하지만 동시에 낙관하는 책의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세계 곳곳에 공존과 소통을 상징하는 푸른 정원이 생겨났다. 비티스디아는 어떤 땅에서든 살아남았다. ,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반드시 식물과 교감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비티스티아는 강인한 식물이지만 소통할 수 있는 반려인을 만나지 못하면 속절없이 말라 버렸다. 씨앗을 심은 모두가 푸른 기적을 만난 건 아니었다. 의심하는 사람, 독특한 교감 방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 앞에서 식물은 자신의 경이로운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p.234)

 

아무리 우겨도, 사소하고 당연한 일들이 자신의 삶에서는 도무지 일어나지 않았다. 영원과도 같은 아득함을 견뎌야 했다. 뻥 뚫린 가슴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뒤늦게 아쉬워해 봐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푸룬은 자신의 삶을, 로밀야의 삶을, 파윈과 아이린의 삶을 생각했다. 그러고는 남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삶도 있다.’(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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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8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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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송은경 옮김, 민음사, 2021, 1989, 348쪽 분량, 원제_The Remains of the Day)은 달링턴 홀의 집사 스티븐스가 엿새 간 생애 첫 여행을 하며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대를 이어 집사 일을 하고 있는 스티븐스에게 일은 곧 삶의 목적이며 유일한 가치다. 당시 완벽한 집사 되기는 근무 시간을 한정하고 명시된 요구에 부응하는 업무 수행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달링턴 가문이 200년 넘게 소유해 온 저택에, 저택의 주인이었던 달링턴 씨에게 한때 열일곱 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완벽하게 복무함으로 사명을 다했다.

 

집사 스티븐스는 맡은 일을 조율하고 통제하였으며,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를 헤아리고 민첩하게 대응함으로 저택의 주인이 도모하는 일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낸다. 드러나지 않을수록 훌륭하다는 직분의 속성상 공로와 과실은 달링턴 씨에게 속하는 게 마땅한 이치다. 또한 그가 헌신하는 대상인 사려 깊은 달링턴 씨에게 과실은 있을 리 만무하다. 너무도 당연해서 의심할 수 없는 전제조건이다. 이 조건에 돌이킬 수 없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면?

 

새 주인 패러데이 씨 덕분에 집사 스티븐스는 생애 첫 여행을 떠나게 된다. 전쟁도 끝났고 저택의 상황도 달라진 지금, 켄턴 양의 편지는 오래전 열정적인 총무였던 그녀를 상기시킨다. 그는 새로 봉착한 인력 관리 문제 해결에 그녀가 꼭 필요한 요소임을 확신한다. 그는 여행과 일 두 가지 목적을 한 번에 이룰만한 만족스런 여정을 시작한다. 첫날 저녁 그는 솔즈베리에서 본 것들 중에서 성당이나 도시 건물보다 일렁이는 영국의 전원을 품은 그 놀라운 경치”(p.40)를 최고로 꼽는다.

 

그는 영국의 최고 절경이 주는 깊은 만족에서 위대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위대함을 정의 내리면서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나아간다. 소수 정예의 일류급 집사만을 회원으로 수용하면서 당시 런던에 영향력을 끼치던 단체 헤이스 소사이어티의 기준을 예측해 볼 때, ‘위대한집사는 유능보다 품위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화자는 품위의 화신을 자신의 부친에게서 찾는다. 그는 부친의 예를 들어 품위란 사적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 여긴다. 즉 전문가적 실존이 월등한 우위를 넘어 삶의 유일한 가치임을 증명하는 매 순간의 합이 품위를 떠받친다.

 

스티븐스가 거듭 읽는 켄턴 양(결혼한 20년 전부터는 벤 부인)의 편지는 화자를 과거로 회귀하게 만드는 타임머신 키다. 소설은 현실에서 여행 중인 패러데이 어르신의 집사 스티븐스와 과거 주어진 임무에 매진하던 월링턴 씨의 집사 스티븐스를 엇갈려 배치한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켄턴 양은 총무로, 로버로 하우스에서 역할을 마친 스티븐스의 부친은 집사 보조로 월링턴 홀에 입성한다. 회상은 스티븐슨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위해 희생했던 사적인 가치와 잠재했던 가능성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불어내는 작업과 맞먹는다. 비로소 희미하게 드러나는 기억의 응달, 무의식에 근접해 있는 진심, 오래 단련되어 딱딱해진 감정, 그중에서도 놓쳐버린 사랑을 그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하나의 대상에 몰입했던 그는 전체로서의 진실을 통찰하지 못했다. 상황을 왜곡했다. 그는 알아차릴 기회를 놓쳤고 어쩌면 외면했다. 만찬장의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의 논쟁을 지켜보았으나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그날을 아픔보다 성취감으로 기억한다. 진실과 떨어져 있어도 관습’(p.169)이라면 허용하고,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합리화한다. 월링턴 씨의 반유대 행보도 사적인 의구심을 부적절하게 표현하지 않고 품위 있게 처리’(p.193)하기 위해서 따른다. 판단에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주장에 켄턴 양은 동의할 수 없지만 실행하며 괴로워한다. 오래 보았던 카디널은 자기도 모르게 도구로 전락하는 월링턴 씨를 염려한다. 카디널의 직접적인 경고에도 스티븐스는 이면의 진실을 각성하지 못한다.

 

말해 보세요, 스티븐스 씨. 당신은 왜, , 왜 항상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살아야 하죠?”(p.201) 경종을 듣지 못했던 그의 각성은 늦은 감이 많다. 그는 품위 즉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지키는 자로, 집사로서의 품위를 고수함으로 세상의 저 위대한 중심축에 거의 도달했’(p.300)다는 승리를 맛보았다. 그러나 곧 여기에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는 성찰로 결론 맺는다. 그는 한 번 뿐인 자신의 인생으로 대가를 지불했으며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림으로 책임을 감당한다. 여행의 끝날,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저녁을 혼자 맞으며 스티븐스는 다시 시작할 날들을 계획한다. 더 잘 해보겠다고 마음먹는다.

 

남아 있는 나날은 노벨 문학상 수상(1917)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대표작이며 1989년 부커상 수상작이다. 일본계 영국인 소설가인 그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 낸 작품들로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은 1993년에 동명 영화로 제작되었다. 소설은 1950년대 현재와 20여 년 전 양차 세계 대전 사이 과거의 영국과 당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베르사유 조약과 히틀러 등장, 반유대주의 등 굵직한 당시 흐름과 그로 인한 반향을 기록하고, 그와 함께 집사 스티븐스와 켄턴 양 등을 통해 개인의 문제를 질문한다.

 

시대적 배경을 덜어낸다면 일과 삶의 균형,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고 책임지는지 생의 가치를 묻는다. 가지 않은 길과 가지 못한 길 사이의 통찰과 회한은 어떻게 보면 일회성 삶을 사는 찰나적 존재인 우리 모두에게 틀과 매너리즘, 합리화와 구속의 굴레에서 어떻게 잠들지 않을지를 숙고하게 만든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화자의 내적 갈등과 감정을 독자에게 오롯이 전달한다. 스티븐스의 회한과 아픔, 수고와 허무, 상실과 당황은 흐르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그의 눈물만큼이나 속수무책으로 전이되어 온다.

 

잘 하고 있고 이게 최선이다 싶은 현재, 혹시 잃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잘못한 결정은 번복할 수 있는지, 비일비재한 아이러니 앞에서 어떻게 생의 여정을, 아니 하루의 일정을 수정할 수 있을까 책은 묻는다. 이탈한 경로를 바로잡고 떨어진 연료를 보충할 수 있을지, 푯대와 대전제와 명제는 믿을 만한지 소설에서 치열하게 행동했던, 또는 관조했던 이들을 다시 불러본다. 삶은 고통스런 시간이나 만끽할만한 시간 모두 숨 쉬듯이, 물 흐르듯이, 알아차릴 새 없이, 경고도 없이 전진한다. 석양이 내리기 전에, 깊은 어둠이 사방을 덮기 전에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여행지와 달링턴 홀이 포개지듯 겹치고 현재와 과거는 순식간에 자리 바꾸는 소설이다. 소설처럼 한 순간에 삶도 훌쩍 흘러가버릴 것만 같아 긴장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될 작품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따라서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싶다.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집사로 산다는 것은 무슨 팬터마임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슬쩍 밀거나 약간만 비틀거리게 만들어도 가면이 떨어져 내려 가면 뒤의 배우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는 점에서 말이다.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제 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춰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 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그 옷을 벗을 때는 오직 본인의 의사가 그러할 때 뿐이며, 그것은 어김없이 그가 완전히 혼자일 때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품위’의 요체다.(p.61)


그러나 당시에는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와 켄턴 양의 관계에서 엉뚱한 것들을 솎아 낼 수 있는 날이, 달이, 해가 끝없이 남아 있는 줄만 알았다. 이런저런 오해의 결과를 바로잡을 기회는 앞으로도 무한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모든 꿈을 영원히 흩어 놓으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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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문화 - 내부자가 된 외부자 교유서가 어제의책
피터 게이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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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게이의 바이마르 문화(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2, 1968, 344쪽 분량)는 시민이 주권자인 공화국은 왜 몰락하게 되었는지 독일의 찬란한 시기를 소환하여 질문하는 책이다. 바이마르 헌법 제정은 독일 문학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괴테와 실러의 바이마르 고전문학 시기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도 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헌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던 미래는 현실화하지 않는다. 문화적 융성과 정치, 경제적 몰락은 곧바로 연결되고 급하게 막을 내린 부흥기 이후 처참한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14년간 지속된 괴테의 독일, 즉 바이마르 공화국의 독일과 히틀러의 독일은 두 개의 전혀 다른 독일이고 그 파급력은 국가 차원을 넘어선다.

 

피터 게이는 당시 망명가들이 남긴 업적, “고국을 혐오하면서도 그리움에 뒤돌아보며 외국 땅에서의 강요된 생활 속에서 최대의 업적”(p.14)을 찬양한다. 예술가 자신이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이 내재되어있는 모더니즘과, 그 안에서 탄생한 새로운 미적 감수성에 주목한다. “외부로 밀려난 내부자”(p.17)중 한 명인 저자 또한 이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피터 게이는 역사학자이자 유럽 근대 사상사와 문화사 분야의 권위자로서 특히 계몽주의 연구, 부르주아 문화 연구에서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이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 역사 연구에 접목한 저작들을 남겼다. 저자는 서문을 바이마르공화국은 짧고 열에 들뜬 것 같지만 매혹적인 삶을 살았다.”(p.23)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공화국은 1차 대전 이후 독일 제국이 붕괴한 1918년 탄생하여 1933년 히틀러가 수상으로 임명되면서 살해된다. 책은 문화사를 중심으로 시대를 조명하면서 부족한 정치사를 말미에 부록으로 첨부한다.

 

1<탄생의 진통: 바이마르에서 바이마르로>은 패망 속에서 탄생해 혼란 속에서 존속했으며 재앙 속에서 사멸한 공화국(p.38)의 자취를 따라간다. 책은 바이마르 역사에서 공화국에 해가 되었던 베르사유 평화조약을 언급한다. 가혹하고 보복적인 조약, 치밀하게 계획된 모욕에 속수무책인 파견 대표단, 증오하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비겁자이자 반역자라는 낙인을 받게 된 이들에게 조약이 파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반유대주의자와 나치 선전의 핵심이 된다. 2<이성의 공동체: 절충자와 비판자>는 나치를 증오했지만 공화국을 사랑하지 않았던 수천의 교수, 기업가, 정치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들을 열정적 신념이 아닌 지적 선택에서 출발한 이성적 공화주의자’(p.73)라고 부른다. 탁월한 젊은 예술가 에카르트 케르에게서 내부자에서 외부자가 된 예를 살피고 공화국 연구소, 특히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추구와 업적을 다룬다. 사회 전반으로 영향을 끼치고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하는 엘리트 주의의 한계는 자명하다.

 

바르부르크 방식의 엄격한 경험주의와 학문적 상상력은 1920년대에 독일의 문화를 야만화시키려 위협했던 천박한 반지성주의와 통속적 신비주의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이마르의 전성기였다. 아테네는 알렉산드리아의 손에서 거듭 회복되어야만 한다는 바르부르크의 유명한 표현은 연금술이나 점성술과 고투를 벌이던 르네상스를 이해하기 위한 예술사가의 처방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비이성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세계 속 삶을 위한 철학자의 처방이었다.”(p.88) 심오했지만 제한적이었던 바르부르크 연구소 외에 베를린의 정신분석 연구소와 프로이트, 프랑크푸르트의 사회조사 연구소 등의 업적과 한계를 차례로 살핀다.

 

3<비밀스러운 독일: 힘으로서의 시>에서는 현대판 소크라테스인 슈테판 게오르게로 문을 연다. 그에게 비밀스러운 독일의 왕이었으며 비영웅적 시대에 영웅을 찾고 있던 영웅이었다.”(p.113)는 설명을 덧붙이고, 영향력에 있어 그와 견줄 수 있었던 단 한 명의 살아있는 경쟁자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언급한다. 최고급 서정시인(토마스 만의 표현), 청년운동 신비주의(무쉬크의 표현), ”수천의 우둔한 존재들 속에서 어떻게 단지 한 존재만이 시인이 되는가를 세속적 인과관계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지만실지로 그러한 시인이 되었던(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 릴케에게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 장은 릴케 숭배자의 한 사람으로써 꽤 인상 깊었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시의 연관성은 주목할 만하다.

 

4<전체성의 갈망: 현대성의 시련>에서 저자는 정치를 추구하는 것이 모든 습관과 마찬가지로 연습으로 강화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위축되는 하나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유력한 독일 지식인들이 비판은 물론 일반적인 정치 행위조차 자제”(p.152)하였는데 특히 토마스 만은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그 반대편에 에밀 졸라가 위치한다. 바이마르에서의 비정치적 경향은 인식의 왜곡을 발생시키고 15년이 못되는 바이마르 역사에서 내각이 17번 바뀌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경영에 있어서는 완강하리만큼 독립적이지만 정치 기사 처리에 있어서는 신뢰할 만큼 편파적”(p.157)이었던 신문이 등장하고, 단지 프랑크푸르트 신문만이 예외적 위치를 차지한다. 책은 편집장이었던 하인리히 지몬의 연설을 자신이 여전히 외부자라는 것을 알고 있던 외부자, 다른 독일의 대변인, 최고의 바이마르 정신”(p.158)이라고 평한다. 그 밖에 청년 사이에서 두드러지던 전체성을 향한 갈망에 주목하고, 그들 사이에 만연한 반이성주의가 반사회적 행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이 장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는 마르틴 하이데거다. 1933년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 취임 연설은 그에게 나치 부역자라는 라벨을 붙이고 비난하는 근거가 된다.

 

5<아들의 반역: 표현주의 시기>에서는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바우하우스 다음으로 꼽히는 표현주의 사조를 영화, 회화, 연극 등의 예술에서 확인한다. 새로운 인간성에 대한 부정적 전망과 희망은 그대로 작품에 반영된다. 특히 연극에서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부권에 대한 반역”(p.221)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권위주의적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반항은 카프카에서도 두드러진다. 6장은 <아버지의 보복: 객관성의 성쇠>에서는 1924년의 문학적 사건인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해설한다. 부자갈등과 둘 사이 경쟁을 다루는 문학을 비롯해 정치화된 청년운동(p.262)등 바이마르공화국 내 가장 통절한 요소로 청년의 정치사를 꼽는다. 청년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한 나치에게 청년들은 거대한 잠재적 표(p.263)였고, 우편향은 심화된다. 책의 마지막 문단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막을 정리하는데 지금까지도 그 영향은 계속 회자된다.

 

바이마르 문화는 양차대전 사이에 만개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탄생과 몰락을 다룬다. 책의 부제인 내부자가 된 외부자바이마르공화국의 내부자들은 언제나 독일제국에 충실했던 보수주의자들이고, 공화국의 문화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외부자들이었는데 역사적 정황에 의해 내부로 들어오지만 결코 내부자가 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시인들을 불러내는 3장이었다. 말테에게 열광하던 때가 생생하다. 나는 바보인가 자괴감 들며 읽었던 릴케, 두이노의 비가 첫줄을 무한히 반복하며 릴케를 우러르던 시기가 있다. 그는 천사인가, 무엇인가. 그런데 모국어로 읽는 그들도 난해하다는 부분에 소심하게 후련하고 안도한다. 저자는 350쪽 내외(정치사 제외하면 270)의 간결한 분량 안에 방대한 문화사를 추리고 연결한다. 밀도가 확연히 높아져 느슨한 문장이라고는 없고 독자는 행간의 숨은 의미를 찾아서 스스로 주석을 매기며 읽어나가게 된다. 등장하는 인물이나 예술의 각 분야는 따로 한 권의 책과 맞먹는 무게로 독자를 압박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집필한 흥미로운 역사는 과거에 묶이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로 밀려온다. 지금 이 순간과 곧 다가올 미래를 근심하게 만들고, 반복되는 역사의 패착을 두렵게 바라보도록 한다. 화려하게 피어난 문화 직후에 연결되는 정치적 내리막길은 예기치 못하는 가파름을 보여 날개를 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면 무시무시한 추락을 우리는 막아낼 수 있을까, 위험 신호나 전조에 민감할 수 있을까, 이쯤부터는 더욱 깨어있어야 한다고 서로를 믿고 돕고 변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작년 2월에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강제독서 겨울 학기에서 읽었다. 지금 다시 읽으며 그 사이에 일어난 변화의 폭에 놀란다. K문화의 정점을 누렸고, 노벨 문학상 수상에 한껏 고무되는 찰나에 문화 외적인 부분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우리는 잠식당한다. 고난 끝에 새로운 희망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요즘이다. 방대한 사례와 자료를 재조직하여 매력적인 비유와 직관으로 통찰하는 중요한 저작 바이마르 문화를 추천한다.

 

 



 책 속에서> 


몇 달 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수상이 되었고 바이마르 사람들은 흩어졌으며, 그들과 함께 바이마르 정신은 내적으로 변화하여 이솝 우화가 되거나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으로 소멸했다. 다른 이들은 베를린에서 문 앞의 노크 소리 뒤에, 또는 스페인 국경에서, 파리의 임대아파트에서, 스웨덴의 어떤 마을에서, 브라질의 도시에서, 뉴욕의 호텔방에서 자살로 바이마르 정신을 소멸시켰다. 그러나 또다른 자들은 바이마르 정신을 실험실에서, 병원에서, 언론에서, 무대에서, 대학에서 소생시켜 위대한 발전과 지속적인 영향력을 얻게 하여 망명지에서 이 정신의 진정한 고향을 찾아주었다.(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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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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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로 대동단결하였던 추억이 엄마의 유년과 우리들의 유년의 공통점이다. 성탄절 연극과 예배, 새벽송도 축제 같았지만 산타 할아버지에게 쓰던 편지, 산타클로스의 방문은 늘 하이라이트였다. 이를 위해 숨은 노고와 애정과 헌신하는 약속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어른이 되고, 아니 부모가 되고 알게 된 결코 쉽지 않은 것들 중 하나다. 올해도 엄마의 화이트 철 대문은 크리스마스 전구로 반짝인다. 하지만 현실은 놀라운 괴리와 틈을 보인다. 뉴스는 무서운 소식들도 전했다.


크리스마스 소설 한 편이 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한별 옮김, 나무생각, 다산책방, 2023, 132쪽 분량)』은 침착하고 사려 깊게 구원의 첫발을 내딛는 과정을 따라간다. 크리스마스 대표격 고전인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보여주는 판타지와 극적 반전과는 결이 다른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작가가 세공한 보석같은 작품인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출간한 소설이다. 백 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이지만 덜어낸 끝에 정수만을 남기는 작가의 작업방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은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빌 펄롱은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조용히 기뻐한다. 그는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p.22) 안다. 뉴스에선 어려운 소식이 들리고 눈에 보이는 현실 역시 혹독하다. 그는 그럴수록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을 이곳에서 유일한 괜찮은 여학교에 보내 졸업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겠다고 결심한다, 아니 ‘결심을 굳’(p.24)힌다.


날씨가, 추위가, 형편이 혹독해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온다. 아내 아일린은 딸들의 도움을 받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고,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몰래 뜯어 올해의 산타 선물을 확인하며 으레 해야 할 일, 당연한 과제를 수행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지속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공이 들어가고, 중단되고 이탈할 가능성은 곳곳에 숨어 도사린다.


펄롱은 유년을 회고한다. 가사 일꾼이었던 엄마는 시미즈 윌슨의 집에서 일했고, 어느 날 자신을 낳았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른다. 아이가 없는 시미즈 윌슨은 펄롱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었으나 크리스마스 선물만큼은 지금까지 쓰라리다. 간곡히 원했던 두 가지 선물중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던 그날이 여전히 아쉽다. ‘빈주먹’으로 태어난 펄롱은 자신의 힘으로 석탄 목재상이 되었고, 이제는 소중한 다섯 딸을 잘 양육하리라는 소박한 소망으로 하루를 잇댄다.

그래도 가끔은 답답하다. 늘,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p.29) 펄롱은 궁금하다. 생각은 과거보다는 하루 앞날을 산다. 계속해서 하루 앞날을 살아야만 나날들이 온전하고 안전할 가능성을 조금 더 확보한다. 몸과 마음은 각각 다른 좌표에 선다.


소설은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가 완전히 새로운 크리스마스가 되는 순간을 고요하면서도 뜨겁게 기록한다. 아내 아일린은 그를 염려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녀는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라고 말한 후 “그래야 계속 살지.”(p.56)라고 덧붙인다. 모른척하지 않을 경우 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현실 인식은 경고를 내포한다. ‘우리 딸들’과 ‘거기 있는 애들’을 일대일로 두었을 때의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하지만 경고는 그가 이미 받은 사소한 것들을 외면하도록 하는데 실패한다. 그는 맨발인 소녀의 손을 잡고 수녀원을 나선다. 아내와 다섯 명의 딸들이 있는 집을 향한다. 두려움과 설렘, 무엇보다 기대를 안고. 크리스마스다.


소설은 역사 속 구체적 사건을 부각하기보다는 언제라도 발생 가능하고,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부조리를 보여준다. 이미 고착되었고 막강한 힘에 의해 가속하고 있는 일에 목소리를 낸다는 건 어렵다. 펄롱의 아내 아일린과 케호 식당의 여주인 미시즈 케호의 조언은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쉽지 않은 시기를 조심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선택의 여지 없는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펄롱은 “그 사람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 아닌가요?”(p.106)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상주의자인가?


펄롱의 선택은 그가 받아온 사소한 것들의 축적으로 가능했다. 그는 잊지 않고 있다. 누구나 어휘를 갖춰야 한다고 큰 사전을 건네던 미시즈 윌슨, 대회에서 상을 받자 자기 자식인양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던 일, 그래서 자기가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녔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버지는 오지 않았지만 일상의 은총처럼 곁에서 사소한 것들을 보태주었던 사람을 뒤늦게 알아본다. 사소한 친절은 사소하지 않다. 사소한 외면 또한 마찬가지다.


펄롱은 ‘평범한 마음’(p.71)을 누르고 자기만의 길을 내기 시작한다. 자신을 괴롭힌 실체가 외부 보다 내면에 있었음을 인식한 그는 마음이 이끄는 길을 걷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이 정확히 목표를 수행하도록 배치한다. 서사의 길목마다 전조와 암시로 연결시키고 마침내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끈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첫 문단으로 돌아가 재독할 때,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단어와 문장을 발견케 된다. 다시 읽을 때마다 하나의 장면은 겹겹의 의미를 간직하고 풍성한 두께를 드러낸다. 고양이나 까마귀, 사소한 무엇 하나도 대상 자체만 의미하지 않는다. 키건 읽기의 특별함이 아닐까. 이제 새 신을 신게 될 소녀의 날들은 결코 위태롭지 않겠다. 언제 읽어도 좋겠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더욱 빛날 작품을 추천한다. 곧 개봉할 킬리언 머피 주연의 동명 영화도 놓칠 수 없겠다.




책 속에서>


“너희 지금 산타 할아버지한테 편지 쓰지 그러니?”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버터와 설탕을 섞어4 크림을 만들면서도 펄롱의 생각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내와 딸들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그리고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을 언제 어떻게 배달할지, 누구한테 무슨 일을 맡길지, 받을 돈을 어디에서 어떻게 받을지에 닿아 있었다.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p.29)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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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게 두오! : 괴테 시 필사집 쓰는 기쁨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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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셰익스피어와 함께 세계 3대 시성으로 꼽히는 괴테의 시 100편을 감상하고 필사할 수 있는 책 나를 울게 두오!(배명자 옮김, 나무생각, 2024, 280면 분량)가 출간되었다. 책을 펴기 전, 만듦새에 우선 멈춘다. 오렌지빛 직물 느낌의 하드커버 표지에서 활자는 푸른 별처럼 빛난다. 상단의 필기체가 지금 막 괴테가 써내고 있는 시일 것만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인 장석주는 추천의 글에서 괴테의 시가 본질을 직시하고 세상 이치의 핵심을 꿰뚫는다고 평한다. 또한 생을 아끼고 제 안의 슬픔과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기어코 사랑과 행복을 찾으려는 자에게 읽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시가 손닿을 수 없는 별이 아니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내가 서있는 현실에 스밀 수 있는 빛으로 온다. 걸음을 내딛도록 조명하는 길잡이로 서서히 인도해 간다.

 

첫 번째 시는 아름다운 노래로 기억하는 <들장미>. 제목을 보는 순간 귓가에는 멜로디가 흐른다. ‘거친 소년은 결국 장미를 꺽고 만다. 소년만일까, 성급하게 취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후회할 수도 언제까지나 모르는 채 무감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잃어버리는 아름다움을 헤아려본다. 극적인 음률로 깊은 가을부터 찾아 듣게 하는 <마왕> 전문은 읽는 자체로도 의미를 지닌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나,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무력한 상실을 시인은 속도감 있게 포착한다.

 

위트가 넘쳐 웃음 짓게 하는 시는 시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알려준다. 신랄하게 정곡을 찌르는 시가 통쾌함을 선사하는데 아마도 정점이 <한 사내가 손님으로 왔고> 이겠다. 다소 과격한 표현, 거침없는 언사가 눌려있던 감정을 들추는 것 아닌가. 한 편의 짧은 소동극을 연상케 하는 장시 <마법사의 제자>는 생생한 장면이 그려져 유쾌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시인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도 찬찬히 들여다본다. <희망>, <근심>, <용기>를 제목 삼아 연약한 이들을 격려하고 힘을 준다. 동일한 제목으로 한 번쯤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시인은 인간의 내밀한 성정을 찬찬히 살피고 명확하게 지침을 선사한다.

 

괴테의 연작시 중에서 <로마의 비가><베니스 경구>는 몇 편을 정선하여 실었다. 첫 연작시인 <로마의 비가>를 비롯해 연작시 전체를 일관된 맥락에서 감상하는 기회가 기다려진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영단어가 상당량이었듯 괴테 역시 익숙한 관용구의 원저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라인강과 마인강> 31행의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의 첫 행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익숙하다. 시인은 후자의 결말을 모든 죄는 이 지상에서 죗값을 치러야 하기에!’라는 통찰로 맺는데 엄마의 말씀이 겹친다. 죽어서 천국 지옥이 있는 게 아니라 살아서 다 갚게 된다는 늘 하시던 말씀이. ‘우리는 요람과 무덤 사이의 삶이라는 긴 수로를 흔들흔들 떠내려간다<베니스 경구 6>도 친근하지만 가볍지 않은 경고 문구다.

 

<베니스 경구 18>에서 시인은 그러니 친구여, 그저 살며 계속 시를 써라!’하고 조언한다.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도 체험 그대로 쓰지 않았다.”고 했던 괴테는 살며 시를 쓰는 행위를 문자 그대로 실천한 시성이었다. 어떤 형태를 취하건 그의 시는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직설화법과 은유가 교차하여 등장하고 마냥 무겁게 가라앉다가도 한 호흡 숨 쉴 틈을 마련한다. 능숙하게, 동시에 유연하게 독자를 이끄는 시는 때로 노래이고 때로는 잠언이 되어 푯대로 선다.

 

감정의 무수한 갈래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시인의 큰마음을 연과 행, 마침표와 쉼표로 전달해 준 역자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마지막 시는 표제작인 <나를 울게 두오!>. “나를 울게 두오!/ 눈물은 먼지에 생명을 준다오/ 벌써 푸릇푸릇하구나로 맺는 시는 애달픈 눈물을 먼지에 생명을 부여하는 주체로 승격시킨다. 이십 대의 어느 1월에 <파우스트>를 읽었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차가웠던 겨울과 두근거림은 그대로 기억한다. 내년 1월에 <파우스트>를 다시 읽는다. 기다리던 독서로 새로 구입한 책은 몇 해째 정렬한 채 꽂혀있다. 그 전에 시 필사집을 먼저 읽고 쓸 수 있어 기쁘다. 읽고 낭독하고 쓰면서 내 삶에 밀착해 오는 시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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