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으로서의 정치 정치+철학 총서 3
막스 베버 지음, 박상훈 옮김, 최장집 해제 / 후마니타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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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작센 지방의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난 막스 베버는 유구한 섬유 산업 가문의 상속자이자 변호사였던 부친과 프랑스 위그노 출신의 매우 지적인 여성이었던 모친의 보살핌으로 자라납니다. 이 가족은 1869년에 베를린으로 이주를 하게 되는데요. 베버는 1870년, 샤를로텐부르크의 되벨린 사립학교에 입학합니다. 이 시기의 베버는 지루한 수업 강의를 견디지 못해, 괴테의 40여권이나 되는 저작들을 섭렵합니다. 이후 임마누엘 칸트,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등을 탐독하면서 자신을 위한 학문적 기초를 구축하게 됩니다. 또한 1892년에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법학 전공으로 등록하고, 나중에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과 괴팅겐 대학에서도 수학합니다. 전반적으로 그는 사회 정책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요. 1893년부터 1899년까지 베버는 폴란드 노동자들의 독일 내 이민을 반대하는 켐페인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는 189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경제 및 금융학 교수로 일하지만, 1897년 부친의 사망으로 인한 자책감으로 우울증, 초조함, 불면증에 점점 더 취약해지고, 교수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는 여러 요양소들을 전전하면서 1918년까지 교직에 복귀하지 못합니다. 물론 이 시기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50세의 베버는 자원하게 되는데요. 그는 하이델베르크의 육군 병원 조직을 담당하는 예비군 장교로 임명됩니다. 전쟁의 종료 후,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바로 수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의 짧은 정치 이력을 뒤로하고, 1918년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과 뮌헨의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뮌헨에서 사회과학, 경제사, 정치경제학의 학과장을 맡게 되었고, 당시 혼란스런 바이마르 공화국에서의 학자들간의 정치 세미나와 토론 등에 활발히 참여하는데요. 여기에 제1차 대전 이후, 독일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그는 깊은 고민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1917년부터 1919년은 그가 학자인 동시에 정치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고민했으며, 1919년에 그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어머니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이듬해인 1920년 6월 갑자기 걸린 감기 때문에 수업을 취소해야만 했는데요. 그의 병은 곧 심각해졌고, 1920년 6월 14일 뮌헨에서 그는 끝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Politik Als Beruf"로 지난 1919년에 출간되었고, 이 번역본은 2011년 4월 초도 번역, 이후 2023년 5월에 개정1판2쇄로 이어집니다. 이 후마니타스 판에는 최장집 교수의 해제가 실려있습니다.

아마도 위그노인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모양인지 베버는 '칼뱅주의적 사고'에 깊은 감화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바로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소명'은 어떻게 보면 앞선 맥락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국내에 출판된 다른 여타 번역본들 가운데, 소명이 아니라 '직업'으로 번역된 것들도 있긴 한데요. 뒤에 나오는 최장집 교수의 해석처럼, 직업이 아니라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제목이 이 책의 전반적인 논증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에 이 책과 관련된 개인적인 소회는 과거 우연히 읽었던 어떤 기사를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요. 당시 유명한 모 정치인이 베버의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정치 이력과 현재의 한국 정치가 몹시 부끄럽다는 식으로 의견을 내비친 바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그 정치인의 전형적인 수사에 그치더라도 저자인 베버가 말하고자 했던 정치와 정치 권력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누구보다 현재의 정치인들이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관련된 권위와 그를 바탕으로 구축된 행정 체계 자체는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도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전에 베버가 언급한 '카리스마적 리더'에 대한 분석과 심지어 군주정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리더'를 숭상하고 추앙하는 추종자들이 소위 궁정을 이끌었다는 부분은 어느 정도 의미심장한 맥락이라고 여겨지는데요. 바로 이러한 근대 이전의 정치적 환경은 당시에도 다수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수많은 사상가들이 집중한 주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고찰속에 "정치적으로 우세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들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는가"로 이어졌고, 소위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전통적 지배 체제'에서도 효력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저자는 분석해내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헌신하는 보좌 인력과 좀 더 넓게 해석해 볼 수도 있는 '사익'을 위해, 이런 리더들에게 자신의 충성과 그에 따른 봉사를 제공하는 추종자들의 존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정치'와 상당히 대치되는 서술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는 뒤에서 보충 설명하고 있는 최장집 교수의 언급대로, 베버의 다른 저작들과 동일하게 이 논저 역시, 논증의 행위와 구조 자체가 병립되고, 각각의 비교되는 개념들은 모두 '이율배반 antnomy'적 구조를 갖는다는 점을 먼저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현실 정치의 본질 그리고 여기에 대치되는 윤리적인 이상과 의식적인 부분이 서로 대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베버가 현실과 이상, 그리고 사익과 도덕간의 상충이 아니라 체제에서 서로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만의 시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음 2장에서 논의되는 정당에서 미국의 정당이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이해 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베버의 분석은 오늘날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당의 실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베버는 앞선 (진정한) 정치가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논하면서, '대의에 대한 헌신', '대의에 대한 책임'과 (사물과 현상을 분석하는) 객관성에 기반한 정치 권력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는 앞선 정당들의 실체가 자본주의적 이익에 매몰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속한 정치인들 각자는 최소한 '대의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소위 '이율배반적 구조'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으로 파악되는데요. 특히 베버는 정치인들의 '허영심'을 정치 전반에서 제거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런 허영심에 빠진 정치인들 자체는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식으로 논증을 이어가는데요. 근대 이전의 봉건사회로부터 근대화 이후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정치에서의 이 행위자들의 '사익 추구'는 거듭 말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많은 정치적 이상주의자들은 직면한 현실을 애써 무시하고 그저 정치적 이상을 크게 부르짖고 있지만, 베버의 말마따나 이러한 정치적 현실과 이에 기반한 정당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상과 현실은 그만큼 더욱 괴리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나 저는 1장에서 이어지는 논증들 가운데, 민주주의가 법률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여기에 종사하는 잘 교육받은 법률가 집단들이 갖는 함의, 그리고 이들과는 반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언론인들의 존재와 그런 언론인들이 사실상 추구해 마지 않는 '상류 계급으로의 열망'은 현재에까지 비교대입해 볼 수 있는 그의 '실체적 분석'으로까지 이해됩니다. 당시로서도 매우 드문 대학 교육을 거친 법률가 집단이 사회 전반에서 누리는 계급적 견고함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사익과 이상 사이의 균형을 흩트리는 언론인들의 존재는 작금의 현실과 교묘히 부합되는데요. 단순히 언론인들에게 가진 것 이상의 능력을 초월한, 의무를 떠 넘기고자 저런 일방적 분석을 시도한 것은 분명 아닐 겁니다.    

그리고 정치에서의 집단적 이익과 관련되어 있는 정당은 1장 중후반부터 2장까지의 분량에서, 근대 이후의 세계에서 '정당의 출현' 자체는 베버의 말마따나 반쯤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기 정당에 대한 이런 역사적 궤적은 C. 라이트 밀스의 언급대로 정치의 사익화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베버는 1장에서 이미 인간은 '권력과 소위 떨어질 수 없는 존재'로 이해했고, 이러한 관념 자체를 단순히 선악론으로 구분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익화에 있어 베버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내면적 신념 윤리'로 개선될 수 있을지 그것을 고려해 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베버는 현실과 유리된 '도덕주의'에 대해선 분명 경계했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움직이는 정치인들의 존재와 그러한 이행이 더욱 복잡하게 이뤄진 지금의 현대 정치에서는 이런 이상주의적 접근과 비판은 거의 실효성이 없다고 봐야 할 텐데요. 물론 어느 정도 민주주의에 공감한 베버가 공화주의에 기반한 '공익'에 대해 눈을 감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러한 언급이 일절 없는 부분은 단순히 논증에 국한해 살펴봐도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뒤이어 3장에서 '전형적인 권력정치형 인물들'이 내적으로 일순간 붕괴되는 것은 한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봐도 큰 문제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베버의 강조대로 "정치가가 권력을 추구하고 또 권력을 활용해서 헌신하고자 하는 그 대의가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는가는 신념의 문제"라고 보는 것은 한편으론 아쉬운 진술이기도 합니다. 신념은 그것 자체로 중요하지만 앞에 '정치적'이라는 단어가 붙을 때는 그만큼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요. 반대로 '잘못된 신념'에 근거한 전체주의가 어떠한 인류에게 파국을 초래했는지는 충분히 역사가 증명한 바가 있습니다. 앞선 베버의 진술에서, 대의는 아마도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바대로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의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물론 이 대의 앞에 많은 수사가 달릴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적 대의'란 사회를 개선시키고 진보에 이르게 하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분명 반동에 가까운 것은 결코 아닐 겁니다. 따라서 다음 이어지는 "정치와 윤리는 서로 무관한 것일까?"에 우리 모두가 적절한 답을 알고 있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앞선 1장에서 치밀하게 분석되는 정치와 권력, 특히 권력이 그게 무엇이든 간에 폭력을 수반하다는 점에서 정치가 분명 최소한의 윤리적인 기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거의 명확해 보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저자는 자신의 이 논저를 통해, 정치와 그것의 체제에 있어 이상과 현실에 대한 균형적인 감각을 일관되게 강조하기는 했지만, 혹여 정치가 끝도 모를 종교적 자비 관념에 빠져, 현실이 가진 실체를 과도하게 해석할 수 있는 위협도 역시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의 무모성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베버가 말하는 신념 윤리와 더불어 언급되고 있는 '책임 윤리'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는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정당과 그것을 지지하는 모두의 이익 뿐만 아니라, 반대의 신념 체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이익까지 고려해야 하는 점도 체제 유지에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리더가 없는 민주주의'라는 정확한 본질과 이를 과연 대중 투표에 기반한 정치 권력이 모두의 이익은 물론, 혹여 발생할 수 있는 혼란까지 잘 제어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면밀한 감시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물론 베버는 글 후반부에서 소명을 망각하지 않는 어떤 영웅과도 같은 리더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는 영웅적 기질을 가진 리더가 마땅히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출 될 수 있어야만 하겠죠.    

끝으로 베버는 글 후반부에 '대중 투표로 결정된 정치 권력'과 그에 따른 민주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권력이 모두의 합의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점과 사실상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하게 취급해야 된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가까운 과거로부터 '혁명'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그 시대의 인물로서, 자신의 조국이 패전을 통해, 서방 국가로부터 제재를 받은 상황에서 그가 맞이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가 어떠한 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성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논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저로서는 민주주의가 변호사와 법관들과 깊이 관련있다고 언급하는 부분과 정당이 권력의 한 방편으로서, 정치인들의 '사익 추구'에 가깝다고 보는 분석은 실로 기꺼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베버가 정치적 현실주의에 가까운 시각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하고, 신념에 대한 문제와 더 나아가 대의에 대한 중요성을 지나치지 않은 것을 보면 단순히 대립되는 각각의 '인식'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정치에서 정치인들이 왜 대의와 사익 추구에 현실적 균형을 찾아야 하는지, 이것의 본질이 바로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상 보다 건전한 정치인들과 정치 전반이 우리에게 매우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이 시대의 불행한 자화상이 아닐까 글 말미에서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우리가 희생을 통해, 구축한 의외 민주주의와 선출 민주제의 본질 자체에서 그만큼 '대의'와 '최소한의 윤리적 제한'을 많은 정치인들이 이를 '소명'하는 것이 매우 시급한 시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저 결과론적인 양태일 수도 있지만 베버가 이렇게 정치의 본질에 있어 '자격이 없는 자들의 정치'가 독일에서 어떻게 파국을 초래했는지 우리는 이를 확실히 기억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약간 논외이지만, 1차 대전 이후 패전의 책임을 진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 글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에서의 승자의 권리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폭력/강권력이라는 관념 없이 사회가 조직되었더라면 ‘국가‘라는 개념은 진즉에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말 그대로 ‘무정부 상태‘Anachie로 규정할 만한 상황이 벌써 출현했을 것이다.

물적 행정 수단의 전부 혹은 일부가, 통치자와 종속관계를 맺은 행정 관리의 수중에 있는 정치 결사체를 우리는 ‘신분제적으로‘ 운영된다고 말할 수 있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산가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기 생활의 경제적 ‘안정성‘을 그의 인생 설계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을 안다.

이런 이유에서 변호사는 직업 정치가로서는 다른 직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역할, 때로는 지배적인 역할을 해올 수 있었다.

정당정치는 극히 단순화해 말하자면 이해 당자자에 의해 정치가 운영된다는 것을 뜻한다.

구체제하에서 국가 내지는 정당의 지배 권력과 언론의 유착 관계가 저널리즘의 질적 수준에 엄청난 해를 끼쳤다는 사실은 별도로 다룰 문제이다.

의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는 단지 투표에 참여하고 당을 배반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직업 정치가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자신이 어떤 자질을 갖춰야 이 권력을 제대로 다루고, 그래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임성을 제대로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객관성의 결여는 그로 하여금 진정한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화려한 외관만을 추구하게 한다.

전형적인 권력정치형 인물들이 내적으로 일순간 붕괴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웅장하지만 내용은 없는 자태의 이면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한지를 목격한 바 있다.

정치가가 권력을 추구하고 또 권력을 활용해서 헌신하고자 하는 그 대의가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는가는 신념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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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 우크라이나전쟁, 그리고 평화가 당연하지 않은 미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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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저자인 이진우 교수는 1956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연세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합니다. 이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9년부터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는데요. 그는 2005년에 국무총리실산하 인문정책위원을 지냈고, 한국니체학회 회장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2010년부터는 포항공과대학의 인문사회과학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고, 같은 대학의 인문사회과학부 학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논저들 가운데, '한국 인문학의 서양 콤플렉스'와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 등을 접했는데요. 저자에 대해선 학자로서, 꽤나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그는 요즘 여러 방송 강의에도 출연해 대중들을 위한 철학 강의에도 매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지난 22년 7월 출간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이진우 교수와 같은 정치철학자가 현실 정치나 왜곡된 정치 상황에 대해 소신껏 말을 해야 하는가, 혹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양심의 문제로 국한해야 되는지, 아마도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일찍이 막스 베버가 깊이 탐구한 정치철학을 그저 학문의 한 분야 정도로 취급해야 되는지 아니면 현실 정치와 우리가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을 위해, 다각도로 연구하는 실질적인 학문이 되어야 하는지는 현실 상황과 맞물려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요. 저는 학자들이 스스로 갖고 있는 정치적 지향을 차치하고 그저 기계적 중립을 외피로 두르는 것이 과연 옳은 태도인가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진우 교수의 이 책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생각할 꺼리들을 안겨준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우크라이나에 대한 푸틴의 야욕 내지는 저자가 분석한 러시아의 노골적인 '유라시아주의'를 비평하기에 앞서, 논증 가운데 한 가지 흥미로웠던 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존과는 다른 해석이었습니다. 즉 지금의 전통적 연대기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관점과 함께, "2차 대전은 1930년대 초 중국에서 시작되어 1945년 이후 10년 만에 중국, 동남아시아, 동유럽 및 중동에서 끝났다"고 저자는 이처럼 단언하고 있었는데요. 뒤이어 중국의 경제적 대두와 미국의 전세계 패권에 도전하는 '강고한 민족주의적 체제 중국'의 시작은 기존과는 상이한 '1979년'으로 보고 있었는데요. 이 시기의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이란 팔레비 왕조의 붕괴, 독일과 일본의 변화 및 미국 주도 아래의 서구 통합 등이 서로 맞물려, 소위 '중국의 시간'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저자는 보는 듯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 pivot to Asia'라는 정치적 선언은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과 더불어 마련된 중국의 국력이 지속적으로 증대됨에 따라, 세계의 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기도 할 텐데요. 바로 오늘날 중국의 토대가 되었던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블라드미르 푸틴에게 어떠한 의미가 되었는지 고찰해 보는 것이 아마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한적인 군사작전'이 시행된 그 이면의 감춰진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저자의 이 책은 러시아의 푸틴이 서방 세계와 이론과 현실적인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분리되고자 하는 의도를 차분히 분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푸틴이 강조하는 '유라시아주의'는 바로 그런 맥락으로 읽혔습니다. 유럽인이 아닌 러시아인, 아시아인이 아닌 러시아인이라는 관념은 자신들을 유럽이 아닌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고, 이러한 질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우크라이나를 응징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즉,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적 관계를 크게 왜곡한 푸틴의 그 문제의 논문도 그렇거니와,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러시아인들이 허락했기에 가능했다는 식의 서사로도 왜곡될 수 있습니다. 구소련이 미국과 유럽에 의해 붕괴되었기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떨어져 나갔다는 일방적인 인식론에 러시아인들의 이성이 마비될 수도 있는 것인데요. 물론 러시아인들 대부분이 이런 민족적 광기에 휩싸여 푸틴에게 전쟁을 요구한 것은 분명 아닐 겁니다. '마더 러시아'라는 허황된 꿈과 자신의 지속가능한 정치적 이익에 함몰된 푸틴이 바로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인데요. 일전에 '푸틴 치하의 러시아'라고 러시아 정치를 분석한 독일 언론인인 후베르트 자이펠의 인식은 이처럼 명확했다고 여겨집니다.

저자의 여러 논증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주의 깊게 봤던 부분은 "자유주의 대 민족주의"라는 흡사 대결 구도 논리였습니다. 이것을 무슨 신념처럼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민족주의적 오판 가능성을 여기에 대입해 보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는데요.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시진핑에게 의견을 구했던 것은 좀 더 다른 각도로 살펴보면, 이들의 정치적 지향과 국가 운영 논리가 서로 유사하다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는데요. 단순히 핵보유국과 비핵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하고 있는 푸틴을 고려해 본다면, 이는 단순한 대결 구도가 아니라 정말 전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몰고 갈 수도 있는 현실의 심각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전쟁의 후과가 결코 승리나 패전 따위가 아님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류의 궤멸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민족주의는 바로 이점을 저울질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큰 문제로 여겨집니다. 많은 정치철학자들이 강조하는 정치가 추구하는 것이 고도의 이성적 행위에 기반한 어떤 결과물이라면, 특히 국제정치에서는 이렇게 비이성적이고 극단적인 대결과 파국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세계화 수준의 개방적 환경이 일차적인 평화 조성의 만능 키가 될 수 없다는 점도 거의 명확해 보입니다.

끝으로 저자가 어느 정도 논증에서 인정하는 바와 같이, 자유주의와 그것과 버금가는 상대적 도덕주의가 결합되었을 때, 전세계 평화와 질서에 상당히 해가 될 수 있다는 맥락의 이해는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는 우리에게 충분히 중요하고 사활적인 문제이지만 일부 권위주의 국가들의 현실 정치를 어떻게 부분적 자유화 내지는 정치 권력의 교체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를 모색하는 것 자체가 파국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단일한 시장 전체주의를 기반으로 물건이나 사고팔고 경제 금융 거래만 제한없이 이뤄지는 '극한의 자유화' 또한 지속적인 평화의 조건이 될 수 없는 점도 거의 명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신자유주의처럼 어디에서든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그것대로 기업의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는 이성적 해결의 원칙과도 근본적으로 대치되는 것인데요. 바로 이러한 구조 속에 정치철학이 어떤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오바니 아리기의 의견대로 중국이나 러시아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는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한 많은 국가들에게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푸틴 치하의 러시아'가 인류를 절멸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에, 이 유라시아주의 국가에 대한 면밀한 제어와 통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이 비상한 정치적 해법을 도출해 낼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극히 회의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이것은 저자의 비교처럼 칸트와 헤겔을 넘어서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이 시급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인류가 절멸에 이르는 것을 그저 바라 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 오늘날 세계 질서를 만든 미국과 서구 유럽에 대한 비판도 이 책에 담겨 있어, 자유민주주의가 갖는 진정한 함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언급한 '도덕적 상대주의'라는 의미는 꽤나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끝나든지 ‘지정학적 대분기‘를 야기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유럽 대륙의 중앙부에서 나치독일과 소비에트러시아는 약 1,400만 명의 사람을 살육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가장 커다란 위협은 중국과 러시아다.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평화를 만든다. 이는 강력한 국가가 없었다면 살인과 가난, 무지가 일상생활의 규칙처럼 되었을 것이라는 홉스의 입장을 반영한다.

칸트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영원한 평화‘는 이성에 의해 자유가 완전히 실현된 상태다.

우리는 지금 영원한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영원한 평화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가 전통적으로 중우정치와 민중의 독재를 함축하는 까닭에 칸트는 민주주의보다는 공화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공화주의에 기반한 ‘시민법 ius civitratis‘, 국가 간 민주적 관계를 규정한 ‘국제법 ius gentium‘, 그리고 환대와 우호에 기반한 ‘세계 시민법 ius cosmopoliticum‘은 영원한 평화의 조건이며 기반이다.

프랑스대혁명을 계기로 우리는 오늘날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류의 역사 전체가 자유의 이념을 실현하는 과정이라면, 이러한 과정을 진행하는 주체는 "세계정신"이다.

칸트가 영원한 평화를 제창하지만 전쟁을 부정하지 않는 것처럼, 헤겔은 전쟁의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평화가 역사의 목적이라는 점을 망각하지 않는다.

전쟁의 폭력적 행위마저 어떻게 해서든 도덕적으로 통제하려는 이상주의의 관점 역시 전쟁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전쟁의 위험이 긴박한 상황에서 런던과 베를린, 그리고 베를린과 모스크바 사이에 소위 ‘투디키데스의 함정‘이라는 구조적 역학이 작용했을 수 있다.

유럽연합과 나토의 확장 자체가 평화 지역의 확장이라는 생각은 자유민주주의의 오만이다.

자유주의 국가들이 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해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를 제공한다고 보는 것이 바로 도덕적 보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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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하우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0
니콜 크라우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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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크라우스는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계 유대인인 어머니와 미국계 유대인인 아버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외조부모는 독일과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나중에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고, 친조부모는 각기 헝가리와 벨로루시 태생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각각의 지명들은 2005년에 출판된 '사랑의 역사'에서 그 배경이 됩니다. 크라우스는 1992년에 스탠포드 대학에 등록했고, 그 해 가을 그곳에서 조셉 브로드스키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와 브로드스키는 근 3년 동안 교류를 지속합니다. 이후 1996년에는 마샬 장학금을 받고 옥스포드의 서머빌 칼리지에서 석사 과정에 등록하고, 미국 예술가인 조셉 코넬에 대한 논문을 작성합니다. 그녀에게 큰 명성을 안겨다 준 4편의 작품은 '남자가 방으로 들어간다','사랑의 역사'.'그레이트 하우스','포레스트 다크'로 유대인들의 역사와 그들의 정체성 문제 등을 다루면서, 특히 언어로 매개된 기억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통 그녀를 평가할 때, 포스트모던 문학으로 자주 그녀의 작품 세계를 한정하기도 하는데요. 다만, 여기에서 밝히고 싶은 부분은 이 '유대인의 정체성' 이라는 부분 역시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문학적 주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Great House"로 지난 201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1년 7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서사 형태는 4명의 화자가 서로 두번씩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각자가 지난 삶에서 체화된 경험과 그런 기억이 긴 나레이션을 통해, 온전히 재발견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 부분이 이 작품의 백미이기도 합니다. 특히, 다니엘 바스키라는 인물과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책상'은 서로 맞물려, 이와 연관된 인물들의 숨겨진 배경이 곳곳에 드러나 극은 마치 음악의 절정처럼 몹시 요동치게 됩니다. 전자의 다니엘 바스키는 태생이 유대인으로 직접적으로 두 명의 인물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비극적인 실종과 더불어, 후자의 책상은 30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몇 명의 소유주와 상이한 지역을 거치게 됩니다. 여기서 책상은 일종의 '상실의 비극'을 은연중에 내포합니다. 즉 책상의 '전해짐과 상실'은 극에 등장하는 소설가인 로테 버그와 시인인 나디아의 뜻하지 않은 불행을 초래하는데요. 또한 책상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중부 유럽 유대인의 역사적 비극, 그리고 당사자인 '미스터 와이즈'의 가족사는 분명 우리 인류가 기억해야 될 상흔이기도 합니다. 작중 어떤 화자의 독백에서, "유대인은 항상 죽음과 가깝다.","유대인에게 죽음의 의미는 기독교와 불교와는 상이하게 다르다"라는 표현은 인간의 전체 역사에서 이들이 얼마나 거짓된 모함과 편견으로 여타 다른 민족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왔는지 이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어떤 한 민족이 마땅히 누려야 될 삶의 본질 그 자체가 아니라, 항상 음습한 마음으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맥락의 아픈 서사는 저의 마음을 절로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한때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했던 자신의 유년 시절과 당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소재한 '가족의 집'에 불현듯 나치 독일의 재앙이 들이닥쳤던 그 날의 기억은 마땅히 안온함으로 채워져야만 했던 어린 와이즈의 삶을 그대로 산산히 부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성년이 되어서도 필생의 과업으로 지난날 조부와 아버지가 구축한 가족의 세간살이 즉, 유산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게 되는데요. 이런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자식들은 이렇게 '인간의 정'을 상실한 아버지와 결코 가까워질 수 없게 됩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유일한 자식들인 요아브와 레아 남매의 억눌리고 주눅든 성격, 이 뿐만 아니라 요아브의 여자친구이자 4명의 화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한, 이사벨이 이런 와이즈을 평범한 사람의 감각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는데요. 이런 자신의 가족사를 쉽게 털어놓을 없었던 요아브를 그녀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데요. 요아브와 잠시 떨어졌던 이사벨이 결국 다시 그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진지한 고백은 그럼에도 이 둘 사이에 놓여진 사랑의 끈이 그만큼 굳건했다고 봐야 할 텐데요. 이에 저자는 한편으로 지난날 비극적인 유대인의 가족사를 치유하는데 있어 중요한 힘은 서로를 진정 이해하게 만드는 사랑이며, 이것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에 의한 치유는 굴절된 기억, 몸에 새겨진 슬픔과 상처, 그리고 인간성을 상실하는 증오를 역사의 진정한 치유와 함께, 중요한 회복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극에서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는 다니엘 바스키는 칠레 출신의 유대인으로 자신의 모국이 곧 중대한 위기를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익히 알려진 바대로 CIA와 시카고 보이스가 협력한 피노체트의 불법적인 군부 쿠데타 획책이었습니다. 바스키는 결국 극에서 몇번이나 중요하게 언급되지만 결국 피노체트 군에 끌려가 행방불명 됩니다. 칠레가 아닌 미국의 폐쇄적 이익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쿠데타에 나섰던 피노체트는 훗날 영국에서 등 수술을 받다가 당국에 체포되었다는 짤막한 기사를 통해, 이날의 비극이 얼마나 보잘것 없이 희화화 될 수밖에 없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는데요. 작가인 크라우스가 신변의 비밀을 안고 있는 바스키의 실종을 피노체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점은 유대인으로서 과거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분명 대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극중에 하인리히 힘러가 짤막하게 언급되는 부분은 그대로 의미심장하다고 느껴지는데요, 또한 다른 화자들의 서사를 통해, 피노체트가 벌인 극단적인 군사 행동에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바스키의 안위의 문제와 결부되어, 당시 칠레의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하는 것을 보면 칠레 사태가 그저 한 자락의 뉴스꺼리만은 아닌 것으로 이해됩니다. 작가인 크라우스 본인이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적 운명 자체에 있어, 이들 민족이 역사의 부침에 의해 산산히 흩어지는 것을 도식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닐 겁니다. 역사가 유대인의 궤멸을 바란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아닌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느끼기에도 이들이 겪은 지난날 역사의 고난은 참으로 입에 담기 어려운 고통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말입니다.   

또한 작게는 이 '책상을 둘러싼 복잡한 기억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이것의 여파가 때에 따라 화자들과 연관된 인물들의 말 못할 비밀과 면밀히 연계됩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소설가의 남편이자 화자 중 한 사람인 아서 벤더가 아내가 죽음으로써 드러난 충격적인 '비밀'이 이 부부의 삶에서 떠난 그 책상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를 맞게 되고, "과연 아내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라는 자포자기한 감정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예전의 삶을 숨기고 이중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연유에는 바로 2차 대전 당시의 '뉘른베르크에서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증오의 전쟁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고, 동시에 처절한 현장에 버려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마음의 골에 아로새기게 됩니다. 단순히 신문 기사나 티비 뉴스에서나 등장하는 전쟁은 몸소 체험해 보지 않는 이상, 이것의 파멸적 의미를 누구든 이해하기 힘든 것인데요. 바로 이 책상의 복잡한 의미가 앞서 제가 설명한 '비극적인 상실의 의미'를 폭력적으로 내포하게 된 연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나치에 의한 유대인들의 학살과 그로 인한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파괴와 절멸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책상과 매개되어 있고, 이것이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책상을 '상실한' 화자들의 불안한 삶과 더 나아가 예기치 않는 불행으로까지 귀결됩니다. 그저 일상에서 봄직한 사소한 불행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이들의 삶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요. 소설가 아내의 굴곡진 인생과 그것을 수동적으로 대면한 어떤 화자, 자신의 삶에 오롯이 서지 못한 인물들의 서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들이 만만치 않다는 점은 마치 우리의 불안한 삶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그런 불확실성 말입니다. 분명 이 책상의 주인이기도 했던 다니엘 바스키, 그의 생사불명과 존재성을 두고 얽히게 되는 숱한 오해의 문제들은 화자 한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파생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의 실종과 갈 곳을 잃은 책상의 존재는 단순히 오고감의 단절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극의 서사를 이끄는 이 축은 결국 4명의 화자와 깊이 연관되어 있고, 그러면서 이들 각자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것은 진실의 대면이거나, 과거의 드러남이거나, 혹은 추악한 비밀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작가는 이 노련한 작품을 쓰기 위해, 어느 정도 자신의 외가와 친가의 불행한 가족사를 참고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현재 이런 유대인들이 정착한 이스라엘이 어떤 의미로 '불완전한 정착지'라는 점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의 불행은 근본적으로 그 끝을 맞이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뭐 이것을 단순히 역사에서 예정된 '유대인의 고난'쯤으로 가볍게 치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다른 누군가에게 쉽게 전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증오'이며, 이것을 지워내고 희석시키는 것에 필요한 요소는 무엇보다 '더할 나위 없는 큰 사랑'과 이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어쩌면 인류에게 사랑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는 자기 파괴적인 폭력과 증오를 제어하고 제한하는 역할이라고도 읽힙니다. 그런 의미에서 극중 요아브와 그를 이해하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이사벨의 사랑과 그 결실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울림을 안겨준다고 여겨집니다. 이와 상반된 결말을 맞이한 인물들인 로테 버그와 나디아의 사뭇 의미심장한 파국은 극의 중요한 문법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거의 나무랄 데 없는 번역과 그에 따른 밀도 높은 서사의 울림 자체는 이 작품의 크나큰 장점으로 여겨졌는데요. 여기에 여러 의미로 쓰인 상징적 장치들도 충분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꽤나 훌륭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처음엔 듣지 못한 어떤 배경음 같은 것. 혹은 아침에 일어날 때, 잠에서 빠져나와 깨어 있는 세계로 넘어오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소리가 들린 적도 있어요.

무슨 일이 생겨서 지금까지 자기가 읽은 모든 문학 작품이 머릿속에서 지워진다면, 머리와 영혼에서 지워진다면 어떤 사람이 될지 한번 생각해 보라고요.

너의 눈이나 살짝 기울어진 입꼬리에 무언가가, 고통, 아니 정확히 고통이라곤 할 수 없고,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아내는 자신의 자유에 대해 이런저런 요구를 하지 말 것을 분명히 했고, 내 쪽에서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와이즈 씨는 1944년의 그날 밤 게슈타포가 부모님을 체포해 갈 당시, 부다페스트의 아버지 서재에 있던 물건들을 되찾으려고 애썼고, 자신의 서재에 있는 가구나 물건들은 모두 그렇게 되찾아 온 것들이었다.

그때, 왜 바로 그 순간에 움슐라그 광장에 모인 유대인들 사진이 떠올랐는지 생각났다. 그러니까, 링겐블룸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던 바로 그 시기에, 게슈타포가 추방 혹은 처형을 당한 유대인의 집에서 약탈해 온 가구나 가재도구를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한 유대인 사원이나 공장 사진들도 함께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한때는 닮은 점이 있었지만, 삶에서 겪어야 했던 그 모든 일 때문에 뒤틀려서, 이젠 알아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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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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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릴본에서 태어나 인근인 이베토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도시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카페와 식료품점을 운영했는데요. 그녀는 루앙 대학과 보르도 대학에서 공부하고 교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1970년대 초에 그녀는 오트 사부아 보네빌의 고등학교와 아네씨르비유의 이비르 대학에서 가르치다, 그후 국립 원격 교육 센터 Center national d'enseignement à distance 에서 23년간 근무합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그녀는 특유의 자전적 소설로 프랑스 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2022년 그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자, 프랑스 대통령인 엠마뉘엘 마크롱은 특히 "여성과 잊혀진 사람들의 자유의 목소리"라는 헌사를 보냅니다. 다만, 그녀는 정치적 행동주의라는 측면에서 201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장 뤽 멜라숑을 지지했으며, 거의 공개적으로 반이슬라엘 운동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노벨상 수상 발표 이후 에르노는 이란 정부에 맞서는 민중 봉기에 연대를 보내고, 이란의 '히잡 의무법'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La Place"로 지난 1981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2년 4월 초도 번역이 이뤄졌습니다.

아르노의 이 소설 역시, 그녀 스스로의 자전적 기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세상을 떠난 그녀의 부친을 배경으로 간단하지 않은 가족사를 그리고 있었는데요. 우선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라는 주제로 세상에는 때론 아버지를 경멸하고 멸시하는 딸들이 있는 반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겁니다. 모성애 대한 지극하고 일관된 찬사와 입장에 반해, 부성에 대한 태도 혹은 그런 평가는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양가적 감정으로 다뤄지고 있기도 한 데요. 저는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1936년 이후 나치 독일의 프랑스 강점과 이후 1944년의 노르망디 지역에서 연합군 주도의 대규모 상륙 작전이 벌어지면서 발생한 그 혼란의 시기에 처자식을 건사한 '한 아버지'의 노력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작중의 그녀가 마르셀 프루스트와 시몬 보봐르를 알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해 일반적으로 어떠한 감정을 가졌을지는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우리들의 부모님을 빗대어 보면, 자신에게 향한 교육과 문명의 혜택이 공짜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아버지를 단순히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혹은 더 나아가 아버지, 당신의 삶을 통해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충분히 공감을 받을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녀가 말하는 "기초 교육 내지는 일반적인 교양과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의 열등감이 과연 어떤 식으로 이해되어야 하는지는 거의 자명하다고 여겨집니다. 자신의 그런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항상 노력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단순히 가엽다거나 깊은 감정의 숙고가 배제된 그저 안쓰럽다는 태도로 일관해서는 어떤 한 사람의 삶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물론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이해해보고 그의 결핍에 대해 가늠해 보려는 노력이 아주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평범한 딸이 바라보는 아버지라는 모습 자체는 단순히 이성적인 측면에서, 남성이 여성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법이다는 진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물론 훌륭한 고등 교육을 받은 것과 책을 항시 손에 놓지 않는 딸은 말 그대로 평범한 예는 아닐 겁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가족 간의 소소한 갈등, 그럼에도 어머니와 아버지 간의 살뜰한 애정과 서로를 향한 사랑은 충분히 감동적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삶이 어떻든 간에, 딸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아버지의 삶이 어느 정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매번 숭고하게 여겨지는 모성애와 비교될 만한 주제로도 읽혔는데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탁월한 교양을 쌓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사위와도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고, 딸이 좋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매번 제대로 쉬지도 못했으며, 무엇보다 노르망디 지역에서 나치 독일군이 초래한 혼란스런 정치적 상황에서 가족을 무사히 건사한 가장의 존재는 '어떤 자연의 혜택' 정도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에르노 자신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기 위해 온 사력을 다한다는 식으로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치열한 삶이 객관화 되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딸과 아버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자기 변명에 숨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들었던 불편한 감정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질적 필요에 얽매였던 삶을 그리려고 할 때, 내겐 예술의 편을 들 권리도, 무언가 <굉장히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인> 것을 만들 권리도 없는 것이다.

못된 성질은 그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 가난을 견뎌 내게 하고 자신이 사내임을 믿게 해주는 힘이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웃음을 억눌렀다. 나는 커가면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성적인 암시들을 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왠지 좁은 길을 아슬아슬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천하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과 이런 작업에 수반되는 소외에 대한 고발 사이에 낀 좁은 길 말이다.

아버지는 뭔가 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는 소심해지고 뻣뻣이 굳어져서 상대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요컨대 똑똑하게 처진했다.

우리 식구들은 서로 쥐어짜는 어저로 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화법을 알지 못했다. 정중한 어조는 외부인들에게만 사용했다.

식구 대부분이 고학력자이며 대화 중에 끊임없이 <아이러니>를 구사하는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남자가 어떻게 이 순박한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서 즐거울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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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27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작품 중 그래도 덜 충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베터라이프 2024-04-27 16:14   좋아요 2 | URL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삶을 투영해가며 쓴 일종의 자기 고백이 어떨 때는 심하게 날 것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 그나마 이 작품은 술술 잘 읽히기는 했습니다. ^^
 
21세기의 승자
자크 아탈리 지음, 유재천 옮김 / 다섯수레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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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자크 아탈리는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 이론가이자 작가로, 이외에 정치 고문과 정부의 고위 공무원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43년 11월 11, 당시 프랑스 속령이었던 알제리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인 시몬 아탈리는 오로지 독학으로 알제에서 향수 제조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는데요. 이런 그의 가족은 알제리 독립 전쟁이 시작된 지 2년 후인 1956년에 부친의 결정으로 말미암아 가족이 모두 파리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후 아탈리는 파리 16구의 고등학교인 리세 쟝송 데 세이 (Lycée Janson-de-Sailly) 에서 수학합니다. 뒤이어 1966년에는 에꼴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에꼴 데민, 파리 정치 연구소 (Sciences Po), 국립행정부 (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를 졸업합니다. 2년 뒤인, 1968년에 니에브르에서 인턴쉽을 하던 중에 당시 학과장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을 만나게 되는데요. 미테랑은 모두가 알다시피 프랑스 제21대 대통령이었습니다. 아탈리는 결국 1972년에 프랑스 유수의 그랑제콜 중 한 곳인, 파리 도팽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전체 이력 가운데, 크게 두 가지 이력으로 분류해 볼 수 있을 텐데요. 미테랑 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을 비롯, 내각의 특별 고문을 수락해 여러모로 조력을 한 경력과 다른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이력은 영국 런던에 있는 유럽부흥개발은행 (EBRD)를 설립하고 초대 총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아탈리는 냉전 전후로 유럽에서 경제 정책과 각 정부의 조언자로 자리매김하고, 경제학 관료로서 활발한 이력을 쌓게 됩니다. 더욱이 그는 1969년부터 2023년까지 54년동안 총 86권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그의 노력을 인정해 2009년, 미국의 국제 외교 잡지인 포린 폴리시 Foreign Policy)는 그를 세계 100대 '글로벌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글은 원제, "Lignes D'Horizon"으로 지난 199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1992년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현재 번역된 이 책은 절판된 상황입니다.

우연히 제게 발견된 아탈리의 이 오래된 논저는, 모 헌책방의 책들 사이에서 먼지만 먹고 있던 것을 힙겹게 찾아낸 것인데요. 이런 아탈리의 논저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일독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처음 읽었던 글은 '위기 그리고 그 이후'인데요.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책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전에 대충 읽다 접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역자 역시 꽤나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인데요. 과거에 KBS 이사장을 역임했던 유재천 교수입니다.

자크 아탈리의 이 책이 쓰여진 시기를 고려해 본다면, 그가 21세기를 준비하며 예측한 내용들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가 주시하는 21세기 국제 정치 및 세력의 동향 가운데, 일본이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정치경제적 배후지로 두고,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상반되게 중국과 관련해서는 "만약 중국이 세계 경제와 시장 속으로 완전히 통합되기만 한다면, 자신의 예측이 대부분 뒤집혀 질 수 있다"고 언급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비롯 인도와 중동은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단언하기에 이릅니다. 사실 중국의 개혁 개방을 논하기에 앞서,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과 그에 따른 산업 개편에서 중국이 다국적 기업들의 현지 공장 역할을 하게 된 것이 그야말로 지금의 경제 성장의 원류가 된 것인데요. 2008년, 뉴욕 발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워싱턴과 런던이 중국의 이 정치경제적 대두를 과연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지 매우 궁금한데요. 일전에 지오바니 아리기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들 서구 엘리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만 자크 아탈리 역시, 이런 그의 예측이 빗나간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지 마찬가지로 매우 궁금합니다.

글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1장 중반부터, 저자는 앞으로의 세계는 '폭력을 돈으로 조절하고 통제하는 세계'가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만큼 시장의 존재는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 하에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미국과 서구 유럽 국가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논법이기도 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국제 정치 무대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여론을 주도하는 등의 '선도국'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견 경제력과 군사력, 즉 양자 간의 균형 있는 투사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그리 판단하고 있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한계는 명확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욱이 앞으로는 미국 경제의 전반적인 위기는 세계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미국 경제의 건전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아탈리는 간곡히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1980년대의 미국 시민들이 일본에서 유입된 자금으로 '신용 카드 소비'라는 무절제한 신용 생활을 했으며, 이러한 측면의 서술은 훗날 2000년대 초중반, 중국이 미국 국채에 막대한 투자를 벌임으로써,미국 시민들이 마찬가지로 신용 생활을 반복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자크 아탈리가 강조하는 것은 '시장과 민주주의의 합치'였습니다. 이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대등한 관계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가 같은 유럽인의 관점에서 앞으로 동유럽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점과 모든 지역에서 군사적 기술의 발전으로 단순한 물리적 충돌을 떠나, 각 지역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기에 무엇보다 권역 간의 힘의 분리 내지는 본질적인 권력의 분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비판적 분석대로, "시장 만으로는 산업을 일으킬 수 없고, 건강과 교육 제도라는 기본적인 사회구조를 세울 수도 없고, 이런 시장만 가지고서는 원자재를 가지고 이윤을 낼 수 없다"는 진술은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민족주의 국가들이 더 나은 국가 체제를 위해, 보다 큰 노력을 기울였던 것처럼, 시장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확대는 그만큼 세계 평화(말 그대로 거창한 담론이긴 하지만)의 요구는 이론과 더 나아가 머릿속의 상상에 끝나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직접적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논법을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민주주의적 가치와 그런 제도를 구축한 국가들이 핵무기와 화학 무기를 동원한 인류 절멸의 전쟁을 쉽게 용인하기란 그만큼 어려울 것이라 여겨집니다.

끝으로 콜린 크라우치의 경고와도 일맥상통한 '전체주의의 잔재'가 유럽에 여전하다는 저자의 우려는 단순한 억측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또한 가난한 국가에게서 민주주의가 굳건히 뿌리 내리기 어렵다는 것은 앞으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처한, '뿌리 깊은 빈곤의 굴레'는 이제부터라도 북반구의 선진국들이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현재 유럽에서 불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공포증", "인종차별주의라는 망령"이 다시금 지구를 떠돌고 있다는 경고 역시 우리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특히 인종차별주의를 기반으로 극단주의 세력이 정치 무대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 이 현실은 그만큼 두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시장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 시대의 요청"은 어떠한 진정성에 기반해야 하는지 이처럼 명확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선험적이고 무엇보다 선명한 요구는 모두의 경제적 안정과 그런 체제가 항유하는 가치에 기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말로만 내뱉는 것 만으로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크게 의미는 없겠지만 96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종교에, 다음에는 군사력에 좌우됐던 이전의 질서와는 달리, 새질서는 주로 경제력에 의존하여 이 폭력을 통제할 것이다.

확실히 경제적 성장과 사회적 정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하다.

이러한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는 합치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 형태를 파괴해 버릴 정도로 위협적인 적대관계를 줄이기 위해 인간은 서열을 존중하는 조직을 스스로 만들고, 그 조직의 우두머리에게 이같은 폭력을 조정하거나 행사할 권력을 부여했다.

만약 미국의 경제적 쇠퇴가 현실로 굳어진다면 유럽은 고통받게 될 것이다.

어쨋든 다음 세계경제의 중심지가 되고자 하는 모든 후보지가 갖추어야만 할 중요한 조건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이 그같은 조건을 갖추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일본이 과연 전세계 인류를 포용할 만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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