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문 2024.겨울 - 124호
시와산문사 편집부 지음 / 시와산문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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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문 (계간) : 겨울호 [2024] 통권 124

북클립 서평단을 통해 제공 받은 책입니다.

 

 

계간 시와산문 겨울호가 발행 되었습니다. <계간 시와산문>은 한국문학 110년의 축복된 역사와 더불어서 시와 산문 이라는 전통있는 잡지로 30주년에서 다루는 멋진 글의 문학적 향연이 펼쳐집니다. 추운 겨울과 갑자기 날아 들어온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이 무거운 아침입니다. 시와 산문 문학이 주는 인간의 삶에 대해 사유해 보기 좋은 책입니다.

 

 

 

최인훈 소설에서 나타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파편처럼 쪼개지고 흩어진 가족 관계를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분열된 시대의 인간 소외를 은유하는 모나드로서 자아를 안정시킬 만한 시원적인 삶의 총체성을 잃어버린다는 내용과 이청춘 소설에서 나타는 가족 관계의 근원은 현대 소설과 가족이라는 증후라는 기획특집의 글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현대소설에서 사회적 지각 변동 및 가치 붕괴로 인한 상실된 존재의 총체성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매개하는 존재는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모험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로 되는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 원형적 공동체, 즉 고향, 가족에로의 회귀로 귀결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현대소설에서 가족이라는 모티프가 의미 구조와 서사 전개의 항수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의 외연적 총체성과 주인공의 내면적 총체성의 붕괴 상태를 소설의 서사 구조로 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보다 더한 나였기에

내 존재 이유가 되었어

절망이 문턱을 넘어올 때

작지만 단단한 네가 내 곁에 있었지

 

(중략)

 

잘 견디어 낸 뒤에 얻은 평안은

잊힐 수 없는 기억 위에

새로운 성을 쌓게 하지

넘치지 않아서

오히려 어떠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작지만 단단한 너와 나의 성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서서

이젠 평온히 마주 보고 있을 수 있지

서로에게 소중한 버팀목이 되어

 

우리는 그렇게 닮아간다_ 조경옥 시인의 시

 

 


 

단편소설에는 반가운 작가 친애하는 동무들, 트로피 헌터, 다시100병동으로 알려진 노은희 작가의 한양빌라가 시와 산문에 실려 있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그 중 맨 꼭대기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삶을 잇는 백사마을은 서울에서 보증금이 없는 유일한 동네입니다. 백사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사연도 가지가지 누구 하나 다른 사람의 일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촌스러운 항양 빌라 아래 한양 빌리지라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202호 시나리오 작가는 한양빌라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원고에 옮겨 담고 있습니다. 달동네는 이제 많이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도시의 산업화가 계속되고 고층 빌딩과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101호 청년은 길고양이 밥을 챙기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고시락을 불평 없이 먹고 있는 모습 등 풍경속에 가려진 저마다의 아픔과 눈물, 한숨과 시름을 한편의 작품으로 남겨 기억하려고 한 <한양빌라>의 작품입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언어를 통해 감동하고 사랑하며 분노하고 또 다툰다 라고 했습니다. 문학은 언어를 예술적 표현의 제재로 삼아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인간과 사회를 진실하게 연결해 주는 좋은 수단입니다. 시와 산문을 통해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치유하는 글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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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왕의 방패 - 제16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1
이마무라 쇼고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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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왕의 방패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성을 쌓으려는 새왕. 어떤 방어도 깨트리는 총을 만들려는 포선.

 

오랜만에 독자가 좋아하는 벽돌책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최고의 방패와 최강의 창을 만드는 두 천재 장인의 대결을 그린 장편소설 <새왕의 방패>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이마무라 쇼고 작품으로 그는 동신()으로 2019, 진칸(じんかん)으로 2020년 나오키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22새왕의 방패로 제166회 나오키 상을 수상 했고 청소년들에게 독서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한 일반사단법인 혼미라이의 대표 이사로 활동하며, 점점 사라져가는 서점을 살리기 위해 오사카부 미노오시의 기노시타 북센터, 사가시 JR사가역의 사가노 서점, 도쿄도 진보초의 혼마루 3곳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책을 정말로 사랑하는 작가임에 틀림없습니다. 전국 시대를 석권한 창과 방패의 마지막 대결은 최후에 밝혀지는 새왕의 방패의 실체가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성을 내주는 것은 생사여탈권을 적에게 내준다는 의미입니다. 합의를 지키겠다고 목숨 걸고 약속해도 막상 항복하면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는 많습니다. ---P.622

 

새의 강펄처럼. 무너뜨리고 떠 무너뜨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쌓는 겁니다.---p.625





 

창과 방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명제는 '이 창은 모든 방패를 뚫지는 못 한다라는 뜻,

'이 방패는 모든 창을 막는다.'는 모순의 유래가 된 고사는 논리학적 모순이 아니라 두 문장이 동시에 참일 수는 없으나 동시에 거짓일 수는 있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새왕의 방패라는 제목을 먼저 보니 창과 방패가 생각이 납니다. 영리한 취재를 통해 태어난 인물 도비타야 겐사이는 1000년에 이른다는 아노슈의 역사 속에서 천재로 불리우며 당대 최고라는 뜻의 새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가 유일하게 후계자로 인정한 교스케는 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아노슈의 임무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돌담을 쌓고 있습니다.

 

 

이런 아노슈에게는 아픔이 있습니다. 어린시절 어머니와 동생을 지키지 못한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지키지 못했다는 회한이 있어 돌담 쌓기를 통해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그와 맞은 편에 서 있는 겐쿠로도 아픔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우헤에는 활의 달인으로 끊임없이 연마하던 중 화승총에 맞아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무리 활을 잘 쏘아도 총을 이길 수는 없음을 깨달은 겐쿠로는 최고의 총을 만들기 위해 철포 장인이 됩니다.

 

같은 상처를 품고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은 역사적 분수령이 될 세키가하라 전투 전야의 오쓰 성에서 결전을 치룹니다. 돌담을 어떻게 쌓으냐에 따라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조그마한 역사적 단서 하나를 가지고 과감한 상상력으로 놀라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이마무라 쇼고의 작품입니다. 오쓰 성에서의 공방을 창으로, 그다음은 방패의 시선으로 독자를 바라보게 하는데 작품의 묘미가 있습니다. 평와의 질은 창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방패가 결정하는 것도 아닌 사람의 마음이 결정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 밝혀지는 새왕의 방패 실체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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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 - 제1차 세계대전 중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축구 경기 이야기 도토리숲 평화책 9
마이클 포맨 지음, 강이경 옮김 / 도토리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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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 협찬받았습니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평화의 꽃으로 피어났다가 스러진

네 명의 청년들이 들려주는 꿈과 희망의 이야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지금, 해당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는 전쟁으로 인해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고도 무의미한 범죄인지 수세기에 걸쳐 경험하고도 다시 반복하고 있는 현실은, 어린이들에게 전쟁의 실상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려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는 총을 겨누던 영국과 독일 병사들이 크리스마스에 무인 지대에서 만나 벌이는 축구 경기를 통해, 전쟁이 아닌 평화를, 대결이 아닌 화합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을 깨닫게 합니다. 이 책은 스마티스 그랑프리 수상작으로 모든 세대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시대적 주제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잘 표현하는 작가 마이클 포맨의 대표작으로 기대가 됩니다.

 

! 윌은 공이 그물 뒤쪽을 흔들며 들어가는 것을 보았어. 자신이 방금 영국을 위해 골을 넣었고, 수많은 관중이 외치는 함성을 듣고 있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낮은 울타리와 서퍽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들판만 펼쳐져 있을 뿐, 관중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어.”




 

 

전쟁에 나갔다 와서 이겨 줄게.”

 

1914년 여름은 여느 해 여름보다 뜨거웠다. 윌과 친구들은 드넓은 밭에서 오래도록 열심히 일했고, 말리 사라예보에서 대공이 살해 당했습니다. 마을의 나이든 병사들은 일치 감치 다시 국가의 부름을 받아 프랑스와 벨기에의 전쟁터로 가는 중이었고 젊은이들은 이들을 따라 전쟁터로 가야 한다는 심한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영국 군대에서는 독일이 유럽을 가로질러 전진하는 걸 멈추려면 수천 명의 병사가 필요했고 방방곡곡에 신병 모집 포스터가 붙었고 신문들은 모든 남성에게 왕과 국가를 위해 의무를 다하라 촉구했습니다.

 

이 세상에선 모든 걸 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경기, 사업, 가정생활 등 하지만 지금은 오직 한 가지만 해야 때 그것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축구 선수들은 더 위대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대거 입대했고 1916115일 축구 부대는 최전선으로 진격했으나 전쟁이 끝날 무렵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투에서 안타깝게도 사망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열린 축구 경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전쟁은 계속되고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습니다. 한 독일 병사가 고요한 밤을 부르기 시작하고 영국 병사도 이에 노래로 응답했습니다. 노래를 부르던 밤이 지난 후 양쪽은 무장하지 않는 병사들 몇몇이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축구공 하나가 굴러왔고 그렇게 영국군과 독일군은 축구 시합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영화같은 이야기는 스카티스 그랑프리 수상작으로 영국 작가 마이클 포맨의 대표작입니다. 조국을 위해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한 영국 시골마을 서퍽 출신의 네 젊은이의 감동적인 경기입니다.

 

 

맑고 서릿발 같은 공기 속에서 선수들 등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고, 얼굴에서는 함박웃음과 입김이 피어올랐지.”

 

축구 경기를 통해 전쟁이 아닌 평화를, 대결이 아닌 화합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을 깨닫게 하는 경기를 읽으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아직도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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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만든 30개 수도 이야기 - 언어학자와 떠나는 매력적인 역사 기행
김동섭 지음 / 미래의창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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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만든 30개 수도 이야기

미래의 창에서 협찬해 주신 도서입니다.

 

그 도시는 어떻게 수도가 됐을까?”

문명의 탄생부터 신대륙의 발견까지,

지명의 어원으로 읽는 더 신선한 세계사!

 

·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가 어디냐는 질문에 황제도 대답 못 한 이유

· 베른, 베를린, 마드리드의 공통점은 ’?

· 북경, 동경, 남경... 왜 동아시아 수도 이름에는 이 들어갈까?

· 미국의 수도가 원래 뉴욕이었다고?

 

문화는 계속 변화하고 권력은 이동한 수도는 문명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새로운 도시에 자리를 내줍니다. 이처럼 수도는 한 나라의 역사·문화·권력의 중심지입니다. 고대부터 핵심지였던 로마나 파리 같은 수도가 있는 반면, 현대에 들어와 허허벌판에 새로 건설된 브라질리아 같은 수도도 있습니다. 빛의 도시 파리와 천일야화의 도시 바그다드, 뉴욕의 대항마 워싱턴 등 그동안 궁금했던 도시의 이야기 중 그 중심에 있는 30곳의 수도 이야기가 기대가 됩니다.

 

세계의 전 역사가 이 도시와 연관되어 있다.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 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천년의 제국 로마는 전형적인 중핵 수도로 분류할 수 있는데 서로마 제국 말기에 황제들이 황궁을 다른 도시로 옮기고, 수도 역시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지만, 로마는 중세에도 기독교 제국의 수도로서 확고한 위상을 지켰고,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전쟁을 통해 수도의 위상을 회복했습니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는 유럽의 역사가 로마로 흘러 들어갔고 다시 로마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로 로마는 로마 제국 아니 온 유럽의 수도였습니다.

 

정의도 패배할 수 있고 무력이 정신을 굴복시킬 수 있으며 용기를 내도 용기에 대한 급부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바로 스페인에서.”

 

위의 말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말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는 스페인 내전에 대해 1936717일 모로코에 주둔하고 있던 스페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그 중심에는 프랑코 장군이 있었고 프랑코를 비롯해 파시즘 진영의 군부가 민주 선거로 집권한 인민전선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이중핵 수도로 분류한 이유는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라곤 왕국을 이어받은 카탈루냐 지방의 인구는 7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6%에 지나지 않지만, GDP는 스페인 전체의 5분의 1을 차지합니다. 역사적으로도 다른 나라였고, 언어도 달랐으며, 게다가 스페인 내란까지 겪었던 카탈루냐인들이 지금도 독립을 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은 수도란 무엇이고, 언제부터 역사에 등장했는지 수도에 관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처럼 고대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수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캐나다는 유명한 대도시 토론토와 몬트리올이 아닌, 작은 도시 오타와를 수도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입법, 행정, 사법의 수도가 각각 따로 존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은 미국의 수도가 아니며, 브라질의 최대 도시 상파울루도 그렇습니다. 이처럼 수도는 문명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일정 기간 역할을 하다가 새로운 도시에 자리를 내어주기도 합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198개의 국가가 있다고 합니다. 해외여행을 할 때 수도를 가장 먼저 찾듯이 수도의 중요성도 알게 되고 도시에 관한 역사적 사실도 알게 해주는 유익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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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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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오랜 해외 생활을 마무리하고 일본으로 귀국한 돌싱 리에. 글을 쓰며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싱글 다미코, 아들과 함께 살며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문병하는 주부 사키. 대학 시절 늘 셋이서 붙어 다녀서 지어진 이름, 쓰리 걸스입니다. 그녀들은 졸업 이후 삼십 년간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자유롭고 비범한 리에의 귀국을 계기로 다시 뭉친 순간 그들은 수다 삼매경에 빠지게 되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대표작가 에쿠니가오리의 신작입니다. 세명의 동창의 오랜만의 30년 만의 재회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세 주인공 중 다미코에게 독자는 호감이 갔습니다. 문학상도 수상한 적이 있어 때로는 소설가, 때로는 라이터나 서평가, 에세이스트로 다양하게 불리지만 그만큼 정체가 애매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채 오십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도 여전히 여든된 어머니 가오루와 살고 있습니다.

 

리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멀리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취직 후 영국에 자리를 잡은 후로는 일본을 오가며 금융 쪽에서 일하는 글로벌한 여성으로 성장합니다. 결혼과 이혼을 한번도 아닌 두어번 경험하는 분방한 생활을 하다 이제는 영국 생활을 접고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마디로 자유분방한 성격이네요.

 

마지막 사키는 아들 둘을 낳아 키운 조신한 주부로 무심한 남편과 한밤의 텔레비전 영화를 감상하거나 계절 따라 마당을 가꾸는 낙으로 사는 한편 치매를 앓아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를 문병하고 어린나이에 철없이 결혼하겠다는 큰아들과 옥신각신하면서 여느 주부와 다를 게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상에 잔잔한 작품은 보기 드문데 이 또한 매일 사건사고로 어지럽고 아픈 마음에 평화를 주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리에게 영국 생활을 접고 귀국하면서 시작되고 당분간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남편도 자식도 없는 다마코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되면서 그녀들을 둘러싼 일상이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도쿄에 몇 채의 아파트를 소유하며 월세를 받으면서도 굳이 다미코 집에 비집고 들어와 자기 방까지 꿰찬 리에를 다미코는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친구 절친이라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집 없는 아이가 돼버린 거라는 리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네요. 다미코의 엄마인 가오루는 딸보다 수다스럽고 쾌할한 리에와 잘 맞습니다. 둘은 리에가 집을 찾는 동안 마치 모녀같이 지내는데 독자는 그것 또한 좋아 보입니다. 자유분방하고 충동적인 리에는 새집을 구하는 과정과 다미코와 모모치의 새로운 우정 덕분에 수다거리가 늘어나고 가오루가 발목을 삐고 난데없이 백내장 수술을 하거나 다미코의 죽은 친구의 딸 마도카와 그녀의 여인 가오루의 젊은 친구인 리쿠토 군과의 관계 사키의 큰아들이 벌이는 결혼 소송 등 사건도 일어납니다.

 

나 캔털루프 멜론은 똑똑히 기억하는데, 참외처럼 표면이 매끈할 거라고 우리 셋의 의견이 일치했어. 단순하게 생겼고, 기품있는 맛일 거라고 했고. 나는 노란색일 거라고 했어. 왜 살이 노란 수박도 있잖아?

 

우리, 참 오해가 많았던 인생이네.“

---P.284

 

제목에 나오는 셔닐노란 멜론은 이들이 대학 시절 독서 동아리에서 토론까지 벌일 정도로 동경했던 어휘들이다. 인터넷 검색이 없던 시절, 영어책에 나오는 셔닐캔털루프 멜론이 정확히 뭔지 알 길이 없었다. 어감만으로 보면 한없이 근사하고 멋진 어떤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을 들여다 보는 재미와 셔닐 손수건이나 속살 노란 멜론같은 상징적인 소품들이 이 인물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돋보이게도 합니다. 50대 후반이 된 세 주인공을 보면서 우리는 젊은 시절 수많은 꿈을 꾸고 멋진 인생을 설계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우리를 호락호락 쉽게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에쿠니 가오리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냥 순간 순간 즐기면서 충실히 삶을 살아가라고 조언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극적인 갈등과 위기 상황이 없는 소소한 일상들이 지금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독자에게 위로가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쉼 없이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독자들을 찾아와 주는 에쿠니가오리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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